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콩꽃잔치

 


  섣달로 접어드니 고흥에서도 매섭게 바람이 분다. 어젯밤에는 차가운 눈과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흥에서는 그야말로 씩씩한 푸성귀와 풀과 나무가 많다. 이 겨울에도 눈을 맞으며 꽃송이 붉은 동백나무가 있는 한편, 찬바람에도 살랑살랑 노래를 베풀며 한여름 새 잎사귀와 꽃송이 터뜨리려고 울긋불긋 꽃망울 맺는 후박나무가 있다. 가시나무와 종가시나무도 겨우내 푸른 잎사귀에 단단한 꽃망울 건사한다.


  나무는 기나긴 해 겨울나기를 하며 자란다면, 푸성귀와 풀은 해마다 새롭게 겨울나기를 한다. 섣달에 하얀 꽃망울 터뜨리는 콩을 본다. 올망졸망 모인 콩포기는 싯푸른 냄새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따사로운 시골에서 이 포근한 기운을 받아들여 모두들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노래를 베푼다.


  한겨울 고흥 텃밭에 흰콩꽃잔치 열린다. 누구나 와서 콩꽃을 누릴 수 있다. 찬바람에 손 비비면서 콩꽃을 즐길 수 있다. 눈발이 날리고 얼음 같은 비가 내려도 씩씩하게 꽃망울 터뜨리는 콩꽃잔치에 마실갈 수 있다.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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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0 14:17   좋아요 0 | URL
어멋, 한겨울에도 콩꽃이 피는군요!
콩잎들도 여전히 푸르고요~
참, 싱그럽고 어여쁩니다~*^^*

숲노래 2013-12-20 14:27   좋아요 0 | URL
고흥을 비롯해, 완도와 진도와 해남과 강진, 또 통영과 남해쯤 되면
모두 겨울콩꽃 누리리라 생각해요~

후애(厚愛) 2013-12-20 15:34   좋아요 0 | URL
콩꽃을 보니 고흥은 여름 같아요~
한겨울에도 콩꽃이 자라다니... 너무 신기하고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20 17:01   좋아요 0 | URL
여름이라기보다...
겨울이 무척 포근하답니다~ ^^
 

코스모스 씨앗 책읽기

 


  도양읍 큰길가를 걷다가 시든 코스모스꽃을 본다. 아직까지 코스모스가 꽃봉오리를 거두지 않았나. 얼마 앞서까지 이 자리에서 꽃을 피운 듯하다. 고흥이라는 데가 참 따뜻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한국 어느 곳에서 12월까지 코스모스꽃을 보겠는가. 제주섬이라면 있을 테지만, 뭍에서는 거의 없겠지.


  이제 막 시들면서 씨방이 굵는 코스모스가 있고, 씨앗이 벌어진 코스모스가 있다. 코스모스 씨앗을 언제 마지막으로 눈여겨보았는지 한참 헤아려 본다. 어릴 적에 본 뒤 거의 서른 해만에 제대로 들여다보는구나 싶다. 코스모스꽃 길가에서 나풀거리는 모습이야 으레 보지만, 꽃이 질 무렵 모두 모가지를 베니, 코스모스 씨앗 알뜰히 맺힌 모습까지 찾아보기는 만만하지 않다.


  코스모스 씨앗 달린 가느다란 줄기를 몇 꺾는다. 한손에 쥐고 걷는다. 도양읍 녹동고등학교로 가서 이곳 교사와 학생한테 보여주면서 묻는다. 코스모스 씨앗인 줄 알아맞힌 사람이 아무도 없다. 생각해 보면, 교과서에 코스모스 씨앗 생김새가 나오지 않는다. 교과서를 엮는 이들은 아이들이 코스모스 씨앗을 배우도록 이끌지 않는다. 대학입학시험에 코스모스 씨앗 알아보는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에 코스모스 씨앗 사진이나 그림이라도 실리는 일 있을까.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지만, 흔하고 너른 꽃씨 하나를 돌아볼 틈이 없다. 도시에서도 아이들은 참말 흔하고 너른 꽃인 코스모스가 어떻게 꽃이 지고, 씨방은 어떻게 굵어지며, 씨앗은 어떻게 맺어 널리 퍼지는가를 헤아릴 겨를이 없겠지.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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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20 14:20   좋아요 0 | URL
저도 코스모스꽃,은 보았지만
씨앗은 처음 봅니다~^^
하얀 손위에 까맣게 맺힌 씨앗들이 신기해요!*^^*

