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리 보리피리 이야기 3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 보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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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9


 

멧골짝 조그마한 나리꽃은

― 산나리

 박선미 글

 이혜란 그림

 보리 펴냄, 2007.10.20.



  시외버스를 달려 시골을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삼스러울 것 없는 모습이 죽 이어집니다. 시골을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시골에서 멀어질수록 숲이나 나무가 줄어듭니다. 도시와 가까울수록 숲이며 나무가 거의 사라집니다. 도시로 접어든 시외버스는 숲도 나무도 도무지 없는 아스팔트길을 달립니다.


  시외버스를 달려 도시를 벗어나면 창밖으로 새로운 모습이 죽 펼쳐집니다. 도시를 벗어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 숲과 저 골짜기 사이를 누빕니다. 비록 이 고속도로가 숲과 멧골과 냇물을 깎고 밀어서 지었어도, 도시를 벗어나서 시골로 돌아가는 길은 포근합니다.



.. 봄이 되었어. 매화가 지고 나면 집 뒷마당이나 밭머리에 한 그루씩 서 있는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동네를 환하게 밝혀 줘 … 유난히 검고 삐죽삐죽 모난 돌이 많은 애장골. 야야는 그 시커먼 돌 틈으로 쏘옥 싹을 내민 산나리를 캐다가 집 안마당에 심어 두고 싶어 해마다 속을 끓였어 ..  (4, 12쪽)



  개화기나 식민지라고 하던 때,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이 땅에 온갖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는 한국에서 나는 모든 것을 일본으로 빼앗으려고 철길과 찻길을 닦았습니다.


  오늘날 경제개발 한국에서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철길과 하늘길을 끝없이 다시 놓고 새로 놓으며 더 놓습니다. 도시와 도시가 더 커지기를 바라는 뜻이며, 시골은 차츰 작아지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시골이 작아져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시골 들과 숲을 도시가 잡아먹어야 도시가 커지니까요.


  모든 찻길과 철길과 하늘길은 오직 도시와 도시를 이을 뜻입니다. 시골과 시골을 이으려고 찻길이나 철길이나 하늘길을 놓는 일은 없습니다.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을 놓는다면, 도시에서 관광이나 여행을 온 사람들이 다니기 좋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 애장골 옆으로 참빗나무가 더러 자라고 있었어. 참빗나무에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것같이 반짝거리는 새 잎이 돋아나면, 동네 사람들은 그 홀잎 나물을 훑으러 가 ..  (36쪽)



  박선미 님이 글을 쓰고 이혜란 님이 그림을 넣은 《산나리꽃》(보리,2007)을 시외버스를 달리는 길에 읽습니다. 고흥을 벗어나 보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읽습니다. 박선미 님은 이녁이 어릴 적에 그토록 캐서 장독 언저리에 심고팠던 산나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야기 끝을 좀 어영부영 흐릿흐릿 맺습니다. 마지막 줄을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무언가 더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을 텐데, 알맹이를 빠뜨린 듯합니다. 깊은 멧골에서 자라는 나리꽃과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이 어릴 적에 놀렸던 동무와 얽힌 이야기이든, 박선미 님과 동무들이 자라던 시골마을과 얽힌 이야기이든, 끝에서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빠집니다.


  그림에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림을 보면 열 살 남짓 조그마한 가시내가 어린 동생을 포대기로 업은 모습이 나오는데, 영 잘못 그렸습니다. 포대기가 허리 아래에서 엉덩이에 느슨하게 걸쳐졌고, 갓난쟁이는 어설프게 가시내 등판에 붙습니다. 포대기가 저렇게 느슨하다면 등에 업힌 아기는 머리가 뒤로 폭 꺾여요. 게다가 포대기에서 떨어집니다. 포대기로 아기를 업으려면 바짝 조입니다. 포대기가 느슨히 풀리면 이내 끈을 단단히 조이지요.



.. 야야는 그걸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면서 지나가는 그 아이 등에다 대고 ‘엣취 뽕’이라고 놀려댔어. 그런데 순복이는 한 번도 그게 아니라고,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적도 없어.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쫓기듯이 지나가기만 하는 거야 ..  (44쪽)



  올여름,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골짝마실을 자주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몰고 가파른 멧길을 오르는 일은 무척 고됩니다. 그러나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멧길을 오르기에는 다리힘이 부칩니다. 이듬해에 다섯 살이 된다면 작은아이도 씩씩하게 멧길을 오르면서 골짝마실을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름 내내 골짝마실을 하면서 말갛게 피어난 나리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고운 나리꽃입니다. 멧골에서 피니 멧나리꽃이에요.


