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의 봄 눈높이 어린이 문고 10
이상교 지음 / 대교출판 / 1990년 11월
평점 :
품절




 ‘성교육’이란 ‘삶교육’
 [어린이책 읽는 삶 3] 이상교,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



 아이들한테 언제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성교육이란 삶교육이니까요. 성별이나 성교나 성기를 가르치는 성교육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살아내는 나날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깨닫도록 이끄는 삶교육입니다.


.. 이모는 아기 기저귀를 갈아채우고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니까.” “피잇! 아긴, 뭐, 여자들이 혼자 낳는 건가?” ..  (12쪽)


 무슨무슨 성교육 강좌를 굳이 들어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언제나 듣고 날마다 생각할 수 있게끔 ‘아이와 함께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이’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과 어머니가 하는 일을 말로가 아닌 몸으로 느끼도록 하고, 남자가 맡은 몫과 여자가 맡은 몫을 앎조각이 아닌 삶으로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나 남자이기 앞서 오롯이 목숨 하나 선물받은 사람인 줄을 느끼도록 하고, 사람이기 앞서 옹글게 숨을 쉬고 바람을 마시며 밥을 먹는 목숨붙이인 줄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하고 개구리하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구리는 개구리입니다. 사람하고 개구리는 똑같은 목숨붙이입니다. 누가 더 값있고 누가 더 값없지 않아요. 여자하고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훌륭하거나 거룩하거나 낫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얼굴이 못생긴 사람보다 멋지거나 좋거나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키가 크든 작든 똑같이 사람이고, 여자이거나 남자입니다.

 때로는 두 눈으로 앞을 보고, 때로는 한 눈으로 앞을 보며, 때로는 두 눈이 있으나 앞을 못 봅니다. 때로는 두 귀로 소리를 듣고, 때로는 한 귀로 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두 귀가 있으나 소리를 못 듣습니다. 태어날 적부터 한손을 못 쓰든, 자동차에 치여 한손을 못 쓰든, 그저 두 손을 두 손 그대로 잘 쓰든,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요 목숨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줄을 가르치면서 배우도록 하는 삶교육일 성교육입니다. 몇 살에 달거리를 하고, 몇 살에 아기씨가 나오며, 씨가 맺혀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가 하는 앎조각도 익혀야 한달 수 있는데, 이에 앞서 내 삶이 얼마나 고마운 목숨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보내는 나날은 어떻게 즐거우면서 값진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숨을 쉬는 고마움을 느낄 노릇입니다. 햇볕을 쬐는 기쁨을 누릴 노릇입니다. 밥을 먹는 즐거움을 맛볼 노릇입니다.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교육’이 달라질 테고, 삶교육이 달라지는 만큼 ‘성교육’ 또한 저절로 달라져요. 따로 어떤 강의나 강좌를 듣거나 책을 읽어야 제대로 익히는 성교육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추스르거나 돌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워지느냐 아름답지 못하느냐로 갈리는 성교육입니다.


.. 홍이는 그 뒤, 그 짓을 그만두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는 짓 말입니다. 여자 아이들이 놀잇감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스갯감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엄마와 여동생 지은이처럼 다른 여자들도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  (36쪽)


 《열두 살의 봄》(대교출판,1989)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쓴이 이상교 님은 ‘성 지식’을 한복판에 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둘레 동무나 어른하고 복닥이는 삶을 돌아보도록 하면서 천천히 받아들이는 ‘삶 이야기’로 ‘성 지식과 성별과 성교와 성기 이야기’를 알아차리도록 돕습니다. 섣불리 ‘하라 마라’ 하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낫거나 나쁘다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울까 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들려줍니다.


.. 엄마는, 엄마는 나를 낳을 때도 그렇게 많이 고생했다고 합니다. 이제 동생을 얻는 기쁨은 둘째입니다. 엄마만 전처럼 다시 건강하실 수 있다면 ..  (74쪽)


 어머니는 내 나이 다섯 살에도 어머니이고, 내 나이 열다섯 살에도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나 쉰다섯에도 어머니는 어머니입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나 서른다섯쯤 되면, 나도 누군가한테 어머니가 될 수 있겠지요. 나를 알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를 알며, 나 스스로 어머니나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삶을 알도록 하자는 ‘삶교육’인 ‘성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삶교육이란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교육이란 사랑교육이에요.

 삶을 어떻게 일구느냐를 돌아보도록 하기에 사람교육입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살피도록 하기에 사랑교육입니다. 사랑이 꽃피고 열매맺는 흐름을 일깨우도록 하기에 삶교육입니다.

 삶과 사람과 사랑이 맞물리는 자리를 슬기롭게 깨달아,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자라는 어린이가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펼치는 성교육이에요.


.. “어린아이가 무얼 안다고 때려요? 야단을 치거나 때린다고 버릇이 없어지진 않아요. 그렇게 되면 점점 어른 눈을 피해 버릇이 굳어지기 쉬울 뿐이지.” “그럼, 어떡해요? 남부끄러워서 이젠 친척 집에 데리고 가기도 꺼려지는 걸요.” ..  (122쪽)


 《열두 살의 봄》은 퍽 고마운 책입니다. 《열두 살의 봄》처럼 조곤조곤 삶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교육을 밝히는 책이라 할 만합니다.

 다만, 이 책 《열두 살의 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성별과 성교와 성기에 얽힌 앎조각’을 덧달 수밖에 없다고 하겠으나, 이러한 앎조각을 더 덜어낸다면 훨씬 넉넉하면서 따사롭게 삶과 사람과 사랑을 들여다보면서 보듬도록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저희 나이에 걸맞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는 삶을 보여주고, 집안일을 온통 여자한테 떠넘기는 삶이 아니라 서로서로 힘을 모아 즐거이 일구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다운 줄을 느끼도록 이야기꽃을 북돋아야지 싶습니다.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누릴 수 없던 슬픈 넋일 때에 저지릅니다. (4344.7.24.해.ㅎㄲㅅㄱ)


― 열두 살의 봄 (이상교 글,대교출판 펴냄,1989.1.4./5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낫짱은 할 수 있어 - 조선 아이 낫짱의 풍금 타기 대작전 보리피리 이야기 4
김송이 글, 홍영우 그림 / 보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도 조선도 남녘도 북녘도 같은 사람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77] 김송이,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



- 책이름 : 낫짱은 할 수 있어
- 글 : 김송이
- 그림 : 홍영우
- 펴낸곳 : 보리 (2008.3.10.)
- 책값 : 9500원


 (1) 누가 한국사람인가


 아이를 태우는 수레를 달고 읍내로 마실을 다닙니다. 우체국이나 읍사무소나 가게 앞에 서려면 턱을 낮춘 거님길 자리로 들어서면서 건물 옆이나 한 귀퉁이에 세웁니다. 자전거를 세우는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알아서(?) 자전거 세울 자리를 찾아야 하고, 알아서(?) 자물쇠를 채우든 해야 합니다.

 어제 낮, 한낮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읍내로 나와 자전거를 세울 즈음,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자동차 하나가 자전거 앞으로 먼저 끼어들어 거님길 턱 없는 데로 들어서더니 자동차가 못 들어서도록 굵직한 돌을 박은 앞까지 끼익 하고 차를 댑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은행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리하여 자전거는 찻길에 뻘쭘히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맙니다. 자동차를 몰던 사람을 불러 자동차가 올라서면 안 되는 곳에 올라온 데다가 자전거가 가야 하는 길을 꽉 막아섰으니 뒤로 빼라고 이야기하지만 들은 척하지 않습니다. 자전거가 못 지나가든 아기수레가 지나갈 수 없든 바퀴걸상이 오갈 수 없든 아랑곳할 까닭이 없다는 몸짓이며 말투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어김없이 한국사람일 테지요. 읍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아주 뜸한 시골 읍내에서, 좁은 두찻길이 아닌 널따란 여섯찻길인데, 길가에 얌전히 자동차를 세우고 은행 볼일을 보면 될 텐데, 딱지를 뗄 교통순경조차 없는 이 시골자락에서 애써 거님길에다가 자동차를 올려놓으며 사람도 자전거도 아기수레도 바퀴걸상도 꼼짝을 못하도록 하면서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은행으로 그냥 들어가는 이런 사람 또한 틀림없이 한국사람이겠지요.