숲노래 2013-12-20 14:27   좋아요 0 | URL
이 씨앗은 옷에 잘 안 붙어요.
그냥 톡톡 잘 떨어진답니다~

후애(厚愛) 2013-12-20 15:37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꽃은 참 이쁘고 향기도 참 좋습니다.^^
씨앗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정말 신기하네요.

숲노래 2013-12-20 17:01   좋아요 0 | URL
도양읍에서 얻은 씨앗을
낮에 큰아이하고 집 둘레에 뿌렸어요.
이듬해 봄을 기다리면서~ ^^
 

학교나무 책읽기 2 - 모가지 뎅겅 잘린

 


  학교나무는 교장 자리에 선 어른 생각이나 마음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제아무리 오랫동안 학교나무를 살뜰히 돌보거나 아낀 교장 한 사람 있었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이은 뒷사람이 모가지를 뎅겅 자르면 그만 나무는 난쟁이가 되고 만다. 난쟁이가 된 나무는 옆으로 가지를 뻗기도 하지만 다시 위로 줄기를 올리고 싶다. 하늘바라기로 자라는 나무이니, 모가지를 자르고 또 잘라도, 가지를 끊고 또 끊어도,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기 마련이다.


  읍내 초등학교 옆을 걷다가 모가지 무시무시하게 잘린 버즘나무를 본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겨울까. 얼마나 고단할까.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심은 나무는 왜 씩씩하게 하늘로 쭉쭉 뻗을 수 없을까. 나뭇줄기를 뭉텅 잘라, 모가지를 뎅겅 자르듯이,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꿈과 빛과 사랑을 뎅겅 자르는 교육을 하겠다는 뜻일까.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꿈과 빛과 사랑을 무럭무럭 키우는 학교로는 나아가지 않고, 모든 아이들 키를 똑같이 맞추겠다는 학교라는 소리일까.


  소나무 가지를 휘어 놓으면 얼마나 멋있을까.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고, 모가지를 뎅겅 잘리거나 가지가 꺾이거나 휘어져야 한다면, 나무를 이렇게 마구 다루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


  공무원은 길거리에 심은 나무가 더 자라지 않도록 가지와 줄기를 뭉텅뭉텅 자르면서 ‘수형조절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교사는 아이들 꿈과 빛과 사랑을 모조리 싹둑싹둑 자르면서 ‘교육 사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나 궁금하다.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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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나무 책읽기 1 - 나무이름

 


  고등학교로 찾아가서 그곳 푸름이와 이야기를 나눌 적에 으레 “우리 친구들은 이 학교에서 자라는 저 우람한 나무가 어떤 이름인 줄 알아요?” 하고 묻는다. 아직 어느 아이도 나무이름을 댄 적이 없다. “소나무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더러 있는데, 아이들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릴 수 있을까. 바늘잎이 있으면 몽땅 소나무로만 여기지 않을까.


  아이들은 왜 나무이름을 모를까. 날마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은 저희가 다니는 학교에서 수십 해 동안 자라며 학교 건물보다 높이 키가 자란 나무가 어떤 이름인 줄 왜 모를까. 교장도 교사도 모르기 때문일까. 교장도 교사도 나무이름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 나무이름쯤이야 대입시험에 나오지 않으니까 돌아볼 까닭이 없을까. 나무이름쯤 몰라도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편의점에 가거나 놀러다니거나 아무 실타래가 없기 때문일까.


