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11호가 나왔습니다. 11호부터는 인쇄까지 혼자서 합니다 -_-;;;  

책방에 배본하지 않고, 오직 정기구독만 받는 책입니다~~~

.. 

머리말 :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방마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납니다. 아이가 일어날 때면 부시럭거리는 소리하고 콩콩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 아버지는 새벽에 먼저 일어납니다. 아이가 깬 동안에는 도무지 글쓰기나 책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벽 두어 시부터 너덧 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몸이 괜찮으면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고, 몸이 고단하면 너덧 시에 일어나며, 몸이 아주 힘들면 여섯 시에 일어납니다.

 예전에 혼자 살며 신문돌리기를 하던 나날에는 새벽 두 시 반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돌렸습니다. 저는 새벽 한두 시에 신문을 더 일찍 돌린 다음 이른새벽을 호젓하게 글쓰기와 책읽기로 보내고 싶었지만, 제가 돌리던 신문은 새벽 두 시나 되어야 겨우 신문이 왔을 뿐 아니라, 때로는 새벽 네 시가 되어야 갖다 주어서 새벽일 하기 퍽 고달팠습니다. 그래도 이무렵부터 새벽 두 시 언저리에 일어나서 하루를 맞이하는 버릇을 들였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새벽별도 곱고 마을도 조용합니다.

 아직 넉 돌이 안 된 우리 집 첫딸은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스란히 따라하듯이 배웁니다. 어버이가 옳고 착한 말을 하면 아이 또한 옳고 착한 말을 하며, 어버이가 호미를 쥐면 아이도 호미를 쥐며, 어버이가 셈틀 앞에 앉으면 저도 셈틀 앞에 앉으려고 합니다.

 아이하고 책방마실을 할 때면 아이 또한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아이하고 골목마실을 하자면 아이 또한 골목마실을 즐겨요. 제 어버이가 흐뭇한 낯빛과 몸짓으로 즐기는 삶을 아이 또한 흐뭇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한테 이모저모 가르친다 할 테지만, 어버이 또한 아이한테 여러모로 배웁니다. 어버이가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자라날 길이 사뭇 다릅니다. 어버이가 사람을 바라보며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하고, 집일은 여자가 해야 해.’ 하는 생각이라면, 제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어버이 생각을 똑같이 물려받습니다. 요즈음 온누리는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말들은 하지만, 막상 사람들 넋이나 삶은 그닥 달라지지 않아요. 얄궂은 모습이 어버이한테서 아이한테 남김없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른 스스로 먼저 바꾸지 않는데 아이보고 먼저 바꾸라 할 수 없습니다. 웃물이 흘러 아랫물이 되고, 아랫물은 어느덧 또다른 웃물이 되어 제 아랫물한테 물을 흘립니다. 돌고 도는 물입니다. 웃물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야지, 아랫물만 앞으로 맑은 물이 되라 할 수 없어요. 바로 오늘부터 어른 된 사람 스스로 맑고 착하며 참다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며 책방마실을 하기란 몹시 힘들어, 《우리 말과 헌책방》을 제때 맞추어 내놓기가 참으로 벅찹니다. 그러나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제때에 맞추어 11호 12호 꼬박꼬박 채우기만 해서는 사람들하고 살가이 나눌 책삶 헌책방삶 말삶을 아름다이 여미지 못할 수 있어요. 빨리 가거나 더디 가거나 할 《우리 말과 헌책방》이 아니라, 한 권 두 권 알뜰히 속살을 가다듬으면서 나눌 잡지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제 11권째를 내놓으면서 생각합니다. 어젯밤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면서 둘째 아이 태어나면 또 어떻게 내 삶을 바꾸며 새로 태어나야 할까 헤아리다가, 나 스스로한테 글월 하나 띄우자는 생각으로 ‘이 땅 푸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과 같은 ‘아이 키우는 아버지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 이 나라 푸름이한테 ‘어버이 되는 길’ 이야기를 글 하나로 갈무리해 남기고 싶습니다. 잡지를 받는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 

