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1
권정생 지음, 박경진 그림 / 우리교육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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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1


 

예쁜 마음이 빚는 삶

―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권정생 글

 박경진 그림

 우리교육 펴냄, 2000.12.15.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 참 예쁘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오늘날 얼마나 될까요. 풀을 뜯으면서 ‘풀잎 참 곱네’ 하고 말하는 사람은 요즈음 얼마나 될까요. 해를 바라보면서 ‘햇볕이 포근해서 고맙구나’ 하고 말할 수 있으면, 싱그럽게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이 불어서 반갑구나’ 하고 말할 수 있다면, 삶이 언제나 새롭게 달라집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이웃한테 빙그레 웃으면서 즐겁게 인사를 건네면, 우리 삶에 아름다운 사랑이 깃듭니다.


  예쁜 마음이 예쁜 삶을 빚습니다. 고운 마음이 고운 삶을 빚습니다. 착한 마음이 착한 삶을 빚습니다. 내 마음을 따라 내 삶이 새롭게 태어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삶대로 스스로 빚으니까요.



.. 산벚나무에 예쁘게 꽃이 피었어요. 엄마 너구리는 아기 너구리 또야한테 짧은 반바지를 입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날씨가 그만큼 따뜻해졌으니까요. 엄마 너구리는 장롱 빼닫이를 열고 지난해 또야가 입었던 반바지를 꺼내었어요. “에그, 엉덩이가 뚫렸네!” 엄마 너구리는 뚫어진 바지를 들고 잠깐 망설였어요. 그냥 버리고 새로 살까 생각했던 거지요. “아니야, 예쁘게 기워 입혀야지.” … “그런데 말이지. 또야가 이 기운 바지를 입으면 산에 들에 꽃들이 더 예쁘게 핀단다.” “참말?” ..  (9, 13쪽)



  나무를 바라보면서 말을 건네요. 푸르게 푸르게 자라 다오 하고 나무한테 말을 건네요. 나무는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을 먹으면서 자라지만, 사람들이 건네는 따사로운 말도 함께 먹으면서 자랍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이 싱그럽고 좋기 때문에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숲사람 모두 따사로우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숲을 마주하면서 즐겁게 노래하기 때문에 한결 짙푸릅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숲에 깃들어 조용히 지내는 사람은 언제나 너그러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입니다. 숲은 숲사람이 베푸는 마음밥을 언제나 나누어 받습니다. 숲사람도 숲이 베푸는 숨결을 언제나 나누어 받으니, 숲사람과 숲은 서로서로 즐겁게 고운 사랑을 나눈다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서 지내는 삶이 메마르거나 팍팍하다면, 왜 메마르거나 팍팍한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맨 처음 도시를 지은 사람들부터 ‘어깨동무’나 ‘두레’가 아닌 ‘내 밥그릇 챙기기’를 헤아렸을 테고, 이 마음이 차츰 퍼지면서, 도시로 몰리는 사람도 어깨동무와 두레보다 ‘내 밥그릇 챙기기’를 자꾸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부터 시골을 떠나 도시로 찾아든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도시에 있는 이웃과 어깨동무를 하려고 도시로 찾아드나요?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가요? 도시에서 예술을 하거나 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가요? 어깨동무와 두레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혼자 성공하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이러하다 보니, 도시살이가 매우 메마르거나 팍팍합니다.



.. 아기 사슴 콩이는 앞발을 들고 긴 모가지를 뻗어 물렁감 가지를 똑 따 줬어요. 통통이는 물렁감을 받아 들고, “고맙다, 우리 둘이 같이 먹자.” 했어요 ..  (50쪽)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이 될 때에 즐겁게 노래합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 때에 즐겁게 노래하듯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지겹게 찡그리는 마음이 될 때에 그야말로 지겹게 찡그리면서 우악스럽습니다. 지겹게 찡그리는 마음으로 우악스럽다면 언제나 거칠면서 짜증스러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권정생 님이 아이들한테 선물하듯이 쓴 짧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우리교육,2000)를 읽습니다. 권정생 님은 아이들이 고운 마음빛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더 많이 읽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더 똑똑해지거나 더 잘나거나 더 뭔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더 즐겁게 뛰놀면서 더 아름다운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 “정말 마을이 걱정이구려. 젊은이들은 모두 다 떠나가 버리니까…….” “글쎄 말이에요. 농사짓고 가족끼리 오손도손 살면 참 좋을 텐데…….” “세상이 끝이 나려나 보오. 참으로 쓸쓸하구려. 앞으로 생각이 달라지면 나갔던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지 모르지 않겠소.” … 할머니는 오래 살던 고향 집, 뜰 앞의 감나무, 살구나무, 손수 일구어 농사짓던 논과 밭, 달맞이꽃이 피는 냇가 오솔길과 우물길, 옛날 초가 지붕의 박꽃과 예쁘게 울어 주던 쓰르라미들, 온갖 아름다운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  (62, 64쪽)



  이야기에 나오는 ‘또야 너구리’는 ‘너구리 어머니’가 손수 기운 바지를 입고 활짝 웃습니다. 또야 너구리는 숲을 달리면서, 냇물을 건너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너구리 동무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주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합니다. 이 즐거운 웃음노래는 어느새 숲과 냇물과 하늘과 동무 모두한테 퍼집니다. 즐겁게 스며들고 즐겁게 자랍니다.


