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도 까마중꽃

 


  늦가을에도 까마중꽃 하얗게 핀다. 11월 한복판이 다 되는데 이렇게 느즈막하게 꽃을 피우는 까마중이라면, 어쩌면 12월에 눈이 내리더라도 열매가 푸르게 맺히면서 차츰 까맣게 익으리라 본다. 12월에까지 까마중꽃 하얗게 피면서 하얀 눈 소복소복 맞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9월에 부추꽃 필 무렵부터 하나둘 맺은 까마중을 11월에도 즐겁게 먹는다. 다른 풀은 봄부터 가을까지 고마운 잎사귀를 내주어 푸른 숨결 마시도록 했다면, 까마중은 10월 끝무렵까지 잎사귀를 내주는 한편, 열매를 11월에도 12월에도 내주는구나 싶다. 새 꽃이 피며 새 잎이 돋으면 이 잎사귀도 즐겁게 먹을 수 있다.


  잘 익은 열매를 밥그릇에 담는다. 밥상에 올려놓으면 두 아이가 숟가락을 들고 서로서로 바삐 퍼먹는다. 밥과 국과 반찬을 밥상에 미처 올리지도 않았는데 까마중 담은 그릇부터 비운다. 얘들아, 가을빛 머금으며 가을볕 나누어 주는 이 까마중 먹으면서 한결 씩씩하게 겨울을 맞이하자.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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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콩 책읽기

 


  들콩은 누가 심거나 뿌리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린다. 들콩은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들콩은 들쥐도 먹고 들새도 먹는다. 들콩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톡톡 끊어서 먹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콩은 모두 맨 처음에는 들콩이었겠지. 조그마한 알이 맺혔겠지. 이 콩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차츰 굵은 알로 달라졌을 테고, 이제 사람들은 들콩내음을 잊고는 유전자를 함부로 건드려 ‘유전자 바꾼 콩’을 먹는다.


  콩을 먹으며 콩알이 뿌리내린 흙맛을 함께 누릴 때에 즐거울 텐데. 콩밥을 지으며 콩알이 올린 줄기를 함께 헤아린다면 더없이 기쁠 텐데. 콩나물이나 두부를 먹더라도 콩알이 맺은 조그마한 콩꽃을 떠올리고, 콩꽃이 지며 콩꼬투리에 송알송알 어우러지는 열매를 읽으면, 우리 삶에 고운 풀내음이 살풋 실릴 수 있을 텐데.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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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살아가는 사마귀

 


  사마귀는 풀밭에서 산다. 사마귀는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 찻길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메뚜기와 방아깨비도 풀밭에서 산다. 여치와 풀무치도 풀밭에서 산다. 무당벌레도 진드기도 풀밭에서 산다. 개미는 용하게 어디에서나 살아간다. 제아무리 높다란 아파트라 하더라도 개미는 씩씩하게 산다. 개미가 없다면 지구별은 어찌 될까. 아마 온통 쓰레기투성이가 되리라. 지렁이와 개미가 있기에 지구별이 깨끗하다. 이를테면, 과자부스러기 하나 떨구어 보아라. 개미가 말끔히 치운다. 파리나 모기 한 마리 잡아서 바닥에 두어 보아라. 개미가 낱낱이 뜯어 아주 깨끗하게 치운다. 올여름에 신나게 파리를 잡아 마당에 신나게 떨구었는데, 개미들이 어디에선가 볼볼볼 나타나서 파리 주검을 그야말로 낱낱이 뜯어서 저마다 한 짝씩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라.


  풀밭이 없으면 사마귀도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모조리 죽는다. 개미는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며 살겠지만, 사마귀도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없다면, 이러한 곳은 사람이 얼마나 살아갈 만한 데가 될까 궁금하다. 논과 밭에 풀벌레 하나 없다면, 이러한 논밭이 얼마나 사람 목숨을 살찌우는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가 나올까 궁금하다.


  풀밭이 없고, 논밭에 풀벌레가 없다면, 새는 어떻게 될까. 풀벌레와 애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는 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 논밭에서 곡식과 열매를 쫄밖에 없다. 아무런 먹이(벌레)가 없는데 어쩌겠는가. 이러다가 새들은 농약바람에 모조리 목숨을 빼앗길 텐데, 농약바람 따라 들새와 멧새가 모조리 목숨을 빼앗기면 이때부터 어찌 될까. 아마, 사람들이 어찌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나방이 깨어나 온 들과 마을 뒤덮을 테지.


  풀밭에서 사마귀 한 마리 살아갈 수 없다면, 풀밭에서 사마귀가 알을 낳을 수 없다면, 풀밭에서 어린 사마귀 꼬물꼬물 깨어나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다 다른 삶터 찾아 떠날 수 없다면, 이 나라와 지구별은 어떻게 될까.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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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9 10:21   좋아요 0 | URL
아...사마귀가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몸빛이 달라진다는 걸 몰랐어요..^^;;
보호색인 줄 알았는데,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그렇군요~
하긴 물고기들도 산란기가 되면, 어여쁜 산란색으로 바뀌지요~^^

숲노래 2013-11-09 10:49   좋아요 0 | URL
사마귀뿐 아니라 모든 풀벌레가
다 몸빛이 달라진답니다~ ^^;

보호색(지킴빛)이면서
또 저절로 바뀌는 자연 흐름이에요~
 

가을민들레 두 송이

 


  곳곳에서 가을민들레를 만난다. 논둑에서도 밭둑에서도 만난다. 대문 앞에서도 만나고, 뒤꼍이나 길가에서도 만난다. 가을민들레는 봄민들레와는 조금 다르다. 꽃이 조금 더 작고 잎사귀도 조금 더 작다. 아무래도 봄보다 햇볕이 모자라기도 할 테고, 봄과 대면 햇볕이 차츰 늦게 뜨고 차츰 일찍 지니 이러할 만하다 싶다. 더구나 가을은 날마다 조금씩 쌀쌀해지니, 민들레로서도 서둘러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우다가는 바지런히 열매를 맺어 씨앗을 날려야겠지. 늦은 가을에도 노란 꽃빛 나누어 주어서 고맙다. 4346.1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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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읽는 책

 


  나무를 생각하고 품에 안을 수 있으면 삶이 새롭고 아름답게 열리리라 느껴요. 먼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나무를 얻어 집을 짓고, 불을 때며, 나무가 베푸는 푸른 숨결을 마셨어요. 나무로 배를 뭇고, 나무로 다리를 놓아요. 나무로 밥상을 짜고, 나무로 그릇을 깎아요. 시렁도 옷장도 걸상도 모두 나무예요.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집을 나무로 안 지어요. 나무로 불을 때지 않고, 나무보다는 공기청정기를 쓰려 하고, 아파트에서는 나무에 끔찍하게 농약을 뿌려대요. 나무로 뭇지 않은 배를 타는 오늘날이고, 나무로는 다리를 놓지 않으며, 나무로 짜지 않은 밥상과 그릇을 써요. 시렁도 옷장도 걸상도 나무 아닌 것으로 만들어요.


  사람들 스스로 나무와 동떨어지면서 새롭거나 아름다운 삶과 자꾸 멀어지는구나 싶어요.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잊으면서 사랑스럽거나 착한 생각하고 그예 등지는구나 싶어요. 사람들 스스로 나무와 어깨동무하지 못하면서 책을 책답게 읽는 길하고 엇나가는구나 싶어요.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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