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스스로 책읽기 3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김영신 옮김 / 큰북작은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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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52



아이들은 싸움이 아닌 사랑을 좋아해

―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베아트리스 퐁타넬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김영신 옮김

 큰북작은북 펴냄, 2006.12.5. 8000원



  아이들은 무엇이든 좋아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기에 어느 것은 좋아하면 안 되거나 어느 것만 좋아해야 하지 않아요. 어른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어른들은 저마다 다 다른 것을 좋아해요. 아이들만 따로 이것은 좋아하지 말라고 막거나 윽박지를 수 없지요.


  다만, 아이들한테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어느 것이 ‘싸움’이거나 ‘거친 말’이라면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요. 싸움이란 무엇이고 거친 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그야말로 낱낱이 차분히 부드러이 이야기로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지 마!” 하는 말로 막아 보았자 막을 수 없어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면 어릴 적에는 조그맣게 툭탁질을 할 테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커지는가를 알려주어야 해요. 거친 말 한 마디는 ‘듣는 사람’을 넘어서 ‘말하는 사람’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좀먹는가를 부드러우면서 슬기로이 알려주어야지 싶습니다.



나는 적당한 싸움은 아이들한테 좋다고 생각해. 물론 싸울 때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 일단 상대방의 목을 조르면 안 돼. 사내아이들의 고추를 발로 차서도 안 되고, 고추를 맞으면 까무러치게 아프단 말이야. (9쪽)



  베아트리스 퐁타넬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큰북작은북,2006)을 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나 혼자 읽습니다. 이 책을 궁금해 하는 우리 집 큰아이한테는 읽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깃든 줄거리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사회 생활·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벌이는 ‘싸움질’이 왜 그칠 수 없는가 하는 대목을 아주 쉽게 풀어내면서도, 아이들 나름대로 홀가분하면서 스스럼없이 이 싸움질을 또 쉽게 떨칠 수 있다는 대목까지 차분히 엮어냅니다.



형의 침대가 망가진 뒤로, 나는 싸움 대신 달리기를 시작했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달리기를 무척 좋아해! … 황금가마우지처럼 양팔을 벌리고 달리면서, 학교 운동장을 맘껏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지. (34∼35쪽)



  내가 이 책을 어버이로서 혼자 읽고 아이한테는 읽히지 않은 까닭은, 이 책을 섣불리 읽으면 ‘싸움질’을 둘러싸고서 ‘어떤 몸짓과 말짓’이 흐르는가 하는 대목에 휩싸일 수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참말 좋아하는’ 것은 싸움질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밝힙니다.


  사내 아이는 학교에서 날마다 싸움질을 즐긴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사내 아이들끼리 여러모로 부딪히거나 부러 거친 말을 뽐내다가 싸움질까지 불거지는구나 하고 느껴요. 작은 놀이를 하면서도 ‘꼭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 그만 놀이가 아니라 겨루기가 되어 끝내 싸움으로 마무리가 되기 일쑤예요.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사내 아이는 어느 때부터인가 싸움질에 재미를 잃고는 달리기를 한다고 해요. 혼자서 마음껏 달린다고 해요. 바람을 가르면서 달리고, 마치 새처럼 날아오르듯이 달린다고 해요.



그것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게 또 있어. 아빠가 밤중에 불을 꺼 주려고 내 방에 왔을 때, 자는 척하는 게 나는 참 좋아! 아빠는 가만히 내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없이 이마에 뽀뽀를 해 줘. (38쪽)



  그리고 이 아이는 잠자리에서 아버지가 살그마니 뽀뽀를 해 줄 적에 가장 좋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래요, 이 아이는 집에서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따스하게 보살피거나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으면 아주 좋아할 테지요. 동무끼리도 서로 아끼거나 어깨를 겯는 손길을 받으면 몹시 좋아할 테고요.


  어느 아이나 같다고 느껴요. 사랑을 받으면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아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나머지 싫거나 밉다는 마음이 싹트고 만다고 느껴요.


