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풀려나는 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10.

 


  지난해 유월부터 구월까지 아주 신나게 책을 묶었다. 이 책들은 끈으로 묶인 채 짧으면 여섯 달 남짓, 길면 아홉 달이나 열 달 즈음 지내야 했다. 이제 이 책들을 하나하나 끌른다. 겨우 숨통을 트는 책들은 오래도록 묶인 나머지 끈 자국이 남는다. 돌이키면, 이 책들은 2010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이에 앞서 2007년 봄에도 꽁꽁 묶이면서 끈 자국이 남아야 했고, 2005년 가을에도 꽁꽁 묶이며 끈 자국이 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들을 얼마나 자주 묶고 얼마나 자주 날랐으며 얼마나 자주 쌓거나 쟁여야만 했던가. 부디 다시는 더 끈으로 묶지 않기를 빈다. 앞으로는 고운 손길 예쁘게 타면서 살가이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새 책꽂이 먼지를 닦고 차근차근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은 책꽂이에 책을 꽂는다. 천천히 풀려나는 책들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좋고 책들도 좋다. 나도 기쁘고 책들도 기쁘다. 너덧 시간 쪼그려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며 책을 끌르고 꽂지만 힘들 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로소 팔다리 무릎 어깨 등허리 몽땅 쑤시고 결리며 저리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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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도 사름벼리가 함께 했군요 ^^
마음은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제목에 쓰셨듯이 천천히 해나가세요.
묶고, 끌르고...그게 우리 사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노래 2012-03-15 04:14   좋아요 0 | URL
묶고 끌르는 삶에서
사랑하고 아끼는 삶으로
천천히 거듭나고 싶어요.. @.@
 


 새 책꽂이 잔뜩 들이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3.6.

 


 월요일에 올 듯하던 새 책꽂이가 화요일에 오다. 커다란 짐차에 잔뜩 실린 책꽂이를 풀밭에 내린다. 새 책꽂이라서 골판종이로 앞뒤를 댔다. 아침에 비가 그친 풀밭은 촉촉하지만 괜찮으리라 여긴다. 짐차 일꾼은 책꽂이만 내리고 떠난다. 내가 혼자 한 시간 남짓 책꽂이를 나른다. 그나마 네 칸짜리 칼라박스이니까 혼자 나를 만하지, 커다란 책꽂이였으면 어깨와 등허리가 얼마나 결렸을까.

 

 이럭저럭 갈무리를 마쳤다 싶은 자리에 책꽂이가 가득 쌓이니 다시 어수선하다. 이제부터 옆 교실 쌓아 두기만 하던 책을 하나하나 끌러 예쁘게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지. 이렇게 교실 두 칸 책들을 갈무리하고 나면, 바깥 길가에 푯말을 하나 세워 ‘임시 개관’을 할까 싶기도 하다. 임시 개관을 하고 나서, 다시 살림돈을 푼푼이 모아 새 책꽂이를 더 들이고, 이렇게 책꽂이를 마저 들이면서, 이곳 옛 학교를 우리 보금자리로 삼는 꿈을 꾼다.

 

 지난해 유월에 끈으로 묶인 채 언제 풀리는가 기다리던 책 가운데 노동책과 국어사전붙이를 드디어 끌른다. 다시는 끈에 묶이지 않게 하고 싶다. 이 고운 책들이 고운 사람들 고운 손길을 타며 곱게 빛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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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3-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리하실 일이 산더미네요
님도 도서관을 꾸미시는 건가요? 순오기 언니처럼요?

숲노래 2012-03-07 12:51   좋아요 0 | URL
개인도서관을 2007년 4월부터 했어요.
인천에서 처음 열었고,
이제 전남 고흥으로 와서 책 정리 하고 집일 하고 그러느라 바쁘답니다 @.@

http://blog.aladin.co.kr/hbooks/5137783
(이 글을 보면 시골로 도서관 옮기며 끄적거린 얘기가 있어요 ^^;;;)

http://blog.aladin.co.kr/hbooks/5475603
(이 글은 오늘 써서 올렸는데, 이 글에 도서관 일대기를 살짝
간추려서 적었어요~)


저는 지자체나 문화부 같은 데에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혼자서 도서관을 꾸리느라
좀 많이 빡빡하고 벅차기도 하답니다 @.@

이궁~

노이에자이트 2012-03-0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진왜란 종군기는 케이넨의 것인가요? 요즘은 도서관에서도 폐기처분된 책인데...

