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하여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배움책 23



‘노래하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운다

―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코르네이 추콥스키

 홍한별 옮김

 양철북 펴냄, 2006.4.21.



  우리 집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노래를 하고 싶으니 노래를 합니다.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노래하고 싶으니 신나게 뛰놀면서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합니다. 큰아이는 휘파람 소리를 처음 들은 날부터 저도 휘파람을 불고 싶다고 외치더니, 여러 해에 걸쳐서 꾸준히 애쓴 끝에 이제 휘파람을 제법 잘 불 줄 압니다. 악보를 볼 줄 몰라도 휘파람을 불 줄 알고, 음계를 아직 잘 몰라도 휘파람을 마음껏 붑니다.


  작은아이는 ‘노래하는 놀이순이’ 누나 곁에서 늘 노래를 듣는 동안 차츰차츰 노래 솜씨도 놀이 솜씨도 늘어납니다. 아침저녁으로 온 집안과 마당을 뛰거나 달리면서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목청껏 노래합니다. 이리하여, 이 아이들은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가든, 시외버스를 타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큰아버지한테 나들이를 가든, 어디에서나 목소리가 참으로 큽니다.


  목소리 큰 아이를 거느리면서 문득문득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목소리 높낮이를 가눌 까닭이 없이, 그야말로 신나고 즐겁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차츰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목소리를 알맞게 가누면서 놀 줄 압니다. 철이 제법 들어서 목소리를 가눌 줄 알더라도, 놀이에 사로잡히면, 그야말로 새처럼 하늘을 나는 기쁜 노래가 우렁차게 터져나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무의식중에 단어를 창조한다는 사실에 … 아이들이 언어를 창의적으로 익혀 갈 때는 실수조차도 언어 지식의 조각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드러내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아이가 단어를 만들어 내고 구성하는 능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열 살만 되어도 어떤 어른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탁월하고 유연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입말에 대한 지식을 익히도록 도우면서 점점 더 많은 새 단어를 알려줘 어휘력이 풍부해지도록 해 줘야 할 임무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 아이들이 말을 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이 생각을 잘하도록 가르친다는 뜻도 된다. (18, 19, 20, 35쪽)



  코르네이 추콥스키 님이 빚은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양철북,2006)를 읽었습니다. 한 번 읽고 나서 덮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새롭게 돌아봅니다.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 언저리일 적부터 이 책을 읽었고, 작은아이가 다섯 살을 한껏 누리는 요즈음에 이 책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다섯 살이란 어떤 나이일까요? 두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다섯 살에는 어떤 숨결이 될까요? 두 살에는 마음이 어떻게 자랄까요?


  마흔 살이 넘은 사람은 다섯 살이나 두 살에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어느 만큼 헤아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버이로서 나이가 더 많다는 생각만으로, 또 어버이로서 ‘나는 그 나이를 지나가 보았으니까 그 나이를 알아’와 같은 생각에 젖어서, 막상 아이를 꾸밈없이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마음을 잃지는 않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무슨 놀이를 하든 아이들은 놀이에 푹 빠져들곤 한다. 특히 상상력을 동원하는 놀이를 좋아한다 … 아이는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을 조금도 힘겹게 여기지 않는다 … 아이를 존중한다면 귀찮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신의 양분을 빼앗아 버려서는 안 된다 …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삶은 오직 즐거움과 끝없는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 아이들은 대개 동화책에 슬픈 내용이 나오는 걸 아주 싫어한다. 누가 도와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놀라운 재주를 발휘해 행복한 환상을 만들어 내고 그 행복이 무너지지 않을까 도끼눈을 뜨고 감시한다. (48, 51, 56, 71, 74쪽)



  쉰 살인 사람은 스무 살도 마흔 살도 모두 지나가 보았습니다. 여든 살인 사람은 서른 살도 쉰 살도 모두 지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이를 지나가 보았다고 해서 그 나이에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맞아들이는 마음을 ‘모두 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어린이와 푸름이로 지내기는 했으되, 열 살부터 스무 살 사이에 오직 입시공부만 했다면, 이동안 그저 집이랑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교과서와 참고서만 들여다보았다면, 열 살부터 스무 살 사이에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이거나 꿈이거나 사랑인가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서른 살부터 쉰 살 사이에 ‘돈 버는 바깥일’에만 마음을 쏟으며 살았다면, 정작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인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눈길’이나 ‘사랑을 헤아리는 마음’을 얼마나 안다고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른하고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도, 아이랑 아이 사이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이가 되어서 지나갔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마음을 아이들 눈높이와 마음결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올바로 알 수 없습니다.



