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바닷가 어느 교실 자꾸자꾸 빛나는 8
최종득 지음 / 양철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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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4


《시가 있는 바닷가 어느 교실》

 최종득

 양철북

 2018.10.19.



지금까지 경민이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엎드려 있는 경민이에게 시를 발표해 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경민이는 발표할 수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4쪽)


입으로는 부끄러워서 외롭다고 말을 못 했지만 정식이는 시로 친구들에게 자기 마음을 말했다. (77쪽)


국어과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학습목표를 곰곰이 따져 보면,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내는 말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 시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재미있는 표현이나 생각을 찾을 수 있는 자료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 (94쪽)


아이들 대부분이 논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했다. ‘너무 어려 논에서 일하기 힘들겠지’ 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싸해진다. 농촌에 살고 있다는 것 말고는 도시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78쪽)



  아이들이 동시를 읽고 자랄 수 있으면 삶을 새롭고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스스로 사랑스러운 숨결이 될 만하지 않으랴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썼거나 쓰는 동시를 살피면, 삶을 새롭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글이 드뭅니다. 고단한 입시지옥 굴레에서 허덕이는 글투성이에다가, 말재주나 말장난을 부리는 글범벅입니다.


  우리 삶자리가 메마르거나 팍팍하다면 이 두 갈래 동시가 넘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오늘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어린이가 꿈을 새롭게 지피는 사랑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이끄는 길도 갈 수 있어야지 싶어요. 이러면서 어린이 스스로 오늘을 꾸밈없이 보고 모레를 새롭게 그릴 수 있는 글(시)을 쓰도록 이끌기도 해야지 싶습니다.


  《시가 있는 바닷가 어느 교실》(최종득, 양철북, 2018)은 시골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분이 어린이한테 스스로 삶을 시로 쓰면서 슬픔은 슬픔대로 씻고 기쁨은 기쁨대로 나눌 수 있도록 가르친 발자취를 꾸린 책입니다. 어른들이 쓴 동시도 더러 읽히는 동시 수업을 하지만, 이보다는 어린이마다 저희 삶을 그대로 마주하면서 고스란히 적을 수 있도록 이끈다고 해요. 글솜씨를 키우려는 시쓰기가 아닌, 마음을 나누면서 생각을 펴도록 돕는 시쓰기예요.


  그런데 ‘국어과 교육과정’부터 말재주나 말장난을 동시로 여겨서 가르치도록 나온다고 합니다. 시골 바닷가 초등학교 교사는 이 대목을 안타까이 생각합니다. 시골 아이는 시골 아이다우면서 더욱 씩씩한 아이로, 서울 아이는 서울 아이다우면서 더욱 밝은 아이로 자라도록 이끄는 시를 얘기하고 배우며 스스로 쓰도록 북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이들한테 시를 가르치고 쓰도록 이끄는 교사 스스로 아이들한테서 늘 삶을 새로 배운다고 해요. 아이들이 시 한 줄에 털어놓는 마음을 읽으면서 스스로 얼마나 모자란 어른인가를 돌아본다지요. 아이들이 마음으로 삶을 시로 쓸 적에, 이녁도 아이들 곁에서 새마음이 되어 시를 쓸 수 있다고 합니다. 함께 쓰고 함께 읽는 시요, 같이 쓰고 같이 읽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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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도 그래 - 지금 여기, 10대들의 속마음
순천신흥중학교 북적북적동아리 지음, 황왕용 엮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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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2


《괜찮아, 나도 그래》

 순천 신흥중학교 북적북적동아리

 황왕용 엮음

 학교도서관저널

 2017.11.30.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감추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과 친해지고 싶어요. 선생님의 감추고 싶은 이야기, 여러분의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을까요? (74쪽)


소중하고 놀라운 일로 생겨난 여러분, 하루가 힘들고 벅차다는 여러분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여러분들 스스로에게도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말해 봅시다. (257쪽)


