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2
최열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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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9

 


‘탈핵’은 삶을 찾는 첫걸음
―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
 최열, 김익중, 이원영, 한홍구, 우석균, 강양구, 소복이
 철수와영희 펴냄, 2014.3.11.

 


  봄비가 내립니다. 오늘은 우체국에 찾아가서 편지를 한 통 부치려 했는데 아침부터 일찍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가 내리는 들과 숲은 촉촉하게 젖습니다. 비구름이 뿌옇게 낍니다. 비가 마을을 적시는 동안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도 짐차 달리는 소리도 없습니다. 마을은 아주 조용합니다.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군내버스도 빗소리에 묻힙니다.


  빗물로 젖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뒤꼍 매화나무는 폭신한 꽃망울이 터질 듯 말 듯합니다. 며칠 사이에 확 터지겠구나 싶은데, 오늘 비가 하루 내내 내리면서 미처 터지지 못한 채 빗물에 떨어지는 아이도 있을는지 모릅니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며 한껏 부풀던 꽃망울이 빗물에 그만 떨어지만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나무 둘레에 떨어진 애틋한 꽃망울은 다시 흙이 되고 나무로 스며들어 새로운 겨울을 날 테고 새로운 봄을 기다리겠지요.


.. 이미 우리는 전 지구적인 소비를 하고 있어요 …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100년밖에 안 됩니다. 핵발전소의 수명은 40년 안팎이에요. 핵폐기물은 10만 년을 계속 갑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볼 때 3000세대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예요 … 대부분이 핵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홍보의 결과이지요. 우리는 오랫동안 핵이 공해가 없고, 안전하고, 경계적이라고 배워 왔어요 ..  (17, 29, 31쪽/최열)


  처마를 타고 빗물이 흐릅니다. 빗물이 흐르면서 새로운 물줄기가 열립니다. 사람한테는 조그마한 웅덩이가 도랑쯤이 될 테지만, 개미나 거미처럼 작은 벌레한테는 커다란 냇물입니다.


  빗물은 지붕을 적시고 찻길을 적십니다. 빗물은 바다에도 멧자락에도 골고루 드리웁니다. 모든 풀과 나무는 이 빗물을 먹고 자랍니다. 모든 짐승은 풀과 나무가 자라는 숲과 들에서 목숨을 잇습니다. 모든 사람은 풀과 나무와 짐승과 벌레가 골고루 어우러진 지구별에서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어릴 적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놀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놀이를 합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놀이를 하지요. 빗물을 혀로 날름날름 받아먹기도 하고, 얼굴로 빗방울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빗물이 여느 빗물이 아닌 산성비라고 했어요. 예전에는 경제개발이라는 목소리만 외치더니 어느 때부터 냇물과 샘물과 빗물이 모두 더러워져서 마실 수 없다고 했어요. 화학약품을 써서 수도물을 마셔야 한다고 했어요.


  빗물을 맞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처음으로 퍼질 무렵, 한국에서 퍽 멀리 떨어진 어느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집니다. 핵발전소가 터진 이야기를 어릴 적에 못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는 언제나 ‘핵은 깨끗한 에너지’라고 가르쳤어요. 석유와 석탄은 앞으로 말라서 없어질 테니, 우라늄을 써서 핵발전소를 지어 깨끗한 전기를 써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 일본은 사고 후 2개만 남기고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지해습니다 … 우리 나라에도 수명을 연장한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입니다. 모두 지은 지 30년이 넘은 시설들이에요. 바로 옆 일본에서 사고가 났는데도 폐쇄는커녕 안전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재운전을 강행합니다. 특정 학맥과 기관 출신들로 이뤄진 핵발전소 마피아들이 그 배경에 있어요. 막대한 이권이 얽힌 핵발전소를 얌전히 폐쇄할 리가 없는 거죠 … 방사능 물질이 탄소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  (60, 62, 71쪽/김익중)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핵 = 깨끗함’이라고 배웠지만,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핵에너지가 깨끗하다지만, 일본에 1945년에 떨어진 폭탄은 핵폭탄이지 않아? 한쪽에서는 깨끗한 에너지라지만 한쪽에서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쓰잖아?


  어른들은 이 궁금함을 풀어 주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늘 외곬로 지식을 외우고 시험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또한, 핵에너지를 얻는 핵발전소 공사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았어요. 핵발전소를 지으며 전기를 얻으면 핵쓰레기가 나오는데, 핵쓰레기는 수십만 해 동안 꽁꽁 가두어서 새어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했어요. 그렇지만, 핵발전소를 만들 즈음 핵쓰레기를 수십만 해 동안 빈틈없이 가두는 재주는 없다 했어요.


  어느 나라에서는 드럼통에 넣고 바닷속에 버린다고 했어요. 어느 나라에서는 땅속 깊이 파서 버린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런 핵쓰레기도 저런 핵쓰레기도 수십만 해 동안 방사능을 내뿜어요. 핵발전소에서 얻는 전기는 깨끗하다고 가르치지만, 정작 수십만 해를 더럽히는 무서운 쓰레기일 뿐 아니라, 지구별을 무너뜨리는 끔찍한 폭탄을 만드는 무기예요.


.. 요즘 학교 폭력이 문제시되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도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줌으로써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텃밭을 가꾸고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는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겁니다.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  (100쪽/이원영)


  《10대와 통하는 탈핵 이야기》(철수와영희,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한참 읽다가 1980년대 끝무렵 독일 이야기를 봅니다. 독일에서는 체르노빌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우유를 분유로 만들었고, 방사능으로 얼룩진 분유는 몽땅 한국에서 사들였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유제품 회사는 1980년대 끝무렵에 한국에서 ‘체르노빌 방사능 분유’를 팔았다고 해요. 1990년대를 넘은 뒤에도 ‘체르노빌 방사능 분유’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요.


  설마 싶어 예전 신문기사를 살펴보니, 1989년에 ㅎ신문에 조그마한 기사가 하나 나옵니다. 다른 신문에서는 이 이야기를 안 다룹니다.


