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문명 - 한 지구 시민의 생태 평화 순례기
마사키 다카시 지음, 김경옥 옮김 / 책세상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작은 숲과 작은 사람을 사랑하며
 [환경책 읽기 35] 마사키 다카시, 《나비 문명》

 


- 책이름 : 나비 문명
- 글 : 마사키 다카시
- 옮긴이 : 김경옥
- 펴낸곳 : 책세상 (2010.10.12.)
- 책값 : 9500원

 


  봄을 맞이한 들판은 금세 푸른 물결이 됩니다. 봄바람 가볍게 살랑일 때에는 푸르게 푸르게 물결칩니다. 마늘밭도 유채밭도 여느 풀밭도 눈부시게 반짝이며 물결칩니다. 아마 예전에는 보리밭 푸른 잎사귀가 함께 물결쳤겠지요.


  문득 돌이키면 지난날에는 ‘보리고개’라 했어요. 보리고개 넘기 벅찼다고 했어요. 그무렵에는 어떠한 삶이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떻게 끼니를 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내 어릴 적 학교에서 교사들한테서 ‘보리고개’ 소리를 듣고 이것저것 배울 때에 늘 궁금했습니다. 왜 굶고 왜 힘겨우며 왜 고된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고.


  나로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라 할 만한 1950∼60년대 이야기를 〈민족일보〉라는 신문 줄인판을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으며 되새긴 적 있습니다. 1950∼60년대 어두운 그늘 이야기가 〈민족일보〉라는 신문에 날마다 실렸는데, 이무렵 〈민족일보〉 첫머리를 채우는 기사 가운데 참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오늘은 몇 사람이 길에서 굶어죽었느냐’하고 ‘오늘은 몇 아이가 어버이 잃은 채 길바닥에서 우는가’예요.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길바닥에 몇몇씩 널브러졌다고 했어요. 갓난쟁이들이 포대기에 감기거나 바구니에 담긴 채 ‘제법 먹고살 만하게 보이는 집’ 문간에 놓이는 일이 흔하다고 했어요. 예전 신문을 찬찬히 읽다 보면, 시골에서는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풀이라도 뜯으며 목숨을 잇지만, 도시에서는 뜯을 풀조차 없으니 굶어죽는다 했어요.


.. 눈앞에 있는 이렇게 가까운 나라인데 보이지 않았을 까닭이 없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은 외면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그렇다면 왜 외면했던 것일까요? … 자연이 심하게 병들어 있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나무를 심었던 겁니다. 그랬는데 나무를 심는 일이 이토록 기쁘고 즐거운 일일 줄이야. 아프고 어두운 기운 같은 건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리고, 기쁨만이 산을 가득 채우게 되다니, 왜일까? … 그 나라들을 일부러 화나게 해서 반일 감정을 갖게 하고, 그 반발하는 감정으로 일본을 위협하게 해서,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군대를 가질 필요를 감정적으로 느끼게 하려는 연출입니다. 북한이 저질렀다는 일본인 납치 문제도 ‘헌법 개정 캠페인’과 연계해서 이용하고 ..  (12, 31, 118쪽)


  봄을 맞이한 들판을 바라보거나 쓰다듬으면서 생각합니다. 예전 사람들은 풀죽을 먹었다고도 하는데, 조금 억센 풀은 데쳐서 먹고, 여린 풀은 날것으로 먹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갓 돋은 잎은 여리니 그냥 먹을 만하지만, 날이 흐르고 흘러 차츰 억세지면 데치거나 삶아서 먹겠지요. 곡식가루 조금 쓸 수 있다거나 얻을 수 있으면 풀떡을 해서 먹겠지요.


  옆지기가 가루 반죽을 합니다. 풀물(녹즙)을 짜고 난 찌끼를 잔뜩 넣어 빵처럼 굽습니다. 마당가에서 뜯은 쑥으로도 빵을 굽습니다. 퍽 적은 곡식가루로 한두 끼니 넉넉히 먹을 만큼 됩니다. 아마 옛날 옛적에는 곡식가루보다 풀을 훨씬 많이 넣으며 떡을 하거나 빵처럼 구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붕에 기와를 얹는 제법 살림이 있다 하는 집이라면 쌀밥을 먹었겠지만, 지붕에 풀짚을 얹는 여느 흙일꾼 집이라면 으레 풀을 많이 먹었으리라 생각해요.


  들을 다니고 멧줄기를 드나들면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얻어요. 다만, 1950∼60년대는 한국전쟁 뒤끝이라 민둥산이 많고 숱한 나무들이 타죽거나 말라죽었을 테니, 들나물이나 멧열매 얻기는 퍽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땔감에 쓸 나무를 찾아야 해요.


..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대도시 빌딩 뒤는 쓰레기 산, 공장 굴뚝에서는 뭉게뭉게 가스가 피어오르고, 수많은 자동차가 달리고 있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별에서 서로 부를 차지하느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니 … 세계의 많은 도시와 시민 생활은 거의 모든 것이 환경에서 뺏어 온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산업이나 경제가 발달했다는 오늘날 자연이 받는 타격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숲을 파괴해 마을을 만들고 사막을 낳고 … “침략하겠습니다” 하고 전쟁을 시작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들 “자위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합니다 ..  (17, 64, 99쪽)


  예부터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흙을 일구었습니다. 임금이나 신하나 사대부나 권력자나 이런저런 몇몇 사람은 흙을 안 일구며 살았을 텐데, 100으로 치면 98에 이르는 여느 사람들은 아주 마땅히 흙을 일구며 밥과 옷과 집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땅을 넓게 차지하는 땅임자라면 쌀밥을 배불리 먹었을는지 모릅니다. 여느 흙일꾼이라면 쌀밥 먹기는 벅차고, 으레 나물죽이나 나물밥, 아니면 풀을 뜯어다 먹는 삶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부터 내려오는 ‘밥풀(먹는 풀)’과 ‘약풀’ 이야기란 여느 흙일꾼이 여느 삶에서 늘 찾아서 먹던 풀 이야기라고 느껴요.


  못 먹거나 안 먹는 풀은 없었겠지요. 다섯 가지 넘는 풀을 골고루 섞어 먹으면 아주 드센 풀도 잘 먹을 수 있다 하는데, 이런 앎이나 슬기란 옛 흙일꾼이 스스로 풀을 뜯어먹으며 몸으로 깨달은 이야기라고 느껴요. 백 가지나 이백 가지 풀을 알던 옛사람이 아니라, 천 가지 만 가지 풀을 알던 옛사람이리라 생각해요. 나무 또한 열 가지 스무 가지 아닌 천 가지 만 가지 나무를 알았겠지요. 따로 나무도감 풀도감 꽃도감은 없지만, 스스로 ‘나무·풀·꽃 도감’이 되어 들판이랑 멧줄기를 누비는 흙사람이었으리라 봅니다.


  흙은 참말만 합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흙은 제 속살을 훤히 보여줍니다. 겨울을 난 봄들과 봄메에 푸른 옷을 입히는 흙입니다. 봄들과 봄메는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목숨이 살아갈 수 있게끔 푸른 밥을 내놓는 흙입니다.

  쉰 살 일흔 살 백 살을 살아야 기쁜 삶은 아닙니다. 스무 살 마흔 살 예순 살을 살더라도 하루하루 아름답다고 느끼며 웃음을 누릴 때에 기쁜 삶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목숨이 늘어났다는 삶이 정작 즐겁거나 좋게 누리는 삶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즐겁게 얻는지 아리송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아름답게 누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밥과 옷과 집을 서로서로 예쁘게 여미는지 모르겠습니다.


.. 물고기가 바다에 안겨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갑니다. 물고기의 생활이 바닷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생활은 자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산에 나무를 심으면 산 어머니뿐 아니라 바다 어머니도 크게 기뻐해, 사랑을 샤워처럼 쏟아냅니다 … 쿠니의 평화란 도대체 무엇에 의해 지켜지는 것일까요? 군대일까요? 꽃이나 새일까요? 군대가 만들어낸 평화가 진짜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오키나와가 전쟁터가 되기 전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이 있고, 인생이 있고, 노래도 꽃도 과거도 미래도 있었을 겁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  (35, 37, 121, 124쪽)


  한삶 즐겁게 누리던 누군가는 나무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삶 곱게 누리던 누군가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한삶 예쁘게 누리던 누군가는 굳이 어떤 모습을 껍데기로 쓰지 않고 아지랑이나 무지개나 물방울이나 햇살이 되어 온누리를 살랑살랑 누비기도 합니다.


  풀 한 포기가 너른 목숨입니다. 빗망울 또한 너른 목숨입니다. 산들바람이나 한들바람도 너른 목숨이요, 뭉게구름이나 소낙비도 너른 목숨이에요. 목숨이 목숨을 북돋웁니다. 목숨이 목숨을 살찌웁니다.


  지구별은 송두리째 너른 목숨입니다. 다 다른 목숨이면서 다 같은 목숨입니다. 서로 돌고 도는 목숨입니다. 내 몸에 여우 넋이 깃듭니다. 비둘기 몸에 들쥐 넋이 깃듭니다. 제비꽃 몸에 지렁이 넋이 깃듭니다. 서로 사랑하며 어우러지는 목숨입니다. 서로 아끼며 한덩어리를 이루는 지구별입니다.


  다툼이나 싸움이 벌어지면 사람만 죽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사람부터 죽이지만, 사람을 비롯해 참새와 박새와 할미꽃과 진달래와 느릅나무와 뽕나무를 나란히 죽입니다. 정치다툼은 사람만 줄세우기를 시켜 들볶을 뿐 아니라, 땅과 냇물과 멧등성이마저 금을 죽죽 갈라 들볶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증으로 내세우는 학력 또한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들며 뒤죽박죽이 되게 합니다.