  우리 집 큰아이가 궁금해 하는 이 책을 안 보여주면서 말로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넌 싸움을 하고 싶니?” “아니.” “그런데 왜 동생하고 싸워?” “윽!” “싸움을 나무라려는 말이 아니야. 너희가 싸우고 싶으면 그냥 싸우면 돼.” “아냐, 싸우기 싫어.” “그래, 싫구나. 그런데 또 싸우네.” “…….” “너희가 마음으로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려는 생각을 심지 않으면 앞으로 언제든지 또 싸우고 말아. 내가 더 가져야 하거나 내가 이겨야 하거나 내가 못 가졌다고 여기거나 내가 못 했다고 하는 생각을 자꾸 마음에 담으니까 싸움이 불거져. 그냥 다 줘. 그냥 다 내어줘. 그러면 싸움이 없이 사랑이 피어나.” “다 줘?” “응, 다 줘.” “다 주면 돼?” “응, 다 주면 돼. 줘 봐. 줘 보면 알아. 아버지가 너희한테 뭘 해 줬다고, 너희가 아버지한테 뭘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니?” “아니.” “그렇지?” “응.”


  잠자리에서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뽀뽀를 쪽 하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좋아합니다.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이야기로만이 아니라 참말 그렇습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가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사랑받는데 싫을 아이란 없어요. 사랑처럼 꾸미면 이내 알아채고 싫어할 테지만, 따사롭고 너그러운 숨결로 얼싸안는 사랑이 될 수 있으면 우리는 저마다 어여쁘며 고운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가꾸리라 봅니다. 2016.7.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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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라, 물개 신나는 새싹 30
주디스 커 글.그림, 길상효 옮김 / 씨드북(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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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1



사람들이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했거든요

― 행복해라, 물개

 주디스 커 글·그림

 길상효 옮김

 씨드북 펴냄, 2016.3.18. 12000원



  주디스 커(Judith Kerr)라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아흔 살을 훌쩍 넘긴 분으로, 《행복해라, 물개》(씨드북,2016)라는 이야기책을 서른일곱 해 만에 새로운 책으로 선보였다고 해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나 《고양이 모그》 같은 그림책으로 널리 사랑받는 분이기도 하지요. 아흔이 넘은 나이에 선보인 《행복해라, 물개》에는 그림보다 글이 많습니다. 어릴 적 이녁 집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물개 이야기를 새롭게 꾸미려 했다고 합니다.



알버트 아저씨는 따뜻한 햇볕에 온몸을 내맡긴 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표정으로 누워 있는 새끼 물개를 바라보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17쪽)


아파트 경비원이 아저씨를 막아서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새장 안의 작은 새를 보고도 발끈했던 경비원이 과연 목줄도 매지 않은 커다란 새끼 물개를 보고 뭐라고 할지 걱정이었어요. (32쪽)



  주디스 커 님은 처음에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나치가 힘을 뻗으면서 독일을 떠나야 했다고 해요. 주디스 커 님을 낳은 아버지가 쓴 책은 나치 독일이 활활 불태우기도 했다지요. 그무렵 아주 어린 나이였던 주디스 커 님은 그 나라(독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답니다.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나서 다른 나라로 온 식구가 흩어진 뒤에 다시 만나야 하는 까닭도 알 길이 없었다고 해요.


  이야기책 《행복해라, 물개》는 주디스 커 님 아버지가 이녁 젊은 날에 ‘집에서 물개를 기르던 이야기’를 언제나 재미있게 듣던 일을 되새기면서,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마무리를 고쳐서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 집에서 물개를 기르다가 그만 안락사를 시켜서 박제를 해 놓았다는데, 이야기책에서는 물개가 아버지하고 이웃 아주머니 품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함께 잘 살았다는 줄거리로 흘러요.



