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씨앗 터진 이튿날

 


  10월 4일 아침에 풀을 뜯다가 제비꽃 씨앗이 막 터지려 하는 모습을 본다. 봄에 일찍 피어 늦봄 막바지부터 천천히 씨앗주머니 생기고 하나둘 터지는 제비꽃인데, 이 가을에 또 씨앗주머니 생기더니 어느새 톡 터지려 한다. 옳거니, 가을 제비꽃씨를 사진으로 찍을까, 하고 생각하며 아침으로 먹을 풀을 마저 뜯는다. 이러고는 아이들 아침 차려서 먹이다가 어느새 깜빡 잊는다.


  이튿날인 10월 5일 아침에 풀을 뜯다가 제비꽃 씨앗주머니에 씨앗이 거의 안 남고 터져서 흩어진 모습을 본다. 아차, 어제 사진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어제 사진을 깜빡 잊고 안 찍었구나. 씨앗주머니 가운데 한 곳에 깨알보다 더 작은 제비꽃씨 석 톨 남았기에, 그나마 이 모습 하나는 담는다. 봄제비꽃이라면 언제든지 다른 씨앗주머니 찾아서 사진을 찍을 텐데, 가을제비꽃인 만큼 다른 데에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한 해를 기다려 이듬해 봄에 봄제비꽃 씨앗주머니를 기다리고, 이듬해 가을에 가을제비꽃 씨앗주머니를 기다려야지.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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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09 14:44   좋아요 0 | URL
아시는 분은 다 아실 텐데, 윗 사진에서 하트 모양 잎 석 장 달린 풀은 '괭이밥'이에요.
괭이밥 잎사귀는 아주 작아요. 저 괭이밥 잎사귀는 아이들 새끼손톱만 하다고 할 만큼 작아요.
그러니, 제비꽃 씨주머니는 얼마나 더 작고, 저 제비꽃씨는 얼마나 더더더 작을는지
헤아려 보실 수 있겠지요~

appletreeje 2013-10-10 17:4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덕분에, 노랑붓꽃 씨주머니도 보고
또 제비꽃 씨주머니도 보고~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

 


  우리 겨레는 예부터 풀을 먹던 겨레라 풀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 가운데 이름 안 붙은 풀이란 없어요. 먼먼 옛날부터 고장에 따라 마을에 따라 풀이름을 다 다르게 붙였습니다.


  풀이란 흙에서 자라나는 푸른 숨결입니다. 벼와 보리도 풀입니다. 밀과 서숙도 풀입니다. 콩과 팥도 풀이지요. 사람들은 풀포기가 맺는 열매를 먹고, 풀포기로 바구니를 엮거나 신을 삼거나 지붕을 이었습니다.


  풀을 모르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즐겁게 먹는 풀을 알아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 먹는 풀을 알아야 하며, 다친 곳에 바르는 풀을 알아야 합니다. 한겨레는 풀을 즐겨먹으면서 나뭇잎도 하나둘 익혀요. 못 먹거나 못 쓰는 풀이 없듯이 못 먹거나 못 쓰는 나뭇잎이 없어요. 갓 돋은 나뭇잎은 바로바로 따서 먹는 한편, 굵고 단단하며 큼지막하게 자란 나뭇잎은 썰어서 말리고 덖으면서 찻잎으로 삼았어요.


  소도 돼지도 닭도 풀을 먹습니다. 토끼도 풀을 먹고, 다람쥐와 곰도 풀을 먹습니다. 이들은 잎사귀도 먹고 열매도 먹습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지요. 풀을 먹고 열매를 먹어요. 풀잎으로 둥구미도 엮고 모자고 짭니다. 멧방석을 짜고 돗자리를 엮습니다.


  아, 풀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뜯고 뜯어도 다시 돋는 풀이란 우리 겨레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북돋았는가요.