차례

머리말 : 아이들과 살아가며 책방마실

가. 책방마실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하지만 마음 들여 애써 간다
   부리나케 고르고 사서, 아이 재우고 힘겹게 읽기
   숱한 책 골고루 사기, 책을 읽는 눈썰미 넓히기
   음성 읍내 책방 1
   음성 읍내 책방 2

나. 헌책방
   헌책방 〈책밭서점〉 발자국
   헌책방 〈책밭서점〉 길그림
   헌책방 일꾼하고 이야기나눔
   헌책방 〈책밭서점〉 나들이
   사진 하나 말 하나

다. 책과 삶
  김규항과 진중권 · 아껴 아껴 책읽기 · 귀지를 파는 아빠
  나무를 담은 그림책 · 이향원
  찬물 빨래 하고 나서 책읽기 · 셈을 못하는 사람
  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다 · 어머니
  뜨개책 · 단풍씨 · 당근풀 · 사람과 삶과 사랑

라. 우리 말
   ‘합니다’와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 사진찍기 · 잔소리 · 밥하기 · 어버이 · 낮잠 · 말괄돼지 ·
      어른 · 쪽지가 왔습니다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 화제의
   ‘-적’ 없애야 말 된다 : 민족주의적
   좋은 말 새로 읽기

꼬리말 : 많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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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학술도서


 2011년 5월 17일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뽑은 ‘우수학술도서 389권’ 가운데 내가 쓴 책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가 끼었다. 출판사에서 전화로 알려준다. 전화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란다. 간행물윤리위원회 누리집에 들어가서 389권이 어떤 책인가를 하나하나 살핀다. 학술책이라는 389권 가운데 내가 장만해서 읽고프다 싶은 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내 책 빼고는 모두들 골이 퍽 지끈거리는 어려운 책들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한테는 내가 쓴 책 《사랑하는 글쓰기》에서 다루는 ‘잘못 쓰는 겹말 이야기’야말로 대단히 어려우며 골치를 썩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출판사 일꾼하고 전화로 이야기를 마친 다음 생각에 잠긴다. 《사랑하는 글쓰기》에 앞서 2009년에 낸 ‘살려쓰면 좋을 우리 말’ 이야기를 다룬 《생각하는 글쓰기》는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20권 가운데 하나로 뽑혔던 책인데, 이 책은 ‘교양’ 갈래에서 뽑혔다. 나는 《생각하는 글쓰기》를 ‘학술’ 갈래로 넣었을 뿐 아니라, ‘교양’ 책이 아니라 ‘학술’ 책이라 생각했으나,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여기면서 종이값을 보태 준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학술’ 책이 아닌 ‘교양’ 책으로 여겼다.

 옆지기하고 이야기하면서도 생각한다. 나는 내가 쓴 우리 말글 이야기책을 ‘교양’ 책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 갈래를 굳이 가르자면 ‘학술’ 쪽에 넣을 수 있을 텐데, 교양이고 학술이고를 떠나, 한 사람이 제 살가운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동안 아주 마땅히 밑바탕으로 다스릴 이야기책이 아니고서는 쓸모가 없다고 여긴다. 내가 쓴 책이라서가 아니라, 삶책이 되지 않고서는 종이로 찍을 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삶책이 될 만한 글이 아니라 한다면, 새벽잠을 미루거나 밤잠을 쫓으면서 글을 쓸 까닭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쓴 책을 좋게 봐주어 좋은 책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무척 고맙기는 한데, 함께 뽑혔다는 다른 책을 돌아보았을 때에 내 책이 다른 388권하고 함께 놓이는 일이 나로서는 얼마나 기쁘거나 좋을 만한지 모르겠다. (4344.5.1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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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여느 책방에 배본을 하지 않는다. 서울 <풀무질>과 인천 <나비날다>에만 보내 준다. 이 잡지를 보려면 정기구독만 해야 한다.)



