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사계절 1318 문고 15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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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5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

―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E.L.코닉스버그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펴냄, 2000.7.15.



  보름달이 노랗게 뜬 한가위 저녁에 네 식구 밤마실을 나옵니다. 불빛이 없는 곳으로 걷고 싶으나, 시골에서도 불빛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길을 천천히 거닐고 싶은데, 시골에서조차 이런 길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마을에서 얼마나 떨어져야 불빛이 없을까요. 마을에서 멀리 떨어졌어도 가로등이 있을까요. 아침과 낮에는 해를 누리고, 저녁과 밤에는 달과 별을 누리는 삶을 누릴 때에 삶이 삶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한동안 들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두 아이는 낮길이든 밤길이든 즐겁습니다. 깔깔거리면서 달리고, 콩콩거리면서 노래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깊은 숲속이라면 불빛이 없습니다. 깊은 숲속이라면 농약바람에서 홀가분합니다. 마을이나 들녘이라면 불빛 때문에 눈이 아픕니다. 마을이나 들녘이라면 농약바람이 휘 몰아칩니다.


  그렇지요. 불빛과 농약과 자가용은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달빛과 숲바람과 두 다리도 한동아리로 움직입니다. 불빛이 밝은 곳에는 손전화 소리가 넘치고 인터넷이 들어옵니다. 불빛이 없는 곳에는 손전화가 안 터지고 집전화도 안 들어오며 인터넷도 될 수 없습니다.



.. “꼬마야, 너를 붙잡은 분이 누군지 아니?” 살라이가 물었다. “하느님이신가요, 나리?”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하느님은 아니야. 하느님의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지.” … “이 손에 지시를 내리는 건 바로 나야. 내 눈과 머리가 이 근육들에 연결되어 무엇을 할지 명령하는 거란다.” ..  (11, 21쪽)



  들녘에서 벗어납니다. 마을 언저리입니다. 우리 서재도서관이 있는 나무 울타리를 옆에 끼고 걷습니다. ‘아!’ 걸음을 멈추고 외마디 소리를 뱉습니다. 함께 걷는 곁님과 아이들이 깜짝 놀랍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나는 따로 말을 하지 않고 ‘저기!’ 하면서 앞을 가리킵니다. 세 사람은 앞을 바라봅니다.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반딧불이, 또는 개똥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납니다. 꽁지에 이쁘장한 불을 깜빡이면서 천천히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나뭇잎에 앉다가 풀잎에 앉습니다. 들녘 한복판을 한참 걸어도 볼 수 없던 반딧불이인데, 농약바람이 안 부는 곳에서 겨우 한 마리를 찾아봅니다. 마을 어디에서도 못 보는 개똥벌레인데, 농약을 안 뿌리는 자리에 살그마니 찾아들어 밤마실을 함께 누리는군요.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돌보는 다슬기를 먹고 살았을까 궁금합니다. 마을 어귀 샘터를 나랑 두 아이가 치우면서 언제나 다슬기를 곱게 건사합니다. 부디 반딧불이가 냠냠 맛있게 먹으면서 우리 마을 둘레에서 살아남기를 바라지요. 마을 빨래터와 샘터를 다른 어르신이 치우지 못하도록, 나랑 두 아이가 바지런히 치웁니다. 왜냐하면, 마을 어르신이 치울 적에는 다슬기를 모조리 죽여 없애거든요. 개똥벌레가 다슬기를 먹으면서 사는 줄 헤아리는 마을 어르신은 없습니다.



.. “그 사람들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어. 난 어른이 돼서야 라틴어를 배웠고, 그것도 혼자서 공부했단다. 만일 내가 의견을 말했다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씌어진 작품들을 들먹이면서 반박했을 거야. 나는 실제로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의견을 내놓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책에 쓰여 있는 것만 믿으니까.” … “쳇, 그놈들은 말을 직접 보지도 않고 말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써 놓은 책만 읽을걸요.” 레오나르도의 얼굴에 점점 웃음이 번졌다. “흥, 그놈들은요, 말이 자기한테 오줌을 갈겨도 책에 나와 있지 않으면 자기가 왜 젖었는지도 모를 거예요. 흥, 그놈들은……” ..  (23, 24∼25쪽)



  E.L.코닉스버그 님이 쓴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사계절,2000)를 읽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 둘이 나오는 이야기책입니다. 글쓴이는 두 사람과 얽힌 이야기를 이녁 나름대로 ‘새롭게 읽고 풀어내어’ 어린이문학으로 선보입니다. 이 책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은 끝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이 이야기는 아주 마땅하지만 ‘글쓴이 생각’에서 태어났습니다.



.. 큰 부자들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작업장에 오지 않았다. 레오나르도가 그들을 찾아갔다 … 레오나르도는 산과 강을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산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나 바람에 시달려 가지를 낮게 뻗은 나무 한 그루를 스케치하려고 먼 길을 걸어다녔다 … “레오나르도 선생, 이런 하찮은 잡초도 당신이 그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겠죠.” ..  (40, 59, 69쪽)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녁은 하느님이었을까요, 하느님이 빚은 가장 훌륭한 숨결이었을까요? 이 사람은 사내였을까요, 가시내였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은 무엇을 말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어떤 넋으로 그린 그림이고, 그림마다 어떤 뜻이 깃들었을까요?


