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지 책읽기

 


  땅바닥에 엎드리면 볼 수 있는 꽃다지. 뻣뻣하게 지나가면 볼 수 없는 꽃다지. 자전거로 휭 하고 달려도 볼 수 없는 꽃다지. 자가용을 쌩 몰아도 볼 수 없는 꽃다지. 그런데,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군내버스 타고 지나가면서도 꽃다지 내음을 맡고, 냉이 내음을 맡는구나.


  하기는. 나도 이웃 자가용 얻어타고 길을 달리다가도 매화내음을 느끼고 살구내음을 느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능금내음이랑 복숭아내음을 느끼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기도 한다.


  마음이 있으면 느끼고, 느낄 수 있으면 보며, 바라보면 사랑이 샘솟는다. 꽃다지야, 너는 참 곱게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며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꽃을 피우는구나. 네 꽃송이는 나비와 벌과 벌레한테 어울리겠지. 작은 나비와 벌과 벌레는 네 꽃가루 먹으면서 예쁜 숨결 잇겠지.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지만, 네 꽃가루가 바람 따라 들판에 날리면, 사람들 살결에도 보드라이 스며들겠지.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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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 책읽기

 


  금탑절을 거닐다가 현호색을 만난다. 디디고 오르는 돌 곁에 조그맣고 앙증맞게 피었다. 흙길에 돌을 놓아 디디고 오르도록 했기에 현호색이 씨앗을 퍼뜨려 이렇게 피어나는구나 싶다. 돌 아닌 시멘트로 디딤돌을 삼았다면, 흙과 돌로 이루어진 거님길이 아니라 쇠붙이 난간이나 계단을 만들었다면, 현호색뿐 아니라 다른 들풀도 이곳에 뿌리를 못 내렸겠지.


  파르스름한 꽃송이를 바라본다. 괴불주머니도 현호색과 같은 주머니가 달렸는데, 왜 현호색은 현호색이고 괴불주머니는 괴불주머니일까. 곰곰이 살피면, 현호색이랑 괴불주머니는 잎사귀 모양이 다르다. 나중에 꽃이 지고 씨앗을 맺을 때에도 씨방 모양이 다를까.


  현호색 푸른 잎사귀 몇 뜯어서 맛을 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른 들꽃처럼 수없이 퍼지면서 흐드러지는 들꽃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 풀맛 보고픈 마음을 누른다. 예쁜 꽃송이 이루는 현호색은 잎사귀와 꽃송이가 어떤 맛일까. 오늘날은 시골이 파헤쳐지고 숲과 멧골이 무너지거나 구멍 뚫리기 일쑤라, 현호색 같은 들꽃은 보금자리를 쉬 빼앗긴다. 봄날 멧길 오르면 어렵잖이 볼 수 있는 들꽃 가운데 하나가 현호색이라고는 하나, 참말 ‘어렵잖이 볼 수 있다’고 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피고 질 테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저들 깜냥껏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며 어린 아기꽃 이듬해에 피어나도록 힘쓸 테지. 아주 조그마한 꽃송이 몇이지만, 둘레를 환하게 밝힌다. 냉이꽃도, 꽃마리도, 꽃다지도, 광대나물도, 모두 조그마한 꽃송이인데, 이 작은 꽃송이로 봄들판 어여삐 밝힌다. 그래, 네 잎사귀 맛을 못 보더라도, 네 맑은 꽃빛으로 사람들 가슴을 넉넉히 채워 주는구나.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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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몰라도 돼

 


  제비꽃 모르는 사람 뜻밖에 퍽 많다. 도라지꽃 모르는 사람 또한 꽤 많다. 감꽃이나 능금꽃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돌이켜보면, 나라고 해서 이런 꽃 저런 꽃 처음부터 알지 않았다. 내 곁에서 늘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이런 꽃 저런 꽃을 알아보면서 “어머, ○○꽃 피었구나, 예뻐라!” 하고 말할 적에 꽃이름 하나둘 익힐 수 있었다. 국민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교사나 동무가 “이야, ○○꽃 피었네,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새롭게 꽃이름 둘씩 셋씩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꽃이름을 모른대서 꽃이 어여쁜 줄 모르지는 않다고 느낀다. 꽃이름을 안대서 꽃이 아름다운 줄 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음으로 아낄 때에 비로소 꽃을 어여삐 여겨 사랑한다. 마음으로 아끼지 못할 때에 얄궂게 지식만 머리에 담을 뿐, 꽃내음 꽃결 꽃빛 어느 하나 가슴으로 스미지 못한다.


  내가 제비꽃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떠올려 본다. 잘 모르겠다. 퍽 어릴 적 내 어머니 놀람말 한 마디부터 알았지 싶지만, 또렷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비꽃 볼 일은 아주 드물었다. 충남 당진 외가에 마실을 가면서 비로소 제비꽃을 보았지 싶고, 이때 빼고는 어디에서고 제비꽃 만날 일 드물었으리라 느낀다. 어른이 되어 인천에서 골목마실 바지런히 하는 동안 제비꽃 거의 못 보았다.


  시골집 우리 밭자락과 대문 앞과 마을 논둑마다 제비꽃 한창이다. 이 제비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친다. 제비꽃 곁에서 봉우리 한결 일찍 터뜨린 봄까지꽃을 알아볼 만한 사람이라면 이 꽃도 알아보지만, 아기 손톱보다 작은 봄까지꽃 못 알아보는 사람은 어른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 한 제비꽃 또한 못 알아본다.


