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어린이

 


 새벽에 두 차례 물꼭지를 튼다. 남녘땅 시골마을 바깥벽에 붙인 온도계가 영 도 아래로 눈금 반쯤 내려갔다. 추운 날씨란 좀처럼 없어, 바깥 물꼭지를 친친 감싼 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모르는 노릇이라 한동안 물꼭지를 틀었다가 잠근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한겨울인 줄 떠올린다면 참 포근한 날씨이다. 가려운 얼굴 벅벅 긁는 둘째를 아이 어머니가 업는다. 네 살 첫째 아이가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콩순이 업을래.” 하면서 등에 인형을 얹고는 자그마한 포대기로 두른다. “나 이거 묶어 줘.” 하면서 앞끈을 여며 달란다.

 

 집 뒤꼍으로 나가 걷는다. 아이는 어머니를 쪼르르 따른다. 이러다가 무화과나무 앞에 선다. 두 알 아직 달렸다. 왜 못 보았을까. 한 알씩 딴다. 아이 한 알 어머니 한 알. 작은 무화과를 손에 쥔 아이가 동생 업은 어머니를 올려다보면서 웃는다. 그래, 쌀쌀한 날씨이니까 너도 콩순이를 업으면서 빨간 겉옷으로 뒤집어씌워 주었구나. 착하구나.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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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는 어린이

 


 춤추며 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나도 네 살 어린이였을 때 우리 아이처럼 춤추기를 좋아했을까? 우리 형은 네 살 어린이였을 때 신나게 춤을 추면서 노래하기도 했을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또 옆지기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이 네 살 어린이였을 때에는 어디에서 누구랑 무엇을 하며 놀았을까? 이렇게 예쁘게 춤을 추며 노는 우리 아이는 누구한테서 어떤 따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을까?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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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잡다


 이웃집에서 얻은 고구마가 두 상자 있는 줄 한참 깨닫지 못하다가 엊그제 비로소 깨닫고는 썩둑썩둑 썰어 고구마볶음을 한다. 살짝 여린 불에 기름 조금 두른 스텐냄비를 미리 잘 달구고서 볶는다. 튀김을 한 만한 기름이 없기도 하지만, 기름 많이 쓰는 밥을 안 좋아하니까, 으레 물로 볶았는데, 모처럼 한 번 기름 조금 둘러 고구마볶음을 했더니 아이가 아주 좋아하며 잘 먹는다. 어른 둘이랑 아이 하나 먹을 때에는 고구마 한 알이어도 넉넉하다. 고구마 두 알 썰어 볶으면 배불리 먹고 조금 남는다. 조금 남으면 두었다가 먹는다. 따뜻할 때에도 식은 뒤에도 괜찮다.

 겨우내 날마다 고구마볶음을 한 차례 하면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적어도 십이월 한 달은 너끈히 먹겠지. 십이월 한 달 너끈히 먹은 뒤에는 읍내 장마당에서 감자를 사서 감자볶음을 해 볼까.

 작은 상에 동그란 접시를 올리고 방에 들인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먹는데 둘째가 뽀르르 기어와서는 상 한쪽 귀퉁이를 잡는다. 스윽 끌어당긴다. 요놈, 제 누나처럼 갓난쟁이 때에도 힘이 좋네. 처음 한 번, 아버지가 상을 잡아당긴다. 다시 둘째가 상을 척 붙잡아 끌어당긴다. 이제 첫째가 상 다른 귀퉁이를 잡고는 당긴다. 3초쯤 둘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한 손만 쓰는 둘째가 두 손을 이기지 못한다. 둘째야, 너도 곧 이가 나니 젖떼기밥을 먹고 이 고구마볶음도 나중에 함께 먹으렴. 무럭무럭 크면 언제라도 해 줄 테니까.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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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랑 책놀이를


 옆에 앉은 누나가 저를 쳐다보지 않는다. 한참 엎드려 아버지를 보고 놀다가, 옆에 앉은 누나가 보는 책을 턱 하고 잡는다. 누나는 곧 몸을 옆으로 슬슬 돌린다. 책을 들어 동생이 잡은 손을 떨친다. 동생이 누나를 바라보며 끙끙 하지만 누나는 “싫어, 내가 보잖아.” 하고 말한다. 동생하고 나란히 누워 책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동생이 보던 책을 슬쩍 빼앗아 혼자 보며 놀기도 하는 누나. (4344.1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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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울순이


 아이가 돌울을 타고 오른다. 이제 아귀힘이며 다리힘이며 제법 붙었는지 돌울을 용케 타고 오른다. 우리 집하고 돌울을 마주한 마늘밭에서 비닐씌우기를 하는 이웃 할매 할배한테 인사를 하며 종알종알 수다를 떤다.

 저번에도 돌울을 타고 오르려던 아이였으나, 저번에는 오르지 못하더니 이제는 잘 타고 오른다. 이제 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퍽 잘 탄다. 다리힘과 아귀힘이 그만큼 세졌다는 뜻이다. 처음 올라가서 놀다가 내려올 때에는 돌울이 괜찮더니, 다시 돌울을 밟고 올라갈 즈음 와르르 무너진다.

 무너진 돌울은 다시 쌓아야 한다. 이 녀석, 돌울을 무너뜨리다니. 그래도 아이는 어디를 어떻게 밟아 돌울이 무너졌는가를 느끼려나. 돌울이 무너지며 미끄러질 때에 어떤 느낌인가를 받아들이려나. 아이가 한 살 두 살 더 먹을 무렵, 우리 집이나 가까운 멧자락 나무들을 타고 오를 만큼 될까 궁금하다. 나무를 타고 오르면 참 싱그럽고 포근하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 어린 나날을 길디길게 보내던 5층짜리 작은 아파트 동네에는 우람한 미루나무가 있었기에, 날마다 이 나무를 올라타면서 놀곤 했다. (4344.11.2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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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27 21:37   좋아요 0 | URL
으와 멋져요. 사진이.
으와 이뻐요. 울타리가, 지붕이, 햇빛이, 나뭇가지가, 그림자까지.
으와 돌울순이! 덕분에 사진도 울타리도 지붕도 햇빛도 나뭇가지도 그림자도, 빛나요. 반짝 반짝 반짝.

숲노래 2011-11-28 06:43   좋아요 0 | URL
씩씩하게 노는 아이가 참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