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6) 별리의 1 : 별리의 장소

 

전주는 내게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8월의 햇볕을 만나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16쪽

 

  “아픈 기억(記憶)을”은 “아픈 일을”이나 “아픈 지난날을”이나 “아픈 생각을”로 손볼 수 있습니다. ‘송별(送別)’은 “떠나는 사람을 이별하여 보냄”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송별하는 별리의 장소”처럼 쓴 보기글은 겹말입니다. ‘송별’이나 ‘별리’ 가운데 하나를 덜어야 올바릅니다. ‘장소(場所)’는 ‘곳’으로 다듬고, “8월의 햇볕을”은 “8월 햇볕을”로 다듬으며, “새로운 시작(始作)의 장소이기도”는 “새로운 곳이기도”나 “새롭게 길을 나서는 곳이기도”로 다듬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작’은 어떤 일을 처음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니 ‘새롭다’와 같은 뜻이에요. ‘시작’을 덜어 “새로운 곳”처럼 적으면 단출해요.


  보기글을 보면 ‘별리’라는 낱말에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낱말이 아니기에 한글로만 적으면 못 알아볼 사람이 많겠지요. 그런데, 묶음표에 한자를 넣는들 잘 알아볼 만할까요. 한글로 적어도 알아보기 어렵다면, 한자를 밝히거나 알려도 알아보기 어려워요.


  국어사전에서 ‘별리’를 찾아보면 “= 이별(離別)”이라고 풀이합니다. 곧, 앞뒤만 바뀐 같은 낱말이에요. ‘이별(離別)’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 적자면 ‘헤어지다’인 셈입니다.

 

 아픈 기억을 송별하는 별리(離別)의 장소이면서
→ 아픈 생각을 떠나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일을 훌훌 털어 보내는 곳이면서
→ 아픈 지난날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

 

  “이별의 인사”가 아닌 “헤어지는 인사”입니다. “이별의 눈물”이 아닌 “헤어지는 눈물”입니다. 굳이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이별하는 인사”나 “이별하는 눈물”처럼 ‘-하는’을 붙여야 올발라요. 그러나, 한국말 ‘헤어지다’가 있는데, 왜 ‘이별’이나 ‘별리’ 같은 바깥말을 들여와서 써야 하나 궁금해요. ‘헤어지다’와 ‘떨어지다’와 ‘멀어지다’와 ‘갈리다’를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쓸 수 있는 마음이 되기를 빌어요. (4345.9.26.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전주는 내게 아픈 생각과 헤어지는 곳이면서, 8월 햇볕을 만나며 새롭게 길을 걷는 곳이기도 하였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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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676) 코드(code) 1

 

  언제부터인가 유행말처럼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대통령이 장관이나 여러 기관장을 뽑을 때에 “코드 인사”를 한다고도 말합니다. 참말 ‘코드’가 무엇이기에 여러 곳에 이 영어가 쓰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설마 싶어 국어사전부터 뒤적이는데, 뜻밖에 국어사전에 영어 ‘코드(code)’가 “(1) 어떤 사회나 계급, 직업 따위에서의 규약이나 관례 (2) 상사(商社)가 국제 전보에서 정하여 두고 쓰는 약호나 기호 (3) 정보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 체계. 데이터 코드, 기능 코드, 오류를 검사하기 위한 검사 코드 따위가 있다”처럼 세 가지 말풀이를 달고 실립니다. 영어사전에서 다시 ‘code’를 찾아보면 “(1) 암호, 부호 (2) = dialling code (3) 프로그램 데이터 코드 (4) (사회적) 관례 (5) (조직·국가의) 법규”라고 풀이합니다.


  이래저래 따지지만, “코드가 맞는 사람”이나 “코드 인사”라고 하는 ‘코드’하고 걸맞는 말뜻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래저래 따지자면, “기호(嗜好)가 맞는 사람”이 “코드가 맞는 사람”일 텐데, 영어 ‘code’는 ‘記號’이지 ‘嗜好’는 아니에요.