  비평가는 어떤 모습을 바라보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하는 사람을 읽을까요? 우리가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넋이고, 어떤 숨결일까요?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를 읽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을 열며 어떤 삶을 짓는 슬기를 이 책에서 얻을까요?



.. 레오나르도가 짬을 내서 이사벨라의 초상화를 마무리지을 염려는 거의 없었다. 조만간 이사벨라는 보석 반지를 낀 자신의 하얀 손에 닿지 않는 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158쪽)



  참은 언제나 참입니다. 거짓은 언제나 거짓입니다. 노래는 언제나 노래입니다. 꿈은 언제나 꿈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빛은 언제나 빛이고, 바람은 언제나 바람입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쬘 적에 이불을 마당에 널면 이불에는 햇볕내음이 그득 뱁니다. 마을 어르신이 농협에서 헬리콥터를 빌려다가 논에 농약을 뿌리면 온 마을에 농약내음이 물씬 퍼집니다. 농약 기운은 낮밤으로 퍼지고 밤낮으로 스밉니다. 농약을 뒤집어쓴 들에는 풀벌레가 모조리 죽고, 참새는 얼씬하지 못합니다. 예전 시골에서는 허수아비를 세우거나 들판을 지키고 섰다지만, 요즈음은 허수아비를 세울 일도 들판을 지킬 일도 없습니다. 농약 한 차례 뿌리면 돼요. 농약 한 차례 뿌리면 벌레도 새도 뭐도 죄 죽어요. 그리고, 오늘날 도시사람은 농약 듬뿍 쳐서 벌레나 새 한 마리 얼씬조차 못하는 들에서 자란 나락을 먹습니다.


  전라도 어느 고장에서는 ‘나비 쌀’을 선보입니다. 나비잔치를 벌이고 나비가 춤추는 논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비가 있으려면 농약을 못 치겠지요. 농약을 치더라도 살짝 한두 번만 치겠지요. 또는 늦여름이나 한가을에 칠는지 모릅니다. ‘나비 쌀’도 ‘제비 쌀’도 ‘메뚜기 쌀’도 ‘참새 쌀’도 아닌 ‘그냥 쌀’이라면 농약을 얼마나 쳤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농약 쌀’을 먹고도 사람은 곧바로 죽지는 않아요. 아토피에 걸린다든지 온갖 병치레를 앓을 뿐입니다.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를 덮습니다. 꿈결 같은 이야기를 되뇌어 봅니다.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으나, 이 책에서 들려주려는 이야기가 사랑인지 꿈인지 알 노릇이 없으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사람과 살라이라는 사람을 마주보려 하는 넋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저 마주볼 수 있으면 됩니다. 꾸밈없이 마주볼 수 있으면 됩니다. 비평가나 역사가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지식이나 정보는 내려놓고, 우리 스스로 눈을 살며시 감고 1400∼1500년대 무렵으로 날아가서 두 사람을 살가이 만날 수 있으면 됩니다. 참다운 사랑을 생각하고, 따스한 꿈을 그리면 됩니다. 맑게 노래를 부르고, 슬기롭게 이야기잔치를 벌이면 됩니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요. 살라이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비평가나 역사가가 거짓말을 했을까요?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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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 마법의 정원 이야기 5
안비루 야스코 글.그림, 송소영 옮김 / 예림당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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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2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

 안비루 야스코 글·그림

 송소영 옮김

 예림당 펴냄, 2012.6.25.



  요즈음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다니지 않습니다. 이제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급식을 주기 때문입니다. 집집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느라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고, 도시락을 챙기느라 가방이 무거울 일이 없습니다. 반찬통에서 김칫국물이 흘러서 교과서나 공책이 젖을 일이 없습니다. 빈 도시락통을 달그락거리며 집으로 달려올 일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닐 적에는 집집마다 다른 밥맛이 교실에 가득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을 느끼면서 도시락을 열고,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스스로 도시락을 쌀 수 있을 만큼 밥솜씨를 키웁니다. 언제까지나 어버이가 끼니를 챙길 수 없어요. 아이들도 집에서 밥과 국을 끓입니다. 아이들도 나물을 뜯어 반찬을 마련합니다. 아이들도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도 여러 가지 집일을 거듭니다. 아이들도 차근차근 살림꾼이 됩니다.


  학교에 급식실이 있으면 문화라고 할 만합니다. 미처 도시락을 못 싸는 집안이 있다면, 급식실이 크게 도움이 된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이 지어서 차리는 밥만 먹으며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만 쌓을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 회사를 다닌다면, 회사에서도 ‘돈을 버는 일’만 할 수 없습니다.



.. 추운 겨울 동안 자렛은 허브티 블렌드 세 종류를 만들어 팔았어요 … 딱총나무 꽃이라고 하는 엘더플라워와, 생강과 페퍼민트를 섞은 ‘후끈후끈 블렌드’도 있어요. 감기를 예방하는 차로, 마시면 몸이 따뜻해진답니다 … 봄소식을 알리는 새하얀 사과꽃은 아주 아름다워요. 사과꽃이 필 때쯤이면 캐모마일뿐만 아니라 마을 정원에 여러 꽃들이 피기 시작해요. 그러면 온 마을은 꽃이 피는 즐거운 계절을 축하하며 들뜨기 시작해요 ..  (9, 19쪽)



  바람을 마십니다. 아침저녁으로, 아니 아침 낮 저녁 언제나 바람을 마십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바람을 늘 마십니다. 아이도 마시고 어른도 마십니다.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물을 마십니다. 날마다 물을 마십니다. 밥을 지으면 밥에 물기가 감돕니다. 따로 물을 들이키지 않더라도 밥과 국은 모두 물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나 물을 마십니다.


