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 - 음식으로 바꾸는 세상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0
박성규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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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8


입시로 바빠도 밥살림 배워 보자
―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
 박성규
 철수와영희, 2018.6.18.


먹는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 있는 주제지만, 잘 살펴보면 “새로 나온 메뉴를 반값에 판다더라”, “어떤 연예인이 2주 동안 레몬만 먹고 살을 뺐다더라”, “요즘 이 음식이 뜬다더라” 같은 단순 정보 전달이 대부분이죠. 나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왜 좋아하게 됐는지, 무슨 추억이 깃들어 있는지 같은 말은 듣기가 어렵지요. (11쪽)


  ‘혼밥’이라는 말이 처음 퍼질 무렵 어떤 분은 낱말을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혼자 밥을 먹는 삶이나 모습을 이만큼 잘 나타낸 낱말은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시나브로 ‘함밥’이라는 말이 퍼집니다. 혼밥하고 맞물리는 함밥일 텐데, 함밥은 밥을 함께 먹는 삶이나 모습을 나타냅니다. 아무래도 이 낱말을 놓고도 못마땅해 할 분이 있으리라 느껴요. 그런데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생각도 마음도 곱게 흐르기를 바라는 알맞춤한 낱말이 될 테지요.

  앞으로는 어떤 밥 이야기가 움틀 만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밥살림을 놓고 어떤 이야기를 지으면서 서로 생각을 나눌 만할까요? 오늘날 어린이나 푸름이는 날마다 어떤 밥을 맞이하면서 몸하고 마음을 가꿀까요?


음식에는 단순한 생존 유지뿐만 아니라 사랑, 관계, 환경, 평화 같은 다양한 가치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건강 문제 때문에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가 환경 운동가로 변신하거나, 전 세계의 불평등한 밥상에 분노해 세계 기아 퇴치에 앞장서기도 하죠. (54∼55쪽)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박성규, 철수와영희, 2018)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밥에 눈길을 두도록 이끕니다. 아침저녁으로 맞이하는 밥이지만 정작 밥살림을 깊이 들여다볼 겨를이 적거나 없을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그냥 먹지 말고 생각하면서 먹어 보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에 숱하게 떠도는 ‘먹는 얘기’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푸름이 스스로 돌아보고 짚자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버이가 차려 주니까 먹는 밥이 아닌, 학교에서 마련해 주니까 먹는 급식이 아닌, 몸이 되고 피랑 살이 되는 밥이란 무엇인지 넓게 헤아리면서 배우자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특히 장과 조미료가 획일화되다 보니 어딜 가든 음식 맛이 다 비슷비슷한 느낌마저 들어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다양성이 줄면 재미가 없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면 관심을 두지 않게 되죠. (165쪽)


  학교를 다니느라 바쁘다면 밥 먹을 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라면 ‘공부하느라 바쁘’기에 ‘손수 밥을 지어서 먹자’는 생각을 내기는 매우 어려울 만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험공부가 크다 하더라도 끼니를 굶으면서 시험공부를 할 수 없어요. 아침저녁으로 어김없이 수저를 들어야 합니다. 수저를 들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겠지요. 설거지뿐 아니라 밥상을 치우고 부엌도 갈무리해야 할 테고요. 이뿐 아니라, 한끼를 누렸으니 끝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음 끼니를 헤아려야 합니다. 손수 짓든, 가게에서 사오든, 집이나 학교에서 먹을거리를 장만하거나 손질하거나 다루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기에 먹을거리는 ‘땅이 아닌 가게’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굳이 밀씨를 심어서 돌보아 거두지 않아도, 또 밀가루를 알맞게 개고 반죽을 하지 않아도, 발효나 굽기라는 품을 들이지 않아도,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가볍게 빵 한 조각 사서 배를 채울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때에 생각할 노릇이겠지요.

