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장미 하나둘셋

 


  장미나무에서 장미꽃이 다시 피어났다. 올여름에 비가 거의 안 오면서 땡볕만 뜨끈뜨끈 내리쬔 탓일까. 다른 곳에서도 봄꽃이 늦여름에 다시 피어나기도 할까. 가만히 돌아보면, 벚나무도 매화나무도 늦여름이나 한가을에 다시 꽃망울 터뜨리곤 한다. 전남 고흥은 날이 워낙 따스하니까, 고흥을 비롯해 가을과 겨울에도 포근한 데에서는 한 해에 두 차례 꽃을 보게 해 준다.


  우리 집 마당 장미꽃을 바라본다. 팔월 첫무렵에 한 송이가 피어났고, 이레쯤 지나 한 송이 더 피어났으며, 곧 세 송이가 된다. 붉은 꽃잎은 한껏 맑은 꽃내음을 풍겨 주었고, 팔월이 저물면서 천천히 시들어 ‘지든 꽃도 어여쁜 빛깔’을 베푼다.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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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꽃 책읽기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마다 다 다른 흰꽃이 핀다. 늦여름에는 고들빼기 흰꽃이 마당을 채운다. 고들빼기 흰꽃 곁에는 부추풀 흰꽃이 마당을 보듬는다. 고들빼기와 부추는 나란히 꽃을 피운다. 다만, 고들빼기가 꽃을 피우도록 그대로 두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드물다. 부추풀은 씨앗을 맺고 씨앗주머니가 톡 하고 터져 널리 퍼지기를 바라며 그대로 두시지만, 고들빼기는 풀 베는 연장을 윙 돌려서 모조리 모가지를 꺾는다.


  뿌리를 캐서 먹어도 맛난 고들빼기이지만, 잎사귀를 뜯어서 먹어도 맛난 고들빼기이다. 뿌리와 어린줄기만 먹어서는 고들빼기 온맛을 알 수 없다. 봄 여름 가을까지 고들빼기 잎사귀를 바지런히 뜯어서 맛난 밥으로 삼을 때에 비로소 고들빼기 깊은 맛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부추도 이와 같다. 꽃대가 올라 하얀 꽃 앙증맞게 터질 때까지 봄부터 신나게 뜯어서 먹는다. 꽃대가 오르면 부추잎은 조금만 뜯는다. 부추꽃이 피면 퍽 오랫동안 즐거이 흰빛 누린다.


  우리 집 고들빼기는 올해에 씨앗을 얼마나 퍼뜨리려나. 다른 이웃집은 그리 안 좋아하니 우리 뒤꼍으로도 씨앗을 퍼뜨리기를 빈다. 씨주머니 맺으면 잘 받아서 우리 집 둘레 곳곳에 뿌리려 한다. 고들빼기 씨앗을 먼 이웃한테도 보내 볼까. 내가 굳이 이웃들한테 고들빼기 씨앗을 보내지 않아도, 고들빼기는 온 나라 골골샅샅 알뜰살뜰 번져 살가운 잎사귀와 맑은 꽃망울 나누어 주겠지. 뜯고 또 뜯어도 씩씩하게 새 잎사귀 내면서 팔월 끝무렵까지 온 고들빼기야, 밤에는 자고 새벽에 깨어나는 고들빼기 흰꽃아, 너희 꽃망울 보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온 줄 느끼겠구나. 4346.8.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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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3 08:26   좋아요 0 | URL
아...고들빼기꽃이 이렇게 생겼네요?
고들빼기김치만 먹어봤지...함께살기님 덕분에
고들빼기꽃도 보고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8-23 15:41   좋아요 0 | URL
고들빼기잎을... 가을 언저리까지 뜯어먹는 사람은
좀 드물리라 생각해요 ^^;;

시골 살며 저희 식구처럼 팔월 끝무렵까지
고들빼기잎을 날마다 뜯어서 먹는 이웃은
아직 못 보았어요 ^^;;;;

녹즙 드시는 분이라면 으레 뜯어서 먹을 테지만요~

그리고, 이렇게 꽃을 보아야
다음해에도 우리 식구한테 멋진 풀을 베풀어 줍니다~ ^^

잘잘라 2013-08-23 09:50   좋아요 0 | URL
와아.. 정말 잎사귀가 얼마 없네요!^^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치열하게 꽃을 피워낸 느낌입니다.

숲노래 2013-08-23 15:39   좋아요 0 | URL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이 필 무렵,
잎이 거의 스러지더라구요.

그리고 꽃이 지며 씨주머니 생기면
줄기도 조금씩 힘이 빠지면서
씨주머니가 비실비실 열리거나 톡 터지면
줄기는 누렇게 빛이 바래서 흙으로 돌아가요.