  오직 사랑이 아니라면 흔들리는 삶입니다. 오로지 사랑이 아니라면 무너지는 지구별 삶입니다. 그예 사랑이 아니라면 자꾸자꾸 미움과 시샘과 따돌림과 악다구니가 판치고 마는 지구별 살림살이입니다.


..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거부하고 있는 오바마 시에는 보상금이 내려오지 않아서 이런저런 공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자연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고 할 때, 그것은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뭇 생명들 위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 생태는 말뿐이고, 현대 문명의 속셈은 역시 돈을 좇고 있습니다 … 대도시의 고층빌딩도 대지가 받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숲에서 나온 물로 살아갑니다. 카펫보다 대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카펫의 번영을 위해 대지가 더럽혀지고 파괴되어서는 안 됩니다 ..  (51, 53, 87, 168쪽)


  마사키 다카시 님이 빚은 《나비 문명》(책세상,2010)을 읽습니다. 나비 한 마리가 큰물결 일으킨다는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한 오늘날입니다만, 막상 스스로 나비 물결 일으키는 줄 깨닫는 사람마저 없을 듯한 오늘날이 아니랴 싶습니다.


  아름다운 사랑도 나비 물결입니다. 슬픈 전쟁무기도 나비 물결입니다. 고운 속삭임과 눈맞춤도 나비 물결입니다. 차갑거나 메마른 돈벌이도 나비 물결이에요.


  좋은 생각은 나비 물결로 퍼집니다. 궂거나 슬프거나 미운 생각 또한 나비 물결로 퍼집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따사롭게 살아갈 때에, 나 스스로 따사로운 사랑 기운을 내 둘레에 퍼뜨립니다. 나 스스로 얄궂게 오늘 하루 내동댕이칠 때에, 나 스스로 모질거나 미운 기운을 내 둘레에 퍼뜨려요.


.. 어느 날 긴 여행에서 농장으로 돌아와 아, 집으로 돌아왔구나 싶었던 게 책상 앞에 앉아 창밖에 선 삼나무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밖으로 나가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 이제야 왔어요.” 하고는 나무를 부둥켜안았습니다. 그랬더니 나무도 기쁜 듯 “오오.” 하고 답해 줬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20년이나 서로 마주보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니, 원래 삼나무 숲이었던 곳에 집을 지었는데 똑 부러지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니 … “나도 병들어 있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 그루 벚나무였습니다. 깜짝 놀라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굵은 가지 몇 개가 잘려 있고, 나무껍질은 바짝 말라 바삭거리고 있었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뿌리 근처에는 회색약이 두껍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나무 둥치에 손을 갖다 대니 나무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 왔습니다 ..  (14∼15, 28쪽)


  나무한테 말을 걸면 나무가 대꾸를 합니다. 쑥풀한테 말을 걸면 쑥풀이 대꾸를 합니다. 종달새한테 말을 걸면 종달새가 대꾸를 합니다. 개구리한테 말을 걸면 개구리가 대꾸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한테 말을 거나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지내는 사람들은 누구한테 말을 거나요.


  어떤 말을 거는 삶인가요. 어떤 꿈을 마음속으로 일구면서 말을 거는 삶인가요. 어떤 사랑을 이루고픈 꿈을 마음속으로 가만히 보듬으면서 말을 거는 삶인가요.


.. 우리 몸은 온전히 우리가 먹은 것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먹은 건 무엇일까요 ..  (70쪽)


  하루하루 새 아침이 밝습니다. 날마다 새 새벽이 찾아듭니다. 나날이 새 햇살과 새 어스름과 새 달과 새 바람을 맞이합니다. 어제를 즐거이 누리면서 오늘을 즐거이 맞아들입니다. 오늘을 즐거이 누리고 나서 이듬날을 새롭게 꿈꿉니다.


  어떤 보배를 얼마나 내 손아귀에 쥐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꿈을 어떤 사랑으로 키우면서 어떤 삶을 어떤 하루로 누리느냐가 가장 대수롭습니다.


  살아가는 나날 언제나 배웁니다. 학교에 들어가야 배우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땄기에 다 배우거나 많이 배웠다 할 수 없습니다. 배움이란 삶이거든요. 살아가는 나날이 모두 배움이거든요.


  햇볕을 먹습니다. 햇볕 담은 풀을 먹습니다. 햇볕 담은 풀에 맺힌 사랑을 먹습니다. 내가 먹고 옆지기가 먹으며 아이들이 먹습니다. 사람은 돈이나 학력이나 아파트나 은행계좌를 먹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햇볕을 먹습니다. 사람은 물을 먹고, 바람을 먹습니다. 사람은 흙을 먹지, 아스팔트나 자동차를 먹지 못합니다. 사람은 햇살이 실린 무지개를 먹지, 원자력발전소나 전기를 먹지 못해요.


  내가 먹는 밥이 내 몸을 돌고 돌아 똥오줌 되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먹은 밥 그대로 우리 지구별 모습이 달라집니다. 내가 누리는 밥삶이 지구별이 앞으로 나아갈 모습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 가두는 이야기로는 지구별이 아름답게 이어갈 수 없습니다. 몸으로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가 되어야 비로소 지구별이 한껏 푸른 빛깔로 온누리에 맑게 빛납니다. (4345.4.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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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책 문지아이들 73
앨런 앨버그 지음, 자넷 앨버그 그림, 김서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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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공룡 책’이 재미없고 안 궁금해요
 [환경책 읽기 36] 앨런 앨버그·자넷 앨버그, 《지렁이 책》

 


- 책이름 : 지렁이 책
- 글 : 앨런 앨버그
- 그림 : 자넷 앨버그
- 옮긴이 : 김서정
-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2006.4.24.)
- 책값 : 7500원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면 지렁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미나 삽으로 땅을 파는데 지렁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퍽 무섭습니다. 지렁이가 살아가지 못하는 땅이란 사람 또한 살아갈 만하지 않은 데라 할 테니까요.


  몇 해 앞서부터 정부가 앞장서며 4대강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온나라 물줄기를 곧게 펴는 일을 벌입니다. 수많은 삽차가 땅을 파고 끝없는 짐차가 돌을 퍼붓다가는 시멘트를 어마어마하게 들이붓습니다. 작은 시골 냇물조차 이렇게 망가져요. 아마, 어느 누구도 땅속에서 살아가는 지렁이를 살피거나 들여다보거나 생각하지 않겠지요. 지렁이뿐 아니라, 쑥이든 억새이든 갈대이든 민들레이든 무어든 무어든 냇가나 물가나 냇둑에서 자라던 숱한 풀들이 뽑히거나 잘리거나 죽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겠지요. 피라미 송사리 죽든 말든 생각조차 않겠지요.


  도시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옛집 허물고 아파트를 올려세울 때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예전에 아주 가끔 아파트 공사터를 멀찌감치 바라본 적 있는데, 몹시 깊이 파헤친 땅속은 되게 무서웠습니다. 도무지 어떠한 목숨이라고는 깃들지 못할 듯한 흙덩이만 보였어요. 시뻘겋거나 시커먼 흙덩이도 틀림없이 흙일 테지만, 이 흙덩이를 밑에 깔고 높이높이 올리는 시멘트 건물이란 사람들 몸에 얼마나 좋을는지 알쏭달쏭해요.

 

 


.. 지렁이들은 보통 걱정없이 태평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지렁이로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답니다. 축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 것도 지렁이에게는 심각한 골칫거리예요 ..  (7쪽)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입니다. 예부터 봄이면, 꽃이 피고 새가 운다고 했어요. 우리 집 창호종이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아침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 빛살처럼 따사롭게 온 집안을 감도는 봄기운이 고맙습니다. 꽤 이른 새벽에는 참새가 재재거리며 날아다니고, 이윽고 참새보다 덩치 큰 새가 날아다닙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참새나 딱새나 박새를 잡아먹는 꽤 큰 새를 몇 마리 보았습니다. 아직 들판에는 누런 빛깔이 더 많은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옷으로 갈아입으며 들새와 멧새 먹이가 될 벌레도 많이 깨어나겠지요.


  그러나, 이런 꽃 피고 새 우는 봄을 오늘날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느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꽃송이나 새소리로 봄을 느끼던 일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달력을 보며 봄을 말할 뿐입니다.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봄을 들을 뿐입니다. 아가씨들 옷차림에서 봄을 본다 할 뿐입니다.


  참말 봄이란 ‘백화점 에누리’가 봄이 되어도 될까요. 참으로 봄이란 ‘초·중·고등학교 새학기’가 봄이 되어도 되나요.


  꽃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맞이하는 봄이란 얼마나 봄다운가요. 새를 느끼지 못하면서 맞아들이는 봄이란 얼마나 봄이라 할 만한가요.


  봄이 없는 데에 여름이 없습니다. 여름이 없는 데에 가을이 없습니다. 가을이 없는 데에 겨울이란 없습니다.

 


.. 지렁이야 세상 어디 가나 다 똑같지 않겠냐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  (18쪽)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찹니다. 봄바람이라고 마냥 따사롭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봄에도 찬바람이 붑니다. 아직 봄이니 살랑이는 따순바람과 함께 서늘한 찬바람이 함께 찾아듭니다. 그래도 봄인 만큼 햇살은 더 눈부시고 햇볕은 더 따뜻합니다. 후박나무 빨래줄 기저귀는 금세 마릅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마당에서 뒹굽니다. 더 따스해지고 더 포근히 바람이 불면, 이제 들판과 멧자락으로도 마실을 다니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두 해 자라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멧길을 타고 들판을 내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터전에서 좋은 살림을 일굽니다. 좋은 살림을 일구며 좋은 생각을 빚습니다. 좋은 생각을 바탕으로 좋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좋은 밥이고, 좋은 벗이며, 좋은 일입니다.


  좋게 어우러지면서 씨앗 하나 심습니다. 씨앗이 며칠쯤 지나 싹이 틀까 기다립니다. 싹이 튼 씨앗은 얼마나 씩씩하게 줄기를 올릴는지 다시 기다립니다. 줄기를 올릴 새싹이 언제쯤 새잎을 틔우며 씩씩하게 푸른 옷을 입을는지 거듭 기다립니다.


