배롱나무를 노리는 사람들



  늘 마을에서 지내면서 집과 도서관 사이를 오가다 보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댄 ‘도시사람’을 곧잘 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이 깊은 시골마을까지 찾아올까? 우리 마을에서 흐르는 싱그러운 샘물을 떠 갈 생각일까? 어쩌면 샘물을 떠 가는 사람도 있겠지. 오늘 두 아이하고 빨래터 물이끼를 걷으러 가서 웃통을 벗고 신나게 물이끼를 걷는데,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저기 배롱나무 가지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약으로 쓰게.” 하고 묻는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대뜸 배롱나무 가지를 달라고 하는 까닭은 뭘까?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배롱나무 가지가 좀처럼 늘지 못하고 자꾸 꺾이거나 줄어든다고 느꼈다. 아하,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몰래 베거나 잘라 갔는가 보구나. “마을나무인데 함부로 안 베지요. 그리고 다들 약으로 쓴다면서 가지를 잘라 가면 나무가 남아나겠습니까? 다른 데 가서 알아보세요. 산에 가거나 길에서 베거나 하세요.” “약으로 쓴다는데, 갑갑하게 구네.” “여보세요. 이 나무는 아저씨 나무가 아니라 우리 마을 나무입니다. 나무를 아낄 줄 모르면서 무슨 약으로 쓴다는 말입니까?” 늙수그레한 아저씨는 잔뜩 욕을 늘어놓고 자동차 문을 쾅 닫고 간다. “아버지, 저 사람 왜 나무를 벤데?” “이 나무가 약이라서 가져가겠대. 그래서 가져가지 못하게 했어.”


  가만히 보면, 도시사람은 외지고 깊은 시골마을로 몰래 들어와서 나뭇가지뿐 아니라 이것저것 몰래 캐거나 뜯거나 파 가곤 한다. 그러면서 마을사람한테 들키거나 들통이 나면 ‘인심 좀 쓰라’고 핀잔을 하다가 ‘인심을 안 쓰겠다’고 하면 온갖 욕을 내뱉는다.


  어디에 어떤 약으로 쓸 생각인지 모를 노릇이나, 고약한 마음으로 찾아와서 고약한 마음으로 빼앗거나 훔치면 어떤 약이 될까? 마음을 곱게 다스린다면 몸이 아플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배롱나무도 뽕나무도 후박나무도 초피나무도 자귀나무도 …… 제발 찾지 마라. 방송에서는 제발 엉터리 같은 약초나 약나무 이야기 좀 내보내지 마라. 약이 안 되는 풀이나 나무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 마을 배롱나무 가지를 또 훔치려고 했던 사람은 ‘마을 할매가 낮잠을 자거나 쉴 겨를’에 마을 어귀에 나타났다. 오늘 바로 그때에 아이들하고 빨래터를 치우러 나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끔찍한 노릇이다. 4348.8.27.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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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뒹굴며 자라는 호박알



  마당에서 호박알이 뒹굴면서 자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박알을 가만히 들추면 밑에서 쥐며느리와 개미가 바글바글하다. 얘들아, 너희 예서 뭐하니? 너희도 호박알을 먹으려고 그러니? 가만히 보니, 호박알은 바닥에서 뒹굴면 안 되고 풀잎이든 지붕이든 울타리이든 바닥하고 떨어져야 하는구나 싶다. 그런데 이렇게 마당까지 뻗는 호박넝쿨이니 어쩐담. 뭔가를 마련해 주어야겠다. 쥐며느리하고 개미한테 굵은 호박알을 넘길 수 없다. 우리가 호박을 먹을 적에 뭉텅뭉텅 잘라서 너희한테도 나누어 줄 테니, 다른 것을 먹고 이 호박알은 부디 우리한테 넘겨 주렴.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문득문득 호박알을 본다. 널찍한 잎에 가려서 좀처럼 못 알아보는 듯하다. 여기 있는 줄 알면서도 언제나 새로 보는 듯이 군다. 참말 호박잎은 커다란 호박알조차 넉넉히 가려 준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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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나비를 지켜보다 (파란띠제비나비)



  오늘 아침에도 언제나처럼 후박나무 밑에서 번데기를 살펴본다. 어제 살짝 거무스름한 빛이 돌더니 오늘 아침에는 이 빛이 매우 짙다. 아, 오늘 깨어나려 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얼추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나와서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런데 열 시하고 열한 시 사이에 그만 나비가 번데기를 벗고 몸통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사이에 번데기를 비집는 모습은 놓쳤다.


  그래도 파란띠제비나비가 우리 집 후박나무에서 깨어나 날개를 말리는 모습은 지켜볼 수 있다. 보고 또 보면서 배고픔을 잊는다. 다시 보고 새로 보면서, 애벌레가 나비로 거듭나는 삶을 새롭게 되새겨 본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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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날아오른 뒤에

다른 사진과 동영상을

곧 함께 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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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무릎꽃



  마당 한쪽에서 쇠무릎이 꽃을 피웁니다. 조그맣게 꽃송이가 올라오니, 곧 기운찬 꽃줄기로 거듭날 테지요. 쇠무릎은 잡풀로 여기려면 잡풀이 되지만, 약풀로 여기만 약풀이 되고, 나물로 삼으려면 나물이 되어요. 그리고, 푸른 빛깔로 돋는 꽃을 꽃으로 여기려면 들꽃이 되고, 꽃이 아니라고 여기려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여름 내내 쇠무릎잎을 먹으며 살았으니, 이제 첫가을 어귀에 쇠무릎꽃도 함께 먹습니다. 가을이 깊고 깊어 저물 무렵에는 쇠무릎뿌리를 파서 먹을 생각입니다. 잎도 꽃도 뿌리도 모두 밥이 되고 새로운 숨결로 스며드는 들풀입니다. 들풀 한 포기는 해를 바라보며 자라는 동안 흙을 북돋우고 사람을 살찌워 줍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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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꽃은 재미있다



  부추풀은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맛이 좀 세다. 이른봄부터 이른여름 사이에 날마다 신나게 잎을 뽑고 또 뽑으면서 신나게 즐기는데, 어느 무렵부터 더 먹기 어렵도록 센 맛이 돈다. 부추풀로서는 ‘사람들아, 이제 나를 그만 먹으렴. 이제는 꽃을 피우고 씨를 맺도록 기운을 모아야 해. 올해에는 이쯤 먹고 다른 풀을 먹어 주렴. 꽃씨를 맺어서 퍼뜨려야 사람들 너희도 이듬해에 더 넉넉히 우리를 먹을 수 있을 테니.’ 하고 말을 건네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동안 부추풀을 잊고 다른 풀만 훑어서 먹다가 어느 때에 문득 ‘어라, 이렇게 하얀 꽃이 곱다라니 피었네!’ 하고 알아차린다. 한 송이가 핀 모습은 그냥 지나치고 두어 송이가 핀 모습도 바빠서 그대로 지나치다가, 어느덧 꽃잔치가 이루어질 무렵에는 물끄러미 쳐다본다. 다른 곳에도 부추꽃이 잘 피었나 하고 두리번거린다. 부추꽃씨가 까맣게 맺을 적에 마당 곳곳에 일부러 뿌리는데, 참말 부추꽃이 마당 이곳저곳에서 핀다.


  올 한 해 너희와 함께 즐거웠던 나날을 이듬해에도 잇고 싶구나. 고운 꽃을 언제나 곱게 피워서 이제 가을에는 너희 흰꽃내음을 우리한테 베풀어 주렴. 4348.8.2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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