  햇볕을 먹습니다. 구름이 낀 날에는 햇볕을 못 먹는다 하지만, 아침에 동이 트면서 온누리가 밝습니다. 빛이 퍼집니다. 빛이 가득합니다. 빛이 가득한 땅은 볕을 먹으면서 푸르게 깨어납니다. 풀과 나무가 깨어납니다. 벌레와 짐승이 깨어납니다. 새가 날고 사람이 일어섭니다. 모두들 해와 함께 삶을 가꾸고, 지구별이 해를 한 바퀴 돌 적에 삼백예순닷새가 흐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면 바람과 물을 햇볕이 꼭 있어야 합니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바람과 물과 햇볕이 없으면 죽습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바람과 물과 햇볕을 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바람을 아끼고 물을 사랑하며 햇볕을 돌볼 수 있을 때에 삶을 이룹니다. 바람과 물과 햇볕이 언제나 깨끗하도록 지킬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바람과 물과 햇볕을 누구나 맑고 환하게 누리는 지구별이 되도록 할 때에 서로 돕고 즐거운 삶터를 이룹니다.



.. 자렛은 깜짝 놀랐어요.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은색으로 빛났고 눈동자는 제비꽃 같은 보라색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달랑 얇고 하늘하늘한 드레스 하나만 입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조금 떠 있었지요 … “그것 말고 어떤 잠이 있는데?” “계절의 요정이 교대하는 잠을 말해요. 겨울 요정이 잠들면 바로 봄의 요정이 눈을 떠요. 나는 한번 잠이 들면 가을 요정이 잠들 때까지 눈을 뜨지 말아야 해요.” … 겨울 요정은 자신이 잠들지 못한 탓에 봄이 오지 못해서 아주 미안해 했어요 ..  (45, 50∼51, 52쪽)



  안비루 야스코 님이 빚은 어린이책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예림당,2012)을 읽습니다. ‘마법의 정원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데,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마법》에서는 봄이 찾아올 수 있도록 겨울 요정이 봄잠을 자게 돕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겨울에 숲에서 깨어나 겨울들과 겨울숲을 보살피는 요정이 즐겁게 놀고 나서 기쁘게 잠들어 이듬해 겨울을 맞이할 때까지 포근히 쉴 수 있도록 할 만한 ‘허브차’ 또는 ‘허브약’을 지어요.



.. “분명히 캐모마일의 효과야. 정말 효과 만점인걸.” 자렛은 라벤더 향기가 나는 기분 좋은 침대로 들어가서 외쳤어요. “좋아, 결정했어! 나도 캐모마일처럼 되겠어!” … “응, 토끼도 다람쥐도 가끔 만나는 것뿐이라고 했어.” “정말 외로워 보였어.” “우리는 겨울 요정을 재우는 일보다 봄을 부르는 것만 열심히 생각했던 것 같아.” “겨울 요정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했던 거야.” “맞아. 나도 겨울 요정 옆에 함께 있어 주고 싶어.” ..  (62, 82쪽)



  어떤 허브잎을 따서 어떻게 손질해야 훌륭한 차나 약이 될까요? 어떤 허브잎을 한 해 동안 어떻게 가꾼 뒤 얻어야 뛰어난 차나 약으로 거듭날까요?


  작은 꽃그릇에 허브씨를 심어서 키워도 될까요? 마당 한쪽에 텃밭을 가꾸면 될까요? 깊은 숲에서 다른 풀과 나무와 살가이 어우러지도록 키우면 될까요? 좋은 차와 약으로 쓰자면, 허브잎을 어떻게 돌보면서 아껴야 할까요?



.. 시간이 지날수록 겨울 요정의 표정은 부드럽고 밝아졌어요. 그리고 조금 전까지 아주 쓸쓸하게 말했던 자기 이야기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요, 가끔 외롭긴 하지만 겨울은 아주 중요한 계절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일한 계절에 대한 선물로 잠시 쉴 수 있도록 허락받은 계절이잖아요.” … 겨울 요정은 겨우 눈을 뜨고 말했어요. “나는 자렛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요. 오늘 함께 있어 줘서 고마워요. 나와 또 만나 줄래요?” 자렛은 진심으로 대답했어요. “그럼요, 또 만나고 싶어요.” 겨울 요정은 정말 기쁜 듯 웃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어요. “그래요, 이번 가을이 지나고요.”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는 그대로 뜨지 않았어요 ..  (99, 107∼108쪽)



  요정도 사람처럼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다만, 쌀밥이나 보리밥이나 고깃국이 있는 밥을 먹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즐겁고 사랑스레 맞이하면서 누리는 삶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를 밥으로 삼는다고 해요. 이야기밥을 먹고, 이야기놀이를 하며, 이야기노래를 부르며, 이야기꿈을 꾼다고 해요.


