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7) 예년의 1 : 예년의 일처럼

 

그러고 보니 더욱더 우리 사협이 예년의 일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평가 자세는 문제가 있는 것이 될 수밖에
《고영일-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한울,2011) 27쪽

 

  “되풀이하고 있는”은 “되풀이하는”으로 다듬으면 되고, “작품에 대(對)한 평가(評價) 자세(姿勢)는”은 “작품을 평가하는 자세”나 “작품을 바라보는 매무새”나 “작품을 읽는 눈”이나 “작품을 살피는 잣대”나 “작품을 가르는 틀”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문제(問題)가 있는 것이 될 수밖에”는 “문제가 될 수밖에”나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나 “말썽거리가 있다고 할 수밖에”나 “잘잘못이 있다고 할 수밖에”로 손질해 봅니다.


  ‘예년(例年)’ 뜻을 살펴보면, “(1) 보통의 해 (2) 일기 예보에서, 지난 30년간의 기후의 평균적 상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곰곰이 살피니, “보통의 해”를 뜻한다는 자리에도 곧잘 쓰는구나 싶으면서, 날씨를 알리는 자리에서 참 자주 쓰는구나 싶어요. 쓸 만하니까 쓸는지 모르지만, 알맞게 쓸 만한 낱말을 옳게 살피지 못하며 그냥 쓰는구나 싶어요.

 

 예년의 일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 늘 있는 일처럼 되풀이하는
→ 해마다 늘 되풀이하는
→ 늘 되풀이하는
→ 언제나 되풀이하는
→ 자꾸 되풀이하는
→ 버릇처럼 되풀이하는
 …

 

  잘 생각하면 잘 쓸 낱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잘 헤아리면 글 하나 잘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예쁘거나 멋지다 싶은 낱말을 골라서 쓰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환하게 드러내는 낱말을 슬기롭게 느낍니다. 내 사랑을 따스히 나눌 말투를 살뜰히 헤아립니다.


  해마다 어떤 일을 되풀이한다면 ‘언제나’ 되풀이하는 셈이면서 ‘자꾸’ 되풀이하는 셈입니다. 어떤 ‘버릇’이 된 셈이요, ‘삶’으로 뿌리내렸다 할 만합니다.


  좋게 바라본다면 “즐겁게 되풀이하는” 모습입니다. 안 좋게 바라본다면 “얄궂게 되풀이하는” 모습이에요.


  이 자리에서는 “얄궂게 되풀이하는” 모습입니다. “슬프게 되풀이하는” 모습입니다. “안타깝게 되풀이하는” 모습입니다.

 

 으레 되풀이하는
 한결같이 되풀이하는
 …

 

  한국땅에서 한국말을 쓰는 이들이 즐겁게 말을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예쁘게 말을 돌보고, 착하게 말을 보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차게 말열매 맺고, 씩씩하게 말나무 가꾸며, 싱그러이 말잎 우거지도록 애쓸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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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더욱더 우리 사협이 해마다 안타깝게 되풀이하는 작품 평가 매무새는 말썽이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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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8) 겸양의 1 : 겸양의 말뜻

 

겸양의 말뜻과 달리 목소리는 ‘어서 오라’는 듯 밝고 상쾌하다
《이승환·최수연-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이가서,2009) 237쪽

  “밝고 상쾌(爽快)하다”는 “밝고 시원하다”나 “밝고 산뜻하다”나 “밝고 상큼하다”로 다듬으면 한결 좋습니다.


  한자말 ‘겸양(謙讓)’은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바쁠 때일수록 겸양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같은 보기글이 실리기도 합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국어사저을 뒤적여 ‘양보(讓步)’를 찾아보니, “길이나 자리,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남에게 미루어 줌”을 뜻한다 합니다. ‘양보’ 뜻풀이가 ‘사양’이라 하니, 다시 ‘사양(辭讓)’을 찾아보는데, 이 한자말은 “겸손하여 받지 아니하거나 응하지 아니함”을 뜻한다고 나오네요. 이제는 ‘사양’ 뜻풀이가 ‘겸손’입니다. 다시금 ‘겸손(謙遜/謙巽)’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을 뜻한다고 해요.


  돌고 도는 한자말 풀이를 헤아립니다. ‘겸양’은 “나 스스로를 낮추어 남한테 베풀거나 부드러운 모습”을 일컫는다 할 만합니다. 문득, 이 말뜻을 잘 나타내는 한겨레 낱말 하나 떠오릅니다. ‘다소곳하다’.