아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모든 사람이 ‘시인’이다 … 아이들은 보통 깡충깡충 뛰거나 달리면서 노래를 만들어 낸다 … 아이들이 지쳐서 그만 뛰면 노래 만드는 것도 끝이 난다. 슬프거나 아프거나 졸리는 아이는 시를 단 한 줄도 만들지 못한다. 아이들은 시인이 되려면 생기가 넘쳐야 한다. 초봄, 푸른 풀밭 위에서 산들바람과 햇살에 흥이 겨우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쏟아내며 활기차게 뛰어논다 … 아이들이 만들어 부르는 노래에는 한숨이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 교사들에게 시인을 키워내는 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좋은 시를 감상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도 교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여겨야 할 것이다. (104, 106, 107, 111, 118쪽)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쓴 러시아사람은, 러시아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어버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수많은 어버이가 함께 읽고 돌아볼 만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쓴 분이 바라본 곳은 ‘러시아 아이’나 ‘러시아 어른’이 아닌, ‘지구별 사람’이요, ‘마음에 하느님과 숲님과 땅님과 별님 모두를 품은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참말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시인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누구나 숲님이라 할 만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노래꾼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저마다 땅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사랑둥이라 할 만합니다. 참말 우리는 언제나 별님이라 할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꿈지기라 할 만합니다.



대부분 엄마들이 갑작스럽게 애정이 샘솟을 때 이렇게 리듬감 있는 노래를 쏟아붓는다 … 우리 가운데 수백만 사람들은 시를 열렬히 사랑하고, 시에 흠뻑 빠지고, 그것 없이는 못 산다고 한다. 이들은 아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다 …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사람의 손을 잡고 햇살 아래로 데려가, 진심을 담아서 그가 편협한 마음의 동굴에 갇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아주 쉬운 말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 아이들이 이어가고 전했기 때문에 특히 빼어난, 소중한 보물 같은 노래를 전승할 수 있다 … 동화 몇 편이 아이들을 현실적 생활 능력이 없는 낭만주의자로 만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은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만 하고, 실제 아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관료주의자들이 하는 짓이다. (132, 133, 143, 149, 195쪽)



  아이한테 노래를 들려주면 아이는 노래를 들을 뿐 아니라,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거친 말씨를 들려주면 아이는 거친 말씨를 들을 뿐 아니라, 스스로 거친 말씨를 내뱉습니다.


  저기 있는 사람은 ‘우리 편’이 아니라고 여겨서 미워하거나 시샘하거나 괴롭히면, 이 미움과 시샘과 괴롭힘은 바로 우리한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이리하여, 전쟁무기로는 평화가 흐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전쟁무기는 서로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이나 몸짓이 아니라, 내가 너를 밟고 서려는 마음이나 몸짓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전쟁무기를 손에 쥐니 너도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는 나랑 마주하려 합니다.


  우리가 어버이로서 아이를 마주할 때에도, 또 어른과 어른으로서 서로 마주볼 때에도, 언제나 가슴에 사랑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흐를 적에 시를 쓰고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샘솟을 적에 웃으면서 삶을 짓습니다. 사랑이 가득할 적에 밥을 기쁘게 지으면서 이야기잔치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구슬, 블록, 인형만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생각을 가지고도 놀기 때문이다 … 안타깝게도 로크 방식으로 교육받은 아이들 가운데 많은 아이들은 열 살이 되면 바보가 되고 만다. 어린 시절을 빼앗기면 누구라도 바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왜 동화 아니면 전동기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전동기를 발명하는 데에도 자유로운 환상과 상상이 필요한데 말이다 … 아이들이 동화를 보든 안 보든 다를 것이 없는 게, 아이들은 읽을 동화가 없으면 자기 스스로 안데르센, 그림, 예르소프가 되기 때문이다 … 민중한테서 배워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서도 배워야 한다 … 시인은 화가이자 동시에 음악가여야 한다. 이야기가 그림으로 표현되어 전개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아이가 노래하고 손뼉 칠 수 있어야 한다..  (155, 173, 182, 187, 222, 224쪽)



  ‘노래하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배웁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아이’는 내 앞에 있는 어린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마흔 살이 넘은 나도 ‘노래하는 아이’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나이는 내려놓고, 내가 두 살이거나 다섯 살 무렵일 적에 얼마나 기쁘게 노래하면서 뛰놀았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코앞에서 웃고 노래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새롭게 생각하고 삶과 사랑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내가 지난날에 어떻게 웃고 노래했는가를 되새기면서, 내가 나를 슬기롭게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깨닫습니다.


