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콩꽃 파란하늘 책읽기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며 콩넝쿨이 오른다. 콩넝쿨은 해바라기를 한다. 저 파랗게 빛나는 하늘로 올라 한결 파란 바람을 마시면서, 파란 숨결을 가슴에 담고 싶다. 넝쿨콩꽃이 하얗다. 하얀 꽃송이에 파란 물이 든다. 파란 하늘은 넝쿨콩꽃 하얀 빛깔을 맞아들인다. 파란 하늘은 하얗게 젖고, 하얀 꽃송이는 파랗게 자란다. 4346.9.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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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3 23:25   좋아요 0 | URL
우왕~~너무나 좋습니다!!
파란 하늘도 푸른 넝쿨콩잎도 하얀 넝쿨콩꽃도 모두모두
기막히게 좋네요~ '재크와 콩나무'가 문득~^^;;

숲노래 2013-09-04 05:19   좋아요 0 | URL
이제 어느새 가을이 되었어요.
여름이 갑자기 끝났어요..
 

새도시 거리나무 책읽기

 


  논밭이거나 들이거나 멧골이던 곳을 갈아엎어 새도시로 만든다. 새도시가 되면, 이제껏 자라던 풀과 나무를 몽땅 베어 없앤다. 땅을 고르게 펴고, 시멘트기둥을 박은 뒤, 아파트를 죽죽 올린다. 아파트가 서면 건물 사이사이 자동차 다닐 찻길을 닦는다. 찻길까지 모두 닦고 전봇대를 다 박으면, 바야흐로 찻길에 맞추어 나무를 사다가 심는다.


  새도시에는 으레 벚나무를 심는다. 이 나라 이 땅에도 벚나무는 자랐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벚나무는 ‘일본사람 좋아한다’ 해서 한동안 멀리하더니, 어느새 ‘벚꽃구경’이나 ‘벚꽃놀이’를 도시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찻길 옆에 벚나무를 차곡차곡 심는다.


  그런데, 버찌씨를 심어 아주 어릴 적부터 지켜보는 벚나무는 아니다. 제법 자라서 곧 꽃을 피울 만한 큰나무를 옮겨심는다. 도시사람은 씨앗 한 톨에서 나무로 자라는 줄 지켜볼 틈이 없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빨리빨리 꽃을 보거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두 해만에 뚝딱 하고 새도시가 서듯, ‘나무를 심었’으면 곧바로 꽃구경이나 꽃놀이를 해야 하는 줄 여긴다.


  이럭저럭 커다란 나무를 옮겨심은 만큼, 이 나무들은 잘 자란다. 머잖아 나뭇줄기가 전깃줄을 건드릴 테고, 가로등 키를 넘으리라. 이때, 도시 공무원은 어떻게 하려나. 나뭇줄기 뭉텅뭉텅 베려나. 나뭇가지 샅샅이 자르려나.


  도시계획을 짜면서 전깃줄과 전봇대를 어떻게 하고, 나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나무 몇 그루쯤 돈으로 다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는구나 싶다. 왜 그럴까. 왜 이토록 나무를 모르며, 나무를 아낄 줄 모르는데다가, 나무를 사랑하지 않을까. 대학교 졸업장에다가 대학원 학위에다가 외국 유학까지 갖추었다 하더라도, 막상 풀 한 포기 어떻게 나고, 나무 한 그루 사람살이에 어떻게 이웃이 되는가를 느낀 적 없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부터 풀씨나 나무씨 한 톨 심은 적 없는데다가, ‘밥’이란 바로 ‘풀열매(‘벼’라고 하는 풀이 맺는 열매)’인 줄 느끼지 않으면서, 영양소로서 배를 채우기만 한 탓이 아닐까.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누리지 않는다. 높은 건물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그늘처럼 여긴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을 바라지 않는다. 건물에 깃들면 에어컨 빵빵하니, 나무그늘도 나무바람도 쐬지 않는다. 도시사람은 나무그늘이 어떤 노래 들려주는지 깨닫지 않는다. 나무 밑에 선다 하더라도 찻길마다 자동차 그득한 나머지, 나뭇잎 살랑이며 들려주는 노래에다가, 나무와 풀숲에 깃드는 풀벌레가 베푸는 노랫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4346.9.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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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중 따먹은 자리

 


  까마중을 따면 꼭지에 하얀 자국이 남는다. 조그맣게 까만 까마중알과 푸른 빛깔 까마중풀 줄기를 잇는 자리는 하얗다. 감을 따거나 능금을 딸 적에, 매실을 따거나 무화과를 딸 적에, 포도를 따거나 대추를 딸 적에, 꼭지에 저마다 다른 빛과 무늬를 남긴다.


  풀잎을 뜯을 때 가만히 살피면, 풀잎과 줄기를 잇는 자리에 하얀 풀물이 흐른다. 애기똥풀처럼 노란 풀물이 흐르는 풀이 있고, 피나물처럼 빨간 풀물이 흐르는 풀이 있는데, 여느 풀은 으레 하얀 풀물이 흐른다.


  저 하얀 풀물은 풀포기가 살아가는 밑힘일 테지. 하얀 물이 흐르며 푸른 풀로 자라고, 하얀 물이 감돌며 푸른 숨결이 퍼진다. 사람들 몸속을 흐르는 피는 빨갛지만, 사람들 마음을 이루는 바탕은 하얗지 않을까 싶다. 푸른 바람을 마시고 맑은 물을 마시는 사람들 마음이란 무지개빛이 되지 않을까 싶다. 4346.8.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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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꽃 책읽기

 


  모시꽃 한창 피어나는 늦여름 아침에 풀을 뜯는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아침을 생각한다. 아이들과 즐겁게 누릴 숨결을 떠올린다. 풀을 뜯고 까마중 열매를 따다가 모시꽃을 한참 들여다본다. 아직 터지지 않은 조그마한 봉오리가 있고, 활짝 터진 봉오리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시꽃은 어떤 모습이 될까. 이 모시꽃을 꽃인 줄 알아보며 가까이 다가서서 살며시 들여다보고는 가만히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제 모시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으려는 사람 거의 없어, 모시풀은 시골마을에서 ‘징그러운 잡풀’로 여겨 모조리 베어 없애거나 씨를 말려야 할까. 갑작스레 유행처럼 퍼진 모시떡을 빚을 때에 쓸 테니, 조금은 남기면 될까.


  샛노랗게 빛나는 모시꽃은 아주 조그맣다. 옅푸르게 빛나는 느티꽃이 떠오를 만큼 작으면서 맑게 빛난다. 솜털처럼 가볍고, 이른봄 구름처럼 해사하다. 늦여름에 샛노란 꽃무리 베푸는 모시풀은 먼먼 옛날부터 우리 겨레한테 어떤 이웃이었을까. 4346.8.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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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한 도막

 


  날마다 앞마당에서 뜯는 풀을 날마다 조금씩 먹는다. 어른도 아이도 맛나게 먹는다. 마지막 남은 한 도막을 작은아이 밥그릇에 얹는다. 아버지가 먹고 싶지만 너한테 줄게. 푸른 숨결 즐거이 먹고 푸른 마음 되어 푸른 노래를 부르렴. 조그마한 나물 한 도막에 깃든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사랑스레 받아들이렴. 4346.8.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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