.. 개구쟁이들 대장 노릇 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잘난 건 제 아빠지 저도 아니면서……. 흥! … “흥, 멍텅구리가 또 뭐라는 거야! 뭐, 조선사람이 있을 데가 아니라구? 너야말로 조용히 해. 이럴 시간 있으면 네 공주병이나 어떻게 해 봐!” 그래 놓고는 입속말로 “사바사바.” 하고 불렀더니 저도 모르게 “후훗.” 웃음이 나왔다. “너, 너, 조센진 주제에 어디서 거들먹거리는 거야!” ‘사바사바 공주’ 아베가 목 비틀린 오리마냥 꽥 소리냈다. 쳇, 조선사람이 뭘 어쨌다는 거야? ..  (10, 48쪽)


 읍내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자동차 열 대 가운데 아홉 대는 얌전하면서 조용히 자전거 옆으로 퍽 에돌아 지나갑니다. 때로는 자전거 뒤에서 뒷차가 섣불리 앞질러 두찻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게끔 지켜 주기도 합니다. 말없이 도와주고 말없이 살피는 ‘열 가운데 아홉’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열 가운데 한 사람은 난데없이 빵빵 하고 울리며 놀래킵니다. 수레에 앉은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깜짝 놀란 아이가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밖에 없습니다. 아이하고 도시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아이는 이 시끄러운 소리를 날마다 숱하게 들었을 테니, 아이가 고운 마음결에 고운 목소리로 지내기는 꽤 벅찬 노릇이었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자동차에서는 그냥 손을 슥 얹어서 빵 하고 울리겠지만, 오르막에서 낑낑대는 자전거를 모는 사람이나 수레에 앉은 아이는 그저 놀랄 뿐입니다.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기 싫기 때문에 빵빵 울립니다. 자전거는 늘 길가에 붙어서 달리는데, 빵빵 울리는 자동차는 더 길가에 붙거나 멈추라는 뜻으로 빵빵 울립니다. 도시 한복판처럼 자동차가 많다면 모르되, 아니 도시 한복판에서는 자동차가 많으니 자전거가 옆에 있어도 자전거가 더 빨리 다니곤 합니다. 자동차가 거의 없어 2∼3분에 한 대 지나갈까 말까 하는 시골길에서 굳이 빵빵 울리면서 놀래키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거나 길에서 걷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자동차를 똑바로 마주보면서 빵빵 울리는 소리를 들어도 놀라지만, 뒤에서 갑자기 울리는 빵빵 소리를 들으면 훨씬 크게 놀랍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전거나 걷는이를 놀래키는 사람도 바로 한국사람입니다. 한겨레입니다.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서 한국말을 함께 쓰고 한국글을 함께 읽는 한겨레붙이입니다.


.. “그럼,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인데. 아이보개, 설거지, 장보기, 특활……. 얼마나 많다고!” “우와, 그 많은 일을 다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없는 시간을 내서 우리 반 일을 도우려면, 그만 한 용기와 결의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걸 얄미운 애한테 줄 수는 없어. 알겠지?” … 이시하라한테 떵떵 큰소리쳤지만 마음을 갈기갈기 찢긴 것은 낫짱 자신이다.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숙제를 자꾸 까먹으니까, 저런 돼먹지 못한 애한테 이런 일을 당한다 싶었다. 낫짱은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  (22, 132쪽)


 착한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모진 이웃도 한국사람입니다. 참삶을 찾아 바른길을 헤아리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더 많은 돈을 바라며 더 높은 이름값을 좇는 동무도 한국사람입니다.

 진보나 보수로 나뉘건, ㅎ당이나 ㅁ당으로 갈리건, 저마다 한국사람입니다. ㅈ신문을 읽건 ㅎ신문을 읽건 너나없이 한국사람입니다. 20억짜리 아파트에서 살든 일곱 평짜리 작은 골목집에서 살든 모두 한국사람입니다. 커다란 가게에서 일하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장사를 하든 누구나 한국사람입니다. 쌀집에서 자전거로 쌀푸대를 나르든 5톤 짐차로 무거운 짐을 나르든 서로서로 한국사람입니다.

 대통령이든 청소 일꾼이든 서로 아름다운 한국사람입니다. 한진중공업 일꾼이든 시골 논밭 일꾼이든 모두 사랑스러운 한국사람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집에서 쉬는 사람이든 날마다 끝없는 집일에 복닥이는 살림꾼이든 다 함께 좋은 한국사람입니다.


.. “사람이 살면서 그걸 죄다 차지하는 건 불가능해. 어느 하나밖에 가질 수 없어. 그렇다면 낫짱은 어느 걸 가지고 싶어할까? 마음의 행복일까?” ..  (104쪽)


 북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머리에 뿔이 났을 수 없습니다. 터무니없는 막개발을 밀어붙이면서 남녘땅 물줄기를 까뒤집는 사람이라서 엉덩이에 뿔이 나지 않습니다.

 이웃을 등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돕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을 들볶거나 괴롭히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말뜻을 곱게 새기면서 마음동무로 지내려고 애쓰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졸업장을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를 따지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가방끈 아닌 맑은 넋이나 밝은 얼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아닌 마음결이나 생각밭을 살피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은행계좌나 자동차 크기가 아닌 손길이나 눈길을 곱다시 여미는 사람도 한국사람이에요.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 똑같이 이 땅에서 한겨레붙이로 살아간다지만,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한국사람답다 할 만한 사람인지부터 잘 모르겠습니다. 내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한국사람다이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리면서 지내는 사람인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모두 한겨레붙이고, 고운 목숨이며, 사랑스러운 사람인 한편, 어버이한테서 선물받은 사랑씨입니다만,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2)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사람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자이니치’라 말한답니다. 한자로 적으면 ‘在日’이고, 한겨레붙이는 ‘재일’이나 ‘재일조선인’이나 ‘재일한국인’이라 말합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곰곰이 돌아보면 ‘일본땅 한겨레’입니다. 《낫짱은 할 수 있어》(보리,2008)는 일본땅 한겨레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어린 날 어떠한 터전에서 어떠한 동무와 어른을 마주하면서 보냈는가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찬찬히 읽으면서 살갗으로 받아들일 만한 ‘다른 삶터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 안쓰러운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낫짱은 일부러 핀잔을 주었다. “집은…… 아빠가 술 먹고 난리라서 싫어.” “집에 아빠만 계셔?” “응.” “엄마는 어디 가셨어?” “아빠하고 싸워서…… 집 나갔어.” “또?” ..  (12쪽)


 일본에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가리라 느낍니다. 일본에서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넉넉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리라 느껴요. 일본에서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푸대접을 안 받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에서 막대접을 받으며 괴로운 사람이 한국에서라고 두 다리 쭉 뻗으며 좋은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기 어렵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착하게 일구는 삶을 사랑하겠지요.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면서 다른 좋은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겠지요. 곱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한국에서건 일본에서건 고운 꿈을 건사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품는 고운 꿈을 북돋우려고 힘쓸 테고요.

 그런데, 한국이고 일본이고 착하거나 참답거나 곱게 살아가는 사람을 괴롭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사람한테 돈을 받으면서 권력을 거머쥐는 사람입니다.


.. ‘전쟁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구나. 고모도 전쟁통에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아이들과 헤어져서 살아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 일본땅에 살면서 저희와 맞서는 건 일본사람뿐인 줄 알았는데, 조선사람끼리도 이렇게 맞서 싸우고 미워하는 일이 생긴다는 게 슬펐다 ..  (99, 145쪽)


 돈을 벌어야 살아남겠지요. 힘이 있어야 짓밟히지 않겠지요. 그러나, 돈을 번다고 살아남지 않습니다. 벌어들인 돈으로 밥을 사거나 집을 사거나 옷을 사야 살아남습니다. 그러니까, 돈벌이에 앞서 밥과 집과 옷을 어떻게 마련하거나 건사하느냐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 남한테 짓밟히지 않는다고 하기 앞서 힘이 없는 내가 내 이웃이나 동무하고 얼마나 손을 맞잡으며 서로 토닥이거나 아끼는가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돈이 많아서 이웃돕기를 하지 않습니다.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이 거지한테 다달이 백만 원씩 내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거지는 돈을 10억 거머쥔 사람한테서 다달이 백만 원씩 받으면서 먹고살지 않습니다. 거지만큼 힘든 살림은 아니지만, 퍽 팍팍한 살림으로 힘겨운 사람들이 백 원 천 원 보태는 돈을 고맙게 받으면서 먹고삽니다.

 커다란 삽차가 한두 번 뜨면 구덩이를 쉽게 파겠지요. 그런데 커다란 삽차를 불러서 땅을 파려면 돈을 얼마나 많이 들여야 하나요. 더디 걸리며 힘들다지만, 여럿이 서로 도우면서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면서 흘리는 땀으로 구덩이 하나를 팝니다. 밥 한 술씩 서로 나누어 뜨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밥 한 그릇을 따로 사서 선물할 수 있도록 돈을 벌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시면서 같이 웃고 우는 이웃입니다. 물 한 병 따로 사서 내밀 수 있도록 돈을 모아야 하지는 않아요.


.. 엄마는 우는 딸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낫짱이 기악부에 든다고 떼를 썼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낫짱한테 어떤 해코지도 당해 낼 수 있겠느냐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겠노라고 약속했으니 제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응원만 보내는 것이다. 기껏 종이에 인쇄한 가짜 건반이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다. 낫짱은 가슴이 아파서 울었다. 패거리들 노릇이 너무 치사하고 의뭉스러워서 울었다 … 말로 욕하고, 눈으로 깔보고, 온몸으로 해코지하는 것은 상대해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음흉하게 남의 보물을 훔쳐 없애는 짓은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싸울 수도 없다. 비겁하다 … ‘미요시 선생님, 정말 너무해!’낫짱은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빠졌다. 선생님들이야 해마다 찍는 사진이어서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낫짱한테는 평생 딱 한 장밖에 없는 사진이다. 다시는, 다시는 없는 기회다 ..  (109∼110, 148쪽)


 이야기책 《낫짱은 할 수 있어》는 이야기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고, 할 만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낫짱 삶을 이야기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낫짱 삶자락을 들려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만하지 않은 일은 서로를 미워하거나 들볶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서로를 못미더워 하거나 못마땅히 여기는 일입니다.

 나뭇잎에 드리우는 햇살을 사랑하고,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아끼며, 나무가 뿌리박은 흙을 고마이 여기는 삶입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목숨인 내 하루입니다.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밥을 먹습니다. 한국사람도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똥을 눕니다.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한국사람도 갓난쟁이로 태어나 씩씩하게 커서 주름살이 늘다가는 곱게 숨을 거둡니다.