  왜 안 다루었을까요? 왜 오늘날까지 제대로 안 건드릴까요? 왜 한국 유제품 회사는 ‘체르노빌 방사능 분유’를 버젓이 팔았을까요? 그무렵 한국 정치꾼과 기자는 왜 이 같은 이야기를 제대로 파헤치지 않았을까요?


  체르노빌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먹을거리는 분유뿐이 아닙니다. 분유도 우유도 빵도 과자도 라면도 모두,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농산물로 만들었습니다. 케찹도 마요네즈도 똑같습니다.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를 살아온 아이들은 모두 ‘체르노빌 방사능’이 몸에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 일본에서 원폭이 터졌을 때, 히로시마에 피폭자가 42만 명 정도이고 그중에 죽은 사람이 약 16만 명쯤입니다. 여기엔 조선인 피폭자도 섞여 있습니다. 조선인 피폭자는 히로시마에 5만 명쯤, 나가사키에 2만 명쯤 해서 약 7만 명이 피폭을 당합니다. 죽은 사람은 히로시마 3만 명, 나가사키는 1만 명입니다 ..  (119쪽/한홍구)


  한국 어린이는 지구별 어느 나라보다 아토피를 많이 앓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어린이는 100% 아토피를 앓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아토피를 100% 앓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밝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따지면, 오늘날 모든 한국 어린이가 아토피를 앓는 까닭은 체르노빌 방사능 농산물 때문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1960년대부터 휩쓴 새마을운동 때문에 이 나라 시골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끔찍하게 퍼부었어요. 1960∼70년대에 도시에서 살던 사람은 모조리 농약과 화학비료에 젖어들어야 했습니다. 시골에서 살던 사람은 농약을 뿌리느라 몸이 망가졌겠지요.


  한쪽에서는 방사능 농산물과 가공식품이 춤추고, 한쪽에서는 농약과 화학비료와 항생제에 찌든 농산물과 가공식품이 춤춥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수많은 공장과 발전소에서 내뿜는 매연과 쓰레기가 넘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섭게 늘어나는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와 쓰레기가 넘칩니다. 게다가 흙집과 풀집을 모두 없애서 ‘석면 지붕’을 쓰도록 새마을운동 지도자 박씨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제 시골마을 ‘석면 지붕(슬레트지붕)’을 모두 없애려는 움직임이 일지만, 얼마 앞서까지 군대에서든 여느 사회에서든 석면에 고기를 구워먹기 일쑤였어요. 게다가, 석면에 이어 온통 시멘트로 지은 집이 넘쳐요. 시멘트를 안 쓰는 집이 없어요. 시멘트로 지은 집에다가 아스팔트로 길과 빈터를 뒤덮어요. 시골 논둑까지 시멘트로 덮고, 논자락 흙도랑까지 시멘트도랑으로 바꾸어요.


.. 후쿠시마엔 사고를 알리는 어떤 표시도 없었습니다. 경고문도 없고요. 겉으로 보기엔 사고 이전과 차이가 없었어요. ‘일상을 가장한 야만’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 지금도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하루 300톤의 오염수가 태평양 바다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것이 장기적으로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정도로만 파아가고 있어요 ..  (135쪽/우석균)


  ‘탈핵’ 하나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탈핵이란 겨우 첫걸음입니다. 탈핵만 한대서 더러워진 이 나라가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엄청난 고속도로와 공장과 골프장이 그대로 있다면 어찌 될까요.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시멘트집을 자꾸 늘리기만 하면 어찌 될까요.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농약과 화학비료와 항생제를 몰아내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자동차를 줄이지 않거나 석유를 줄이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그리고, 핵발전소는 없애는데, 학력차별이나 계급차별이나 재산차별을 없애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모두 도시로만 쏠리는 우리 사회를 바로세우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핵발전소는 없애지만, 입시지옥은 그대로 두면 어찌 될까요. 그야말로 탈핵은 첫걸음입니다. 이 첫걸음조차 제대로 디디지 못한다면, 지구별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길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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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오월이 낮은산 너른들 13
박형권 지음, 송진욱 그림 / 낮은산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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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59



문명 사회와 돼지농장

― 돼지 오월이

 박형권 글

 송진욱 그림

 낮은산 펴냄, 2012.6.15.



  박형권 님이 쓴 동화책 《돼지 오월이》(낮은산,2012)를 읽습니다. 동화책 《돼지 오월이》는 하늘농장에서 태어난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여느 돼지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나날을 그린 작품입니다. 처음 태어날 적에는 곧 죽을듯이 골골거렸으나 사람 손길을 타며 살아났고, 다른 돼지와 달리 ‘오월’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 하늘농장에서 지내던 ‘송이’라는 아이와 마음으로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민이와 송이는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아버지 일을 돕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  (14∼15쪽)



  동화책 《돼지 오월이》에 나오는 오월이는 집돼지였으나 송이네 식구가 하늘농장에서 나가야 한 뒤로, 들돼지로 삶을 바꿉니다. 송이네 식구는 하늘농장을 돌보는 일을 할 뿐이었고, 농장 임자가 돼지들을 팔려고 하면서 농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니, 돼지 오월이도 도축장으로 가서 죽을 목숨이었어요. 오월이도 짐차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오월이를 낳은 어미 돼지가 짐차 자물쇠를 부수었고, 오월이는 짐차에서 뛰어내려 혼자 살아가는 길로 갔어요.


  들돼지가 된 오월이는 숲에서 여러 동무를 만납니다. 오월이가 만난 동무는 사람 손에 길들여졌거나 사랑받다가 쫓겨나거나 내뺀 목숨입니다. 사람한테서 즐거움과 사랑을 받기보다는 괴롭힘과 미움을 받은 목숨입니다. 돼지 오월이와 여러 ‘짐승 동무’는 사람들 등살에 시달리면서도,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기도 하고, 이러다가 다시 사냥꾼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 동물들 위에 군림하던 그들이 일순간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비굴해 보였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에서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빗줄기가 무겁게 쏟아지는 그 유기동물보호소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125쪽)



  동화책 《돼지 오월이》는 돼지 오월이가 보낸 한때를 그립니다. 집돼지로 살았으나 앞으로 들돼지로 살아갈 돼지 오월이 모습을 그립니다. 오월이는 도축장으로 가는 짐차에서 홀로 뛰어내렸고, 다른 돼지는 짐차에서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돼지들은 하늘농장에 있을 적부터 농장 울타리를 뛰어넘어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을 만했지만, 돼지들은 농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송이네 아버지가 돼지들을 살뜰히 보살폈다고 하지만, 돼지는 사람 손길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이 아닙니다. 돼지는 돼지대로 스스로 살아갈 목숨이에요.