  아이는 누구나 시인이면서 화가이자 음악가입니다. 그리고, 어른도 누구나 시인이면서 화가이자 음악가입니다. 살림을 아기자기하게 가꾸는 어버이를 보셔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비질을 하고 국을 끓이며 바느질을 하는 모든 몸짓을 보셔요. 이 모든 몸짓은 예술이자 춤사위입니다. 정갈한 살림살이는 행위예술이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김치도 된장도 예술이자 문화입니다. 기저귀와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뜨개옷이랑 ‘손길을 타서 태어난 모든 살림살이’는 언제나 사랑이면서 꿈입니다.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를 돌아보면서 스무 살에서 쉰 살까지 흐르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아이가 되는 삶을 헤아립니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 곱게 이어진 끈을 생각하고, 아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고 보살피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차근차근 헤아립니다. 나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웃으면서 노래할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기에 날마다 기쁩니다. 4348.6.1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높새바람 4
이연경 지음, 이소하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5



햇볕 한 줌으로 녹이는 가정폭력

―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

 이연경 글

 바람의아이들 펴냄, 2004.5.20.



  나는 어릴 적에 이곳저곳에서 얻어터지거나 두들겨맞으면서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국민학교)에서 문득 ‘맞은 사람은 두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잠 못 이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수업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으나, 담임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아리송했습니다. ‘맞은 사람이 잠을 잘 잔다’고 했으나, 막상 ‘맞은 사람’인 나는 잠을 제대로 들지 못했습니다. 늘 생각했어요. ‘맞은 사람인 나는 이렇게 잠을 못 자는’데, 왜 옛날부터 이런 말을 했을까 하고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느낌이 듭니다. 나는 나를 때린 사람이 또 때릴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나를 때린 사람은 내가 그 사람한테 앙갚음을 할까 싶어 두려워할 수 있어요. 맞고 또 맞고 자꾸 맞다가 어느 날 내가 더는 못 견디겠다면서 불같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 때리려는 사람은 자꾸 때려서 아예 못 일어나게 짓밟으려 하겠구나 싶더군요. 이런 생각이 드니 잠이 잘 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한테 맞지도 말 노릇이면서, 누구를 때리지도 말 노릇이라고 느꼈습니다.



솔직히 나는 선생님이 이상했다. 몇 주 전에도 내 얼굴이 이랬다는 걸 몰랐을까. 그리고 또 며칠 전에도. 하긴 선생님은 언제나 바빴다. (38쪽)



  이연경 님이 쓴 동화책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바람의아이들,2004)를 읽습니다. 이 동화책에 나오는 ‘상효’라는 아이는 ‘어머니한테 늘 얻어맞’습니다. 무엇 하나만 잘못했다 싶으면 얻어맞고, 그저 어머니가 짜증이 나거나 일이 안 풀려서 때리기를 되풀이합니다.


  동화책이 나온 해가 2004년인데, 이무렵에도 집에서 맞고 사는 아이가 많았을까요? 오늘날에는 어떠할까요? 집에서 맞고 사는 아이는 틀림없이 많이 줄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맞는 아이는 틀림없이 있으리라 느끼고, 아이를 때리는 어버이도 틀림없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누구한테 맞았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저씨의 눈은 슬퍼 보였다. 마치 아저씨가 맞기라도 한 것처럼. “많이 아프니, 아가야?” … 사람들은 내가 엄마에게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두 가지 표정을 짓는다. 하나는 불쌍한 표정이고, 또 하나는 나를 아주 몹쓸 아이로 여기는 표정이다. (33, 49쪽)



  아이를 때리는 어버이는 마음속에 사랑이 깊거나 짙지 못합니다. 아이한테 모진 말을 퍼붓는 어버이는 이분이 어릴 적에 제대로 사랑을 못 받았을 수 있습니다. 웃는 낯으로 노래하면서 살림을 가꾸지 못하는 어버이는 참말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못 배우거나 못 겪거나 못 느꼈을 수 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거나 보여줄 만할까요. 이 땅에 몸을 얻어서 태어날 수 있는 삶만으로도 넉넉히 사랑입니다만, 끼니마다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삶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입니다만, 목숨을 잇고 밥을 먹는다고 해서 오롯이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는 보람을 누려야 하고, 사는 즐거움을 웃음꽃과 노래로 누려야 합니다.


