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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끝무렵에 나왔어야 할 책이 

7월을 넘기고도 아직 안 나오고 있다. 

그나마 이번 주에 나오기로 해 놓고 

다시 한 주가 늦추어진다. 

내 책이지만 

내 책 소식을 말하기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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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 블로그에 갔다가, 

그분이 서울을 떠나 진주로 가며 

진주에 떨어져 지내던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비로소 함께 산다는 소식을 읽는데, 

그 글에 이런 사진이 붙어 있다. 

 



 

그리 잘 팔리지는 않는 듯한데, 

참으로 용하게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한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른다. 

언론 소개를 안 타고도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다니 

놀라운 한편, 

2011년에 <사진책과 함께 살기> 2권을 낼 수 있겠다는 꿈을 

다시금 소록소록 키워 본다. 



 

돈 버는 일은 거의 못하는 주제에 

책만 신나게 써내고 있는데, 

2쇄나 3쇄도 찍어 

비로소 글삯(인세)을 만져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나도 6월 중순에 인천을 떠나 산골마을로  

살림집과 도서관을 옮기려 하는데, 

집 옮길 돈이 없어 

살림집 보증금이 빠지면 이 돈으로 차 부르고 사다리차 쓰고 해서 

움직여야 한다. 



어찌 되었든, 

아이 앞에서 꿋꿋하며 씩씩한 아빠로 

잘 살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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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올 책 겉그림. 

출판사에서는 아래 오른쪽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데, 

사람들한테 다가가려고 한다면 

아래 왼쪽이 낫지 않으랴 싶다. 

 

뭐, 어떤 겉그림을 달고 나오든 

알맹이가 알차면서 

스며들 수 있는 책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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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4-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오른쪽도 좋고, 아래 왼쪽도 좋아보이네요.
근데 말씀대로 아래 왼쪽이 눈길을 끌 것 같아요.

숲노래 2010-04-15 20:17   좋아요 0 | URL
네, 출판사에서 슬기롭게 잘 뽑아 주리라 믿습니다~ ^^

hnine 2010-04-1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래 오른 쪽과 위 오른 쪽이요.
알맹이가 알찬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요즘은 표지도 중요하더라고요 ^^

숲노래 2010-04-15 20:18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오래오래 잘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4-1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오른쪽이 좀 더 세련된 느낌이예요.
아래 왼쪽 것은 좀 더 따뜻한 맛이 있는듯해요.

숲노래 2010-04-15 20:18   좋아요 0 | URL
오른쪽이 좀더 세련되기는 한데,
제 성격이 세련된 꾸밈새를 그닥 안 좋아해서요~
 



 

내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8호를 만들었다. 이번 잡지 8호에는 독립 이름을 붙여 <오래된 책은 아름답다>로 내놓았다. 책을 펴내 준 출판사에서는 책을 모조리 나한테 보내 주었기에, 아주 마땅하게도 '책방 신간 배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방에 신간 배본을 안 하는 책'이라니. 참 무식하고 무모하고 ... 바보스런 짓이라 하겠다. 그러나 좋다. 굳이 신간 배본을 해야 하느냐? 뜻이 있으면 찾는 사람이 있을 테고, 천천히 기다리면서 내가 손수 봉투질을 해서 보내 주어도 되겠지. 

 

300권은 팔아야 9권을 찍을 돈이 마련될 텐데, 300권을 어떻게 언제 다 팔 수 있을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달 만에 팔든 석 달이 걸리든 한 해가 걸리든, 더딘 걸음일지라도 속깊은 책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을 믿으면서 기다려야지. 

 

잡지 주문을 바라는 이는 =>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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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인 5월 23일, 내가 새로 낸 잡지를 이야기하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오늘 토요일, 〈국민일보〉에 기사 하나 더 실렸다. 인천에서 〈국민일보〉 사기 너무 어려워, 서울에 있는 〈오마이뉴스〉 기자인 ㄱ 아저씨(내가 서울에 가면 잠자리를 내어 주는 선배)한테 전화로 부탁을 한다. ㄱ 아저씨는 첫 마디로 대뜸, “아, 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네? 인터뷰요? 하도 귀찮게 전화를 해서 대충 대답해 준 건데요?” “그게 뭐예요. 입으로 하는 말하고 행동하고 다르고.” “어, 그거 내가 인터뷰 한 것도 아니고, 물어 보니까 전화로 대답해 준 것뿐인데. 하긴 뭐, 그것도 인터뷰라면 인터뷰일 수밖에 없으니.”