  나는 제비꽃을 바라보며 싱긋빙긋 웃는다. “이야, 논둑 따라 이렇게 물결치듯 피었어요! 참 이쁘지요!” 서른 마흔 쉰 예순 되도록 제비꽃이라는 꽃 한 송이 느긋하게 돌아본 적 없던 이웃들이 “이게 제비꽃이에요? 처음 보네.” 하고 말씀한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던 이웃들도 제비꽃을 못 알아본다. 두 다리로 걸어서 논밭에서 살고 흙을 만지던 할매와 할배가 아니고서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제비꽃을 모른다. 그렇지만, 참말 제비꽃 몰라도 된다. 삶을 알면 되고, 사랑을 알면 된다. 꽃이름 모른다 하더라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꽃이 우리 누리를 밝히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이 작은 들꽃 어여쁜 봉우리 빛깔과 내음과 결을 내 가슴에 담아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자락 누리자고 생각하면 된다. 삼월 셋째 주는 ‘제비꽃 물결’이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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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나무 생각

 


  서울에도 나무가 있고, 인천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부산에도 나무가 있고, 광주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자라는 서울나무는 흙땅을 좀처럼 마음껏 누리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자라는 서울나무도 다른 나무들처럼 푸른 숨결 내뿜으며 노래하고 싶은데, 매캐한 바람 너무 짙고 자동차 소리 너무 시끄러워, 숨결도 노래도 곱게 퍼지지 못합니다.


  전라도 시골 고흥에서 살아가는 고흥나무에는 동백꽃이며 매화꽃이며 가득합니다. 나무 곁에는 봄까지꽃 광대나물꽃 별꽃 노루귀꽃 제비꽃 유채꽃 할미꽃 흐드러집니다. 바람이 포근하게 불고, 고흥나무는 포근한 바람을 한껏 즐기면서 푸른 숨결 내뿜고는 푸른 노래 싱그러이 부릅니다.


  서울나무도 맑은 꽃빛 어여쁜 들풀하고 어울리고 싶겠지요. 서울사람도 푸른나무와 봄들꽃이랑 어울리면 한결 맑게 웃으면서 따사로운 서울 삶터 일굴 수 있겠지요. 서울에는 새 야구장이나 새 축구장이나 새 극장이나 새 아파트나 새 백화점이나 새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서울에는 바로 숲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 누구나 밟고 만지면서 사랑할 흙이 있어야 해요. 4346.3.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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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1 10:14   좋아요 0 | URL
어느 집에서 작년인가, 자기네 주차장에 그 옆집의 커다란 목련나무와 라일락나무의 낙엽들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고 싸우다 결국은 집공사중에 그 나무들을 베어버린 일이 있었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라..지금도 안타깝고 한숨만 나와요.
서울나무들은 이래저래 딱합니다.ㅠ.ㅠ

숲노래 2013-03-22 16:11   좋아요 0 | URL
나무에 잎이 있으니 마땅히 가랑잎 떨어지지요.
떨어지지요...
 

대문 앞 제비꽃

 


  제비꽃은 참으로 작다. 제비꽃 잎사귀며 줄기도 참으로 작다. 제비꽃은 아직 먹어 보지 않았다. 어느 꽃이든 먹어야 비로소 냄새와 무늬와 빛깔을 깨닫는다. 그런데, 제비꽃은 다른 봄꽃처럼 숱하게 흐드러지지 않아, 선뜻 뜯어먹지 못한다. 제비꽃 잎사귀도 좀처럼 뜯어먹지 못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대문 앞에 돋는 풀 좀 뜯으라 한 말씀 하신다. 우리 몰래 풀을 뜯으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대문 앞에 돋는 풀이 좋은걸. 사월이나 오월쯤 키 높이 자라면 그때에는 벨까 싶기도 하지만,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풀내음이 즐겁다. 대문 드나들며 이 풀 바라보는 재미 쏠쏠하다. 그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제비꽃이 우리 집 대문 앞부터 피어난다.


  지난봄 우리 집 여러 곳에서 제비꽃 피었다. 그야말로 조그마한 틈바구니라든지, 섬돌 밑 아주 가늘다 싶은 틈바구니라든지, 이런 데에 으레 제비꽃이 씨앗 퍼뜨리고 뿌리를 내리더라. 다른 풀은 그야말로 수북하게 씨앗을 퍼뜨리며 돋는데, 제비꽃은 올망졸망 서너 송이 모인 채 꽃을 피우니, ‘너를 참 맛난 풀로 여겨 먹고 싶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원수 님은 일찍부터 제비꽃 노래하는 동시를 썼네. “나물 캐러 들에 나온 순이는, 나물 캐다 말고 꽃을 땁니다. 마른 잔디밭에 앉은뱅이꽃, 벌써 무슨 봄이라고 꽃을 피웠나. 봄 오면 간다는 내 동무 순이, 앉은뱅이꽃을 따며 몰래 웁니다.”


  민들레며 꽃다지며 제비꽃이며, 이 앉은뱅이꽃 들아, 너희는 이 봄에 어떤 노래 부르고 싶니. 4346.3.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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