 권력을 거머쥐어도 백 살 무렵이 되면 힘을 잃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돈이 넘쳐도 혼자 다 쓰지 못한 채 고스란히 남기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밥은 한 그릇을 먹으면 배부르지, 열 그릇이나 서른 그릇을 먹어야 배부르지 않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낫짱은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낫짱은 사랑을 하고 꿈을 꾸며 보낸 지난날을 뒤돌아보면서 글을 한 줄 남길 수 있습니다. (4344.7.1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협 -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
이진희 지음, 이규수 옮김 / 삼인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멀지 않은 뒷날, 아이가 어른이 될 무렵
 [푸른책과 함께 살기 83] 이진희,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 책이름 :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
- 글 : 이진희
- 옮긴이 : 이규수
- 펴낸곳 : 삼인 (2003.9.20.)
- 책값 : 15000원


 (1) 아이와 살아가는 하루


 아이하고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짧으면서 깁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일을 도맡으면서 아이하고 부대끼다 보면, 하루란 참 금세 기웁니다. 이 하루 내내 지치지 않고 뛰놀고파 하는 아이랑 부대끼는 만큼, 하루란 참 길디깁니다.

 새벽 다섯 시에 잠에서 깨든, 아침 열 시에 잠에서 깨든, 아이는 언제나 잠에서 깬 때부터 놀자고 조잘조잘댑니다. 네 살 아이는 아직 시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수 있겠지요. 눈을 번쩍 떴으니 다시 잠들기 힘들어 이러할 수 있겠지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 아이랑 복닥이면서 아침을 보내며 둘째 오줌기저귀를 빨고 옆지기 미역국을 끓이고 난 다음, 밥을 하느라 미처 헹구지 못한 빨래를 마저 하고, 이동안 새로 나온 빨래를 더 한 다음 설거지를 하고 방바닥을 비질합니다. 몇 시쯤 되었을까 헤아리지만 시계를 들여다볼 겨를 없이 몰아치다가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때는 열두 시 이십 분.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어 첫째 아이가 이렇게 떠들건 저렇게 안기건 아랑곳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둘째 갓난쟁이 옆에 털푸덕 눕습니다. 첫째는 어느새 아버지 곁으로 달라붙으며 조잘조잘댑니다. 그림책 하나 읽고 싶기도 하지만, 이럴 기운이 없습니다. 끄응 하고 일어나서 아이 이불을 바닥에 펼친 뒤 아이한테 여기에 누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얌전히 눕습니다. 틀림없이 졸립기 때문입니다. 새벽 일찍 깨어 논 뒤 밥을 먹을 때부터 졸린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살살 부채질을 하며 아버지는 까무룩 잠이 듭니다. 얼마쯤 지난 뒤인지 모르겠는데 문득 눈을 뜨니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잠들었습니다. 부채를 살살 흔듭니다. 땀 맺힌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한동안 이렇게 부채질을 살살 하면서 부디 깊이 낮잠을 자라고 마음속으로 빕니다.


.. 해방 후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에 잔류하게 된 데는 남한 정국이 불안했다는 이유도 작용했겠지만, 귀국자 한 사람에게 1천 엔의 지참금만을 허용한다는 비인도적인 처우가 더욱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 돈으로는 부산에 내려 당장 숙식을 해결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 (일본 정부로) 몰수된 조선인연맹 학교의 재산은 일본 전국적으로 막대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점령군을 방패 삼아 이런 조치를 강행하였지만, 결과는 오히려 재일조선인의 반미·반일 감정을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 일본이 낙랑 유적에 그토록 고집한 것은 한나라의 침략에 의해 토착 사회가 발전했다는 궤변이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 지배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 조선고등학교에서는 2학년이 되면 반드시 자포자기하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성실하게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취직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고,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들에게 공통적이었던 것은 부모 세대 재일교포들의 쓰라린 역사를 모를 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미래 또한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  (17, 24, 90, 110쪽)


 팔월에 태어난 첫째는 두 달 뒤에 석 돌을 채웁니다. 석 돌을 채우면 이때부터 다섯 살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셈입니다. 아이하고 살아온 나날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바깥으로 나온 때부터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머니 뱃속에 조그마한 목숨씨로 깃들 때부터라고 느낍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조그마한 목숨씨로 새근새근 잠들던 나날부터 우리 집은 세 식구였고, 둘째를 바라볼 때에도 똑같습니다.

 첫째가 벌써 이만큼 컸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복닥였는데 이렇게 자라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켜보면 ‘아이가 얼마나 크는가’를 잘 모른다 하지만,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지켜보기 때문에 ‘아이가 날마다 얼마나 씩씩하게 새로 거듭나면서 크는가’를 환하게 느낍니다. 어제 아이를 안고 오늘 아이를 안을 때에 느낌이 다릅니다. 아이 머리를 감길 때에 고개를 숙이라 하면서 감길 수 있으나 부러 무릎에 누여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감깁니다. 이렇게 머리를 감기노라면 아이 키가 어느 만큼 컸고, 아이 몸무게가 어느 만큼 늘었는지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제 첫째는 머리를 받치지 않아도 스스로 머리를 잘 가누어, 머리감기기 할 때에 그닥 힘들지 않아요. 몸무게가 꽤 나가서 버거울 뿐입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 때면, 첫째는 부리나케 좇아나옵니다. 통에 든 빨래집게를 제가 꺼내어 건네겠다고 나섭니다. 아버지는 기저귀만 빨랫줄에 걸치고는 기다립니다. 아이는 한손에 하나씩 쥐고는 “자!” 하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응.” 하고 대꾸하거나 “네,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똑같은 빛깔인 빨래집게를 들고 오기도 하다가는, 다른 빛깔인 빨래집게를 들고 오기도 합니다. 한손에 하나씩 쥔 채 딱딱 벌렸다 오므렸다 놀면서 가지고 옵니다.

 사진을 찍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요즈막에는 기저귀를 널며 목에 사진기를 겁니다. 아이가 빨래집게를 들고 달려올 때에 얼른 사진기를 쥐어 찰칵 하고 찍습니다.

 집에서 첫째가 둘째를 귀여워 하는 모습을 보면 잽싸게 사진기를 쥐어들어 찰칵 하고 찍습니다. 심심해 하며 홀로 책을 펼쳐 읽는다든지, 둘째 겉싸개를 뒤집어쓰고 논다든지, 아버지는 넌지시 알아채어 살그머니 사진으로 담습니다.


.. (한국전쟁) 뉴스 필름은 B-29 폭격기가 도시와 민가에 화염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을 생생히 전해 주었고, 보기만 해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가 등장하고 바주카포가 북한 탱크를 파괴하는 데 뛰어난 화력을 발휘한 것도 그무렵이었다. 나는 민간인을 포함한 대량 살육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필름에서는 미군이 북한군을 섬멸하고 있다고 설명하였지만, 공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은 평양과 신의주 등 도시만이 아니었다. 북한 탱크가 숨겨져 있다며 한국(남녘)의 초가 농가에도 폭탄을 투하했기 때문이었다 … 1950년부터 4년 동안의 일본의 전쟁 특수 경기는 24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1957년까지는 45억 달러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일본은 메이지 이후 조선 침략과 식민지 지배, 중국 침략으로 시작된 아시아 여러 국가에 대한 전쟁 책임을 애매하게 한 채 미국의 반공 정책에 가담함으로써 경제 부흥의 길을 걷게 되었다 … 미군은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를 투입하였고, 최신 살인 병기의 성능을 확인하는 실험장으로 삼았다 … 1965년 말에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은 18만 명에 달했다. 미국은 남베트남을 잃으면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가 차례로 공산화된다는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동맹국의 참전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부패 정권이라도 반공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 지원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변하지 않는 정책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요청’에 부응하여 한국군 파견을 강행하였다. 파병 군인은 1973년까지 연 40만 명에 이르렀고, ‘베트남 특수’로 사회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 하지만 수많은 인명 희생을 부른 해외 전쟁에 군대를 보내 타민족을 무력으로 억압했다는 씻을 수 없는 오점을 우리 역사에 남겼다 ..  (39∼40, 63, 131쪽)


 사진을 찍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이 사진을 보노라면 첫째가 처음 태어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가를 읽을 만합니다. 날마다 한 장만 찍었다 하더라도 석 돌까지 천 장을 찍는 셈이라 하겠으나, 첫째 아이 사진은 날마다 서른 장 남짓 찍었으니까, 석 돌이 된다면 삼만 장을 넘겠지요.

 사진을 찍는 아버지로서, 그동안 아이를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사진을 보며 지난 삶을 가만히 되새길 수 있기도 하지만, 사진으로만 모든 이야기를 알 수는 없습니다. 사진을 찍기 앞서와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사진을 찍을 때까지, 사진에 찍히지 않은 하루, ……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는 숱하게 많습니다.

 글을 쓰는 아버지로서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을 글로 날마다 신나게 적바림한달지라도, 아이하고 보내는 모든 이야기를 글로 옮기지 못합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아이가 뒷날 어른이 될 무렵, 아이가 보낸 갓난쟁이일 때하고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이런 어린 나날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며 들려주어야 좋을까 곱씹습니다. 아이한테는 무슨 이야기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가 있거나 기쁨이 되거나 웃음꽃이나 눈물나무가 될는지 헤아립니다.


