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되는 꽃

 


  꽃이 피어야 씨앗을 맺는다. 아니, 꽃이 피고 난 다음 꽃가루받이를 해서 꽃이 천천히 시들고 져야 비로소 씨앗을 맺는다. 씨앗을 맺어야 이듬해에 새로 심어서 거둘 수 있다. 꽃이 없다면 씨앗도 열매도 없으며, 씨앗도 열매도 없으면, 우리들 먹을거리는 똑 끊긴다. 씨앗 한 톨에서 싹이 트고 뿌리가 내려 줄기가 오르는데, 이 씨앗이 다시금 꽃으로 피어나고 즐겁게 시들어야, 새로운 씨앗 한 톨과 우리 밥상에 오를 먹을거리가 된다.


  식구들 먹을 밥을 차린다. 고구마랑 당근이랑 감자를 조금 굵게 숭숭 썬다. 세 가지 네모조각 놓인 도마 빛깔이 퍽 예쁘네. 밥 차리는 일손이 바쁘지만, 사진 한 장 찍어 남긴다. 나 혼자만 보기 아까우니까, 나중에 우리 아이들 커서 저희 손으로 이렇게 밥을 차리며 이 빛깔을 새롭게 보기를 바라면서, 또 그때 너희 아버지가 이런 빛깔을 참 좋아하며 사진 한 장 남겼다는 이야기를 슬며시 남기면서. 434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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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불주머니꽃 책읽기

 


  처음 잎사귀 돋은 모습만 보고는 쑥인가 여겼는데, 뜯어서 먹으니 쑥처럼 상큼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나지 않고 쓰기만 하다. 뭔가 하고 궁금히 여기며 더 지켜보았더니 꽃대가 오르며 어느덧 노란 꽃잎이 줄줄이 달린다. 쑥이 아니었네. 괴불주머니라 하는 풀이었네. 이런 풀 이런 꽃이로구나. 비록 맛나게 먹는 봄나물로 삼지 못하더라도, 봄날 따스한 기운하고 어울리는 노란 꽃잎은 봄놀이·꽃놀이 누리는 기쁨을 나누어 주는구나.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노란 꽃 좋아하셨다더니, 바로 너희 같은 이쁜 꽃빛을 좋아하셨겠구나 . 4345.12.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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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 맡는 아이

 


  봄날, 아이는 온 마을 휘젓고 돌아다니면서 풀내음 그득 맡는다. 아이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풀내음은 아이 몸을 감돈다. 풀 사이사이 고개를 살며시 내미는 조그마한 꽃송이도 아이 몸을 감돈다. 아이는 그저 들길을 거닐 뿐이라지만, 풀내음과 꽃내음이 아이 몸을 어루만진다.


  여름날, 아이는 씩씩하게 풀꽃놀이 즐긴다. 날마다 수없이 풀꽃다발을 만든다. 가을날, 아이는 기운차게 들놀이 누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건 말건 대수롭지 않다. 풀마다 아이를 부르고, 꽃마다 아이를 찾는다. 이윽고 겨울이 찾아오면, 아이는 풀내음 고이 잠드는 겨울내음을 맡는다. 고즈넉한 겨울 시골마을은 아이한테 새롭게 찾아드는 놀이터가 된다.


  꽃이름 몰라도 꽃을 좋아하는 아이로 살아간다. 풀이름 몰라도 풀을 아끼는 아이로 뛰논다. 우리 어른도 아이와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해를 보내면서 나 스스로 나한테 외친다. “꽃이름 굳이 알아야 하지 않아요. 풀이름 애써 알아야 하지 않아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빛줄기를 알아 주셔요.” 골목이나 고샅에서 까르르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 이름을 꼭 하나하나 물으며 알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 마음속에서 어떤 빛이 싱그러이 꼼틀거리며 푸른내음 풍기는지 느끼면 된다. 사랑을 느끼면 된다. 사랑을 느껴, 내가 새롭게 풀이름을 붙여 부르고, 꽃이름을 붙여 부르면 된다. 보라, 알프스 소녀 하이디도, 말괄량이 삐삐도,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머리 앤도, 풀과 꽃을 바라보며 이녁 사랑을 길어올려 언제나 새 이름을 붙여서 예쁘게 불러 주었다. 4345.12.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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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맛있어

 


  시골에서 살아가면 봄부터 가을까지 집 둘레에서 나물거리를 흐드러지게 얻는다.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제아무리 이름나거나 맛나다 하는 밥집에 들르더라도 나물 반찬 구경하기 매우 힘들다. 도시로 마실을 가는 우리 식구는 늘 ‘풀에 굶주린’다. 양념과 간을 하지 않은 날푸성귀에 목마르다. 햇살 머금고 바람과 빗물 마시며 흙기운 빨아들이는 싱그러운 풀을 먹어야 비로소 숨을 돌리며 ‘내가 이렇게 살아서 숨쉬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올 2012년 5월에) 옆지기와 내가 파주 책도시 풀밭에서 이 풀 저 풀 뜯어서 냠냠짭짭 맛을 보니, 큰아이도 풀을 한 잎 뜯어서 먹는다. “무슨 풀이야?” 무슨 풀일까? 이름으로 풀을 알 수도 있지만, 풀은 뜯어서 혀에 올려 냠냠짭짭 씹어서 냄새와 맛을 보아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어. 먹어 보렴. 풀잎은 맛있어. “그래? 음. 맛있어.” 좋아, 좋아. 맛있다니까. 4345.1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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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 빛깔 책읽기

 


  마당 가장자리 조그마한 텃밭에서 스스로 씨를 내어 스스로 자라는 들풀 하나 겨울을 맞이하며 바삭바삭 마른다. 누렇게 시들기 앞서 씨앗을 맺고, 바람이 불 적마다 천천히 씨앗을 퍼뜨린다. 나즈막한 겨울햇살 우리 집 마당으로 스며들 적에 누렇게 말라죽은 풀포기로도 드리운다. 아이들 뛰노는 마당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문득 풀씨를 깨닫는다. 너희는 참 고운 빛으로 그 자리에 서는구나. 너희가 높다란 여름햇살 받으며 푸른 잎사귀 뽐낼 적에도 그 자리에 서고, 이렇게 추운 겨울날 나즈막한 햇볕 쬐며 씨앗을 흩뿌릴 적에도 그 자리에 서네. 꽃이고 풀이고 모두, 씨앗 한 알에서 비롯해 새싹 한 줌으로 자라고, 뿌리 하나 내리면서 줄기 씩씩하게 올라, 크고작은 꽃으로 흐드러진 다음 알록달록 저마다 다른 씨앗으로 다시 마무리될 테지. 너희가 우리 식구와 함께 이 시골집에서 살아가니, 나는 자그마한 씨앗부터 새싹과 풀줄기와 잎사귀와 꽃에다가, 마지막 누렇게 시든 몸뚱이에 어리는 빛살까지 누릴 수 있구나. 4345.12.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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