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빛살 (사진책도서관 2015.10.2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집안을 치우면서 작은 책꽂이 하나를 들여야겠기에, 도서관에 가서 안 쓰는 작은 책꽂이를 들고 오기로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저녁에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겨우 도서관 나들이를 한다. 해가 한창 내리쬘 무렵 도서관 나들이를 하면 한결 나았을 테지만, 저녁에 도서관 나들이를 하니, 또 이대로 재미있다. 저녁 빛살도 무척 곱다.


  책순이는 만화책 하나를 보고 싶다 말한다. 그렇지만 가방을 안 챙겼네. 그렇지? 내가 가져온 천가방을 책순이한테 건넨다. 자, 다음에는 네 가방을 잊지 마렴. 네가 스스로 가방을 챙기고 책도 담아야지?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사진을 몇 장 찍는데, 빛이 많이 모자라서 까망하양으로 바꿀까 하다가 그냥 무지개빛으로 찍어 본다. 두 가지 모두 저녁 빛살에는 그윽한 숨결이 흐르는 사진이 될 텐데, 어둑어둑한 기운이 짙은 이런 사진도 퍽 살갑다. 그러고 보면, 온누리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숨결과 기운으로 아름답고, 온누리 모든 책은 저마다 다른 넋과 이야기로 사랑스럽지.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방을 메자 (사진책도서관 2015.10.23.)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여덟 살 큰아이한테는 ‘가방 메기’가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다. 이제껏 가방을 메고 다닌 일이 매우 드물다. 바깥마실을 멀리 다닐 적에 드문드문 가방을 멨으나, 큰아이는 홀가분하게 달리면서 뛰고 놀려고 할 적마다 가방을 아버지한테 맡겼다. 맨몸으로 폴짝폴짝 뛰면서 달리는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살았다.


  문득 생각해 보면, ‘무거운 가방’은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구나 싶다. 나도 어릴 적에 ‘가방을 벗어야’ 놀았지, 가방을 멘 채 놀지 못했다. 가방을 멘 채 노는 아이들은 ‘놀이와 공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셈이다. 놀고는 싶으나 집이랑 학교에서 받는 짐 때문에 차마 가방을 벗지 못하고 뛰다가 땀으로 흠뻑 젖고, 아무래도 성가시니까 끝내 가방을 휙 집어던진다.


  가방이 없어야 논다. 가방을 메면 놀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공부는 아예 안 하고 놀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배울 때는 배우되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 나라 아이들을 보면 ‘하루 가운데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하루 가운데 홀가분하게 놀 틈이 얼마 없다. 게다가 아이들이 놀려고 하더라도 넉넉한 빈터가 없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무슨 놀이를 할까?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무슨 놀이를 하나? 흙바닥이 아니라서 돌멩이로 금을 그리면서 온갖 놀이를 할 수도 없는 인조잔디 운동장이다. 인조잔디 운동장에서는 넘어지면 더 크게 다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를 더 헤아려 본다. 아이들은 그저 마냥 놀아도 된다. 아이들하고 함께 살면서 지켜보니, 이 아이들은 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열 살 나이가 될 때에는 스무 살 나이까지 실컷 놀아도 된다고 느낄 수 있고, 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까지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느낄 만하리라 본다.


  어떻게 놀기만 하면서 사느냐고 물을 분이 있다면, 아이들은 차츰 철이 들면서 ‘놀이와 일과 배움’을 스스로 알맞게 갈무리하는 슬기와 기운이 늘어난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고 스스로 일하며 스스로 배운다. 굳이 옆에서 억지로 ‘나이에 맞추어 밀어붙여야’ 하지 않는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른 나이에 다 다르면서 저마다 씩씩하게 제 일이랑 놀이랑 배움을 찾고 누린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거나 물을 적에 곧바로 한손을 내밀어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배울 수 있도록 기다리거나 지켜보면 된다.


