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2.10. 자르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모든 말은 어느 한 곳에서만 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딱 한 군데에서만 쓰려고 지은 말이지만, 삶을 잇는 사이 이곳에도 쓸 만하고 저곳에도 어울린다고 여겨, 차츰 쓰임새를 넓힙니다. ‘각하·폐하·전하’는 대단히 낡았을 뿐 아니라, 사람한테 위아래를 매기는 매우 몹쓸 말씨입니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 각하”란 말씨가 걷히지 않아요. 나라지기란 나라일을 하는 심부름꾼이어야 할 테지만, 심부름이 아닌 힘으로 누르는 짓을 떨치지 않는 터라, ‘바른소리’를 하는 이들은 스스로 낮추면서 “대통령 각하”라든지 “시장님 귀하”나 “군수님 귀하” 같은 말씨를 못 버립니다.


  아이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어머님·아버님’이라 안 씁니다. 이웃사람을 마주할 적에 높이려고 비로소 ‘어머님·아버님’이란 말을 얌전히 써요. 우리가 살가이 어울린다면 “아줌마, 잘 잤어?”나 “아저씨, 오늘 즐거워?” 하고 묻겠지요. “엄마, 오늘 뭐 해?”나 “아빠, 이제 뭐 먹을까?” 하고 묻듯이 말이지요. 버릇없이 굴지 말고 고분고분 굴어야 한다지만, 사랑이란 자리와 눈길로 마주한다면, 우리는 서로 몸나이 아닌 마음빛을 느끼면서 읽기 마련입니다. 사랑이란 마음빛으로 어울릴 적에는 ‘말놓기(반말)’가 아닌 스스럼없이 흐르는 물살이나 빛살처럼 포근히 토닥일 줄 아는 말빛이 되어요.


  낡은 말씨 ‘각하’를 어떻게 치우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니 ‘閣下’ 말고도 ‘却下’가 있습니다. ‘각하(却下)’ 옆에는 ‘기각(棄却)’이 있네요. 이런 말을 굳이 써야 할까요? 이런 말을 안 쓰면 삶길(법도)을 여미지 못할까요? ‘물리다·물리치다’나 ‘끝내다·자르다’나 ‘손사래·내치다’를 어느 곳에서든 즐겁고 아늑히 쓸 마음을 언제쯤 열까요?


  이 말씨 저 말씨를 추스르다가 ‘자르다’란 우리말이 어떤 품인가를 하나하나 짚는데, 짚으면 짚을수록 쓰임새가 더없이 넓습니다. ‘절단’이나 ‘컷’뿐 아니라 ‘정리·결론’에 ‘낙마·감점’을 지나 ‘사절·사양·거부·비토’를 거치고 ‘반대·금기·터부’에다가 ‘불신·기피’랑 ‘퇴짜·감봉·정리해고’까지 온갖 곳에 ‘자르다’를 수수하면서 알맞게 쓸 만해요. 우리 스스로 이처럼 곳곳에 쓰지만, 막상 낱말책에는 이 여러 쓰임새가 아직 못 담길 뿐더러, 우리 스스로도 온갖 곳에 알맞게 쓸 만한 줄 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낡은 굴레를 잘라야 새싹이 돋습니다. 케케묵은 사슬을 쳐야 나무가 자라요. 어제는 곁님하고 한참 삶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다가 ‘꽈배기’가 ‘나선’이란 한자말을 담아내는 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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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1.2.7. 일을 안 해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대학교를 마치지 않았으면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니 여깁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없으면 이런 곳 저런 데에서 가르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갑다 합니다. 예술활동 자격을 따로 받아야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사람으로 친다고 합니다. 조용히 입을 다뭅니다. 대학교나 연구소나 공공기관이나 단체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면, 제가 비록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여럿 써내었더라도 ‘말꽃을 짓거나 엮는 이(사전편찬자)’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대학교나 연구소나 공공기관이나 단체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에, 열매(결과물)가 있더라도 앞으로 새로 우리말꽃을 쓰도록 도울 수 없다고 합니다. 알겠다고 대꾸하고서 돌아섭니다.


  나라에서 본다면 저는 ‘일을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보여줄(증명)’ 길이 없다더군요. 그런 눈이니까 집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가르치고 사랑하는 숱한 어버이나 살림꾼도 ‘일을 안 하는’ 사람으로 치는 나라흐름일 테지요.


  그들은 ‘가사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만, 막상 ‘가사노동’을 하는 어버이나 살림꾼을 ‘일꾼·일하는 사람’으로 제대로 받아들인 적이 있을까요? 땅을 부치더라도 농협에 내놓아 팔지 않으면 ‘일을 안 한’ 셈이라지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 이른바 ‘자급자족’도 ‘일을 안 한’ 셈이라지요.