  가만히 보면, 사람도 쌀밥이나 보리밥만 먹지 않습니다. 사람도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살가운 이야기책을 장만해서 읽습니다. 이야기빛이 어여쁜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즐깁니다. 들일을 하거나 집일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요. 아이를 재울 때뿐 아니라 아이와 놀면서 노래를 부르고,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그날그날 겪고 느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을 키웁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삶이 사랑스럽습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삶이 즐겁습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서로 돕고 아낍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마을이 생깁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함께 웃습니다. 우리는 늘 이야기로 살아간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한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야기가 감돌까요. 스스로 내 삶에서 짓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남한테서 듣기만 하는 이야기인가요? 책에서만 얻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건진 이야기인가요? 내 삶을 스스로 지으면서 즐겁게 짓는 내 이야기일는지,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는지요?



.. 바보아 할머니가 토파즈 아주머니를 빗대어 말한 캐모마일 같은 마녀. 그것은 단지 옆에만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힘을 주는 그런 마녀를 말하는 것이 분명했어요. “나는 캐모마일 같은 마녀가 되고 싶어 했던 토파즈 아주머니가 정말로 좋아.” ..  (116쪽)



  겨울 요정은 따사로운 사랑이 깃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잠듭니다. 봄 요점은 그동안 달콤한 이야기가 사랑스레 깃든 꿈을 꾸었겠지요. 새로 깨어날 봄 요정은 봄철에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즐겁게 웃을 테고, 여름 요정이 깨어날 무렵에는 즐겁게 잠들면서 기쁜 이야기꿈을 꿀 테지요.


  사람도 요정과 같습니다. 하루 동안 누린 이야기를 저녁에 꿈을 꿉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새 이야기를 지으려 합니다. 저녁에 잠들 때까지 씩씩하고 튼튼하게 일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새로운 일과 놀이를 떠올립니다.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물과 햇볕도 날마다 새롭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도 끼니마다 새롭습니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없고, 새롭지 않은 바람과 물과 햇볕이 없습니다. 새롭지 않을 밥이란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삶을 함께 새로 짓습니다. 이야기를 함께 새로 짓습니다. 사랑을 함께 새로 짓습니다. 이러면서 노래를 불러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는 춤을 추어요.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면서 맑은 물로 몸을 씻고 따사로운 햇볕으로 온몸을 감쌉니다. 4347.9.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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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카르페디엠 28
셸리 피어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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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5



자유를 모르는데 자유로울 수 있는가

―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

 셸리 피어설 글

 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 2012.1.2.



  자유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자유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평화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평화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평등이나 민주를 누리지 못한 사람은 평등이나 민주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농구를 보지 못한 사람은 농구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낫질이나 호미질을 보지 못한 사람은 호미질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보지 못한 사람은 자전거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기차를 보지 못한 사람은 기차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입시지옥을 겪지 않은 사람은 입시지옥을 모릅니다.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겪지 않은 사람은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모릅니다. 가난한 삶이나 부자인 삶을 겪지 않은 사람은 두 삶이 어떠한지를 모릅니다.



.. “왜 도망가시는 건데요?” 내가 물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개들이 쫓아올 거예요. 세스 도련님이 도망간 노예를 끝까지 쫓아갈 수 있는 개들이 있다고 했어요. 떠난 지 이틀이 지난 뒤에도요. 물을 건너갔더라도 소용없다고 했어요. 개들이 쫓아오면요? 개한테 갈가리 찢기고 말 거예요.” … “자유로운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새뮤얼?” 해리슨 할아버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크고 파란 여름 하늘이 북쪽 땅끝에서 끝까지 이어져 있다. 상상해 봐라. 그리고 흑인들이 모두 그 하늘에서 날아다니지. 꽤 볼 만한 광경이 아니겠느냐?” ..  (35, 37쪽)



  곰곰이 돌아봅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짚어 보았어요.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노느라 바빠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늘 이런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8∼1993년에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윽박지르거나 다그치면 모두 끽소리를 못하다가, 교사가 없으면 아주 미친 듯이 어지럽거나 시끄럽거나 싸움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실에 교사가 없이 ‘자율학습’을 시킬 적에 말 그대로 ‘스스로 조용히 배우는’ 동무를 보기 몹시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머리를 빡빡 밀듯이 깎으라 시키면 으레 모두 이런 말을 따릅니다. 학교에서 무슨무슨 성금을 내라고 시키면 으레 모두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가져옵니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숙제를 내면 용을 써서 숙제를 합니다. 뭐, 숙제를 안 하면 ‘숙제를 끝까지 다 할 때’까지 ‘까무라치지 않을 만큼’ 두들겨패니, 다른 동무 숙제라도 베껴서 할밖에 없습니다만.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본 모습은, 그저 길들거나 뒤따르는 모습들입니다. 남이 시키면 하되, 스스로 무엇을 해야 즐거울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들입니다.