  멧나리꽃을 보고 문득 생각했어요. 이 아이를 캐서 우리 집 마당에 옮겨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렇지만, 이튿날도 다음날도 골짝마실을 하면서 호미나 꽃삽을 안 챙깁니다. 그저 마실을 할 적마다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열 송이 스무 송이 백 송이쯤 피어나면 그즈음 살며시 한 포기를 옮기자고 생각했어요.


  한참 멧나리꽃을 누리면서 골짝마실을 하던 어느 날, 아이들과 내가 즐겁게 만나던 멧나리꽃이 사라집니다. 꽃도 줄기도 뿌리도 잎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언제나 골짜기 한켠에서 곱다라니 꽃내음을 나누어 주던 멧나리꽃은 어디로 갔을까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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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가출했다 힘찬문고 41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한기상 옮김,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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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8



어버이는 고스란히 물려준다

― 언니가 가출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최정인 그림

 한기상 옮김

 우리교육 펴냄, 2007.1.19.



  어버이는 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즐거움도 물려주며, 아픔도 물려줍니다. 사랑도 물려주며, 슬픔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물려받고 싶을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입시지옥을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되나요? 입시지옥을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되나요? 한편, 아파트를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있지요? 아파트를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있지요?



.. 엄마는 몸을 돌려 언니에게 물었다. “그분들 지금은 조화 장미꽃 안 가지고 있니?” “관심 있으면 가서 직접 보시지 그래요!” … 언니는 죽은 모르모트를 안고 침대로 갔다. 그러고는 침대보 위에 눕혀 놓았다. 엄마는 책상 위에 서 있는 타트야나를 안아서 책상 의자에 앉히고는 피가 나는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중얼거렸다 … 저녁에 쿠르트 아저씨가 우리 방으로 왔다. 아저씨는 언니에게 모르모트를 새로 살 거냐고 물었다. “당신 아이들한테나 사 주시지요.” 언니는 아저씨에게 쏘아붙였다 ..  (9∼10, 21∼23, 24쪽)



  어릴 적부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돈이 무척 많은 동무는 없었으나, 돈이 꽤 많은 동무는 있었습니다. 돈이 꽤 많은 동무는 그 아이가 바라는 장난감을 거의 다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 아이네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돈이 많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우리 어머니도 밥을 잘 하시지만, 동무네 어머니 가운데 밥을 놀랍도록 잘 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밥이나 반찬을 차려서 주시는 동무네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동무네 집에서 밥을 한 그릇 함께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런 밥과 반찬을 해 주기를 바라나? 우리 집에서 이런 것을 먹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내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에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합니다. 값이 비싸니 꽤 오랫동안 다달이 갚도록 하면서 장만합니다. 아버지는 네 식구를 태우고 두 시간 동안 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동네에 자가용 있는 집이 얼마 없던 때인데,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레 여깁니다. 이때 나는 우리 집에 자가용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더군요.



.. 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엄마가 모욕을 주듯 비웃으며 말했다. “먼저 우리 가족에 대한 약속과 의무부터 지켜 보지그래.” “도대체 내가 지켜야 할 의무가 뭔데요?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가족이라는 건 누구를 얘기하는 거죠?” … 관리인 할머니는 타트야나의 머리 너머로 나를 째려보았다.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 쏘아보았다 … 할머니는 우물쭈물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누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 줘야만 하지.” ..  (39, 67, 81쪽)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받기를 바랐습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도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꿈을 물려받고 싶으며, 꿈을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함께 이야기를 물려받고 싶으며, 이야기를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이야기와 함께 숲집을 물려받고 싶으며, 숲집을 물려주고 싶어요.


  땅이나 집이 아닌 ‘숲집’입니다. 숲으로 이루어진 숲입니다. 숲을 이룬 집입니다. 넓거나 비싼 땅이나 집이 아닌, 숲으로 둘러싸인 집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우거진 푸른 숲과 집입니다.