이제부터 모든 기운이 꽃한테 가니
잎사귀가 거의 안 보인답니다~
 

환삼덩굴에 앉은 나비

 


  우리 집 둘레에는 환삼덩굴이 거의 안 난다. 우리 집 둘레에도 환삼덩굴이 나면 끼니마다 조금씩 뜯어서 즐겁게 먹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풀이 흐드러지니까 다른 풀을 먹는다.


  안동으로 마실을 갔다가, 이곳에서 무더기로 자라는 환삼덩굴을 본다. 온통 환삼덩굴밭이다. 환삼덩굴밭 사이사이 고들빼기를 본다. 고들빼기 사이사이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를뿐인 풀’을 본다. 이름을 아직 모르는 풀은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생김새를 눈으로 익힌다. 살며시 쥐어 살갗으로 느껴 본다. 잎사귀 하나 톡 뜯으며 냄새를 맡는다. 그러고는 입에 넣고 살살 씹는다. 어떤 풀내음이 혀를 간질이는지 헤아린다.


  이 풀에서 이 맛을 보고 저 풀에서 저 맛을 보다가, 문득 나비 한 마리 만난다. 환삼덩굴 잎사귀에 앉은 나비이다. 예쁘네. 너는 다리를 쉬려고 앉았니. 덩굴 잎사귀 둘레에는 네 먹이가 없을 텐데.


  느긋하게 쉬다가 가렴. 네가 가면 나는 잎사귀를 조금 더 뜯어서 저녁으로 삼을게. 4346.8.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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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닥냉이꽃 책읽기

 


  다닥다닥 조그마한 잎사귀가 붙고, 꽃이 피어난다. 냉이일까 하고 들여다보다가, 여느 냉이하고는 사뭇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다닥냉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다닥다닥 붙인 잎사귀와 꽃잎 모양 그대로 ‘다닥냉이’였구나. ‘다닥’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조그마한 것들이 한곳에 많이 붙은 모습을 어느 누가 이런 예쁘장한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곱게 헤아리는 마음밭에서 고운 이름 하나 태어나고, 고운 이름 하나를 발판으로 삼아 숱한 고운 숨결이 이루어진다. 4346.8.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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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숲길 책읽기

 


  대구에서 안동으로 들어서는 시외버스를 탄다. 대구부터 태백까지 달리는 시외버스는 안동에서 먼저 선 다음 태백까지 달린다고 한다. 시외버스는 대구 시내 벗어나면서 왼쪽과 오른쪽 모두 나무 우거진 숲 사잇길을 달린다. 이곳은 어느 시골일까, 여기는 어디 멧자락일까, 하고 곰곰이 헤아려 본다. 대구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시골이 있고 숲이 있네, 하면서 놀란다. 그렇지만, 바깥 들과 숲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씽씽 달리는 버스 소리에 갇히고, 너무 빨리 달리는 시외버스에서는 바깥 푸른 물결을 느긋하게 돌아보지 못한다. 모두 휙휙 지나치는 ‘풍경’ 또는 ‘구경거리’이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찻길은 모두 시골마을이나 숲이나 멧자락을 가로지른다. 어쩔 수 없을 텐데, 도시와 도시 사이는 모두 시골이거나 들이거나 숲이거나 멧자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오래된 찻길, 이른바 지방도로가 아니고서야 모두 고속도로나 고속국도이다. 제아무리 빼어난 숲이 이루어졌다 한들, 참말 푸르게 우거진 여름숲이라 한들, 자동차를 달리는 사람들은 나무나 풀을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100킬로미터 120킬로미터 140킬로미터로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에서 어찌 옆을 돌아보겠는가. 앞지를 만한 다른 자동차가 있는지 살피고, 길알림판을 바라보며, 조금이나마 자동차가 삐끗하거나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기울일 뿐이다. 백 킬로미터 넘는 빠르기로 달리니, 숲을 돌아보다가 손잡이를 잘못 돌리거나 만지면 그만 자동차가 뒤집어지리라. 자동차를 몰면서 숲을 누릴 수는 없다.


  애써 찻길을 아름다운 숲 사이로 지나가도록 닦았다 하지만, 그저 숲 사이를 지나갈 뿐, 어느 누구도 숲길을 달린 줄 깨닫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고 되새기지 않는다. 숲 사이를 지나가더라도 창문을 열며 숲바람을 마시지 않는다. 고속도로 달리며 창문 활짝 열어 숲바람 마시겠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연다면 옆을 싱싱 스치는 자동차 바퀴 소리에 귀가 찢어질는지 모른다. 4346.8.1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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