  개도 고양이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이 집에서 밥을 챙겨 주어야 살아가는 개나 고양이가 아닙니다. 개는 개대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저희 삶을 가꿀 노릇입니다.


  참새는 참새 스스로 먹이를 찾고, 까치는 까치 스스로 먹이를 찾습니다. 개미는 개미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사마귀는 사마귀 스스로 먹이를 찾아요.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 먹이를 일구거나 가꾸지 않기 일쑤입니다. 지난날에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제 밥을 지어서 먹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제 밥을 지어서 먹지 않아요. 돈만 벌어요. 오늘날에는 스스로 먹는 밥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자라는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스스로 먹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가를 알고 살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밥과 삶을 하나로 모두지 않습니다.



.. “너희들에게도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처럼 한 방향으로 곧바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우리에게도 날개가 있어.” “날개가 있다고?” “하늘농장으로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우리의 날개야.” ..  (140쪽)



  동화책 《돼지 오월이》를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살던 지난날이라면, 들돼지도 들개도 들원숭이도 들새도 모두 들에서 스스로 삶을 일구었습니다. 사람 손을 탈 일이 없고, 사람한테 기댈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들짐승 이야기를 그릴 적에는 언제나 들내음이 나고 들빛이 감돌았습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들짐승이 들삶을 가꾸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온갖 고속도로와 공장과 골프장과 발전소를 시골에도 지어대거든요. 시골에 짓는 농장도 화학사료와 항생제를 먹이면서 좁은 곳에 짐승들을 잔뜩 가둡니다. 사람은 사람 스스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짐승은 짐승 스스로 짐승답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라거나 배우지 못합니다. 오직 대학입시에 얽매여야 합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는 다달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쳇바퀴를 돌면서 제 삶을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그러니, 동화책 《돼지 오월이》에 나오는 돼지 오월이가 농장을 벗어나 숲에서 지낼 적에 돼지다운 돼지 모습으로 숲살이를 누리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아요. 자꾸자꾸 사람들과 부대끼고 끝없이 사람과 복닥입니다.


  아이들은 동화책 《돼지 오월이》를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동화책 《돼지 오월이》는 어른이 아이한테 어떤 마음밥으로 베푸는 선물이 될까 궁금합니다. 문명 사회와 도시 문화를 살며시 나무라는 이야기로 여길 만하지만, 문명 사회와 도시 문화를 나무라면서 어떠한 빛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이 동화책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막다른 벼랑으로 내달리는 문명 사회와 도시 문화를 꾸짖으면서 어떠한 사랑과 꿈을 노래할 만한지, 이 동화책은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4347.3.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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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일공일삼 11
엘레노어 에스테스 지음,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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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0

 


모두 내 동무예요
―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엘레노어 에스테스 글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엄혜숙 옮김
 비룡소 펴냄, 2002.1.11.

 


  이웃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둘레에 있는 이들은 모두 이웃입니다. 동무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를 떠나 우리 곁 누구나 동무입니다. 나 혼자만 잘산다고 할 적에는 참말 잘사는 일이 아닙니다.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잘살 적에 참말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몇몇만 잘산대서 잘사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모르는 누구나 잘살 적에 비로소 잘산다 할 수 있습니다.


  이웃이지 않은 목숨은 없습니다. 들고양이뿐 아니라 들쥐도 이웃입니다. 거머리와 벼룩도 이웃입니다. 무당벌레와 잠자리도 이웃입니다. 파리와 길앞잡이도 이웃이에요. 버들치와 개구리도 이웃이요, 꾀꼬리와 참새도 이웃입니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면서 살아갈 적에 아름답습니다. 몇몇 목숨만 예뻐 하거나 아낀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다 다른 목숨이 다 다른 삶자리에서 즐겁게 어우러질 적에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 완다가 거칠고 시끄러운 아이여서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완다는 아주 조용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완다가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걸 보지 못했다. 가끔 완다는 입술을 꼭 물고 씩 웃기는 했다 … 완다는 저 위, 보긴스 하이츠에 살았다. 하지만, 보긴스 하이츠는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니었다. 그곳은 여름에 들꽃을 꺾기에 좋은 곳이었다 ..  (7, 13쪽)


  엘레노어 에스테스 님이 글을 쓰고 루이스 슬로보드킨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책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비룡소,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책이름에 줄거리가 다 드러납니다. 책이름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다른 문학도 책이름에 모든 실마리가 있어요. 책이름이 바로 우리하고 함께 나누고픈 생각입니다.


  틀림없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 하고 말할밖에요. 드레스 백 벌이 있는 아이가 ‘나한테는 드레스 백 벌이 있다구’ 하고 말한들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드레스 백 벌이 없는 아이가 왜 ‘드레스 백 벌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 완다가 채 멀리 가기도 전에, 여자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레스 백 벌이라니! 보나마나 완다는 날마다 입고 오는 저 파란 드레스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완다는 자기에게 드레스가 백 벌이나 있다고 하는 걸까 … 완다는 보기스 하이츠에 살고, 운동장에서 혼자 서 있는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완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일어나 책을 읽을 때 말고는 아무도 완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가 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은 완다가 빨리 끝내고 자리에 앉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완다는 영원히 한 문장만 읽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17∼18, 40쪽)


  언뜻 들여다본다면, 《내겐 드레스 백 벌이 있어》는 따돌림받는 이주노동자 식구들 이야기입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가난한 식구가 마을과 학교에서 따돌림받으면서 고단하게 지내는 삶이 줄거리라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참말 이런 이야기가 이 책 알맹이일까요. 이 책을 쓰고 그린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었을까요.