  해님처럼 웃을 때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바람님처럼 싱그러이 날듯이 뛰놀 때에 즐거운 삶입니다. 비님처럼 온누리를 촉촉히 적시는 숨결일 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착하고 참답게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해님 같고 바람님 같으며 비님 같은 넋을 물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우린 왜 가난한지 모르겠어.” 언니가 계란 노른자를 반으로 뚝 자르며 말했다. “난 가난이 싫은 게 아니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싫은 거지.” “상효 너 그런 말도 할 줄 아니?” 언니가 나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61쪽)



  동화책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에 나오는 상효네 집은 가난하다고 합니다. 반지하집에서 사느라 햇볕 한 줌 쬐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잔치밥을 먹는 일이 드물고, 고기를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에서 지내는 상효는 ‘가난’보다 ‘어머니하고 따스하게 말을 섞지 못하는 나날’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런 말을 들은 상효네 언니는 문득 동생이 대견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가난하지 않은 살림이라고 해서 꼭 즐거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거나 커다란 집이 있기에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배불리 먹거나 햇볕 잘 드는 마당이 있는 집이 있으니 기쁜 삶이 되지 않습니다. 온갖 물질이 다 있어도 ‘우리 집’에 ‘오순도순 흐르는 이야기’가 ‘사랑스레 어우러지’지 않으면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기쁨도 없습니다.



언니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똑똑한 언니는 엄마 가슴을 아프게 만들 말은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 댁으로 갈까 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을 하듯 방바닥에 펼쳐진 내 책을 정리하며 말을 내뱉었다. “시골이요?” 나는 깜짝 놀라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래, 외할머니가 계시는 시골 말이야. 거기서 농사를 짓는 거야. 배추도 심고, 감자도 심고. 그것들이 자라면 우리가 먹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서 팔기도 하고 말이야.” (179쪽)



  아이들 어머니는 미장원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잃은 아이들 어머니는 한숨만 짓는다고 합니다. 어린 상효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푼푼이 돈을 모은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이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집을 옮기자고 말합니다.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늘 외롭다고 생각하던 상효는, 같은 다세대주택에서 사는 이웃 운전기사 아저씨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랬기에, 어머니가 시골로 가자는 말에 화들짝 놀랍니다. 마음붙이 아저씨를 잃겠구나 싶어서 슬픕니다.


  이웃집 아저씨는 상효네 이야기를 듣고는 상효더러 기운내어 씩씩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잘된 일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해를 듬뿍 보면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마음이 있으면 서로 만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 상효는 아저씨가 들려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서로 만나서 사랑과 꿈을 속삭일 수 있다는 생각을 어린 상효가 고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마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지하집에서 햇볕 한 줌 없이 지내던 그늘에서 빠져나와서 흙을 밟고 만지면서 일하고 놀 수 있다면, 이러한 삶을 새롭게 지으면서 어머니가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다면, 어머니는 아이를 때리는 손길을 거두어 남새를 기를 테고, 남새를 기르듯이 포근한 손길로 어린 상효를 어루만지거나 쓰다듬는 삶으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어린 상효도 이제는 고개를 야무지게 들면서 두 발로 이 땅을 씩씩하게 디디는 어린이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반지하라는 말보다는 그냥 지하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방은 햇살이 잘 들지 않아 솔직히 언제쯤이 아침인지 언제쯤이 저녁인지 알 수 없다. 우리 집에서만은 해는 잠꾸러기인 셈이다. 그래서 늘 형광등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 (23쪽)



  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이 피해자입니다. 때린 사람을 감싸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릴 적에 늘 맞고 살던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메마르거나 차갑고야 만 사람들(가해자)도 마음을 따사로이 달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주먹힘이나 발길질로 괴롭히는 짓으로는 그들 스스로 곱거나 좋거나 너르거나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 사랑받으면서 살 이웃이요 동무이고 숨결입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폭력도 따돌림도 괴롭힘도 없이, 서로 어깨를 겯고 함께 웃고 노래할 사람입니다.


  해님을 바라보면서 웃을 삶입니다. 바람님을 온몸으로 맞아들이면서 노래할 삶입니다. 비님을 기쁘게 부르면서 사랑을 꿈꿀 삶입니다. 동화책에 나온 아이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아이들 어깨에 무거운 짐이 얹히지 않기를 빕니다. 모든 아이들 어깨에 보드랍게 산들바람이 불어서 나비처럼 춤추고 새처럼 노래하는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1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남아, 여행 가자 수남아, 여행 가자 1
김길수 지음 / 겨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배움책 33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배우자

― 수남아, 여행 가자

 김길수 글

 겨리 펴냄, 2015.5.18.



  과자를 담은 상자는 종이가 두껍기 마련입니다. 이 종이상자(과자상자)는 잘 펴서 차곡차곡 그러모은 뒤 버릴 수 있고, 반반하게 잘 펴서 가위로 곱게 오린 뒤, 깨끗한 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종이상자 안쪽은 언제나 깨끗하기 마련이기에, 이곳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살살 오리면 멋진 종이인형이 태어납니다.