  가볍게 사다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은 무엇일까요? 가공식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요? 첨가물이란 무엇일까요? 라면에는 어떤 첨가물이 왜 들어갈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어린이나 푸름이한테는 좀 골이 아플는지 모릅니다만,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는 ‘가공식품 첨가물’ 이야기를 제법 꼼꼼히 다룹니다. 어른들이 식품공장에서 가공식품을 내놓으면서 겉에 밝히는 첨가물에 꽤 어려운 말을 쓰는데, 왜 어려운 말을 쓰는지, 이 어려운 말에 숨은 뜻이 무엇인지 푸름이가 잘 짚을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이런 걸 먹이다니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저렴한 쇠고기 생산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육골분을 먹은 소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갑자기 주저앉더니 다시 일어서지 못했던 거죠. (39쪽)

도대체 왜 플라스틱을 분유에 넣은 걸까요? 이유는 바로 우유 가격 때문이에요. 중국에서는 수익을 위해 우유에 물을 타는 행위가 문제가 되곤 했어요. 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검사 방법이 개발되었죠. 우유 내의 단백질량을 측정하는 거예요 … 단백질은 질소량을 기준으로 측정하는데, 일부 업자들이 바로 이 점을 악용했죠. 우유에 물을 탄 다음 70퍼센트가 질소인 멜라민을 추가해 수치를 높였던 거예요. (41∼42쪽)


  그냥 ‘광우병’이라고만 말할 적에는 어른도 푸름이도 무엇이 말썽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소가 왜 미쳐서 자빠지거나 죽는가를 어른도 푸름이도 모를 만한 요즈음 흐름이에요.
  손수 흙을 만져서 먹을거리를 거두지 않을 적에는 소라고 하는 짐승이 어떤 터전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가는가를 알 길이 없어요. 집에서 닭을 치지 않는 살림이면서 닭고기나 달걀을 마음껏 먹기만 한다면, 이때에도 닭이라는 짐승이 어떤 터전에서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아야 닭으로서도 즐겁거나 아늑한 삶인가를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소는 풀을 먹고 살아가는 짐승입니다. 소는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갓 돋은 풀을 뜯어서 천천히 새김하며 먹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를 햇볕 한 줌 안 드는 좁은 곳에 가둔 채 ‘짐승 뼛가루를 섞은 사료’만 먹여서 키운다면? 오직 풀을 먹는 소한테 ‘동물성 사료’를 잔뜩 먹인다면? 이렇게 키운 소를 잡아서 소고기로 다룬다든지, 동물성 사료만 먹은 소한테서 짠 젖으로 우유를 가공한다면?


사실 우리는 이미 120억 명이 충분히 먹고살 음식을 생산하고 있어요. 엄청난 양의 식량을 만드느라 지구 환경을 마구 훼손하면서요.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누군가는 너무 많이 먹고, 누군가는 식량을 구할 수조차 없죠 …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먹을거리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 주려면 사회가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죠. (176∼177쪽)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밥을 지어 보기를 바라는 뜻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흙을 짓거나 짐승을 돌보아 고기나 젖이나 알을 얻기를 바라는 뜻도 따로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게 텃밭을 일구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아무리 수험공부로 바쁘더라도 때때로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내려놓고서 부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면서 이 책은 때 되면 먹을 수 있는 학교 급식이 아닌, 때에 맞추어 밥을 짓는 사람들 손길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대로 느끼거나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어떻게 흙을 돌보아 먹을거리를 거두는가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눈여겨볼 수 있기를 바라고,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먹을거리를 다루면서 우리 밥살림을 이루는가를 곰곰이 돌아보고 배울 수 있기를 바라지요.


도시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농사는 우리와 먼 이야기가 되었어요. 여러분도 공부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농작물을 키워 보라는 말은 거의 듣지 못했을 거예요. 가까운 가게에만 가도 온갖 채소가 가득한데 왜 사서 고생하겠어요? 그런데 기꺼이 이런 수고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죠. (139쪽)

음식 공부의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함이에요. (66쪽)


  밥 한 그릇을 나누는 길에는 배를 채우는 끼니를 넘어선 훨씬 너른 뜻이 흐른다고 봅니다. 배고파서 먹는 삶이 아닌, 사람으로서 스스로 사랑하려고 짓는 밥살림이지 싶습니다. 오늘 우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집에서 어버이를 거들어 함께 밥을 짓고 치우고 건사하는 살림을 배울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책을 덮고서 호미를 손에 쥐어 볼 수 있다면, 바로 이 작은 손길에서 평등하고 민주가 싹틀 만하지 싶습니다.

