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씨 꽂는 피아노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에 꽃이 피는 단풍나무는 한 달 즈음 꽃을 잇다가 한 달 즈음 씨앗을 매답니다. 아이하고 멧길을 오르내리면 아이는 어김없이 단풍꽃이나 단풍씨를 하나씩 꺾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단풍꽃이나 단풍씨를 올려놓습니다. 아이는 피아노 건반 사이에 단풍씨와 단풍잎을 꽂고는 살며시 다른 건반을 똥똥 튀깁니다. (4344.6.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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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레 어린이


 드디어 세이레를 난다. 세이레를 난 아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한테 얼굴을 내보일 수 있다. 둘째 아이 큰아버지한테 보내 줄 사진을 하나하나 헤아린다. 큰아버지는 둘째 조카가 태어난 일을 어떻게 느낄까. 첫째는 집밖에 좀처럼 못 나가고 집안에서 갓난쟁이하고 함께 지내야 하는데에도 퍽 잘 지낸다. 둘째를 씻길 때에 곁에서 일손을 거들고, 방바닥 걸레질을 해 주며, 예쁜 짓과 미운 짓을 갈마들며 착하게 자란다. (4344.6.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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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꺾는 어린이


 갓 태어난 둘째를 함께 돌보고 옆지기한테 미역국을 끓여 주시려고 옆지기 어머님이 찾아오셨다. 이제 옆지기 어머님은 댁으로 돌아가신다. 아이와 할머니가 서로 손을 잡고 시골버스 타는 곳에 선다. 아이는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 들꽃을 꺾는다. 수없이 피고 지는 들꽃을 조그마한 손에 하나씩 꺾어 가득가득 쥔다.

 아이가 들꽃을 꺾어 한 시간쯤 쥐며 걸어다니면 꽃줄기는 이내 시든다. 꽃줄기가 시들면 길가 풀숲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꽃들이 씨를 맺어 퍼지지 못하고 아이 손에서 죽는달 수 있지만, 들꽃이 이만큼 꺾인대서 씨앗이 안 퍼지거나 덜 퍼지지 않는다. 아이는 길가나 숲속에 잔뜩 피어 흐드러진 꽃만 제 손에 쥘 만큼 꺾는다. 다른 자리에서는 꽃을 꺾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때에 우리 아이처럼 꽃을 꺾으며 놀았다. 이곳저곳 흐드러진 들꽃은 몇 송이 꺾으며 놀다가, 이 꽃이 이내 시드는 모습을 보며 꽃한테 잘못했구나 하고 느낀다. 시들지 말라고 물잔에 꽂지만, 물잔에 꽂는들 꽃송이는 씨앗을 맺지 못한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며 이렇게 꽃을 꺾는 일은 사라지는데, 우리 아이도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 들꽃 또한 꺾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수두룩하게 피어나서 수두룩하게 퍼지는 들꽃이라지만, 이렇게 목아지가 꺾이면 들꽃도 집꽃이나 텃밭 푸성귀꽃처럼 아파하는 줄 느낄 수 있을까. (4344.6.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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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심기 어린이


 첫째 아이는 곧 석 돌을 맞이한다. 석 돌을 맞이하는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 아이가 얼마나 몸과 마음으로 잘 느끼거나 아는가를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다. 아이가 모르는 일이란 없다. 어버이가 못 알아채거나 둘레 어른이 안 알아챌 뿐이다.

 아이가 물가를 거닌다. 그렇지만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둘레 어른이나 언니 오빠 가운데 물에서 저를 아끼면서 즐거이 놀아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다. 장난걸기는 장난을 거는 쪽에서는 재미날는지 모르지만, 장난을 받는 쪽에서는 못마땅하거나 싫을 수밖에 없다.