  종이인형은 문방구에 가서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예술가나 전문가가 만든 종이인형을 돈을 들여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는 우리 둘레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바라는 만큼 종이를 모아서 곱게 그림을 그려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종이인형’을 빚어서 놀 수 있습니다.



눈 내린 다음날 미술시간이다. 눈이 남아 있는 들판으로 봄을 찾아나선다. 오늘은 봄을 그리기로 했다 … 함께 걷는 산책길에, 함께 먹는 밥 한 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가 함께 바라보는 바다에도, 어디에나 작은 행복들이 놓여 있다 … 아이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 줄 필요도, 특별한 과외를 시킬 필요도 없다. 자연은 그 자체가 최고의 놀이터이고 장난감이고 선생님이다 … 가르침은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15, 59, 66, 71쪽)



  김길수 님이 여섯 식구와 함께 누리는 삶을 담은 《수남아, 여행 가자》(겨리,2015)를 읽습니다. 김길수 님과 이녁 곁님은 아이를 넷 낳았고, 네 아이는 두 어버이와 함께 작은 버스를 타고 이 나라를 두루 돌아다닙니다. 이러고 나서 중국하고 몽골하고 러시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합니다.


  김길수 님과 이녁 곁님은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제도권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두 어버이는 아이들을 집에서 함께 돌보고 같이 놀면서 지냅니다. 아이들이 배울 삶을 두 어버이가 몸소 보여주고, 아이들이 놀 마당을 두 어버이가 손수 가꾸어 베풉니다. 아이들이 나아갈 길을 두 어버이가 함께 걸어가고, 아이들이 꿈꾸면서 사랑할 숨결을 두 어버이가 같이 생각합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 옷들을 사 모으느라 돈을 벌고 그것들을 짐으로 지고 사느라 힘들어했구나! 모두 나누어 주고 나니 움직이는 집에 가벼운 살림만 남았다 … 내 바람이 그러하듯 아이들에게도 여행을 통해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삶을 배우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평화와 안식을 배우는 아이들이길 바란다 … 우리는 비를 찾아가기도 하고,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달리기도 하고, 장날을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제주도를 뱅글뱅글 돈다. (49, 53, 72쪽)



  아이하고 함께 있으면 어느 어버이라도 이 아이하고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즐겁게 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어버이로 이곳에 있을 테지만, 예전에 아이로 있으면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예전에 내가 아이로 지내면서 즐기던 놀이 가운데 오늘 이곳에서 내가 어버이로 있는 동안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재미난 놀이가 있는지 돌아봅니다. 이러면서 아이가 즐기는 놀이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하면서 신나게 뛰거나 달리는지를 살피고, 오늘 어버이인 나를 마주하는 아이가 어떤 놀이를 할 적에 활짝 웃거나 노래하는가를 헤아립니다.


  아이는 놀면서 배웁니다. 아이는 마음껏 놀면서 온몸을 구석구석 움직입니다. 아이는 기쁘게 놀면서 웃습니다. 아이는 홀가분하게 놀면서 생각을 키우고 더 재미나게 놀 길을 스스로 찾을 뿐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럼없이 놀 수 있을 만한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데 여느 학교에서는 놀이를 가르치지 않고 공부만 시킵니다. 여느 학교에서는 아이가 마음껏 뛰놀거나 달리도록 이끌지 않고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여느 학교에서는 ‘아이가 앞으로 누릴 놀이’가 아닌 ‘아이가 앞으로 붙잡아야 할 직업’을 고르도록 시킵니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하는 먼 길을 걷는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니!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로 들어서고부터는 어느 것 하나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 날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낯선 환경들과 낯선 말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중국말을 아빠보다 더 많이 알아듣는다 …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을 대가로 주고받기보다는 고맙고 행복한 웃음을 주고받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여권을 잃어버리고도 즐길 건 다 즐긴다. 객잔 마당에서 해바라기씨나 까먹으며 놀고 있는 바보들! 그래, 너희들에게는 언제나 봄날만 있어라! (108, 111, 122, 137쪽)



  직업 훈련을 받는 일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덟 살이나 열 살 어린이가 벌써 ‘직업’을 떠올리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한다면, 어린이로 보내야 하는 나날이 너무 괴로우리라 느낍니다. 싱그러우면서 푸른 나이라 하는 열다섯 살이나 열여덟 살에도 ‘어떤 직업을 골라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라든지 ‘시험성적에 맞추어 어떤 대학교에 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옥죄여야 한다면, 싱그럽거나 푸른 나이를 누리는 보람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사람한테는 한 살인 나이도 한 번뿐이고, 다섯 살인 나이나 열 살인 나이도 한 번뿐입니다. 열다섯 살과 스무 살인 나이도 한 번뿐이요, 서른 살과 마흔 살인 나이도 한 번뿐입니다. 오직 한 번 찾아와서 흐르는 삶입니다.