  내가 이름을 알거나 이름을 모르는 학교나무 앞에 선다. 마을에서 자라면 마을나무요, 학교에서 자라면 학교나무이다. 숲에서 자라면 숲나무이고, 바닷가에서 자라면 바다나무 될 테지. 가만히 쓰다듬다가 살며시 볼을 대고, 품으로 곱게 안는다. 얼마나 오랜 나날 얼마나 많은 아이들 웃음과 눈물을 이곳에 서서 바라보았니. 얼마나 많은 아이들한테 네 푸른 숨결 베풀었니. 아마 다들 잘 모를 수 있어. 네가 이곳에 우뚝 서서 푸른 숨결을 베풀기에, 이곳 아이들이 푸른 빛으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줄.


  그렇지만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이곳에서 씩씩하고 다부지게 뿌리를 내리며 더 높고 넓게 가지를 뻗어 푸른 그늘 베풀 나무로구나. 언제나 고운 빛으로 서고, 한결같이 예쁜 잎사귀 살며시 흔들며 푸른노래 들려줄 나무로구나. 4346.1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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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19 11:54   좋아요 0 | URL
정말 저 나무, 우람하고 늠름하고 참 좋군요.
그런데 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

숲노래 2013-12-19 12:09   좋아요 0 | URL
네이버 지식인에 여쭈니
'가시나무'로 나오는군요~

곧 가시나무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씨눈 책읽기

 


  몇 살 적인지 잘 안 떠오르지만, 아마 열 살 언저리였지 싶은데,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밥그릇에 담긴 쌀알마다 노란빛이 끄트머리에서 곱게 피어나는구나 하고 느꼈다. 밥알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으면서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밥알을 하나씩 입에 넣어 야금야금 깨물어 보았다. 하얀 속살은 어떤 맛이고 노란 씨눈은 어떤 맛인지 헤아려 보았다.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깨물어 보니, 하얀 속살과 노린 씨눈은 저마다 맛이 다른 줄 알 수 있었다. 한참 밥알을 하나씩 야금야금 깨물어 되게 천천히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어릴 적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며 조리로 쌀을 일 적에, 물로 가만히 씻고 보면, 하얀 쌀알에 노란 씨눈이 반짝반짝 빛나곤 했다. ‘그래, 너를 먹으며 기운을 내는구나. 너를 먹어야 기운이 솟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어디에서 밥을 먹든 씨눈이 어느 만큼 맑게 빛나는가를 살핀다. 씨눈이 있는 밥은 조금 더 많이 씹으면서 밥맛을 즐기고, 씨눈이 없는 밥은 씹는 맛이 없어 저절로 입에서 녹아 삼켜야 하곤 한다.


  읍내에서 쌀을 사거나 이웃 할매가 건네는 쌀을 받을 적에 으레 씨눈을 살핀다. 요즈음은 누런쌀이더라도 씨눈을 깎곤 한다. 생김새는 누런쌀이라지만, 씨눈 없는 누런쌀이 있기도 하다. 일본 한자말로 ‘오분도미’라든지 ‘삼분도미’라든지 ‘칠분도미’ 같은 말을 쓰는데, 쉬운 한국말로 ‘씨눈 있는 누런쌀’이나 ‘씨눈 없는 누런쌀’이나 ‘씨눈 있는 흰쌀’이나 ‘씨눈 없는 흰쌀’처럼 쓰면 참으로 좋으리라 느낀다. 아마 도시에서는 씨눈을 살릴 만큼 깎는 흰쌀을 어렵잖이 찾을 수 있으리라. 도시에 있는 커다란 가게에서는 그 자리에서 쌀겨를 벗겨서 팔기도 하니까. 외려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다 씨눈을 모조리 깎아서 판다. 씨눈 있는 쌀을 찾기가 어렵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애써 유기농이니 친환경농이니 한다 하더라도, 막상 씨눈을 모조리 깎아서 버린다면, 밥을 먹는 뜻이나 보람이 얼마나 될까. 씨눈을 안 먹고서 밥을 먹었다 할 수 있을까. 예부터, 기운을 솟도록 북돋우는 알짜는 씨눈과 껍질에 있다고 했는데, 왜 오늘날 시골에서는 씨눈도 껍질도 모두 버리려 할까. 언제부터 이 나라 시골에서 씨눈과 껍질을 모두 버리는 삶 되었을까. 4346.12.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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