 책을 읽는 마음 삶을 읽는 마음
 :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머리말



 책을 읽는 마음이 반드시 곱거나 삶을 읽는 마음이 꼭 착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얄궂은 마음을 품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고, 삶을 읽는다면서 정작 돈맛을 살피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즈음 시골 터전은 참 곱습니다. 나뭇잎 빛깔이 곱고 하늘 빛깔이 곱습니다. 한국에서는 시골이라 할지라도 싱그러운 바람과 보드라운 햇살이 나날이 옅어지기는 하지만, 한국땅 도시와 견주면 시골 삶자락에서는 숨통을 트면서 사람과 푸나무와 멧짐승이 제 목숨껏 살아남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어 읍내 장마당에 나들이를 하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자동차가 두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두찻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죽는 멧짐승이 제법 있는데, 자동차가 넉 대 지나다닐 수 있는 네찻길에서는 자동차에 치여 죽는 멧짐승이 대단히 많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로서는 멧짐승을 버젓이 치고는 아무렇지 않게 당신 가던 길을 갑니다. 자동차를 타는 이들은 사마귀나 메뚜기나 개구리나 잠자리나 나비를 치거나 밟을 때에는 ‘목숨을 덧없이 죽였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으레 대통령이나 장관쯤 되어야 권력을 움켜쥐었다고 여기는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생각을 차근차근 가다듬습니다. 대통령도 아니요 장관 또한 아니며 면사무소 일꾼조차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동차를 타고 싱싱 몰 때에는 누구나 권력자가 되고 맙니다.

 저는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몰 때에 가져야 한다는 면허증서도 없습니다. 오토바이도 안 타고 오토바이라 하더라도 몰 마음이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시골버스를 탑니다. 때때로 택시를 얻어 탑니다.

 두 다리로 넉넉합니다. 자전거로 즐겁습니다. 시골버스는 재미납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 일요일 음성읍 장날에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옵니다. 아이 엄마 배속에서 둘째가 무럭무럭 크니까 네 식구 마실입니다. 버스삯은 어른 두 사람 몫 2300원을 냅니다. 장마당으로 가는 길에는 모두 일곱 사람이 타고, 장마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가 꽉 찹니다. 이웃마을 어르신들은 아침 버스를 타고 장마당 마실을 나오셨군요. 읍내하고 가까운 데에 살던 할머니 한 분이 그만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립니다. 버스 기사가 깜빡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한 바퀴 돌아와서 내리면 되겠네!” 하면서 모처럼 이웃마을 구경을 하라고 웃습니다. 이웃마을로 마실을 다니기는 할 테지만, 시골버스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오갈 일은 드물겠지요. 가만히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나 보금자리는 그닥 안 넓은지 모릅니다. 좁은 곳에서 조용히 살아가는지 모르고, 좁은 곳에서 조그맣고 조용하게 살아가지만 옹기종기 오순도순 즐거운지 모릅니다. 괜히 피 튀기며 다툴 까닭 없고, 돈이며 이름이며 힘이며 더 얻자고 아웅다웅 할 까닭 없습니다.

 고운 사람 하나와 착하게 사귀며 참다이 살아가는 마음이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책 하나 더 읽어도 괜찮고, 책 하나 어여삐 사랑해도 괜찮다고 느낍니다. 책과 삶을 알뜰히 아낄 줄 아는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면 좋겠습니다.

2010년 11월 7일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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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알라딘에도 상품이 떴군요! 

ㅠ.ㅜ 

지난주 월요일에 나왔는데 

책방 배본은 어제오늘 즈음 겨우 되었고, 

다른 책방에는 배본이 아직 까마득한..... -_-;;;;;; 

그래도 종이책으로 태어났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

.. 