  함께 짓고 함께 누리는 밥 한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같이 배우고 같이 돕는 밥살림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이 시험공부에만 온힘을 쏟도록 하기보다, 아침저녁으로 부엌에서 도란도란 살림살이를 익히도록 이끌어 보시기를 바라요. 2018.6.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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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공부를 하려거든 - 3625명의 공부 습관 관찰기
정경오 지음 / 양철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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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54


배움길에 서는 푸른벗한테 들려주고픈 말
―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
 정경오
 양철북, 2018.5.21.


공부의 최종 목표는 순위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6쪽)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잘하게 된 원인’을 설문 조사했는데, 1위가 부모의 신뢰를 들었다고 한다. (14쪽)


  대입 공부를 하는 고등학생을 오랫동안 이끈 교사가 쓴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정경오, 양철북, 201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고등학교 수험생이 대학입시를 어떤 몸짓으로 마주할 적에 저마다 바라는 대로 열매를 얻을 만한가를 짚습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는 수험생은 그냥 잘 나오지 않는다고, 그저 머리가 좋기에 시험성적이 잘 나오는 일은 드물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하더라도 집이며 학교에서 둘레 어른이 따스히 믿고 아끼는 손길을 느끼는 아이가 시험성적도 한결 잘 나온다고 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나서 맞은 문제이건 틀린 문제이건 꼼꼼히 되살피는 아이가 다음 시험에서 한결 나은 점수를 얻는다고 합니다. 학원을 여럿 다니거나 과외를 오래 받기보다는, 수업 시간에 마음을 쏟아서 들은 뒤, 혼자서 차분히 하나하나 짚는 아이가 밑바탕을 단단히 다지면서 바라는 만큼 시험성적을 거두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핸드폰을 공부하기 위해 핸드폰 매장을 한 번 방문한 자가 단지 그것만으로 핸드폰의 원리와 구조 그리고 생산방식을 설명하려고 한다면, 과연 그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16쪽)

한 번 풀고 버리는 문제집은 쓰레기가 되지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 볼 때 그 문제집은 보물이 된다. 교과목 우수상을 놓치지 않는 자연 계열 수학 최상위권자의 공부 습관이다. (57쪽)


  글쓴이는 여러 가지로 빗대어 시험공부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손전화를 다루는데요, 손전화를 사고파는 가게에 슥 찾아가고서 손전화가 어떠한 기계인가를 알 수 없듯이, 배우는 길에서 교과서나 문제집을 슥 훑고서 지식이나 문제를 다 아는 척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는 시험공부에서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든 삶에서 똑같습니다. 어깨너머로 밥짓기를 슥 훑었으니 밥을 잘 지을 줄 알지 않아요. 호미질을 옆에서 슥 훑었으니 밭일을 잘 해내지 않습니다.

  겉으로 슥 구경하면서 알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속으로 파고들어서 두고두고 온몸으로 겪어 보아야 합니다. 품을 들이고 하루를 쓰며 마음을 기울일 적에 시나브로 우리 삶으로 될 수 있습니다.


학교에는 두 종류의 학생들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그것을 친구나 선생님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들이고, 두 번째는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그것을 친구나 선생님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자들이다. (94쪽)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수험생한테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배움몸짓을 어떻게 추스르면 좋은가를 잘 짚는구나 싶습니다. 다만 몇 가지는 아쉽습니다. 굳이 대학바라기를 하지 않는 푸름이한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듯합니다. “공부를 하려거든”이라는 이야기를 오직 대학입시에만 맞추어서 들려줍니다. 시험공부 아닌 삶공부나 살림공부나 사랑공부 이야기는 아쉽게도 한 줄로도 안 나옵니다.

  오늘날 아주 많은 푸름이가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바라기를 하는 길이니, 더 많은 푸름이한테 이바지하도록 이야기를 풀어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푸름이가 대학바라기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안 다니면서 스스로 배우는 푸름이도 제법 많습니다.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다루는 지식을 슬기롭게 배우면서 느긋하게 몸에 붙이려고 하는 푸름이 눈으로 보자면 《행여 공부를 하려거든》은 살짝 따분해 보일 만합니다. 그리고 말씨가 좀 어렵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없는 중국 옛말을 따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좀 많아요.