 저녁나절, 조금씩 차 오르는 달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조선일보〉 기자는 나를 취재하지 않았다. 나를 만나보지 않았고(그러니 내 얼굴도 모른다), 출판사로 전화해서 내 연락처를 알아낸 뒤, 자기한테 도움되는 몇 가지 정보만 꼬치꼬치 캐물으며 알아냈다고 할까. 그리고 그 정보로 기사를 썼다. 이 자리니까 말하지만, 전화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전화기를 붙들고 싸웠다고 할까? 그 기자가 쓴 글을 보니, 내가 ‘화를 냈다’고 적어 놓았더만.

 그런데 나를 만나본 기자들이 쓴 기사보다, 그저 몇 가지만 나한테 전화로 물어 본, 게다가 싸우기까지 했던 기자가 쓴 글이 훨씬 잘 썼다. 그 기자가 얼핏 하는 말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1998년에 한글학회 공로상 받으셨네요? 그때 사진을 보니 너무 젊어서 신문에 쓰기 어렵겠네요.”

 〈조선일보〉에 실린 내 사진은 내 것이 아닌, 자전거잡지 〈더 바이크〉 것이다. 그곳 사진을 얻어서 쓴 것인데, 그건 그거고, 1998년 내 사진이라 해도 〈조선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게 아니라 다른 어느 매체에서 얻었던 것이다(아마 〈한겨레〉 기자가 찍은 사진이지 싶다). 그런데 그 사진자료가 지금도 있다니! 다른 신문사에는 자기들 자료가 남아 있을까? 아니, 다른 신문사 기자들은 기사를 실으며 사진 자료를 찾을 때 자기들 ‘데이타베이스’를 뒤져 보는가?

 속으로 조금 소름이 돋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기자얼이라고 느꼈다. 한편으로는, ‘취재도 안 한 주제에 글만 훌륭하게(?) 썼으니, 소설가다운 솜씨가 많이 엿보여서, 기자보다는 소설가로 일하는 편이 낫다고 느껴지는 〈조선일보〉 기자’이지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그만큼 기자로서 기본 소양이 되어 있다는 소리이다. 칭찬할 것, 아니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진보와 혁명이 살아난다. 진보정당이든 진보매체이든, 수구꼴통이라고 하는 매체 사람들이 하는 만큼 애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한편, 독자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릴 수 없다. 기자들 글솜씨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조선일보 기자 발가락만큼이라도 따라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현장취재를 ‘조선일보 기자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만큼 따라가려고’ 다리품 파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내가 여태까지 겪어 보기로는 늘 ‘글쎄요’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이것은 받아들인다. 다만 한 가지, 헌책방 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취재하고 글로 다루는 기자들 모습과 몸가짐과 글을 보면, 나라안 일간지와 주간지와 월간지 들을 통틀어 ‘조선일보 기자 1/10만큼이라도 되는 기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진보매체든 진보가 아닌 매체이든 ‘조선일보 욕’은 신나게 해댄다. 자기들은 그만큼 애쓰지 않으면서.

 그래, 〈조선일보〉가 잘못하는 것, 이 가운데 가장 크게 잘못하는 정치와 사회와 교육 기사(다른 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 나라에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있다는 사실이 큰 재앙이자 슬픔이라고 본다)는 마땅히 비판하고도 남는다. 비판뿐 아니라 송곳으로 후벼파듯 갈기갈기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면? 비판으로만 그치고, 우리 스스로는 한결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려 하지 않는다면?

 진보를 외치고 싶은 사람들은 느껴야 한다. 느낀 대로 움직여야 한다. 진보든 무슨 운동이든 한삶을 바쳐서 두 눈을 감는 날까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어느 한때라도 흐트러짐이란 있을 수 없다. 자, 보라. 〈조선일보〉 기자 가운데 정년퇴직을 하는 날까지 흐트러짐을 보이는 기자가 있는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 나이 예순이 되는 날까지 흐트러짐 없이 고이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아니, 있기나 한가? 술자리에서만 목소리 높이고, 정작 자기 몸뚱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조선일보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4340.5.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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