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잠든 아이


 이른새벽부터 내내 놀면서 졸린 눈을 하던 첫째가 잠든다. 누워만 지내는 갓난쟁이 둘째 곁에서 알짱거리다가 둘째 팔을 잡고 노래를 부르더니 사르르 잠든다. 둘째는 제 팔을 붙잡은 누나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첫째는 동생이 바라보거나 말거나 모르는 채 깊이 곯아떨어진다. 옷장에 발을 뻗어 기댄 모습으로 입을 살짝 벌리며 잠든다.

 아이는 제가 어린 날 어떻게 놀며 복닥이거나 치대는지를 떠올릴 수 없다. 나는 내가 어린 날 어떻게 놀며 복닥이거나 치댔는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내 어머니나 아버지가 사진으로 몇 장 남겼다든지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떠올릴는지 모르나, 사진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는대서 환하게 되새기지는 못하리라 본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제 어버이가 날마다 바지런히 찍어서 갈무리하는 저희 사진을 나중에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나 마흔 해쯤 뒤에 돌아보면서 저희 어린 나날을 얼마나 어떻게 되새기거나 떠올리거나 아로새길 수 있을까. 생각이 짧고 마음이 얕은 어버이는 아이가 개구지거나 말똥쟁이처럼 굴 때에 쉬 나무라곤 하는데, 어설피 나무라는 바보스러운 어버이 몸짓은 훌훌 털고, 너희들 어여삐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 깃든 사랑을 곱게 껴안아 줄 수 있기를 빈다.

 깊은 밤, 이제 아버지도 드디어 찬물로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 빨래를 하려면 이제 얼른 눈을 붙여야지. (4344.7.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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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5 23:38   좋아요 0 | URL
아빠 사진사가 가장 보람있는 사진을 찍을때인것 같아요^^

숲노래 2011-07-16 05:22   좋아요 0 | URL
신나게 놀 때에 함께 같이 놀지 못하는 모습을 늘 되돌아봐요...

마녀고양이 2011-07-16 00:55   좋아요 0 | URL
아우, 정말 한참 이쁠 때네요, 둘 다 토실하니 얼마나 귀여운지.
아이들 깨물어주고 싶다는 말, 정말 실감나는군요.
저는 아이를 참 좋아하는데, 딸 하나에, 이제 12살이 되어버려 좀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두째를 지금 어째보기도 좀 힘들구. ㅠㅠ. 그냥 부러울 뿐이네요.

숲노래 2011-07-16 05:25   좋아요 0 | URL
열두 살이면 집안일도 많이 시키고 함께 놀기도 하고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이는 슬슬 혼자 놀고 혼자 다른 동무들 사귀러 나다니겠지요.. ^^;;;

무해한모리군 2011-07-16 09:13   좋아요 0 | URL
어머나 미쉐린 타이어 같은 팔이네요 ㅎㅎㅎ
너무 귀여워요..

숲노래 2011-07-16 14:23   좋아요 0 | URL
두 돌 때까지는 이 소시지가 그대로 이어갈 테고, 석 돌쯤 되어야 비로소 사라지겠지요~ 이 소시지는 살이 접혀서 땀띠가 늘 생기게 하지요 흠...
 

 

 



 책을 든 아이


 ㄱ. 일본 사진책 하나를 장만했다. 아이보다 살짝 어린 듯한 일본 아이가 잔뜩 찍힌 사진책이다. 일본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사람 맨눈으로 바라본 빛느낌’하고 동떨어지게 너무 짙은 빛느낌으로 사진찍기를 너무 좋아하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엇비슷할까. 아이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내내 함께 복닥이면서 여러 해를 살아가는 어버이라면 어떤 사진을 찍을까. 사진기를 손에 쥘 힘마저 없이 집일을 하면서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아이는 일본 아이가 찍힌 사진책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넘긴다. 옆지기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니, 아이가 부러워 하는지 모르겠구나 싶다. 그동안 아이를 찍은 사진에 몇 마디 말을 붙였던 글을 추슬러서 내 아이 사진책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느낀다. 열 권이나 스무 권이나 서른 권쯤? 둘레에서 우리 아이를 아끼는 고마운 분한테 한 권씩 드리자 생각하면서 작게 만들어 볼 수 있겠지.