 

 겸양의 말뜻과 달리
→ 다소곳한 말뜻과 달리
→ 상냥한 말뜻과 달리
→ 얌전한 말뜻과 달리
→ 점잖은 말뜻과 달리
→ 차분한 말뜻과 달리
→ 참한 말뜻과 달리
 …

 

  국어사전에서 ‘다소곳하다’를 찾아봅니다. 뜻풀이가 셋 달립니다. “(1) 고개를 조금 숙이고 온순한 태도로 말이 없다 (2) 온순한 마음으로 따르는 태도가 있다 (3) 한적하고도 얌전하다”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그나저나,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 ‘다소곳하다’ 뜻풀이를 똑똑히 살피려고 국어사전을 살피는 분이 몇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으레 알겠거니 여기지는 않을까요. 뜻이나 느낌이나 쓰임새를 제대로 모르면서 엉뚱한 자리에 쓰거나 잘못 쓰거나 아예 안 쓰지는 않을까요.


  내 어릴 적을 돌아보면, 어른들은 ‘다소곳하다’ 같은 낱말을 퍽 즐겨쓰셨습니다. 이 낱말은 언제나 좋은 뜻으로 좋은 자리에 쓰셨어요. 어른한테든 아이한테든 누군가 다소곳하다 할 때에는 참하거나 믿음직하다는 뜻이곤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한테서 ‘다소곳하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이 소리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 참말, 누군가 다소곳하다 하자면, 더없이 착하면서 맑고 어여쁜 넋이요 몸가짐이어야 하거든요.

 

 바쁠 때일수록 겸양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 바쁠 때일수록 너그러이 마음을 써야 한다
→ 바쁠 때일수록 따스하게 마음을 써야 한다
→ 바쁠 때일수록 곱고 따스히 마음써야 한다
 …

 

  좋은 말을 나누며 좋은 생각을 꽃피웁니다. 좋은 글을 쓰며 좋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좋은 말을 들려주며 좋은 꿈을 키웁니다. 좋은 글을 빚으며 좋은 사랑을 심습니다.


  우리가 쓸 말은 굳이 ‘바르게’ 쓰거나 ‘옳게’ 바로잡지 않아도 됩니다.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참답고, 가장 다소곳하며, 가장 빛나고, 가장 사랑스러우며, 가장 어여쁜, 가장 좋은 말이 되도록 다스릴 수 있으면 됩니다. 가장 참답게 쓰는 말이라면 바르기 마련이에요. 가장 사랑스럽게 쓰는 글이라면 옳기 마련일 테지요. 가장 좋은 넋으로 빚는 글일 때에는 가장 아름다이 빛날 테고, 가장 어여쁜 꿈으로 일구는 글일 적에는 가장 따사로이 거듭나겠지요.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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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곳한 말뜻과 달리 목소리는 ‘어서 오라’는 듯 밝고 상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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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86) 속 36 : 그림책 속

 

하지만 아이들은 자꾸 그림책 속으로 빠져든다 … 나는 몇 해 전 친한 벗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간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승숙-선생님, 우리 그림책 읽어요》(보리,2010) 33, 39쪽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바로잡습니다. “몇 해 전(前)”은 “몇 해 앞서”로 손볼 수 있고, “친(親)한 벗”은 “가까운 벗”이나 “좋은 벗”이나 “살가운 벗”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 여행(旅行)을 간 기억(記憶)”은 “제주도에 나들이를 간 생각”이나 “제주도에 놀러간 이야기”나 “제주도에 마실 간 나날”로 손질해 봅니다.


  누군가는 ‘여행’이라는 낱말이 좋아 줄곧 이 낱말을 쓸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굳이 ‘여행’이라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 ‘나들이’나 ‘마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말하든 좋습니다. 스스로 가장 즐거우며 기쁘다 여기는 낱말을 골라서 쓸 노릇입니다. 다만, 어느 낱말을 쓰든, ‘제주 여행’과 ‘제주 나들이’와 ‘제주 마실’은 똑같은 일입니다.

 

 그림책 속으로 빠져든다
→ 그림책으로 빠져든다
→ 그림책 이야기에 빠져든다
→ 그림책에 온마음 쏟는다
→ 그림책에 푹 빠진다
 …

 

  아침에 둘째 아이 똥바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말글을 옳게 익힐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되고 나서 말글을 사랑스레 가다듬을 수 없습니다. 대학교수가 되거나 소설쟁이가 된 뒤부터 말글을 알맞게 추스를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익힐 말글입니다. 너나 당신이 아닌 바로 내가 예쁘게 가다듬을 말글입니다.