  《수남아, 여행 가자》를 쓴 김길수 님이 이녁 곁님하고 네 아이를 이끌고 이 나라를 골골샅샅 누빈다든지, 적은 돈으로 이웃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한테 ‘오직 한 번 흐르는 아름다운 삶’을 누리도록 이끌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네 아이뿐 아니라 어버이인 두 사람으로서도 ‘오직 한 번 흐르는 사랑스러운 삶’을 언제나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봅니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나무가 되어 주고 싶다. 놀이터가 되고,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고, 늘 곁에서 지켜봐 주는 나무가 되고 싶다 … 수남이는 요즘 몽골 아이보다 더 몽골 아이같이 행동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옷을 입지 않고 달리고 달린다. 낮잠을 자고 있던 송아지를 잡아 사냥놀이를 한다 … 바람의 언덕에서 민정이와 정수는 바람을 부르며 논다. 진실로 바람이 키워 준 아이들이다. 바람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바람이 가는 길을 알게 되겠지! 파란 하늘이 아이들 마음에 담긴다. (154, 223, 224쪽)



  졸업장을 따는 곳에 다녀야만 학교를 다닌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졸업장을 따는 학교도 있고, 졸업장이 없는 학교도 있습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보금자리도 배움터(학교)이며, 우리 보금자리가 깃든 마을도 배움터입니다. 우리가 늘 걸어다니는 길도 배움터요, 우리가 언제나 바라보는 하늘과 숲과 들도 배움터입니다.


  교사자격증이 있어서 교과서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만 교사이지 않습니다. 교사자격증이 없어도 밥짓기를 알려주고 옷짓기와 집짓기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바느질하고 뜨개질을 알려주는 사람도 교사요, 자전거를 잘 타도록 이끄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장작을 팰 줄 알거나 짐을 잘 짊어지는 사람도 교사입니다. 밭을 일구거나 논에서 피를 뽑는 일꾼도 교사이고, 기계를 다루거나 버스나 기차를 모는 일꾼도 교사예요.


  그러니,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아이들은 모든 어른한테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배우고, 시골에서도 배웁니다. 아이들은 숨을 쉴 적에도 배우고, 물을 마실 적에도 배웁니다. 우리는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이든 다 가르칠 수 있습니다.


  굳이 스무 살부터 일자리를 찾아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예순 살 언저리에 일을 그만두고 연금만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서른 살이나 마흔 살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예순 살에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일자리가 없으나 시골에서 흙을 지으면서 모든 먹을거리를 손수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어버이요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살아갈 적에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아들이는 기쁨을 사랑으로 누리도록 알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강이 있으니 숲이 있고 숲이 있으니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른다 … 초원에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언제나 무지개가 뜬다. 하나는 색이 옅기는 하지만 주로 쌍무지개다 … 누군가 보기에는 누추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파란 하늘 지붕을 이고 편안한 풀침대에 몸을 뉘이며 함께 걷는 길! 그 길이 학교라는 걸 알았다. (229, 231, 246쪽)



  《수남아, 여행 가자》를 쓴 어버이요 어른인 김길수 님은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아이들이 싱그럽게 마실 파란 바람이 흐르는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뒹굴거나 뛰놀거나 일할 만한 푸른 들녘과 숲이 어우러진 자연학교를 꿈꿉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고맙게 베어서 집을 짓는 삶을 누립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이 맑은 마음이 되어서 밝은 사랑을 가꿀 수 있는 삶을 즐깁니다.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배웁니다. 신나게 일하는 곳에서 함께 가르칩니다. 마음껏 노는 곳에서 함께 웃습니다. 신나게 일하는 곳에서 함께 노래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 여느 제도권학교에서 ‘졸업장을 안 준다’면,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졸업장을 안 준다’면 무척 재미있으리라 봅니다. 어느 학교에서도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주지 않고, 저마다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슬기롭게 가르친다면, 아주 멋있고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에 기대어 사람을 믿거나 일을 맡기지 말고, 우리 스스로 어떤 몸짓이나 마음결이나 생각으로 일을 하는가를 살필 수 있을 때에,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자연학교에는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없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상장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오직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자연학교에서는 오로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모든 학교가 자연학교가 되고, 사랑학교가 되며, 꿈학교가 될 수 있는 날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놀이학교와 이야기학교와 노래학교가 온누리에 피어날 수 있는 날을 즐겁게 그려 봅니다. 4348.6.8.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 어린이작가정신 저학년문고 12
바버라 슈너부시 글, 캐리 필로 그림, 김수희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04



‘치매’ 할머니가 아닌 ‘우리’ 할머니

―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

 바버라 슈너부시 글

 캐리 필로 그림

 김수희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08.4.1.