.. “알짜배기 7백 달러짜리지.” 내가 지나가자 주인님이 이렇게 말했다. “튼튼하게 잘 자란 흑인 사내놈.” 하루 종일 나는 릴리 할머니가 크리스마스에 받은 달러가 내 온몸에 발라진 것 같은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릴리 할머니한테 해클러 주인님이 한 말씀을 들려주자 릴리 할머니는 내 뺨을 세게 때렸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새뮤얼. 그런 일을 가지고 자랑스러워 하다니. 맙소사, 너와 네 가엾은 네 엄마 영혼을 용서해 주시길.” … “너 정도 나이였을 때 말이다. 주인이 어느 날 밤 코가 비뚤어지게 취해 집에 와서는 벽에서 널빤지 하나를 떼어 내더니 내 몸에 피가 강처럼 흐를 때까지 때렸다.” ..  (63, 117쪽)



  자유를 모르니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유를 모르는 사람은 자유를 억누르는 법이나 제도가 있어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자유를 짓밟거나 까부수는 독재정권이 태어나도 자유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김영삼 같은 독재자가 나왔어도 이를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게다가, 이런 독재자 뒤를 이은 사람도 독재자보다 그리 나을 대목이 없었지만, 자유를 자유롭게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누리거나 겪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고 못 생각하고 못 보았습니다.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정보원은 이 나라 독재자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 군대’를 흉내내어 한국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잇달아 나타난 수많은 독재자를 물리치고 ‘민주 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국가보안법이나 국가정보원을 없애지 않았어요. 권력을 손에 쥐니 똑같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이들 스스로 자유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찾으려고 싸우기’는 했지만, 정작 ‘자유로운 삶을 누린 적’은 없었던 탓에, ‘자유를 억누르는 이들을 물리쳤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자유로운 나라가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느끼지 못했습니다.



.. “백인이 죽으면 행복하다는 말씀이에요?” 해리슨 할아버지가 내 팔을 찰싹 쳤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곧장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느냐? 맙소사, 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할아버지는 웃옷에서 빵가루를 털었다. “내 말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슬퍼할 일이 많은데, 전에 만나 본 적도 없는 백인 부인과 죽은 남편 일까지 슬퍼할 겨를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죽는다면 그 부인네가 내 검은 몸뚱이를 가엾게 여겨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를 돕기 위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할 성싶으냐?” … 해리슨 할아버지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손가락으로 종이를 찔렀다. “흠, 그럼 그 멋진 종이에다가 내 등짝이 어떻게 흉터로 갈라져 있는지 적고 회중들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내 등에 떨어진 채찍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를 거요. 직접 맞아 보지 않았다면. 안 그렇소?” ..  (144, 166쪽)



  셸리 피어설 님이 쓴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양철북,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셸리 피어설 님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녁이 어릴 적에 누린 삶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모르겠으나, 이 청소년소설에 나오는 ‘해방 흑인’ 여러 사람들 모습과 말을 엿보면, 글쓴이 셸리 피어설 님은 ‘자유를 맛본’ 일이 있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고통은 계속되지 않는다》에서는 자꾸자꾸 묻습니다. 자유라는 말조차 모르고 살던 ‘노예 흑인 어린이’한테 ‘너 말이야,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하고 자꾸 물어요.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노예 주인 백인’이 ‘노예 흑인 어린이’를 보면서 ‘네 몸값이 비싸다’ 하고 비웃으며 하는 말을 마치 자랑스러운 말인 줄 잘못 받아들이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자유를 모르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백인 주인한테서 내빼는 일’을 못 받아들이는 모습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자유를 모르니 ‘백인 주인’한테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자유를 생각한 적도 없고 누린 적도 없기 때문에, 지구별에서 누구나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자유로운 숨결이 되어야 하는 줄 알 길이 없습니다.



.. “캐나다에 가서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뭘 할 거니?” 벨 아줌마는 해리슨 할아버지 이마에 대줄 수건에서 물을 짜면서 묻곤 했다. “캐나다에 가면 어떨지 생각해 봤니? 평생 자유로 산다는 게 어떨 것 같아?” 나는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드넓은 텅 빈 들판뿐이었다 ..  (237쪽)



  한국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대통령이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 지식인이나 여느 교사나 작은 시골 읍내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나, 자유를 얼마나 알까요? 민주를 얼마나 알까요? 이 나라 경상도 사람들은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얼마나 알까요? 이 나라 전라도 사람들은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얼마나 알까요?


  선거철마다 독재자한테 표를 주는 사람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선거철이 아닌 여느 때에 끔찍한 폭력과 전쟁이 감도는 사회를 지켜보면서도 마음이 안 움직이는 사람은 무엇을 아는 사람일까요?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학교에서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안 가르칩니다. 이 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그대로 다니며 대학입시에 젖어드는 동안 자유나 민주나 평화를 제대로 알거나 느낄 아이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여느 어버이도 똑같습니다. 모두들 쳇바퀴를 돕니다. 몸에 쇠사슬을 차지는 않았으나, 자유를 몰라 얽매인 노예와 똑같습니다. 한국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 가운데 자유를 알거나 민주나 평화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유를 찾으려고 제도권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민주나 평화를 찾으려고 제도권을 깨부수거나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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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찾습니다 - S 라인을 꿈꾸는 청춘에게
몸문화연구소 지음 / 양철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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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8



몸을 다스리는 마음

― 내 몸을 찾습니다

 몸문화연구소 글

 양철북 펴냄, 2011.7.26.