  요새는 도서관에 오갈 적에 큰아이더러 가방을 메라고 이른다. 다만, 억지로 시키지는 않고 틈틈이 말을 한다. 큰아이가 깜빡 잊고 가방을 안 메면? 그러면 나는 큰아이 책이나 장난감을 하나도 안 들어 준다.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가고, 또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져와서 보고픈 책이 있다’면, 또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으로 갖다 놓고 싶다’면, 이제 여덟 살 큰아이는 스스로 가방을 메고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느낀다. 다만, 애써 시키지는 않고 곧잘 이야기를 들려준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Grace 2015-10-2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자연이다˝란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어요.
이런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하는 일을
이들은 어찌하여 거부하는 것일까? 그 첫 번째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아이들과는 의논이 되었던 것일까? 어느날, 문득,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진정 본인들의 결정에 아이들의 행복이 있다고 확신하는가?...등등

<‘놀이와 일과 배움’을 스스로 알맞게 갈무리하는 슬기와 기운이 늘어난다>라는
말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듯 합니다. ˝그렇구나...˝라고 끄덕이게 되네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닌데, 참 대단하십니다. 그런 확신과 결단이
부러워요.^^

숲노래 2015-10-26 13:47   좋아요 0 | URL
국민 대부분이 한대서 모든 사람이 꼭 해야 한다면..
그건 바로 독재라고 느껴요.

국민 대부분이 텔레비전을 집에 들이고 연속극이나 온갖 방송을 본대서
우리 아이들도 보아야 한다면
그 또한 독재일 테지요.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면서 사랑스레 자라서
아름다운 꿈을 스스로 짓기를 바라기에
`오직 도시바라기 입시교육 직업교육`만 하는
제도권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 뜻이 하나도 없답니다.
아이들은 참말 아이들 스스로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요 ^^
 


 도서관 한쪽 (사진책도서관 2015.10.2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 이야기책 〈함께살기〉 15호를 어제 비로소 다 부쳤다. 얼추 열 며칠 만에 다 부친 셈이다. 지난주 목요일에 서울마실을 하느라 며칠 동안 우체국을 다녀올 수 없기도 했지만, 한 번 바깥일을 하면 기운을 많이 쓰느라 며칠 동안 우체국 나들이는 엄두를 못 내기도 했다. 도서관 이야기책을 그야말로 느릿느릿 내면서, 느릿느릿 낸 책도 느릿느릿 보내는 셈이다.


  그제부터 온 집안 치우기를 한다. 도서관도 크게 치우기를 해야 할 텐데, 먼저 집부터 치운다. 집에 쌓아 두고 오래도록 거들떠보지 못하는 디브이디하고 책하고 자료를 도서관으로 옮기기로 한다. 이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옮기더라도 한쪽에 곱게 놓을 수 있어야 할 테지. 두 아이가 언제나 신나게 빚는 멋진 그림도 종이상자에 차곡차곡 담아서 곰팡이가 안 슬 만한 자리에 제대로 두어야겠고. 두 아이한테 작아서 더 못 꿰는 신도 자루에 담아서 도서관으로 옮긴다.


  등허리가 결려서 드러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집이며 도서관을 치우는 동안 두 아이는 함께 흙을 모아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큰아이는 책순이로 바뀌고, 작은아이는 한결같이 개구진 시골놀이돌이로 지낸다. 작은아이는 마당에서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놀고, 도서관에서 맨발로 온갖 것을 기차나 자동차나 비행기로 삼아서 신나게 달린다. 오늘은 칠판지우개 둘을 바닥에 대고 굴리면서 기차놀이를 한다.


  큰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집이나 도서관에 아름다운 책을 잘 건사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아이가 개구지게 노는 모습을 보면 집이든 도서관이든 너른 마당을 신나게 누릴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우리 숲을 짙푸르게 돌볼 수 있으면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되겠지.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을바람 (사진책도서관 2015.10.17.)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가을바람이 분다. 가을볕이 내리쬔다. 한가위 언저리에는 제법 더위가 누그러지기도 하다가, 또 덥기도 하다가, 살짝 선선하더니, 요즈음은 또 낮에 꽤 덥다고 느낄 만큼 볕이 세다. 십일월을 앞두고 뜨끈뜨끈한 볕은 나락이 잘 익도록 하고, 가실을 마친 나락이 잘 마르도록 한다. 앞으로 이 가을볕은 십일월이 되도록 이어지리라 본다.