  책 끝자락에 비로소 또렷하게 들려주는 말이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완다’네 식구는 미국에서 이웃하고 즐겁게 어우러지고 싶지, 이웃한테서 따돌림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린 완다도 학교에서 동무들과 살가이 어울리고 싶지, 외롭고 쓸쓸하게 지낼 생각이 없습니다.


  따돌림을 받거나 힘들게 지낼 생각이라면, 굳이 폴란드를 떠나 미국으로 올 까닭이 없어요. 돈을 벌려고 완다네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할 수 있습니다만, 오직 돈 하나만 보고 미국으로 왔을까요. 돈만 벌면 삶이 재미날까요. 돈만 있으면 삶이 빛날까요.


.. 아이들은 완다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완다가 직접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해야 한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완다는 드레스가 한 벌뿐이어서 밤에 빨래를 해서 다림질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가끔은 채 마르지 않은 옷을 입고 나올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다의 옷은 언제나 깨끗했다 ..  (70쪽)


  완다한테 동무가 되지 못하던 아이들은 먹고사는 걱정이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 사는 아이들은 미국을 떠날 일이 없습니다. 미국을 떠나 폴란드로 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일자리를 못 찾아 폴란드로 가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으면서 지내는 식구는 아마 없겠지요.


  완다는 폴란드에서 지내던 나날을 마음속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해요. ‘나한테도 동무가 백 사람쯤 있다구’ 하는 소리를 옷을 빌어 외쳤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살아가려 하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완다는 ‘이곳에서는 너희들이 모두 내 동무라구’ 하고 울음을 삼키면서 말했겠구나 싶습니다.


  완다가 다닌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아직 동무 사귀기가 낯설 뿐입니다. 저마다 집이나 학교나 마을에서 동무를 어떻게 사귀며 서로 아끼고 즐겁게 살아가는가 하는 대목을 못 깨달았을 뿐입니다. 학교에서 교장 선생이 나중에 아이들을 나무라는 말을 하지만, 교장 선생은 이렇게 아이들을 나무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 탓만 할 노릇이 아니라, 어른들 스스로 뉘우쳐야지요. 아이들이 살갑고 따사롭게 낯선 동무를 품에 꼬옥 안으면서 받아들이는 교육을 학교에서 슬기롭게 했다면, 아이들이 완다를 멀리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겠지요.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는 아이들은 마음으로 압니다. 우리는 다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웃이요 동무인 줄 압니다. 완다는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아이들한테 그림 백 점을 남겨요. 다 다른 동무 백 사람을 헤아리면서 그린 그림을 남겨요. 동무들은 완다가 그림 백 점을 남겼어도 이 그림이 무슨 뜻이었는지 오래도록 못 알아챘습니다. 완다가 처음 그 학교에 왔을 적에도 오래도록 ‘완다는 우리한테 어떤 동무인가?’ 하는 대목을 못 알아챘듯이 말이에요.


  어른들은 알았을까요? 어른들도 몰랐어요. 더구나 교장 선생이라는 분은 ‘완다한테 그림 솜씨가 있다’는 대목만 겉훑기로 알 뿐, 완다가 어떤 마음이요 사랑인가를 헤아리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솜씨가 뛰어나야 빛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다른 빛과 숨결로 빛납니다. 아이들은 학업성적이 뛰어나야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른 웃음과 노래로 예쁩니다. 4347.3.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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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히코리 한림 고학년문고 26
캐롤린 베일리 지음, 김영욱 옮김, 갈현옥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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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8

 


꽃이 된 숲인형
― 미스 히코리
 캐롤린 베일리 글
 갈현옥 그림
 김영욱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13.3.12.

 


  사진으로 아무리 멋들어지게 꽃을 찍어도, 그저 멋들어진 사진이 될 뿐, 꽃을 꽃답게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림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꽃을 그려도,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 될 뿐, 꽃을 꽃처럼 보여주지 못합니다.


  꽃은 꽃 그대로 있을 적에 꽃입니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돋은 줄기에서 꽃대가 나오고 꽃망울이 맺히면서 꽃잎을 활짝 벌릴 적에 꽃입니다. 꽃을 찍은 사진이란 ‘꽃을 바라보는 사람 느낌과 생각’입니다. 꽃을 그린 그림이란 ‘꽃을 마주하는 사람 느낌과 생각’입니다.


  꽃을 꽃대로 바라보지 않고 일부러 못생기게 찍는다든지 볼품없이 그린다고 해서, 꽃한테서 꽃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꽃한테 매우 미운 이름을 붙이며 놀린다 하더라도 꽃한테서 꽃내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꽃은 언제나 꽃일 뿐입니다.


.. 히코리는 목장 돌길을 따라 자신이 살고 있는 라일락 숲길로 쿵쿵 다가오는 묵직한 발소리를 들었다. 히코리는 작지만 날카롭고 새카만 눈동자를 굴려 곁눈질했다 … 집이 있는 라일락 숲 아래쪽은 꽃이 피면 자줏빛 꽃 그림자가 향긋한 향기와 더불어 어룽거린다. 긴 여름 동안에는 짙은 녹음과 새들의 노랫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누구든 도시에 나가 살 처지라고 말하면, 히코리는 늘 라일락 숲속 집을 고르라고 충고해 준다 ..  (9, 11쪽)


  매화나무는 매화나무이지 벚나무가 아닙니다. 감나무는 감나무이고 고욤나무는 고욤나무입니다. 뽕나무는 뽕나무이며 대나무는 대나무입니다. 다 다른 나무는 다 다른 빛으로 자랍니다. 다 다른 나무는 다 다른 숨을 내놓아 사람과 뭇짐승을 살찌웁니다.