  꼭 모든 사람이 밭을 일구지 않아도 된다 여길 수 있지만, 다문 한 평이라도 스스로 밭을 일구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문 한 평조차 내 두 다리로 밟을 흙이 없고 만질 흙이 없으면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구나 싶습니다.


  흙에 뿌리내리는 풀을 보고 꽃을 볼 때에 내 마음속에서도 사랑이 자라고 믿음이 꽃피운다고 느껴요.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렁이를 보고 벌레를 보면서 내가 어디에 어떻게 기대며 삶을 누리는가를 돌아본다고 느껴요.

 


.. 지렁이는 태초에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이 땅 위에서, 아니지, 땅 속에서 살았습니다. 공룡들이 시끄럽게 쿵쾅거리고 다니면서 서로 치고받고 할 때, 지렁이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  (22쪽)


  앨런 앨버그 님과 자넷 앨버그 님이 함께 빚은 《지렁이 책》(문학과지성사,2006)을 읽습니다. 지렁이를 기르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가 이 지구별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이야기라든지, 지렁이 한 마리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이야기는 없는 책입니다. 그저 ‘지렁이 책’입니다.


  지렁이 그림이라지만, 지렁이마디를 그리지 않습니다. 지렁이 눈을 사람 눈처럼 그립니다. 그래도, 이 《지렁이 책》에 나오는 지렁이들은 예쁘장합니다. 참말 예쁘장한 지렁이들이 나옵니다.


.. 지렁이는 우리가 이 땅에 살기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지렁이는 땅의 제왕이랍니다 ..  (34쪽)

 


  아마 지렁이 스스로 저희가 대단하게 무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렁이가 무얼 먹으며 지구별 쓰레기를 없애는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가 누는 똥 때문에 흙이 살아난다는 대목을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돼요. 지렁이는 그저 아주 오래오래 이 지구별에서 이름도 자취도 훈장도 도서관도 딱지도 재산도 토지문서도 아무것도 없이 슬기롭게 살아왔어요. 때로는 삽날에 찍혀 죽고, 때로는 두더쥐한테 잡아먹히고, 때로는 가뭄에 말라죽고, 때로는 큰물에 휩쓸려 죽으면서, 이들 지렁이는 지렁이대로 한삶을 누렸어요.


  찬찬히 돌아보면, ‘공룡 책’보다 놀랍다 여길 만한 ‘지렁이 책’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먼 옛날 말라비틀어 죽었다는 공룡들 모습을 되살리려고 용을 씁니다. 공룡 화석을 모으고 공룡 박물관을 만듭니다. 공룡 유전자를 살피고 공룡뼈가 어떻다는 둥 떠듭니다. 공룡 그림책을 만들고 공룡 영화를 찍어요.


  참 웃기지 않나요. 공룡이 지구별에서 무얼 했다고 공룡을 그렇게 떠들거나 섬기거나 노래하나요. 콩쾅거리며 시끄럽게 싸우며 살던 공룡은 몽땅 숨을 거두었다는데, 왜 이들 공룡을 그토록 찾고 살피며 그리려 하나요. 마치, 사라진 옛 문명을 되새기는 일하고 같지 않나 싶어요. 화산재를 맞고 사라졌다는 옛 문명을, 서로서로 끔찍하게 죽이고 죽으며 사라졌다는 옛 나라들을, 엄청나게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되살리려는 일하고 다 똑같구나 싶어요. 그저 전쟁으로 일삼던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왜 자꾸 들먹이면서 되새기는데다가 ‘역사’라는 이름까지 붙여 아이들한테 가르치는지 모르겠어요. 서로 죽이고 죽던 일이 어떻게 역사가 되거나 학문이 될 수 있나요.


  나는 공룡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오늘 아침 들은 새소리가 서로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인가 하는 대목이 궁금해요. 나는 우리 뒤꼍 땅뙈기에서 지렁이가 몇이나 살아가는지 궁금해요. 땅이 조금 더 폭신폭신해질 무렵 밭갈이를 할 때에 지렁이가 얼마나 나올는지 궁금해요.


  고구려 아무개 임금님이 땅을 얼마나 넓혔는지 하는 이야기보다, 고구려 무렵에는 어떤 지렁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발해라든지 옛조선 이야기보다 발해나 옛조선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공룡들이 서로 죽이고 물어뜯을 무렵 지렁이는 어떠했을까 하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라는 마을에서 살던 지렁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땅 영광과 기장이라는 마을에서 살아갈 지렁이는 어떤 모습일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에도 지렁이가 있을까요. 부산에도 지렁이가 사는가요. 도시에서 지렁이들은 어떻게 삶을 버티는가 궁금합니다. 헬리콥터로 온 들판과 멧자락에 농약을 뿌려대는데, 이런 판에 지렁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4345.3.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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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2-03-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이들도 이책 참 재밌어했어요.
손에 착 들어오는 책크기도 알맞구요.^^

숲노래 2012-03-13 18:15   좋아요 0 | URL
네, 참 재미나게 엮었어요.
그래도 어딘가 한 구석 아쉬운 대목이 있어요.
재미나게만 엮느라
막상 지렁이가 무언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도 밝히지 못했어요...
 
숲속의 꼬마 인디언
루터 스탠딩 베어 지음, 배윤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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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환경책 가운데 하나인 <숲속의 꼬마 인디언>인데 아마 2쇄를 못 찍은 듯싶다. 더구나, 이 책은 '좋은 환경책'으로 뽑히는 일조차 아직 못 보았다고 느낀다. 이 밤에 문득 너무 슬프다고 느낀다. 2005년에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고 느낌글을 썼지만, 오마이뉴스에만 걸쳤을 뿐 아무 데도 올리지 않았던 옛글을 새로 손질해서 올려 본다. 부디, 늦게나마 이 책이 제대로 읽히며 받아들여지기를 꿈꾼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
 [환경책 삶책] 루터 스탠딩 베어, 《숲속의 꼬마 인디언》


 - 책이름 : 숲속의 꼬마 인디언
 - 글쓴이 : 루터 스탠딩 베어(오타크테)
 - 옮긴이 : 배윤진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5.3.19.)
 - 책값 : 8500원

 


 (1) 자연과 사랑


  해마다 오월이면 시골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논마다 모를 심어 물 가득 댄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논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제 시골은 더할 나위 없이 바쁜 철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모내기철은 지난날하고 견주어 무척 이르다고 합니다. 모내기는 보리를 다 거두어들이고 털고 밭을 간 뒤에야 했다고 하는데, 요사이는 거의 달포쯤 일찍 모내기를 한다고 할까요. 날씨와 철을 거스르고 그저 ‘빨리빨리, 많이많이’를 외치는 도시 물질문명 흐름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얼른 심고 얼른 거두어 돈을 더 벌자’는 데로 이어진다고 할까요.


.. 우리는 자연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배워 나갔기 때문에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은 우리에게 편히 먹고 살아가라고 그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내어주는 것 같았다 ..  (16쪽)


  맹자를 낳아 가르친 어머님은 아이가 자라는 삶터를 참으로 깊이 살펴야 한다고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그래, 우리는 어릴 적부터 ‘맹자 어머니가 집을 세 차례 옮긴’ 이야기를 듣고 자라요. 그러면 요즈음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이를 낳는 어버이나,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둘레 삶터를 어느 만큼 생각하며 살아가나요?


  사람들이 착하게 어울리고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삶터라야 아이들이 사람답게 잘 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북돋우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더 이름높은 대학교에 잘 들어가도록 할 만한 터전이 되는 데에 아이들을 몰아넣는 어버이요 어른인가요?


  돈을 버는 일자리 얻는 어른들 일터를 보아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날 삶터는 위와 아래와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시멘트 도시입니다만, 일터 또한 옆 부서 사람도 모르고 옆 회사 사람도 모릅니다. 옆 가게에 누가 어떤 꿈과 사랑으로 일하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옆 건물은 어떤 이야기 감도는 터전인지 살피지 않아요.


  어린이나 어른이나 둘레 삶터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나 ‘나눌’ 만한 사랑이란 없어요. 오로지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더 빨리 성공하고 떵떵거리면서 아늑하게 사는 일이야’ 하는 대목만 되풀이합니다. 풀과 흙과 햇살과 냇물을 곁에 두면서 사랑을 배우던 마음(자연스러움을 배우는 마음)은 어느 결엔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어요.


  《숲속의 꼬마 인디언》이라는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인디언들은 자연이 지혜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자연의 현명한 법칙을 깨우쳤다(17쪽)”고 말합니다.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해와 달을 보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이 촉촉한지 메마른지를 느끼면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벌레와 새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아도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옛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풀과 열매와 나무를 찬찬히 살펴서 ‘사람이 먹어 좋은 푸나무 열매와 곡식’을 알아냈습니다. 이 모두 자연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얻는 슬기이자 깨달음입니다.


.. 백인들이 말을 길들일 때 보면 거칠고 잔인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길들일 때에는 말에게 절대로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 온순하게 길들인 조랑말은 학대를 받으며 길든 녀석보다 훌륭했고 믿음직스러웠다 ..  (42쪽)


  “우리가 말을 잘 아는 만큼 녀석도 우리를 참 잘 이해했다”는 수우겨레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글쓴이는 “수우족에게는 욕도 없고 흉악한 말도 없다. 나는 백인들이 말몰이를 대대적으로 할 때마다 동물들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을 보았다. 백인들은 혀를 간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48쪽)” 하고 덧붙입니다.


  참말, 지난날 흰둥이랑 오늘날 한겨레랑 엇비슷합니다. 너무 거친 오늘날 한겨레예요. 너무 메마르고 차가우며 쌀쌀맞은 오늘날 한겨레입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끔찍하게 거칠고 메마릅니다. 학교도 집도 마을도 학원도 회사도 국회의사당도 신문사도 방송국도 …… 어디를 보고 어디를 찾아가도 차가우며 쌀쌀맞습니다.