 멧골학교 어린이와 어른이 손으로 모심기를 하던 어제, 아이는 논둑에서 얼쩡거리기만 한다. 아이한테는 무논 또한 똑같은 물가이다. 아이한테 무논은 퍽 깊은 물이요, 진흙이 폭폭 빠지니 아이로서는 자칫 숨을 거둘까 두렵다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손으로 모를 알맞게 뜯어 진흙을 폭폭 밟으면서 물속에 손을 포옥 담그면서 살짝 쏙쏙 꽂는 모심기를 네 살 나이에 겪으면 퍽 좋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모심기가 되든 그냥 물놀이가 되든 헤엄치기가 되든, 아이가 물에서 걱정없이 놀거나 어울릴 수 있다고 깊이 느끼기 앞서는 논에 들어올 수 없겠지.

 볍씨에서 쑥쑥 올라온 모를 조금씩 뜯어 무논에 심으며 생각한다. 손모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쉴 수 없는 일이고, 서둘러 끝낼 일이다. 이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기운을 북돋는 누군가 있어야 하리라. 노래를 듣고 춤사위를 느끼면서 등판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잊고, 모를 꽂을 때마다 쿡쿡 쑤시는 허리를 잊어야 하리라.

 이제 거의 모든 논에서 논을 갈아엎거나 논삶이를 하거나 가을걷이를 하거나 볏짚을 털거나 하는 온갖 일은 기계가 맡는다. 모심기 또한 기계가 알뜰히 재빨리 해낸다. 손을 쓰는 일은 어리석다. 손을 써서 할 바에는 모든 일을 손을 써서 해야 할 테지. 자가용을 몰면서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없다. 아니, 자가용을 몰면서도 얼마든지 무논에 손모를 심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손모를 심는들 자가용을 모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면,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걷고 뛰고 달리고 서고 눕고 박차는 두 다리로 꼿꼿하게 살아가면서 흙과 물과 벼와 해와 숨을 손으로 받아들인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볼을 쓰다듬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 머리카락을 빗은 다음 두 갈래로 묶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품에 안는다. 모를 심은 손으로 아이를 눕히고 이불을 여미어 밤잠을 재운다. (4344.6.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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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손과 어린이


 둘째가 태어난 날부터 옆지기 어머니(아이한테는 할머니)가 시골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지낸다. 옆지기 어머니는 첫째하고 잘 놀아 주시기도 하고, 옆지기 미역국도 펄펄 끓여 주시기도 하며, 아버지가 집에서 치우지 못한 곳을 알뜰히 찾아내어 말끔히 치우시기도 한다. 무엇보다 둘째를 보살피는 몫을 많이 거들어 주신다. 두 사람이 함께 집일을 하니 아침부터 붙잡은 일손을 열한 시 반에 마무리짓는다. 한 사람이 홀로 집일을 하던 때에는 이른새벽부터 붙잡은 일손이 낮 한 시 즈음에 겨우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무리된다고 하나, 청소나 빨래까지 끝마치지는 못하기 일쑤.

 옆지기 어머니가 집일과 집살림을 크게 거들어 주시기 때문에, 한 시름 덜면서, 밤에 둘째 기저귀를 갈고 빨며 잠이 모자라 조금 지쳐 쓰러질 때에 걱정을 안 하면서 살짝 등허리를 펼 수 있다. 등허리를 펴며 곰곰이 생각한다. 우리 집 첫째랑 둘째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희 사랑하는 짝꿍을 만나 함께 살아가고 아이를 낳는다 할 때에,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몸이 몹시 나쁠 옆지기는 조금도 집일과 집살림을 거들지 못하리라 본다. 이때에 할아버지가 될 내가 첫째랑 둘째네에 찾아가서 일손을 거들어야 할 테지. 옆지기 어머니가 이 시골집에서 하는 일처럼 내가 첫째나 둘째네에서 이 일 저 일 쪼물딱쪼물딱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튼튼하게 살아야 한다. 오래오래 내 몸을 잘 건사해야겠다.

 할머니가 그림책 하나를 쥐어 아이한테 읽힌다. 나는 할아버지가 될 때에 이렇게 또 그림책 읽기를 할 테지. 내 아이한테 읽힌 그림책을 내 아이가 낳을 아이한테도 읽힐 수 있기를 비손한다. (4344.5.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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