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기름나물 책읽기

 


  나물은 입에 넣고 씹어도 맛나고,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도 배부르다. 입에 넣은 나물을 혀로 맛을 느끼면서 즐겁고, 나물을 캐기 앞서 손가락으로 살며시 어루만지는 동안 고운 잎결을 느끼며 즐겁다. 내가 심어서 기르면 푸성귀이고, 풀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자라면 나물이다. 밭에서 얻는 푸성귀로도 내 숨결을 살찌우지만, 들나물과 멧나물은 얼마나 싱그럽게 내 숨결을 살찌우는가. 갯기름나물은 왜 갯기름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어떤 까닭으로 이러한 이름 얻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풀잎을 만지작만지작한다. 지난해에 너희가 뿌린 씨앗 올해에 곳곳에서 돋으며 우리 식구들 숨결 곱게 살찌워 주기를 빈다. 너희 곁에 다른 나물 예쁘게 돋아 우리 식구 밥상에 푸른 빛깔 베풀어 주기를 빈다. 4346.2.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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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 책읽기

 


  뒷밭 쓰레기를 캐기 앞서 뽕나무부터 세웁니다. 지난여름 거센 비바람에 쓰러진 뽕나무입니다. 뽕나무는 쓰러질 일이 없었으나, 가지가 높아 열매 따기 힘들 테니 가지가 휘도록 하자며 장인어른이 줄로 묶어 당겨 놓았어요. 장인어른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나뭇가지를 줄로 잡아당겨 휘어 놓는 모습’을 보고는 ‘그것 참 옳구나’ 싶어 우리 시골집에서 그렇게 해 보셨습니다. 우리 시골집 살림과 일을 걱정하며 일손을 거드셨지만, 애꿎은 나무를 아프게 했달까요. 하나하나 돌아보면, 장인어른이 ‘둘레 사람 말을 듣고’ 나뭇줄기를 뭉텅뭉텅 자른 일이라든지, 뽕나무 가지를 잡아당겨 휘도록 한 일이라든지, 나무한테는 즐겁지 못한 노릇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살림을 일구면서 우리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면 되거든요. 가지끼리 너무 엉키기에 몇 군데 끊는다든지, 잎만 수북하게 자라는 가지가 돋으면 조금 친다든지 하면 되는데, ‘마을 누군가 한 마디를 한대’서, ‘조경사라는 이가 한 마디를 한대’서, ‘텔레비전에 나온 이야기를 들었대’서,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서, 자꾸 휩쓸리면 삶이 휘둘리고 맙니다.


  지게차를 써서 뽕나무를 세웁니다. 굵다란 뿌리 여럿 톱으로 끊습니다. 이만 한 나무 한 그루 세우자면 옛날에는 일꾼이 몇 사람 붙었을까 어림해 봅니다. 무척 큰일이었겠다 싶습니다. 그나저나, 뽕나무 세우는 사이 어느새 마을 할배 한 분 웃밭에서 구경하다가, 거 뭐하러 세우느냐며, 줄기 잘라서 버리라고, 한 말씀 합니다. 뽕나무 한 그루 때문에 땅뙈기 줄어들어 아깝다며, 나무 까짓것 버리라고 합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오디도 열리고 나무도 예뻐요. 저희는 뽕나무를 사랑해요.


  마을 할배는 자꾸자꾸 뽕나무 자르라 없애라 땅 넓히라 하는 말씀을 합니다. 싱긋싱긋 웃습니다. 이 나무는 튼튼하게 이 자리에 다시 서서, 앞으로 오래오래 우리 아이들한테 맛난 오디를 베풀고 시원한 그늘 베풀겠지요, 하는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욉니다. 뽕나무야, 뽕나무야, 너는 몇 살까지 살 수 있니. 나는 네가 우람하게 자라 우리 뒷밭뿐 아니라 우리 마을 환하게 밝히는 나무가 될 수 있기를 빈다. 천 해도 좋고 이천 해도 좋다. 새 뿌리 굵게 내리고, 새 가지 힘차게 뻗어 파란 하늘 맑은 바람을 먹으렴. 4346.2.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올해에는 뽕나무꽃 사진 예쁘게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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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위 틈 후박나무 책읽기

 


  나무는 씨앗으로 퍼집니다. 사람들이 씨앗을 받아 천천히 키워 어린나무를 옮겨서 심기도 할 테지만, 오랜 나날 한 곳에서 튼튼하게 자라 우람하게 서는 나무는 하나같이 스스로 씨앗으로 뿌리를 내려서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기 마련입니다.


  나무는 사람이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자랍니다. 빗물을 먹으며 여름을 나고, 눈송이를 가지에 얹으며 겨울을 납니다. 찬바람 더운바람 가리지 않고 맞아들입니다. 들새와 멧새가 끊임없이 내려앉아 노래를 부르며 지나갑니다.