“이 마개가 문제였…….” 아저씨가 말문을 여는데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물었어요. “어째서 욕실에 물개를 데리고 있는 거죠?” “동물원에 데려다 주려고요.”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어요. 아저씨가 다시 말했어요. “사람들이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했거든요.” “아…….” 아주머니가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물개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39쪽)



  이야기에 나오는 물개는 새끼 물개입니다.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이들은 물개가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는다고 여겨서 물개를 총으로 쏘아 죽이곤 했답니다. 이때에 새끼가 있는 어미 물개를 쏘아 죽이면, 새끼 물개는 어미젖을 먹지 못해서 굶다가 죽는다는데, 바닷가 고기잡이는 어미 물개에 이어 새끼 물개까지 총으로 쏘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이를 본 주디스 커 님 아버지는 가여운 새끼 물개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답니다. 그렇다고 모든 어미 물개와 새끼 물개를 살릴 수 없었을 테지만, 어미를 잃고 우는 새끼 물개하고 눈이 마주친 뒤 차마 등을 돌릴 수 없어서 이 아이를 이녁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대요. 기차에 태워 먼 길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새끼일 적에는 어미젖 비슷하게 우유를 주면서 키웠는데, 차츰 자라는 동안 젖에서 고기로 넘어가지 않아 몹시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찰리는 작아져버린 양철 목욕통에 들어가기 싫어 한동안 몸부림을 치더니 수레에 실릴 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바라봤어요. 하지만 아저씨가 수레를 밀며 아주머니와 나란히 걷기 시작하자 찰리는 금세 신이 나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전차와 수레가 지나갈 때는 놀라서 작게 짖기도 했고요. (67쪽)



  《행복해라, 물개》에 나오는 아버지와 이웃 아주머니는 새끼 물개가 느긋하게 지낼 곳을 찾아 온갖 동물원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동물원이든 이 새끼 물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요. 자, 이제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사람은 그만 두 손을 들고 새끼 물개를 안락사라는 길로 보내야 할까요. 아니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야 할까요. 바다로 돌려보내더라도 총을 쏘아서 죽이는 사람들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바다에서 물개는 물고기를 잡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사람들도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살림을 잇습니다. 물개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아먹지 않으나, 아무래도 사람들 눈에는 물개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는다고 느낄 만합니다. 물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낚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고 여길 만해요.


  사람들은 물개를 싫어하면서 죽이려 하고, 물개는 사람이 두렵습니다. 둘은 한 바닷가에서 함께 어우러지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바닷가이든 처음부터 사람이 먼저 살지는 않았어요. 언제나 물개가 그곳에서 조용히 살았고, 물개는 저희 목숨을 이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기 마련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가 줄어드는 까닭은 우리(사람)가 더 많은 물고기를 낚아서 더 많이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개가 물고기를 알맞게 잡으며 저희 무리를 지키듯이, 사람도 물고기를 알맞게 낚으면서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가장 슬기로울 텐데, 막상 이처럼 어우러지기는 만만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주디스 커 님은 이녁 아버지하고 물개가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쓰면서 이 대목을 어린이한테 넌지시 들려주려고 했지 싶습니다. “이 녀석을 총으로 쏘려”고 하는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어린이 스스로 어떤 마음을 품을 만한가를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이러면서 사람과 물개(를 비롯한 모든 이웃 목숨)가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터전을 슬기롭게 생각해 보기를 바랐지 싶어요.


  사람과 물개 사이에서,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아끼면서 보살피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밥을 나누고, 서로 삶터를 나누면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2016.7.16.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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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표현력 사전 - 수준 높은 책읽기 논리적인 글쓰기 교양 있는 말하기를 위한
기획집단 MOIM 지음, 조양순 그림 / 파란자전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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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0



‘교양 있는 표현력’은 한자말인가?

― 초등 표현력 사전

 기획집단 MOIM 글

 조양순 그림

 파란자전거 펴냄, 2016.4.20. 13900원



  《초등 표현력 사전》(파란자전거,2016)은 “수준 높은 책읽기, 논리적인 글쓰기, 교양 있는 말하기를 위한” 같은 작은이름이 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가 “수준 높은” 책읽기를 하도록 도우며,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도록 도우며, “교양 있는” 말하기를 하도록 돕겠다고 하는 뜻처럼, 어쩌면 이 책은 이러한 테두리에서 도움이 될는지 모릅니다.