  어린이문학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어린이작가정신,2008)는 할머니와 아이 사이에 흐르는 삶을 들려줍니다. 아이는 할머니를 사랑하고, 할머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할머니와 아이 사이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는데, 아이는 언제나 할머니한테 마음이 갑니다. 아이는 ‘할머니를 닮았다’는 말이 마음에 듭니다. 할머니와 함께 꽃밭에 꽃씨를 심고, 할머니와 함께 낮잠도 자고 차도 마시며 나들이도 다닙니다. 할머니가 ‘잠옷 바지’를 입은 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돌아다니면, 아이도 ‘잠옷 바지’를 입고 함께 돌아다닙니다.



어느 날 엄마는 할머니가 옷을 이상하게 입었다는 걸 알아챘어요. 꽃무늬 잠옷 바지에 파란 줄무늬 셔츠를 입었거든요. 하지만 난 할머니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도 파란 줄무늬 셔츠에 주황색 꽃무늬 바지를 입는 걸 가장 좋아하거든요. 어른들은 늘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요. (14쪽)



  이야기책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한테 ‘할머니가 아프다’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자꾸 머리가 나빠진다’고 말합니다. ‘알츠하이머’라든지 ‘치매’ 같은 이름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저 ‘나이가 많이 들었’을 뿐입니다. 굳이 할머니한테 ‘이런 병’이나 ‘저런 늙음’이 찾아왔다고 아이한테 말해야 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할머니가 할머니이기 때문에 사랑스럽습니다. 쭈글쭈글한 살결도 사랑스럽고, 하얗게 센 머리도 사랑스럽습니다. 몸을 빠르게 놀리지 못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우며, 느릿느릿 책을 읽어 주다가 때때로 ‘어떤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 잊어’도 사랑스럽습니다.


  왜 아이는 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울까요?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할머니가 그만 ‘어떤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 잊을’ 적에는, 아이가 씩씩하게 그 대목을 읽어 줍니다. 할머니가 못 읽으면 아이가 읽으면 돼요. 할머니가 무언가 떨어뜨리면 아이가 주으면 됩니다. 할머니가 뭘 미처 못 챙긴다 싶으면 아이가 먼저 챙기면 됩니다.



한번은 할머니가 나에게 책을 읽어 주는데 어떤 단어를 잘 읽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글 말고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어느 날,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새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어요. 나는 그 새가 ‘박새’라고 알려줬어요. 내 생각엔 할머니가 깜박한 것 같아요. (17, 19쪽)



  우리는 누구보다 내가 나를 아낄 때에,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도 아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할 적에, 내 곁에 있는 반가운 이웃하고 동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집살이를 하는 사람은 ‘한식구’이면서 저마다 ‘동무’입니다. 어떤 동무인가 하면 삶동무이고 사랑동무이며 꿈동무이자 이야기동무입니다. 삶을 함께 나누고, 사랑을 서로 나누며, 꿈과 이야기를 다 같이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이를 ‘이녁 몸처럼’ 아낍니다. 아이는 할머니를 ‘내 몸처럼’ 아낍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아이와 할머니를 ‘우리 몸처럼’ 아끼지요.



난 할머니를 도와줄 수 있고, 할머니한테서 배운 걸 할머니한테 다시 가르쳐 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내 책을 읽고 싶을 때 옆에서 읽어 줄 수도 있어요. (44쪽)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삽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면서 함께 삽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함께 삽니다. 돈이 넉넉하면 돈으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힘이 세면 힘을 써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글을 잘 쓰면 멋진 글을 써서 선물하면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맛난 밥을 지어서 서로 도울 수 있고, 고운 옷을 바느질해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 도울 수 있고,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커다란 일을 도와야 하지 않습니다. 작은 몸짓도 큰 몸짓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기쁘게 삶을 노래하는 길동무가 되듯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지냅니다. 보금자리를 함께 가꾸는 하루를 씩씩하게 엽니다. 《할머니의 꽃무늬 바지》는 ‘꽃무늬 바지’가 얼마나 고운 옷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서로 기쁘게 아끼는 손길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4348.6.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할아버지의 이상한 밤 이야기할아버지 시리즈
임혜령 지음, 류재수 그림 / 한림출판사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03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스러운 우리들

―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밤

 임혜령 글

 류재수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2012.2.6.



  누구나 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하루를 지냅니다. 이야기가 없는 하루라면 무척 심심하거나 따분하기 마련입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예 하루 내내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한 채 지낼 수 있고, 이런 날은 내 삶에 무슨 뜻이나 보람이 있을까 하고 돌아보겠지요.