.. 선명하게 남은 손목 안쪽의 상처를 보자 마음이 얼어붙었다. 북한이 내건 ‘주체 사상’은 평등과 인간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혁명 동지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전화 도청 사건’과 이종수 사건에서처럼 민족교육에 대한 꿈이나 이상과는 달리 비열한 방법으로 동료에게 ‘적’의 딱지를 붙이려고 획책하였다 … 남한 출신의 이종수가 북한을 지지하고 김일성이 내건 사회주의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은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따뜻한 사회,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으로 ‘추방’된 그는 10여 년 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편지 한 통 보낼 수 없었다 … 마오쩌둥의 서거를 알고 나서 위대한 지도자도 독재자도 언젠가는 죽고 만다는 감회에 잠겼다. 슬픔보다는 오히려 안도의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1966년에 그의 주도로 시작된 ‘문화대혁명’이 10년간에 걸쳐 류사오치와 펑더화이 등 노혁명가를 비롯해 많은 지식인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 마오쩌둥이 고난의 투쟁을 통해 중국 민중을 제국주의자로부터 해방시킨 업적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권력의 자리에 앉고 나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똑같이 과거의 혁명 동지를 숙청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조차 짓밟아 버렸다 ..  (165∼166, 229쪽)


 날짜와 시간에 따라, 이날 이때에는 무얼 했다고 적으면 좋을까요. 아이가 읊는 말을 모두 적을까요. 날마다 사진 한 장에 글 하나를 붙이면 좋을까요. 어버이가 바라보는 아이일 때하고, 아이가 바라보는 어버이일 때에는, 삶이 얼마나 달라 보일까요.

 아이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 온누리에 무슨 일이 터졌는가를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 그러모으면 뜻이 있으려나요. 뒷날 아이 스스로 읽을 만한 좋다 싶은 책을 차근차근 갈무리하면 기쁘려나요.

 한 시 무렵에 잠든 듯한 아이가 일어나면, 쉬를 한 번 누이고 옷을 챙겨 입혀, 금왕읍 장마당에 다녀올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는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아버지는 예순터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낑낑거려야 하겠지요. 긴 장마 사이 살짝 비가 멎은 오늘 하루, 푸성귀를 장만하려고 바지런히 마실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수레에 탄 채 길을 나서면 수레에서 종알종알 떠들거나 노래를 합니다. 음성읍으로 갈 때에는 오가는 자동차가 적어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금왕읍으로 갈 때에는 오가는 자동차가 많아 “빠방이가 시끄러워!” 하고 빽 외칩니다.

 아이는 늘 느끼는 그대로 몸으로 드러내어 살아갑니다. 아이 못지않게 어버이 또한 언제나 느끼는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여 살아갑니다. 좋은 바람을 쐬고 좋은 햇볕을 맞으면 좋은 하루라 여기며 고맙게 살고, 후덥지근한 바람을 안고 찌뿌둥한 하늘을 바라보면 고단한 하루라 헤아리며 고맙게 삽니다. 어느 하루 고맙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어느 하루 반갑지 않은 날이 없어요.


.. 국경선상에 멈춰선 지 10여 분.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강폭은 200미터에 불과하고 상류로 올라가면서 더욱 좁아진다. 국경은 간단히 건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계로 언어와 풍습, 습관이 완전히 다른 민족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영토가 대륙에 이어져 있는 한반도가 민족으로서의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굴욕의 역사는 이를 덮음으로써 자국의 긍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교훈으로서 냉정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 국가와 민족의 차이를 넘어서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역사 교육이야말로 인류의 미래에 기대를 거는 교육이 아닌가! ..  (313, 321, 325쪽)


 바야흐로 석 돌을 꽉 채울 첫째는 이제 빨래 개는 솜씨가 많이 늘었습니다. 빨래 개기는 두 돌이 채 안 되었을 때부터 시늉으로 했지만, 엊그제부터 곁에서 아버지가 거들지 않아도 퍽 말끔히 갭니다. 몇 달 앞서부터 혼자서 옷을 벗고 입고 잘 해냅니다. 이 옷 입었다가 벗고 저 옷 입었다가 벗고 하는 놀이를 꽤나 즐깁니다. 처음 단추꿰기를 해내던 날에는 하루 내내 온갖 옷에 붙은 단추를 꿰다가 풀다가 하며 놀았어요. 아이 손은 하루가 다르게 야물어지고, 아이 몸은 하루가 새롭게 튼튼해집니다. 아이 눈은 하루가 다르게 빛날 테며, 아이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거나 넓어지겠지요.

 이 아이가 어린이집이라든지 유아원이라든지 유치원 같은 데에 다녔다면, 아이는 꽤 어린 나이인데에도 뭔가를 알거나 깨치거나 누리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새벽부터 밤까지 부대끼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목숨과 삶을 느끼면서 어버이가 누리는 목숨과 삶을 아이한테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버이가 밥상 앞에 앉는 매무새대로 아이도 밥상 앞에 앉습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어떻게 하고 청소를 어찌하느냐에 따라 아이도 이러한 집일을 익힙니다. 어버이가 자가용을 모는지 두 다리로 걷는지 자전거를 타는지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즐길 탈거리가 달라집니다.

 어버이가 텃밭을 일구면서 푸성귀를 거두면, 아이는 일찍부터 텃밭 호미질에 익숙합니다. 어버이가 꽃밭을 가꾸면서 푸나무를 돌보면, 아이는 어린 날부터 꽃밭 푸나무를 아낄 줄 압니다.


 (2) 내가 사랑하는 하루


 《해협, 한 재일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을 읽습니다. 재일사학자인 이진희 님은 당신 아이한테 당신이 살아온 나날을 들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한겨레붙이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 삶이 어떠한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어디에서든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며 이러한 책을 썼겠구나 싶습니다.

 《해협》은 역사책이나 기록이라는 테두리에서 쓴 책이 아닙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손길로 어루만지는 어버이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이런 역사를 알거나 저런 발자국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주절주절 읊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 너희 어버이는 어떠한 살림을 꾸리며 어떠한 생각을 품었고, 저런 일을 겪는 동안 너희 어버이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길을 걸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옳은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며 옳은 길을 걸었든, 젊을 적에는 옳은 줄 알았으나 나중에 돌아보니 철없이 잘못 길을 걸었든, 스스럼없이 하나하나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잘 한 일만 보여주려는 이야가기 아닙니다. 기쁜 일만 드러내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웃은 일과 운 일, 기쁜 일과 슬픈 일, 벅찬 일과 아픈 일을 골고루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삶에는 눈물과 함께 웃음이 있고, 웃음과 함께 눈물이 있거든요. 삶에는 오르막과 함께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과 함께 오르막이 있거든요.


..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는 영어를 배워 미국을 잘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았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미 군정청이 일제의 앞잡이였던 관료와 경찰관을 일제 때보다 더 높은 자리에 등용함으로써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것이다 … 훗날 안 일이지만 조선고등학교에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에서 두 명의 형사가 시골집에 들이닥쳐 나에 관한 모든 물건들을 압수해 갔다. 아버지는 ‘좌익’에 물든 아들 문제로 치안 당국에 자주 출두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에는 ‘연좌법’ 때문에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동생도 감시는 물론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당국의 방해 공작은 계속 이어져 시골집 논밭만이 아니라 조상 전래의 가옥까지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6년이나 지난 1981년 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였다 … 한국에서는 1978년 6월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노려 관변 단체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9대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 모든 권력을 한손에 쥔 박정희는 ‘개발 독재’를 보다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가뿐만 아니라 학생과 지식인의 저항도 날로 높아졌다 … 메이지 정부는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과 사할린 남부를 빼앗고, 동청철도와 다롄, 뤼순의 조차권 등을 획득했다. 일본의 많은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구미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또 수많은 ‘영웅’과 ‘전쟁 미담’을 만들어 ‘일본의 긍지’를 널리 선전하기도 했다 … 부상자의 전후는 참혹하여 ‘폐병(廢兵)’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더욱이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와 같다”고 할 정도로 무거운 세금이 국민들에게 전가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러일전쟁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민중의 목소리는 압살되고 말았다. 일본은 이 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군비 확장에 매달렸다 ..  (13, 85∼86, 243, 323∼324쪽)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오면 땀을 몇 바가지 쏟습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얼굴이 벌개집니다. 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오르막은 길디길다고 느끼고, 내리막은 짧디짧다고 느낍니다. 이 긴 언덕을 오르고 나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내리막은 참으로 짧구나 싶지만, 이렇게 바람을 쐬면서 길디긴 언덕을 오르며 쏟은 땀을 모두 씻거나 텁니다.

 앞으로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달리는 동안 생각합니다. 수레에 앉은 아이 눈높이에서는 아버지가 어떻게 보이고, 시골길을 오가는 자동차는 어떻게 보일까 하고.

 수레에 탄 아이는 자동차가 곁을 스치고 달릴 때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자동차 소리는 시끄럽다고 느끼지만, 수레에 앉는 나즈막한 높이에서 헤아리자면 훨씬 무서우면서 시끄럽겠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이러한 줄을 모르겠지요. 생각을 안 하겠지요. 언덕을 낑낑거리며 오르느라 손잡이나 몸에 힘이 빠져 비틀비틀 할 때에 뒤에서 빵빵거리지 않고 빠르기를 줄이면서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달리는 자동차는 그리 안 많습니다. 열 대가 지나가면 여섯 대는 아슬아슬하게 붙으며 씽 하고 바람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시끄럽게 빵빵 울리고 지나가기까지 합니다. 도심지에서라면 모르되, 시골길에서 규정속도를 훨씬 넘기며 달리는 자동차들이 아이를 태운 자전거수레한테 살가이 마음을 쓰기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들 자동차에 아이를 태웠다면? 아이를 자동차에 태워 달리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운 자전거를 바라볼 때에도 아슬아슬 무시무시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가도 좋을까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나온 만화나 영화를 보면 중·고등학교 여학생이 짧은치마를 입고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아주 흔히 자주 봅니다. 일본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모습을 만화나 영화로 살피면 으레 자전거에 아기걸상을 마련해서 태우고 다니기 마련입니다.