  여느 때에 늘 즐겁게 익히는 말글이 아니라 한다면,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가 된들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된들, 한겨레 말글을 알맞거나 바르거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쓰지 못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한결같이 가다듬는 말글이 아닐 때에는, 아이 어버이가 되든 아이 이모나 삼촌이 되든, 아이들과 함께 나눌 좋은 말글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주도에 여행을 간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 제주도에 마실을 간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 제주도에 나들이 간 일을 떠올렸다
→ 제주도 마실을 헤아렸다
→ 제주도 나들이 생각에 푹 잠겼다
 …

 

  오늘 내 곁 좋은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넋일 때에, 내가 다른 어느 자리에 들어서더라도 내 둘레 온갖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는 넋입니다. 오늘 내 아이들과 주고받는 말마디가, 내 일터 내 삶터 내 놀이터 이웃들과 주고받는 말마디입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학교를 다니기에 글쓰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여느 때에 나 스스로 생각을 알뜰살뜰 추슬러야 글쓰기를 차근차근 익힐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사랑이란 없고, 갑작스레 떨어지는 솜씨란 없어요. 천천히 누리는 사랑이기에 천천히 빛나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하나하나 북돋우는 꿈이기에 시나브로 이루는 꿈으로 뿌리내려요.


  삶이 피어나는 말입니다. 삶이 드러나는 글입니다. 삶이 열매를 맺어 말이 되고, 삶이 씨앗을 뿌려 글로 자랍니다.


  한결같이 삶을 살피며 아낄 수 있는 한겨레이기를 빕니다. 한결같이 이웃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한겨레이기를 바랍니다. 한결같이 내 목숨을 보살피며 풀과 나무와 흙과 햇살과 바람과 물을 좋아할 줄 아는 한겨레이기를 비손합니다.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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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아이들은 자꾸 그림책으로 빠져든다 … 나는 좋은 벗들과 몇 해 앞서 누린 제주도 마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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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4) 조심

 

마음 놓고 지낼 숲이라고 잘피라 불리게 된 이름이다. 숨 가삐 달려온 물결도 그 위에 잔잔히 잠들고, 나래 지친 왜가리도 조심조심 발을 들인다
《안학수-부슬비 내리던 장날》(문학동네,2010) 48∼49쪽

 

  “잘피라 불리게 된 이름이다”는 “잘피라 붙은 이름이다”나 “잘피라 일컫는 이름이다”로 손질합니다. “그 위에 잔잔히 잠들고”는 “여기에 잔잔히 잠들고”나 “이곳에 잔잔히 잠들고”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한국말 무늬와 결을 헤아려야지요.


  이 보기글은 아이들 읽는 동시입니다. 동시에 적바림한 낱말이니, 누구보다 아이들이 읽으며 한국말을 생각하도록 이끌 텐데, 싯말 끝자락에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국어사전에서 말뜻을 찾아보면,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씀”이라 나옵니다. 곧, ‘조심하다 = 마음쓰다’인 셈입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마음쓰다’ 같은 낱말이 실리지 않아요. 이렇게 낱말 하나 생각한다면, ‘마음쓰기’와 ‘마음씀’ 같은 다른 낱말을 더 생각할 수 있지만, 한겨레 국어사전은 한겨레가 말넋을 북돋우도록 이끌지 못해요. 제 나름대로 요모조모 헤아립니다. 마음쓰다에서 마음쓰기와 마음씀을 헤아릴 수 있고, ‘마음다움’이나 ‘마음먹기’를 헤아릴 만해요. ‘마음두기’라든지 ‘마음보기’를 헤아려도 즐겁습니다. ‘마음닦기’나 ‘마음열기’로도 천천히 이어질 수 있어요.


  마음을 쓰는 만큼 새 말길을 엽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새 말자리를 마련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한자말 ‘조심’은 “마음을 쓰는 일” 가운데 아주 작은 한 갈래만 가리킨다 여길 수 있습니다. ‘마음쓰기’는 “마음을 쓰는 일” 모두를 가리킨다 하겠지요. 이른바 “잘못이 없도록 마음을 쓰기”인데, 이러한 마음쓰기라 하면 ‘살피기’라 하면 돼요.

 

 왜가리도 조심조심 발을 들인다
→ 왜가리도 잘 살피며 발을 들인다
→ 왜가리도 살몃살몃 발을 들인다
→ 왜가리도 살금살금 발을 들인다
 …

 

  잘못이 없게끔 마음을 쓰는 일이기에 ‘살핀다’고도 하지만, ‘살몃살몃’이나 ‘살금살금’ 같은 꾸밈말을 넣을 수 있어요. 이와 비슷한 결을 헤아려 ‘가만가만’이나 ‘천천히’를 넣어도 됩니다. ‘하나하나’라든지 ‘하나둘’을 넣어도 어울리고, ‘곰곰이’를 넣을 수 있어요.