“딱 너 같은 아들, 딸 낳아 봐라.” 혹은 “우리 아들, 딸 덕분에 정말 행복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나요? 도대체 부모의 마음은 어떤 걸까요? 30년 후 어른이 되어 지금 여러분만 한 자녀를 두었다고 가정하고 편지를 써 보세요. (290쪽)



  꼬투리를 잡거나 따돌림질이 판치는 곳이라면,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기란 어렵습니다. 서로 아끼거나 따스한 손길이 흐르는 곳이라면, 마음을 차분히 털어놓을 만합니다. 집이나 학교 모두 입시지옥이라는 굴레일 적에는, 교사도 학생도 마음을 그대로 보이기가 어렵겠지요. 집이며 학교이며 마을이며 어깨동무하는 즐거운 터전이 된다면, 어른도 아이도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면서 어깨동무를 할 테고요.


  메마르거나 딱딱한 곳이라면 마음을 열어 글 한 줄을 쓰기 어렵습니다. 이때에는 속내를 감추면서 짐짓 꾸미거나 치레하는 글만 쓸 수 있을 뿐입니다. 부드러우면서 포근한 곳이라면 마음을 열어 글 한 줄을 쓰기 쉽습니다. 멋이나 치레에 마음을 쓸 일이 없으니, 수수하거나 투박한 글이어도 함께 즐기면서 나눌 수 있어요.


  《괜찮아, 나도 그래》(순천 신흥중학교 북적북적동아리·황왕용, 학교도서관저널, 2017)는 중학교 푸름이가 마음을 열어 글 한 줄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을 갈무리합니다. 푸름이 누구나 마음에 짐을 얹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쓰기를 이야기합니다.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말로 하기 어렵다면 글로 옮겨서 넌지시 밝혀 주기를 바라고, 이렇게 밝혀 준 이야기를 맺거나 풀도록 돕고픈 뜻을 갈무리해요.


  곰곰이 돌아보면 요즈음 젊은 교사는 푸름이 나이로 학교를 다닐 적에 비로소 글쓰기다운 글쓰기를 처음으로 익혔다고 할 만합니다. 반공 글짓기나 백일장 글짓기 허울을 조금씩 털어내려는 흐름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싹틀 수 있었고, 요즈막에는 이 싹에서 줄기가 튼튼히 오른다고 할 만합니다.


  푸름이 글쓰기란, 멋스러운 글쓰기가 아닌, 속마음을 밝히는 글쓰기입니다. 어린이 티를 살며시 벗고서 앞으로 거듭날 어른다운 삶길을 꿈꾸려고 하는 글쓰기입니다. 이런 글쓰기 나눔길을 작은도시 순천에서 펴는 이웃님이 있으니 반갑습니다. 푸름이가 더 큰 도시를 바라보지 않도록, 제 삶터에서 스스로 튼튼하게 서도록, 동무를 아끼고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스스로 끌어내도록 북돋우는 글쓰기란 아름다운 배움자리가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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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어린이 인문 학교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2
최성각 외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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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2


《고래 어린이 인문 학교》

 최성각·한홍구·이갑용·홍기빈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8.10.30.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게 될 거예요. (34쪽)


40년 동안 역사를 공부한 삼촌이 보기에도 ‘초등학교 교과서의 내용이 너무 복잡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면 너무 외울 것이 많더라고요. (42쪽)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삼촌과 동료 노동자들은 깨달았어요. 우리를 지켜 준 건 경찰도 회사도 아니고 노동조합이었어요. (75쪽)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다 보면 좋은 삶이란 뭘까 생각하게 돼요. (102쪽)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는 어떤 꿈을 마음으로 품어 키울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의를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는 이웃님을 으레 만나는데, 서울뿐 아니라 시골 읍내에 사는 이웃님도, 더욱이 읍내 아닌 면소재지 둘레에 사는 이웃님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데, 웬만한 아이들은 밤 열 시까지도 학원돌림을 한다더군요. 서울을 비롯한 큰도시에서는 밤 열 시도 그리 늦은 때가 아니라 합니다. 그런데 밤 열 시까지 학원돌림을 하는 아이는 중·고등학생이 아닌 초등학생이더군요.


