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나무

 


  우리 집 돌울타리 건너편 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사람이 가끔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온다. 볼일이 있으면 대문으로 들어올 노릇이지, 자꾸 돌울타리를 밟고 넘어온다. 이러면서 돌울타리가 자꾸 무너지는데, 꽃밭이자 텃밭으로 삼는 곳에서 자라는 푸성귀까지 밟힌다. 지난 늦여름에는 식구들 즐겁게 먹는 까마중을 밟아 넘어뜨렸다. 머리끝까지 뿔이 났지만 넘어진 까마중이 너무 애처롭다. 어쩌나 어쩌나 생각하다가 까마중줄기 살살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씩씩하게 잘 살 수 있어 하고 얘기해 주었다. 그 뒤 까마중은 죽지 않았다. 넘어진 채 새 줄기를 자꾸자꾸 낸다. 넘어진 뒤로도 야무지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찬바람 불며 이제 찬찬히 시들겠지 싶었으나, 이 까마중은 시들지 않는다. 새 잎이 돋고 새 줄기가 더 뻗으며 하얀 꽃망울 더욱 터뜨린다. 십이월이 코앞인 요즈막 까마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넘어진 이 까마중은 까마중‘풀’이라기보다 까마중‘나무’라 할 만하다고 본다. 나무와 같이 꽃을 수두룩하게 달고, 나무처럼 열매 또한 수두룩하게 맺는다. 그래, 너는 우리 집 까마중나무야. 푸른 바람과 숨결과 노래를 들려주는 우리 집 어여쁜 마당나무야.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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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씨앗 꽃대

 


  우리가 먹는 쌀은 볍씨이다. 우리들은 늘 볍씨를 먹는다. 볍씨에서 껍질인 겨를 벗기면 쌀이 되고, 쌀을 물에 불려 끓이면 밥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은 흙을 만지지 않으니, 겨를 벗기고 씨눈까지 깎은 새하얀 쌀만 보고, 아이들은 아예 쌀조차 만질 일 없이 하얗게 고슬고슬 김이 나는 밥만 보기 일쑤이다.

 

  쌀을 심으면 싹이 안 난다. 쌀도 씨앗이지만, 씨눈을 깎은 쌀알은 씨앗 구실을 못한다. 더구나 껍질인 겨를 벗겼으니 싹이 틀 수도 없다. 볍씨란 씨눈뿐 아니라 겨까지 함께 있는 씨앗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밥을 먹지만, 정작 씨앗이 될 만한 열매가 아닌 씨앗이 되지 못하는 열매만 먹는 노릇이라 할 만하다.


  쌀도 밥도 벼도 볍씨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인 터라, 쌀이 될 벼가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줄 모른다. 쌀이 되는 벼알이 다닥다닥 수북하게 맺히는 줄기는 하나이다. 가느다란 줄기 하나에 벼알이 수북하게 맺히기에 줄기는 고개를 숙인다. 너무 무거우니까. 다른 웬만한 줄기는 씨앗인 열매가 맺혀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찬찬히 따지면, 씨알을 먹으려는 풀은 사람들 손으로 고치고 다스리면서 씨알이 더 굵도록 했고, 잎사귀를 먹으려는 풀은 꽃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만 잘 퍼지도록 고치고 다스렸지 싶다.


  벼알을 벤 뒤에는 볏줄기가 꼿꼿하게 선다.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참말 꼿꼿하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 볏줄기, 곧 볏짚으로 새끼를 꼬고 신을 삼고 지붕을 이으며 바구니와 멍석과 섬을 짰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알뜰히 건사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어느 것에도 마음을 안 두느라, 벼껍질인 겨도 벼꽃대인 볏짚도 아무렇게나 팽개친다. 소한테 먹이면 그나마 낫지만, 거의 모든 논이 농약과 비료로 흠뻑 젖으니, 소가 겨나 볏짚을 먹더라도 농약과 비료를 먹는 셈이다.


  늦가을 부추꽃대를 바라본다. 씨주머니 터지며 씨앗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안 떨어진 씨앗이 제법 많다. 꽃대도 씨주머니도 바싹 마르고 누렇게 시들었는데 안 꺾인다. 드세거나 모진 바람이 불어도 부추씨앗 꽃대는 쓰러지지 않는다.


  날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저 가냘픈 꽃대는 씨앗을 모두 떨굴 때까지 꼿꼿하게 버틴다. 물기 하나 없고 누렇게 시들었지만 씨앗이 모두 흙으로 떨어질 때까지 씩씩하게 선다. 어버이 마음일까. 어머니 넋일까. 아버지 꿈일까. 누렇게 시든 부추꽃대 곁에 새로운 부추싹 돋는다. 가을볕 여러모로 따스한 남녘땅에서는 아마 지난해 흙땅에 드리웠음직한 씨앗에서 새 부추싹 돋는다. 얘들아, 너희는 참 놀랍구나. 너희는 참으로 야무지구나. 너희 잎사귀를 뜯어먹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놀랍고 야무진 기운 얻을 테지. 너희를 곁에 두고 언제나 지켜보는 우리들도 너희한테서 아름답고 싱그러운 사랑 얻을 테지. 4346.11.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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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싹 기르기

 


  이웃 할매 할배 고구마밭에서 일손을 거든 뒤, 싹이 잘 난 고구마 몇 알을 얻는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유리병을 찾아 물을 부은 뒤 고구마를 척척 넣는다. 집안에 따로 꽃을 기르지 않으나, 밥상맡에 고구마싹 물병을 올려놓는다.


