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떠올리는 겨울 책읽기

 


  겨울을 지나면 봄이 찾아들고, 봄을 누리면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우내 조용한 마을에서 조용한 빛을 느낍니다. 어떤 짐승과 벌레는 새근새근 겨울잠을 잡니다. 어떤 풀과 나무는 곱게 시들며 새봄을 기다립니다. 어떤 새는 겨우내 먹이를 찾느라 부산하고, 어떤 짐승은 겨우내 살아갈 길 찾느라 바쁩니다.


  겨울에 잎을 모두 떨구는 나무 있고, 겨울에도 잎을 모두 건사하는 나무 있습니다. 겨울이면 숨죽이며 느긋하게 쉬는 사람 있으며, 겨울에 되레 부지런히 땀흘리는 사람 있어요. 겨울에도 풀빛은 푸릅니다. 그러나 겨울이기에 풀빛이 누렇기도 합니다. 봄이 찾아들면 풀빛이 새삼스레 싱그러운 푸름입니다. 그렇지만 봄에도 아직 누르스름한 풀빛이 곳곳에 감돌아요.


  내가 아이들과 도시에서만 지냈으면 겨울빛과 봄빛을 어떻게 누렸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에 앞서, 어버이인 나부터, 겨울빛을 얼마나 겨울답게 누리고 봄빛은 또 얼마나 봄답게 누렸을까요. 흙과 풀과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아니라,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도시에서는 겨울빛과 봄빛이 어떤 모습일까요. 아니, 도시는 봄빛과 겨울빛이 따로 있기나 할까요. 도시는 여름빛이나 가을빛이 새삼스레 있을 수 있나요.


  아이들은 즐겁게 놀 수 있어야 아이요, 아이들은 한갓지게 뒹굴 수 있어야 아이라고 느낍니다. 도시가 아직 흙바닥 골목길이요, 한복판이나 변두리에 논밭이나 동산이나 언덕이나 도랑물 있던 때에는,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살갑게 뛰놀 만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도시 한복판뿐 아니라 도시 변두리에서마저 논밭이나 동산이나 언덕이나 도랑물이 몽땅 사라지거나 밀려난 이즈음, 아이들이 도시에서 얼마나 아이다울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아이답게 뒹굴 수 없는 터라면, 어른들도 어른다이 일하거나 사귀기 힘들겠다고 느껴요.


  나로서는 어버이인 나부터 내 삶빛을 밝히고 싶기에 시골살이를 꿈꾸었구나 싶어요. 겨울에는 겨울을 누리며 봄을 떠올리고 싶고, 봄에는 봄을 흐드러지게 맛보면서 겨울이 어떠했는가 되새기는, 재미나며 멋스러운 삶읽기를 생각하며 도시 아닌 시골을 내 고운 삶자리로 찾았구나 싶어요.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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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제비꽃과 제비빛 책읽기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제비를 익히 보았다. 그러나 제비꽃은 좀처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제비빛’이라 하면, 제비 배때기 하얀빛보다는 제비깃 짙은보라빛이 먼저 떠오른다. 얼핏 보면 새까만 듯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촤르르 빛나는 짙은보라빛이 제비빛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에 제비꽃을 못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내가 못 알아보았을 뿐, 이 골목 저 골목, 또 이 풀밭 저 풀밭에서 제비꽃은 저희 스스로 조그맣고 앙증맞은 꽃잎이랑 풀잎을 뽐냈으리라 생각한다.


  추운 겨울날 문득 봄제비꽃이 떠오른다. 왜 봄제비꽃이 떠오를까. 겨울 지나 새봄 찾아들면 따스한 바람을 기리려는 듯, 저 먼 바다를 건너 제비들이 무리지어 찾아오기 때문일까. 추운 바람을 맞으면서 제비꽃이 피어나고, 아직 추위 덜 가셨으나 따순 봄바람 불 적에는 온 들판에 ‘자, 모두들 기지개 켜고 일어나 새봄을 맞이하자구요!’ 하면서 제비가 날갯짓 춤사위를 보여주기에, 이 춤사위를 얼른 지켜보고 싶기 때문일까. 4345.1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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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봄꽃 책읽기

 


  지난 시월 고흥 발포 바닷가에서 ‘새로 핀 벚꽃’을 보았다. 지난 십일월에는 우리 고흥 동백마을에도 석류꽃이 다시 피었다. 석류는 가을날 좀 일찍 열매를 맺는데, 열매를 다 떨군 석류나무에 석류꽃 두어 송이 작다랗게 맺힌 모습을 보았다. 십이월 접어들며 찬바람과 찬눈이 살짝 찾아드니 십일월에 새로 돋은 감잎이며 매화잎이며 석류잎이며 우수수 떨어지는데, 찬바람과 찬눈이 지나가고 나서 겨울비가 내리고 따순 햇볕 여러 날 비추니, 이른봄에 맨 먼저 피어나는 봄꽃 세 가지가 나란히 핀다. 광대나물꽃·봄까지꽃·별꽃. 오늘은 다시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 불면 애써 피어난 봄꽃은 봉오리를 꼭 닫는다. 따숩게 찾아드는 볕과 바람이 없으면, 이들 봄꽃은 아마 겨우내 봉오리를 꼭 닫은 채 겨울나기를 할 테지. 동백꽃은 찬눈 맞으면서도 봉오리를 닫지 않으나, 이른봄 들꽃은 찬바람 조그만 불어도 아이 추워 하면서 옹크린다. 그런데 이런 봄 들꽃들이 가장 먼저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야무지다고 할까, 씩씩하다고 할까, 참으로 싱그럽다.