.. 나는 언니한테 여기에 남아 있어 달라고 말하려 했다. 안 그러면 난 완전히 혼자가 되니까 … “누나네 할머니 좋아? 누나네 할머니도 우리한테 할머니가 될 수 있어? 누나네 할머니도 할아버지 있어? 그 할아버지도 좋아?” 올리버가 물었다. 난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계속 재채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그래, 그래.” 하고 대답했다 ..  (49, 153쪽)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님이 쓴 《언니가 가출했다》(우리교육,2007)를 읽습니다. 이녁은 이 작품을 1974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마흔 해를 묵은 작품인데, 유럽에서도 마흔에 앞서까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가 대단했구나 싶습니다. 아마 오늘날에도 이러한 아픔과 슬픔은 모두 안 가셨지 싶습니다. 아이를 때리거나 다그치는 어버이가 많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윽박지르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학교에서도 어른들은 아이를 다그치거나 윽박지르기 일쑤입니다. 요즈은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를 때리는 일은 거의 수그러들었다 할 만하지만, 아이를 때리지 않아도 입시지옥이 있어요. 시험지옥이 있습니다. 여기에, 학원이 지옥처럼 도사립니다.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아이들은 동무와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열대여섯 살쯤 된다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드디어 몸으로 옮길 만합니다. 그러면, 열대여섯 살짜리 아이는 집을 나가서 어디로 갈 만할까요? 우리 사회는 ‘집을 나간 아이’를 받아들일 만큼 너그럽거나 넉넉하거나 포근할까요? 현대 도시문명 사회는 모든 사람을 옥죄거나 윽박지르기에, 여느 집 어버이조차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을까요?


  아이를 때리는 어버이도 마음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생채기를 다스리지 못했으니 아이를 낳아도 사랑으로 보살피지 못합니다. 어버이부터 삶을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즐겁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한 하루라면, 이러한 굴레에 갇힌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자리를 찾거나 셋집을 찾으면서 집을 나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 꿈을 세워서 가꿀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 ‘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언니’가 집으로 돌아온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언니네 어머니도, 언니네 새아버지도, 언니네 새할머니도 모두 예전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제 언니에 이어 동생도 머잖아 집을 나가겠지요. 머잖아 집을 나간 뒤 두 번 다시 그 집에 돌아가지 않겠지요.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가겠지요.


  그런데,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된 ‘사랑 없이 자란 아이’가 아이를 낳을 적에는 어떤 삶이 흐를까요. 예전과 똑같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일까요, 아니면 이 아이들은 슬기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는 이 대목을 못 건드립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책에서는 이 대목을 못 살폈다거나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거나 이 대목까지 마음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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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비차 사계절 아동문고 18
니콜라이 노소프 지음, 엄순천 옮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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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4


 

네가 내 동무 맞니?

― 내 친구 비차

 니콜라이 노소프 글

 엄순천 옮김

 사계절 펴냄, 1993.4.20.



  고흥 시골자락에 조그마한 우리 집을 마련한 지 세 해 만에 뒤꼍 유자나무에서 유자알을 구경합니다. 제법 많이 열렸기에 샛노랗게 익으면 즐겁게 따서 유자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한두 차례씩 뒤꼍에 와서 유자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유자나무 크기로 본다면 지난해와 그러께에도 유자알이 열렸을 텐데 왜 지난 두 해에는 못 보았을까 하고. 설마 지난 두 해에는 우리 집과 맞닿은 다른 이웃이 우리 몰래 유자알을 몽땅 따는 바람에 이 나무에 열매가 안 맺는 줄 여기지 않았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보니, 올봄에 우리 집 뒤꼍 매화나무에 매화알이 아주 많이 맺혀서 이 열매를 노랗게 익은 뒤에 따려고 했는데, 푸르스름한 빛이 빠질 즈음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어요.