 한국에서도 장바구니에 먹을거리를 잔뜩 싣고 앞뒤로 아이를 하나씩 태운 채 다니는 아주머니를 가끔 보곤 합니다. 그렇지만, 가끔 볼 뿐, 으레 어디에서나 보지는 못합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는 어버이 가운데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맡긴 다음,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는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갓난쟁이일 때부터 ‘자동차 타기’에 길들거나 익숙한 삶이 된다고 느낍니다.


.. 이해에 읽은 몇몇 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와나미쇼텐이 간행한 하타다 타카시의 《조선사》는 그 중 한 권이다. 바로 전 해인 1951년에 출판됐는데 내가 읽기 시작한 것은 신학기가 시작된 4월인가 5월부터였다. 아오야마 교수가 강의에서 소개하여 곧바로 구입하여 자세히 읽었다. 조선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 것은 한국에 대한 하타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 공부한 것을 고토 교수 앞에서 피력했지만 단지 허울만 그럴듯했을 뿐 내용은 부실했다. 말뿐인 ‘진보적 해석’에 대해 고토 교수는 ‘주관적인 생각만으로는 학문이 될 수 없다’고 냉정히 비판하였다 … 야나기 무네요시가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우리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극심한 지배를 받고 있던 1922년이었다. 해방 전에 이처럼 용기 있는 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는 8·15 해방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었다 … 마음이 깨끗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 글이 발표되었을 때 일본의 지식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야나기의 맑은 눈과 깊은 사상에 감동한 것이다. 나는 야나기를 생각하면서 (석굴암) 동굴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본존불의 바로 뒤에 있는 십일면관음상 앞에 섰을 때 그만 두 다리가 멈춰 버렸다. 풍만한 육체에 얇은 천의를 걸친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자비에 가득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 한국을 이해하는 하타다와 같은 일본 지식인이 스무 명만 있었다면 일본인의 한국관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  (55, 62, 75∼76, 278, 297쪽)


 《해협》을 쓴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은 어떤 삶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해협》을 쓴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이 낳아 함께 살아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는 저마다 어떤 삶을 일구는가 헤아려 봅니다. 멀리 살피기 앞서, 내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나부터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지를 돌아봅니다. 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좋아할는지를 곱씹습니다.

 보금자리는 어디에서 마련하고, 일자리는 어떻게 맞아들이며, 마음이 맞는 짝꿍은 어떻게 사귀려는지 생각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차려서 어디에서 어떻게 즐기려는지를 헤아리고, 고맙게 즐긴 밥으로 얻은 기운으로는 무슨 꿈을 펼치는 어떤 일을 붙잡을는지를 곱씹습니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을까요. 어버이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면 아이들도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려 할까요.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고자 할까요. 어버이가 이웃하고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고자 한다면 아이들도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까요.

 참다운 사람으로 씩씩한 나날을 누리려 할까요. 어버이 스스로 참다운 사람길을 찾으려 하면 아이들도 참다운 사람길을 찾으려 할까요.


.. 첫 귀국선이 출항한 1959년 말부터 귀국자들은 트럭과 기계류를 가지고 돌아갔지만, 상공인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무슨 기념일에는 조선의 문화재를 구입하여 보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 슬픈 일이지만 러일전쟁 때 개성 주변의 고려 왕릉과 귀족 묘가 파헤쳐져 고려청자 등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개성의 고려 고분에서 도굴당한 고려청자를 당시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에게 헌상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신라와 가야 고분에서의 도굴품,그리고 수많은 석불·석탑·석인이 골동품업자를 통해 반출되었다. 예를 들면 도쿄의 오쿠라집고관에는 평남 대동군 율리사 고려팔각오층탑과 경기도 이천의 정토사에서 가져간 고려오층탑이 있다. 또 네즈미술관에는 고려 귀족의 묘지에서 가져간 석인과 석수 일식이 있고, 석탑과 불상 등이 정원에 진열되어 있다 … 공주에 체재한 시간은 짧았지만 오랜 기간의 의문을 씻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하지만 시내에는 5∼6층의 건물이 여기저기에 세워지고 있었다. 무모한 재개발을 막지 않으면 지하 2미터에 묻힌 옛 도읍의 유적은 영원히 파괴될 것 같아 몹시 걱정되었다 … 임진왜란의 격전지 진주성을 방문했다. 논개가 왜의 장수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성 안에 있던 많은 민가를 밖으로 옮기고 공원으로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안 단구와 강을 이용한 다소 기복이 있는 성이지만, 외적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도 빈역한 규모와 구조였다. 성벽 위의 총구멍 설비를 보고서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당시 조선군은 철포가 없었기 때문에 고전했는데, 총구멍을 설치한 것은 해방 후로, 복원에서 시대 고증을 무시하는 일은 역사의 날조와 연결되는 법이다 ..  (116∼117, 266, 271쪽)


 재일사학자 이진희 님은 당신 삶을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거나 뽐내거나 으스대려고 글을 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무슨 반성문이나 참회록을 쓰는 마음이 아니요, 회고록이나 자서전처럼 되는 책을 내려고 글을 썼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고마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선물받은 목숨을 하루하루 알뜰히 사랑하면서 보냈기에, 이렇게 보낸 기쁜 나날을 찬찬히 적바림하면서 당신 아이들 또한 당신 아이들 나름대로 하루하루 알뜰히 사랑할 나날을 보내기를 비손하듯이 글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여느 어버이가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기뻐하는 일이나, 《해협》이라는 책이나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더 빼어난 사진기를 갖추어 아이들 모습을 찍어야 어여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스티커사진을 찍어도 얼마든지 어여쁘거나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납니다. 1회용 사진기를 써도 애틋하며 살가운 사진이 태어납니다. 값싼 필름사진기를 쓰든 싸구려 똑딱이를 쓰든, 나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찍는 사진이라면 사랑스러운 사진이 태어나요. 나 스스로 사랑하는 손길로 쓰는 글이라면 사랑스러운 글이 태어납니다.


.. 조선대학 시절에는 풍경이나 화초에 마음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산진달래 꽃잎을 입에 머금자 고향 뒷산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이 뇌리를 스쳤다 … 30여 년 전 어머니 옆을 떠나던 때가 뇌리를 스쳤다. 우리 집은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있었는데 내가 몇 번이나 뒤돌아보아도 어머니는 ‘대문’ 앞에 서서 꼼짝도 않고 계셨다. 하얀 치마저고리 모습이 점점 작아져 점이 되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이별이었다. 참는 것만을 미덕으로 사시다가 마흔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생애를 생각하니 세상의 덧없음에 화가 났다. 언제 다시 성묘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어머니의 묘 옆을 떠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눈물을 겨우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  (185, 284∼285쪽)


 집에서 살림하고 일하는 어머니들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집 바깥에서 훌륭하다는 일을 하는 아버지들도 글을 쓰면 좋을 텐데, 갓난쟁이일 때부터 집에서 아이랑 씨름하며 살아가는 숱한 여느 어머니들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아이를 씻기거나 재우거나 젖을 물리면서 느끼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찬찬히 글로 옮기면 좋겠습니다. 아이한테 밥을 먹이며 힘들었던 일이나 고달팠던 이야기를 찬찬히 글로 적바림하면 좋겠어요. 아이 스스로 당차게 서서 뜀박질을 하던 첫 날 이야기를 쓰고, 아이가 뛰며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진 이야기를 쓰며, 아이가 말썽을 피워 꾸짖었더니 울고 불고 하던 이야기를 쓰면 좋겠습니다.

 따로 책 한 권으로 태어나야만 글을 쓰는 보람이 있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꾸준하게 ‘아이와 어우러지는 삶’을 수수한 빛이 감도는 글로 담아서 내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으며 생각밭을 일굴 만할 때쯤 넌지시 건네면 더없이 아름다운 일이 되리라 생각해요. (4344.7.1.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야 마법의 신문 기자 동글이의 엽기 코믹 상상여행 2
야다마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 / 노란우산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아이랑 살아가면 신문을 읽지 않는다
 [어린이책 읽는 삶 1] 야다마 시로,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노란우산,2010)



 집에서 아이 아버지는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이 어머니도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 집은 종이신문을 받아보지 않거든요. 따로 인터넷을 누비며 누리신문을 읽지도 않습니다.

 집에 따로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습니다. 집에 따로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으니 방송을 볼 일도 없습니다. 때때로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누리방송이나 동영상을 보는 일이 없습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나거나 터지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일어나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나라밖에서 누가 누구를 죽이거나 죽는지를 거의 모릅니다.

 한창 무언가를 많이 배워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짝 대학교에 발을 담가 다섯 학기를 다니던 때를 떠올립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배움삯은 내 아버지가 돈을 빌어 마련해 주었고, 대학교 둘레에서 먹고지낼 잠자리는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신문배달을 하면서 스스로 장만했습니다. 어쨌든 신문사지국은 밥과 잠을 얻는 곳이요, 일삯이 나오면 이 돈으로 책을 사읽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니 이곳에서 돌리는 몇 가지 신문은 거저로 읽을 뿐 아니라, 다른 지국하고 신문을 바꾸어 읽곤 합니다. 대학교 다섯 학기를 다니며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는 동안 날마다 열 가지 ‘중앙일간지’라 하는 ‘서울에서 나오는 큰 신문’을 읽었습니다.