[머리가 모자라다]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

[머리가 복잡하다] 고민이 많아서 마음이 혼란스럽다

[얼굴이 두껍다] 부끄럼이나 염치가 없이 뻔뻔하다

[얼굴을 돌리다] 상대방을 피하거나 외면하다

[낯이 깎이다] 체면이 손상되다



  그런데 이 《초등 표현력 사전》을 찬찬히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머리가 모자라다]라는 올림말을 풀이하면서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다”로 적는데, ‘부족하다’라는 한자말은 바로 ‘모자라다’를 뜻합니다. [머리가 복잡하다] 같은 올림말은 “혼란스럽다”로 풀이하지만 ‘복잡하다’와 ‘혼란스럽다’ 같은 한자말은 얼마나 다를까요? [얼굴이 두껍다] 같은 올림말을 “부끄럼이나 염치가 없”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염치’라는 한자말은 바로 ‘부끄럼’을 뜻합니다. [낯이 깎이다]라는 올림말을 “체면이 손상되다”로 풀이하지만 ‘낯’을 ‘체면’으로 바꾸고 ‘깎이다’를 ‘손상되다’로 바꾸었을 뿐이에요.



[입을 봉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다 /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못하다

[침 발라 놓다] 자기 소유물로 정해 놓다

[가슴을 울리다] 감동시키다

[가슴이 찔리다] 양심의 가책을 크게 받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교양 있는 표현력”이란 ‘한국말을 한자말로 바꾸는 일’일까요? [입을 봉하다] 같은 올림말을 생각해 봅니다. [입을 꿰매다] 같은 올림말을 다룰 만하지 않을까요? 한자말 ‘봉하다’는 ‘꿰매다’를 가리킵니다. [가슴을 울리다] 같은 올림말을 “감동시키다”로 풀이하는 대목도 아쉽습니다. 한국말을 한자말로 풀이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찔리다]를 “양심의 가책” 같은 ‘표현력’으로 풀이하는 대목에서도 아쉽고요.



[손에 익다] 익숙하다

[손이 가다] 육체적으로 힘을 기울이다

[미관상 나쁘다] 보기에 좋지 않다

[구태에서 벗어나다]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탈바꿈하다

[사지가 멀쩡하다] 몸이 건강하다



  [손에 익다]를 “익숙하다”로 풀이하지만, 정작 ‘익다’와 ‘익숙하다’가 어떻게 다른 한국말인지 《초등 표현력 사전》은 제대로 밝히지 못합니다. [미관상 나쁘다]라든지 [구태에서 벗어나다]라든지 [사지가 멀쩡하다] 같은 한자말을 섞은 ‘표현력(관용구)’은 어른들이 흔히 쓰는데, 이런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퍼진 일본 한자말이기 일쑤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꼭 이런 표현력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어야 할는지 차분히 돌아보아야지 싶어요.



[말이 통하다] 두 사람의 뜻이 같거나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서

[말꼬리를 잡다] 상대방의 말 가운데 사소한 문제를 지적해 공격하다



  쉬운 말을 쉽게 풀이해야 쉽게 알아듣습니다. 쉬운 말을 쉽게 풀이하지 않고 ‘한국말 아닌 한자말’을 잔뜩 빌어서 풀이한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글을 읽고 머리가 더 아프기만 하리라 느껴요.



[기치를 내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장을 앞세우다

[긴히 할 말이 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열변을 토하다] 목소리를 높여 자기 주장을 내세우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전혀 쓸모가 없다

[일언반구 말이 없다] 아무 말도 없다

[화제를 바꾸다] 이야깃거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초등 표현력 사전》은 사회에서 어른들이 좀 지나치다 싶게 흔히 쓰는 ‘한자말 표현’을 너무 많이 싣는다고 느낍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회에서 어른들이 손보거나 손질할 때에 더 아름답다고 여길 만한 올림말까지 실었구나 싶기도 해요. [열변을 토하다]나 [일고의 가치]나 [일언반구]나 [화제]나 [원천적 불가능] 같은 말마디를 가르치는 뜻을 다시금 짚어야지 싶어요. 쉬우면서 예쁜 말을 찾고,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한국말을 아이들이 배우도록 이끌어 줄 수 있다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주망태가 되다] 술을 마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다