  살가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옛날 옛적에는 모든 사람이 천천히 걸어서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말이 있었으나 말을 빨리 달려서 볼일을 본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말이 있었어도 굳이 말을 달리지 않았습니다. 이 고개 저 고개를 천천히 두 다리로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옛날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이 고개에서 저 고개에서, 이 들에서 저 숲에서 늘 노래를 불렀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씽씽 가로지릅니다. 고속도로 둘레에 노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귀를 찢는 자동차 소리만 가득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곳저곳 아주 많이 자주 돌아다니지만 노래를 안 부릅니다. 자동차에서 기계를 움직여 대중노래를 켤 뿐입니다.



.. 세월이 흐르자 불탄 자리에 새로 싹이 나고 나무가 자라나 옛날처럼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어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강 건너 마을에서 크게 잔치를 벌여 놓고 초대를 했어요. 모두 함께 춤추며 놀았어요. 그러고는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서로 도우며 살자고 약속했어요 ..  (78쪽)



  사람들이 늘 부르는 살가운 노래를 듣던 옛날 숲과 들과 바다와 골짜기와 마을은 늘 푸르면서 따사로운 빛이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가 ‘조용한 아침나라’일 수 있던 까닭은, 예부터 어느 마을 어느 사람이든 즐겁게 노래하면서 삶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사람은 노래를 안 불러도 시골사람은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늘 노래를 부르는 시골마을로 찾아간 도시사람은 ‘시골은 인심이 좋다’ 하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시골에서 ‘좋은 인심 찾기 어렵다’고 하지요? 그럴밖에 없어요. 오늘날은 시골마다 텔레비전이 들어왔고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기계를 엄청나게 씁니다. 오늘날 시골에서 노래를 부르며 들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라디오를 켜기는 하지만,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아니, 농약을 뿌리면서 노래를 어떻게 부르겠어요. 입을 꾹 다물지요. 경운기나 트랙터를 몰면서 노래를 못 부르지요. 시끄러운 소리에 모든 노래가 묻히는데요.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화를 걸어 배달음식을 시키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술집에서 술과 안주를 시켜 먹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않을 때에는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비로소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가 흘러야 내 몸이 새롭게 태어나고, 내 둘레에서 들이며 숲이며 바다이며 아름답게 거듭나요.


  우리 삶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짓는 줄 아이들이 잘 알아챌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 삶은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짓기 때문에, 어른들은 누구보다 슬기롭게 삶을 가꾸어야 하고,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빛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님 이야기에 깃든 구수한 노래를 곰곰이 되씹습니다. 4347.8.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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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5
김삼웅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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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1



올곧은 나라로 나아가는 길

―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김삼웅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8.15.



  우리 마을에 들고양이가 여럿 살아갑니다. 들고양이가 여럿 살아가기에 이 아이들은 쥐를 바지런히 잡아서 먹습니다. 마을 할매 몇 분이 먹이를 주기도 하지만, 들고양이는 들쥐를 가장 맛나게 잡아서 먹지 싶습니다.


  그러께에 들고양이는 우리 집 광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때 태어난 새끼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올해에 우리 집 광에서 또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태어납니다. 달포 남짓 지났지 싶은데, 새끼 고양이는 아직 몸이 작습니다. 그래도 잘 뛰고 잘 달립니다. 처음에는 낯가림을 하는가 싶더니, 요사이는 낮이고 밤이고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섬돌 언저리와 부엌 앞까지 볼볼볼 걸어옵니다. 한참 눈을 마주쳐도 내빼지 않습니다. 들고양이는 사람 손을 안 타기 마련인데,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나 광에서 지내는 이 아이들은 어쩌면 우리 식구 손을 탈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 한국을 병탄한 일제는 그 공으로 이완용 등 매국노 75명에게 일본 작위와 거액의 보상금을 안겨 줍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투옥하거나 고문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지요. 그러고는 비판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데 열중합니다 … 일제 협력자들과 일본군 출신들이 장기간 권력을 장악하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자식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물려줄 유산도 없다 보니 후손들 대부분이 어려운 생활을 하게 돼요 ..  (16, 21쪽)



  간밤에 마당에서 달과 구름을 올려다보다가 하늘 한쪽에서 반짝 하는 불빛을 보앗습니다. 별똥인가 반딧불이인가 하고 갸우뚱하며 다시 그쪽을 바라보는데 반짝 하는 불빛이 더 보이지 않습니다. 별똥 같지는 않고 반딧불이로구나 싶은데, 살짝 나타났다가 이내 멀리 간 듯합니다.


  마을 샘터에 다슬기가 삽니다. 다슬기가 있으니 반딧불이도 몇 마리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을 논에는 농약을 하도 치기에 다슬기가 살아남기 어렵습니다만, 마을을 뒤로 포근히 감싸는 천등산 골짜기에 가면 곳곳에서 다슬기를 봅니다. 그곳까지 농약을 쳐댈 사람은 없을 테니, 틀림없이 마을과 멀찍이 떨어진 데에서는 반딧불이가 불춤을 추리라 생각합니다.