  나무가 없는 지구별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구별에서는 어떤 목숨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나무가 있어 우리 삶이 있고, 나무와 함께 우리 삶이 빛납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나무를 괴롭힙니다. 도시에서 나무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겨우 스무 해나 서른 해쯤 나무가 자랐어도, 도시에서는 재개발을 하느니 무얼 하느니 나무를 뎅겅 벱니다. 돈을 들여 다시 땅에 박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시골에서도 나무를 들볶습니다. 사람이 굳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끼리 스스로 솎아내기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굳이 솎아내기를 한다느니 새 길을 닦는다느니 무슨무슨 공사를 한다느니 하면서 숲을 어지럽힙니다. 숲을 어지럽히니 숲에서는 몇 가지 벌레가 갑자기 날뛰면서 온갖 나무병이 퍼집니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들, 망가진 숲에 퍼지는 나무병을 잡을 수 없습니다.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면, 도시 사회와 물질문명을 솎아내야 합니다. 찻길을 줄여야 합니다. 찻길을 없애야 합니다. 너무 많이 놓은 찻길을 줄이고, 온갖 곳에 덮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치워야 합니다. 도시에서도 곳곳에 텃밭과 숲을 마련해야지요. 시골에서도 길가와 마을에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도록 해야지요. 이러면서 나무한테 농약이 아닌 사랑을 줄 노릇입니다.


.. 히코리가 옛날에 나무의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크로우는 알고 있었다 … 숲속에 들어오면 언제나 생기가 도는 것을 새삼 느꼈다 … 숲은 히코리가 바느질해서 입을 만한 예쁜 옷감들로 가득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장밋빛, 황금빛, 주홍빛, 적갈색의 보드라운 잎들이 많았다. 뽀송뽀송한 이끼도 땅에 붙어 자라는 복슬복슬한 것부터 깃털처럼 털이 솟아 길게 나부끼는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었다 ..  (14, 35, 46쪽)


  천 해를 살고 이천 해를 살며, 때로는 오천 해를 살기도 한다는 나무는 아주 천천히 자랍니다. 백 해를 살기에도 빠듯하다는 사람으로서는 천 해나 이천 해를 어림하기도 어렵겠지요. 나무가 자라는 백 해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사람은 있기나 할까 궁금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이 낳는 아기도 퍽 천천히 자랍니다. 소나 사슴이 낳는 새끼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섭니다. 이와 달리, 사람이 낳는 아기는 처음 서기까지 한두 해가 걸리고, 선 다음 걷기까지 또 제법 걸려요. 서고 걷는다 해서 다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밥과 집과 옷을 건사하려면 퍽 기나긴 해를 보내야 합니다.


  나무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제법 긴 나날을 보냅니다. 나무씨 한 톨을 심어 보셔요. 씨앗에서 싹이 트면서 꽃이 피기까지 몇 해쯤 걸리는지 지켜보셔요.


  오래도록 지켜보아야 합니다. 오래오래 아끼고 보살피며 사랑해야 합니다. 갓난쟁이한테 사랑을 쏟듯 나무한테 사랑을 쏟습니다. 나무한테 사랑을 바치듯 갓난쟁이한테 사랑을 바칩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우람하게 가지를 벌리는 나무요, 천천히 자라면서 아름답게 우뚝 서는 사람입니다. 천천히 자라면서 짙은 그늘과 푸른 숨을 나누어 주는 나무요, 천천히 자라면서 고운 꿈과 맑은 사랑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 언제나 놀라는 일이지만, 차가운 날씨에도 낙엽 밑에 숨은 땅속은 얼마나 따듯한지 모른다 … “히코리, 넌 변화가 절실해. 넌 두 해 동안 식료품 가게, 자동차, 난로, 폭풍우를 막을 창문 따위가 필요한 사람들과 살아왔어. 넌 너무 곱게만 자랐어.” … 벌써 11월이다. 히코리는 매일같이 나무 아래로 내려가 단풍 낙엽을 밟으며 즐겁게 돌아다녔다 … 히코리는 불타는 듯한 단풍 빛깔에서 떡갈나무의 장미 빛깔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산 빛깔을 보았다 ..  (23, 33, 54, 56쪽)


  캐롤린 베일리 님이 빚은 이야기책 《미스 히코리》(한림출판사,2013)가 있습니다. 1947년에 미국에서 뉴베리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품이니 퍽 오래된 책입니다. 한국말로는 1979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다만, 1979년은 아직 때일렀지 싶어요. 한국에서 사랑스러운 독자를 만나기에는 1979년은 퍽 어려웠지 싶습니다. 1947년 작품을 1979년에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웠던 한국입니다.


  그러면, 1979년에서 서른네 해 지나 2013년에 한글판이 다시 나온 《미스 히코리》는 바야흐로 제대로 읽힐 만한 책일까요. 이제 한국에서는 이 책에 서린 빛과 꿈과 사랑을 알뜰살뜰 받아먹을 만할까요.


.. 여름철에는 산머루들이 둑을 따라 넝쿨로 자라났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숲속 동물들이 따먹을 수 있도록, 어린 나무들과 키 큰 고사리, 옻 덩굴들이 짙은 보라색 포도송이 뒤에 숨어 자랐다 … 히코리는 스케이트를 타고 상쾌한 겨울 세상을 설렁설렁 돌아다녔다. 나무껍질과 장미 꽃잎을 질겅질겅 씹기도 하고 … 달력을 보지 못하면서 잊었던 계절 감각을 되살리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  (91, 96, 97쪽)


  《미스 히코리》를 읽으면 시월 언저리에 ‘산딸기를 따먹는(23쪽)’ 이야기가 나옵니다. 멧딸기가 시월에 익는다구? 좀 안 맞지 않나? 미국에서는 시월에도 멧딸기가 익나? 여러모로 생각해 보는데, 이 책에 나오는 딸기는 멧딸기가 아닌 산딸나무에서 맺는 열매가 아니랴 싶습니다. 멧딸기는 여름 문턱에 익는 열매요, 산딸나무는 가을 언저리에 익는 열매입니다. 풀처럼 우거져서 맺는 딸기와 나무로 자라며 맺는 딸기는 갈래가 다릅니다. 《미스 히코리》를 한국말로 옮긴 분은 시골에서 살지 않기도 하고, 시골살이를 잘 모른다고 옮긴이 말에서 밝힙니다. 그러면, 이런 대목에서는 출판사에서 찬찬히 짚고 살펴서 가다듬어 주어야지 싶어요. 왜냐하면, 《미스 히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숲에서 살아가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든요. 숲내음과 숲빛과 숲살이를 제대로 밝히거나 보여주지 못하면, 이 작품을 한글판으로 옮기는 뜻이나 보람이 없습니다.


