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삼덩굴 책읽기

 


  조그마한 부전나비 한 마리를 사진으로 찍을 때까지 부전나비만 보았는데,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새로운 모습 깨닫는다. 부전나비는 개망초꽃에 앉았다. 부전나비가 앉은 개망초꽃을 환삼덩굴이 타고 올라오며 새 잎사귀 올린다. 들풀이 서로 기대어 자라는 셈이기도 하고, 들풀이 저마다 자리를 다투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살림집 둘레로 환삼덩굴이 거의 안 보여 살짝 서운하다 여겼더니, 서재도서관 둘레에 환삼덩굴 이제서야 곳곳에 올라오는구나. 덩굴풀 뜯어먹으러 마실을 가야겠네. 내가 먼저 톡 끊어 입에 넣고 ‘이야 무슨 맛이려나.’ 하고 냠냠하면,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나도 줘.” 하면서 손을 벌리겠지. 그러면 나는 “너희가 손수 따서 먹어 봐.” 하고 말할 테고. 그날그날 밥상에 올릴 만큼 뜯으러 나들이를 다니면 좋겠구나.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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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책읽기

 


  도라지꽃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아이는 풀밭에 선다. 아이는 풀밭에서 들리는 가느다란 풀벌레 노래를 듣는다. 아이는 아직 저 뒤쪽에 있는 도라지밭 꽃송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아버지가 아이더러 “저기 뒤에 도라지꽃이 피었구나.” 하고 말하자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알아본다. 아이가 꽃을 보며 말한다. “도라지꽃이야? 이 꽃 꺾어도 돼?” “음, 그 꽃은 안 돼. 그 도라지는 누가 따로 심었으니 꽃을 꺾지는 말자.” 꽃대 참 높이 솟는 도라지꽃이다. 씨앗을 잔뜩 뿌려서 도라지밭이 되었는데, 여러 해 묵힌 뒤 뿌리를 캐시려나, 아니면 해마다 씨앗 새로 뿌려 꽃대는 다 베어서 버리고 뿌리만 캐시려나. 우리 집 한켠에 도라지 꽃씨 퍼져서 해마다 새롭게 꽃이 피면 어느 만큼 자라고 어느 만큼 줄기 굵을까 궁금하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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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 달릴라치면, 큰아이는 으레 “저기, 꽃.” 하고 말한다. 이 말은 아버지더러 자전거 세우고 꽃 꺾도록 해 달라는 뜻이다. 이때 아버지는 자전거를 곧바로 세우지 않는다. 달리는 자전거를 갑자기 세우면 안 좋다. 꽃은 아이가 본 길섶 이곳에만 있지 않다. 저 앞 길섶에도 있고, 우리가 달리는 시골길 둘레는 온통 꽃누리이다. 그러니까, 오르내리막 살펴 알맞춤한 자리에서 자전거를 멈춘다.


  큰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샛자전거에서 내린다. 콩콩 꽃 앞으로 달려간다. “얘야, 꺾기 앞서 꽃한테 물어 봐야지.” “응, 알았어. 꽃아, 너 꺾어도 돼?” 큰아이는 벌써 꽃을 꺾었지만, 뒤늦게 묻는다. 꽃 한 송이 손에 쥐며 활짝 웃으니, 자전거수레에 탄 작은아이가 누나를 부른다. “줘 봐, 줘 봐.” “알았어. 기다려 봐. 너도 꽃 줄게.”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도 노란 꽃송이 하나 꺾어서 내민다.


  두 아이는 꽃아이 되어 자전거를 달린다. 봄꽃 피는 봄철에는 봄자전거를 타면서 봄꽃아이 된다. 여름꽃 피는 여름철에는 여름자전거를 타면서 여름꽃아이 된다.


  아이도 어른도 꽃을 마주하면 꽃넋 맞아들일 수 있으리라.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꽃을 가까이하며 눈을 살며시 감으면 꽃꿈 꿀 수 있으리라. 가장 맑은 손길로 가장 밝은 눈빛 되어 가장 살가운 삶 일구자면, 모든 삶터가 꽃누리 풀누리 나무누리 되는 길을 걸어가야 하리라. 4346.6.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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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7 22:02   좋아요 0 | URL
아아...꽃아이들., ^^

숲노래 2013-06-17 22:32   좋아요 0 | URL
아이들과 살아가며
늘 꽃을 생각하는구나 싶어요

무지개모모 2013-06-17 22:11   좋아요 0 | URL
꺾은 다음에 물어보면 어떡해ㅋㅋ

숲노래 2013-06-17 22:31   좋아요 0 | URL
아이니까요~
 

느티열매 돌아보기

 


  유월 한복판으로 접어들었으니 느티열매 수북히 느티나무 둘레로 떨어졌을까. 어제 낮 퍽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 선 곳에 다녀왔는데 미처 살피지 못했다. 사월 한복판에 꽃이 피고 오월 접어들어 꽃이 지면서 열매(씨앗)를 맺는 느티나무이니까, 유월과 칠월 사이에 열매를 떨구어 작은 나무들 자라도록 폭신한 흙땅으로 새끼들 풀어놓으리라 생각한다.