  시골마을에 대문에 자물쇠를 채운다든지, 울타리에 가시넝쿨을 박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훔쳐 갈 일이 없거니와 훔칠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돌울타리는 어른이라면 가볍게 타고 넘을 수 있는 터라, 이웃집에서 ‘푸른 매실’이 아닌 ‘노란 매실’을 얻으려고 그대로 두는 열매를 ‘안 먹으려고 저러는구나’ 하고 함부로 생각하면서 모조리 가져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 내 생각에 아빠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른다. 엄마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빠는 절대로 선생님을 하면 안 된다. 처음 30분은 차근차근 설명하다가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면 마구 화를 낸다. 그러면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면서 바보 멍텅구리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게 된다 … 내가 왜 이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는 의지력이 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의지력은 있으나 약하다 ..  (43, 87쪽)



  낮에 사광이풀과 환삼덩굴 줄기와 돌콩 줄기를 걷어서 유자나무 둘레에 쌓습니다. 뒤꼍에서 다른 집으로 이어지는 자리도 뻥 뚫렸기에, 이곳에도 풀짚을 쌓고 장미나무 줄기를 몇 끊어서 풀짚에 얹습니다. 이쪽은 길도 샛길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쪽으로는 들어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뱀이나 개구리나 풀벌레나 새라면 이런 풀짚 울타리야 아랑곳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 풀짚 울타리를 옆으로 치우거나 밟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예부터 제주섬에서는 나뭇가지를 돌울타리 앞자락에 걸쳐서 걸쇠로 삼았다고 합니다. 걸쇠라기보다 그냥 걸치는 나뭇가지일 뿐인데, 이웃은 이 나뭇가지를 보고는 함부로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요. 나뭇가지 걸친 모습을 보면 ‘집이 빈’ 줄 뻔히 알 수 있겠지요. 집이 빈 줄 뻔히 알면 누구라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즈음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집이 빈 줄 뻔히 알기에 함부로 안 들어가나요? 집이 빈 줄 알아차리면 무언가 훔치거나 빼앗으려고 몰래 들어가지 않나요?


  도시를 보면 어느 집이든 문을 꽁꽁 걸어 잠급니다. 문을 꽁꽁 걸어 잠가도 도둑은 용케 자물쇠를 따고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둑은 자물쇠가 있든 없든 훔칩니다. 이웃은 자물쇠가 없든 있든 서로 아끼거나 보살핍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로 여길까 궁금합니다.



.. “오빠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오빠는 나를 귀찮아 하는데.” “있었으면 좋겠어. 동생이 있으면 장난감도 만들어 주고, 귀여운 동물들도 갖다 주고 하면서 무척 귀여워해 줄 텐데.” … 만일 나라면? 내가 지고 친구가 이긴다면 오히려 기뻐할 거다. 하지만 알릭은 정반대였다. 자기가 이기면 너무 좋아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지면 화가 나서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  (57, 95쪽)



  니콜라이 노소프 님이 쓴 《내 친구 비차》(사계절,1993)를 읽습니다. 러시아에서 나온 퍽 오래된 어린이문학입니다. 한국말로 옮긴 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꾸준히 읽히면서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책이름이 말하듯이 “내 동무”를 이야기합니다. 서로 동무라 한다면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무 사이에 지킬 이야기를 밝히고, 동무 사이에 이룰 수 있는 꿈과 사랑을 알려줍니다.


  어린이문학 《내 친구 비차》에 나오는 아이들은 서로 ‘동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무이면서 동무인 줄 제대로 못 깨닫기도 했기에, 동무가 어려울 적에 제대로 못 돕거나 마음을 못 기울이기도 합니다.



.. 나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돼 있었다. 이렇게 당당한 내 모습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언제나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 보기만 하던 내가 다른 사람한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다니 … 엄마를 위해서 공부하는 건 아니야. 엄마도 늘 그렇게 말씀하셔. 하지만 역시 난 엄마를 위해서도 공부하고 있는 거야. 엄마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셔. 나는 꼭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될 거야 ..  (139, 288쪽)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물을 노릇입니다. 내가 네 동무 맞니, 하고. 네가 내 동무 맞니, 하고.


  생각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동무 사이라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웃 사이라면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이웃인가요? 여러 정당은 서로 이웃인가요? 한국사람은 저마다 서로 이웃인가요? 남녘과 북녘은 서로 이웃인가요? 한국과 일본은, 또 한국과 중국은, 또 한국과 미국은, 또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이웃인가요? 지구별에 있는 여러 나라는 서로 이웃인가요?


  사람과 개구리는 이웃인가요? 사람과 나무는 이웃인가요? 사람과 제비는 이웃인가요?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우리가 서로 이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지내면 될까요? 이웃이 어려울 적에 도와준다면, 이웃이 배고플 적에 밥 한 그릇을 준다면, 우리는 이웃한테 돈을 달라고 바랄 만한지요? 아니면, 이웃이니 즐겁게 도와주었다고 말을 할는지요?