.. (다람쥐) 스코랄은 히코리 열매 머리를 먹은 걸 후회했다. 그 뒤로 스코랄은 착실해졌다. 해마다 충분한 열매들을 모은 뒤에 겨울을 나고, 하루 세 끼 식사 이외에 간식을 먹지 않았다 … 히코리는 스스로 이렇게까지 높이 올랐다는 데 놀랐다. 그러나 이 늙은 사과나무는 가지가 구부러진 곳도 비틀린 곳도 두루두루 잘 자랐다. 히코리와 더불어 오래 살았던 큰 가지와 잔가지 모두 고향처럼 느껴졌다 ..  (160, 162쪽)


  우리는 누구나 나무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아파트마을 한복판에서 살더라도 늘 나무 기운을 얻어 살아갑니다. 나무가 베푸는 숨을 마시고,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로 만든 책을 읽으며, 나무로 짠 책걸상을 씁니다. 시멘트로 집을 짓더라도 나무판을 대어 시멘트를 붓습니다. 나무가 없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나무를 깎아 연필을 쓰다가 볼펜이 나왔습니다. 나무로 불을 때며 겨울을 났습니다. 나무로 집을 지어 오래오래 살았으며, 나무가 베푸는 온갖 열매를 맛나게 먹으면서 목숨을 건사했어요.


  능금도 배도 복숭아도 귤도 포도도 모두 나무가 베푸는 선물입니다. 열매만 따로 있지 않아요. 열매가 맺도록 나무가 우뚝 섭니다. 능금을 먹을 적에 능금알만 먹지 않아요. 나무가 능금알한테 베푼 고운 사랑을 먹습니다. 배 한 조각을 먹을 적에도 배알한테 나무가 베푼 너른 사랑을 먹습니다.


..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네. 이번 봄에는 접목을 한 적이 없거든. 더군다나 매킨토시의 늙은 나무에다 누가 하겠냐고.” 앤은 큰 가지에 걸터앉아, 꽃이 핀 접목 가지를 살살 만져 보았다. ‘이건 히코리랑 닮았잖아. 목까지는 비슷해. 하지만 히코리한테는 머리가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계속 자라나면 혹시 사과도 열릴까?” 앤이 큰 소리로 물었다. “열리고말고!” ..  (172쪽)


  《미스 히코리》에 나오는 ‘히코리’는 능금나무 가지를 잘라서 히코리 열매를 머리로 삼아 꽂은 인형입니다. 히코리 인형은 시골에서 놀던 아이한테 알뜰한 동무입니다. 그런데, 히코리와 함께 놀던 동무는 어버이 손에 이끌려 도시로 떠나요. 시골은 겨울에 너무 추우니 도시로 갔는지, 아니면 도시에 있는 학교로 보내려고 아이를 도시로 데려갔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홀로 덩그러니 시골에 남습니다. 히코리는 저랑 놀던 아이가 도시로 간 줄 모릅니다. 까마귀가 히코리한테 이런 이야기를 알려준 뒤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미스 히코리》는 숲인형 히코리가 홀로서기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추운 겨울날 히코리는 나뭇잎과 이끼로 손수 바느질을 하며 모자도 짓고 옷도 짓습니다. 숲인형답게 나뭇잎옷을 입습니다. 숲인형인 만큼 숲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웃과 사귀고 온갖 동무를 하나둘 만납니다.


  그런데, 애써 겨울나기를 하고 봄을 맞이하던 어느 날, 숲인형 히코리는 머리통을 잃습니다. 살가운 이웃이 되어 지낸 다람쥐가 배고픈 나머지 그만 숲인형 히코리 머리통을 톡 떼어내 와작와작 깨물어 먹습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머리통을 잃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머리통을 잃은 뒤 새로운 마음이 자랍니다. 숲인형 히코리는 ‘능금나무 가지’와 ‘히코리 열매’가 붙은 숨결이었어요.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모로 ‘예쁘게 보이는 인형’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숲인형으로서는 서로 다른 숨결인 능금나무와 히코리가 붙으니 ‘균형이 깨진 셈’이라 할 수 있어요.


  머리통을 잃은 숲인형은 비칠걸음으로 어디론가 갑니다. 숲인형 머리통을 깨물어 먹은 다람쥐는 덜덜 떱니다. 아무리 배고프다 하더라도 살가운 동무 머리통을 왜 먹었는지 돌아보면서 뉘우칩니다. 머리통이 사라진 숲인형은 ‘능금나무 가지만 있는’ 몸으로 천천히 걸어 늙은 능금나무 앞에 섭니다. 그러고는 척척 능금나무 우듬지까지 올라갑니다. 우듬지에 닿은 뒤 따사로운 봄볕을 느낍니다. 그동안 미처 못 알아채던 포근함을 깨닫습니다. 무엇일까요. 숲인형 마음속에서 무엇이 터져나오려 할까요.


  숲인형은 머리를 늙은 감나무 한켠에 척 박습니다. 늙은 감나무 우듬지 한켠에 구멍이 있었는데, 이 구멍이 바로 숲인형 ‘능금나무 가지’가 깃들 품이라고 느낍니다.


  겨울이 끝납니다. 도시로 갔던 아이가 돌아옵니다. 아이는 저랑 놀던 인형을 찾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늙은 능금나무 꼭대기에 있는 ‘내 인형과 꼭 닮은 나뭇가지’를 봅니다. 무엇보다 이 나뭇가지에 고운 능금꽃이 피었고, 이 나뭇가지에 고운 능금꽃이 피면서, 늙은 능금나무에도 소복소복 푸지게 능금꽃 물결이 일렁입니다. 숲인형은 꽃이 되었습니다. 꽃이 된 숲인형은 말갛게 웃습니다. 4347.2.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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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2014-02-2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만든 편집자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부분을 잘 새겨두겠습니다. 그리고 번역해 주신 선생님과 얘기 나눠 다음번에 찍게 되면 꼭 고쳐 넣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숲노래 2014-02-27 05:26   좋아요 0 | URL
이 예쁜 동화책이 언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오래도록 기다렸기에 아주 즐겁게 읽었어요. 아마 이 책을 읽을 여느 독자들은 모두 도시에서 살아갈 테니, '산딸기'와 '산딸나무'가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시골에서 만나는 이웃 가운데에도 '산딸나무 열매'를 모르는 분이 무척 많아요. 환경운동을 하거나 생태 관련 일을 하거나 농민회 일을 하는 분들조차 산딸나무 열매를 모르시기도 하더라구요.