  바람이 한동안 선선할 무렵 큰아이는 늘 물었다. “이제 가을이야?”라든지 “이제 겨울이야?”라든지 “가을인데 왜 이렇게 더워?”라든지 “겨울은 언제 와?” 같은 말을 묻는다. 철 따라 고이 흐르는 날씨라면 이맘때에 어떻고 곧 어찌어찌 달라진다고 말을 할 텐데, 해마다 날씨가 자꾸 바뀌기 때문에 아이한테 섣불리 날씨랑 철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우리 집은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살면서도 아직 큰아이와 작은아이한테 ‘몽실몽실 멋진 뭉게구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지개는 겨우 한 차례 보여주었으나, 소나기도 뭉게구름도 아이한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별만큼은 아이한테 넉넉히 보여준다. 요즈음은 밤마다 “저기 봐. 우리 집은 마당이나 뒤꼍에서도 언제나 미리내를 볼 수 있지.” 다만, 요즈음 보는 미리내는 스무 해나 마흔 해 앞서 볼 수 있던 미리내하고는 댈 수 없다. 북극이나 남극 같은 곳에서 볼 미리내하고도 댈 수 없으리라.


  가을바람을 쐰다. 창문을 열어 도서관에 바람이 흐르도록 한다. 큰아이는 만화책을 보고, 작은아이는 작은 그림책으로 쌓기놀이를 한다. 조용하면서 포근한 낮이 지나간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라도닷컴> 2015년 10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

시골도서관 풀내음
― 스스로 자라는 나무처럼


  나무는 해마다 자라며 줄기와 가지가 굵습니다. 차츰 커지는 품으로 그늘을 한결 넓게 베풉니다. 나무가 크는 만큼 드센 바람을 막고, 멧새는 더 많이 찾아듭니다.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보면, 능금꽃이 하얗게 핀 흙길을 마차가 지나가요. 능금나무는 키가 매우 커서 능금나무가 우거진 사잇길을 마차가 넉넉하게 달립니다. 능금 따는 철에는 누구나 사다리를 능금나무에 대고 올라가서 가지가 다치지 않도록 열매만 알뜰히 땁니다.

  한국에 있는 능금밭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무럭무럭 자라는 능금나무 가지를 휘거나 꺾지 않는 능금밭은 얼마나 될까요? 나무가 자라는 결에 맞추어 사다리를 받치고 올라가서 열매를 따려는 능금밭 일꾼은 몇이나 될까요?

  무화과밭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해마다 가지를 뭉텅뭉텅 쳐야 더 굵은 알이 맺는다고 하면서 굵은 쇠줄로 나무를 땅바닥에 바싹 닿도록 꽁꽁 묶기도 합니다. 그리 높지 않은 비닐집에 무화과나무를 앉은뱅이처럼 가두고 이리저리 묶고 당겨서 더 자라지 못하도록 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옥 같은 무화과밭이나 능금밭에 ‘체험학습’을 하러 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한 그루가 어디에서 어떻게 자라야 비로소 ‘나무’인 줄 모릅니다. 나무에서 얻는 열매에 담긴 ‘성분과 효능’만 따질 뿐, 시달리거나 들볶인 나무에서 맺는 열매가 참말 사람한테도 이바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 집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나 감나무나 모과나무는 그저 그대로 자랍니다. 따로 가지치기를 안 합니다. 우리 집 나무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지가 굵습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무화과알이 더 많이 맺는데,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걸상이나 사다리를 받쳐서 열매를 땁니다. 아이들이 손수 열매를 따고 싶다고 하면 걸상을 받쳐서 올라가도록 합니다.

  우리 집은 아직 ‘땅갈이’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집은 꽤 오래 빈집이었지만, 무척 오랫동안 쓰레기가 파묻힌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파낸 뒤 이 땅을 여러 해 묵힙니다. 따로 아무것도 안 심고 갈지도 않으면서 가끔 풀을 베어 눕혀 주기만 합니다. 그런데 갈지 않았어도 땅이 제법 폭신합니다.