.. “얘들아, 이제 코스차를 어떻게 도와줄 건지 얘기해 보자. 코스차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된 거야. 우리한테도 책임은 있어. 우리는 코스차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눈곱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필요할 때에 도와주지도 않았으니까.” … 코스차는 아이들에게 아주 엄한 도서부원이었다. 누가 더러운 손으로 책을 빌리러 오면 마구 화를 냈다. “부끄럽지도 않아? 손이 왜 그렇게 더럽니?” “으응, 좀 더럽지? 그런데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라니? 책 빌리러 온 거 아냐?” “맞아.” “그렇게 더러운 손으로 책을 빌려 가려고?” “그러면 안 돼?” “손을 깨끗이 씻고 빌리러 와야지. 그렇게 더러운 손으로 만지면 책이 더러워지잖아!” ..  (231, 277쪽)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길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전력 공무원과 경찰과 전투경찰은 밀양 할매와 할배를 얼마나 이웃으나 동무로 여길까 생각해 봅니다. 4대강사업을 끝까지 밀어붙은 대통령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이 나라 사람들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겼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군대를 크게 거느리는 정치권력자는 북녘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길까 따져 봅니다.


  이웃끼리는 전쟁무기를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한테는 총이나 칼을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끼리는 탱크나 미사일을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한테는 핵무기를 겨누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어깨동무를 하면서 밥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입시지옥이나 경쟁이나 상업주의 같은 것을 만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웁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슬기를 밝혀 즐거운 지구별로 가꿉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짓을 멈추고 모든 나라 모든 마을에서 밥·옷·집을 스스로 일구어 쓰레기 없는 맑고 싱그러운 터전을 짓습니다.


  ‘소비자’나 ‘상품 구매자’나 ‘고객’이나 ‘국민’이 아닌 ‘이웃’이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 곱게 드리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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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할머니 저학년 책내음문고
파울 마르 지음, 유혜자 옮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 책내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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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9


 

우리 곁 슬기로운 이웃

― 기차 할머니

 파울 마르 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펴냄, 2000.3.15.



  파울 마르 님이 글을 쓰고, 프란츠 비트캄프 님이 그림을 넣은 《기차 할머니》(중앙출판사,2000)는 2013년에 새로운 출판사(책내음)를 만나서 다시 나옵니다. 널리 사랑받는 어린이책이니, 이렇게 꾸준히 나올 수 있구나 싶습니다.


  어린이문학 《기차 할머니》는 어린이가 혼자 기차로 나들이를 떠나는 길에 만난 할머니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기차 나들이를 떠나는 어린이는 ‘젊은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가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젊은 사람하고는 함께 앉지 못합니다. 자리가 없네요. 아이가 앉을 만한 빈자리는 할머니 옆입니다.


  아이는 ‘늙은 사람’ 옆에 앉아야 하니,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 달리는 길이 따분하거나 싫으리라 지레 생각합니다.


  아마, 따분하거나 싫을 수 있겠지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늙기에 따분할 만할까요? 나이가 젊지만 생각이 굳거나 닫히거나 막힌 사람일 때에 따분하거나 괴롭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볼 모습이란 ‘나이’라는 숫자가 아닌, 삶을 사랑하거나 가꾸거나 아끼는 ‘숨결’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럼 가까운 곳으로 함께 갔다 와요.” 울리가 조르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아니, 그것도 안 돼!” “그렇지만 난 어디든 가고 싶어요.” “그럼 너 혼자 가렴.” 엄마가 말했어요. “좋아요. 그럼 나 혼자 갈게요.” ..  (14쪽)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롭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알아채거나 느끼지 않으니, 아름다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으려고 하는 만큼, 사랑과 꿈을 키우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름다운 길을 찾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터라, 사랑도 꿈도 모두 동떨어진 채 살아요.


  다만, 그뿐입니다. 슬기롭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고, 어리석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슬기로울 뿐이기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꿈으로 나아갑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을 뿐이기에 어리석은 길에서 헤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으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길로 접어들 때에 활짝 웃을 만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기쁘게 노래하거나 춤을 출 만할까요.