 ㄴ. 저녁이 깊다. 아이는 잘 때가 되었으나 좀처럼 잠자리에 들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먼저 뻗어 아이를 부르지만 본 척 만 척이다. 누운 채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들어 몇 장 찍는데, 사진을 찍는 줄 모른다. 혼자 읽을 때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이것저것 이야기를 붙여서 읽거나 책에 적힌 글을 읽을 때 훨씬 좋아하지만, 고단한 몸으로 책읽히기를 해 주지 못하기 일쑤이다. 스스로 책을 쥐어 읽는 삶이 고맙다. (4344.7.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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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집게 어린이


 둘째 기저귀를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려고 나오면, 첫째는 어느새 알아차리고 신을 꿰고는 아버지를 따라나온다. 아버지가 기저귀를 한 장씩 들어 탕탕 털고 널 때면 아이는 빨래집게를 한손에 하나씩 쥐고는 딱딱거리다가는 한꺼번에 내민다.

 아주 어렴풋하지만, 내가 첫째만 한 나이였을 어린 나날, 어머니가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 때에 뒤에서 알짱거리면서 빨래집게를 쥐어 내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깡총 뛰어도 손에 닿지 않는 높다란 빨랫줄을 올려다보면서 어머니가 빨래를 너는 모습을 바라보았고, 이에 앞서 어머니가 빨래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으며, 다 널고 난 다음 빈 통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라든지, 저녁에 다 마른 빨래를 걷어 갤 때라든지, 늘 곁에서 함께 보았다고 느낀다. 한낮에는 빨랫줄에서 나부끼는 빨래를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하늘빛과 햇볕을 느꼈다.

 둘째가 크고 나면, 누나랑 어머니랑 아버지 빨래를 빨랫줄에 널 때에 이렇게 빨래집게통을 들고 따라나서면서 일손을 거들겠다고 할까. (4344.7.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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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7-03 09:34   좋아요 0 | URL
사름벼리가 참 재미있어 보여요. 산들보라도 많이 컸겠네요. 나서 한달동안 꽤 많이 크던데요. 사진으로 보면 차이가 확 느껴지지요~~

숲노래 2011-07-03 16:26   좋아요 0 | URL
둘째를 돌보고, 집 옮길 준비를 하느라 첫째랑 제대로 못 놀아서 날마다 많이 심심해 한답니다 ^^;;;;;
 

 



 칡잎에 감싼 버찌


 빗줄기가 거세게 퍼부으면서 전기가 똑 꺼진다. 두꺼비집을 열어 단추를 올려야 하겠기에 아이를 데리고 우산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다. 집 옆 밭을 빙 돌아서 간다. 두꺼비집이 이웃 밭 가장자리에 선 전봇대에 붙었기 때문이다.

 두꺼비집 단추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에 공무원들이 심은 벚나무마다 맺힌 버찌를 올려다본다. 알이 꽤 굵다. 까맣게 잘 익었다. 풀섶에서 칡잎을 몇 닢 딴다. 아이한테 칡잎을 들리고 버찌를 한 알 두 알 따서 올려놓는다. 어느새 아이가 두 손으로 감싸 쥘 만큼 모인다. 우리는 이만큼 먹고 나머지는 멧새가 먹으라 하자. 아이 손과 아버지 손은 버찌물로 짙파란 물이 들었다. (4344.6.2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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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숲길 어린이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면사무소를 다녀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논둑길로 접어든다. 더 빠른 길로 달리지 않는다. 자동차는 아예 들어서지 못할 논둑길에서 자전거를 달린다. 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벼리 걸을래.” 하고 노래한다. 아이를 자전거수레에서 내린다. 아이는 흙길을 하얀 고무신으로 달리다가 걷다가 달리다가 걷다가 멈추다가 노래하다가 걷는다. 논둑에서 자라는 풀은 어느새 아이 키보다 훌쩍 자랐고 어른 키만큼 된다. 이 풀이 처음 씨앗에서 뿌리를 내려 줄기를 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고작 두 달만에 이만큼 자란다. 아이한테 이 논둑길 풀숲이 어떻게 느껴질까. 논둑길 풀숲 사이로 걷는 아이 마음에는 무엇이 자랄 수 있을까. 아이 아버지는 요즈음 아이한테 그림책을 거의 못 읽힌다. 읽힐 만한 그림책이 잘 안 보인다. (4344.6.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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