  들고양이와 반딧불이를 떠올리면서 삶을 그립니다. 평화로운 나날이란 무엇이고, 씩씩하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나날이란 무엇일까요. 정치란 무엇이고 사회란 무엇일까요.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마련해서 스스로 건사할 수 있을 때에, ‘제금’을 나던 우리 삶입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집을 떠나 도시로 가서 대학생이 된다든지, 대학교를 마치고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든지 하면, 으레 방을 따로 얻어서 살기 마련입니다. 예전처럼 밥·옷·집을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제금나기’가 아니라, 그냥 ‘어버이한테서 떨어져 따로 살기’입니다. 왜냐하면, 요즈음 젊은이는 밥짓기나 옷짓기나 집짓기를 하나도 못 합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벌 줄 알 뿐입니다.



.. 유관순은 재판 중에도 당당했습니다. 일본인 검사가 “너희 조선인이 무슨 힘으로 독립을 하느냐”고 모욕적인 발언을 하자, 앉아 있던 의자를 들어 검사를 내리칩니다. 재판정은 소란해지고 4년이 추가 선고되어 7년형을 받아요 … 김창숙은 전쟁 중 이승만 정권이 민간인 학살과 각종 비민주적인 행위를 자행하자 ‘이승만 대통령 하야 경고문’을 발표합니다 ..  (49, 62쪽)



  한국은 식량자급율이 30퍼센트조차 안 됩니다. 대통령이라든지 시장이나 군수가 있으나, 주한미군도 한국에 또아리를 틉니다. 남·북녘은 서로 온갖 전쟁무기를 갖추어 평화를 지키려 한다지만, 군대에서 터지는 일은 갖가지 폭력과 살인과 가혹행위입니다. 군 간부는 군대에서 돈을 많이 빼돌리곤 합니다. 군대가 있으면 평화를 지키거나 독립을 할까요? 정치와 사회 조직이 있으면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나 정치를 살피면, 일제강점기 같은 식민지살이는 안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 쓰는 말을 돌아보면 일본 말투나 일본 한자말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사람이 먹는 온갖 과자나 가공식품은 일본 것 이름이나 모양을 많이 베끼거나 훔쳤습니다. 국제저작권법 조약을 받아들이기 앞서까지 한국에서는 일본 책을 많이 훔치거나 베껴서 해적판을 펴내기 일쑤였습니다. 한국은 참말 독립된 나라가 맞을까요?


  한국에는 주한미군이 있으며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미국이 바라는 대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습니다. 스무 해쯤 앞서는 미국이 바라는 대로 쌀개방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온 나라가 영어교육 바람에 휩쓸립니다. 삶을 배우고 갈고닦으려고 하는 영어교육이 아니라, 자격증과 돈벌이 때문에 아이들을 닦달하는 입시지옥 영어교육입니다.



.. 조선의 기독권 세력, 왕족이나 대신들 대부분이 매국하거나 친일파가 될 때 그(이회영)와 그의 일족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해외로 망명하여 무관학교를 세웁니다 … 홍범도 장군은 머슴 출신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왕족과 고관대작의 벼슬아치들이 국가와 민족을 배반할 때, 산포수였던 그는 의병이 되고 빨치산 대장이 되고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어 일본 침략군과 싸웁니다 ..  (114, 116쪽)



  김상웅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올곧은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바라던 사람들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읽습니다. 자그마한 책에 열아홉 사람 이야기를 간추리려니, 그야말로 간추린 삶조각을 읽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이 책에 실린 열아홉 사람만 독립운동가이지 않습니다. 이 책에 실린 열아홉 사람이 만난 수많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열아홉 사람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려고 할 적에 도와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땅을 일구고 옷을 짓던 수수한 시골사람이 있습니다. 물고기를 낚고 나무를 베던 시골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다르게 도드라진 모습이 없다 할 수 있고, 역사책에 이름 몇 글자 남기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먹은 밥과 입은 옷과 살던 집은 바로 이런 수수한 시골사람이 지어서 마련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바라던 이들은 수수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짓던 사람들 사랑을 받아서 씩씩하게 이녁 한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청소년들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중근은 진남포 천주교 교당에서 운영하던 돈의학교를 인수해서 교장이 됩니다. 거기서 천주교 신앙과 군사 훈련 그리고 우리 역사 교육에 중점을 둡니다 … 박열이 국무총리가 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 묻는 기자에 박열은 “국무총리가 되는 것도 좋으나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어야 그 자리를 하지, 그럴 가망이 보이지 않는 국무총리는 해서 뭐 하나.” 하고 말합니다 ..  (140, 175쪽)



  식민지에서 벗어나기만 한대서 독립이 아닙니다. 한국은 일본강점기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얄궂거나 뒤틀린 일본말 굴레’에서 아직 안 벗어났거나 못 벗어났습니다. 주한미군과 국가보안법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이나 경제조약 수렁에 갇혔습니다. 식량자급율이 50퍼센트도 아닌 30퍼센트조차 안 되는데,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홀로서기(독립)’를 힘차게 하겠노라 나서는 젊은이를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깨끗한 밥과 맑은 물과 싱그러운 바람을 누리지 못하면서 ‘독립’을 할 수 있을까요? 높이 때려짓는 아파트가 아닌, 우리 보금자리를 우리 손으로 즐겁게 짓지 못하면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까요?