(책 머리말을 걸쳐 놓습니다. 책이름처럼은 아니지만, 제대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말을 해야 하니 생각을 해야지요


 아이는 어른이 하는 말을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제 말을 가다듬습니다. 어른이 하는 말마디만 익히는 아이가 아닙니다. 어른이 들려주는 말투와 말씨와 말결과 말넋과 말무늬와 말높이와 말자리와 말씀씀이와 말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배웁니다. 어른 스스로 따스한 사랑을 말 한 마디에 담는다면 아이는 마땅히 말 한 마디에 따스한 사랑을 담는 결을 배웁니다. 어른 스스로 툭툭 내뱉기만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삶을 보내고 있으면 아이는 저절로 툭툭 내뱉기만 하는 딱딱하고 차가운 삶을 좇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밥을 안 먹고 살 수 있다면 내가 먹는 밥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차리며 어떻게 치워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기에 밥 한 그릇에 어떤 손길이 깃들었고 밥 한 그릇이 되기까지 누가 어느 땅에서 땀흘려 일구었으며 어떠한 흐름을 타고 우리 집까지 찾아왔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기 앞서 어른 스스로 먹는 밥을 아무렇게나 차릴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만 나쁜 첨가물 깃든 먹을거리를 내어주면 안 될 뿐 아니라 어른부터 나쁜 첨가물 깃든 먹을거리를 손사래쳐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입니다. 밥을 먹기 앞서 밥이 어떠한 밥인가 살펴야 하듯, 말을 하기 앞서 말이 어떠한 말인가 살펴야 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에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살펴야 합니다. 주머니나 가방끈이나 겉모습을 따지라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를 살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착한지 참된지 고운지를 살펴야 합니다. 착한 삶 참된 삶 고운 삶인가를 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읽으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가용을 몰고자 한다면 어떤 자가용을 왜 몰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권정생 할배는 자가용을 버려야 이라크 파병을 안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권정생 할배는 자가용뿐 아니라 갖가지 물질문명을 거의 안 쓰며 지냈습니다. 저 또한 권정생 할배처럼 자가용과 갖가지 물질문명을 거의 안 씁니다. 다만, 권정생 할배는 텔레비전을 보셨으나,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빨래기계나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나 청소기를 쓰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갈 때에 자가용 없으면 힘들다 하지만, 두 다리를 튼튼히 가누면서 시골버스를 즐기면 모자랄 구석이 없습니다. 한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참 기다린다거나 시골버스 타는 데까지 이십 분이나 삼십 분을 걸어가는 일은 ‘시간 버리기’가 아닙니다. 읍내에 장보러 자전거 타고 한 시간 즈음 달려야 하는 일은 ‘시간 버리고 몸 버리기’가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땀흘리며 살아갈 때에는 사람들 말마디에 땀내음이 깃듭니다. 땀내음이 깃든 말을 나누는 사람은 화장품내음이라든지 돈내음을 풍기기 어렵습니다. 늘 땀을 흘리는 사람이 화장품으로 몸을 치레할 수 없습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은 돈이 아닌 몸을 써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땀흘리는 삶을 즐기는 사람은 조금 더 생각하며 말할 수 있고, 한결 살가이 생각을 즐기며 말꽃을 피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땀흘리기보다는 머리만을 쓰며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은 생각을 않고, 아니 아예 생각없는 하루하루로 돈을 더 많이 벌면서 아무 말이나 ‘말만 되면 되지(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하는 버릇에 젖어든다고 느낍니다. 돈을 더 벌면 된다는 마음이란 바로 말뜻을 얼추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옮아갑니다.

 이 땅 살림꾼을 도맡는 어머님들은 밥 한 그릇을 차리든 아이를 갓난쟁이 적부터 돌보든 빨래를 하든 걸레질을 하든 늘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반찬을 차릴 수 없는 노릇이요, 먹는 사람 입맛과 몸을 헤아려서 밥차림을 달리할 노릇입니다. 늘 말끔하며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도록 빨래를 손수 하셨습니다. 집에서 쉴 사람이 더욱 느긋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게끔 집안을 쉴새없이 치우고 닦고 갈무리하셨습니다. 살림거리가 많아 생각할 겨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살림거리가 많기에 더더욱 생각을 하며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는 살림을 맡으셨습니다.