  삶이 있으면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하루가 흐르기에 이야기가 자랍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 나와야 이야기가 아닙니다. 멋지거나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거룩한 사람한테서만 엿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수하게 삶을 가꾸는 내 하루가 바로 나한테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여느 때에 읊는 말을 찬찬히 듣습니다. 어른들은 여느 때에 온갖 말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물려줍니다. 노래를 부르는 어른은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줍니다. 웃음꽃을 피우면서 말하는 어른은 아이한테 웃음꽃과 웃음말을 물려줍니다. 거친 말을 함부로 내쏘는 어른이라면 아이한테 거친 말을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 어느 날, 까치 한 마리가 (개) 진순이 밥그릇으로 포르르 날아오더니 진순이가 남긴 밥을 먹었습니다 … 진이는 마당 한구석에 미역국 그릇을 놓고, 까치가 앉아 있는 가죽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진아를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오늘 할아버지는 진아에게 뒤뜰에 마련한 작은 꽃밭을 선물로 주실 거랍니다  ..  (9, 22쪽)



  임혜령 님이 글을 쓰고 류재수 님이 그림을 그린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밤》(한림출판사,2012)을 읽습니다. 임혜령 님은 어릴 적부터 이녁 할아버지한테서 온갖 이야기밥을 받아먹었다고 합니다. 한겨레가 살아오면서 수수하게 도란도란 주고받은 옛이야기를 찬찬히 살펴서 그러모은 임석재 님은 손수 그러모은 이야기도 아이한테 들려주고, 스스로 재미나게 엮은 이야기도 아이한테 들려주었을 테지요. 이런 이야기도 듣고 저런 이야기도 들으면서 자란 임혜령 님한테 할아버지는 그냥 할아버지가 아닌 ‘이야기 할아버지’입니다. 임혜령 님은 어릴 적에 ‘이야기 아이’였을 테고, 이제는 씩씩하게 ‘이야기 어른’입니다.



.. “오늘 밤 연못에서 개구리 음악회가 열리거든요. 개구리들이 할아버지를 초대했으면 해서, 제가 대신 모시러 왔어요.” … 베짱이는 제 집에서 작은 베틀을 꺼내어 풀잎 위에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 위로 다리 하나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별빛들이 모여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합쳐졌습니다 … 베짱이는 별빛으로 날을 날고, 꽃빛으로 씨를 삼아 부지런히 베를 짰습니다. 베짱베짱 베틀이 분주히 움직일 때마다 베는 한 자 한 자 길어졌습니다 ..  (30, 48, 49쪽)



  아침저녁으로 서로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식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이랑 동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 집 나무’가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나무한테 조곤조곤 말을 겁니다. ‘우리 집 꽃’이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꽃한테 속닥속닥 말을 걸어요.


  우리 집에 찾아드는 벌이랑 나비랑 잠자리가 있으면, 이들한테도 말을 겁니다. 참새와 박새와 딱새한테도 말을 걸고, 제비와 까치와 까마귀한테도 말을 걸지요. 구름한테도 말을 겁니다. 빗물과 눈송이한테도 말을 겁니다. 모두 우리를 둘러싼 고운 이웃이에요.


  아이들은 자동차나 구름다리한테도 말을 걸 수 있어요. 우체통이나 전봇대한테도 말을 걸 만합니다. 집한테도 말을 걸고, 문과 숟가락한테도 말을 걸 만하지요.



.. “으스름 달밤에 모두 잠들었다. 모두 모두 나와서 놀아 보자.” 달맞이꽃들의 노래에 맞춰 다른 꽃들이 줄기를 가만가만 흔들어댔습니다. 점잖게 서 있던 나무들도 나뭇가지를 사그락사그락 흔들었습니다 ..  (82쪽)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자랍니다. 마음 가득 따스한 사랑을 담아서 이야기를 건네기에, 내 말을 듣는 이웃이 환하게 웃습니다. 마음이 넉넉하도록 고운 사랑을 실어서 이야기가 흐르기에,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이리하여 예부터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씁니다. ‘이야기꽃’이요 ‘이야기마당’이며 ‘이야기잔치’라 해요.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나면서 곱습니다. 이야기를 함께 누리는 너른 마당입니다.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잔치를 기쁘게 벌이는 셈입니다.


  이야기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이 자랍니다. 아이들한테 이야기밥을 물려주면서 어른도 튼튼하게 섭니다. 이야기노래를 듣는 아이들이 맑은 넋으로 거듭납니다.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빚어서 들려주는 어른도 밝은 숨결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8.5.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