[기승을 부리다] 굳세고 강하게 행동하다

[노익장을 자랑하다] 나이는 들었으나 힘이 있음을 널리 알리다

[답습하다] 이전까지 내려온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다

[박차를 가하다] 일이 더 빨리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다

[진풍경을 연출하다] 보기 드문 구경거리를 보여주다

[국위를 선양하다] 나라의 힘과 위력을 널리 알리다



  그리고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 하나인 [고주망태가 되다]까지 굳이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아이들한테 모조리 가르치도록 이끄는 일은 그리 ‘표현력 키우기’가 될 만하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표현력이란 외국말을 더 잘 쓴다고 해서 살릴 수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영어를 더 잘 쓸 수 있어야 표현력이 살지 않습니다. 한자를 더 많이 외워야 표현력이 살지 않습니다. 생각을 가꾸고 마음을 살찌울 때에 표현력이 살 테지요.



[미증유의]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심한

[유명을 달리하다] 죽어서 저세상으로 가다

[유종의 미를 거두다] 일의 마무리가 만족스럽게 잘되다

[종언을 고하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다

[종지부를 찍다] 어떤 상황이 종료되거나 일을 끝내다

[독보적인 존재] 남이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

[우위를 점하다] 상대방에 비해 높은 위치에 있다



  곰곰이 돌아보니, 《초등 표현력 사전》은 ‘한자말 표현력 사전’이라고 여겨야지 싶습니다. 좀 지나치다고 느낄 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이 먼저 스스로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듬어야 할 말마디가 너무 많이 실렸기 때문에, 이러한 대목에서 우리 어른들은 생각을 기울여 보아야지 싶습니다.


  말살림은 더 많은 낱말을 알기에 살찌우지 않습니다. 말넋은 더 많은 한자말을 알아야 키우지 않습니다. 흔하거나 수수한 낱말 한 마디부터 제대로 살리고 넉넉히 가꿀 적에 비로소 말살림이나 말넋을 북돋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은 고사하고] -은 그만두고 / 더 말할 나위도 없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절세의 미인]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

[공세를 취하다] 공격하는 태도를 갖추다

[교두보로 삼다] 어떤 일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삼다

[공방전을 벌이다] 서로 공격과 방어를 이어 가는 전투를 벌이다



  그리고 《초등 표현력 사전》은 ‘전쟁과 얽힌 한자말’도 많이 실립니다. [공세]나 [교두보]나 [공방전] 같은 한자말은 이 낱말에 깃든 ‘전쟁 기운’까지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셈입니다. [고사하다]나 [타의 추종 불허] 같은 말마디는 ‘국어순화’를 할 말마디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절세의 미인] 같은 말마디를 아이들한테 알려주는 뜻이 아리송합니다. 너무 어른 잣대로, 너무 어른 사회 테두리에 맞추어, 아이들 말을 길들이려는 흐름이나 줄거리는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모로 많이 아쉬운 책입니다. 2016.7.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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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하루 동화는 내 친구 69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헬렌 크레이그 그림 / 논장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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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4



네가 스스로 찾으려 하면 널 도울 수 있어

― 마법 같은 하루

 필리파 피어스 글

 헬렌 크레이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2.5.16. 9500원



  우리 하루는 늘 마법 같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마법사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참으로 우리 하루는 늘 마법과 같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 그러하느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온힘을 다해서 놀고 어울리고 복닥이고 살림하는데, 이리하여 저녁이 되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아이들하고 뒤섞여서 곯아떨어지는데, 밤이 흐르고 새벽이 되면 언제나처럼 새로운 몸이 되어 눈을 번쩍 뜨거든요. 엊저녁만 해도 손끝이나 발끝 하나 꼼짝하지 못하던 몸인데, 아침에 멀쩡히 일어나서 다시 새로운 몸짓으로 하루를 짓거든요.