  돈이 있거나 힘이 있어야 하는 독립이 아닙니다. 독립운동은 식민지 정치 굴레를 벗어나는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되찾고, 사랑을 아름답게 가꿀 때에 비로소 홀로서기를 이룹니다. 이 나라 어린이와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름다운 삶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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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산하어린이 127
이영옥 지음, 박재동 그림 / 산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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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8


 

스스로 좋아하는 삶

―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이영옥 글

 박재동 그림

 산하 펴냄, 2005.6.22.



  엊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드러누우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온몸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고 여겨 그대로 곯아떨어졌습니다. 아이들도 곧장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 주고 이마를 쓰다듬다가 괜히 미안합니다. 몸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더라도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이런 소리가 사라질 테니까요. 삐걱삐걱 소리가 아닌 보드라운 노랫소리로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면, 아이들도 즐거이 꿈나라로 날아갈 테니까요.



.. “재동아, 엄마는 밭에 간다. 아기 혼자 마당에 있으니, 잘 좀 데리고 놀아라.” 어머니가 방에 있는 재동을 향해 외쳤다. “예.” 재동은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햇살이 방바닥을 도화지 삼아 넘실거리는 모양이 얼마나 신비한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림 안 그릴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화가님께서 그림을 안 그리다니? 아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장판에는 그리지 말거라.” ..  (11, 15쪽)



  엊저녁 마을 어디에선가 기계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모두 잠들 때인데, 누군가 늦은 밤에 두어 시간 즈음 기계를 돌립니다. 낮이나 저녁에는 무엇을 하다가 왜 해 떨어진 밤에 기계를 돌릴까 아리송합니다. 그렇게 밤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는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았습니다. 풀벌레는 몇 가지가 저마다 다른 소리로 우는지 귀를 기울입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로 개구리는 몇 마리나 살아남아서 노래를 부르는지 귀여겨듣습니다. 마을마다 농약을 와장창 뿌리기 앞서, 이른여름에는 그야말로 개구리잔치였습니다. 우리 집 풀밭뿐 아니라 마을 모든 논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구리가 우렁차면서 시원하게 노래잔치를 열었습니다.


  마을마다 농약을 뿌리니, 또 항공방제까지 하니, 개구리가 거의 모두 죽습니다. 우리 집 풀밭에만 몇 마리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도 개구리 노래를 못 들어요. 농약 때문에 죄 타죽거든요.


  밤에 잠을 재우며 아이한테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알려주고 싶지만, 참 어렵습니다. 늘 듣는 소리여야 알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일곱 살 아이가 문득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왜 책에는 개구리가 개골개골 운다고 나와?” 그러게 말야. 네가 듣기로도 개구리는 ‘개골개골’ 하지는 않잖아?



.. 재동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경상남도의 자그마한 시골마을 모래골이었다. 밤나무들이 울창한 산을 둘러서 있고, 맑은 물줄기가 띠처럼 마을을 감싸고 흐르며, 모래가 솜처럼 부드럽고 폭신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재동은 이 모래골의 앞산과 강가의 모래를 정말 사랑했다 … 해마다 봄이면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려 운동장을 하얗게 덮곤 했는데, 선생님은 반장인 재동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꽃잎을 쓸어 내라고 했다. ‘참 이상해. 어른들은 저리도 아름다운 걸 왜 쓸어 내라고 할까?’ ..  (17, 18쪽)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릴 적에 환하게 웃습니다. 스스로 안 좋아하는 삶을 누리면 얼굴을 찡그리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가꿀 적에 맑게 노래합니다. 스스로 안 좋아하는 삶을 보내야 하면 노래가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서 해야 공부가 됩니다. 대학교에 가야 하거나 시험점수가 높게 나와야 한대서 아득바득 이를 갈면, 오직 한 가지만 남습니다. 미움이 남습니다. 여기에 짜증이 붙습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한 공부로는, 대학교에 들어간들 제대로 대학교를 누리지 못합니다. 스스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하는 공부로는, 높은 점수가 나와도 못마땅합니다.


  우리는 왜 이 땅에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낼까요. 우리는 왜 낮에는 일어나서 움직이고 밤에는 눈을 감고 잠드는가요. 잠을 깨는 아침은 어떤 하루인가요. 어제와 똑같은 날인가요, 어제와는 다른 새로운 삶인가요.



.. 재동은 마음이 무거웠다. 어떤 어른들은 만화라면 무조건 나쁘게만 여기고, 만화방에 드나드는 학생을 불량한 학생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화방 주인의 아들인 자기가 그런 내용의 포스터를 그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선생님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 학교에서 소풍 갔다 온 날에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 먹는 삽화를 넣었고, 시골에 가는 날에는 버스를 운전하는 아저씨나, 고향의 커다란 소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렇게 영화와 만화와 글쓰기에 미쳐 있는 동안 재동의 학교 성적은 완전히 밑바닥이 되고 말았다 ..  (57, 81쪽)



  박재동 님이 걸어온 길을 조곤조곤 밝히듯이 풀어낸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산하,2005)를 읽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무척 멋진 책이라고 느끼는데,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이 책이 오래오래 길이길이 두고두고 읽히기는 어렵구나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찾아 씩씩하게 한길을 걸어간 사람들 이야기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못 읽히는구나 싶습니다. 학교 공부가 아닌 삶빛을 찾으려는 사람들 이야기는, 졸업장이 아닌 사랑빛을 찾으려는 사람들 이야기는, 아직 한국에서는 머나먼 이야기일는지요.