.. “차표를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울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이런저런 경험이 많지. 차표를 잃어버린 적이 나도 백 번은 넘을 거야. 그렇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까 물건을 찾는 방법도 알게 되더구나.” ..  (49쪽)



  어린이책 《기차 할머니》에 나오는 할머니는 차분하면서 따사롭게 아이를 맞이합니다. 차표를 어디엔가 잃은 아이를 찬찬히 달래면서 어디에서 잃었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하고 함께 생각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차표를 찾도록 도운 다음에는, 아이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슬기로운 마음을 밝힐까요? 할머니는 어릴 적에 이녁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슬기로운 넋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기차 나들이를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요? 아이는 이날 처음으로 깨달은 ‘늙은 사람 슬기와 재미와 웃음’을 마음으로 깊이 담으면서 새롭게 눈을 뜨겠지요.


  아이는 언제까지나 아이로 살지 않습니다. 아이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젊은이도 되고 늙은이도 됩니다. 아이는 천천히 깨닫습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하면, 어린이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인 사람’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에는 할머니가 얼마나 슬기로울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할머니는 한국이건 일본이건 유럽이건 모두 텔레비전에 얽매일 텐데,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할머니는 얼마나 슬기로울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어린이는 맑은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젊은이는 푸른 넋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텔레비전에 얽매이는 여느 어른이나 할매나 할배는 어떠할까요? 이들은 슬기로운 넋이 될 수 있을까요?



.. “그래? 그럼, 내가 나이를 제대로 봤구나. 너도 안드레아스처럼 옛날이야기 듣는 것 좋아하니?” 할머니가 물었어요. “어떤 이야기인데요?” 울리가 물었어요. “안드레아스는 내가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를 해 주면 제일 좋아하지.” …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이 없었거든. 그래서 심심하니까 형제들끼리 하는 놀이를 많이 했지. 가끔은 다른 사람들에게 짓궂은 장난도 쳤고.” ..  (52, 75쪽)



  우리 곁에 슬기로운 이웃이 있습니다. 전화기를 끄고 옆을 둘러보아요. 우리 둘레에 아름다운 이웃이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끄고 둘레를 살펴보아요. 우리 가까이에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습니다. 책을 덮고 두리번두리번 헤아려요.


  할머니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풀 한 포기와 새 한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도 모두 슬기로운 이웃입니다. 이 지구별을 이루는 따사로운 이웃은 저마다 슬기로우면서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스스로 슬기로운 이웃이 되어 내 곁에 있는 사람들한테 따사로운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활짝 웃고 노래해요. 기쁘게 춤추면서 어깨동무를 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이 태어납니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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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덧셈 - 1942년으로 떠난 시간 여행 카르페디엠 33
제인 욜런 지음, 구자언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17



누가 전쟁을 일으키는가

― 악마의 덧셈

 제인 욜런 글

 구자언 옮김

 양철북 펴냄, 2013.4.29.



  아주 어릴 적에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처음 받은 뒤부터 무서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사일과 총알이 날거나, 전투기나 폭격기가 하늘을 가르거나, 잠수함이나 군함이 바다를 헤치는 일만 전쟁이 아닙니다. 총질에 칼부림이 있어야만 전쟁이 아니고, 탱크가 논밭과 숲을 짓밟아야만 전쟁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골목에서 힘센 아이가 힘여린 아이를 두들겨패는 짓조차 전쟁입니다. 학교에서 ‘어른이라는 교사’가 아이를 때리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거친 말을 뱉어내는 일도 전쟁입니다. ‘어버이라는 사람’이 이녁 아이를 때리거나 큰소리로 꾸중하는 일도 전쟁입니다.


  몇몇 전쟁 미치광이가 일으키는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똑같이 전쟁이 도사리기 때문에, 이를 전쟁 미치광이가 살살 건드릴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서움과 두려움이라는 싹을 심어서 키우기 때문에, 그예 전쟁이 터지고 우리 스스로 총알받이가 됩니다.