  예부터 어느 겨레에서든 옷차림에 그리 눈길을 두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옛날에는 어느 곳에서든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꾸렸어요.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 마련해서 살았습니다. 남한테서 얻는다거나 돈을 치러 사들여서 쓰지 않았습니다. 신을 꿰고 싶으면 신을 삼았습니다. 모자를 쓰고 싶으면 모자를 엮었습니다. 옷을 입고 싶다면 옷을 지었습니다.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없어도 될 사람은 집이 없이 나무에서도 자고 풀밭에서도 자고 굴에서도 잤어요. 옛날에는 따로 논이나 밭을 가꾸지 않고 밥을 먹었어요. 참말 옛날에는 풀잎과 풀열매와 나뭇잎과 나무열매를 먹으면서 얼마든지 삶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밥을 스스로 마련해서 먹는 사람은 ‘밥짓기’를 합니다. 옷을 스스로 장만해서 입는 사람은 ‘옷짓기’를 합니다. 집을 스스로 세워서 자는 사람은 ‘집짓기’를 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지으니, 스스로 ‘삶짓기’입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마땅히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 몸에 맞추어 패션이 바뀌어 온 것이 아니라, 패션에 맞추어 몸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요 … 에너지나 아름다움이 빠져나간 몸이 아니라 젊음을 다 경험하고 노년을 맞이하는 자연스럽고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 외모 지상주의는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그가 가진 실력이나 인품을 보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  (43, 54, 82쪽)



  오늘날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돈을 씁니다. 이것을 내놓고 돈을 받으며, 저것을 가지며 돈을 냅니다. 돈을 많이 가질수록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멀리합니다. 돈을 적게 가질 적에도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돈이 있든 없든 밥도 옷도 집도 짓지 않아요.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삶을 짓지 못하고, 사랑과 꿈 또한 짓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지을까요? 삶을 짓지 않으면서 무엇을 지을까요? 글을 지을까요? 지식을 지을까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지을까요? 나이를 앞세우는 권위나 질서를 지을까요? 힘으로 윽박지르는 권력을 지을까요? 삶을 짓지 않아 사랑과 꿈을 짓지 않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즐거움으로 하루를 누릴는지 궁금합니다.



.. 외모 지상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 똑같이 하나로 만들어진 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기준에 따라 얼굴도, 몸매도, 옷도, 장식물도 엇비슷해진다면 어떨까요 ..  (87, 296쪽)


 

  몸문화연구소에서 엮은 《내 몸을 찾습니다》(양철북,201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삶을 밝히려고 돕는 길잡이책입니다. 물질문명 소비사회가 홀리는 대로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푸름이가 스스로 삶에 눈을 뜨고 사랑과 꿈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아요. 문명과 소비와 유행이나 문화가 아닌, 삶과 이야기와 두레가 우리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만합니다. 고속철도는 서울과 부산 사이를 아주 빠르게 달립니다. 두 시간이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두 시간 동안 두 곳을 오가기만 할 뿐, 서울과 부산 사이에 어떤 마을이나 숲이 있는지 느끼지 않아요.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도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마을이나 숲이 어떤 삶터인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더 빨리 가기만을 바랍니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기만을 바랍니다. 돈을 쓰려는 사람은 돈을 더 신나게 쓰기만을 바랍니다.



.. 이제 전쟁도 무인 병기를 써서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조종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것이 게임 속 세계와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일까요 … 인간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는 기능을 가진 기계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기계가 톱니바퀴와 벨트, 엔진 같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인간도 근육과 핏줄, 심장 들로 구성되어 있는 거지요 ..  (106, 144쪽)



  몸을 다스리는 마음입니다. 몸뚱이만 있을 때에는 사람이 아닙니다. 몸을 다스리는 마음이 있을 때에 사람입니다. 마음은 넋이 움직입니다. 넋이 바르게 설 적에 마음을 움직여 생각을 짓습니다. 넋으로 마음을 움직여 생각을 짓기에, 우리 몸도 마음에 따라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일과 놀이를 합니다. 몸과 마음만 있더라도 오롯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넋이 있어야 하며, 이 넋은 바르게 서야 합니다. 넋은 얼이라는 뼈대에 깃들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얼이 넋을 품으면서 마음과 몸이 제대로 설 때에 사람다운 구실을 합니다. 얼이 빠지거나 넋이 빠진다면 마음과 몸이 흔들려요. 마음과 몸이 흔들리는 사람은 유행에 휘둘립니다.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 아니라, 문명사회와 소비문화에 따라 몸을 괴롭히지요.


  그런데,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틀에 가둡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을 환하게 열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사내는 이렇고 가시내는 저렇다는 틀을 두 갈래로 나누어 아이들을 쿡쿡 찍는 학교입니다. 이런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생각이 죽어요. 생각이 죽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고, 마음과 몸을 함께 다스리는 넋이 제구실을 못해요.



..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여성의 인간적 가치와 개성을 박탈하고 여성의 몸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사물로서 숭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을 가슴, 엉덩이, 허벅지로 나누어 평가하고, 은밀하게 훔쳐보면서 무의식중에 살아 있는 인형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 상황에 따라서 우리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이 찍으면 긴장하지만 함께 여행하면서 식구나 친구가 찍어 줄 때는 편안하고 즐겁기까지 합니다 ..  (197, 252쪽)



  우리가 스스로 제대로 서지 않을 때에는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 바로 권력자한테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삶을 옳게 가꾸거나 짓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삶을 옳게 가꾸지 못하거나 제대로 짓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살아가는 뜻이 없습니다. 돈을 벌거나 대학교 졸업장을 따려고 태어나서 사는가요? 연금생활자가 되거나 정년퇴직을 하려고 회사를 다니는가요? 늙어서 죽으려고 나이를 먹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뜻’을 찾아야 합니다. 살아갈 뜻을 찾고, 살아갈 뜻을 가꾸면서, 살아갈 뜻을 밝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내 몸을 찾는 길은 내 마음을 찾는 길입니다. 내 마음을 찾는 길은 내 넋을 찾아서, 내 삶을 찾고 내 사랑과 꿈을 찾으려는 길입니다. 옷에 몸을 맞추면서 삶을 잃는 푸름이가 아닌, 몸을 마음에 맞추어 아름답게 보살피면서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푸름이가 찬찬히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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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일공일삼 40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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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0


 

‘우리 집’이 즐겁다

―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캐서린 패터슨 글

 이다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6.11.10.