  조금 더 쉽게, 한결 부드럽게, 더욱 상냥하게 배움길을 돌아보도록 글을 여미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푸름이한테 ‘대학교만이 길이 아니’라는 대목을 짚어서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이름난 몇몇 대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성적을 거두어야 ‘공부를 잘했다’고 할 만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공부란 시험공부만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서울 언저리 몇몇 대학교에 들어가지 않고서 스스로 하고픈 배움길을 누려도 얼마든지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서울대를 다니고 있는 그 학생 왈 : “그래서 야자 시간에 그날 메모한 것들을 다시 총정리하면서 복습해요(웃음).” 우문현답愚問賢答! (157쪽)

대부분의 재수생들이 실패하는 그 이유가 참으로 궁금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학생일 때 그들은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바로 “안되면 재수하죠”였다는 것이다. “저는 다른 재수생들하고는 달라요”라는 말도 빠지지 않고 들었던 말이다. (158∼159쪽)


  배움길에 서는 푸른벗한테 들려주고픈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밥을 지어 볼까요? 밥을 짓는 배움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쌀을 어떻게 얻고, 벼는 어떻게 쌀이 되며, 볍씨는 어떻게 건사하고, 볍씨를 묻을(심을) 흙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고, 흙이 튼튼하려면 마을이 어떠해야 하고, 흙에 깃드는 빗물 햇볕 바람은 어떠해야 하는가부터 찬찬히 짚고서, 어떤 부엌살림을 다루어 밥을 지을 적에 맛난지, 밥을 안칠 적에 어떤 물을 쓸 적에 한결 맛난지, 전기를 써서 단추만 눌러서 짓는 밥이 아닌, 솥이나 냄비를 다루면 어떤 밥맛이 나는지 들을 배워 보면 좋겠어요.

  늘 먹는 밥을 손수 지어 본다면, 푸른벗이 걷는 배움길을 새로 바라볼 수 있지 싶습니다. 덧붙여 늘 마시는 바람을, 늘 마주하는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나 이웃이나 동무를, 늘 맞이하는 아침하고 저녁을, 가만히 되새겨 보면 좋겠어요. 그냥 먹는 밥이 아니고, 그냥 찾아오는 아침이 아니며, 그냥 누리는 보금자리가 아닌 줄 느낄 수 있다면, 시험공부이든 삶공부이든 깊으면서 넓고 새롭게 헤아릴 만하지 싶습니다. 2018.6.2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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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오르는 길
마리안느 뒤비크 지음, 임나무 옮김 / 고래뱃속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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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83


할머니랑 멧꼭대기까지 천천히 오르는 길
― 산으로 오르는 길
 마리안느 뒤비크/임나무 옮김
 고래뱃속, 2018.4.30.


  아이는 어린 사람입니다. “어린 사람”이 아이입니다. 아이는 어릴 뿐, 어른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아이는 어른하고 똑같은 사람이되 어립니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하고 똑같은 마음이 있고 느낌이 있으며 생각이 있어요. 그렇지만 어린 터라 몸으로 쓰는 힘은 어른하고 댈 수 없이 여리지요.

  이야기책 《산으로 오르는 길》(마리안느 뒤비크/임나무 옮김, 고래뱃속, 2018)은 숲짐승을 빗대어 사람살림에서 어른하고 아이가 맞물리거나 어우러지는 자리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오래도록 높은 멧자락을 타고 오르면서 멧꼭대기에 오른 어르신 한 분이 이제 막 앳된 티를 벗으려고 하는 젊은 내기한테 ‘왜 멧길을 오르는가’를 이야기로 가르쳐 주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블레로 할머니는 나이가 아주 많아요.
할머니는 살면서 많은 것을 보았어요.
할머니의 부엌에는 그중 몇 가지가 있어요. (2쪽)


  책을 며칠에 걸쳐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직 많이 어릴 무렵에는 자전거 발판을 못 굴렀습니다. 아니, 자전거 발판 구르기는커녕 자전거에 앉기조차 벅찼어요. 처음에는 자전거에 앉혀서 자전거를 슬슬 끌 적에도 무섭다 울었지만, 이렇게 울다가도 바람이 상긋상긋 얼굴하고 몸에 와닿는 느낌이 시원해서 이내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중에는 발이 안 닿아도 발판을 굴러 보고 싶어하고, 이제는 씩씩하게 자전거를 구르면서 땀을 흘리고 바람을 마실 줄 압니다.