“자, 그럼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느냐? 말해 봐라. 나는 ‘찾는 이’니까, 뭔가를 찾는 능력을 지닌 사람 가운데 하나지. 네가 스스로 찾으려고 한다면, 나도 널 도와줄 수 있단다.” (10∼11쪽)


“아무튼, 온세를 찾으려면 녀석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어. 녀석에게 어떤 버릇이 있는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뭘 잘 먹는지, 그런 것들을 말해 줘. 뭐든지 도움이 되니까.” (29쪽)



  필리파 피어스 님이 글을 쓰고, 헬렌 크레이그 님이 살가이 그림을 넣은 《마법 같은 하루》(논장,2012)를 읽습니다. 어딘가 수수께끼 같은 어린이문학입니다. 무엇이 수수께끼 같은가 하면, 이 책에 나오는 ‘찾는 이’라는 사람이 바로 수수께끼입니다. 이 사람 ‘찾는 이’는 무엇이든 찾아 주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다만 한 가지가 있어야 찾아 준다고 해요.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스스로 찾으려고 온마음을 기울일 적에 이녁도 비로소 도와줄 수 있다고 해요.


  이야기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찾는 이’가 도와주기에 이 책에 나오는 아이는 ‘잃은 개’를 찾을 수 있기도 했을 테지만, ‘찾는 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아이가 이토록 온마음을 기울여서 찾으려고 애를 썼으니 어쩌면 아이 스스로 개를 찾는 기쁨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고요.



“차라리 들판에 사는 새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낫지. 방금 다람쥐도 한 마리 봤고. 다람쥐도 얘기해 볼 만해. 두더지 굴도 있던데, 글쎄, 두더지들은 혼자서만 지내니까, 역시, 어렵겠지.” “그 말은…… 새나 다람쥐한테 온세를 봤냐고 물어볼 거란 거예요?” (33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찾는 이’는 아이한테 자꾸 묻습니다. 아이가 잃은 개는 어떠하며, 생김새뿐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가를 묻습니다. 개는 어떻게 돌아다니고 아이는 개하고 어떻게 지냈는가를 낱낱이 물어요. 아이는 ‘찾는 이’가 묻는 말에 늘 곧바로 낱낱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리하여 ‘찾는 이’는 퍽 수월하게 개 발자취를 좇았고, 마침내 개가 어디로 갔는가를 알아내요.


  ‘찾는 이’는 아이한테 개가 돌아가도록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두 번 다시 아이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찾는 이’는 참말로 아이 앞에 나타났을까요? ‘찾는 이’는 아이랑 아이네 두 할머니 앞에 참말로 나타났을까요?


  뚜렷하게 남은 자국은 없더라도 ‘찾는 이’는 아이하고 할머니 삶에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그분은 아이하고 할머니한테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눈길’을 일깨워 주었어요.



“더 이야기해 보렴. 온세가 어떤 개인지 말해 봐.” 그래서 틸은 온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어요. 자그마한 몸집과 털 색깔, 털을 쓰다듬을 때의 느낌과 벨벳처럼 보드라운 귀의 감촉을.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꼬리를 어떻게 흔드는지, 들판에서 색다른 냄새가 나면 호기심이 생겨 부드럽고 촉촉한 검은 코끝을 씰룩이던 모습을. (47쪽)



  우리 집에서 우리 아이들이 뭔가를 잃어버렸다면서 울곤 합니다. 아이들은 어느 한 가지를 갖고 놀다가도 으레 그대로 둔 채 다른 것을 갖고 놀아요. 이러다 보면 처음 갖고 놀던 것을 어디에 두었는지 감쪽같이 잊지요. 이것저것 만지고 놀다가 모두 아무 데에나 두면 그야말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뒤죽박죽이 되어 아무것도 못 찾기도 합니다.