  풀은 따로 씨를 받아서 뿌리지 않아도 이듬해 봄부터 가을까지 씩씩하게 돋습니다. 풀은 풀내음을 베풀고 풀바람을 일으킵니다. 풀노래를 들려주고 풀빛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이끕니다.


  풀을 즐긴 한겨레는 풀과 같이 살아갑니다. 어떤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 같은 이들이 우쭐거리며 짓밟으려 해도 풀포기처럼 가만히 눕다가 뾰로롱 다시 일어서요. 끝내 뽑히거나 뜯기더라도 그동안 흙에 떨군 씨앗이 새롭게 자라요. 아무리 뽑고 뽑아도 다시 돋는 풀처럼, 우리 겨레 수수한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은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옛날 함석헌 님은 ‘들사람’을 떠올리며 ‘들넋’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려 ‘풀사람’을 돌아보고 ‘풀넋’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일노래와 옛이야기는 모두 풀을 먹고 풀을 나누며 풀을 돌보던 한겨레 삶이 깃든 노래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태어나는 책들은 바로 이 풀뿌리에서 비롯합니다. 비록 서양 문물과 문화를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서양 철학과 사상과 문학을 다루는 책이라 하더라도,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책에는 풀숨이 가득합니다.


  풀숨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아요. 풀숨은 늘 우리 곁에서 감돕니다. 풀숨이 지구별 곳곳 살살 어루만지면서 사람들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풀빛이 지구별 골골샅샅 가만히 보듬으니, 지구별 밖으로 나가 지구를 바라보면 “푸른 빛이 아름답다!” 하고 절로 말한다지요.


  풀을 모르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는 산 사람일는지 모르나, 마음과 넋과 얼은 죽은 사람입니다. 풀을 아는 사람으로 산다면, 몸뚱이도 마음도 넋도 얼도 모두 산 사람입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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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 짙붉은 열매

 


  올 한 해 범나비 곱게 돌보아 준 초피나무에 짙붉은 열매 무르익는다. 범나비는 시월이 넘어서는 오늘까지 씩씩하게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먹는다. 날씨가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범나비도 모시나비도 멋쟁이나비도 제비나비도 모두 늦도록 날갯짓 누릴 테지. 날씨가 따스한 만큼 가을꽃도 늦게까지 흐드러지니까. 열매껍질만 쓴다는 초피나무인데, 우리 집에서는 쓸 때에는 쓰지만 나무에 달린 채 내도록 그냥 두곤 한다. 우리가 안 먹으면 멧새 찾아들어 초피알 맛나게 따먹기 때문이다. 겉껍질 톡 하고 터지는 요즈막, 까만 알 싱그러이 드러난다.


  새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새들이 얼마나 반가이 여길까? 새들이 얼마나 맛나게 먹을까? 마을 이웃집에서는 모두 ‘열매 따서 껍질 빻아 먹으라’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마을 뒷멧자락에서 살아가는 새들이 이 열매 겨우내 맛나게 먹으며 기운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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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2 22:49   좋아요 0 | URL
초피나무 열매가 머루처럼 주렁주렁 달렸네요~!
아, 붉은 열매껍질이 터지면 까만 알이 나오나요~?
새들이 겨우내 열매 맛나게 먹으며 기운을 내길 바라시는
함께살기님의 마음이 너무나 정답고 참 좋습니다~*^^*

숲노래 2013-10-03 06:19   좋아요 0 | URL
처음 이 고흥집으로 오고 나서 새들이 우리 집 많이 찾아오고, 또 초피나무와 후박나무에서 열매 바지런히 따먹는 모습을 보고는, 저 열매들 우리는 조금만 얻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자고 생각했어요.

참말 마을에, 새들 숲속에서 내려와서 얻어먹을 먹이가 거의 없답니다...
 