  이야기책 《산으로 오르는 길》은 멧길을 오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멧길도 자전거 타기하고 비슷해요. 아이들은 처음부터 멧길을 잘 오를 수 없습니다. 얼마쯤 걷다가 아주 지칩니다. 다리에 힘이 쪼옥 빠지지요. 아무리 기운을 북돋우려 해도 퍽 어린 아이더러 멧꼭대기까지 오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차근차근 기다리고, 업거나 안아 주면서 멧꼭대기에 오른다면, 이리하여 아이가 멧꼭대기에서 부는 아주 새로운 바람을 쏘여 준다면, 아이는 천천히 꿈을 마음에 심어요. 다음에는 더 기운을 내어 더 높이 올라 보겠노라고. 머잖아 어버이 손을 타지 않고서 홀로 씩씩하게 멧꼭대기까지 올라 보겠노라고.


블레로 할머니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금방 알아차려요.
할머니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가끔 누군가는 그것을 믿지 않지요. (15∼16쪽)

블레로 할머니는 친구를 즐겁게 하는 법을 알아요.
가끔은 노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특히나 작은 발을 가진 친구는 쉽게 지치기 마련이죠. (35∼36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숲짐승 볼레로 할머니는 젊은이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빙긋이 웃으며 기다리면서 지켜보고, 쉬엄쉬엄 멧길을 오르면서 이것저것 함께 돌아보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숲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숲이 우리 삶에서 무엇인지, 풀하고 꽃하고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운 숲에 얼마나 아름다운 새가 노래하는지, 이 아름다운 새는 얼마나 아름다운 하늘을 가로지르는지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몇 주가 흘러요. 룰루는 산을 더 잘 알게 되고……
산이 간직한 비밀들을 스스로 발견해요.
룰루는 산에서 내려오면 서둘러 블레로 할머니에게 달려가요.
산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보물들을 선물했지요. (61∼62쪽)


  이야기책에 나오는 할머니는 어느 날 자리에 눕습니다. 자리에 눕고 나서 더는 멧길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동안 할머니하고 함께 멧길을 오르던 젊은이(또는 아이)는 이제 혼자서 멧길을 오릅니다. 함께 멧길을 오를 적에는 할머니를 믿고 가면 되었으니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 더 깊이 살피지 않았습니다만, 막상 혼자 숲길을 헤치다 보니, 외려 낯설면서 힘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낯설면서 힘든 길에 예전에는 못 보거나 못 느낀 모습을 보거나 느낄 뿐 아니라, 젊은이(또는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새로 키울 수 있습니다. 멧길을 오르고 나서 늘 할머니한테 찾아가서 새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이야기하지요.

  아마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 곁에서 이끌어 주는 고운 어른이 있었겠지요. 고운 어른 곁에서 숲길을 익히고 멧길을 배우면서 삶길도 새삼스레 받아들였겠지요.

  서둘러 배우지 않습니다. 높든 낮든 멧꼭대기까지 빨리 오르지 않습니다. 빨리 가르치거나 다그치듯 가르치지 않아요. 느긋하게 가르치고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좀 느리게 배우는 아이들한테 ‘빠르기는 대수롭지 않단다. 둘레를 살피면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넉넉히 헤아릴 줄 알면 돼’ 같은 마음을 밝혀 주지 싶어요.

  오늘은 노래하면서 걷습니다. 이튿날은 춤추면서 걷습니다. 이다음에는 목 좋은 데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쉽니다. 이렇게 두고두고 찬찬히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어느 날 비로소 꼭대기까지 오릅니다.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인 줄, 즐겁게 나누며 함께하는 사이인 줄, 어른하고 아이는 서로 아끼는 사이인 줄 다시금 되새깁니다. 2018.6.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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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 어린이를 위한 하종강의 노동 백과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1
하종강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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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5


일하는 보람을 즐겁게 가르칠 학교
―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하종강 글·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8.3.30.