  이때에 어버이로서 어떻게 아이를 마주하느냐에 따라서 아이 모습이 달라져요. 아이한테 윽박지르면, 이를테면 “네가 어지럽혔으니 못 찾지!” 하고 나무라기만 하면, 아이는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을 할 만하고, 잃은 것도 더 찾기 어렵습니다. 이때에 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언제 어디에서 갖고 놀았니?” 하고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하면,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수수께끼 풀기는 ‘잃은 것 찾기’에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자리에서도 도움이 돼요. 이를테면, “하늘은 왜 파래?”라든지 “바람은 왜 불어?”라든지 “개미는 왜 작아?” 같은 물음을 들은 뒤에 아이한테 차근차근 천천히 낱낱이 하나씩 되물을 만해요. “그래, 하늘은 왜 파랄까?”라든지 “그래, 바람은 왜 불까?”라든지 “그래, 개미는 왜 작을까?” 하고 되물어 보셔요.



찾는 이가 말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네가 진짜로 보기는 했지만, 네가 본 게 진짜는 아니야. 내가 마음의 눈으로 상상 속에서 본 장면을 너한테 보여준 거지. 그리고 내가 상상 속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건 네가 설명을 아주 잘 해 준 덕분이고. 그래서 내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고, 너는 내가 보는 자연을 본 거야. 그뿐이야.” (52쪽)



  어린이문학 《마법 같은 하루》는 그야말로 마법처럼 흐른 하루를 들려줍니다. 이 마법 같은 하루는 ‘찾는 이’라는 놀라운 사람이 있어서 눈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찾는 이’는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못한다고 하니까, 개를 잃은 아이가 스스로 찾으려 한 몸짓이 개를 찾은 몸짓이 되었다고 할 만해요. 아이가 스스로 눈부시다고 해야 할까요.


  필리파 피어스 님은 아주 부드럽게 아주 상냥하게 아주 사랑스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누가 잘못했고 잘못 안 했고’를 따지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따사로이 알려줍니다.


  그냥 찾으면 돼요. 즐겁게 찾으면 돼요. 반드시 우리한테 돌아오니까요. 반드시 궁금함을 풀 수 있으니까요. 2016.6.2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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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금을 먹을까? - 아빠와 함께 떠나는 소금 여행 고갱이 지식 백과 7
김준 지음, 이장미 그림 / 웃는돌고래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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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52



하늘이 내리고 해님과 바다가 베푼 선물

― 어떤 소금을 먹을까?

 김준 글

 이장미 그림

 웃는돌고래 펴냄, 2014.1.9. 14000원



  얼마 앞서까지 우리 집은 소금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굵은소금을 입에 물고 살살 녹인 뒤에 천천히 잇솔질을 했어요. 굵은소금을 쓰기 앞서는 숯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요즈음은 숯도 굵은소금도 아닌 이엠(EM) 발효액을 입에 머금은 뒤에 잇솔질을 해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이를 닦은 까닭은 이도 이입니다만,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사는 우리 집 살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쓰는 모든 물은 땅밑을 거쳐서 도랑을 지나 바다로 곧바로 스며들거든요. 조그마한 우리 집이지만 우리 집에서 어떤 물을 쓰고 버리느냐에 따라서 우리 집 밭자락도 달라지지만, 우리 마을도 우리 바다도 달라져요. 깨끗한 바다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집에서는 세제 한 방울도 계면활성제 거품 하나도 흙이나 바다로 스며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별아, 돌아가신 할머니가 부뚜막에 늘 소금 독을 모셔 두었던 것, 기억하니? 소금 독을 거기 둔 건 음식 간을 할 때 편하게 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물 한 그릇과 함께 소금도 하얀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조왕신에게 올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어. (9쪽)



  김준 님이 글을 쓰고 이장미 님이 그림을 넣은 《어떤 소금을 먹을까?》(웃는돌고래,2014)라는 책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이 책은 ‘섬 박사’인 김준 님이 이녁 막내딸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글쓴이 김준 님은 이녁 막내딸이 바다하고 살가이 사귀기를 바라면서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어떤 소금을 먹을까?》는 여러 가지 바다 이야기 가운데 ‘바다에서 얻는 소금’을 다룹니다.