숲노래 2012-03-08 18: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폐기하나요?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그러나요?
흠..

노이에자이트 2012-03-08 19:13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1차자료의 가치야 충분히 있죠.하지만 요즘은 내용과 무관하게 오래된 책을 없애더라고요.도서관 공간이 부족하다고.위 사진의 책들 중 80년대 것은 도서관에서 다 없어졌어요. 90년대 것도 많이 없어져서 가끔 고물상에서 발견되고 그러죠.

숲노래 2012-03-08 19:2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아주 고맙게 여기면서
알뜰히 그러모아요.

헌책방도 도서관도 참 좋은 곳이에요~
 


 만화책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2.11.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는 나날이다 보니, 도서관으로 와서 책을 갈무리하는 겨를을 내기에는 만만하지 않다. 한 주에 한두 차례 도서관으로 와서 한두 시간쯤 책을 갈무리할 수 있으면 고맙다. 둘째가 스스로 걷고 뛸 무렵까지는 집에서 복닥이는 나날이 더 길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둘째가 스스로 걸을 무렵에는 뒤꼍 땅뙈기를 갈아엎어 푸성귀 심는 품을 많이 들여야겠지.

 

 아직 상자에 담긴 책이 많다. 겉에 아무 글을 안 적은 상자가 꽤 있어 하나하나 끌른다. 나중에 책꽂이 더 들인 다음에 끌릴 상자가 있고, 미처 알아보지 못해 뒤늦게 끌르는 상자가 있다. 어느덧 사진책, 어린이책, 그림책, 만화책, 교육책은 얼추 자리를 잡는다. 어디에 파묻혔나 싶던 책들이 나중에 끌르는 상자에서 하나둘 튀어나온다.

 

 사진책도 그렇지만, 만화책도 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만나기 참 힘들다. 어린이책은 꽤 오래도록 꾸준히 사랑받으니, 딱히 때를 놓칠 일이란 드물다. 사진책이나 만화책은 꽤 사랑받는다는 책마저 어느 결엔가 판이 끊어지거나 출판사가 사라지곤 한다. 그때그때 갖추어야 한다.

 

 흩어진 짝을 하나씩 찾으며 맞추다가, 이제 사라져 남은 짝을 찾을 길 없는 만화책을 쓰다듬다가, 내 곁에서 곱게 살아남은 만화책을 들여다보다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이 책들마다 어떤 삶 어떤 이야기 어떤 웃음 어떤 꿈이 깃들었을까. 우리 아이들하고 오래오래 나눌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은 이 만화책을 읽을 때에 어떤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받아먹을 수 있을까.

 

 도서관에는 훌륭하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책을 갖추어야겠지. 그런데, 훌륭하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책만 갖추면 도서관 몫을 다 하는 셈일까. 어버이로서, 어른으로서, 이만큼 하면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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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실 때 엄청 나셨겠어요. 어느 정도 정리하시고 팔다리 안 쑤셨는지요?
저는 이제 책 모을 엄두가 안나요. 예전엔 절판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책은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란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요^^
대단 하시긴 해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열정이 없으면 절대 못하는 일이죠.

숲노래 2012-02-21 17:42   좋아요 0 | URL
나른 책이 참 대단하기는 대단했어요.
그런 일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에
부디 이모저모 오래오래 뿌리내리며
살아가고 싶답니다 ㅠ.ㅜ

 


 두 아이와 함께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2.4.

 


 잘 듯 말 듯하는 둘째를 안는다. 첫째는 손을 잡는다. 둘 모두 낮잠을 잘락 말락 하면서 안 자며 버틴다. 낮잠을 자고 나서 신나게 놀면 좋으련만.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도서관으로 간다. 첫째는 마음껏 달리면서 놀고, 둘째는 아버지 품에서 논다. 도서관에 닿아 포대기로 둘째를 업는다. 포대기로 업으니 둘째는 금세 곯아떨어진다. 잠든 아이를 바닥에 살며시 눕힌다. 첫째 아이도 졸음에 겨워 옆에 눕는데, 졸리면서 끝까지 버틴다.

