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들딸기와 책

 


  올해 첫 들딸기를 따서 먹는다.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딸기를 노래했으나 아직 덜 여물어 하루 더 기다리고 이틀 더 기다리자고 손꼽으며 보냈다. 읍내나 면내에 나가면 가게마다 비닐집 딸기가 잔뜩 있으니, 그런 모습 보면 딸기를 먹고 싶다 여길 텐데, 들딸 맺을 때까지 잘 기다려 주었다. 이제 올해 들딸을 오늘 처음 따서 먹었으니, 날마다 조금씩 새롭게 맛보면서 마을 곳곳에서 맺을 들딸 한 군데씩 찾아나서며 나들이를 하자. 이웃마을로도 들딸마실 가고, 조금 먼 데까지도 들딸마실 가자. 들딸 맺는 너른 풀밭에서 풀숨 실컷 들이켜고, 입가 발갛도록 들딸 따먹고 나서는 그림책도 한 쪽 펼치자. 4346.5.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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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잔치

 


  우리 집 꽃밭에서 노랑붓꽃 자란다. 오월이 한껏 무르익으며 유월로 접어들기까지 노랑붓꽃 노랗게 맑은 꽃내음 누린다. 그런데 우리 집 꽃들은 고흥 다른 시골이나 마을 다른 집보다 퍽 늦게 핀다. 그러니까, 다른 마을이나 이웃집에서 꽃이 피어도 우리 집은 열흘이나 보름쯤 늦을 때도 있다. 우리 집 노랑붓꽃 아직 안 피었으니 고흥에서 언제 붓꽃을 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아침에 읍내로 마실을 가려고 마을 어귀 버스터에 아이들과 나왔더니 웬걸, 군내버스 타는 곳 둘레로 온통 붓꽃이잖아. 우리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가, 서울로 가서 생물 교사를 하다가 정년퇴임을 했다는 분이 논배미 하나 될 만한 땅을 꽃밭으로 가꾸시는데, 이 너른 꽃밭이 알록달록 온갖 붓꽃으로 잔치판 벌어진 모습을 이제서야 마주한다.


  붓꽃잔치로구나. 숱한 봄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다가 이제 거의 다 저문 오월 한복판, 온 들판과 숲과 멧골은 짙은 풀빛으로 가득한데, 이 사이사이 찔레꽃과 아까시꽃 돋는 한편, 붓꽃이 얌전하고 정갈한 꽃빛 나누어 주는구나.


  생물 선생님 꽃밭 한쪽에는 함박꽃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 어느 어르신 댁에도 이맘때 온통 함박꽃잔치 벌이셨지. 붓꽃에 이어 함박꽃 구경하러 마실을 가야겠다. 4346.5.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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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잎과 찔레꽃

 


  찔레잎을 뜯어서 먹으면 찔레맛이 난다. 찔레꽃을 톡 따서 먹으면 찔레빛이 혀끝에 어린다. 푸른 잎사귀도 하얀 꽃잎도 모두 찔레나무 이루는 고운 숨결이다. 잎사귀는 푸른 맛과 숨결을 나누어 준다. 꽃은 하얀 맛과 숨결을 베풀어 준다. 아이들은 맑은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나누어 주고, 어버이는 깊은 사랑과 너른 믿음을 베풀어 준다.


  살랑 오월바람 불어 찔레잎 건드린다. 푸른 잎사귀는 한껏 푸르게 자라고, 하얀 꽃잎은 더 하얗게 빛난다. 찔레꽃 하얗게 흐드러지는 둘레에 곧 딸기알 붉게 맺혀 하얗고 붉은 오월빛 펼쳐 보이겠구나. 4346.5.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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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15 10:52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의 글과 찔레꽃이 어우러져,
오늘도 찔레꽃들이 하얗고 깨끗하게 피어있군요. ^^
장사익님,의 '찔레꽃'을 꺼내 들어야겠습니다. *^^*

숲노래 2013-05-16 00:11   좋아요 0 | URL
오월에는 푸른 물결 사이에
하얗게 넘실거리는
찔레꽃이
곧 다가올
여름을 알리는구나 싶어요
 

은행잎 책읽기

 


  은행잎이 돋는다. 시골에는 은행나무 드물어 은행잎 돋는 모습을 구경하기는 퍽 힘든데, 도시에는 찻길 한켠에 으레 은행나무 심으니, 도시에서는 조금만 눈여겨보면 늦봄으로 접어든 이즈막에 은행잎 여린 잎사귀 푸르게 빛나는 물결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에 국민학교에서 ‘도시에 은행나무 심는 까닭’을 배웠다. 은행나무는 공해나 매연을 잘 견디고, 공해나 매연을 잘 걸러낸대서, 도시에서 으레 심는다고 어른들이 가르쳤다. 이런 말을 듣고 배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언젠가 한 번 담임 교사한테 여쭈기도 했으리라 느낀다. 아마, 이렇게 여쭈었겠지. “선생님, 그러면 은행나무 많이 심은 곳은 사람이 살기 나쁜 공해로 더러운 곳이네요?” 담임 교사는 이렇게 여쭙는 개구쟁이 꼬마 머리통에 꿀밤을 먹였겠지.


  어느 때부터인가 도시에서 은행나무 사라지고 벚나무 늘어난다. 은행나무 사라지는 까닭이 ‘도시에서 공해와 매연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다. 은행나무 은행꽃 알아보는 사람 없으니, 벚나무 벚꽃을 구경시켜서 ‘도시가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우며 슬픈 공해와 매연으로 얼룩졌는가를 감추려’ 할 뿐이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은행나무를 거의 못 보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도시 아닌 시골이라지만, 자동차 거의 안 드나드는 시골이라지만, 우리 집 한쪽에 은행나무 두 그루 심어야 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시골마을 이웃집들은 비닐이나 비료푸대나 농약병이나 가리지 않고 날마다 태운다. 오늘은 이 집에서 태우면 이듬날은 저 집에서 모레에는 그 집에서 태운다. 어느 시골집이건 흙과 바람과 물을 헤아리지 않고 아무 쓰레기나 아무렇게나 태운다. 이런 시골에서 시골내음 마시며 즐겁게 살아가자면,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도 은행나무 두 그루쯤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손을 뻗어 은행잎 만진다. 살살 쓰다듬는다. 얘들아, 씩씩하게 자라고 튼튼하게 크렴. 푸른 잎사귀처럼 푸른 꽃망울 한껏 터뜨려, 사람들한테 푸른 숨결 곱게 나누어 주렴. 4346.5.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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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도 푸른빛

 


  도시에도 푸른빛 감돈다. 도시사람이 도시에 감도는 푸른빛 얼마나 헤아리거나 누리는지는 알 길 없지만, 도시 곳곳에서 나무마다 새잎 틔우고 들풀이 고개를 내민다. 아파트와 건물이 훨씬 많은데다가, 자동차 소리 끊이지 않지만, 도시에도 나무와 풀이 나무바람과 풀바람 살랑살랑 일으킨다. 비록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이 얼마나 푸르게 빛나는가를 돌아볼 겨를 없다 하더라도, 도시사람이 숨막혀 죽지 않도록 푸른 숨결 한결같이 베푼다. 푸른 빛살 나누어 주고, 푸른 빛누늬 일렁여, 도시사람 흐린 눈망울에 고운 삶빛 서리도록 북돋운다. 4346.5.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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