  ‘혀를 간수하는 길’을 배우지 못한 흰둥이들 맞습니다. 이들 흰둥이는 혀뿐 아니라 손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합니다. 둘레 사람을 괴롭히고 끔찍하게 죽이는 무기를 엄청나게 만들어서 잘못도 죄도 없는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모질게 때려잡고 죽입니다. 흰둥이들은 머리 간수하는 길마저 배우지 못해서, 그 많은 책과 학문으로 이뤄낸 지식과 기술을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즐겁게 두루 나누는 데’에 쓰지 않고 돈만 많이 벌고 남보다 높고 큰 자리에 올라앉으려는 데에만 씁니다. 이를테면 경제학과 법학을 훌륭하게 공부한 이들이 이런 지식으로 ‘대기업 세금 안 내기’ 하는 일에 머리를 빌려주듯 말입니다.


.. 초원뇌조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춤을 추는 사실에서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새벽녘이야말로 생명체들이 하루 활동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시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밤새도록 춤을 추고서 해가 뜰 무렵 잠자리에 드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 인디언과 그들이 기르는 동물이 말이나 눈빛만으로도 서로 잘 헤아리는 사이라는 것은 신비로울 것도 없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85, 202쪽)


  사람도 목숨이요, 짐승도 목숨입니다. 어느 목숨이든 햇볕과 함께 따사로운 사랑을 북돋웁니다. 햇살을 누리며 너그러운 꿈을 빛냅니다. 햇빛을 나누며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매질이나 손찌검’만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아요. ‘막말이랑 거친 몸짓’으로도 아이들을 들볶아요. 돈으로도 아이들을 괴롭히고, 학벌과 학원과 시험공부로도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체벌은 ‘사랑스러운 매’가 아닌 ‘폭력’입니다. 체벌을 안 한대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해야 사랑이 됩니다. 밥을 안 굶긴대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담은 밥을 차려야 사랑입니다. 예쁘장하게 옷을 입히고 자가용을 태운대서 사랑이지 않아요. 참으로 사랑스레 아이들을 얼싸안고 아낄 수 있을 때에 사랑이에요.

 


 (2) 자연과 사람


  아이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려 할 때에는, 더 낫다 싶은 교육법이라든지 교수법이라든지 학원이나 학교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더 낫다 싶은 교재와 교육과 학교와 시설을 살피기 앞서, 어버이부터 스스로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려는 길을 찾는 분은 뜻밖에 몹시 드물구나 싶어요.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안 가도 되거든요. 아이들은 반드시 학원을 다녀야 더 똑똑해지거나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거든요.


.. 아이들은 자라면서 결코 호되게 비난을 받거나 심한 체벌을 받지 않았다. 그 까닭은 수우족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호된 질책이나 매질이 효과가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익히기 전에 먼저 그것을 만드는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했다 ..  (18, 24쪽)


  책을 읽기 앞서 ‘무언가 읽을 때에는, 이렇게 읽은 이야기를 내 삶으로 받아들여 하나씩 즐거이 옮기는 몸가짐’을 익혀야 좋다고 느껴요. 책을 더 많이 읽는 일은 대수롭지 않아요. 한 권을 읽든 몇 쪽만 읽든, 즐겁게 받아들여 즐거이 살아갈 수 있어야 아름답다고 느껴요.


  언제나 그래요. 책을 읽는 됨됨이가 먼저예요. 책으로 얻는 지식과 기술은 나중이에요. 활과 화살 다루는 법을 먼저 익힌다면, 활과 화살을 잘못 쓰거나 나쁘게 쓸까 걱정스럽고 근심하고 말아요. 책을 읽어 지식과 기술을 얻는다고 할 때에도 ‘어떻게 쓸는지’를 배우지 못하거나 깨닫지 않는다면 엉뚱한 데에 쓰거나, 그저 지식과 기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고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요. 저를 낳아 기른 아버지와 어머니도 ‘어떤 일을 잘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왜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못하기 마련이고, 하다 보면 시나브로 익숙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어떤 일이건 배움이건 기술이건, 이런 일이나 배움이나 기술을 몸에 익히는 까닭을 헤아리고 받아들여야 즐거운 삶으로 거듭나요.


..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둘도 없는 스승이었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학교를 마치고 나면 졸업장이라는 종잇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식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름의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었다 ..  (62쪽)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살아가는 모든 길’을 가르치고 물려줄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한 사람으로 사랑스럽고 착하게 살아가는 좋은 길’을 배우며 이어갈 사람이에요.


  아이한테 말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바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쓰는 말이 달라집니다. 어버이가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면 아이들도 아주 마땅히 옳고 깨끗하며 아름다이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그릇되고 잘못되며 비뚤어진 넋으로 일을 하면서 이웃을 괴롭힌다면, 아이들도 이 모습과 버릇을 따르고 배우기 일쑤입니다.


  어버이는 둘도 없는 스승이에요. 어버이는 가장 좋은 길동무예요. 어버이는 곁에서 늘 마주하는 이슬떨이예요. 어버이는 언제나 첫손으로 꼽을 살붙이예요.


  아이들 앞에서 둘도 없는 스승이 되어야 할 어버이예요. 아이들을 ‘공부 지옥’과 ‘시험 지옥’에다가 ‘학원 감옥’으로 옭아매어서는 안 될 어버이예요. 아이들이 저마다 슬기와 꿈과 사랑을 뽐내고 빛내는 길을 찾아야 할 어버이예요.


.. 백인들은 몸이 아프면 쓰디쓴 약을 먹고 비싼 약값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백인이 인디언처럼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의 건강은 지금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자연을 업신여기며 살아가고, 그 결과로 어렵게 번 돈을 약값으로 쓰고 있다. 우리 인디언 의사들(주술사)은 가난하지만 백인 의사들은 부자다 ..  (109쪽)


  아름답게 살아야 좋은 나날이에요. 돈을 벌어 돈을 쓸 때에는 하나도 아름답지 못한 나날이에요.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큰돈을 주고 사서 먹는다는 요즈음이에요. 몸을 살리는 밥도 약도 뭣도 다 바깥에서 사다 먹는다는 오늘날이에요.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를 수놓는 온갖 먹을거리 가운데 ‘우리 몸에 나쁘다’ 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가게에 가득 늘어놓은 먹을거리 가운데 ‘이것을 먹으면 우리 몸이 나빠져요’ 하고 외치는 먹을거리는 하나도 없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병이 참 쉽게 납니다. 몸이 금세 지칩니다.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갑니다.


  참 궁금합니다. ‘가공식품을 먹는다고 죽는 일이란 없다’고 하지만, 곰곰이 살피면, ‘가공식품을 먹는 사람은 천천히 죽음길로 가는 꼴’ 아닌가요. 몸속에 나쁜 것들이 차츰 쌓이면서, 아주 돌이킬 수 없는 죽음길로 가는 모양새 아닌가요.


  저마다 스스로 하고픈 일을 찾아서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저마다 일하는 곳을 스스로 아주 즐겁게 여기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는 하는지 몹시 궁금해요. 회사라 하니까 다니고, 어쩔 수 없이 얽매여, 이제는 이냥저냥 길들여진 채 도시에서 돈벌이 쳇바퀴에 빠진 삶은 아닌가 궁금해요. 연애요 여행이요 술이요 담배요 하지만, 막상 사랑도 나들이도 좋은 놀이조차도 아닌 흐리멍덩한 나날은 아닌가요.


  사람들마다 꿈을 품으면 좋겠어요. 부질없는 욕심이 아닌 ‘사랑스레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마음’을 ‘내 삶을 흐뭇하게 받아들이며 즐기는 마음’으로 일구면 참 좋겠어요. 숨을 쉴 수 있는 하루로도 고맙고, 두 다리 멀쩡하다는 나날로 고마우며, 팔 하나 제대로 못 쓰더라도 한 팔이 있으니 고맙다고 여길 줄 알면 좋겠어요. 한 달 벌이가 30만 원이면 어떻고 50만 원이면 어떻고 1000만 원이면 어떻습니까. 많이 벌어서 많이 쓰기보다는 알맞게 벌어서 즐겁게 쓰는 삶이 훨씬 좋구나 싶어요. 더 벌어서 더 쓰기보다는 내 삶을 누릴 만큼 벌어서 기쁘게 쓰는 삶이 매우 즐거우리라 느껴요.


.. 우리에게는 빵도 파이도 케이크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먹을 과일과 식물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소박하게 살았지만 건강하게 잘 살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깡통에 몇 달씩이나 저장한 음식을 먹을 일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보관한 음식은 생기가 없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  (124쪽)


  좋은 삶을 생각하면서 사랑할 때에는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3) 자연과 사랑


  읍내 나들이를 하다가 여든 가까운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길에서 차를 잡습니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버스를 놓치신 듯합니다. 읍내로 가는 길에 다니는 차는 얼마 없고, 할머니 앞에서 차를 세워서 태워 주는 사람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할머니는 “버스 타문 젊은 사람들은 없어유. 죄 칠십 노인들뿐이지. 젊은 사람들은 살면 안 돼유. 뭐, 해먹을 게 읎으니께유.” 하고 말씀합니다.


  읍내로 가는 동안 할머니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머니는, 벌이도 시원찮고 꿈도 이루기 어려우며, 일마저 고된 시골에 젊은 사람들보고 와서 살라 할 수 없답니다. 젊은이보고 시골로 오라 해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이곳 시골 언저리를 거의 벗어난 적이 없는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니 듣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습인걸요. 오늘 우리 삶이 이렇거든요. 할머니는 “도시로 나가면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아무도 안 돌아오잖유. 먹고살기 힘들어도 다 도시로 가야지.” 하고도 덧붙입니다.