 열 가지 큰 신문에다가 스포츠신문과 경제신문과 영어신문을 날마다 찬찬히 읽는 동안 시나브로 느낍니다. 열 가지 신문을 읽든 스무 가지 신문을 읽든, 신문에 실리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모두들 똑같은 일과 사람을 다루며, 똑같은 곳에서 취재를 해서 글을 씁니다. 이름은 중앙일간지이지만, 정작 왜 ‘한복판(중앙)’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앙일간지를 채우는 이야기는 95퍼센트 ‘서울에서 일어나는 서울 이야기’였거든요.

 열 가지 신문을 날마다 읽으면서, 열 가지 신문마다 글투가 다르고 사진결이 다르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을 놓고 조금씩 다른 글투와 사진결로 기사를 채운대서 무엇이 달라질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열 사람이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면서도 다 다르게 느끼거나 생각하잖아요. 구름을 바라보든 비를 느끼든, 열 사람은 열 가지 느낌입니다. 열 가지 신문이라면 열 가지 글투가 될밖에 없습니다. 굳이 ‘다른 글투를 느끼자’며 여러 신문을 볼 까닭이 없어요. 이 신문이 못 짚는 이야기를 저 신문이 짚는다든지, 저 신문이 안 다루는 이야기를 고 신문이 다루어야 바야흐로 여러 가지 신문을 보는 보람이 있습니다.


.. 한참 생각한 끝에 ‘벽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벽신문은 커다란 종이에 기사를 적어서 어딘가에 붙이기만 하면 된다. 뉴스거리는 여기저기에 많기 때문에 기사를 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제 1호 신문을 만들었다 ..  (5쪽)


 신문이나 방송하고는 금을 그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그닥 많이 읽지 못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하고 견주면 많이 읽는 셈일 테지만,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아가며 책읽기가 줄고, 아이 하나를 낳으며 책읽기는 훨씬 줄며, 아이 둘이 되니 책읽기는 더더욱 줍니다.

 집일을 도맡지만, 집일을 제대로 도맡는다 말하지 못합니다. 옆지기가 잔소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옆지기가 ‘집일이 이게 무어냐?’ 하고 따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할 말이 없습니다. 날마다 할 집일을 날마다 옳게 건사하지 못하니, 집일을 도맡느라 하루 열 시간을 넉넉히 쓰더라도 집꼴이 그닥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책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들춘다든지 방송을 뒤적일 겨를이 없어요. 생각해 보면, 집일로 바쁘니 이것저것 챙길 수 없습니다.

 이레째 퍼붓던 비가 하루 그친 다음 다시 비가 퍼붓는가 싶더니, 밤에만 조금 흩뿌리고 날이 살며시 갭니다. 언제 다시 퍼부을는지는 모르지만, 구름이 살며시 걷히면서 햇살이 드리웁니다. 멧자락에서는 멧새 소리가 예쁘게 들리고, 웃마을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당에 나가면 도랑에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빗소리에 잠겨 숨죽이던 소리들이 모조리 깨어납니다.

 갓난쟁이를 안고 마을길을 걷거나 멧길을 거닐 때에 물소리가 콰르르 조르르 들리면, 이 소리를 듣고 갓난쟁이가 참 잘 잡니다.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히면 응애 하면서 곧바로 깹니다. 물소리는 크든 작든 아이를 곱게 재웁니다. 이와 달리, 자동차 소리는 크든 작든 아이를 놀래킵니다. 아이 곁에서 하루 스물네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를 바라보니, 아이가 무엇하고 살가이 사귀도록 해야 좋을까를 몸으로 느낍니다. 아이하고 살아갈 어른으로서 내 하루를 어떻게 다스려야 아름다울까를 마음으로 깊이 되새깁니다.


.. 어떤 사람의 창피스러운 이야기를 신문에 쓰면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예 신문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닐까? … 나는 가짜 신문 제 1호를 붙였다. ‘이제 두고보라지. 모두들 깜짝 놀랄 거야!’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가짜 신문이라고 분명히 써 놨는데도 사람들은 진짜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 “아예 냉장고를 넣어 두면 편리할 텐데…….”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배 안에 먹거리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는 게…….” 아무리 장난 삼아 하는 이야기라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었다  ..  (19, 24, 45쪽)


 어린이책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노란우산,2010)를 읽습니다. 앙증맞은 그림에 앙증맞은 글이 어우러진 어여쁜 이야기책입니다. 일본에서는 1985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0년에 옮겨집니다. 나는 이 책을 헌책방에서 일찌감치 일본책으로 보았습니다. 그림이 퍽 귀여웁다고 느꼈고, ‘잘 그렸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줄거리는 어떠할는지 모르나, 일본 어린이책을 꽤 많이 옮기는 우리 흐름을 돌아본다면, 퍽 예전부터 옮길 만하지 않겠느냐 싶었으나, 이제서야 한국말로 나옵니다.

 이 이야기책을 쓴 야다마 시로 님은 책끝에 “‘진짜’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먼저 소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좋아요(81쪽).” 하는 말을 붙입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자면, 몸소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 또한 내가 몸소 알아보지 않고서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직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믿기도 하지만, 내가 받아들여 즐길 이야기라면, 내 몸으로 겪어야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어요.

 몸소 아기를 안아야 아기 느낌을 압니다. 아기를 달래고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주어야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나날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손수 밥을 차리고 손수 밥을 치우며, 손수 빨래를 하고 손수 빨래를 걷어 개야, 비로소 집일이 어떠한가를 깨닫습니다. 걸레를 손수 빨고, 빗자루를 손수 들어야, 집을 돌보는 나날을 알아차립니다.

 입에 넣고 냠냠짭짭 씹어야 밥맛을 압니다. 눈으로 보아서는 밥맛을 모릅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알자면 ‘신문을 읽기’만 해서는 모를 뿐 아니라 ‘내 눈으로 지켜본다’고 해서 알 수 있지 않아요. 더 깊이 스며들어야 해요. ‘삶으로 받아들이도록 몸으로 부대낄’ 때에 천천히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만든 재미있고 멋진 신문을 붙여 주면 이 알림판도 좋아하겠지?’ ..  (6쪽)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보내는 오늘 하루가 즐겁기에, ‘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재미와 힘겨움과 고단함’을 날마다 새롭게 적바림하는 신문이 없다면, 굳이 신문을 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더라도, 나 스스로 내 아이하고 살아가며 날마다 새롭게 느끼는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며 어여쁩니다.

 아침에 깬 첫째 아이가 새소리를 듣는 멧자락 작은 집이 좋습니다. 첫째 아이가 깨며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에 깬 둘째 아이가 끄응끄응 하면서 옹알옹알 꽁꽁거리며 눈알을 굴리는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좋습니다. 오늘은 비가 없이 아주 후덥지근할 듯합니다. 아침부터 집안 온도가 27도. 이제 쌀을 씻어 불린 다음 둘째 갓난쟁이를 씻기고 집안을 첫째랑 함께 치워야겠습니다. 첫째 아이는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에 나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돼지’ 그림을 보며 무척 좋아합니다. 네 살 아이는 앞으로 네 살쯤 더 나이를 먹어 글자를 깨치면, 스스로 이 책을 넘기면서 신나게 읽겠지요. (4344.6.28.물.ㅎㄲㅅㄱ)


― 나는야 마법의 신문기자 (야다마 시로 글·그림,오세웅 옮김,노란우산 펴냄,2010.4.30./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 다섯 남매 태어나서 한글 배울 때까지
박정희 지음 / 걷는책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효도’ 아닌 ‘사랑’으로 보살필 아이들
 [푸른책과 함께 살기 85] 박정희,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2011)



- 책이름 :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 글 : 박정희
- 펴낸곳 : 걷는책 (2011.6.27.)
- 책값 : 28000원



 (1) 효도를 가르칠 수 없어요


 어버이 된 사람은 아이한테 효도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효도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어버이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효도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전쟁이 터졌을 때에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치라고 가르치는 사람하고 똑같습니다. 어느 아이가 되든, 전쟁이 터진 자리에서 목숨을 바치며 다른 사람을 죽이는 짓에 나서면 안 됩니다. 전쟁이란 처음부터 터져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전쟁을 터뜨리는 사람은 권력자이거나 독재자입니다. 권력을 움켜쥐거나 독재를 휘두르는 우두머리가 전쟁을 일으키는데,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이 총칼을 들고 스스로 바보짓을 하는 군인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아이한테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베풀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직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누기에 사랑이요 함께하기에 사랑이며 어깨동무하기에 사랑이에요. 아이가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사랑스러운 목숨으로 살아가도록 이끌 사람이 바로 어버이입니다. 내 목숨이 산 목숨이고, 내 산 목숨을 잇자면 다른 산 목숨을 끊임없이 받아먹어야 하는 줄 느끼도록 하는 사람이 바로 어버이예요. 고마운 내 목숨을 아끼면서 내 밥이 되는 다른 목숨 또한 고맙게 여길 줄 아는 사랑을 살과 피와 뼈로 헤아리도록 보살피는 사람이 바로 어버이입니다.


