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까마중

 


  쑥을 봄에 먹을 적에는 ‘봄쑥’이라 하고, 쑥을 가을에 먹을 적에는 ‘가을쑥’이라 한다. 이른여름에 마주한 까마중이면 ‘여름까마중’이라 하고, 늦가을에 마주하는 까마중이면 ‘가을까마중’이라 하면 될까. 11월 22일에도 까맣게 익는 까마중이 있다. 이날에도 하얗게 꽃을 틔우는 까마중이 있다. 아직 푸른 열매 매단 까마중이 있다. 겨울이라 하더라도 눈바람 거의 안 부는 고흥 시골마을인데, 12월이 되어도 까마중은 꽃을 피울까. 12월 한복판이 되어도 까마중 까만 열매를 먹을 수 있을까.


  아마 12월에도 까마중을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집 마당이랑 텃밭에는 갓풀이 싱그러이 돋아 얼른 뜯어 먹어 달라며 부른다. 다만, 1월에는 어떠할는지 모른다. 까마중풀이 1월에도 씩씩하게 살아내어 까만 열매를 먹으며 기운내라고 부를는지, 1월쯤이면 모두 시들어 죽을는지 모른다. 아이들과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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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홍서나물 책읽기

 


  우리 집 마당 둘레이든 마을 밭둑 어디이든 흔하게 피고 지는 ‘주홍서나물’이라는 풀을 본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풀이요, 거의 남녘에만 피고 지던 꽃이라는데, 차츰 위쪽으로도 올라가서 피고 진단다.


  주홍서나물은 풀이름부터 ‘나물’이라고 일컫는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라든지 이곳저곳에서는 주홍서나물 같은 풀은 ‘나쁜 귀화식물’이라 여겨 뿌리째 뽑아 없애려 애쓴다고 한다.


  궁금하고 궁금하다. 이런 들풀 한 포기를 뿌리째 뽑는들 없앨 수 있을까. 이런 들풀은 씨앗이 얼마나 작으며 널리 퍼지는가를 알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웃나라로 자주 오가고, 이웃나라에서 한국으로 흔히 오간다. 이제 지구별에서 ‘외래식물’도 ‘귀화식물’도 따로 말할 수 없다. 한국사람 스스로 커피나무를 받아들여 심기도 하는데, 블루베리나무를 심기도 하는데, 왜 어느 나무와 꽃과 풀은 일부러 이웃나라에서 사들여서 심고, 왜 어느 나무나 꽃이나 풀은 못 들어오게 막으려 하거나 뿌리째 뽑아 없애려 할까.


  늦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이름을 알아내어 ‘주홍서나물’이라는 말마디를 읊어 본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식구는 ‘주홍서나물’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채 즐거이 뜯어서 먹었다. 올해가 저물고 새해가 되어도, 이 들풀을 비롯해 온갖 들풀을 신나게 먹겠지. 가만히 보면, 감자도 고구마도 모두 귀화식물인데, 감자랑 고구마를 없애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고 들은 적 없다. 고추도 토마토도 몽땅 귀화식물이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가운데 고추 먹지 말고 쫓아내자 외치는 사람 또한 어디에도 없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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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루비아 책읽기

 


  작은아이가 잠들어 큰아이만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이웃마을로 살짝 에돌아 집으로 돌아오던 날, 맞바람이 너무 모질어 도무지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에 마을 안쪽길을 달리며 바람을 긋는데, 이웃마을 끝집 시멘트벽 한켠에 사루비아가 소담스레 꽃을 피운 모습을 본다. 사루비아가 이맘때쯤 꽃을 피우던가? 아무튼 반갑다고 인사하며 자전거를 세운다. 큰아이가 왜 자전거 세우냐고 묻기에 빙긋 웃고는, 사루비아 꽃술을 석 장 따서 둘을 아이한테 내밀고 하나는 내가 쪽 빤다. 아이더러 빨아 보라고 한 다음, 나는 꽃술을 잘근잘근 씹어 본다. 아이는 처음에는 못미덥다 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나더러 “더 줘.” 하고 말한다. 더 뽑아서 내민다. 또 “더 줘.” 하고 얘기하지만, 우리 집 꽃도 아니니 더 뽑을 수 없기에, 이제 그만 먹고 집으로 가자고 얘기한다.