  이 책은 판이 끊어졌으나, 박재동 님은 오늘도 만화를 그립니다. 이 책은 이제 도서관과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으나, 박재동 님은 오늘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할 일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스스로 가장 즐거운 일을 하면 됩니다. 스스로 가장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 됩니다. 스스로 가장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꾸다 보면, 시나브로 사랑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 재동은 멀리 고깃배가 지나가고 갯벌에서 어린 소녀가 조개를 캐는 모습을 캔버스에 옮겼다. 정학 때문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선생님, 그까짓 그림이 뭐냐고요? 그것은 제 인생 전부입니다.’ … 한 달에 한 번씩 우체국에 가서 어머니가 부쳐 준 돈을 찾아 들고 올 때마다, 재동은 그게 어머니의 피와 땀이라고 생각했다 … 미술실을 놔두고 왜 걸핏하면 학생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수업을 하느냐는 불만 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재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술 수업은 미술실에서 그림이나 그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답답하고 못마땅했다 ..  (98, 112, 122쪽)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옵니다. 곧 동이 틀 텐데, 개구리 노랫소리가 외줄기로 울립니다. 어디에서 우는 개구리일까 헤아려 봅니다. 개구리는 어디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저녁에 풀개구리 한 마리를 우리 집 섬돌에서 보았습니다. 어제 낮에 참개구리 한 마리를 우리 서재도서관 귀퉁이에서 보았습니다. 우리 집 꽃밭에도 참개구리가 몇 마리 삽니다. 아마 뱀도 한두 마리쯤 우리 집 풀밭에 있을 수 있습니다. 며칠 앞서 골짜기에서 도룡뇽을 한 마리 보았고, 돌 사이를 헤엄치는 가재도 여러 마리 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가재를 냉큼 건져올려 끓는 물에 넣고 냠냠짭짭 먹었을 테지만, 이제 가재를 잡지 않습니다. 부디 이 가재가 새끼를 많이 거느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거든요.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길은 ‘푸른 숲’입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놀이를 할 적에 언제나 ‘푸른 숲’을 그립니다. 내가 즐겁게 읽는 책은 으레 ‘푸른 숲’을 다룹니다. 우리 집이 푸른 숲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에 푸른 숲내음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내 눈빛이 푸른 숲빛으로 해맑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7.8.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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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 장주식 선생님과 하호분교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장주식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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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24



아이들은 놀 수 있어야 즐겁다

―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장주식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08.12.15.



  2014년이 흐릅니다. 올해에 우리 집 큰아이는 일곱 살입니다. 둘레에서 우리 큰아이를 보고 으레 나이를 물은 뒤 ‘곧 학교 가겠네.’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학교에는 왜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일까요?


  사회에서 지내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사회란 어떤 곳일까요? 어떤 사회에서 지내야 하기에 학교에 가야 할는지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아주 마땅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웁니다. 교과서에 따라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받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성적에 따라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가야 한답니다. 그러면, 대학교는 왜 가야 할까요? 대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요? 대학교에 가야 지식을 제대로 익히는가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지식을 익힐 수 있는가요?



.. 아이들의 삶은 ‘정직’ 그 자체다. 아이들은 속일 줄을 잘 모른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도 더러 있으나, 그것은 그 아이의 본 바탕이 결코 아니다. 그 아이의 뒤에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는 그릇된 어른의 삶이 아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 내가 광호의 시를 낭독해 주었더니 아이들이 다 손뼉을 쳤다. 환호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광호의 눈가가 발그레해졌다 … “에이, 담부턴 골든벨 하지 마요.” 가슴 떨리는 경쟁이 싫다는 신음 소리다. 더구나 뭔가 선물까지 걸어 놓고 하는 경쟁이라 더욱 싫은 듯하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한 듯하다 ..  (23, 38, 110∼111쪽)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랑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만 가르치고, 대학입시만 가르칩니다.


  학교를 잘 다니는 아이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를 수 있는 몸이 됩니다. 학교를 잘 마친 아이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면 도시에서 연봉을 받을 테고, 연봉에 맞게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을 얻어서 살림을 꾸리겠지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아이들은 예순 남짓 나이가 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때부터 연금을 받으면서 ‘놀’겠지요.


  그러면, 예순이 넘은 나이부터 ‘놀’ 할매나 할배는 무엇을 하면서 놀까요? 돈을 쓰고 여행을 다니면서 노나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전원주택을 가꾸면서 놀까요?