.. 겨울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재미있게 놀았다. 겨울은 길었고 지독하게도 추웠다. 온 세상이 모두 눈으로 뒤덮였고, 강은 꽁꽁 얼었다. 그래도 우리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잘 놀았다 ..  (159쪽)


  추우면 추운 대로 놀면 됩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일하면 좋습니다. 춥다고 방에서 웅크릴 까닭 없고, 덥다고 그늘에서 땀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더위도 즐기고 추위도 즐겨야 사람 몸은 튼튼해집니다. 우리 몸을 튼튼히 가꾸면 우리 마음도 차츰차츰 튼튼해집니다.


  봄입니다. 이 봄에는 들과 멧자락에 온갖 풀과 꽃이 잘 자랍니다. 이 풀과 꽃은 우리한테 좋은 나물이 됩니다. 맛은 심심하다고 하겠지만 원추리 잎을 따서 먹는 나물은 우리 몸에 참 좋습니다. 두릅도 좋습니다. 홑잎나물도 좋습니다. 죽나무도 좋고 돈나물도 좋습니다. 고사리와 도라지와 쑥과 냉이만 있지 않아요. 멧자락과 들판에 나는 모든 풀이 밥이자 약입니다. 이런 풀을 먹으면, 이렇게 철에 맞추어 스스로 자라나는 열매를 먹으면 몸에 탈이 날 일이 없습니다. 인삼을 먹거나 녹용을 안 먹어도 좋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씀바귀 뿌리를 캐서 먹어 보셔요. 곰쓸개보다 훨씬 우리 몸을 아늑하게 보살펴 줍니다.


.. 추장은 부족 사람들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봉사해야 한다. 그는 철저하게 이타적이어야 하고,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베풀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 전쟁에 나가는 것만으로 그 용기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희생을 할 수 있고, 사적인 이득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 용감해야만 한다 ..  (171쪽)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더 큰 시험을 받았다”고 하는 수우겨레라고 합니다. 수우겨레 사람들이 시험받는 용기란, 전쟁터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일로만 시험받을 수 없고, 여느 때에 이웃을 얼마나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는가로 헤아린다고 합니다.


.. 그 순간 난 아버지한테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 사랑했고, 나도 아버지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한테 진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  (212쪽)


  처음이자 마지막으로(그 뒤로는 흰둥이들이 수우겨레가 살던 땅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는 바람에) 들소사냥을 나간 우뚝선곰(글쓴이 이름. 수우겨레 사람들은 태어날 적에 어버이한테서 이름을 받지만, 나중에 크면 제 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처음에 ‘오타쿠테(적을 많이 죽인 이)’였지만 나중에 ‘우뚝선곰’으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은, 어린 나이에 가까스로 새끼 들소를 잡았다는데, 화살을 다섯 발 쏘았답니다. 이때 어린 아들은 스스로 생각합니다. 훌륭한 사냥꾼이라면 한 발에 잡았어야 했는데, 다섯 발이나 쏜 일이 조금 부끄러워 나머지를 감출까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아버지를 보자 사라졌고, 거짓말을 해서 내가 잘났다고 우쭐거리기보다는, 부끄럽다 하더라도 떳떳해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글쓴이는 흰둥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면서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내놓으며 “백인 소년 소녀들이 이 책을 읽고 인디언 소년 소녀들에게 좀더 친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고 밝혀요. 아마 인디언 동무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동무를 사랑하고 따스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겠지요. 지구별 사람뿐 아니라 지구별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 모두 곱게 아끼며 보살필 수 있기를 꿈꾸겠지요.


  곧, 이웃을 마주할 때에 나 스스로 살갑고 따뜻한 마음이라면, 서로를 다치게 하거나 해코지할 일이 없습니다. 전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꼼수나 꿍꿍이도 자리할 수 없어요. 수우겨레 마지막 추장으로 삶을 마감한 ‘우뚝선곰’은 흰둥이들이 수우겨레 삶과 발자국을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한편,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만가만 들려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살갑고 따뜻하게 어울리며 지낼 수 있기를 바랐겠다 싶습니다.


  《숲속의 꼬마 인디언》을 한국말로 옮긴 배윤진 님은 책끝에 한 마디 붙입니다. “글이라는 것을 꼼꼼하고 세밀한 논리와 설명의 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세련되지 못한 흐름이 나타나면 이상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촘촘한 백인 문화에 동화된 것이 아닐까(223쪽)”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답게 한국땅에서 즐겁게 살아가면 됩니다. 나는 나대로 내 보금자리에서 예쁘게 얼크러지면 됩니다. 스스로 가장 즐겁고 살가우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에 해맑게 빛나는 나날입니다. 내 터전도, 내 마을도, 내 살림집도, 내 넋을 곱게 빛내며 곱게 돌볼 수 있습니다.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흰둥이라고 하지요? ‘혀 간수하는 법’을 못 배운 한겨레로 바뀌며 슬픈 벼랑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혀뿐 아니라 손과 머리와 마음 간수하는 길을 잃거나 잊으며 바보스레 나뒹굴 수 있습니다.


  좋은 새봄을 좋은 새봄으로 느껴 맞이하고 싶습니다. 좋은 살붙이를 좋은 살붙이로 껴안으며 새날을 기쁜 새날로 누리고 싶습니다. 나는 내 나이가 늘 좋습니다. 나는 내 동무와 이웃이 언제나 좋습니다. 나는 내 일거리가 좋고, 내 얼굴 팔다리 몸뚱이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고맙고, 내가 돌볼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4338.5.25.물./4345.3.1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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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 - 부모의 딜레마
그레그 비티 지음, 김윤아 옮김 / 잉걸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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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에 갇히면 누구나 죽은 목숨
 [환경책 읽기 30] 그레그 비티,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

 


- 책이름 :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
- 글 : 그레그 비티
- 옮긴이 : 김윤아
- 펴낸곳 : 잉걸 (2006.2.15.)
- 책값 : 8500원

 


  오늘을 살아가는 적잖은 사람들은 예방접종이 아이와 어른한테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예방접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를 살갗으로 못 깨닫는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수많은 자동차가 득시글거리면서 배기가스를 끊임없이 만들어요. 도시를 살찌우는 전기를 만드는 데는 모두 시골입니다. 인천에도 아주 커다란 화력발전소가 있습니다만, 도시 바깥쪽에 멀찍하게 떨어졌어요. 쓰레기를 파묻는 데도 도시에서는 변두리에 마련해요. 서울은 아예 인천으로 쓰레기를 내다 버려요. 아마 도시 안쪽에 쓰레기를 파묻거나 태우고, 도시에서 쓰는 전기를 몽땅 도시에 발전소를 지어 만들어야 한다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모조리 미치고 말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위해·위험 시설’ 거의 모두 도시 바깥에 있으니, 도시사람은 이나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해·위험 시설’은 도시에 없다지만, 무엇보다 사람 목숨을 깎아먹는 자동차가 집집마다 한두 대씩 으레 있습니다. 자동차를 몰면 한결 빠르거나 느긋하다 여기고, 자동차에 짐을 실어 나르면 수월하다 여깁니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나 환경호르몬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동차에 타면 왜 졸려 하거나 갑갑해 하는가를 살피지 못합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몸이 여리거나 아픈 어른들이 자동차를 타면 멀미를 하거나 속이 메스껍거나 머리가 어지럽거나 힘들다 하는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둘째, 셋째 아이를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육시설을 이용하려 했을 때,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 예방접종에 대한 강요는 근본적으로 위헌이고 불법이며, 그 자체로 의심스런 일이다. 이런 처치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선전하면서 왜 굳이 압력을 행사한단 말인가 … 설마 하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예방접종 대상’ 전염병의 대다수가 충분히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에게서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유용한 백신이 있다고 가정하기 어렵다. 또한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 측면에서 백신이 뚜렷이 기여한 바는 없었다. 질병이 확산된 전체 규모는 연구의 부족으로 완벽하게 밝혀지진 않았으나, 결국 백신의 사용으로 오히려 죽음과 고통이 널리 퍼졌다 ..  (11, 201쪽)


  시골에서 살아가더라도 자동차를 자주 몰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때하고 똑같습니다. 다만, 시골에는 숲이 있고 들판이 있으며 멧자락과 냇물이 있어요. 이들 자연이 사람 몸을 씻어 주고 달래 줍니다. 그나마 도시보다는 낫지만, 자동차를 버리지 않고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도루묵이 되고 말아요.


  시골에서 살아가며 텔레비전을 즐긴다든지, 셈틀을 너무 오래 켠다든지, 온갖 전기·전자제품을 많이 거느리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양새하고 똑같아요. 나 스스로 내 목숨을 살리지 않는 셈이에요.


  더없이 마땅하지만 사람들이 더없이 마땅히 잊는 일이 많아요. 무엇보다, 사람은 목숨덩어리입니다. 목숨덩어리인 사람은 다른 목숨을 먹어야 살아갑니다.


  밥이란, 벼 열매입니다. 벼 열매를 깎은 쌀을 지을 때에 밥입니다. 벼 열매란 벼라는 풀에서 얻는 열매요, 벼라 하는 풀이 살아낸 목숨입니다. 소나 돼지나 닭과 같은 고기만 목숨이 아닙니다. 벼도 목숨입니다. 배추도 무도 당근도 양파도 상추도 오이도 모조리 목숨이에요.


  장미꽃도 목숨이고 동백꽃도 목숨이에요. 진달래도 목숨이도 민들레도 목숨이에요. 목숨 아닌 꽃이나 풀이나 나무란 없어요. 사람들은 바로 이 목숨을 먹으며 제 목숨을 건사해요.