노동자들은 회사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기업과 동등한 관계에서 일정한 계약을 맺어 열심히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 존재라는 거죠. (21쪽)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유럽 나라들은 수영 코치랑 대학교수 월급이 비슷해요. 벽돌 기술자나 트럭 운전수나 의사 수입이 크게 차이가 안 나요. 자연히 교육 문제로 안달복달하지 않아요. 대학에 안 가도 넉넉하게 살 수 있으니까 입시지옥 따위가 없는 거죠. (28쪽)


  우리는 누구나 일을 합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일을 합니다. 모두 일이지만 어느 일은 일삯을 받고, 어느 일에는 일삯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가게에서 밥을 차리는 일을 하면 일삯이 있어도, 살림집에서 밥을 차리는 일을 하면 일삯이 없어요. 때로는 똑같은 일을 해도 사람마다 일삯이 벌어집니다. 일이란 무엇이고, 일하는 값어치니나 보람이란 무엇일까요?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하종강·김규정, 철수와영희, 2018)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마흔한 가지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일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를 이야기하고, 일하는 사람이 누리는 보람을 이야기합니다. ‘노동·근로’라는 낱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노동자·노동권·노동법’을 찬찬히 짚습니다. 앞으로 이 삶터에서 씩씩한 일꾼이 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미리 알아두면 좋을 일 이야기를 다루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노동의 가치를 가르쳐요. 그래서 스스로 노동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인류 역사를 발전시켜 온 중요한 힘이 바로 노동이라고 굳게 믿어요. (30∼31쪽)

실업자에게 생계비를 주면서 끊임없이 교육을 하여 우수한 노동 능력을 갖춘 노동자로 거듭나 다시 취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선진국일수록 발달되었어요. 그런 제도를 만들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요. (56쪽)


  다른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일하는 값어치와 보람’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설마 이를 안 가르칠까요? 어쩌면 이를 가르칠 겨를이 없지는 않을까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살피면 입시를 바라보는 곳이 있고, 취업을 바라보는 곳이 있어요. 한쪽은 ‘일하는 보람’을 다룰 틈이 없이 시험문제를 다루기 바쁘다면, 다른 한쪽은 ‘일하는 보람’에 앞서 더 많은 학생이 더 빨리 일자리를 얻도록 애쓰느라 바쁘다고 할 만해요.

  더 낫거나 좋은 일자리가 있을까요? 일자리를 놓고서 이 일이 더 낫다거나 좋다고 갈라도 될까요? 초등학교 교과서라든지, 중·고등학교 취업안내서를 보면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어떤 일이든 즐겁거나 보람차게 맞아들이도록 북돋우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도시로 가는 일자리를 다루지요. 산업으로 갈라도 3차 산업에 너무 치우치고, 요새는 나라에서 4차 산업을 외칩니다. 바탕에 있는 1차 산업이나 2차 산업은 뒷전으로 밀려요.

  삶과 삶터가 발돋움한 나라에서는 ‘어느 일자리’를 맞아들이든 일삯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이들 나라에서는 ‘어느 배움끈으로 어느 일자리를 맞아들이’더라도 일삯이 안 벌어질 만해요. 대학교 배움끈을 굳이 붙잡아야 하지 않을 적에는 ‘일하는 보람’을 비롯해서 ‘일해서 받는 일삯으로 손수 지을 삶’에 마음을 기울일 만하지요.


OECD에 가입한 나라 중에서 한국은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아요. 부끄러운 일이지요. 한국은 연간 노동 시간도 멕시코 다음으로 2위예요. 한국 노동자가 일을 제일 많이 한다는 얘기예요. 성별 임금 격차도 1위예요. 남자가 받는 임금과 여자가 받는 임금의 차이가 가장 크다는 말이지요.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도 1위예요. (60쪽)

노동자가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결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사회가 올바로 발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사실을 학교에서 제대로 안 가르쳐요. (78쪽)


  한국은 일하는 터전이 매우 나쁘기로 손꼽힌다고 해요. 퍽 오래된 이야기인데 앞으로 좀처럼 나아질 낌새가 없답니다. 이러면서 이주노동자가 무척 많아요. 예전에는 이주노동자가 하나같이 공장노동자였다면, 요새는 시골에서 흙일을 하는 이주노동자가 매우 많습니다. 집을 짓거나 길을 닦는 곳에서도 으레 이주노동자라지요. 바닷가에서 김을 훑거나 김을 다루는 곳에서도 으레 이주노동자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에서 볍씨를 심거나 나락을 베는 일꾼도 이주노동자가 도맡을 수 있어요.