  어릴 적부터 사루비아 꽃술은 많이 뽑아서 빨았는데, 씹어 보기는 처음이다. 꽃술을 빨아 단물이 나오면 꽃술도 먹을 만하지 싶어 씹는데, 처음에는 달달하다가 나중에는 꽤 쓴맛이 돈다. 먹으면 안 되는 꽃술인가? 그래도 다른 푸성귀랑 섞어서 밥이랑 함께 먹으면 이런 쓴맛은 없으리라 느낀다. 외려, 밥을 먹을 때에는 쓴맛 나물도 즐거울 수 있겠지. 씀바귀가 쓴맛인데에도 나물로는 즐겨먹으니까.


  다시 모진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맨 처음 누가 사루비아 꽃술을 쪽 빨아먹는 맛을 알았을까. 사루비아 꽃술은 왜 뽕 하고 뽑아서 쪽 빨아서 먹도록 생겼을까. 다른 짐승은 사루비아 꽃술을 어떻게 먹을까. 그냥 통째로 우걱우걱 씹어서 먹으며 단맛도 즐기고 쓴맛도 즐길까. 벌이나 나비는 사루비아 단물을 어떻게 빨아먹을까. 꽃술을 잡아뽑지 않더라도 단물을 먹을 수 있을까. (4345.11.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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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줄기 예뻐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새로 뻗는다. 갑자기 나무줄기 꼭대기에서 옆으로 퍼지는 가지는 없다. 줄기마다 조그맣게 움이 트고 싹이 돋으며 잎이 하나 살그마니 나는데, 이 잎줄기가 바로 나뭇가지가 된다. 다른 나뭇가지가 저 위에 있달지라도 새 움은 언제나 조금씩 돋기 마련이요, 새 움은 이내 새 나뭇가지가 된다.


  사람들이 시골을 등지고 서울로 몰려들면서 나무줄기도 가지도 잎도 뿌리도 살갗으로 못 느끼고 만다. 여름 한철 지나고 텅 빈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한동안 사람 손길을 안 타니까 스스로 마음껏 줄기를 돋우며 뻗는다. 푸른 잎사귀는 그야말로 푸르고, 푸른 가지는 그야말로 푸르다. 예쁘다. (4345.11.1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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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이 좋아

 


  삶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좋다’와 ‘나쁘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좋다와 나쁘다라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무언가 즐길 만할 때에 ‘좋다’라 말하고, 나 스스로 즐길 만하지 않을 때에 ‘나쁘다’라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즐길 만하구나, 즐겁구나, 하는 뜻으로 ‘좋다’라는 말이 흘러나와요.


  나는 풀밭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풀이 좋고 반가우며 고맙거든요. 중학교 3학년이었나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문학 교과서에서 〈풀〉이라는 시를 만나고는 김수영 시인이 좋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면 이렇게 시를 쓸 때에 나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은 ‘풀’을 모두 들려주지 않았어요. 김수영 시인이 살아가는 어느 도시 어느 보금자리에서 느끼는 풀살이만 들려주었어요.


  풀밭을 가만히 바라보면, 풀은 바람에 따라 눕지 않고 일어서지 않습니다. 숱한 풀이 서로 얼키고 설켜 가만히 있습니다. 드센 비바람이 몰아친대서 풀포기가 뽑히지 않아요. 풀은 서로 뿌리에서도 얼키고 설키거든요. 풀 한 포기 뽑아 보셔요. 이웃한 풀까지 나란히 뽑혀요. 서로 한 뿌리라도 되는 듯 꼭 붙잡으니까요.


  풀밭을 바라보면서 내 눈을 거쳐 내 마음으로 푸른 기운이 스며듭니다. 풀밭을 마주하면서 내 손과 내 가슴으로 푸른 숨결이 샘솟습니다. 좋아요. 풀이 좋아요. 즐거워요. 풀이 즐거워요. 풀은 사랑을 먹고, 사람은 풀을 먹습니다. 풀은 씨앗을 남기고, 사람은 사랑을 남겨요. (4345.11.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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