  즐겁게 마음을 쓰며 한국말을 빛냅니다. 기쁘게 마음을 쏟으며 한국글을 갈고닦습니다. 예쁘게 마음을 기울이며 한국말을 살찌웁니다. 따숩게 마음을 들여 한국글을 돌봅니다. (4345.5.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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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놓고 지낼 숲이라고 잘피라는 이름 붙는다. 숨 가삐 달려온 물결도 이곳에 잔잔히 잠들고, 나래 지친 왜가리도 살몃살몃 발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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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934) 얄궂은 말투 94 : 역시 과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김 부장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역시 과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국립국어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임)
《배상복·오경순-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어》(21세기북스,2012) 73쪽

 

  높임말을 그닥 옳게 쓰지 못하는 한국사람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요즈음 같지 않았다고 느껴요. 예전 사람들은 높임말을 알맞고 바르게 잘 가누어 썼다고 느껴요. 잘 살피면, 예전 사람들은 높임말은 높임말대로 알맞게 가누어 쓰고, 긴소리와 짧은소리는 긴소리와 짧은소리대로 살뜰히 가누어 썼어요. 더없이 마땅한 노릇이지만, 한국사람이거든요. 한국말을 주고받는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사람이니까 한국말을 늘 씁니다. 한국사람인 만큼 한국말을 노상 듣습니다. 어린이도 배우는 말이요, 어른도 배우는 말입니다. 일흔이나 여든쯤 되었으니 안 배워도 되지 않습니다. 전문가나 학자라 하기에 안 배워도 괜찮지 않아요.


  보기글을 살피면, “국립국어원은 가능(可能)하다는 입장(立場)임”이라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 ‘입장’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일본 한자말이라서 안 써야 할 말은 아니에요. 다만, 이 글월에서는 굳이 이렇게 쓸 까닭이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써도 된다고 밝힌다”라 손질하거나 “국립국어원은 이 말투도 괜찮다고 말한다”라 손질할 수 있어요.

 

 역시 과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 이 또한 지나치다고 본다
→ 이 또한 지나친 말투이다
→ 이 또한 알맞지 않다
→ 이 또한 어울리지 않다
 …

 

  그런데 “과(過)해 보이는 측면(側面)”이란 무엇을 말할까 알쏭달쏭합니다. 더구나, 이 글월에 “-이 있다”를 붙이는 말투는 알맞거나 올바를까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경향이 있다”라든지 “그런 흐름이 있다”라든지 “그런 추세가 있다” 같은 말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나날이 이 같은 말투가 널리 퍼집니다.


  곰곰이 되새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난 그 사람한테 사랑이 있어요” 하고 말하면, 이 말투는 알맞다 할 수 있을까요. 뜻은 헤아릴 수 있을 텐데, 뜻은 헤아릴 수 있다 치더라도 이 같은 말투는 올바르다 할 만한가요. “그 시험 문제는 어려운 경향이 있어요” 하고 말할 때에, 이 말투는 알맞다 할 수 있나요. 뜻은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말투를 쓰는 일이 바르다 할 수 있나요.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쓰되, “역시 과해 보인다”처럼 끊어 말해야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한자말을 한 가지 다듬으면 “역시 지나쳐 보인다”처럼 말할 수 있고, 한자말 하나 더 다듬으면 “이 또한 지나쳐 보인다”처럼 말할 수 있어요.

 

 이 말투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 말투도 어딘가 얄궂다
 이 말투도 썩 좋지 않다
 이 말투도 부드럽지 않다
 …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는 “이번에는 그런 경향입니다”라든지 “이번에는 그렇습니다”처럼 말할 때에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흐름이 있어요”는 “우리 사회는 그런 흐름이에요”나 “우리 사회는 그렇게 흘러요”나 “우리 사회는 그러해요”처럼 말할 때에 올바르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회에 걸맞게 새로운 말투를 빚어서 쓸 수 있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사람들은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익히거나 살피지 않기에, 영어 번역투이든 일본 말투이든 한자말 버릇이든 이래저래 끼워맞추는지 모릅니다.


  이대로 죽 흐를는지 모릅니다. 책이고 인터넷이고 신문이고, 몽땅 한국말 결을 잃고 한국글 무늬를 버릴는지 모릅니다.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며 한국말 빛깔을 살찌우는 길을 한국사람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4345.5.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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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써도 된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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