 

 그래도 한 아이는 잠들고 한 아이는 엎드려 그림책 읽으며 놀아 주니, 이동안 도서관 책을 조금 갈무리한다. 아이들이 도와줄 때에 도서관 책 갈무리를 할 수 있다. 내가 아이들하고 즐거이 놀 때에 아이들은 마음껏 놀다가는 스르르 잠들거나 조용히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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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브로 꼴을 갖춘다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2.1.29.

 


 이원수 님 동시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살림집과 도서관이 코앞에 맞닿는다면 새벽이나 밤에도 책 갈무리를 할 텐데, 아무리 가까이 있기는 하더라도 걸어서 2∼3분쯤 걸어가야 한다면, 이만 한 길조차 날마다 못 가기 일쑤이다. 며칠 앞서부터 이원수 님 동시책을 가지러 도서관에 가려 했으나, 자꾸 잊는다. 집에서 하는 일에 밀리고, 읍내나 면내로 마실을 다녀오며 뒤로 미룬다. 설을 쇠기 앞서부터 설을 쇤 뒤 도서관 청소조차 못했다고 생각하며, 오늘은 책도 가지러 가자 다짐하며 한낮 해가 차츰 기울 무렵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다.

 

 석 달째 그럭저럭 갈무리하고 치우면서, 사진책과 그림책과 어린이책과 교육책 두려는 교실은 꽤 꼴을 갖춘다. 인천에서 도서관을 꾸리며 만든 사진틀 꾸러미가 꽤 많아, 이 꾸러미를 어디에 두나 하고 생각하다가, 책꽂이 벽에 붙이기로 한다. 책꽂이 벽에 못 자국이 생기니 싫지만, 즐기자고 생각한다. 빛깔 고운 사진을 붙여 책꽂이도 살고 도서관도 살리자고 생각한다. 어른 눈높이에 사진틀 하나, 어린이 눈높이에 사진틀 하나. 요 밑에는 나중에 조그마한 종이쪽을 붙일까 싶다. 이를테면, 고흥군 군내버스 ‘종이 버스표’를 널따란 판에 하나씩 그러모아 붙일 수 있으리라. 인천에 살던 어린 날 모은 ‘종이 버스표’라든지 음성에서 지내며 모은 ‘종이 버스표’도 그러모아 붙일 수 있겠지. 좋은 길을 생각하자. 예쁜 꿈을 품자. 도서관은 도서관대로 살림집은 살림집대로 아름다이 일굴 사랑을 헤아리자.

 

 오늘 한 시간 반쯤 갈무리하니 제법 꼴을 갖추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 어수선하거나 어지러운 잡동사니가 곳곳에 있는데, 이듬날 아이들 데리고 나와서 놀며 설레설레 치우면 되겠지. 나 혼자 흐뭇해서 사진 몇 장 찍는다. 다음에 와서 더 붙일 사진틀을 앞에 놓는다. 문간 옆 책상과 책꽂이도 다음에 올 때에는 다 치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참말 시나브로 꼴을 갖추니 시원하고 개운하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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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1-3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관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날짜 알려주세요.

숲노래 2012-01-30 16:55   좋아요 0 | URL
넵, 그러겠습니다~~
따순 날, 고흥이 얼마나 따숩고 좋은가를
사람들한테 알려서
이곳으로 살림집 옮기라고 할 만한 날을
잡고 싶어요~~~ ^^

마녀고양이 2012-01-3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이런 도서관을 꾸미시는거군요.
정리하시면 더 많은 사진 올려주셔염, 멀어서 실제는 못 봐도 사진으로나마 보고파여~

숲노래 2012-01-30 16:56   좋아요 0 | URL
나중에 신나게 마실 오셔야지요~

정안휴게소에서 갈아타면, 고흥에 더 빨리 올 수 있더라구요.

아무튼, 예쁘고 즐거이 꾸미려고 해요.
이제 이곳은 우리 집이라 여기면서 꾸미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