.. 좋은 동화책을 찾아다니다가 구할 수가 없어 직접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 넣은 〈육아일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었다. 꼭 필요한 것만 기록했었는데, 아이들이 한글을 깨우치는 데 큰 몫을 했고, 덤으로 아이들은 모두가 그림 선수가 되었다 … 자식들이 유명한 사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즐기는 행복한 어른으로 크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너희 일생을 통해 큰 힘”이 되리라고, 나중에 자식들이 일기를 보면 “자기의 존재가 퍽 고맙고 귀하다고 생각하고 기쁘겠기에” 썼다 ..  (머리말)


 어느 어버이라 하든, 아이한테 목숨을 먹입니다. 목숨 아닌 쇠붙이나 돌덩이나 흙모래나 종이조각이나 돈뭉치나 기름(석유)이나 자동차를 먹일 수 없습니다. 목숨이 깃든 밥을 마련해서 아이를 먹이는 어버이입니다. 쌀이든 보리이든 목숨입니다. 두부이든 콩나물이든 목숨입니다. 미역국이든 된장국이든 목숨입니다. 갈치와 오징어와 돼지불고기만 목숨이 아니에요. 튀김닭과 새우젓만 목숨이 아니지요. 모든 밥은 목숨이고, 사람은 누구나 숱한 목숨을 고맙게 받아들이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목숨을 다루며 목숨을 보살피는 어버이는 거룩합니다. 나라에 충성하거나 회사에 근면하대서 거룩하거나 훌륭한 어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사랑하면서 아이한테 목숨을 깨닫도록 살아가는 어버이가 거룩하거나 훌륭합니다. 수수한 어버이가 거룩하고, 여느 어버이가 훌륭합니다. 날마다 세 끼니 밥상을 꼬박꼬박 차리며 알뜰히 먹이는 어버이야말로 아름답습니다.

 어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목숨을 잇는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는 삶입니다. 어버이가 마땅히 할 일이란 넷째도 다섯째도 여섯째도 내 목숨과 같이 네 목숨과 우리 목숨과 너희 목숨을 사랑하며 아끼도록 하는 삶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건사할 일이란 일곱째도 여덟째도 아홉째도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나날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삶입니다.


.. 네(명애,첫딸)가 태어난 집은 이 그림과 같이 ‘꽃집’이었다. 주소는 평양 룡흥리 부영주택 20호였다. 뒤는 솔밭이고 앞은 넓은 들인데, 그 가운데 50호쯤 되는 집들이 나란히 있어 볕과 공기가 참으로 풍부하고 경치는 더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집 안팎을 곱게 꾸미셨다. 해바라기, 나팔꽃, 양귀비, 과꽃, 국화, 앵두, 복숭아, 벚, 개나리 들이 화려하게 필 때 나는 얼마나 환희를 느꼈는지, 얼마나 그리고 싶어 애썼는지 모른다 … ‘꽝’, ‘꽝’. ‘야! 무서운 소린데……. “저건 나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나님이 폭탄을 떨어뜨리시는 거야.” “잘못해서 다른 데로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하나님 나라로 가지. 하나님 나라는 아름다운 꽃고 많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많아요.” “우리 재미있게 피란 가는 장난하자!” 너희들은 이러한 소리를 매일 했고 할아버지는 지붕에서 유엔군 비행기들의 폭격하는 모습을 구경하시고, 나와 순임이는 벼를 매에 갈아 현미밥을 짓고 보리쌀을 곱게 갈아 죽도 쑤고 고구마 순을 다듬어 된장국도 끓이고 하여 무서운 생각은 안 하고 캘캘대며 날을 보냈다 ..  (28, 48쪽)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한테 효도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를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나라에 충성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제가 발디딘 보금자리를 아껴야 합니다. 아이들은 회사나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근면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제 일터나 배움터를 좋아해야 합니다.

 사랑할 어버이입니다. 아낄 보금자리요 삶터이자 마을입니다. 좋아할 일터이면서 배움터입니다. 어버이가 하는 말이라 해서 그예 따른다든지,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라 해서 그저 한다든지 할 수 없습니다. 옳고 바른 말을 사랑해야 합니다. 착하고 참다운 삶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어버이가 되든 동무네 어버이가 되든, 옳고 바르게 말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할 뿐입니다.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일이 나라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에 젊음을 바치는 일이란 더할 나위 없이 바보짓입니다. 군대를 만들어 군대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 나라는 조금도 사랑할 값이나 아낄 뜻이 없습니다. 북녘이든 남녘이든,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군대를 꾸리는데, 두 나라 어느 쪽이든 사랑할 만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군대가 지키지 않거든요. 나라는 흙을 일구는 일꾼이 지키거든요. 나라는 건물을 쓸고 닦는 일꾼이 지키고, 나라는 버스나 기차를 모는 일꾼이 지킵니다. 나라는 집안일을 하며 집살림을 돌보는 일꾼이 지킵니다.

 회사일에 목매달며 새벽부터 밤까지 매이는 일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일을 앞세우고 모든 내 삶을 뒤로 젖히는 삶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내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회사가 아니라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한 해에 1억을 주든 한 달에 천만 원을 주든, 돈을 많이 준대서 좋은 회사가 아닙니다. 일하는 터전, 곧 일터인 회사는 사람다이 땀흘려 일하는 곳이어야 하고, 이웃과 내 살붙이를 아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푸나무와 햇볕과 흙과 바람을 돌볼 수 있는 터여야 합니다.


.. 맑게 갠 가을날, 아버지가 미리 “16일쯤 낳게 될 거야.” 한 바로 그날, 외할머니가 남양에 가신 동안에 아버지가 너(현애,둘째)를 받아 주셨다. 학교 가는 아저씨더러 일찍 오라고 부탁하고, 문간방 영자 어머니더러 밥 지어 달라고 부탁하고, 노할아버지께는 방에 불을 때 주십사 여쭙고,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자연의 힘으로 해산이 이루어지려니 하는 침착한 태도로 너를 낳았다. 명애를 낳을 때와는 퍽 달리 쉽게 낳았다. 아저씨가 학교에서 온 다음, 연시와 침시를 사다가 잡수시며 나에게도 물렁한 것으로 골라 주시어 먹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너를 낳았을 때 “또 딸이야!” 하고 조금 섭섭해 했다. 노할아버지께 “저는 왜 딸만 낳을까요?” 한즉, “응, 괜찮다. 너의 할머니를 닮은 게지. 아들 넷을 내리 낳고 그 다음에 딸 셋, 그리고 또 아들을 둘, 이렇게 낳았단다. 너는 딸부터 시작한 게지.” 하셨다. 아버지는 둘째라고 헌 옷만 주지 말고 새 옷도 꼭 같이 입히라고 하셨다 ..  (58∼59쪽)


 아이를 슬기롭게 키우고 싶은 어버이라면 아이 앞에서 “어버이한테 효도해야지.”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효도는 덕목이 아니고, 미덕 또한 아닙니다. 더욱이, 아이한테 효도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어버이 삶을 아이한테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물려줄 뿐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사랑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보여주면서 물려줍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착한 매무새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드러내면서 이어줍니다. 고운 넋을 보듬는 어버이로서 고운 넋을 온몸과 온마음으로 밝히면서 나눕니다.


 (2) 사랑은 돈·이름·힘이 아니에요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박정희 할머님이 쓰고 그린 육아일기를 그러모은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2011)를 읽습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온 책이고, 2011년에 새옷을 입고 다시 나온 책입니다. 2001년에 책이 처음 나올 때에 할머님 나이는 여든이었고, 2011년에 새옷 입은 책이 나올 때에 할머님 나이는 아흔입니다. 박정희 할머님이 50∼60년대에 다섯 아이 육아일기를 쓰고 그릴 때에는 이렇게 낱권책으로 태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셨을 테고, 더구나 새삼스레 되펴내 주리라 바라지 않으셨겠지요.

 돋보이는 글이나 그림이 실린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는 아닙니다. 눈부신 글이나 그림이 담긴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또한 아닙니다. 반짝반짝거린다든지 알록달록 어여쁘다든지 새록새록 빛난다든지 하는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도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알뜰히 담은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입니다. 하늘이 내린 고운 목숨을 고맙게 받아들여 고운 숨결 그대로 보살피며 아이들 스스로 얼마나 고마운 사랑인가를 느끼도록 돕고픈 마음으로 쓰고 그린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예요.

 2001년에 처음 읽고, 2011년에 다시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어여쁜 육아일기가 2021년에도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눌 수 있도록 새책방 책시렁에 예쁘게 꽂힐 수 있을까 헤아립니다.

 2001년에 처음 나온 책은 몇 해 지나지 않아 판이 끊어졌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힘겹게 찾아내어 둘레에 선물해야 했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이 어여쁜 육아일기를 장만해서 읽으라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여느 사람들은 헌책방마실까지 하면서 책 하나를 찾아 읽으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셋째 딸로 고운 아기를 주셨을 때부터 그 아기, 즉 인애가 국민학교에 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 놓았다. 너를 낳은 아버지, 어머니, 또 할아버지, 할머니를 잘 생각하면 인애가 사는 동안 착한 일꾼이 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자기의 존재가 퍽 고맙고 귀하다고 생각하며, 기쁘겠기에 바쁜 틈을 타서 이러한 글을 써 놓기로 했다. 1956년 6월. 엄마 … 위층에서 떠들면 ‘진찰을 못한다’, ‘좁으니 어서 치워라’, ‘진찰실에는 나가지 말자’ 등 이런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자는 자리도 너무 좁아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인애가 율목동 집을 그리워하고 경룡이네를 좋아한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좁은 집 가운데서도 빨래를 널게 만든 지붕 위와 위층 큰 다다미방 사이에 있는 좁은 방은, 인애의 소꿉놀이터로 좋았다 ..  (83, 89쪽)


 그러고 보면 여느 사람들은 그림 할머님 이야기를 들을 때에 ‘할머니한테 그림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막상 할머님한테 그림을 배우러 한 주에 한 번 틈을 내지 못합니다. 박정희 할머님한테서 그림 배우는 삯은 한 달에 오만 원인데, 이 오만 원을 마련하지 못한다거나 한 주에 한 번 말미를 얻지 못해요. 할머님 나이가 여든을 지나 아흔이요, 앞으로 할머님을 몸소 뵈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나날이 그리 길지 않은 줄 살갗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박정희 할머님이 꾸리는 ‘평안 수채화의 집’ 수채화교실은 수채그림을 배우는 자리입니다. 이 배움자리는 물과 물감을 써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솜씨를 배우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면서, 할머니한테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마음’을 함께 익히는 자리입니다. 마땅한 노릇인데, 할머니는 그림 재주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면서 즐기는 마음씨를 스스로 보여주면서 물려줍니다. 그림을 좋아하지 않을 때에는 어떤 솜씨가 있더라도 그림을 그릴 수 없고, 그림을 즐기지 못할 때에는 눈앞에 아름다운 삶이 있어도 그림에 담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앎조각이나 학술이론이나 비평이 아닌 온 몸뚱이로 밝힙니다.