  우리 어른은 어떤 일을 할 적에 즐겁거나 보람찰까요? 우리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앞으로 어떤 일을 이 나라 어른한테서 물려받아서 할 적에 즐겁거나 보람찰까요?

  일하는 보람이 없이는 일하는 권리를 헤아리기 어렵지 싶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보람을 누리지 못한다면 삶터도 나라도 넉넉하거나 아름답기 어려울 테고요. 앞으로 우리 삶터하고 나아갈 길이라면, ‘더 많은 일자리’ 아닌 ‘즐거운 일자리’요, 스스로 제 마을이나 고장을 아낄 줄 아는 마음으로 맞아들일 일자리여야지 싶습니다.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려고 회사에 뭔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부터 막아 버리는 아주 나쁜 제도가 비정규직 제도예요. (100쪽)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868만 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45퍼센트예요. 그런데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등 실질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통계에서 제외되었으니 비정규직 비율은 50퍼센트가 넘을 거예요.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48만 원으로, 정규직 평균 임금 297만 원의 절반가량이에요. (101쪽)


  학교는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일하는 보람’을 즐겁게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돈을 더 얻는 일자리가 아닌, 스스로 삶을 가꾸는 길에 즐겁게 맞아들일 일이란 무엇인가를 학교하고 마을하고 집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하는 보람을 함께 나눌 적에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얄궂은 사슬을 푸는 실마리를 찾을 만하지 싶습니다. 일하는 보람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푸대접이나 따돌림이나 서울바라기를 그치기란 어렵지 싶습니다.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우리 어른도 찬찬히 새롭게 새겨서 우리 일터가 아름다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어른부터 보람차게 일하고, 앞날을 일굴 아이들이 아름답고 상냥하며 즐거운 일터·일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5.1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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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소년, 수피가 사는 집 라임 청소년 문학 32
자나 프라일론 지음, 홍은혜 옮김 / 라임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푸른책과 함께 살기 136


수용소에서 태어난 로힝야 아이는 ‘DAR-1’
― 로힝야 소년, 수피가 사는 집
 자나 프라일론 글/홍은혜 옮김
 라임, 2018.4.5.


“수피,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네! 오늘 점심은 유통 기한이 12일밖에 안 지났어.” (12쪽)

엄마는 NAP-24이고, 퀴니 누나는 NAP-23이다. 나는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번호가 달랐다. DAR-1이 내 번호인데, 이곳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기라서 1번이 붙었다. (19쪽)


  푸른문학 《로힝야 소년, 수피가 사는 집》(자나 프라일론/홍은혜 옮김, 라임, 2018)을 읽으며 ‘로힝야’가 어떤 이름인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삶인지 아리송합니다. 몇 쪽을 읽다가 ‘로힝야’라는 이름을 누리그물에서 찾아볼까 싶었으나, 책에서 실마리를 풀자는 생각으로 그대로 읽어 봅니다.

  유통 기한이 한참 지난 먹을거리를 받아서 먹는다는 대목, 어머니 누나를 비롯해 아이한테 이름 아닌 ‘번호’가 붙는다는 대목, 학교를 다니지 않고 아무것도 배울 길이 없다는 대목, 한식구가 함께 지낼 수 없도록 뿔뿔이 흩어 놓기도 한다는 대목을 읽으며, 아무래도 만만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누아는 퀴니 누나의 진짜 이름인데,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미얀마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당나귀 이야기, 바다에서 헤엄치던 이야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 이야기 같은 거였다. 그리고 옛날 옛적부터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로힝야족 이야기도 들었다. (43쪽)

아무도 수용소 바로 앞에 있는 바깥세상의 이야기는 해 주지 않았다. 그곳이 어떤지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107쪽)


  《로힝야 소년, 수피가 사는 집》을 어느 만큼 읽으며 ‘수용소살이’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깨닫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수용소살이라니? 지구별 어느 곳에서 수용소살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한국은 아직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는 군인이 잔뜩 있고, 다른 나라에도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휴전으로 흐르는 나라가 있고, 내전이나 전쟁이나 분쟁으로 흐르는 나라가 있으며, 난민이나 피난으로 힘겨운 나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힝야하고 수용소는 어떤 사이일까요? 책을 끝까지 읽고서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볼 즈음 《식민지의 사계》라는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식민지의 사계》는 조지 오웰 님이 ‘버마’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영국하고 제국주의 총부리에 눌린 식민지’는 어떤 사이인가를 덤덤하면서 씁쓸하게 풀어냅니다.