  밥을 먹을 적마다 고구마싹을 바라본다. 밥자리에서 늘 고구마를 떠올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스며들어 고구마싹을 감싼다. 저녁에는 아이들과 나란히 코코 자고, 아침이면 저 멀리 트는 동을 나란히 누리면서 일어난다. 한쪽은 쥐가 쏠아 뭉그러진 고구마들 씩씩하게 싹을 틔워 죽죽 줄기를 올릴 테지. 앞으로 얼마나 높이 키가 자랄까. 4346.11.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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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7 18:21   좋아요 0 | URL
이렇게 병에다 고구마싹을 키우니 참 좋네요~^^
저도 고구마로 저렇게 싹을 키워봐야 겠어요~~

숲노래 2013-11-18 02:28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 어머니는 으레 이렇게
고구마싹을 키우시곤 했어요.

그때에는 몰랐는데
못 먹을 고구마는 버리기 아쉬워
이렇게 하셨구나 싶어요.
 

새로 뜯는 가을부추

 


  마당에 흐드러진 풀포기를 베고 뽑고 했다. 옆지기가 2/3쯤 했고, 남은 1/3을 내가 한다. 며칠 그대로 두면 바싹바싹 잘 마르리라. 올여름에 옮겨심은 어린 대추나무는 어느새 잎이 다 떨어졌다. 늦게 잎이 돋는 대추나무인데 잎이 질 적에도 참 빠르다. 그러고 보면, 대추나무에 잎 달리는 때는 아주 짧구나 싶다. 마당 한쪽 복숭아나무 둘레에 후박나무 가랑잎을 잔뜩 덮는다. 대추나무 둘레에도 후박나무 가랑잎을 솔솔 덮는다. 시들어 죽은 키 큰 고들빼기를 뽑거나 꺾는다. 이러다가, 꽃밭이자 텃밭 가장자리에 부추가 새로 돋아 잎사귀 길게 뺀 모습을 알아챈다.


  너희 언제부터 이렇게 자랐니? 몰랐구나. 너희 곁에는 봄부터 첫가을까지 즐겁게 잎사귀 내주던 부추가 꽃이랑 씨앗까지 다 마무리지었는데, 너희는 이제서야 잎을 내는구나. 아니, 가을이 되어 새롭게 돋았다고 해야 할까.


  곰곰이 헤아려 본다. 지난해에 부추씨 뿌린 곳이었나? 지난해에 부추씨 떨어져서 올가을에 이렇게 새로 잎사귀를 내놓을까? 다른 풀(나물)은 사람이 손으로 뿌리거나 심지 않아도 이곳저곳 흐드러지는데, 부추는 씨앗주머니를 뜯어 이곳저곳 휘휘 뿌려야 널리 퍼져 자란다. 부추는 씨앗으로 심으면 두 해 지나서야 비로소 먹을 만큼 자란다고 한다.


  아무튼, 참 반갑다. 가을풀을 어떻게 먹나 걱정했더니 너희가 이렇게 십일월 한복판에도 푸른 빛을 뽐내니 고맙게 먹을 수 있구나. 끼니마다 한 웅큼 뜯는다. 너희가 이 가을에 자라 주어,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옆지기도 가을내음 한껏 즐기는구나. 4346.11.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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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씨앗 책읽기

 


  가을비 제법 내렸는데에도 부추씨가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바람 드세게 불었는데에도 부추씨가 씩씩하게 달라붙은 채 안 떨어진다. 얘들아, 너희들 새로운 자리 찾아서 가야 하지 않겠니. 까맣게 씨앗 맺은 지 꽤 지났잖아.


  부추풀 씨앗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꽃대가 바싹 말랐다. 한손을 뻗어 씨앗주머니 아래쪽 줄기(꽃대)를 톡 끊는다. 이렇게 끊어도 씨앗이 주머니에서 안 떨어진다. 씨앗주머니를 통째로 들어 집 둘레 곳곳에 하나씩 던진다. 우리 집 둘레에서 새봄에, 또 새해에, 앞으로 꾸준히 예쁜 줄기 올리고 고운 꽃 피우기를 바라면서 부추풀 씨앗주머니를 던진다. 이곳에서도 부추풀 돋고, 저곳에서도 부추풀 돋기를 빈다. 민들레도 고들빼기도 씀바귀도 냉이도, 우리 집 둘레 곳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기를 빈다. 유채풀도 갓풀도 신나게 자라고, 모시풀도 제비꽃도 즐겁게 자라기를 빈다. 풀들아, 우리 집 둘레에서 푸른 숨결 나누어 주렴. 우리 집이 이 마을에서 조그마한 풀숲 이루어 풀숨과 풀바람 일으키는 샘물이 되도록 해 주렴.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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