  우리 집 아이들은 저녁 여덟 시쯤 되면 졸립다고 하품을 하고, 늦어도 여덟 시 반이면 불을 다 끄고 꿈나라로 갑니다. 그런데 이웃 또래 어린이는 으레 밤 열 시까지 집에조차 못 오는 채 학원을 돌고 돈다면 …… 우리 집 아이들은 아무래도 또래 동무는 사귀기 어렵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고래 어린이 인문 학교》(최성각·한홍구·이갑용·홍기빈, 철수와영희, 2018)는 꿈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오늘날 어린이한테 조그맣게나마 꿈을 비추어 주고 싶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자그마한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아무리 학교하고 학원에서 돌림질을 받으며 괴롭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삶을 깊이 돌아보자고, 우리가 겪는 이 고단한 나날을 앞으로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자고 말을 걸지요.


  어린이로서는 어깨가 무거워요. 학교하고 학원에서 짊어지는 무게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어린이한테 인문 이야기는 자칫 또다른 짐이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이 인문책을 다시 생각해 본다면, 왜 나라가 아직 민주하고 평등하고 평화가 머나먼 길인지를 바로 어린이가 스스로 배울 노릇이지 싶습니다. 어른들이 이 삶터에서 입시 굴레를 끝장내거나 없애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가 학원돌림으로 바쁜 하루라 하더라도 마음을 살찌우는 인문책을 곁에 두면서 ‘입시 지식’만이 아닌 ‘살림 이야기’를 씨앗으로 담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래야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 어른으로서 이 땅을 새로 일구는 몫을 두 손으로 받아들이면서 낡은 틀을 허물겠지요. 마음에 아름다운 씨앗이 자라야 새어른으로서 이 나라를 슬기롭고 사랑스럽게 가꾸는 일꾼이 되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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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피에로 난 책읽기가 좋아
발레리 제나티 지음, 심지원 옮김, 키미코 그림 / 비룡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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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8


《우리 아빠는 피에로》

 발레리 제나티 글

 키미코 그림

 심지원 옮김

 비룡소

 2007.4.30.



솔직히 말해서 언니 노릇 하기가 이렇게 힘든 날이 많아요. 그러니 나한테 훈장이나 꽃다발을 줘야 마땅하다고요. 숙제도 없애 줘야 하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생각조차 안 하는걸요. (15쪽)


엄마의 불안한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왔어요. “어쨌든 세바스티앙, 피에로가 되는 건 점잖은 일이 아니야!” “바로 그거야. 나는 점잖게 사는 데 질렸다고. 이제 맘껏 웃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 (23쪽)


나도 크면 내 마음에 드는 직업을 고르려고 할 거야. 지루한 일에 평생을 바치고 싶지 않으니까. 또 친구들이 축제에서 아빠나 나를 놀린다면, 그 애들에게 나는 놀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 주면 되지. 그리고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빠라고 말할 거야. 우리 아빠는 맞춤법도 아주 잘 알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 준다고! (58쪽)



  아이는 어버이를 보고 자랍니다. 어버이가 슬기롭게 하루를 짓는 살림길을 걸으면, 아이는 이러한 살림길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느껴서 받아들입니다. 어버이가 바쁘게 몰아치는 하루에 헉헉거리는 쳇바퀴질을 하면, 아이는 이러한 쳇바퀴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느껴서 받아들여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를 낳을 적에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기를 바란다는 꿈이 있었을까요? 어찌하다 보니 아이를 낳았는지, 어버이로서 새롭게 삶길을 가고 싶어서 아이를 바랐는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우리 아빠는 피에로》(발레리 제나티·키미코/심지원 옮김, 비룡소, 2007)는 피에로라는 길을 가기로 다짐한 아버지가 나오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버지는 그동안 ‘남이 시키는 일’만 했다는데, 이제는 ‘스스로 바라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곁님이 ‘돈이 다달이 넉넉히 들어오는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돈을 벌는지 못 벌는지 알 수 없는 일’을 하겠다니 단단히 뿔이 납니다. 이 책에 나오는 큰아이는 아버지가 하고 싶다는 ‘피에로’라는 일이 동무 앞에서 창피하다고 여깁니다.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내키지 않거나 거북하거나 끔찍하거나 못마땅한 일이라 해도 그냥 하면 좋을까요? 돈을 잘 벌 수 있으니 죽는 날까지 꾹꾹 참으면서 돈만 잘 벌면 될까요?