.. 공식적인 추정에 의하면 호주에서는 매년 약 18000명의 사람이 질병이나 상해가 아니라 병원에서 받은 의학적 처치 때문에 사망한다 … (미국에서는) 사망과 피해에 대한 보상금으로 수억 달러가 지급되었다. DPT백신의 가격은 1982년 11센트에서 1987년 11달러 40센트로 올랐다. 백신 제조사들이 사망 및 피해 보상금으로 접종자 1인당 8달러를 비축했기 때문이었다 … DPT백신 부작용에 대한 보상금액은 꾸준히 증가하여, 1978년 1000만 달러에서 1985년 31억 6000만 달러가 되었다. 이는 1985년 민간 시장에서 1회 접종당 4달러 25센트로 판매된 모든 DPT백신 총 판매액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  (22, 63쪽)


  사람은 목숨과 함께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과 함께 물을 마십니다. 물과 함께 햇살을 먹습니다.


  곧, 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든 도시에서 살아가든, 목숨(밥)·바람·물·햇살, 이렇게 네 가지를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옳게 먹지 않으면 곧바로 죽어요. 숨이 끊어져요.


  맑은 바람을 1분 아닌 10초만 쐬지 못해도 숨이 막힙니다. 맑은 물을 하루만 마시지 못해도 목이 졸립니다. 따순 햇살을 하루만 쐬지 못해도 온몸이 파리해집니다.


  2000년대 대한민국은 청계천에 수도물이 흐르게 한다든지, 크고작은 물줄기에 시멘트를 처바르는 짓을 할 만큼 한갓지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멧골짝부터 비롯해서 천천히 흐르는 냇물을 어디에서나 손으로 떠서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는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향긋하게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따순 햇살을 마음껏 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모든 살림집은 텃밭을 일구어야 해요. 한 평이든 두 평이든 모든 살림집에는 텃밭이 있어, 식구들 먹을거리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스스로 지어 스스로 먹을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목숨(밥)·바람·물·햇살을 가장 좋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몸이 아프거나 삐걱거리거나 흔들리거나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목숨(밥)·바람·물·햇살을 가장 좋게 북돋울 만한 보금자리가 못 되거나 일자리가 아니라 한다면, 누구라도 몸을 튼튼히 가누지 못합니다.


.. 천식, 뇌성마비, 암, 당뇨, 면역결핍성장애가 20세기 초 이래 예방접종률이 증가하면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주의력결핍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과 같은 새로운 질병도 등장했다. 이것이 예방접종으로 인한 것인지의 여부는 실제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심사숙고해 봐야 할 일이다 … 백신은 독성물질이다. 이에 관한 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러 가지 미생물(그중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에 의한 오염은 차치하고서라도, 백신에는 포름알데히드(안전 기준치가 없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치메로살(수은 유도체)에 더해, 많은 유해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아기는 백신을 접종받을 때마다 어느 정도 해를 입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 견디기 때문에 뚜렷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  (66∼67쪽)


  돌림병이 있던 때에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았습니다. 돌림병이 돌았대서 모든 사람이 다 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네 가지 밑바탕 목숨(밥)·바람·물·햇살을 옳게 건사하는 사람은 돌림병이 돌건 말건 아랑곳할 까닭이 있습니다. 옳은 밥과 좋은 바람과 맑은 물과 따순 햇살을 받아먹는 사람은 몸 어느 구석이든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은 어느 자리이든 힘들지 않아요.


  예부터 폐렴이든 무슨 병이든, 몸이 아프다 할 때에는 물과 바람과 햇살과 밥이 좋은 시골로 보내어 몸을 쉬게 했어요. 도시에서는 아픈 몸을 되살리지 못해요.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는 ‘아픈 몸뚱이를 자를’ 뿐이에요. 게다가, 슬픈 도시에서는 슬픈 예방접종을 놓습니다.


  그런데, 예방접종을 놓는 의사와 간호사부터 예방접종을 맞는 여느 사람들 모두, 예방주사가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무엇으로 왜 만드는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예방주사 성분이 무엇이고, 이 성분은 어떻게 태어났으며, 이 성분이 목숨 하나를 어떻게 휘젓는가를 돌아보지 못해요.


  안 아픈 사람한테든 아픈 사람한테든 ‘병원균’을 몸속에 미리 집어넣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깨닫지 않아요. 병원균이 화학조합물인 줄조차 생각하지 않아요.


.. 출생 이후 아이가 처음으로 접하는 의료행위는 예방접종이다. 아이의 건강 여부에 상관없이 예방접종을 권유받는다. 미래의 어떤 질병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맞는 얘기일까? … 유아돌연사의 대부분은 생후 2·4·6개월경에 발생한다. 이 시기는 DPT 접종 시점과 일치한다. 백신의 옹호자들은 이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에서 유아돌연사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1975년 영유아에 대한 백일해 예방접종을 중단한 일본이라는 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1979년에 백일해 예방접종을 중단했다. 반명 강제 예방접종법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는 선진국 중에서 꾸준히 유아돌연사율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  (29, 143쪽)


  라면이고 햄버거이고 피자이고 콜라이고 …… 으레 화학조미료로 범벅을 해서 밥을 삼아 먹는데, 화학조합물인 예방접종이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까 궁금합니다. 자동차야말로 화학조합물 뭉치요, 이 화학조합물 뭉치를 날마다 꽤 오랫동안 타며 살아가니, 예방접종이란 마땅히 맞혀야 하는 줄 여길까 궁금합니다.


  너무 마땅하지만, 몸이 아픈 사람은 예방접종을 맞지 못합니다. 몸이 아픈 사람한테 병원균을 몸속에 미리 넣으면, 몸이 아픈 사람은 곧바로 ‘이 병원균이 마구 날뛰어 병에 걸리’고 말거든요. 게다가 천연 병원균이라면 어찌저찌 다스리지만, 화학조합물 병원균이라면 아무 손을 쓰지 못해요. AIDS라 하는 병이란 바로 이렇게 해서 태어났어요.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는 ‘주의력 결핍 장애’란 없었습니다. ‘절름발이’는 있었어도 ‘소아마비’라는 병은 없었습니다. 주의력이 사라진 아이들이든 소아마비를 앓는 아이들이든, 바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예방접종을 놓을 때부터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화학조미료를 범벅으로 한 먹을거리를 값싸고 쉽게 먹던 때부터 생겼습니다.


  누구나 가만히 생각을 기울인다면 누구나 아주 쉽게 알 수 있어요. 좋은 밥, 좋은 물, 좋은 바람, 좋은 햇살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은 방귀를 뀌지 않아요. 밥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좋게 즐거이 누리는 사람이 누는 똥은 구린내가 나지 않아요.


  밥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제대로 못 누리거나 엉망진창으로 누리는 사람은 방귀를 자주 뀔 뿐 아니라 냄새가 몹시 구려요. 이들이 누는 똥은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요. 더구나, 이들 몸에서조차 냄새가 나요. 무슨 냄새인가 하면 ‘죽은 냄새’, 바야흐로 ‘죽음하고 가깝게 사귀는 냄새’예요.


.. 홍역의 경우를 살펴보면, 20세기에 들어 백신이 사용되기도 전에 이미 사망률이 98%나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 백신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그 시점에서는 이미 문제될 게 없었다 … 감염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18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그리고 상당히 감소되었다. 예방접종 도입 이전에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때까지 정기 예방접종은 도입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 1979년 스웨덴은 백일해 백신이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의 사용을 중단했다. 1978년에 발생한 5140건의 사례 중 84%가 3회 접종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70, 72, 74, 90쪽)


  예전 아이들한테는 ‘아토피’가 없었습니다. 아토피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 누구라도 아토피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나라 모든 아이들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토피를 달고 태어납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린 나날부터 무엇을 먹고 어떠한 터전에서 살았는가를 떠올리면 금세 알거든요. 학교에서 자연이나 과학을 가르치며 아주 마땅히 나오는데, 수은을 비롯한 화학조합물은 ‘자연에 없는 것을 만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녹아 사라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방주사 만드는 회사나 정부에 ‘수은 안 넣은 예방주사를 만들어 달라’고 외쳐도 으레 한귀로 흘리지요. 포르말린 넣지 말라고, 알루미늄 넣지 말라고 한들 달라지지 않아요. 이러한 성분이 아니어도 다른 더 끔찍한 화학조합물로 예방주사를 만들어요.


  일본 미나마타 바닷가에 있던 공장에서 바다로 흘려보낸 중금속 때문에 미나마타 바닷가는 싸그리 죽었습니다. 맨 먼저 물고기와 갯벌이 죽고, 다음으로 흙과 고양이가 죽었으며, 이윽고 사람과 마을이 죽었어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터진 다음부터 조개랑 김이랑 바닷물고기는 먹지 말라고들 하는 까닭을 뻔히 아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버젓이 전기를 펑펑 써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수많은 전기·전자제품을 마음껏 쓰고, 온갖 공산품을 끊임없이 새로 사서 쓰고 버리며 쓰레기로 높은 뫼를 쌓아요.


  그런데, 한국땅 소금밭에도 꽤 일찍부터 농약을 썼어요. 햇살을 받은 소금이라 하지만, 이 소금들은 소금밭에 돋는 풀을 죽이려고 뿌린 농약에 찌들었어요. 한국 바닷가에서 거둔다는 소금 가운데 농약 깃들지 않은 소금이란 아예 없다시피 해요. 깨끗할 수 없어요.


  아무래도, 이렇게 슬프며 끔찍한 터전인 나머지, 아이들한테 예방접종이라도 해야 한다고 여길 수 있겠지요. 어차피 망가지는 몸이며 삶이니까, 예방접종이라도 안 놓으면 나쁜 병에 더 걸릴 만하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요.


.. 왜 예방접종을 받은 집단과 그런 자녀들의 질병 발생률을 비교하지 않는 것일까? 나아가 왜 이들(예방접종을 안 받은 사람들)과 예방접종을 받은 집단의 전체적인 건강 수준을 비교해 보지 않는 것일까? ..  (86쪽)


  그레그 비티 님이 쓴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잉걸,2006)라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예방접종이 얼마나 무서운 화학조합물 병원균이고, 예방접종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더 아파하고 새롭고 무시무시한 병까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온갖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찬찬히 들려줍니다.


