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동백꽃 기다리기

 


  살짝 눈발 흩날린 고흥에서는 동백나무마다 꽃봉우리 단단하게 맺힌다. 볕이 아주 잘 드는 마을에서는 벌써 붉게 꽃송이 터뜨린 동백나무가 있다. 다른 꽃봉오리 모두 굳게 닫는데 어김없이 몇몇 꽃송이 활짝 터진다. 이 꽃봉오리는 눈을 맞으면서도 씩씩하게 붉은 꽃송이 곱게 빛난다.


  우리 집 동백나무도 십이월에 찬바람과 찬눈 맞으며 바알간 꽃송이를 선보일 수 있을까. 지난해와 그러께에 이어 올해에도 십이월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해마다 십이월 코앞이 되면, 이제 우리 집 마당 끝자락 동백나무 어느 자리에서 ‘한 해를 마무리짓는 섣달이에요. 섣달을 노래하며 새해 꿈꾸는 빛을 누리셔요’ 하는 동백꽃 붉은 잎빛 만날 수 있을까. 두근두근 설레며 날마다 살살 둘러본다. 4346.11.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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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 춥겠다

 


  돌나물은 이른봄부터 씩씩하게 돋아 십일월 언저리까지 우리 밥상을 푸르게 가꾸어 주었다. 십일월 둘째 주를 넘어갈 무렵부터 더는 줄기가 뻗지 못해, 이듬해 봄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줄기가 더 뻗지 못하면서 늦가을에 새삼스레 꽃망울 다시 터뜨리려고 한다. 얘들아, 춥겠구나. 너희는 다른 풀보다 추위를 많이 탈 텐데, 이른봄과 늦여름에 꽃을 한 차례씩 피우면 되지, 늦가을까지 한 해에 꽃을 세 차례 피우려고? 이제는 그만 푹 쉬렴. 네 푸른 잎사귀에 하얀 이불이 덮이는구나. 추울 텐데 어서 아침이 오기를 바라면서 느긋하게 흙 품에 안기렴. 올 한 해 고마웠어. 이듬해에 우리 다시 즐겁게 만나자. 4346.11.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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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은 늦가을 까마중꽃

 


  아침해가 천천히 뜰 무렵, 까마중 꽃송이와 잎사귀에 내려앉은 눈 또는 서리가 천천히 녹는다. 밤새 추웠겠네. 그러나, 이 눈 또는 서리에도 꽃송이는 시들지 않고 잎사귀 또한 스러지지 않는다. 너희는 아주 씩씩하고 야무지구나. 지난밤 잘 잤니. 며칠 더 춥다는데 잘 견딜 만하니. 늦가을 넘어 십이월까지 우리한테 맑은 열매 나누어 주는 까마중꽃아, 네 하얀 꽃빛 이 겨울 문턱에서도 곱다라니 마주하는구나. 너희들 맑으며 씩씩한 숨결을 아이들한테 차곡차곡 물려줄게. 4346.11.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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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쑥 푸른잎

 


  늦가을에 쑥이 새로 돋는다. 첫봄에 쑥이 돋는 때를 돌아본다면, 늦가을에 쑫이 새로 돋을 만하다. 쑥은 아직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을 무렵부터 싹을 틔운다. 새벽과 밤 사이에 몹시 차다 싶은 바람이 부는 꽤 이른 봄이나 늦겨울부터 싹은 새잎을 틔워 푸른빛을 누런땅에 드리운다. 늦가을 매서운 바람이 불지만, 아침과 낮에는 포근하게 햇볕 드리우니, 가을쑥이 새삼스레 돋는다.


  이 싱그러운 빛이 있어, 가을에도 겨울에도 푸른 바람 마신다. 이 보드라운 잎사귀로 고운 내음 나누어 주니, 가을과 겨울에 푸른 꿈 키운다. 쑥아, 쑥아, 가을쑥아, 이듬해 봄에도 즐거이 찾아와 주렴. 4346.11.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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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 새까만 씨앗

 


  초피나무 새빨간 열매가 터진다. 열매껍데기 살살 벌어지면서 속에 든 까만 씨앗이 드러난다. 초피씨앗이라 할 새까만 알은 아주 동글동글하다. 사람들은 초피나무 열매껍데기만 빻아서 가루로 쓰지만, 멧새와 들새는 새까만 씨앗을 겨우내 맛나게 먹는다. 새들이 먹고 남은 새까만 씨앗은 초피나무 둘레로 떨어져 이듬해 봄에 새싹을 틔운다. 새로 돋는 초피싹은 싸아하게 입안을 틔우는 봄나물 된다. 어린나무를 봄나물로 삼아 먹는 셈인데, 얼마나 보드레한지 모른다.


  푸른 잎사귀가 누렇게 물든다. 초피나무 잎사귀는 봄부터 가을까지 범나비 애벌레가 맛나게 갉아먹었다. 겨울에는 애벌레도 자고 나무도 쉬면서 긴긴 나날 고요히 흐르겠지. 긴긴 겨울이 지나고 푸릇푸릇 들판에 새빛 번지면, 초피나무에도 새 잎사귀 푸르디푸르게 하나둘 나면서 제비들 찾아오겠지. 4346.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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