  따사로운 겨울볕에 빨래는 잘 마르고, 모처럼 이불도 해바라기를 시킨다.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하며 겨울에 핀 봄꽃을 즐거이 마주하며 인사한다. 며칠 찬바람 불고 나서 다시 마실을 하면 이들 어여쁘고 앙증맞은 자그마한 봄 들꽃 다시 만날 수 있겠지. 4345.1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2012년 12월 16일 낮에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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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있는 집

 


  감나무 있는 집에서는 감을 먹을 수 있다. 봄에는 새로 돋는 푸르게 빛나는 잎사귀를 보고, 여름으로 넘어서기 앞서 노르스름 해맑은 꽃망울을 보며, 가을로 접어들 무렵 알차게 여무는 감알이 푸른빛에서 누런빛으로 바뀌다가는 살살 발그스름한 물이 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알이 불그스름 물들면서 감잎도 나란히 불그스름 물든다.


  감은 톡 따서 먹어도 맛있고, 감은 물끄러미 바라보아도 즐겁다. 감나무는 줄기를 살살 쓰다듬어도 예쁘고, 감잎을 살며시 보듬어도 예쁘다.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 자라는 집이란 얼마나 즐거울까. 밭뙈기 한켠에 감나무를 보살피는 집이란 얼마나 예쁠까.


  서울사람은 왜 더 넓은 집이나 교통 더 나은 집이나 일터랑 학교하고 가까운 집만 찾으려 할까. 서울사람은 왜 감나무 한 그루 심을 흙땅 있는 보금자리를 안 찾을까. 서울사람은 왜 이녁 보금자리에 감나무이고 능금나무이고 포도나무이고 심을 생각을 못 할까.


  나무가 자라는 집이란, 숨결이 푸른 집이다. 나무가 있는 집이란, 사랑씨앗이 드리우는 집이다. 나무가 노래하는 집이란, 멧새와 풀벌레를 불러 고즈넉히 무지개잔치를 벌이는 집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흙마당 있는 집을 바랐다. 나는 매우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 나무가 자랄 뿐 아니라, 씨앗 한 알로 나무를 심어 돌볼 수 있기를 바랐다. 지난 2011년 가을에 비로소 흙마당 있는 집을 얻어 언제나 나무를 누리며 살아간다. 이제 나무 있는 집 한 해를 보낸다. 서른여덟 해 삶 가운데 딱 한 해가 흙마당 살림집이다. 큰아이는 다섯 해 삶 가운데 한 해요, 작은아이는 두 해 삶 가운데 한 해이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나무 있는 마당 예쁜 집 살림살이를 오래오래 즐거이 누릴 수 있겠지.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다가 ‘겨울날 빨간 열매 가득한 감나무 골목집’을 만나고는, 이렇게 예쁜 집이 살붙이들을 얼마나 예쁘게 보살피는가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4345.12.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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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풀씨 반기는 책읽기

 


  억새 풀씨 팔랑팔랑 나부낀다. 이틀에 걸친 인천마실을 마치고 고흥집으로 돌아오는 시골길에 억새 풀씨가 나를 반긴다. 너희 참으로 곱구나. 너희 참으로 가볍구나. 너희 참으로 환하구나. 다른 곳은 온통 눈밭 되어 새하얀데 우리 고흥은 너희를 비롯한 풀과 나무가 푸르거나 누렇게 빛나면서 숲을 이루는구나. 따스한 고흥은 따스한 사랑 되어 따스한 사람들 가슴에 따스한 이야기로 아로새겨질까. 나도 너희 손길을 받아들여 따스한 말로 따스한 아이들이랑 따스한 보금자리를 일구는 따스한 살림을 아껴야겠다.


  아이들 조잘조잘 노래하며 아버지를 반기는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고 부대끼며 놀면서 밥을 먹인다. 빨래를 걷어서 갠다. 큰아이가 옷가지를 날라 준다. 나는 옷가지를 옷장에 차곡차곡 놓는다. 아이들은 졸린 눈이지만 더 뛰고 더 놀며 더 왁자지껄 웃으려 한다. 그래, 마음껏 더 놀아라. 신나게 놀며 하루를 누려라. 그러다 코코 곯아떨어지면서 새날을 또 맞이해야지. 4345.1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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