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나무 책읽기

 


  4대강사업은 두멧시골 골짜기까지 파고들어, 골짝물마저 뒤엎고는 골짜기 바닥에 시멘트를 퍼붓는 짓에다가, 조그마한 골짜기 둘레에 그득하던 나무를 잔뜩 베어 넘기는 짓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애꿎은 나무들 슬프게 베어 넘어진 돌무더기 한쪽을 바라보며 걷다가, 돌무더기 사이에서 새롭게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는 어린나무를 본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하나씩 둘씩 본다.


  대견하다. 너희는 씩씩하게 자라렴. 다시 씩씩하게 자라서 이곳 돌무더기가 우거진 숲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자라렴. 4346.8.1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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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까마중을 먹다

 


  옆밭 풀을 벤다. 어린 살구나무를 둘러싼 풀을 몽땅 벤다. 어린 살구나무가 한동안 풀에 둘러싸이도록 그대로 두어 보았다. 이렇게 풀이 우거질 때에도 씩씩하게 살기를 바랐으니, 다른 풀을 다 베어 또 햇볕 잘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빌어 본다.


  어린 살구나무 뒤쪽 풀을 베다가 까만 알갱이무리 툭툭 떨어진다. 뭔가 하고 문득 들여다보니 까마중 열매이다. 까맣게 여문 알갱이가 있고, 아직 푸른 알갱이가 있으며, 꽃송이 조그맣게 맺히기도 한다. 조그마한 까마중풀 한 포기에 꽃이랑 푸른 알갱이랑 까만 알갱이가 나란히 있다. 두고두고 즐기라는 뜻이 될 테지. 오래오래 까마중풀 지켜보면서 아껴 달라는 뜻이겠지. 4346.8.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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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편지

 


  사진잔치 도록과 엽서를 부치려고 봉투를 쓴다. 방에서 쓸까 하다가 마당 평상 후박나무 그늘이 시원하리라 생각하며 밖으로 나온다. 평상에 엎드려서 봉투에 주소를 적는데, 평상에 떨어진 후박나무잎이 퍽 싱그러우면서 고운 빛이로구나 싶다. 후박나무 가랑잎을 줍는다. 큰아이가 이 모습 보더니 “나뭇잎 왜 주워?” 하고 묻는다. “가랑잎을 하나씩 넣어서 보내려고.” “그래? 그럼 내가 도와줄게.” 큰아이가 후박나무 가랑잎을 모아 온다. 그러더니 강아지풀도 꺾는다. 봉투 옆에 가랑잎과 강아지풀을 얌전히 쓸어 모은다. 4346.8.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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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토끼풀꽃 책읽기

 


  한봄부터 구경하는 토끼풀꽃을 한여름에도 구경한다. 아니, 이제 늦여름으로 접어드는 날인데, 토끼풀꽃은 아직도 피고 진다. 논마다 볏포기 무럭무럭 올라오고, 논물에는 개구리밥 그득한데, 요 논둑에도 토끼풀꽃 몇 송이 피면서 하얀 빛내음 흩뿌린다. 농약바다에서 살아남는 개구리들은 토끼풀꽃 조그마한 그늘에서 살짝 다리를 쉴까. 잠자리는 농약바다인 논물에 알을 낳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토끼풀꽃 하얀 방석에 내려앉아서 쉴까. 우리 집에서 알을 깨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대문 앞 논자락 앙증맞은 토끼풀꽃으로도 찾아가 꽃가루를 받아먹을까. 4346.8.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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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13-0724-03 04
나리꽃 책읽기

 


  아이들을 샛자전거와 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다녀오는 길에 나리꽃 본 지 보름쯤 되었지 싶다. 그동안 나리꽃 곁을 휙휙 스쳐서 지나가기만 하고, 막상 나리꽃 곁에 자전거를 세워서 꽃내음 맡은 적 없었다고 깨닫는다. 오늘은 자전거를 천천히 세운 다음 나리꽃 앞으로 간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나도 냄새 맡을래. 나도 만져 볼래.” 하고 말한다. 그래, 자전거에서 내려 느긋하게 만지면서 냄새를 맡자.


  어떤 나리일까. 참나리일까 하늘말나리일까 또는 다른 이런저런 나리일까. 아마 또렷하게 가르는 이름이 있으리라. 나는 아이한테 더 낱낱이 가르는 이름을 찾아내어 알려줄 수 있고, 그저 ‘나리꽃’이라 알려줄 수 있다. ‘노란나리’라느니 ‘주홍나리’라 말할 수 있다. 아니면, 내 나름대로 새 꽃이름 지어서 알려줄 수 있다. 다른 전라도사람이나 서울사람이 이 꽃을 가리켜 이런저런 이름을 읊는다 하더라도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 시골순이로서는 새 시골말 하나 빚어서 가리켜도 된다. 어여쁜 꽃을 바라보며 어여쁘게 붙이는 이름이니까.


  그런데, 시든 꽃송이는 누가 똑똑 끊었을가. 시든 꽃송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꽃송이 떨어진 자국이 많이 보인다. 들일 하며 지나가던 마을 할매나 할배가 시든 꽃은 똑똑 끊었으려나.


  활짝 피어난 꽃도 어여쁘지만, 시든 꽃도 어여쁜데. 시들다 못해 말라서 비틀어져 툭 하고 떨어져 길바닥에 흩어져도 어여쁜데.


  너른 들에 나무 한 그루 없지만, 밝은 꽃송이 꼭 이곳에서만 피어나며 들판을 새롭게 밝힌다. 한길에서 한참 꽃놀이를 하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4346.7.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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