..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이젠 지긋지긋해요.” 한나는 차에 올라타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따사로운 4월 햇살 탓인지 한나의 얼굴은 발그스름했고, 젤리빈과 부활절 사탕을 먹어서 입안은 끈적거렸다 … “할아버지는 왜 저렇게 난리지? 전부 다 옛날 일이잖아. 이젠 더 이상 강제수용소 따윈 있지도 않은데 왜 자꾸 입에 올리는 거야? 정말 혼란스러워. 나는 친구들이 할아버지를 만날까 봐 걱정돼. 할아버지가 친구들에게 소리 지르거나,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해? 댄 할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함치지도, 전쟁을 얘기하지도 않잖아?” ..  (6, 15쪽)



  한국 정치에서 엿볼 수 있는 군사독재자가 여럿 있습니다. 군사독재자 숫자는 그야말로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이들이 총이나 칼이나 탱크를 거머쥐었다고는 하지만,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들고 일어나면, 이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미국으로 내뺐을 테지요.


  그렇지만, 군사독재자 앞에서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아주 많은 이들이 일제부역을 했습니다. 혼자 먹고살려고 일제부역을 해요. 함께 어깨동무를 해서 함께 잘사는 길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는 ‘가난한 한국에 달러를 끌어들이겠다’면서 베트남 이웃을 모질게 때려잡는 짓을 한국 젊은 사내가 저질렀습니다. 아직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쟁을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무렵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벌거나 베트남사람을 죽인 한국 젊은이도 제대로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


  1980년 전라도 광주에서 여느 사람들을 마구 때려잡아 죽인 이들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를 아버지로 둔 딸은 얼마나 뉘우쳤을까요. 군사독재자 곁에서 권력을 누린 이들한테 ‘뉘우침’이라는 낱말이 있을까요.


  이웃과 동무를 죽인 이들은 으레 ‘빨갱이’라는 이름을 입에 붙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빨갱이만 없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 바람대로 모두 죽일 노릇입니다. 모두 죽여서,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도 없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도 없고, 버스나 전철을 모는 사람도 없고, 발전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오직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교육이나 행정을 하는 ‘빨갱이 아닌 그네’들만 남으라고 할 노릇입니다.


  우리 사회 어느 한쪽에서 자꾸 ‘빨갱이’라는 말을 함부로 주워섬기는 이들은 언제나 한 가지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로 단단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이 될 여느 사람들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아래쪽 사람들은 고분고분 총알받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위쪽에서 물건을 새로 만들면 아래쪽 사람들이 고분고분 사들여서 쓰기를 바랍니다. 피라미드 아래쪽 사람들은 위쪽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할 뿐입니다.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니 총칼을 만들어서 짓밟습니다.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려 합니다. 종이 되어 굽신거리도록 할 뜻으로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와 계급사회뿐 아니라 대학졸업장으로 옥죄고, 은행계좌로 옥죌 뿐 아니라, 서울 강아랫마을 값비싼 아파트로 옥죕니다.



.. 할아버지 집에 가면 온통 벨 할머니 가족들 사진만 있고, 윌 할아버지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고모할머니가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우리가 바로 사진인 셈이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새겨져 있을 뿐이란다. 우리가 죽으면, 전부 사라지겠지.” … 한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교실에서 나누었던 토론들을 더 많이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죽음의 수용소와 화장터에 대해서. 잔인한 나치와 잔인하게 죽어 간 6백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모르는 것이 무서운 걸까 ..  (60, 99쪽)



  전쟁은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 스스로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로 이룹니다.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평화란, 사랑스러운 삶으로 이룹니다.


  평화는 탱크나 총칼로 이루지 않습니다. 탱크나 총칼은 전쟁을 하려고 만든 무기, 그러니까 전쟁무기입니다. 평화를 이룰 적에는 무기를 안 씁니다. ‘평화무기’란 없습니다. 평화에서는 오직 한 가지 사랑만 나누지요. 다시 말하자면 ‘평화사랑’일 뿐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켜서 ‘빨갱이 사냥’을 일삼는 이들 때문에 무섭다고요? 무서우면 어떡해야 할까요? 전쟁 미치광이하고 똑같이 ‘빨갱이 사냥’을 함께 해야 하나요? ‘빨갱이 사냥’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제주에서, 여수와 순천에서,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끔찍한 죽임이 판칠 적에, 전쟁 미치광이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참말 무섭다면, 무서움을 내려놓고, 그네들이 바라는 대로 죽어 주면 됩니다. 모두 죽어 주면 됩니다. 그네들이 대통령도 하고 기자도 하고 교수도 하고 의사도 되고 하라면서 다 죽어 주면 됩니다. 그래서, 그네들끼리 도시를 지어서 살라 하면 됩니다.


