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맛 책읽기

 


  도시로 오면 먹을 수 있는 풀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랄 틈이 거의 없으니, 도시사람은 즐겁게 뜯어서 먹을 만한 풀을 만나기 어렵다. 시골에서 비닐집을 세우고는 철없이 아무 때나 잔뜩 심어 잔뜩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만 만날 수 있다. 서울 도봉구에서 ‘도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은평구에서 ‘은평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없다. 서울 강남구에서 ‘강남구 맛 나는 풀’을 만날 수 있을까?


  풀맛을 볼 수 없는 도시에서는 물맛 또한 볼 수 없다. 신림동 물맛이란 없다. 교남동 물맛이란 없다. 종로 물맛이라든지 흑석동 물맛이란 없다. 두멧시골에 댐을 지어 길디긴 물관을 이어 수도물 마시는 도시에서는 모두 똑같은 화학처리를 한 물맛이 있을 뿐, 사람들 스스로 물맛을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살피는 가슴까지 잃는다. 이리하여, 서울 물맛도 부산 물맛도 없다. 인천 물맛도 순천 물맛도 없다.


  풀도 물도 싱그럽게 자라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삶맛 누릴까.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맛 일구지 못하는 이 도시에서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을 수 있을까. 4346.5.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밭, 딸밭, 똘밭

 


  들딸기와 멧딸기 나올 요즈음, 읍내 가게에서 파는 딸기는 값이 무척 싸다. 이제 비닐집에서 키우는 딸기는 팔림새가 많이 줄겠지. 이러면서 비닐집 참외가 나올 테고, 비닐집 참외에 이어 비닐집 수박이 나오리라.


  들판이나 멧기슭에 딸기잎 채 나지 않을 무렵부터 읍내 과일집에는 딸기가 나온다. 아니, 읍내 과일집뿐 아니라 도시에 있는 크고작은 마트와 백화점과 가게마다 네 철 언제나 딸기가 놓인다. 참외도 수박도 한겨울이건 이른봄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맛볼 수 있다. 찻집에 가 보라. 늦가을에도 딸기쥬스 마실 수 있는걸.


  오이꽃이고 참외꽃이고 수박꽃이고 피려면 한참 멀었다. 수세미잎이고 오이잎이고 언제쯤 나려나. 그러나 철을 가로채서 비닐집에서 키우는 푸성귀나 열매는 그야말로 철이 없이 쏟아진다. 돈이 되는 딸기이고 참외이며 수박이다.


  우리 아이들하고 즐길 들딸기와 멧딸기를 헤아리며 돌아다닌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마을 들판이나 멧기슭을 가만히 살핀다. 고흥에서 들딸기랑 멧딸기 즐기려고 하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앞으로 열흘쯤 뒤부터 딸기마실 다닐 만하리라 생각한다.


  들딸기밭이나 멧딸기밭은 해마다 넓어진다. 사람들이 따먹어도 딸밭은 넓어지고, 사람들이 안 따먹어도 딸밭은 늘어난다. 딸밭에 흐드러지는 하얀 딸꽃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꽃과 같다. 하늘에는 별이요 땅에는 딸이랄까.


  예쁘게 피어나렴. 무럭무럭 자라렴. 바알갛게 익으렴. 너희 딸밭으로 아이들 자전거에 태우고 신나게 달려갈게. 4346.5.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동꽃 한 송이

 


  인동꽃이 무리지어 피어날 적에도 곧잘 알아챌 만하지만, 인동꽃이 꼭 한 송이 피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릴 적에도 이내 알아챌 만하다. 봄이 한껏 무르익으면 어느새 인동꽃 해사한 빛깔 드러난다. 눈부신 봄꽃 피고 지는 동안 인동꽃한테 눈길을 두는 사람 퍽 드물지만, 이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어느 봄꽃도 서로 다투듯 피어나지 않는다. 봄날 봄꽃은 봄꽃잔치라 할 만큼 저마다 다른 빛 저마다 다른 때에 조용히 피운다. 누렇게 바랜 들판에 푸르게 환한 물결 출렁이기 앞서 모두들 즐겁게 기지개 켜고 일어나도록 부르는 꽃내음이고 꽃빛이라고 할까.


  인동꽃 한 송이 죽죽 뻗으며 시골집 대문 곁에서 해바라기를 한다. 처음에는 한 송이, 머잖아 여러 송이, 어느덧 한 타래 되어, 마을마다 예쁜 집 예쁜 꽃바람 불러일으킨다. 4346.4.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돌배꽃 책읽기

 


  배꽃은 하얀데 배알은 왜 누르스름할까 하고 생각하다가는, 누르스름한 배알 덥석 베어물면, 속살 하얗게 빛나며 달달하다. 그래, 껍데기 아닌 속알맹이 이토록 하얗게 빛나기에 배꽃이 하얗게 빛나는구나. 배꽃이란 얼마나 맑은 하양인가. 배꽃은 얼마나 그윽한 내음 퍼뜨리는 고운 하양인가. 배꽃을 본 사람은 흰빛을 배꽃빛이라 말할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대학교 이름이 ‘배꽃대학교’ 되고, 마을 이름이 ‘배꽃마을’ 되며, 회사나 기관이나 출판사 같은 데에서 ‘배꽃’을 이녁 이름으로 삼으면, 이 나라 마음결과 생각밭 환하게 거듭나리라 느낀다. 4346.4.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피꽃 책읽기

 


  우리 집 꽃밭에서 초피나무 세 그루 자란다. 아마 처음에는 한 그루였을 테지만 이내 두 그루 되었고 새삼스레 세 그루 되었지 싶다. 앞으로 네 그루 다섯 그루 될 수 있겠지. 초피나무에서 맺는 열매 톡톡 흙땅으로 떨어지며 씩씩하게 자라니까.


  씨앗에서 튼 어린 초피줄기 곧잘 뜯어서 먹곤 했다. 풀인지 어린나무인 줄 모르는 채 뜯어서 먹었다. 조그마한 풀포기인데 퍽 알싸하구나 하고 느꼈다. 어리든 크든 초피는 초피로구나 하고 나중에 깨달았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느티나무에 맺힌 꽃망울 모두 떨어졌다. 이러면서, 초피나무에 꽃망울 앙증맞게 돋는다. 느티꽃은 우람한 나무와는 달리 아주 조그마했고, 초피꽃도 아주 조그맣다. 아직 우리 집 초피나무는 그리 굵거나 크지 않으니 ‘작은 나무에 작은 꽃’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앞으로 스무 해 지나고 백 해 지나며 오백 해 지나고 보면, 우리 집 초피나무에서 맺는 초피꽃을 바라볼 적에도 ‘큰 나무에 작은 꽃’으로 느끼리라 본다.


  잎사귀 사이사이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 초피꽃은 어떤 넋일까 생각한다. 벌이나 나비는 초피꽃에 내려앉을 수 있을까. 개미들 볼볼 기어다니며 초피꽃 건드려야 꽃가루받이가 될까. 바람 한 숨 살짝 불어 초피나무 가지 가만가만 흔들면 초피꽃은 즐겁게 꽃가루받이 이룰까. 푸른 잎사귀에 서리는 풀빛을 먹고, 푸른 꽃망울에 내려앉는 풀볕을 마신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