 

 대통령과 생각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말이 안 맞다
 대통령과 느낌이 안 맞다
 대통령과 마음이 안 맞다

 

  “뜻이 맞다”거나 “죽이 맞다”고 할 때에 비로소 ‘코드’하고 어울리는 말마디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어를 쓰자면 올바로 쓸 일이에요. 굳이 영어 아니어도 될 말마디이니, 알맞고 바르게 한국말을 살피면 좋겠어요. (4336.7.1.불./4345.9.25.불.ㅎㄲㅅㄱ)

 

..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7) 코드(code) 2

 

허균과 허난설헌, 우리 시대에도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신영복-변방을 찾아서》(돌베개,2012) 51쪽

 

 “우리 시대(時代)에도”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오늘날에도”나 “요즈음에도”로 손볼 수 있어요. ‘계속(繼續)’은 ‘꾸준히’나 ‘한결같이’로 손질하고, ‘호출(呼出)해야’는 ‘불러야’나 ‘모셔야’나 ‘생각해야’나 ‘끌어들여야’로 손질해 줍니다.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인가요
→ 꾸준히 불러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 한결같이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인가요
→ 다시 되뇌어야 하는 꼭지점인가요
 …

 

  사람을 가리키니 ‘사람’이라 하면 됩니다. 사람들과 얽힌 이야기를 살핀다면 ‘이야기’라 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둘러싼 무언가를 밝히거나 따진다면 ‘대목’이나 ‘꼭지점’ 같은 낱말을 들면 됩니다. 말투를 바꾸어, “오늘날에도 생각해야 하는가요”라든지 “요즈음에도 이야기할 값어치가 있는가요”처럼 말할 수 있겠지요. (4345.9.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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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허난설헌, 오늘날에도 꾸준히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인가요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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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53) '-적' 안 쓴 보기 61 : 착하다 ← 양심적

 

양심으로 살아가며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 자신이 착할 수 없다는 불신감 때문에 사람들은 악을 저지르며 일종의 자기만족에 빠져듭니다
《루이제 린저/윤시원 옮김-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145, 154쪽

 

 ‘양심적(良心的)’은 “양심을 올바로 지닌”을 뜻한다 하고,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을 뜻한다 합니다. ‘선(善)’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을 뜻한다 해요. 말뜻을 헤아리면 ‘양심을 올바로 지닌’이란 ‘착한 마음을 올바로 지닌’을 가리키는 셈이요, 보기글에 나오는 ‘양심으로 살아가며’란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며’나 ‘착하게 살아가며’를 가리킨다고 하겠어요.


  보기글을 보면 앞쪽에는 “양심으로 살아가며”라 나오고, 뒤쪽에는 “착할 수 없다는”이라 나옵니다. 곰곰이 살피면, 보기글 앞쪽처럼 뒤쪽에서도 “자신이 양심적일 수 없다는”이라 적을 만해요.
  앞과 뒤 모두 ‘착한 마음’이나 ‘착하다’와 같은 말마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두 가지 말을 섞어서 쓰더라도, 두 가지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뜻인 말이요,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한국말인 줄 깨달아야지 싶어요.

 

 양심으로 살아가며 (x) ― 착하게 살아가며 (o)
 착할 수 없다는 (o) ― 양심적일 수 없다는 (x)

 

  보기글에는 ‘객관적(客觀的)’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을 가리킵니다. 곧, 다른 사람 눈길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눈길로 바라본다거나 고른 눈길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은 “자기의 견해나 관점을 기초로 하는”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내 눈길로 바라본다는 소리예요. 오늘날은 으레 ‘객관적-주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한결 또렷하면서 쉽게 쓸 수는 없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나름대로 풀어낼 한국말을 생각하기란 어려울까 궁금해요. 이 글월에서는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이야기를 다루니, ‘객관적’을 ‘올바르게’나 ‘올바로’나 ‘바르게’나 ‘슬기롭게’로 손질할 만하리라 느껴요.