  예방접종은 병에 안 걸리도록 지켜 주지 않습니다. 병원균을 몸속에 미리 넣는대서 몸이 튼튼해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아야 덜 아프지 않습니다. 매를 때릴 까닭도 맞을 까닭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플 까닭도 아파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좋은 밥과 좋은 바람과 좋은 물과 좋은 햇살을 누구나 마음껏 누리며 아름답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할 뿐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들은 갈림길(딜레마)에서 헤맬 까닭이 없어요. 아이를 사랑하는 가장 좋으며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면 돼요. 씩씩하게 살아야지요. 즐겁게 살아야지요. 힘차게 살아야지요. 웃으며 살아야지요.


  틀에 갇히면 누구나 죽은 목숨이에요. 틀에 가두면 사람도 꽃도 짐승도 모두 괴롭고 말아요. 아이들을 학교라는 틀에 가두거나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라는 틀에 가두면 너무 고단하며 힘들어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자리에서도 회사원이나 돈벌이 같은 틀에 가두면 서로 몹시 고달프고 힘겨워요. ‘대학 가야지, 혼인 해야지, 아이 낳아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뭘 해야지’ 하는 틀을 새롭게 자꾸자꾸 만들면 아이들은 모두 찌들고 주눅들어 슬픈 목숨이 될 뿐이에요. ‘조기교육’은 ‘예방접종’과 똑같이 모든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고 멍청이로 나뒹굴게 내몰아요.


  한국말에는 ‘장애’가 없어요. 한국말에는 ‘장애인’이 없어요. ‘장님’이나 ‘절름발이’나 ‘귀머거리’ 같은 낱말은 있지만, ‘장애’나 ‘장애인’ 같은 한국말은 없어요. ‘돌연변이’라는 낱말도 한국말에는 없어요. 왜 없을까요? 왜 없는지 사람들 스스로 예쁘게 생각하며 고운 사랑을 꽃피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5.3.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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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희망 - <월든>의 작가 소로우가 들려주는 숲의 언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삶을 아름다이 일구는 씨앗
 [환경책 읽기 28] 헨리 데이빗 소로우, 《씨앗의 희망》

 


- 책이름 : 씨앗의 희망
- 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갈라파고스 (2004.5.18.)
- 책값 : 9800원

 


 (1) 나무씨앗, 사람씨앗


 내가 심은 나무라서 더 어여쁠 수 없습니다. 내가 심지 않은 나무라서 함부로 꺾어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심은 나무에는 내 사랑이 곱게 스며들어 기쁘고, 내가 심지 않은 나무라 하지만 이 나무들을 처음 심은 이들 사랑이 곱게 배어서 반갑습니다. 내가 심은 나무는 나뿐 아니라 내 둘레 모두한테 좋은 웃음이고, 내가 심지 않은 나무는 나한테까지 좋은 선물입니다.

 

 내가 심는 나무에는 내 사랑을 담습니다. 나와 내 살붙이와 내 동무와 내 이웃이 함께 내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내 이웃이 심은 나무는 내 이웃 사랑이 스며, 이 사랑이 내 이웃을 비롯한 뭇사람한테 고루 퍼집니다.


.. 풀 속에 돋아난 이끼처럼 보이던 작은 생명들은 나무들로 자라서 2백 년은 거뜬히 살 것이다 … 비단처럼 곱게 반짝이는 잎(씨앗의 섬세한 솜털 낙하산에게는 안성맞춤인)은 아기 왕자를 눕혀 두고 흔들어 주는 비단 테를 두른 요람 같다. 씨앗은 이렇게 매끈매끈한 천장 아래에 마른 채로 잘 보관되어 있다. 궂은 날씨에 오랫동안 닳아버린 거친 바깥 부분만 보면 이끼 가득한 지붕 같다. 그러니 길가의 흙에 내려앉는, 그저 여름 끝에 나오는 갈색의 낡은 것으로만 알았던 이것은 사실 귀한 보물이 든 작은 상자인 것이다 ..  (27, 116쪽)


 우리 집 뒤꼍에서 자라는 모과나무를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심은 모과나무가 아닙니다. 우리 이웃 할아버지가 심은 모과나무입니다. 아마 이웃 할아버지가 조금 더 젊은 할아버지였을 적에 심은 모과나무였을 텐데, 이웃 할아버지는 이 모과나무를 심어 꽃을 보고 열매를 봅니다. 이웃 할아버지가 심은 모과나무 한 그루 뒤꼍에서 자라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고마이 모과꽃과 모과열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겨울에는 가지마다 자그맣게 올라온 새눈을 바라보며, 이 새눈이 싱그러이 피어날 봄을 기다립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사랑을 심습니다. 고이고이 자라날 사랑을 나무씨앗 하나에 담아 심습니다. 나무씨앗은 어린나무로 크고 어른나무로 우뚝 섭니다. 조그마한 나무씨앗 한 알이 우람한 어른나무로 자라기까지는 퍽 오래 걸립니다. 오래오래 살아갈 나무인 만큼, 어른나무로 우뚝 서기까지는 꽤 오랜 나날이 걸리겠지요.

 

 가만히 보면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아주 조그마한 사람씨앗이 어머니 몸속에서 열 달을 자랍니다. 어머니 몸속에서 나온 뒤로도 갓난쟁이를 거치고 어린이를 거쳐 푸름이로 자라면서 비로소 씩씩한 젊은이로 우뚝 서요. 한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에 걸쳐 씩씩하고 튼튼한 어른으로 거듭납니다. 곧, 사람씨앗이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나날을 들여야 하듯, 나무씨앗 또한 싱그러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나날을 들여야 해요.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없어요.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는 나무 또한 없어요. 하루아침에 꽃을 피우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는 사람이 있나요.

 

 목숨을 낳아 목숨을 돌보면서 목숨을 잇는 일이 거룩하다면, 오직 하나뿐인 목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목숨이 어여삐 빛을 내면서 싱그러이 사랑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씨앗이나 사람씨앗 모두 어여삐 빛을 냅니다. 우뚝 선 나무와 사람 모두 싱그러이 사랑을 나눕니다.

 숲은 나무가 있어 아름답습니다. 지구별은 사람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 나는 처음에 이 바위가 어떻게 강물과 기슭 사이에 끼어들었나 궁금했는데, 사실 이 느릅나무들이 무사히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이 바위 덕택이다. 바위는 떠다니던 씨앗을 붙잡은 다음 싹이 터서 자라는 어린나무들을 보호했고, 지금은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먼 옛날 목처지에 굴러온 둥근 바위는 결국 한 무리의 나무를 자라게 했고, 지금은 그 나무들의 잎에 가려 모습을 감추고 있다 ..  (67쪽)


 아름다운 숲이지만, 돈을 바라며 함부로 베거나 망가뜨리면서 무너지는 숲이고 맙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돈을 꾀하며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망가지는 사람이고 맙니다.

 

 숲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가꾸며 스스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숲에 돈벌이 꾀하는 사람들 손길이 퍼지면서 그예 망가집니다. 사람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가꾸며 스스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돈벌이에 홀리는 또다른 사람들 손길에 휘둘리거나 휩쓸리면서 그만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애써 가꾸어야 살아나는 숲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힘써 가르쳐야 배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숲은 숲 스스로 오래도록 이어온 사랑과 목숨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에 싱그러이 살아나며 숨쉽니다. 사람은 사람 스스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사랑과 목숨을 스스로 깨달아 보살필 수 있을 때에 싱그러이 살아나며 숨쉬어요.

 

 헬리콥터로 ‘벌레 잡는 약’을 뿌려야 숲을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솎아베기를 해야 나무가 잘 자라지 않습니다. 숲 스스로 나무를 다스리고, 나무 스스로 씨앗을 건사해요.

 

 학교에 보내야 삶을 배우지 않습니다. 회사를 다녀야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가슴속에 자리한 빛줄기를 알아채면서 곱게 어루만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스스로 일구는 삶을 바라봅니다.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 모신 꿈을 북돋울 때에 바야흐로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누립니다.


.. 나는 작은키참나무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벌목꾼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나무 중 하나며, 흰자작나무와 마찬가지로 뉴잉글랜드와는 떼놓을 수 없는 나무다 … 어떤 씨앗은 우리로서는 현미경으로나 봐야 할 정도로 작지만 그들에게는 엄연히 하나의 견과다 ..  (193∼194, 197∼198쪽)


 나무는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납니다. 나무는 한겨울에도 따순 햇살을 받아먹으며 씩씩하게 섭니다. 나무는 흐드러진 별빛을 받으며 저녁에 잠듭니다. 나무는 뭇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새벽을 열고, 들판을 가득 채운 풀들이 바람 따라 일렁이는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한낮을 함께 즐깁니다.

 

 사람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꿈과 사랑을 먹으며 마음을 살찌웁니다. 사람은 어버이와 함께 땀흘려 움직이고 일하며 몸을 다스립니다. 두 다리는 흙을 밟습니다. 두 손은 흙을 만집니다. 두 눈은 흙을 바라봅니다. 코로는 흙내음을 맡습니다. 두 귀로는 흙에 깃든 목숨들이 내는 소리를 듣습니다. 살갗으로는 햇살 머금는 흙이 얼마나 촉촉한가를 느낍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하는가를 말없이 지켜봅니다. 사람은 나무들이 어떻게 숲을 이루어 아름다운 누리를 이루는가를 조용히 지켜봅니다.