  아이들은 여덟 살에 접어들어 예순 살이 지날 때까지 ‘삶’이 없습니다. 그저 ‘월급쟁이’가 될 뿐입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을 지나 예순 살이 넘도록 ‘사랑’을 배우거나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짝을 만나 시집장가를 가기는 하더라도, ‘사랑’으로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면 ‘꿈’이 아닌 ‘직업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앞으로 도시 사회에서 어떤 일자리를 직업으로 삼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 이때 순간적으로 난 ‘그건 너만의 생각이지’ 하고 받아칠 뻔했다. 아찔하다. 만약 그렇게 툭 말했다면 승비는 그냥 입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 나도 열아홉 살가지 시골에서 살았으나 변변히 아는 풀이름조차 없었다. 다만 ‘소가 먹는 풀과 먹지 않는 풀’로만 구분했을 뿐이다 … 교사가 여유롭고 평화로우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은 부드러워진다 … “군대 못 오게 해요.” 승비와 혜주가 합창을 하였다. “글쎄,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아이들 눈에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 하루였다 ..  (26, 59, 66, 74쪽)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집짓기·밥짓기·옷짓기를 배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집과 밥과 옷을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과목에 맞추어 지식을 외우도록 할 뿐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을 어떻게 얻나요? 건설업자가 지은 아파트를 빌리거나 사야겠지요. 아이들은 밥을 어떻게 얻나요? 어머니가 김치를 담거나 밥을 차려 주거나, 바깥에서 돈을 치러 밥을 사다 먹어야겠지요. 아이들은 옷을 어떻게 얻나요? 스스로 실을 얻거나 천을 짜지 못한 채, 옷집에 가서 돈을 주고 사서 입어야겠지요.


  가만히 보면, 학교가 생기고 사회가 선 뒤로, 우리들은 모든 것을 잃고 지식과 졸업장을 얻었습니다. 학교가 없고 사회가 서지 않던 지난날에는, 우리들은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지었고, 집과 밥과 옷을 지으며 살았습니다. 학교가 생기면서 ‘홀로서기(독립)’를 하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학교가 온 나라를 뒤덮어 모든 아이가 학교를 다녀야 한 뒤부터, ‘홀로서기(자급자족)’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모조리 없어집니다.



.. 혜주도 아빠를 닮아서 산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숨소리 한 번 거칠어지지 않고 산을 잘도 올라간다 … 재미있는 노랫말을 많이 주기만 한다면 아이들이 요즘 자기들의 생활에 맞는 노랫말로 바꾸어 부르며 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보았다 …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를 시도해 보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미끄럼 타기 좋은 잔디밭이나, 좀 위험해 보이는 무너진 석축을 타고 놀기 같은 것 ..  (57, 87, 105쪽)



  장주식 님이 쓴 교육일기인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철수와영희,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하호학교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한다고는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가 좋은 아이가 아니라, ‘공부 경쟁을 덜 하면서, 조금 더 홀가분하게 놀 수 있는 터’이기 때문에 좋아하는구나 싶습니다. 하호학교에서도 장주식 님이 아이들한테 경쟁을 시키거나 시험을 치르게 하면, 모두 죽을 얼굴이 되고 죽은 마음이 되며 죽고 마는 몸짓이 되어요.


  그러면, 왜 장주식 님을 비롯해서 학교에서 교사들은 경쟁을 시키거나 시험을 치르게 할까요? 위에서 시키니까요. 사회에서 시키니까요. 정치와 교육이 시키니까요.


  삶을 헤아린다면 경쟁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찾아서 밝히고 가꾸려 한다면 시험을 치를 까닭이 없습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을 뿐, 경쟁이나 시험이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호학교 아이들은 ‘놀이’를 할 수 있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할 수 있을 때에 즐겁게 웃습니다.



.. 우리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5학년·3학년 아이들도 두엇 만났는데, “선생님, 1·2교시 체육 때 뭐 해요?” 하고 묻는다. 체육을 하지 않을 거라고 눈꼽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얼굴이다. “오늘은 각자 교실에서 해. 더워서 운동장에서 못 해.” 이런 내 말에 아이들이 대번에 신음 소리를 내지른다. “왜요?” …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 않는다. 힘이 무진장 끝도 없이 샘솟았다. 무려 열한 경기를 거의 쉴 새 없이 참여하면서도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우리 교실에도 겨울에 볕이 잘 들지를 않으니, 아이들은 볕을 따라 돌아다닌다. 틈만 나면 볕이 드는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잘댄다 ..  (170, 218, 255쪽)



  장주식 님은 한 해 동안 바지런히 교육일기를 썼습니다. 이녁한테 부끄러울 만한 이야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알뜰살뜰 엮은 일기입니다. 교사와 어버이한테 거울이 될 만한 일기입니다. 다만, 장주식 님 스스로 한 가지를 놓친다고 느낍니다. 왜 학교가 있어야 하는지를 헤아리지는 않는구나 싶습니다.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하호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어떠한가요? 초등학교까지만 맡으면 되고, 그 뒤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뿐일까요?


  하호학교에서도 예방주사를 그대로 놓습니다. 장주식 님도 예방주사가 무엇인지 깊이 살피지 않고 아이들한테 맞힙니다. 아마, 어느 학교 교사라 하더라도 예방주사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나라에서 맞히라니까 맞힐 뿐, 예방주사 성분을 스스로 알아보거나 살피는 교사는 거의 없지 싶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방주사뿐 아니라 교과서를 왜 써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에 어떤 이야기가 깃드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열두 해 동안 다니면 모조리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시골에 갈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학교만 다니면 모두 ‘도시내기’가 되거나 ‘도시바라기’가 됩니다.