이 책을 옮겨 주신 분은 여러모로 마음을 많이 쓰시면서 '요즈음 읽은 어느 번역 동화책'보다 말투라든지 이야기가 참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삶에서 겪지 못하는 일'은 풀어서 옮겨내기 어려운 대목이 있어요.

옛날 책 그림도 예쁘지만, 지난해 봄에 이 책을 새롭게 내놓아 주시면서, 그림도 새롭게 다시 그려 주셨기에 이 책이 한결 빛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둘레에 아이들 돌보며 책 읽히는 이웃들은 으레 '학교생활 이야기 동화책'만 많이 읽히지만, <미스 히코리>와 같은 동화책이 널리 알려지고 읽히면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빌어요.

느낌글을 쓰면서 '책 줄거리'는 거의 안 쓰곤 했는데, 일부러 이 느낌글에서는 글끝에 '늙은 능금나무를 살리는 인형' 이야기를 길게 적어 보았어요. 다른 독자님들도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하도록 고운 빛을 누리시면 참 좋으리라 꿈꿉니다.

고맙습니다.

appletreeje 2014-02-27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저도 꼭 읽고 싶네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02-27 05:30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이렇게 새로 나온 줄 오래도록 몰랐기에, 그저 저는 1979년 옛날 판만 만지작거리곤 했어요. 옛날 판을 놓고 '사라진 책' 이야기를 쓸까 했었는데, 마침 '사라진 책' 이야기를 쓰려 할 즈음에 검색해 보다가, 새로 나온 줄 알아채고는 즐겁게 읽어서 이렇게 느낌글을 쓸 수 있었어요~
 
마녀배달부 키키 1 - 홀로서기를 시작한 키키 마녀배달부 키키 1
가도노 에이코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권남희 옮김 / 소년한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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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47

 


마음을 적시는 고운 노래 한 가락
― 마녀 배달부 키키 1
 가도노 에이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권남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11.10.25.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가 있습니다.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면, 어린 마녀 키키가 새로운 삶터를 찾아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데, 어린 마녀 키키가 내려앉은 삶터는 커다란 도시입니다. 만화영화에서는 커다란 도시를 온갖 빛깔로 보여줍니다. 원작인 동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테두리에서 만든 만화영화일 테지만, 원작에서 엿보이는 사람들 눈빛과 삶빛은 만화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마녀 키키는 ‘도시가 좋아’서 도시로 가지 않아요. ‘바다가 가까우면서 숲이 있고 사람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는 마을’을 꿈꿉니다. 그런데, 만화영화에서는 이러한 삶빛과 사랑빛보다는 고빗사위라든지 도시 물결이 드러나도록 꾸몄어요.


.. 재채기약을 만드는 마법은 아무래도 키키의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성미가 급해서인지 약초를 길러서 잎과 뿌리를 잘게 다져 푹 삶는 일은 아무리 배워도 잘하지 못했지요. “이렇게 또 하나의 마법이 사라져 버리는 건가.” … 키키는 엄마가 마녀니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될 거야.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 “마녀인 나도 모른다는 게 이상하지만, 캄캄한 밤과 정적이 사라진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조금이라도 밝거나 소리가 나면 산만해져서 마법을 잘 사용할 수 없다고.” ..  (13, 17, 28∼29쪽)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 같은 원작을 놓고서 저마다 다른 만화영화를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달라, 같은 시골에서 살더라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그리겠지요.


  그런데, 만화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다루는 아주 커다랗고 뜻있는 대목을 너무 덜거나 뺐어요. 동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읽으면, 어린 마녀 키키가 어머니한테 들려주는 “엄마, 나 좀 생각해 봤는데 마녀는 말이야, 빗자루만 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물론 배달 일을 하다 보면 바빠서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걸어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230쪽)?” 같은 이야기가 흐르는데, 이런 이야기가 만화영화에는 안 나옵니다. 어린 마녀가 하늘을 나는 기쁨과 바람노래와 숲내음을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가 하는 이야기가 동화책에 한결같이 흐르는데, 막상 만화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하나도 안 나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어린 마녀가 홀로서기를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지만, 이 줄거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마녀가 살아온 곳은 ‘시골’이요 ‘숲’이었다고, 키키네 어머니 고키리 씨가 키키한테 이야기해 줍니다. 마녀들은 숲이 노래하는 곳에서 온갖 마법을 쓰면서 아름답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지구별이 자꾸 달라지면서 문명이 생기고 기계가 늘면서, 마녀들이 마법을 하나둘 잃거나 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키키네 어머니가 키키더러 ‘너무 복닥거리는 도시’로는 가지 않기를 바란 까닭도 이 때문이겠지요.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너무 바쁜 나머지, 마녀도 다른 이웃도 제대로 살피지 못합니다. 너무 바쁘지 않은 사람일 때에 비로소 마녀를 돌아볼 수 있고, 이웃도 제대로 살필 줄 압니다. 바쁜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일 때에 마녀뿐 아니라 작은 풀벌레와 숲짐승도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아직 어린애구나. 하지만 빗자루는 장난감이 아냐. 언젠가 엄마 빗자루도 낡을 거야. 그럼 그때, 키키 마음에 드는 걸로 해. 그때는 너도 어엿한 마녀가 돼 있을 테니까.” … “키키, 성가시게 자꾸 말하는 것 같지만 마을은 잘 골라야 해. 가게가 많다거나 흥청거린다거나,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느낌으로 결정하는 건 신중히 다시 생각해 봐야 해. 큰 마을에는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뿐이니까.” … 키키의 고향 사람들은 마녀와 사는 걸 기뻐해 주었습니다 ..  (24∼25, 31, 49쪽)


  도시 한복판에서는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기 어렵습니다.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 나무노래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해요. 도시 한복판에 서면 나무가 노래를 하는지 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자동차 소리에 시달리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떠드는 소리와 손전화 소리가 그득합니다. 나무를 쳐다볼 틈이 없고, 나무를 떠올릴 말미가 없습니다. 골목에서도 우악스럽게 달리는 자동차를 살피느라 마음을 못 놓습니다. 늘 조마조마하지요. 늘 바쁘지요. 늘 어지럽지요. 늘 어수선하지요.