  일본에서 마흔 해 즈음 자연농을 했다는 가와구치 요시카즈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눌민,2015)이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일본 시골지기는 “논두렁길은 풀뿌리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풀을 없애버리면 풀뿌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무너져버립니다. 땅을 갈지 않으면 흙은 부드러워진 곳과 만나게 되므로 ‘아, 역시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71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풀들과 작은 동물이 동시에 살아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반년 안에 죽고 그 시체가 다음 생명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봄에 싹을 낸 풀이 자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어미가 죽으면, 지금까지 없었던 다른 성분을 만들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79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문득 생각해 보아도 이 나라 거의 모든 논밭은 땅이 딱딱합니다. 밭일을 하는 분들은 해마다 기계를 써서 밭을 갈아엎습니다. 기계가 아니고는 밭일을 못하는데 밭은 해마다 더 딱딱해지지 싶어요. 사막처럼 된다고 할까요. 논도 물이 빠지면 이내 딱딱해집니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아무 풀도 돋지 않으면서 겨우내 딱딱해져요. 봄이 되어 딱딱한 논은 들풀이 돋으면 이때부터 흙이 보들보들 풀립니다. 이와 달리 어느 누구도 비료나 농약조차 안 주는 숲은 흙이 늘 아주 폭신합니다. 아무도 숲을 갈지 않아요. 아무도 숲에 기계를 들이밀지 않아요. 그러나 ‘땅갈이’를 하지 않는 숲은 흙이 까무잡잡할 뿐 아니라 폭신합니다. 게다가 어떤 나무이든 숲에서 아주 잘 자라요. 우리 집에서도 땅갈이를 안 하고 풀만 가끔 벨 뿐 그대로 두는 자리는 흙이 까무잡잡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나고 폭신합니다. 우리 집에서 묵히는 땅에 있는 흙은 어떤 나무이든 잘 자라도록 할 만큼 기름지다고 느낍니다.

  아이들하고 우리 집 무화과를 따고 감을 따면서 생각합니다. 나무가 제 결대로 자라면서 해마다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생각합니다. 기계가 들어가고 비료와 농약을 맞아야 하는 땅은 까무잡잡한 기운이 사라지면서 누렇거나 허옇게 바뀝니다. 비닐로 덮어씌우면 흙은 더욱 누르스름해지다가 허연 기운이 퍼집니다. 햇볕을 쬐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갖은 들풀이 자라는 흙은 언제나 까무잡잡하면서 폭신하고 구수합니다.

  나무는 비닐집에서 자랄 수 없습니다. 가지치기에 시달리는 나무는 제대로 못 자라면서 일찍 죽습니다. 들을 숲처럼 가꾸지 않는다면 남새도 나무도 모두 들볶이다가 일찌감치 죽을 테고,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산다면 사람도 모두 끙끙 앓다가 제 결을 잃겠구나 싶습니다.

  해마다 자라는 나무를 이러한 결대로 바라볼 수 없다면, 사람은 무엇을 얻거나 배우거나 누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무뿐 아니라 아이와 어른도 해마다 꾸준히 자랄 텐데, 슬기롭게 자라면서 아름답게 철드는 사람이 아니라 ‘가지치기’를 받아야 하는 나무처럼 ‘틀에 박힌 굴레’에 갇힌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만할까요?

  화학농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먹이는데, 비닐집에서 하거나 나무를 들볶는 유기농이라면 화학농보다 무엇이 얼마나 나을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은 시골스러우면서 숲내음이 날 때에 비로소 시골이요, 시골밥은 숲내음이 퍼지는 곡식이랑 남새랑 열매일 때에 싱그러운 숨결로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하늘숨 마신 무화과알을 날마다 몇 알씩 따서 아이들하고 노래하면서 먹습니다. 나무 열매를 얻을 적마다 나무한테 고맙다고 절을 하며 나뭇줄기를 어루만집니다. 4348.9.1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