.. 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1년 동안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일을 하였다. 물론 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하여 별 불만도 없었다. 학교라는 곳에 대해 흥미도 없었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하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주로 논일과 밭일인데, 특히 담배 농사는 정말 힘들었다. 더운 여름날 진액이 나와 진득거리는 담뱃잎을 져 나르고 꿰고 말리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일·일·일이 이어졌다. 점점 일에 꾀가 나기 시작했고, 고통스런 노역에서 벗어나려면 중학교에 가야 된다는 걸 알았다 ..  (286쪽)



  시골에서 스스로 흙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이야기하는 교과서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과 비닐과 시멘트와 기계를 쓰지 않고 들과 숲과 마을을 살리는 길을 밝히는 교과서나 책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놀 때에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랄 때에 씩씩하게 큽니다. 아이들은 놀 때에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깨동무를 하는 동안 슬기로운 빛을 깨닫고, 아이들은 서로 돕고 함께 이웃을 보살피면서 꿈을 아름답게 키웁니다.


  한여름에도 아이들은 땀을 흘리면서 뛰놉니다. 한겨울에도 아이들은 손발과 볼이 빨개지도록 뛰놉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할까요? 장주식 님이 남긴 1년 기록은 무척 돋보이기는 한데, 아이들이 왜 즐겁게 웃을 수 있는지 살피는 눈썰미를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에는 미처 담지 못했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장주식 님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대안학교에 들어갔다는데, 하호학교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호학교 아이들이 아닌 다른 곳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호학교에서 한국과 지구별을 읽는 빛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에 길드는 아이라든지 사회에 톱니바퀴가 될 아이가 아닌, 삶을 가꾸고 사랑을 노래할 아이들과 함께 얼싸안는 어른이 되는 길을 밝히고 보여주는 교육일기를 새롭게 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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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는 꽃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2
유타루 지음, 김효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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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7


 

마음으로 새기는 별빛

― 별이 뜨는 꽃담

 유타루 글

 김효은 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2012.7.20.



  개구리는 살갗으로 숨을 쉽니다. 개구리가 몸을 적시려고 뛰어드는 둠벙이나 못에 농약 기운이 흐르면, 개구리는 그만 살갗이 타면서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고 하지만, 사람도 살갗으로 함께 숨을 쉽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을 적에 답답한 까닭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살갗이 숨을 쉬지 못하면, 사람도 개구리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코로 바람을 마시지요. 살갗으로 바람을 느끼지요. 그리고,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풀과 나무만 잎사귀로 햇볕을 머금지 않습니다. 사람도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햇볕을 제대로 머금지 못하면, 사람들은 몸빛이나 낯빛이 파리합니다. 몸과 낯이 파리하면 ‘죽은 얼굴’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밥과 물과 바람뿐 아니라 햇볕을 함께 먹으면서 몸을 튼튼하게 건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날 창문을 꼭 닫아걸고 에어컨을 켠다고 해서 시원하지 않습니다.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몸에도 나쁩니다. 여름날에는 여름볕을 온몸으로 먹으면서 까무잡잡하게 살갗이 타야 몸이 튼튼합니다. 예부터 아이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바뀌도록 씩씩하게 놀아야 한다 말했고, 어른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거듭나도록 야무지게 일해야 한다 말했습니다.



.. 승용차가 바짝 다가서며 비키라고 빵빵대.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걸어. 할아버지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 차들이 빵빵대며 휙휙 수레를 앞질러 가. 매연과 먼지가 할아버지를 옭아매듯 달려들어. 카악, 할아버지가 가래침을 모았다가 퉤엣, 뱉어 … “실례합니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마당에 들어와. 할아버지가 경계하듯 여자를 삐딱하니 올려다봐.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주민들 항의가 들어와서요.” 여자는 너저분한 마당을 찡그린 얼굴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 가. “동네 사람들이 밤에 너무 시끄럽대요. 고양이들 때문에요. 그리고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귀신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고들 해요.” 할아버지는 여자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해 ..  (19, 29쪽)



  바람이나 햇볕을 먹지 않고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풀과 나무도 햇볕이나 바람이 모자란 데에서조차 뿌리를 내립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도 줄기를 올리는 풀이나 나무예요. 빛 한 줄기 스미지 않더라도 꽃을 피울 줄 아는 풀과 나무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빛이 없는 데에서도 용케 살아남습니다.


  다만, 빛 한 줄기 없는 데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목숨줄은 붙었어도 즐겁지 못해요. 목숨줄은 이으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먼 옛날에는 누구나 시골사람이었고, 누구나 시골빛이었으며, 누구나 시골살이였습니다. 궁궐에 스스로 갇힌 임금님이나 몇몇 신하나 노예를 빼면, 참말 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과 볕과 빗물을 먹으면서 살았어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시골사람은 모두 까무잡잡한 낯빛이요 살빛이었습니다. 서양사람을 두고 ‘흰둥이’라 말하지만, 서양사람이라고 모두 흰 살결이 아닙니다. 시골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흙빛 살결입니다.


  그리고, 도시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허연 살결입니다. 해를 등지는 동양사람도 허연 살빛이에요. 해를 먹지 않으면, 또 비와 바람을 먹지 않으면,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몸이 아픕니다. 해를 먹어야 안 아프고,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해야 안 아픕니다.