천일염이 식품으로 인정받으면서 소금밭의 결정지도 장판이 아니라 식품 안전에 문제가 없는 좋은 바닥재로 바뀌고 있어. 반가운 일이야. (23쪽)


수원에서 인천까지 놓인 기찻길이라고 해서 첫 글자를 따 ‘수인선’이라고 한 건데, 일본이 우리나라의 소금과 쌀을 인천항을 통해 실어 가기 쉬우라고 놓은 철도였거든. 그 사이에 소래 염전, 남동 염전, 군자 염전 등 큰 염전이 모여 있었지. (59쪽)



  우리가 먹는 소금은 여러 가지입니다. 아마 맨 먼저 느낄 수 있는 소금은 ‘몸에서 나는 땀’이지 싶어요.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놀면서 흘리는 땀이나 어른들이 힘껏 일하면서 흘리는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다고 볼을 거쳐서 입술에 닿으면 짬쪼름한 맛이 나요. 땀은 ‘몸에서 나는 소금’이라고 할까요? 그야말로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이라든지 힘껏 일한 어른들이 입은 옷을 보면 등판에 하얗게 ‘소금꽃(땀꽃)’이 핀다고도 할 만해요.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를 달릴 적마다 옷이 온통 하얀 꽃이 피곤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바다에서 나는 소금을 먹지요. 바다가 먼 고장에서는 바위로 된 소금을 먹어요. 바다에서 나는 소금은 ‘바닷소금’입니다. 바위로 된 소금은 ‘바위소금’이에요. 우리가 널리 먹는 바닷소금은 ‘볕소금’이라고도 해요. 햇볕으로 얻는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바닷물을 말려서 얻으니 ‘바닷소금·볕소금’ 같은 이름이 잘 어울려요. 그리고 요새는 이 두 가지 이름 말고도 새로운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하늘소금’이에요. 하늘이 내린 선물 같은 소금이라는 뜻까지 담아서 ‘하늘소금’이라고도 합니다.



메주는 봄이 되면 장으로 변신했어. 항아리에 물을 붓고 소금을 듬뿍 넣은 뒤 메주를 담가 놔. 그 위에 숯과 솔잎, 붉은 고추를 올려놓고 장독에는 새끼줄을 감아 … 그렇게 한 달 반 정도 두면 까만 물이 생겨. 콩과 소금이 만나 만들어 낸 물이야. 그 물을 달이면 간장이 되고, 남아 있던 메주를 건져서 된장을 만들었지. (126쪽)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금을 먹기에 ‘바닷소금’입니다. 해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금을 먹으니 ‘볕소금’이에요. 또는 ‘해소금’이라 할 수 있어요. 하늘이 사람을 어여삐 여기는 숨결을 사랑하자면서 먹을 적에 ‘하늘소금’이에요. 가만히 보면 모두 같은 소금이지만, 소금을 마주하는 마음결마다 애틋하면서 포근한 이름이 태어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소금으로 간장도 된장도 고추장도 얻습니다. 이 소금으로 온갖 김치를 절입니다. 이 소금으로 물고기를 오래도록 재웁니다. 이 소금으로 나물맛을 더욱 깊게 냅니다. 이 소금으로 국도 맛나게 끓이지요. 이 소금이 있어서 더위도 씩씩하게 이길 만해요.


  우리는 어떤 소금을 먹을까요? 그냥 가게에서 사다 먹는 소금일까요? 아니면, 가게에서 사다 먹더라도 바다와 해님과 하늘이 고루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숨결이 깃든 소금일까요? 어떤 영양소로만 먹는 소금이 아니라, 이 땅과 바다를 넉넉히 아끼고 보살피는 숨결을 즐겁게 받아들여서 먹는 소금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미역국을 끓이면서 소금하고 간장을 알맞게 섞어서 간을 맞춥니다. 옥수수랑 감자를 찐 뒤에 밥상에 ‘하늘소금’을 한 종지 함께 올립니다. 이 소금을 즐겁게 누리면서 하루를 기쁘게 가꿉니다. 2016.6.2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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