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어린이


 어머니가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아이는 지난해에 이어 봉숭아물을 들였다. 그렇지만, 잠자리에서 몹시 번거롭게 여긴다. 하는 수 없이 손가락을 싼 비닐을 모두 벗긴다. 손을 씻긴 다음 다시 잠자리에 누인다. 지난해에는 곯아떨어진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였기에 이듬날까지 얌전히 지냈을까. 아이가 일찍 잠들었으면 아이 손가락과 발가락에 한결 짙에 봉숭아물이 배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들여다본다. 고작 한두 시간쯤 쌌을 뿐인데 물이 제법 곱게 남았다. 얼마나 갈는지 모르나 이만큼 얇게 남은 봉숭아물도 고맙도록 곱다. 한 살을 더 먹어 다섯 살에 봉숭아물을 들일 적에는 잘 견디며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으려나. (4344.9.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핀 꽂이 어린이


 아이가 핀을 스스로 꽂는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꽂던 핀인데, 이제는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나누어 꽂는 핀이 된다. 영화 〈말괄량이 삐삐〉에 나오는 삐삐처럼 되고픈지 머리카락을 둘로 나눈다. 핀을 머리카락에 주렁주렁 달면 그럭저럭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용케 머리카락을 찬찬히 그러모아서 핀을 꽂는다. 처음에는 덜렁덜렁했지만 이제는 콩콩 뛰거나 달려도 핀이 안 떨어진다. 아버지가 핀을 꽂아 준다 할 때에는 이렇게 꽂을 일이 없겠지. 아이 스스로 핀을 꽂으니까 이렇게 꽂고, 이렇게 꽂은 핀이 떨어지지 않게끔, 어머니나 아버지는 잘 여미어 아이 마음에 들도록 다시 꽂아 준다. (4344.8.26.쇠.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8-26 23:56   좋아요 0 | URL
자기 혼자 열심히 꽂는 모습이 정말 이쁘네요. ^^

숲노래 2011-08-27 06:08   좋아요 0 | URL
참 예쁜 아이를
자꾸 나무라는 듯해서
오늘도 새벽부터 괴롭습니다..
 



 빨래빨래 어린이


 아버지가 조용히 마당으로 나와서 조용히 빨래를 넌다. 아이는 어느새 알아차리고는 아버지가 빨래를 다 널 즈음 밖으로 따라나온다. 그러나 벌써 다 널었는걸. 아이는 한창 신을 꿰려 하는데 아버지 혼자 볼일을 마치고 “이제 들어가자.”라 말하면 얼마나 서운할까.

 아이를 불러 함께 빨래를 널 때에 아이는 온갖 심부름을 도맡으려 한다. 빨래를 한 장씩 집어 탁탁 털고 싶으며, 이 빨래를 줄에 널고 싶다. 줄에 넌 빨래에 집게를 집고 싶다. 세 가지 모두 아이가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통에서 빨래를 한 점씩 집어서 건넬 수 있으며, 줄에 넌 빨래에 걸상을 받치고 올라서서 집게를 하나하나 집을 수 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을 때에 아버지처럼 저도 어깨에 걸치고 싶다. 다 마른 빨래를 저한테 건네지 않으면 몹시 아쉽게 여긴다. 덜 말라 젖은 빨래는 주지 않는다. 덜 말라 젖었다 말해도 곧이듣지 않는다. 덜 말라 젖었더라도 제 어깨에 걸쳐 집으로 들어가겠단다.

 시골에서 한 해를 살아낸 이 집은 우리가 마련한 집이 아니다. 고맙게 얻어서 지낸 집이다. 도시에서 살던 나는 새 살림집을 알아볼 때에 언제나 씻는방 넓은 데를 살폈다. 빨래를 펼쳐서 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한쪽에서 아이가 물놀이를 하거나 함께 빨래놀이를 할 만큼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씻는방은 이불을 웬만큼 펼쳐서 빨래할 수 있을 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얻어서 지낸 이곳 시골집은 씻는방이 아주 좁다. 수도꼭지는 너무 낮다. 여느 빨래를 할 때조차 허리가 아프다. 물이 샌다. 아이를 씻기기에도 벅차다.

 너른 씻는방이 있던 도시 골목집에서 아이는 날마다 아버지하고 빨래놀이를 했다. 시골집으로 옮기고부터는 빨래놀이를 도무지 못 한다. 좋은 흙과 고마운 햇살과 반가운 바람과 싱그러운 푸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시골자락에서, 느긋하게 빨래하며 기쁘게 놀이를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날까. (4344.8.15.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돌을 밟다


 아이가 돌을 밟는다. 빨래대를 마당에 내놓을 때에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받치는 돌을 밟는다. 다른 때에 아이가 돌을 밟은 적이 있는지 모르나, 아이가 이 작은 돌을 밟고 선 일을 아버지로서 처음 본다. 이제 아이는 돌을 밟고 기우뚱기우뚱 하는 맛을 깨닫는가.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지만 아직 아이라 할 첫째이다. 아이는 돌을 밟기도 하고, 흙을 두 손으로 쓸어담아 뭔가를 하기도 하며, 웅덩이를 철벅철벅 밟기도 한다.

 옷이 지저분해지면 빨면 되지. 손이 더러워지면 씻기면 되지. 참말 어버이답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길을 옳게 걸어가자. (4344.7.27.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일쯤, 또는 오늘쯤 <배꼽 구멍>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번에는 둘째 갓난쟁이를 그림책 옆에 두며 사진을 찍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