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나무 꽃송이

 


  도시에도 오리나무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도시 어디에서 오리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오리나무를 약으로 삼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우리 삶자리 둘레에 오리나무를 건사하기란 쉽지 않다. 오리나무뿐 아니라 뽕나무나 대추나무나 감나무나 능금나무 한 그루 느긋하게 자랄 틈을 내주지 않는 도시 사회 얼거리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세울 자리 마련하려고 엄청난 돈과 품을 쓰는 도시 정책이고 행정일 뿐, 오리나무이든 잣나무이든 잘 자라도록 숲과 들을 살리는 도시 정책이나 행정은 찾아볼 수 없다.


  삼월이 무르익을 무렵 복실복실 부푸는 송이가 오리나무 꽃일까. 잎사귀 아직 돋지 않았는데 꽃부터 맺는 오리나무일까. 그러고 보면 느티나무나 초피나무도 꽃인지 잎인지 선뜻 알아보기 어렵게 푸른 빛깔로 조그마한 꽃송이 맺는다. 모두들 이른봄에 푸른 꽃이 피고, 어느새 꽃이 지면서 잎사귀만 더 푸르게 남는다.


  들판에 조그마한 꽃들이 맑게 돋아도 봄인 줄 느끼고, 숲에 복실복실 소담스럽게 꽃송이 다닌 오리나무를 보아도 봄인 줄 느낀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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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 노란물결

 


  초피나무 노란물결이 오래 간다. 처음 노란물 들 적부터 한 달이 지나는데 잎이 오랫동안 매달린다. 십이월을 넘겨도 노란 잎이 다 떨어지지 않는다. 푸릇푸릇한 잎이 모두 사라진 십일월 끝물에는 노란물결이 고빗사위 된다. 숲에는 노란 나뭇잎 거의 떨어지는데, 초피나무는 참 오랫동안 잎사귀를 매달며 가을빛을 나누어 주는구나.


  밝은 햇살이 닿아 한결 싱그럽게 바라본다. 조그마한 나무에서도 너른 빛을 누린다. 앞으로 우리 집 초피나무 무럭무럭 자라 제법 우람하게 큰다면, 마당으로 누런 그림자 드리우면서 더욱 그윽하며 예쁜 빛과 내음을 나누어 주겠지.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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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뜯는 겨울부추

 


  봄과 여름에 정구지(부추) 신나게 뜯어서 먹었는데, 꽃대 오르고 씨앗 터지고 난 뒤에도 가을부추 새삼스레 먹었다. 게다가 겨울로 접어들어도 정구지는 푸르게 푸르게 또 푸르고 푸르게 새 잎사귀 뻗는다. 얼마나 고마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즐거운가, 노래노래 부르면서 한 잎 두 잎 톡톡 끊는다. 손톱으로 살며시 눌러 끊을 때에 들리는 통통 소리는 싱그럽다. 까마중을 훑느라 손톱 언저리 까맣게 물들고, 겨울정구지 끊으면서 두 손에 풀내음 그득 묻는다. 먹을 적에도 즐겁지만, 풀을 뜯고 작은 열매 훑을 적에도 즐겁다. 뜯거나 훑기 앞서 가만히 바라볼 적에도 즐겁다. 눈과 손과 입과 몸으로 즐거우니, 마음으로도 즐겁다. 겨울정구지란 따순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한테 하늘이 내려주고 땅이 베푸는 예쁜 선물이다. 벌써 냉이가 오르는 곳이 있다는데, 냉이도 눈 크게 뜨고 찾아봐야겠다. 4346.1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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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8 09:27   좋아요 0 | URL
오늘은 정구지 총총 썰어서 고명 얹힌
맛있는 국시를 해 먹고 싶네요~~

숲노래 2013-12-08 11:14   좋아요 0 | URL
아하, 국수에다가 정구지를 썰어서 넣어도 되는군요.
정구지를 끊을 적마다
다른 어디에 넣어 먹기는 아쉽다 여겨
늘 날푸성귀로만 먹었어요~
 

도시에서도 겨울눈 책읽기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글문화연대로 찾아간다. 서울시에서 공문서와 보도자료에 쓰는 말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살펴보아 주기를 바란다는 일감을 맡겼다고 해서, 이 일을 함께 하기로 했다. 뜻있는 여러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감을 맡아 해야 할까 생각한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낮밥을 먹기로 한다. 사무실에서 나와 밥집으로 가는 길에 두리번두리번 돌아본다. 이 둘레에 어떤 나무들 어떻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 잎이 안 진 나무가 있지만, 웬만한 나무는 모두 잎이 졌다. 은행나무는 노란 은행잎 한두 닢 달랑달랑 남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잎 모두 진 은행나무이건, 목련이건, 겨울눈 앙증맞게 있다. 너희는 잎을 떨구면서 벌써 겨울눈을 품었니? 사람들은 아마 너희를 ‘앙상한 나무’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앙상하다는 겨울나무에 아무것도 없지는 않아. 누구보다 먼저 잎을 떨구는 대추나무에도 겨울눈 그득하던걸.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에도, 감나무와 매화나무에도 온통 겨울눈 그득하던걸. 나란히 걷던 한 분한테 “저기 나무 좀 보셔요. 잎 떨군 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겨울눈이 가득가득 맺혔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살거나 일하는 이들도 둘레에서 씩씩하게 뿌리내리며 푸른 숨결 나누어 주는 이 나무들을 살며시 보듬거나 얼싸안아 주기를 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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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책

 


  가을꽃책은 보름을 넘기지 않는다. 가을꽃책은 열흘 사이에 스러진다. 가을꽃책은 이레쯤 눈부시다. 가을꽃책은 활짝 피어나다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진다. 가을꽃책은 한 해에 꼭 한 차례 찾아온다. 봄꽃은 늦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피어나기도 하지만, 가을꽃책은 언제나 한 해에 꼭 한 차례 슬그머니 찾아와서 살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언제나 들에서 지내며 바라보면 들빛은 차츰차츰 무르익어 들내음 마시는 이들 모두한테 들노래를 베푼다. 늘 숲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면 숲빛은 시나브로 무르익어 숲내음 마시는 이들 모두한테 숲노래를 나누어 준다.


  씨앗 품은 꽃송이가 보여주는 꽃빛과는 사뭇 다른, 꽃송이가 알뜰히 익도록 햇볕을 머금은 잎사귀가 붉고 누렇게 물드는 가을빛이란 가을책이다. 가을꽃책이다. 4346.1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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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01 15:13   좋아요 0 | URL
너무 너무 예쁩니다!!!^^
저곳에서 사진 한장 찍고 싶네요.ㅎㅎ

숲노래 2013-12-01 15:23   좋아요 0 | URL
네, 이 앞에서 한참 바람 쐬면서 저 잎빛을 누렸어요.

그러나, 마을 어르신들은 본 듯 만 듯 다들 그냥 지나치시고요 ^^;;;

자연스럽게 자라는 나무가 드리우는 가을빛을
시골 분들도 도시 이웃들도 다 함께
기쁘게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