.. 순애 네가 이 세상에 나서 제 손으로 글씨를 쓸 줄 알기까지의 일을 몇 가지만 적어 놓아 주련다. 어떻게 낳고 어떻게 자랐나? 어떠한 분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컸나? 그런 이야기들은 순애 너의 일생을 통해 큰 힘이 되리라고 믿는 까닭에서다. 하나님께 순애를 기르라고 명령을 받은 엄마는, 자기의 힘은 몹시 약했으나 온 식구들의 힘을 얻어 크게 앓거나 실수하거나 하지 않고, 똑똑하고 명령하고 재주 많은 순애를 길러 왔으니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 아버지께서 “내가 번번이 받아서 딸만 낳은 것 같으니 전 산파께 수고해 달라자.”고 하셨다. 장작 꺼들이다가 별안간 진통이 시작되기에, 김 외과 간호원으로 있는 전순임 산파에게 기별을 하고 너를 뉠 자리와 입힐 옷들을 준비해 놓고 또 슬슬 장작을 날랐다. 장작을 깨끗이 쌓고 너를 낳았다. 전 산파는 모습도 아름답고 마음도 고운 처녀로 참 정성껏 우리를 도와주었다. 지금은 동서대 약방 주인한테 시집을 가서 아기 엄마가 되었지. 과일이 흔한 때라 너를 씻긴 다음 참외를 대접했다. 할머니도 전 산파와 같이 너를 받아 주시고 첫 목욕을 시킨 다음 하나님께 순산을 감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다. 넷째 딸로 태어난 순애는 섭섭하기는 했지만 교양 있는 어른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태어났다고 기도를 올리며 엄마는 뜨거운 눈물을 금치 못했다 … 부산에 계셨던 외할아버지께서는 너를 순산했다는 편지를 보시고 ‘아들 딸은 마음대로 낳지 못하는 것이니까 섭섭해 하지 말라.’고 어느 이화대학 출신 엄마의 이야기를 적은 긴 편지를 써 보내 주셨다. 성함은 박두성 씨고 우리 나라 맹인 교육에 공로가 많으신 분이고 많은 동생들을 데리고 교동이라는 섬에서 서울로 나오셔서 활약하시고 교육계와 교회를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분이시다. 노년에는 만성 기관지염과 중풍으로 오래 병객으로 지내셨으나 누구에게나 구슬다운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  (108, 111, 128쪽)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사랑 아닌 다른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돈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자가용이나 아파트나 땅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는 그예 사랑 하나만 물려줍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젖을 물리고 씻기며 재우는 일입니다. 젖을 물리고 씻기며 재우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따스함을 느끼도록 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면 몸에 맞는 옷을 마련하거나 얻어서 입히고, 어버이가 여느 때에 늘 쓰는 말을 아이한테 가르치며, 어버이가 어린 날부터 좋아하던 책을 아이한테 들려주거나 읽힙니다.

 어버이 이름값을 아이한테 물려주지 못합니다. 어버이가 아름다이 믿으면서 일구는 삶을 물려줍니다. 어버이로서 따스하게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삶을 물려줍니다. 이웃을 믿고 손을 맞잡는 매무새를 물려줍니다. 착한 마음이나 참다운 넋을 물려주지, 잘난 이름이나 못난 이름을 물려주지 못해요.

 흙을 일구는 어버이 곁에서 흙을 일구는 아이가 자랍니다. 자가용을 타며 돌아다니는 어버이 곁에서 자가용을 (고맙거나 미안하다는 마음이나 느낌 없이) 아무렇지 않게 타며 돌아다니는 아이가 자랍니다. 손으로 빨래해서 햇볕 드는 마당에 너는 어버이 곁에서 집일을 손수 거들고파 하는 아이가 자랍니다. 청소기를 쓰고 세탁기를 쓰는 어버이 곁에서 집일을 찬찬히 느끼지 못하면서 손이 하얗게 곱기만 한 아이가 자랍니다.

 어버이가 휘두르거나 거머쥐는 권력을 아이한테 물려주지 못합니다. 아이를 생각하는 어버이라면 권력을 휘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아끼고픈 어버이라면 권력을 거머쥐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보살피려는 어버이라면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하고, 아이를 보듬으려는 어버이라면 작고 조용한 집에서 작고 조용한 일을 건사하면서 작고 조용한 나날을 누려야 합니다.

 더 좋다는 학교에 보낸대서 아이가 더 좋다는 앎조각을 거머쥐지 않습니다. 더 낫다는 학원에 넣는대서 아이가 더 낫다는 마음으로 더 나은 앎조각을 움켜쥐지 않습니다. 사람한테서 사람을 배우는 사람인 아이인 터라, 둘레 어른 됨됨이와 마음씨가 어떠하느냐를 살펴야 합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내 삶을 짚으면서 어른인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아끼며 누구랑 이웃하며 일구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 네(제룡,아들)가 언제나 자기를 그지없이 사랑해 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어떠한 힘든 고비에서도 착하게 행복하게 이겨 나가라고 이 글을 써 주련다. 1962년 2월 엄마 … 6·25동란으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은 서울 인천 간의 모습은 급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우리 나라의 정치는 권력이니 빽이니 하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시대였다. 어찌하면 권력을 잡아 보나 어찌하면 연줄을 붙드나가 큰 문제거리고 대학 입학, 군대의 의무까지도 우물쭈물 뇌물로 해결이 되는 시절이었다 … 셋째 작은어머니가 마루에 그네를 매어 놓았다고 할머니와 놀러가서는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꽃을 주면 싫다고 내던지니 여자 아이만 기르던 때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복잡한 한길로 자전거를 밀고 나가기 일쑤고 재게 달아다니 쫓아가기가 힘이 들었다. 넘어져서 콧잔등에 큰 허물이 생긴 것도 너무 재게 달아나서 그랬다. 젖도 다 먹이지 못하게 세차게 빨아서 자꾸만 젖꼭지가 고장나 혼이 났다. 희고 예뻐서 계집애 같다는 말을 늘 들었다 ..  (145, 148, 159쪽)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삶을 담은 육아일기를 새삼스레 읽으면서 우리 집 두 아이를 가늠합니다. 그림할머니는 ‘고마운 사랑’인 아이를 보살피면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림할머니는 ‘착한 믿음’인 아이를 돌보면서 같이 지냈습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홀가분하거나 언제나 복닥복닥 어우러지는 한식구인 아이들입니다.

 우리 집 둘째는 장마철에도 여느 때와 똑같이 기저귀에 똥을 누고 오줌을 눕니다. 장마철에 기저귀가 얼마나 안 마르는데, 갓난쟁이로서는 이런저런 일을 알 턱이 없겠지요. 그런데, 이런 둘째를 바라보며 첫째 때에는 참 용하게 이런 나날을 잘 견디며 받아들였구나 싶고, 두 아이를 키운 내 어버이는 내가 갓난쟁이였을 때에 어떤 마음이요 삶이었을까를 넌지시 톺아봅니다.

 우리 집 첫째는 밤오줌가리기를 하려고 밤 한 시 십 분에 살며시 일으켜서 오줌을 누였더니 두 시가 지나고 세 시가 되도록 다시 잠자리에 들 생각을 안 합니다. 한 시 십 분부터 둘째 기저귀를 빨아 한 시 오십 분에 들여다보니 눈이 말똥말똥한 채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낮잠 없고 밤잠조차 제대로 안 자면 아침부터 또 얼마나 무거운 몸으로 칭얼대려나 생각하니 골이 띵합니다. 그렇지만, 아이 어머니도 어릴 적에 첫째와 같았다 하고, 아이 아버지인 저 또한 어릴 적에 틀림없이 이와 같았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도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될 때에 저희네 아이한테서 이런 모습 저런 삶 그런 이야기를 똑같이 느끼거나 받아들이겠지요. 그리고, 저희네 어버이인 나와 옆지기가 2001년과 2011년에 나란히 장만한 박정희 할머님 육아일기책 두 권을 나란히 펼치고 읽으면서 삶과 사람과 사랑이 어우러지는 고리를 살포시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부터 돈을 더 벌거나 이름을 크게 얻거나 힘을 마음껏 부리려는 삶이 아닐 뿐더러, 돈이든 이름이든 힘이든 아무것 없는 삶인데다가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좋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니까요.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서 우리 아이한테 예쁜 삶 담긴 고운 책을 사랑스레 물려줄 테고, 아이는 아이 깜냥껏 씩씩하고 다부지게 아이 삶을 사랑스레 즐기면서 누릴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4.6.22.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