  우리 집 식구가 함께 먹을 풀을 아침에 뜯는데 풀사마귀 한 마리가 손등에 폴짝 뛰어오릅니다. 풀잎에 앉아 다리를 쉬거나 먹이를 기다리던 사마귀는 깜짝 놀랐으리라 생각해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웬 풀잎이 손등에 붙어서 안 떨어지나 싶어 다른 손으로 슥슥 털려 했는데, 털려다가 멈추었어요. 풀잎이 아닌 사마귀가 손등에 붙었으니까요.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를 슥슥 턴다면서 쳐냈으면 사마귀는 몹시 아팠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마귀는 날 수 있습니다. 사마귀한테는 날개가 있거든요. 내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는 날아갈는지 안 날아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사마귀를 바라봅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에서 안 떨어지고 싶은지, 톱니처럼 뾰족한 발을 내 손등 살갗에 박습니다. 간질간질합니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귀엽습니다. “너도 우리 집이 좋지?” 하고 물으면서 풀사마귀를 강아지풀로 살그마니 옮깁니다. 풀사마귀는 강아지풀로 옮겨 탑니다.



.. 앨리스 선생님이 한숨을 쉬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기어 손잡이를 잡고 기어를 넣었다. “질리야.” “내 이름은 갈라드리엘이에요.” 질리가 이를 꽉 문 채 말했다. 앨리스 선생님은 질리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 네빈스 가족은 희고 깔끔한, 먼지 없는 집에 살았다. 네빈스 가족이 살고 있던 나무 한 그루 없는 동네에는 하나같이 희고 깔끔하고 먼지 없는 집들만 있었다.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건 질리뿐이었다 ..  (12, 21쪽)



  나는 이제껏 세 가지 사마귀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풀빛으로 몸빛이 고운 풀사마귀입니다. 둘째는 흙빛으로 몸빛이 어두운 흙사마귀입니다. 사마귀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바라보는 대로 사마귀를 부릅니다. 풀밭에 있으면 그야말로 풀하고 똑같아 보이기에 풀사마귀라고 부릅니다. 가을날 가랑잎이 지고 풀잎이 시들어 누렇게 빛이 바랜 곳에서 흙빛하고 똑같이 있는 사마귀를 보면서 흙사마귀라고 부릅니다. 셋째는 깜사마귀입니다. 깜사마귀는 올들어 봄날에 처음 보았어요. 까만 빛과 하얀 빛이 서로 줄무늬처럼 엇갈리는 조그마한 사마귀를 보았어요. 까만 줄무늬가 있으니 깜줄무늬사마귀라고 해야 할까 싶던데, 풀밭에서 사마귀를 만나면 어쩐지 반갑습니다.


  다른 풀벌레는 쉬 내뺍니다. 이를테면 메뚜기나 방아깨비나 여치나 풀무치는 같이 놀 생각을 않고 폴짝폴짝 내뺍니다. 사마귀는 언제나 그냥 있습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이나 어깨나 머리에 곧잘 올라탑니다.


  사마귀도 노래하겠지요. 사마귀는 사마귀대로 노래를 하겠지요. 귀뚜라미와 방울벌레만 노래를 하지 않고, 사마귀도 노래를 하겠지요. 바람이 잔잔한 저녁나절 우리 집 둘레에서 울리는 온갖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사마귀 노래도 있겠지요.



.. “윌리엄 어니스트니?” “아니요.” 질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전데요.” “아.” 비록 눈은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아저씨는 환하게 웃었다. “네가 새로 온 여자 아이구나.” 아저씨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다른 아이들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바보 같고 멍청한 아이들 곁에도 엄마가 있는데 ..  (28, 55쪽)



  마당에서 사마귀랑 놀다 보면 어느새 들고양이 새끼가 뒤쪽에서 슬금슬금 걸어 나옵니다. 우리 집 광은 들고양이가 밤잠을 자고 새끼를 낳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태 앞서 몇 마리가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고, 올해에 세 마리가 또 태어났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바지런히 마을을 돌면서 들쥐를 잡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들쥐를 주둥이에 물고 새끼 고양이한테 갑니다. 새끼 고양이 앞에서 들쥐를 내려놓습니다. 이태 앞서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 가까이 올 생각을 안 하지만, 우리 집 마당을 이 아이들도 놀이터로 삼습니다. 올해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하고 꽤 가까운 데까지 와서 놉니다. 손이 닿는 데까지는 안 오지만, 섬돌에 놓은 신을 작은 주둥이로 물면서 놀기도 하고, 빨랫대 다리를 깨물기도 합니다. 평상 다리를 긁기도 하고,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를 만지기도 합니다.