  온누리 어느 나무가 백 살 오백 살 천 살 먹으면 우람하게 크지 않겠느냐만, 또 이렇게 우람하게 크더라도 꽃송이와 씨앗은 더할 나위 없이 작지 않겠느냐만, 해마다 느티꽃을 보고 느티씨를 보면서 새삼스레 놀랍고 즐겁다. 이처럼 작은 씨앗 한 톨에서 우람한 느티나무가 자라니까. 이렇게 작은 씨앗 한 톨에 깃든 하느님이 우리들한테 푸른 숨결 나누어 주니까.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고운 빛줄기 나누어 준다. 그러나, 아이로 지낼 적에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나며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고운 빛줄기를 나누어 줄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웃음꽃 피우지 못하기에, 고운 빛줄기,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자면 ‘사람씨앗’이라 할 사랑인 빛줄기를 나누어 주지 못한다. 덩치는 크고 이름은 높으며 힘은 세고 돈은 많은 어른이 되더라도, 어린 나날부터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한 사람이라면, 큰회사 우두머리이건 대통령이건 이웃들한테 고운 빛줄기 나누어 주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100억을 벌어 10억을 베풀어야 아름답지 않다. 1만 원을 벌어 100원을 베풀어도 아름답다. 100원조차 못 벌더라도 이웃과 동무한테 고운 목소리 뽑아 노래를 불러 줄 수 있고 시 한 줄 써서 내밀 줄 안다면 아름답다. 느티나무는 푸른 숨결로 우리를 살찌운다. 4346.6.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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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6 07:29   좋아요 0 | URL
아..느티열매가 이렇게 생겼군요.
함께살기님 덕분에 느티열매...처음으로 보는
싱그럽고 푸른 아침입니다. ^^

숲노래 2013-06-16 10:00   좋아요 0 | URL
제 손가락을 보면
열매가 얼마나 작은지... 알 만하지요?
^^;;;

느티나무는 참 우람하게 자라는데
씨앗(열매)은 참말...
콩알보다 훨씬 작고 깨알보다 조금 커요 ^^;;;;;
 

흰꽃, 푸른 잎사귀, 흰나비

 


  식물학자는 풀포기 하나를 놓고 아주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킨다.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풀포기 하나하나 자잘하게 이름을 나누어 가리키지 않는다. 꽃마리와 좀꽃마리를 보고도 그냥 꽃마리라 하고, 봄까지꽃과 큰봄까지꽃을 보아도 그냥 봄까지꽃이라 한다. 털제비꽃도 낚시제비꽃도 남산제비꽃도 모두 제비꽃이라고만 한다. 풀들로서 생각하자면 서운할 수 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꼭 서운한 일도 아니다. 중국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똑똑히 나누어 말해도 되지만, 그냥 ‘사람’이라 해도 된다. 게다가 한국사람도, 전라도사람 경상도사람 서울사람 부산사람 나눌 테고, 전라도사람도 고흥사람 여수사람 광주사람 나눌 텐데, 고흥사람도 도화사람 포두사람 나로사람 나눌 테지만, 또 면소재지에서 마을로 쪼개어 어디어디 사람으로 가를 수 있다.


  어디까지 갈라서 말하느냐는 마음에 달린다. 제비꽃을 바라보며 털제비꽃이라고까지 가를 수 있고, 큰털제비꽃이라고 또 가를 수 있다. 누군가는 제비꽃이라고도 말하지 않고 들꽃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군가는 그냥 ‘꽃’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 아마, 어느 누군가는 꽃이라고도 않고 ‘목숨’이나 ‘숨결’이라고도 하겠지.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어느 풀포기 어느 하얀 꽃송이에 내려앉은 흰나비를 바라본다. 흰나비는 배추흰나비인가? 배추흰나비가 맞는 듯하지만 그냥 ‘흰나비’라 하자. 더 단출하게 ‘나비’라 해도 좋다. 흰꽃에 흰나비가 앉는다. 흰꽃 물결치는 곳에 흰나비 앉는다. 흰꽃물결 사이에서 흰나비는 거의 안 드러난다. 이러다 문득, 흰꽃이 꽃대를 올리고 잎사귀를 퍼뜨리자면 ‘푸른 빛깔’ 있어야 하고, 푸른 빛깔이란 줄기와 잎사귀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둘레에 푸른 물결 가득한 흰꽃송이에 흰나비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곱구나. 흰꽃도 흰나비도 푸른 잎사귀도. 4346.6.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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