호박꽃 피는 울타리

 


  호박꽃이 핀다. 호박꽃이 노랗게 핀다. 호박꽃이 아이 얼굴만 하게 큼직큼직 핀다. 호박꽃은 퍽 먼 데에서 보더라도 쉬 알아챈다. 호박은 꽃송이를 많이 내놓지 않는다. 호박넝쿨 사이사이 듬성듬성 꽃송이 내놓는다. 감꽃은 크기가 조그맣지만 열매는 굵직한데, 호박꽃은 크기가 퍽 크고, 호박알은 훨씬 굵직하다.


  얼마나 많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품는 호박알일까. 얼마나 따순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먹고 노랗게 빛나는 호박꽃일까. 작은 호박씨 하나에서 숱한 호박알 주렁주렁 달린다. 호박넝쿨은 뻗을 수 있는 대로 뻗어, 배고픈 이웃한테 커다란 알덩이를 베푼다. 너도 먹고 나도 먹으며, 주렁주렁 달린 열매로 모두 배불리 밥그릇을 비운다.


  울타리 따라 호박넝쿨 뻗어 호박꽃 피고 호박알 맺는다. 울타리는 이웃과 이웃을 가로막는 돌이 아니다. 울타리는 바람을 막고 넝쿨이 타고 오르도록 서로서로 살가이 만나는 이음새이다. 4346.10.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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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3 12:17   좋아요 0 | URL
사진이 너무 좋아서
환한 호박꽃도 호박잎들도
마치 곁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듯 합니다~
함께 주신 글도 너무나 좋구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10-03 14:58   좋아요 0 | URL
암꽃은 씨받이 되면 곧바로 져요.
호박꽃 사진은 수꽃 사진은 흔하고 쉽지만
암꽃 사진은 드물고 어렵답니다.
이번 호박꽃 사진에서는
암꽃이에요~
 

탱자 열매와 고들빼기

 


  탱자나무 열매가 익는 한가을로 접어든다. 탱자 열매 노란 빛깔을 바라보면서 하늘빛이 얼마나 높고, 가을바람이 얼마나 보드라운가를 읽는다. 탱자는 탱자알을 보아야 비로소 탱자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탱자나무는 생김새가 퍽 남달라 잎사귀 모두 떨어진 겨울이나 아직 새잎 안 돋은 봄에도 알아볼 만하지만, 탱자알 동그랗고 노랗게 빛나는 가을에 그야말로 ‘탱자네!’ 하면서 눈웃음을 지으며 반가운 마음에 손을 뻗는다.


  탱자나무 열매 곁에 고들빼기꽃이 하얗다. 고들빼기는 꽃이 필 무렵 키가 쑥쑥 올라 탱자나무 곁에서 제법 큰 풀줄기를 선보인다. 가을날 고들빼기 풀줄기는 어른 키를 훌쩍 넘곤 한다. 꽃을 피워 씨를 맺을 적에는 더 멀리 더 고루 씨앗 퍼지라고 이처럼 줄기가 쑥쑥 오르겠지.


  탱자나무는 씨앗을 어느 만큼 퍼뜨릴 수 있을까. 탱자알은 어떤 넋을 품에 안고 새로운 어린나무로 자랄 빛을 이 동그란 알에 담을까. 가을이 무르익는다. 4346.9.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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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9 23:06   좋아요 0 | URL
참~신기해요!
탱자는 저도 알고 어렸을 때는 자주 본 것 같았는데
이렇게 나무에 달려있는 모습은 처음 만나요.^^
줄기는 면류관처럼 뾰족한 가시지만...잎은 참 순하게 생겼네요~
갑자기 어디선가, 아련히.. 탱자의 향기가 나는 듯 합니다!! ㅎㅎ

숲노래 2013-09-30 06:08   좋아요 0 | URL
탱자나무는 줄기에 가시가 굵고 커서 울타리로 많이 써요. 그래서 예부터 '탱자나무 울타리'라고 했어요. 탱자나무 한 그루 바깥에 심으면 몇 해 뒤 아무도 못 넘어올 자연스러운 울타리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