  “진실(眞實)과 거짓”은 “참과 거짓”으로 다듬고, ‘구별(區別)할’은 ‘가릴’이나 ‘살필’로 다듬습니다. “자신(自身)이 착할 수 없다는 불신감(不信感) 때문에”는 “스스로 착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나 “스스로 착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못 믿기 때문에”로 손보고, “악(惡)을 저지르며”는 “나쁜 짓을 저지르며”나 “못된 짓을 저지르며”로 손보며, “일종(一種)의 자기만족(自己滿足)에 빠져듭니다”는 “이른바 자기만족에 빠져듭니다”나 “이를테면 스스로를 괜찮다고 달랩니다”로 손봅니다. (4345.9.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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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가며 올바로 참과 거짓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 스스로 착할 수 없다고 못미더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쁜 짓을 저지르며 스스로를 괜찮다고 달랩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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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없애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3) 우리 나라의 1 :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

 

갑오경장 이후 근 100년 동안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려고 그처럼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서 중국글인 한문과 한자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이오덕-우리 문장 쓰기》(한길사,1992) 45쪽

 

  “갑오경장 이후(以後) 근(近) 100년(年) 동안”은 “갑오경장 뒤로 거의 백 해 동안”이나 “갑오경장부터 얼추 백 해 동안”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以後)을 하면서”는 “뼈를 깎듯 애쓰면서”나 “뼈를 깎듯 힘쓰면서”로 다듬어 봅니다.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
→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이라 할 때하고 “우리 나라의 여러 학자들”이라 할 때에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 나라 축구 선수들”이나 “우리 나라의 축구 선수들”이라 할 때에는 서로 어떻게 다르다 할까요. “이것은 어느 나라 물건인가요?” 하고 물으면 “우리 나라 물건입니다.” 하고 말할 텐데, 누군가는 “우리 나라의 물건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이에 토씨 ‘-의’를 왜 붙일까 궁금합니다. 사이에 ‘-의’를 넣어야 글이나 말이 부드럽게 이어질는지 궁금합니다. 사이에 ‘-의’를 안 넣으면 허전하다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4339.5.19.쇠./4345.9.18.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갑오경장부터 얼추 100해 동안 우리 나라 여러 학자들이 우리 말과 글을 살리려고 그처럼 뼈를 깎듯 애쓰면서 중국글인 한문과 한자말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5) 우리 나라의 2 :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

 

우리 나라의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전,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이면 으레 당했을, 우리의 하늘 빛깔을 극찬해 주길 바라며 퍼붓던 촌스러운 질문 공세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박완서-잃어버린 여행가방》(실천문학사,2005) 134쪽

 

  ‘소위(所謂)’는 ‘이른바’로 다듬고, “있기 전(前)”은 “있기 앞서”로 다듬습니다. ‘방문(訪問)하는’은 ‘찾아오는’으로 손보고, ‘외국인(-人)’은 ‘외국사람’으로 손보며, “으레 당(當)했을”은 “으레 받았을”이나 “으레 들었을”로 손봅니다. “우리의 하늘 빛깔을”은 “우리 하늘 빛깔을”로 손질하고, ‘극찬(極讚)해’는 ‘매우 칭찬해’나 ‘아낌없이 손뼉쳐’나 ‘더없이 사랑해’나 ‘아주 좋아해’로 손질할 수 있어요. “촌(村)스러운 질문(質問) 공세(攻勢)를”은 “어리숙한 소나기 물음을”이나 “바보스러운 물음 꾸러미를”로 고쳐쓰고, “기억(記憶)하고 있다”는 “떠올린다”로 고쳐쓰면 한결 나아요.