  자,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독재부역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네들은 ‘일을 시킬 종’이 없겠지요? 그네들이 ‘일을 시킬 종’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그네들이 손수 농사를 지어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하며, 버스와 기차를 몰아야 하고, 발전소를 지켜야 하고, 모든 일을 그네들이 스스로 해야겠지요.


  그네들이라고 하는 그네들, 전쟁 미치광이가 왜 더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으르렁거리는가 하면, 바로 우리들한테 ‘종살이’를 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종으로 만들어, 기계 부속품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를 못 깨달아요. 똑같이 기계 부속품이 되고 맙니다. 날마다 쳇바퀴를 돌면서 돈을 벌기만 합니다. 삶은 짓지 못하고 돈만 손에 쥡니다. 날마다 지겨운 출퇴근을 하면서 돈을 벌 뿐, 내 아이조차 제대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한 채 너무 바쁩니다.



.. “넌 이것을 기억해야만 해. 잊어버리는 순간, 네 삶은 정말 끝난 것일 테니까.” 문힌을 하는 펜이 한나의 살을 태웠고, 손목 위에 푸른색으로 J197241이라는 숫자가 새겨졌자 … 작업이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은 수용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막사, 부엌, 병원, 경비병의 집 청소하기, 땔감용 나무 자르고 운반하기 ..  (138, 171)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양철북,2013)을 읽습니다. 1942년에 있던 어떤 끔찍한 ‘죽음잔치’를 적은 글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강물이 흘러가도록》이나 《나의 삼촌 에밀리》 같은 그림책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따사로운 사랑을 들려주는 글을 쓰는 분입니다. 이런 제인 욜런 님이 쓴 《악마의 덧셈》은 어떤 책일까요?


  청소년문학 《악마의 덧셈》은 ‘주인공 청소년’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1942년에 가 보도록 해 줍니다. 겉보기로 평화스러운 2000년대 어느 날에 ‘주인공 청소년’이 있도록 하지 않고, 1942년 그무렵 전쟁 미치광이 피바람이 부는 한복판에 ‘주인공 청소년’이 서도록 해 줍니다.



.. “여기에서 사람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되는 것일 뿐이야. 화덕 안에서 화장되는 게 아니라, 그저 ‘처리되는’ 거지. 시체는 없어. ‘쓰레기’, ‘헌 옷’, ‘걸레’만 있을 뿐이야.” “하지만 왜?” 한나가 묻자 이번에는 레예가 대답했다. “왜냐고? 기록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까.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거야. 그러니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는 거고.” ..  (177쪽)



  평화를 모르는 오늘날 사람들은 2000년대 이 자리가 아닌 1900년대 지난날에 서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내세우는 바보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1800년대나 1700년대 조선 사회에 서면서, 그무렵 권력자가 시골사람을 얼마나 짓밟거나 얕잡거나 괴롭히거나 들볶았는지 몸소 겪어야지 싶습니다.


  궁궐에서 태어나 궁궐에서 살다가 궁궐에서 죽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피는 수많은 ‘종’은 삶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흙 한 줌 스스로 만지지 않고도 밥을 먹고 옷을 입은 ‘임금 한 사람’과 곁에서 임금을 보살핀 수많은 ‘종’은 사랑을 얼마나 알았을까요?


  누가 전쟁을 일으킬까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전쟁 명령을 내리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정치 지도자가 어리석은 짓을 시켜도 꼼짝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가 나올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신분차별과 계급차별을 단단히 세우려고 하는 어리석은 지식인이나 권력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전쟁이 자꾸 터지는 까닭은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늘리는 바보짓을 정치나 행정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일삼는 까닭도 우리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평화를 바라고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전쟁과 전쟁무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바라는 평화와 사랑으로 하루를 새롭게 지을 때에, 지구별에 따사로운 바람이 붑니다.


  대학교는 학문을 깊이 다스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교는 학력차별과 신분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 구실을 그만해야 합니다. 돈은 즐겁게 벌어서 아름답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돈으로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거나 짓밟는 짓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서 전쟁을 지우고 평화와 사랑을 씨앗으로 심기를 바랍니다. 4347.10.1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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