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나무

 


  숲을 이루던 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삽차와 밀차가 들이닥치며 나무를 모조리 베어 없애고 풀 돋은 땅뙈기를 뒤집어엎었기 때문이다. 오랜 나날 스스로 조용히 푸른 숨결 내뿜던 숲이 사라지며 푸석푸석한 흙땅으로 허여멀겋게 바뀐다. 그런데 이 쓸쓸하게 허여멀건 빈땅에 싹이 돋는다. 우람한 나무 몽땅 사라졌는데, 조그마한 잎사귀 돋고 가느다란 줄기 오르면서 어린나무가 자란다.


  눈여겨보지 않고 자동차로 다시 들이닥쳐 밟으면 어린나무는 죽겠지. 골짜기로 놀러온다며 자동차 타고 찾아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밟으면 어린나무는 죽겠지. 그러나, 자동차가 밟거나 관광객이 밟더라도 다른 씨앗이 다른 어린나무로 태어나 씩씩하게 자라리라 믿는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을 일삼지만, 숲은 천 해 만 해 십만 해 백만 해를 고이 내다보면서 다시금 작은 씨앗 메마른 흙땅에 떨구어 천천히 자라도록 북돋우리라. 이 지구별에 푸른 숨결이 가득해야 사람도 새도 벌레도 짐승도 물고기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346.9.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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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꽃잔치 책읽기

 


  올해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돋는 쑥풀을 잘 건사한다. 쑥쑥 자라 밑줄기는 나무처럼 두껍고 단단한 쑥풀이다. 늦여름까지 넓고 크게 퍼지던 잎사귀는 가을로 접어들어 거의 사라지면서 조그맣게 홑잎만 남더니, 어느새 꽃잔치를 벌인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몇 군데에만 꽃대와 꽃봉오리 나오지만, 이내 모든 줄기가 꽃대가 되고 모든 꽃잎이 홑잎으로 바뀌면서 꽃망울 터뜨리는 데에 기운을 그러모은다.


  꽃이 피고 씨앗을 맺어야 이듬해에 새로 자랄 수 있다. 꽃이 생기고 열매를 떨구어야 어린 풀 새로 돋아 흙을 살찌운다. 쑥풀은 쑥풀내음을 퍼뜨려 마을에 푸른 기운 베푼다. 쑥꽃은 쑥꽃내음을 흩뿌려 마을에 옅붉은 노래를 들려준다. 노을빛 닮은 쑥꽃이 올망졸망 흔들리며 따사롭다. 4346.9.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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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2 23:14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해요...!
저도 보슬비님 말씀처럼 쑥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요..^^;;
정말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사진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숲노래 2013-09-23 08:28   좋아요 0 | URL
쑥꽃이 흐드러질 적에는
이 사진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잎사귀조차 모조리 사라진답니다~
가까이에서 한참 들여다보아야
이 꽃 모습 즐길 수 있어요~
 

석류알과 석류꽃 나란히

 


  가을을 맞이해 굵고 붉게 익는 석류알이 석류나무마다 그득하다. 그런데 커다란 석류알 곁에 조그맣게 석류꽃 나란히 피어난다. 한쪽에서는 여름날 붉게 타오르던 석류꽃이 지면서 굵직한 알이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을날 따사로운 볕을 받으면서 새롭게 석류꽃이 핀다. 지난해에는 시월에도 석류꽃이 새로 피었다. 올 시월에도 석류꽃 새로 필까. 구월에 핀 석류꽃은 십일월에 굵고 단단한 석류알이 될까. 4346.9.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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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나물꽃 책읽기

 


  젓가락나물에 꽃이 핀다. 이 들풀에 꽃이 피도록 두는 시골집은 요즈음 거의 없다고 느끼는데, 젓가락나물은 퍽 센 풀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몸에 바로 와닿도록 스며드는 풀이란 소리이다. 나는 가끔 풀잎 한둘 뜯어서 먹는다. 내 몸에서 이 풀잎을 바랄 적에 뜯어서 먹는다고 느낀다.


  씁쓸한 맛을 혀로 살며시 느끼면서도, 쓴맛 사이사이 이 풀포기가 그동안 어떤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머금으면서 우리 집에서 자랐는가 하고 되새긴다. 우리 집에 이 풀이 자라는 뜻을 생각하고, 이 풀포기는 어떤 빛이 되어 한들한들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결 따라 춤추면서 조그마한 노란 꽃송이 피고 지는가 하고 돌아본다.


  꽃송이 하나 벌어지며 꽃송이 하나 지고는 씨앗이 맺는다. 씨앗은 곧 떨어져 곳곳에 퍼질 테고, 씨앗을 떨구고 모든 꽃송이 지고 나면, 이 풀포기도 겨울바람에 시들면서 흙으로 돌아겠지.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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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0 01:56   좋아요 0 | URL
'젓가락나물꽃', 이름이 참 재밌습니다.^^
줄기가 젓가락처럼 생겨서 젓가락나물일까요? ^^;;
노란꽃이 참 예쁩니다. 아, 저기 까마중 열매도 보이네요. ^^

숲노래 2013-09-10 08:34   좋아요 0 | URL
젓가락나물 줄기와 잎은
잘 빻아서 손목 둘레에 붙여
어떤 병을 낫게 하는 데에 쓴다 하더라고요.

줄기 모습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재미나고 예쁜 풀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추꽃잔치는 해마다

 


  2011년 가을에 처음 부추꽃잔치를 우리 집 마당에서 맞이했다. 2012년 가을에 두 번째로 부추꽃잔치를 맞이했고, 올 2013년 가을에 세 번째로 부추꽃잔치를 맞이한다. 지난 두 해를 헤아리면, 올해 부추꽃잔치가 가장 흐드러진다. 그야말로 하얀 꽃송이가 눈송이처럼 퍼진다. 이 부추꽃이 지난 봄철부터 오늘까지 우리한테 맛난 부추잎 내주던 그 부추풀에서 피어난 하얀 물결이로구나. 가을 지나 겨울 되고, 새봄 찾아와 하루하루 천천히 흐르면, 이듬해 가을에는 올해보다 한껏 흐드러진 부추꽃잔치가 될까. 해마다 부추꽃 흰물결 잔치마당은 더 커지려나. 올해 꽃잔치 바라보면서 새해를 새삼스레 기다린다. 4346.9.1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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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0 01:53   좋아요 0 | URL
아유~부추꽃이 너무나 예쁘네요!
오늘 오이소배기 먹으며 소로 넣은 부추를 먹었는데요~
지금 김동화님의 <빨간 자전거>를 읽으며 시골의 정겨움에 즐거워하다
이 한밤에 또 함께살기님의 하얀 꽃송이 눈송이처럼 흐드러진 부추꽃을 보니
참으로 좋습니다~^^

숲노래 2013-09-10 08:06   좋아요 0 | URL
부추꽃은 퍽 오랫동안 피어요. 오랫동안 곱게 피다가 꽃이 지고 씨앗을 맺을 텐데, 올해에는 부추씨 엄청나게 얻겠구나 싶어요. 다음해에는 참말 더 흐드러진 부추꽃이 다가오리라 생각해요.

김동화 님이 자전거 그림은 좀 어수룩하게 그리셨지만 ^^;;;; <빨간 자전거>는 무척 아름다운 만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