  새끼 고양이로서는 우리 집 온갖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만지면서 재미있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나는 마룻바닥에 조용히 앉아서 새끼 고양이 놀음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 랜돌프 아저씨는 행복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는 이내 질리를 거들었고 질리 한 사람의 목소리만 울리던 것이 합창으로 변했다 … 질리는 랜돌프 아저씨의 팔꿈치를 잡고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안내했다. 질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트로터 아줌마의 표정은 질리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늘 그리워했던 그런 표정일 게 틀림없었다 … 윌리엄 어니스트는 네빈스 아줌마네 장식장 속에 있는 길쭉한 골동품 잔이 아니었다. 윌리엄 어니스트는 어린아이였다. 위탁 가정에 맡겨진 어린아이. 강해지지 않으면 트로터 아줌마가 없을 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터였다 ..  (70∼71, 92, 164쪽)



  캐서린 패터슨 님이 쓴 어린이문학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2006)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는 저한테 내키지 않는 사람한테는 ‘질리’라는 이름을 쓰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제 이름이 ‘질리’가 아니고 ‘갈라드리엘’이라고 밝히기도 하지만, 어머니한테서 받은 ‘갈라드리엘’이라는 이름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질리’이든 ‘갈라드리엘’이든 이 아이는 어머니하고 함께 살지 못합니다. 아버지하고도 함께 살지 못해요. 이 아이를 낳음 어머니는 아이한테 전화조차 하지 않고, 편지도 안 씁니다. 짤막하게 끄적인 엽서만 몇 해에 한 차례 띄웁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혼잣몸인 어린 질리나 갈라드리엘은 ‘위탁 아이’가 되어 여러 집을 떠돕니다. 마음을 붙일 데가 없이 집과 학교를 자주 옮깁니다.



.. “만나서 반가웠어요.” 질리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싫었다. 어쨌든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아닌가. 아니,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 “할머니랑 같이 살기 싫어요.” “하지만 질리, 넌 말을 배운 뒤로는 툭하면.” “할머니랑 살고 싶다고 한 적 없어요!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어요.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난 할머니를 알지도 못해요!” “넌 네 엄마도 모르잖아.” “알아요! 기억해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 질리가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가족? 하지만 트로터 아줌마는 가족이 되고자 했다. 더 이상 이사하지 않는 것? 트로터 아줌마는 그것도 주고자 했다. 아니다. 질리가 원한 건 ‘위탁’ 자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  (185, 196, 202쪽)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에 나오는 아이는 오직 한 가지를 바랍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낼 집’입니다. 다른 꿈은 없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안 바랍니다. 돈을 바라는 일도 없고, 맛난 밥을 바라는 일도 없으며, 멋진 자가용을 타고 나들이를 다니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크든 작든 초라하든 우람하든,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어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을 뿐인 아이입니다. 아이는 ‘우리 집’을 갖고 싶습니다. 전세이건 월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다른 사람 집에 얹혀서 지내든 내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얼싸안고 까르르 웃다고 기쁘게 노래하는 삶을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 “특별한 날이라서 이렇게 준비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할머니는 사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혼자 된 뒤로 늘 부엌에서 밥을 먹었거든. ‘혼자’라는 말이 질리의 머릿속을 울렸다. 질리는 ‘혼자’인 게 어떤 건지 잘 알았다. 하지만 톰슨 파크에서 지내 본 뒤에야 가까이 있던 사람을 잃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질리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 딸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정말로 ‘혼자’였다 …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의 얼굴은 다른 모든 방과 마찬가지로 이 방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 엄마. 왜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왜 날 버리고 떠나셨어요? 질리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사진을 뒤집어 티셔츠 아래 다시 숨겨 버렸다 ..  (215, 218∼219쪽)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재웁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잠자리에 듭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인 터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리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아버지요 어머니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글을 제법 잘 쓰는 일곱 살 큰아이는 종이를 작게 오린 뒤 연필로 또박또박 “아버지 좋아요♡”라든지 “어머니 사랑해요♡”와 같은 글을 쓴 다음, 이 쪽종이를 뒤집어서 살그마니 건넵니다.


  밤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소리에 문득 잠을 깹니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섬돌을 살핍니다. 빗물이 어디까지 튀는지 보면서, 섬돌 둘레에 널브러진 아이들 신을 추스릅니다. 비가 안 들이치는 데에 신을 옮깁니다. 아이들이 걷어찬 이불을 찾아 여미어 줍니다. 밤바람은 한여름에도 차니, 마룻문을 닫습니다. 부엌 개수대에 설거지를 안 하고 남은 그릇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엊저녁에 먹고 남긴 국이나 밥이 있는지 냄비를 열어 봅니다. 밤에 한 차례 집안을 돌아보고는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이불을 또 여미고는, 아이들 사이에 가만히 눕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느새 뒹굴뒹굴 하면서 저희 손이나 발을 내 몸뚱이나 다리에 척 걸칩니다. 이러고는 쩝쩝 짭짭 입맛을 다시면서 고로롱고로롱 소리를 내면서 어떤 꿈나라를 날아다닙니다.


  집이란 어떤 곳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잠만 자는 곳일는지, 집이란 고단한 몸을 쉬는 곳일는지, 집이란 살림을 꾸리고 사랑을 나누는 곳일는지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어떤 곳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집을 재산으로 여겨 부동산처럼 사고팔 때에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마당 한켠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즐겁게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놀며, 풀피리를 불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을 노래하면서 삶을 한껏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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