  이러구러 저는 이 나라에서는 ‘일을 안 하는’ 사람 무리에 들어갑니다. 저도 딱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밝힐 종이쪽(증명서)을 꾸미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제 일감을 굽어살피든 말든, 저는 언제나 아이들하고 오늘 이곳에서 즐거이 노래하는 살림짓기랑 말꽃짓기랑 삶짓기를 하면서 글 한 자락을 씁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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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1.2.4. 철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한자말 ‘불찰’이 어떤 결인가를 살피며 손질하다가 ‘졸속’이란 한자말을 나란히 손질하고, 우리말 ‘돌머리’를 어디까지 쓰는가를 두루 짚노라니 어느새 ‘바보·멍청하다·엉성하다·어리숙하다’로 줄줄이 잇닿습니다. 이러면서 ‘환경영향평가’란 이름을 ‘둘레보기’나 ‘숲살피기’나 ‘마을보기’로 손볼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적잖은 어른은 ‘사회에서 쓰는 말’이라고 하면서 어린이도 이런 말을 그대로 써야 하는 듯 여기곤 합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회에서 쓰는 말’을 그대로 배워야 한다고도 여기지요.


  그런데 ‘사회’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을 가리킵니다. 사람들 살림터에서 쓸 말이라면, 우리 삶자리에서 나눌 말이라면, 어른끼리 알아듣거나 그냥그냥 이어온 말씨가 아닌, 앞으로 새롭게 살아갈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생각을 살찌우도록 북돋울 말이어야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랑을 참되게 다스리고 가꾸고 스스로 길어올리도록 이끌 말을 쓰고 이름을 붙일 노릇이지 싶습니다.


  무엇을 모르니까 ‘모르다’라 합니다. 모르는 척하기에 ‘모르쇠’라 합니다. 이런 사람을 아울러 ‘모름이’나 ‘모름쟁이·모름꾸러기’처럼 새말을 지어서 쓸 만합니다. 때로는 ‘모름깨비·모름꾼’처럼 쓸 수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때랑 곳을 헤아려 결을 넓히는 말을 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낱말책에 실린 낱말을 외우거나 캐내기보다는 누구나 스스럼없이 새롭게 말빛을 살찌우도록 가만히 이끌고 가르쳐야지 싶어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사회 지식·사회 정보’를 집어넣으려 하기보다는, ‘삶을 가꾸는 길·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즐거이 맞아들이도록 함께할 적에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여러 낱말을 갈무리하는 새벽을 열고 낮을 보내고 밤을 지새우다가 돌아봅니다. 더 낫거나 좋은 말이 아닌, 즐겁게 어깨동무할 말을 찾아야 그야말로 즐겁겠지요. 사랑스레 손잡을 말을 살펴야 참으로 사랑스럽겠지요. 말 한 마디에 숲을 담고, 말 두 마디에 꿈을 얹고, 말 석 마디에 생각을 빛내는 슬기로운 오늘을 놓는 어른으로 살아야 아이들이 곁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리라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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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숲하루 2021.1.31. 동화쓰기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저더러 동화를 써 보라는 말을 2008년부터 들었습니다. 저더러 동화를 쓰라고 말씀한 둘레 분들은 “그동안 책방 이야기는 참 많이 썼으니, 책방 이야기는 이제 그만 쓰고, 동화를 쓰면 좋겠는데.” 했지요. 저는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동화를 쓰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책집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저 빼고는 아무도 안 보이는걸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책집 이야기를 안 쓰고 동화를 쓰겠어요? 책집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에는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대꾸했습니다.


  그 뒤로 열세 해가 흐르는 동안 마을책집은 무시무시한 고빗사위를 지나갔습니다. 이 나라 모든 마을책집은 누리책집하고 큰책집에 잡아먹혀서 그대로 사라지겠다고 읊은 비평가랑 작가랑 기자가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을책집이란 밑힘과 밑싹을 믿었어요. 이 가시밭길을 지나면 틀림없이 새싹이 트리라 여겨 더 신나게 책집 이야기를 글로 쓰고 사진으로 담아 책으로까지 엮었습니다.