  돈을 얼마쯤 벌는지 모르나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기쁜 일을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남 눈치를 봐야만 삶일는지, 남 눈치가 아닌 우리 마음을 바라볼 줄 아는 삶일는지 하나하나 헤아리면 좋겠어요.


  이 책에 나오는 큰아이는 처음에 아버지 삶길이 살짝 못마땅합니다만, 이는 사회나 학교에서 배우거나 길든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늘 지켜볼 적에 아버지가 얼마나 상냥하고 훌륭한가를 잘 알거든요. 그래서 큰아이도 남 눈치가 아닌 제 마음을 바라보는 길을 어버이 곁에서 차근차근 배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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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수업 - 하이타니 겐지로와 아이들, 열두 번의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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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1


《상냥한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햇살과나무꾼

 양철북

 2018.9.10.



나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바다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절대 질리지 않습니다. (6쪽)


교사도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학교는 그런 장소입니다. 교사 대부분 이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명령이나 강제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까닭은, 그런 교사는 영원히 스스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6쪽)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이 원래 교육의 목적인데, 수업에서 그것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발로 걸어 보려는 아이일수록 문제아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83쪽)


부모니까, 가족이니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코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아이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미사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95쪽)


우리는 돈을 버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문화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78쪽)



  꽤 오래 잊고 지낸 낱말로 ‘상냥하다’가 있습니다. 왜 이 말을 오래 잊고 지냈는지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 낱말을 새삼스레 떠올려 다시 쓰는 동안, 이 낱말을 잊은 까닭을 시나브로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자리가 그닥 상냥하지 않고, 우리 마음이 그리 상냥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릴 적에 학교란 데를 다니면서 ‘상냥하다’라는 낱말은 국민학교 적에만 들었는데, 으레 어른인 교사가 학생인 아이한테 쓰는 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그무렵 아이한테 부드럽게 다가서거나 착한 몸짓인 어른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었어요. 남학교에서 동무 사이에 사근사근한 아이도 매우 드물었고요.


  《상냥한 수업》(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18)을 읽으며 낱말 하나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글쓴이는 아이들 앞에서 ‘상냥하게’ 굴기로 다짐합니다. 윽박지르지 않고, 시키지 않고, 떠밀지 않고, 괴롭히지 않기로 다짐해요.


  자,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교사 가운데 아이한테 싹싹하게 굴기로 다짐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교대 같은 곳에서 교사를 기르면서 아이한테 부드럽게 타이르고 이야기하도록 이끌까요? 우리 삶자리에서 정치나 경제나 문화는 얼마나 사근사근할까요? 공무원이나 시장·군수 같은 이들은 사람들한테 싹싹하게 구나요?


  어느 모로 보면 모두 핑계일 텐데, 삶터가 어지럽더라며 아이를 돌보는 어른으로서 늘 상냥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나라 탓이나 삶터 탓은 그만두고, 상냥한 말씨로 상냥한 살림을 가르치고, 상냥한 눈빛으로 상냥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지 싶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서로 사랑으로 짓는 하루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디나 배움터인 줄 알아채면서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꿈하고 이야기를 함께 짓는 길을 걸어야지 싶습니다. 상냥하지 않다면, 아무래도 주먹다짐이 되겠지요. 상냥길하고 동떨어진다면 주먹질이 되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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