  이런 데에서 숲노래를 누가 생각할까요. 이런 도시에서 숲빛을 누가 살필까요. 이런 도시에서 숲사랑과 숲삶을 누가 꿈꿀까요.


.. 키키는 겨우 한 움큼의 햇살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바꾼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감동했습니다 … 부드러운 봄바람이었습니다. 얼굴에 그 바람을 맞는 순간, 키키는 돌처럼 딱딱했던 기분이 스르륵 풀리는 걸 느꼈습니다 … “하늘을 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오소노 씨가 날고 싶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  (38, 68, 91쪽)


  시골에서 지낸다고 숲노래를 듣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시골에서는 도시에 있는 자동차 못지않게 시끄러운 경운기와 트랙터가 있습니다. 경운기가 한 번 지나가면 그야말로 귀가 따갑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요. 경운기가 지나가면 새가 지저귀거나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모두 짓밟습니다.


  소를 부리며 들일을 하던 옛 흙일꾼은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풀과 흙을 만졌습니다. 소가 풀을 뜯는 곁에서 들일을 하던 옛 흙일꾼은 풀벌레가 날며 나비가 춤추는 바람을 마시면서 풀과 흙을 보살폈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기계를 만지고 기름내음을 맡습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비닐을 만지고 농약을 다룹니다. 오늘날 흙일꾼은 텔레비전을 보고 소주를 들이붓습니다. 숲을 아끼려는 흙일꾼이 자꾸 자취를 감추어요. 숲을 돌보려는 흙일꾼이 시나브로 사라집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시골을 아끼며 흙을 만지려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좀처럼 안 나타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시골로 가서 흙을 만지겠다는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젊은이는 거의 없습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 가운데에 “내 꿈은 농사꾼이에요!” 하고 말하는 아이가 있나요? 농업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 가운데 “나는 즐겁게 흙을 만지겠어요!” 하고 노래하는 아이가 있나요?


.. 세찬 바람 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부드럽고, 심지가 단단하고, 강한 빗자루를 염두에 두고 나뭇가지를 골랐습니다 … 키키와 지지는 가게로 돌아가려고 다시 하늘을 날았습니다. “키키, 사례는 받았어?” 지지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즐거운 경험을 했는데 더 이상 뭘 바라.” … “이거 조개껍데기지? 바다는 이런 색이니?” 고키리 씨가 물었습니다. “응, 그 조개는 새벽 바다 색깔과 닮았네.” ..  (109, 213, 229쪽)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소년한길,2011)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학교를 안 다녔습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면서 늘 사랑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받고 나누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삶을 일구었습니다.


  어린 마녀 키키는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마녀 집안 피’를 알뜰히 사랑하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합니다. 마녀 아닌 ‘여느 사람’인 또래 아이들은 모조리 학교를 다닙니다. 또래 아이들은 모조리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될는지 몰라요. 마녀 키키는 마녀 집안에서 이어온 대로 마녀가 돼요.


  하늘을 날지요. 마을사람을 마음으로 따사로이 돌보는 일을 하지요. 이웃사람 누구나 꿈을 잃지 않도록 북돋우고, 사랑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요.


.. “키키, 꼭 돌아와야 해. 우린 이웃집에 마녀가 살아서 정말 행복하단다.” … 언제부터 천방지축 말괄량이 빗자루가 이렇게 능숙하게 날게 된 걸까요. 키키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 “엄마, 나 좀 생각해 봤는데 마녀는 말이야, 빗자루만 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물론 배달 일을 하다 보면 바빠서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걸어 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걸어 다니다 보면 싫어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 오소노 씨를 만난 것도 걸어가다였어. 그때 슬퍼하면서 날기만 했더라면 난 어떻게 됐을지 몰라.” ..  (224, 225, 230쪽)


  마음을 적시는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듣습니다. 긴긴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들려는 요즈막, 우리 시골집 둘레로 온갖 노래가 새롭게 퍼집니다. 긴긴 겨울날, 우리 집 처마 밑 빈 제비집에 살짝 깃들던 딱새 두 마리는 다시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가끔 처마 밑으로 찾아와서 노닐곤 하는데, 딱새는 딱새 노래를 곱게 베풀어 줍니다. 박새도 참새도 까치도 까마귀도 멧비둘기도 저마다 새삼스레 노래를 들려줍니다. 누렁조롱이도 고운 노래를 들려주고 해오라기와 청둥오리도 맑은 노래를 들려주어요.


  곳곳에서 씩씩하게 움트는 봄꽃 따라 천천히 푸른 빛으로 물들면, 이 푸른 들판마다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겠지요. 겨우내 잠들던 풀벌레는 새봄에 새빛으로 예쁜 이야기를 속삭이겠지요. 사월이 지나면 제비가 돌아와 제비 노래를 들려줄 테고요.


  우리 이웃들이 가끔은 자가용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빌어요. 천천히 거닐면서, 아이 손을 잡고 골목을 겉고 들길을 거닐면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하늘숨을 마실 수 있기를 빌어요. 들풀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목청껏 맑은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빌어요.


  대중노래를 불러야 노래가 되지 않아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스스로 일노래 사랑노래 자장노래 놀이노래를 불렀듯이,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스스로 가락을 짓고 노랫말을 붙여서 우리 삶을 노래 한 가락으로 밝힐 수 있어요. 삶노래를 사랑스레 부르면서 활짝 웃을 수 있어요. 4347.2.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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