.. 할아버지가 더럽고 때 묻은 손에 비누칠을 하면서, 땀난 얼굴을 씻으면서, 대문 쪽으로 자꾸 눈길을 돌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처마 밑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봐 … “혹시, 딴 곳으로 이사할 생각 없으세요?” 여자의 말에 할아버지가 두 눈을 부릅떠. 몸을 부르르 떨며 양철통을 집어. “동네에 놀이터 시설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구청에서 놀이터로 쓸 땅을 알아보고 있거든요. 혹시 할아버지가 집을 파신다면…….” ..  (36, 54쪽)



  몸이 자꾸 아프면 마음까지 자꾸 아픕니다. 몸이 늘 튼튼하면 마음까지 으레 튼튼합니다. 몸이 자꾸 무너지면 마음까지 자꾸 무너집니다. 몸에 늘 기운이 넘치면 으레 마음에도 기운이 넘칩니다.


  우리가 몸을 가꾸려고 먹을 밥을 생각해 봅니다. 해와 비와 바람과 흙을 골고루 누린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을 때에 싱그럽습니다. 해도 비도 바람도 흙도 골고루 누리지 못한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으면 싱그럽지 못해요.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비닐집에서 키운 곡식이나 열매는 얼마나 맛있거나 몸을 살찌울까 알 길이 없습니다. 제철에 나지 않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운 곡식이나 열매를 놓고도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어른은 머릿속에 어떤 지식을 담았을까요. 해와 비와 바람을 등지는 학교는 아닌가요. 흙내음이나 흙빛이 없이 교과서 지식만 있는 학교는 아닌가요. 그리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우듯이, 학교라는 온실에서 아이들 마음속에 꿈이나 사랑은 없이 지식만 집어넣지 않나요.



..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서, 죽은 별들에게 꽃씨를 뿌려 줄 거예요. 꽃이 피면 까만 별들이 살아날지 몰라요. 아니, 꼭 살아날 거예요. 살아나면 밤마다 하늘에서 반짝거리겠죠?” “별들이 반짝반짝할 때, 꽃향기가 밤하늘에 가득하겠는걸.” 할아버지 말에 아이가 가슴을 부풀리며 텅 빈 하늘을 올려다봐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아직도 미워하고 원망해.” “누구를?” “할아버지 자기 자신. 할아버지는 자기를 미워하고 원망해.” ..  (74, 91쪽)



  유타루 님이 쓴 동화 《별이 뜨는 꽃담》(시공주니어,2012)을 읽습니다. 요즈음 보기 드물도록 예쁘게 빚은 동화문학이라고 느낍니다. 줄거리도 글흐름도 여러모로 정갈합니다. 아이 말투를 조금 더 잘 살릴 수 있으면 한결 나았을 테지만, 이만큼 동화를 쓸 수 있으니 놀랍습니다. 요즈음 쏟아지는 생활동화를 보면, 너무 ‘학교’와 ‘스트레스’에 기울어집니다. 입시지옥에서 괴로운 아이들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다든지, 어른들을 모두 바보스레 비꼬는 동화문학만 너무 많습니다. 생태나 자연을 말하는 동화도 ‘숲이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어떤 빛인가’ 하는 대목까지 깊이 파고들지 못하곤 합니다.


  동화도 소설도 주의주장이 아닙니다. 동화도 소설도 논설문이나 칼럼이 아닙니다. 동화나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는 하루를 환하게 웃듯이 누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적에 동화나 소설이 됩니다.


  《별이 뜨는 꽃담》은 도시에서 흔히 볼 만한 ‘손수레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여기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나란히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를 가로지르는 믿음을 주고받습니다. 두 사람은 겉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오직 마음빛으로 만나고, 마음빛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지식’을 읊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가장 곱게 스며드는 ‘별’과 ‘꽃’을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어떤 마음이었는지 문득 돌아봅니다. 할아버지도 어린 동무 아이처럼 이녁이 어릴 적에 ‘별’과 ‘꽃’을 늘 품고 살았다고 깨닫습니다. 그저 돈만 바라보면서 동무와 이웃이 없이 지내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별과 꽃으로 삶을 밝히고 싶은 사랑이 있은 줄 알아차립니다.



.. “할아버지네 집 담도 이렇게 꽃이 피는 담이면 좋겠어요. 꽃들이 활짝 핀 담이 할아버지네 집을 빙 둘러싸는 거예요. 정말 멋지겠죠? 그리고 …….” … 할아버지가 가 보라고 손짓을 해. 아이가 새끼 고양이를 내려놓고, 고개를 꾸벅 숙여 할아버지에게 인사해. 할아버지가 돌아서서 가는 아이를 바라봐.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아서더니 큰 소리로 말해 ..  (95, 107쪽)



  아이는 제 어버이를 따라 다른 동네로 떠납니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사귄 동무가 사라집니다.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러나, 다시 ‘혼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새롭게 마음을 열어 웃음꽃을 피우고 웃음나라를 가꿀 생각을 품습니다. 다시 태어날 꿈을 꿉니다. 다시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대문에 채우던 자물쇠 셋을 모두 버립니다. 그리고, 돈도 버리겠지요. 이러면서, 할아버지 집에 옛날처럼 다시금 꽃과 나무와 풀이 그윽하게 숨쉬는 ‘보금자리 숲’을 이루려 할 테고, 동네 한복판에 새로 깃드는 ‘보금자리 숲’은 이웃집에 고운 씨앗으로 퍼질 만하리라 느낍니다. 할아버지 겉모습이 아닌, ‘한 사람 가슴에 깃든 밝은 빛’을 할아버지네 이웃들도 차츰 알아보리라 느낍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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