  2021년 1월 31일에서 2월 1일로 넘어서는 사이에 동화 한 자락을 마무리합니다. 아직 어디에도 보내지 않았지만 손바닥글만큼 짤막한 동화는 열 몇 자락을 써 두기는 했습니다. 이틀 사이라지만, 날밤을 새는 하루를 보내는 이틀 동안 마무리한 동화는 글종이로 100쪽 안팎입니다. 이 동화는 제가 살아가는 전남 고흥 동백마을 이웃 할아버지가 지난 열 해 동안 저한테 써 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글입니다. 지난 열 해 동안 저는 ‘글 좀 쓴다는 다른 분한테 다리를 놓아 주기’만 했는데, 이 이야기를 쓰려는 분이 없더군요. 고흥살이 열한 해 만에 동화를 쓴 셈입니다. 제가 쓴 첫 동화가 아니긴 하지만, 이 동화를 선보일 자리가 있을까 모르겠네요. 교통사고 탓에 1985년에 스물다섯 살 나이로 숨을 거둔 시골교사 이야기를 동화로 여미었습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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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2021.1.29. 사회적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치고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던 1994년 어귀에 ‘중·고등학교’하고 ‘대학교’란 이름을 비로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즈음 대학교란 곳에서 만난 윗내기는 “대학교란 열린배움터이지.” 하고 곧잘 말했습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 누구한테나 ‘열린’ 곳이라 했어요. 한자로 ‘대(大)’를 쓴 뜻은 ‘큰배움터’가 아닌 ‘열린배움터’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얘기를 스물 몇 해쯤 잊고 살다가 지난 2020년에 비로소 다시 떠올렸어요. 1994년 그즈음에는 허울만 ‘대학교·큰배움터·열림배움터’일 뿐, 마침종이로 금을 그으며, 배움터 사이에도 위아래를 가르고, 배움턱에 닿지 못한 수수한 사람 사이에도 금긋기를 일삼는 곳이 바로 ‘대학교’라고 느껴, 이런 곳은 ‘열린-’이든 ‘큰-’이란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저는 아쉽다는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이 그 열린배움터를 석 달 만에 그만두기로 했고, 푸른배움터를 마친 몸(고졸 학력)으로 즐겁게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오랜만에 옛자취를 떠올리며 ‘열린’이란 말씨를 헤아리다가 ‘사회·사회적’이란 일본 말씨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새로 찾았습니다. 1998년 언저리에는 ‘삶터’쯤으로 이 일본말을 풀어낼 만하다고 생각했고, 2002년 언저리에는 ‘살림’으로도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007년쯤에는 ‘마을’하고 ‘터’로도, 2010년쯤에는 ‘곳·데·자리·마당’으로도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뜻 보기로는 ‘사회·사회적’ 하나만 쓰면 다 될 일 아니냐고 할 텐데, 말을 쓰는 결이나 삶을 헤아린다면 사뭇 달라요. 우리는 한 낱말로만 여러 자리를 나타내지 못하거나 않아요. 우리는 여러 낱말로 여러 자리를 새롭게 나타내거나 그립니다. 그러니 꾸준하게 바깥말을 새로 들이지 않겠어요?


  이웃나라 일본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일본은 노벨문학상뿐 아니라 여러 ‘노벨 보람’을 두루 받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질그릇을 빚는 사람은 늘 찬밥꾸러기였으나, 일본으로 끌려간 질그릇님(도예가)은 크게 사랑받았어요. 요즈막에 한창 샅샅이 읽으며 맞아들인 ‘진창현’이란 분도, 이 나라에서는 꽃피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찬밥이었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고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스스로 생각하는 날개를 나라지기하고 벼슬아치가 싹뚝 꺾었고, 사람들 스스로도 살아남으려고 제 날개를 손수 꺾었습니다.


  날개가 꺾이거나 날개를 꺾는다고 할 적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수수한 살림자리나 마을이나 숲에서 말꽃을 피우는 길을 틀어막는다는 뜻입니다. 일본은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사회·사회적’이란 새말을 지었습니다. 이미 있는 몇 가지 한자를 엮었어요. 우리는 뭘 하느냐 하면, 일본사람이 생각을 밝혀서 지은 일본 한자말을 그냥 베끼거나 훔치거나 따라서 써요. 생각을 안 합니다. 생각날개를 안 폅니다.


  일본말 ‘사회·사회적’을 쓴대서 잘못도 아니요 말썽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생각날개를 안 펼 뿐이요, 생각날개를 안 펴는 자리에서는 생각도 삶도 사랑도 마을도 꿈도 책도 이야기도 글도 새롭게 싹트거나 피어나기 어렵습니다. 글로 돈을 벌고 이름을 얻은 숱한 사내가 저지른 응큼질이며 꼴값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글로 돈을 벌고 이름을 얻는 숱한 가시내는 무엇을 할까요? ‘정의연’이며 ‘여성단체’이며 ‘여성 국회의원’은 얼마나 슬기롭거나 아름다울까요? ‘돈·이름·힘’ 곁에 서면 사내도 가시내도 모두 바보가 되어 날개꺾이를 일삼는 우리나라이지 않나요?


  아무리 ‘민주·진보·평화·노동·인권·경제·혁명·평등·권리·여성운동(페미니즘)’ 같은 이름을 외치더라도 이런 숱한 말씨가 하나같이 일본 먹물붙이가 생각날개를 펴서 스스로 지은 말씨였으며, 우리는 이 일본말을 깊거나 넓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 그냥 베끼거나 훔치거나 따라온 줄을 낱낱이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이름으로는 ‘진보’라지만, 서울에서 10억을 웃도는 잿빛집이랑 자가용 두엇을 거느리면서 아이들을 나라밖 배움길로 보내고 이래저래 ‘하늘(SKY) 대학교’에 슬그머니 밀어넣는다면, 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입니다. ‘사회·사회적’은 모두 겉치레입니다. 낡은 ‘사회·사회적’을 모두 허물고, 새터 새누리 새밭 새길 새물결 새집을 숲바람으로 가꿀 적에 스스로 깨어나는 빛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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