 

 우리 나라의 소위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전
→ 우리 나라에 이른바 경제성장이라는 게 있기 앞서

 

  이 자리에서는 토씨를 잘못 넣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국립공원” 같은 자리에서는 군더더기로 붙여서 잘못이고, 이 자리에서는 토씨 ‘-에’를 넣어야 알맞을 텐데, ‘-의’를 넣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살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345.9.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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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 이른바 경제성장이라고 있기 앞서,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사람이면 으레 들었을, 우리 하늘 빛깔을 더없이 사랑해 주길 바라며 소나기처럼 퍼붓던 어리숙한 물음들을 우리는 아직도 떠올린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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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169 : 도촬(盜撮)


핸드폰 사진의 좋은 점은 문자를 보내는 척하면서 도촬盜撮이 가능하다는 것
《안수연-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 15쪽

 


  “핸드폰(hand phone) 사진의 좋은 점(點)”은 “휴대전화 사진이 좋은 대목”으로 손볼 수 있는데, ‘휴대전화(携帶電話)’라는 낱말도 ‘손전화’로 손볼 수 있어요. ‘문자(文字)’는 ‘쪽글’로 손질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핸드폰’이나 ‘문자’ 같은 낱말은 아주 널리 쓰입니다. 이 낱말을 애써 손질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분은 아주 적어요. “가능(可能)하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나 “할 수 있다는 대목”으로 다듬어 줍니다.


  ‘도촬(盜撮)’이라는 한자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제법 쓰입니다. ‘도둑 촬영’을 줄인 한자말일 텐데,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소리요,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찍히는 사람이 모르게 찍는다는 뜻이에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몰래 찍는다는 얘기입니다.

 

 도촬盜撮이 가능하다
→ 도둑찍기를 할 수 있다
→ 몰래찍기를 할 수 있다
→ 몰래 찍을 수 있다
→ 슬며시 찍을 수 있다
 …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盜撮’ 같은 낱말을 빚습니다.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어떤 낱말을 빚으면 좋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몰래 찍는 일을 가리키는 ‘도촬’인 만큼 ‘몰래찍기’라는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몰래찍기’라는 낱말을 생각한다면, ‘몰래-’를 앞가지로 삼아, ‘몰래놀기·몰래사랑·몰래하기·몰래선물·몰래편지’ 같은 여러 가지 낱말을 빚을 수 있어요. 삶에 따라 새 낱말이 태어나고, 삶을 누리는 모습에 따라 새 낱말을 빚습니다.


  그리고, “슬며시 찍다”라 풀거나 “슬그머니 찍다”라 풀어도 돼요. “살며시 찍다”나 “살그머니 찍다”라 풀어도 좋아요. “살짝 찍다”라든지 “슬쩍 찍다”라 해도 되고요. (4345.9.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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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 사진이 좋은 대목은 쪽글을 보내는 척하면서 몰래 찍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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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11 21:53   좋아요 0 | URL
손전화라고 쓰시는 분은 본적 있는데 '쪽글'은 지금 처음 봅니다. 좋으네요. 기억했다가 저도 그렇게 써야겠어요.
지금 막 보내주신 책 받았답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볼께요. 남편에게 사진 보여주며 얘가 사름벼리고 얘가 산들보라고...하면서 알려주었더니 다 공부하는 사진이라고 하네요? ㅋㅋ 그러고보니 이번 책에는 그렇더라고요.
색이름을 빛이름으로 아주 예쁘게 바꿔놓으셨더군요. 귤빛, 감빛...

숲노래 2012-09-12 01:35   좋아요 0 | URL
'쪽지'라는 낱말은... 알고 보면 말이 안 되거든요 ^^;;;
'쪽종이'가 맞는 말인데,
'문자' 보내는 일을 '쪽지' 보낸다고 하면... 참 거시기해요...

아마 '메시지'를 '쪽지'로 어설피 번역한 꼴일 텐데,
옳게 말하면 '짧은 글'인 '쪽글'로 적어야 맞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