  햇볕을 먹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바람결 따라 나뭇잎을 흔들며 노래를 부릅니다. 바닷가 바위 틈에 씨앗을 떨구어 자라난 후박나무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고운 사랑 북돋웁니다. 한 해 다섯 해 열 해 쉰 해 천천히 자라면서 줄기는 굵어지고 가지는 깊어지겠지요. 머잖아 바닷사람 바위에 걸터앉아 쉴 적에 여름에는 그늘을 베풀고 겨울에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겠지요. 해마다 새롭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 여럿 즐겁게 떨굴 테고, 숱한 씨앗은 저마다 바위 틈으로 깃들어 힘껏 뿌리를 내리려 하겠지요.


  사람은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무는 사람을 바라봅니다. 갈매기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후박나무는 갈매기를 바라봅니다. 어린 갈매기는 어린 후박나무를 보며 자라고, 어른 갈매기는 어른으로 자란 후박나무에 앉아 쉽니다. 새롭게 태어날 갈매기는 차츰 커지는 후박나무에 내려앉아, 먼먼 옛날 옛 어른 갈매기가 이곳에 깃들며 지낸 이야기를 물려받습니다. 434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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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풀 책읽기

 


  고흥군 금산면 오천마을 바닷가에서 ‘등대풀’을 바라본다.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았고, 바닷바람 매섭게 부는데, 너 등대풀은 참 야무지고 씩씩하게 돌틈에서 돋아서 자라는구나. 그런데, 네 이름은 ‘등대풀’이 아니었다지. 아니, 일본에서는 일본 풀학자가 너를 두고 ‘등대풀’이라 이름을 붙였다지만, 한국말은 ‘등잔’이고 일본말은 ‘등대’라지. 그렇지만, 한국 풀학자는 한국말을 옳게 몰라 ‘등잔풀’ 아닌 ‘등대풀’이라 네 이름을 붙였고, 오늘날까지 이 일본 풀이름이 고스란히 쓰인다지.


  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쯤 앞서, 이 시골마을에서 살던 할매 할배는 어떤 이름으로 너를 맞이했을까. 너는 이 나라 시골마을에서 어떤 이름을 받으며 오늘까지 이렇게 씨앗을 맺고 뿌리를 내리며 함께 살아왔을까. 생각해 보면, 등대이건 등잔이건 ‘불’이로구나. 불을 밝히는 빛나는 꽃답다는 네 모습이요, 불을 밝히는 받침이 있구나 싶은 네 모습이라면 ‘불받침꽃’일까. ‘불꽃받침풀’일까. 434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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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까지꽃 책읽기

 


  2011년 가을에 전남 고흥 두멧시골에 깃들면서 2012년 봄에 ‘봄까지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에도 이 꽃을 보았을 테고, 예전에도 이 꽃을 보았을 테지만, 지난날에는 이 꽃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름을 들어도 이내 잊고, 모습을 보아도 고개를 돌리면 곧장 잊었어요.


  ‘봄까지꽃’이라는 풀이름은 강운구 님이 쓴 《시간의 빛》이라는 사진책에 잘 나옵니다. 이 풀이름을 놓고 일본 학자는 ‘개불알풀’이라 일컬었고, 한국 학자는 처음에 이 이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였어요. 시골사람은 일본 학자가 일컫는 이름이나 한국 학자가 어설피 받아들인 이름을 안 쓰고 살았을 텐데, 아니 모르고 살았을 텐데, 한국 학자들은 나중에 시골사람 스스로 붙여서 쓰는 이름을 듣고는 천천히 바로잡았다고 해요.


  시골사람은 학자가 아닙니다. 시골사람은 전문가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풀이름과 꽃이름과 나무이름은 시골사람이 지었습니다. 시골사람은 대학교를 다닌 적 없고, 시골사람은 규장각이라는 데를 모르며, 시골사람은 팔만대장경 또한 몰라요. 그렇지만, 모든 벌레이름과 새이름과 짐승이름은 시골사람이 붙였어요. 벼, 보리, 수수, 서숙, 콩, 팥, 밀 같은 이름도, 겨, 방아, 베틀, 쭉정이, 피, 절구 같은 이름도, 몽땅 시골사람이 빚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시골사람은 이름을 짓는 사람입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시골사람은 스스로 먹을거리를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은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곧, 삶을 바탕으로 사랑을 스스로 짓고, 믿음을 스스로 짓습니다. 어떤 임금이나 학자나 신관 같은 사람이 없어도, 시골사람은 시골사랑과 시골믿음을 스스로 지어요.


  시골사람은 꿈을 스스로 짓지요. 시골사람은 아이한테 붙이는 이름도 스스로 짓지요. 시골사람은 구름, 하늘, 해, 별, 달, 흙 같은 이름도 스스로 지어요. ‘봄까지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름을 헤아립니다. 한 송이 살며시 똑 따서 입에 넣고 봄내음을 맛봅니다. 꽃송이도 먹고 잎도 먹으며 줄기도 먹습니다. 봄까지꽃 곁에서 자라는 광대나물도 먹고, 광대나물 곁에서 자라는 봄까지꽃도 먹습니다. 두 꽃 곁에서 자라는 별꽃도 먹으며, 별꽃 곁에서 자라는 두 꽃도 먹습니다. 어느새 봄이 코앞입니다. 434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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