  영국은 퍽 오랫동안 인도이며 버마이며 뭇나라를 제국주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이러면서 영국사람 스스로 이 식민지를 다스리지 않았지요. 어느 한 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적마다 ‘이웃한 작은 부족·나라’를 끌어들여 이들이 다스리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른바 ‘식민지 사람이 다른 식민지 사람을 다스리는 꼴’인 얼거리입니다.


총 여섯 명이 바닥에 드러누웠는데, 모두 입술을 꿰매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온몸이 마구 떨렸다. (158쪽)

우리가 씨앗을 심어도 경비원들이 아무 말을 안 할까? 채소를 두세 가지만 심어도 좋을 텐데. (166쪽)


  버마에서 미얀마로 이름을 바꾼 나라에서 ‘로힝야 겨레’를 마구 죽이거나 괴롭히거나 내모는 뿌리를 살피면 ‘제국주의 영국이 로힝야 겨레를 내세워 버마를 식민지로 다스린 탓’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버마·미얀마는 영국한테 억눌린 아픔하고 슬픔을 영국한테 풀지 않고 로힝야 겨레한테 푸는 셈이지요. 영국은 버마에서 단물을 잔뜩 빼 가면서도 뒷일은 로힝야 겨레한테 떠넘기고 뒷짐을 지는 셈입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버마·미얀마한테 ‘인종청소·인종학살’을 멈추라고, ‘로힝야 수용소’에까지 폭력 살인 강간을 저지르는 짓을 그만두라고 밝힌다지만, 버마·미얀마는 이를 멈추지 않고 그칠 생각이 없다고 해요.

  처음에는 제국주의 영국이 보금자리를 빼앗아 버마로 삶터를 옮겨야 한 로힝야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가 저문 뒤에 버마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맞아죽거나 떠밀리면서 다시 삶터를 옮겨야 했는데,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수용소에 갇힌 삶인데, 수용소에서 사람된 권리가 하나도 없이 시달린다고 해요.

  제국주의 시대가 저문 뒤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낳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국주의 유럽이 저지른 식민지 부스러기는 앞으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얼마나 더 고름이 터지면서 아픈 일로 이어가야 할까요?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조용해지자 누나가 아빠의 시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로힝야 말로, 그다음에는 영어로. 덕분에 나도 무슨 뜻인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떨어지는 별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진실을 속삭일 때 / 텅 빈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닿을 때 / 너는 그곳에 있을 거란다. / 바다가 불러 준 노래와 세상의 마음을 바람이 어루만져. / 그늘 속에 흐트러뜨린 채 숨겨 놓아도 / 나는 너를 볼 수 있단다. / 우리는 날개를 펼치고 영원한 집으로 날아갈 거야. / 다 함께 날아갈 거야.” (228쪽)


  《로힝야 소년, 수피가 사는 집》은 어느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맞이하면서 살아가는가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수용소 바깥살이는 한 번도 보거나 겪은 적이 없는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할는지를, 또 수용소 곁에 있는 가난하고 작은 마을 사람들은 수용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수용소 감시원으로 있으면서 수용소 사람들을 늘 괴롭히는 이들은 스스로 어떤 삶인가를 아울러 짚습니다.

  그나저나 영국은 왜 로힝야 이야기에 온몸을 다 뺀 채 아무 말이 없을까요? 영국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를 제국주의 식민지로 억눌렀던 이들은 오늘 어떤 삶을 누리는가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날을 보냈던 한겨레는, 앞으로 남북 평화로 나아가야 할 이 나라는, 전쟁·식민지·제국주의를 어떻게 씻거나 털면서 이웃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때에 아름다운 살림이 될까요? 2018.5.1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청소년문학/푸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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