 저는 이 책 《사랑하는 글쓰기》에 담는 글을 처음 쓰고 두세 번 너덧 번 대여섯 번 예닐곱 번 일고여덟 번 …… 자꾸자꾸 손질하고 고쳐쓰면서 우리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제가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어떤 말마디로 나를 돌보고 가르쳐 왔을까 떠올렸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눈으로 읽으며 속으로 헤아리실 테지만, 저는 이 글을 쓰고 고치는 동안 늘 입으로 혼자말을 하며 썼습니다. 저로서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로 《사랑하는 글쓰기》 이야기를 엮습니다. 사람들이 생각을 않고 사는 바람에 얄딱구리하게 ‘겹말’이 끊이지 않는 슬픈 모습을 조금 더 따스하게 어루만지거나 넉넉하게 보듬고픈 꿈을 담습니다.

 말은 삶입니다. 내 말이란 내 삶입니다. 삶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삶을 가꾸는 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말씀하셨는데,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사람을 가꾸는 글쓰기’요 ‘삶을 가꾸는 말하기’이며 ‘사람을 살리는 말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이름 하나에 얽매이거나 고이거나 사로잡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고맙게 받아들이며 내 아프거나 튼튼한 몸뚱이를 반갑게 사랑할 노릇입니다.

 곁에서 아픈 삶을 온몸으로 나누어 주는 따스한 살붙이가 있기에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책 하나 고맙게 일구어 제 좋은 이웃한테 선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동네에서 골목꽃을 껴안으며 즐거웠고, 시골에서는 멧부리 기스락에서 들풀과 들나무와 들벌레하고 부대끼며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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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부터 17일까지 인천과 서울을 오락가락하는 마실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물이 얼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기에 설마 얼랴 싶었는데 얼고 말았다. 아직까지 안 녹는다. 몸은 무척 무겁다. 하루를 자고 따뜻한 낮에 햇빛 받는 사진으로 새로 찍거나 스캐너로 긁어야지. 이번 책은 다음주쯤에나 알라딘 목록에 뜨려나. 아직까지 책방에는 안 들어가네... 

  


책을 내놓으며 붙인 꼬리말 : 삶을 사랑하는 글쓰기


 삶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목숨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며 사진을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풀과 나무와 꽃과 나비와 벌레 모두를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자전거와 하늘과 바닷물과 물고기를 사랑하는 글쓰기입니다.

 꾸미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가꾸고 싶은 글쓰기입니다. 덧바르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껴안고 싶은 글쓰기입니다. 내세우고 싶지 않은 글쓰기입니다. 토닥이며 어루만지고픈 글쓰기입니다.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이 땅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피지 않으며 엉뚱하게 잘못 쓰는 겹말’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겹말을 바로잡는 이야기를 펼치며 붙인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은 자칫 너무 크거나 동떨어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아니, 참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굳이 “사랑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집식구와 이웃과 동무와 둘레 사람들 누구나 우리 말글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꿈꾸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을 담아 글 한 줄을 쓰고, 내 사랑을 실어 말 한 마디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담는 글이 아닌 사랑을 담는 글로 거듭나면 고맙겠습니다. 가르침을 밀어넣는 말이 아닌 사랑으로 함께 배우는 말로 새로워지면 반갑겠습니다.

 국어학이나 언어학이라는 틀에 사로잡히기보다, 내가 사랑할 말과 내가 좋아할 글이라는 고운 보금자리 마련하면 기쁘겠습니다. “우리 말 달인”이라거나 “우리 말 상식”이라거나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울타리에 매이기보다, 서로서로 사랑할 삶과 다 함께 어깨동무할 터전이라는 어여쁜 마음밭 일구면 보람차겠습니다.
 

..  

 그동안 나온 내 낱권책들

<사랑하는 글쓰기>(호미,2010)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내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2007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모두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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