 


 (2) 나무꽃, 사람꽃


 한 사람이 살아가자면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잇자면 푸성귀이든 고기이든 곡식이든 얼마나 먹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 사람 목숨을 잇는 먹을거리는 얼마만한 땅에서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넓은 집에서 살림살이를 얼마나 많이 건사하면서 살아야 아름답다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농부는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면서도 이웃 숲 속에서 다람쥐가 자기보다 더 부지런히 리기다소나무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 후손을 퍼뜨릴 씨앗이 필요하다면, 자연은 다람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만 가지고도 만족하는 모양이다 … 웅덩이 곁에서 자라는 도깨비바늘이나 험한 절벽 위에서 자라기도 하는 도둑놈의갈고리는 자기들의 씨앗을 운반해 줄 짐승이나 사람이 그리로 지나갈지 어쩌면 그리도 잘 알까! ..  (31∼32, 35, 127쪽)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느티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뽕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냅니다. 단풍나무도, 후박나무도, 살구나무도, 오얏나무도, 포도나무도, 모두 꽃과 열매와 씨앗을 내요.

 

 우람한 나무 둘레에 흙땅이 있으면, 이 흙땅에는 어김없이 씨앗이 떨어져 씩씩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우람한 그늘 밑이라 햇살 한 조각 받아먹기 만만하지 않지만,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다섯 해 차츰차츰 뿌리를 깊이 내리고 줄기를 높이 올립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따로 어린나무를 심어야 자라지 않습니다. 나무는 처음부터 어미나무가 씨앗을 내어 흙에 떨구면서 퍼져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낳아 돌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는데, 따로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녀야 어른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햇살을 먹고 흙에 뿌리내리며 바람과 물을 마시며 자라는 나무이듯, 햇살 같은 사랑과 흙 같은 믿음과 물 같은 꿈과 바람 같은 이야기를 어버이한테서 받아먹으며 자라는 아이입니다.


.. 여새와 울새는 야생 벚나무가 어디 있는지 죄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벌이나 나비를 구경하려면 엉겅퀴를 찾아보면 되듯이 이 새들은 벚나무를 찾아보면 틀림없이 구경할 수 있다 … 우리는 적어도 씨앗을 심지 않고서는 정원에 무언가를 자라게 하기 어렵다. 그러니 무언가가 저절로 씨앗을 퍼뜨리는 것을 보면 놀라게 마련이다 ..  (93, 105쪽)


 햇살을 받아먹지 못하는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흙이랑 물이랑 바람을 받아먹지 못하는 나무는 그만 시들시들 말라죽고 맙니다.

 

 햇살 같은 사랑을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흙이랑 물이랑 바람 같은 꿈과 믿음과 이야기를 받아먹지 못하는 아이는 그만 시들시들 아픔과 생채기가 쌓이고 맙니다.

 

 햇살을 받아먹으면서 가슴속에 햇살을 품는 나무입니다. 이 햇살을 꽃으로 피우고 열매로 맺고 씨로 내는 나무입니다.

 

 햇살 같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가슴속에 햇살 같은 사랑을 품는 아이입니다. 이 햇살 같은 사랑을 꽃 같은 꿈으로 길어올리고, 꽃다운 믿음으로 나누며, 꽃처럼 곱게 이야기보따리 펼치는 아이입니다.


.. 땅 자체가 바로 곡물창고이자 온상(묘상)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지표면을 거대한 생명체의 표피로 여기는 것이다 … 소나무가 잘리기 전에 씨앗은 이웃의 들판으로 날아가서 후손을 퍼뜨렸다.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소나무들이 온통 싹을 틔운 것이다. 이 소나무들은 너무 빨리 빽빽하게 자라서 이곳 사람들조차 7.5미터 길이의 무성한 소나무숲을 갈아엎거나 베어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들 소나무 사이에 섞인 씨앗을 맺는 큰 참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좁고 긴 땅은 흔히 그러하듯 3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묘목이 가득했다 ..  (204, 224쪽)


 나무는 제 어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씨앗에는 어미나무 온 사랑이 감돕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이어받습니다. 참으로 자그마한 씨앗에는 어버이 온 사랑이 깃듭니다.

 

 나무로 살아갈 모든 꿈과 사랑이 녹아드는 씨앗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나누거나 펼칠 모든 꿈과 사랑이 녹아드는 씨앗입니다. 씨앗으로 갈무리하는 나무 넋이고, 씨앗으로 그러모으는 사람 얼입니다.

 

 꽃이 피기를 꿈꾸는 씨앗입니다. 새롭게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씨앗입니다. 다시금 씨앗을 내며 빛나는 목숨을 나누고픈 씨앗입니다. 씨앗은 새로운 씨앗을 낳지만, 새로운 씨앗만 낳지 않아요. 씨앗은 먼저 꽃을 피워요. 꽃을 피우기까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며 잎과 줄기를 내요. 푸르디푸른 잎사귀로 온누리를 푸르게 가꿔요. 씨앗은 꽃을 피우면서 천천히 열매를 맺어요. 씨앗은 새로운 씨앗으로 퍼지기 앞서, 달콤한 밥을 나누어요.

 

 나무꽃뿐 아니라 사람꽃도 이와 같아요. 어버이가 맺는 사랑씨앗은 아이들이라는 새 목숨만 낳지 않아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아름다이 일구는 삶꽃을 피워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착하게 돌보는 꿈을 맺어요. 어버이부터 스스로 참다이 아끼는 보금자리를 뿌리내려요. 아이라고 하는 사랑꽃·사람꽃·꿈꽃이란 어버이 스스로 누리는 고운 삶꽃이 밑바탕이 되어 태어나요.

 


 (3) 《씨앗의 희망》 읽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일군 책씨인 《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을 읽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이 내놓은 책 가운데 《월든》이나 《시민의 저항》은 꽤나 읽히지만, 《씨앗의 희망》은 그닥 읽히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 왜 이토록 아름다운 책씨는 옳게 읽히지 못하는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한국에서 《씨앗의 희망》이 읽히기는 몹시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와 눈높이를 맞추고 들풀과 삶높이를 맞추는 이야기를 천천히 적바림하는 《씨앗의 희망》은 지식이나 정보로는 읽을 수 없어요. 지식을 얻거나 정보를 챙기려는 마음으로는 이 책을 읽을 수 없어요.

 

 자연 지식을 얻자 하면서 읽는 《씨앗의 희망》이 아니에요.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월든》이 아니에요. 도시 물질문명을 거스르자는 뜻을 보여주는 《시민의 저항》이 아니에요.

 

 아름다이 살아갈 길을 스스로 누리면서 작은 씨앗을 뿌리려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 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고치거나 손질하려는 뜻이 있을 때에, 비로소 이 책에 깃든 사랑씨를 맞아들일 수 있어요. 사랑씨를 맞아들이며 내 삶을 바꾸려고 해야 바야흐로 이 책을 따사로이 품을 수 있어요.


.. 박주가리 하나가 믿음을 갖고서 씨앗을 무르익게 하고 있는데 세상이 이번 여름에 끝장날 것이라는 대니얼이나 밀러의 예언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 자연은 풀 베는 사람에게 잎은 내줄지언정 씨앗만은 지켜내는 것이다. 홍수가 와서 씨앗을 날라다 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  (124, 133쪽)


 좋은 책은 추천도서가 아닙니다. 좋은 책은 고전이나 명작이 아닙니다. 좋은 책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아닙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을 붙이자면,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책이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은,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책에 붙습니다.


.. 놀랍고 원통하게도 스스로 그 땅의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린 참나무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고 겨울에 호밀을 뿌려 버린 사실을 알았다! 그는 틀림없이 1∼2년 뒤에는 참나무가 다시 자라도록 내버려둔다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호밀이라도 조금 심으면 분명히 돈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234∼235쪽)


 이 나라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옳게 읽히지 못하는 일은 슬프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널리 읽힌다 한들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씨앗의 희망》을 옳게 읽기 앞서, 사람들 스스로 내 좋은 삶을 옳게 읽으며 새로 태어날 수 있어야 기쁩니다. 《씨앗의 희망》을 널리 읽기 앞서, 사람들 스스로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꿈을 나누어야 즐거운 나날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반갑습니다.

 

 책 하나 더 읽는대서 나쁘지 않아요. 책 하나 안 읽었대서 나쁘지 않아요.

 

 삶을 사랑할 때에 좋아요. 사랑할 만한 삶을 착하고 참다이 느껴 맑고 밝게 어깨동무할 때에 좋아요. (4345.1.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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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1-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과 열매 냄새가 가득해지시겠네요.
못 생겼다고 하지만, 정말 향이 좋죠.. 그윽하네요.

글을 읽으면서 햇살 비치는 숲길을 상상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한겨울, 문득 좋네요. ^^

숲노래 2012-01-28 13:23   좋아요 0 | URL
한겨울은 한겨울대로 좋은 나날이기에
새봄은 새봄대로 좋을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2-01-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을 붙이자면, 나 스스로 좋은 삶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책이어야 합니다. 좋은 책이라 하는 이름은,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책에 붙습니다." - 이것, 당연한 말씀인데도, 제게 누군가가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 하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한 수 배워 갑니다. ㅋ

숲노래 2012-01-29 06:33   좋아요 0 | URL
모두들 잘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너무 바쁘거나 매이는 삶 때문에
그만 잊고 말아서
스스로 좋은 책하고 멀어지지 않느냐 싶어요.

oren 2012-01-2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된장님의 글을 읽어보니 어린 시절 시골에 살면서 온갖 풀과 나무와 씨앗들과 함께 뒹굴고 놀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립게 느껴집니다.

그 시절엔 나무도 많이 심고, 또 가끔씩 열매나 과실을 얻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기도 하고, 밤이나 대추를 많이 얻을 욕심으로 나뭇가지도 많이 꺾었던 기억도 나네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와 제대로 교감을 나누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무미건조한 삶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고, 그런 삶을 너무나 당연시해 왔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게 됩니다.

숲노래 2012-01-29 06:36   좋아요 0 | URL
언제나라도 느낄 때가 가장 이를 때라고 했어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풀 나무 꽃 흙 햇살 바람 물
아낄 수 있는 길을
저마다 예쁘게 찾아나서면 즐거우리라 믿어요.

oren 2013-10-1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초에 쓰신 글이지만 오늘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방금 쓰신 글처럼 읽혀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