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서 안 좋을 거 없다 - 단단하게 주장하는 어린이 글 글놀이터 1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시흥 작은 모임 연꽃누리 엮음 / 삶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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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5


《솔직해서 안 좋을 거 없다》

 시흥 어린이 글

 삶말

 2019.12.1.



아빠는 사실 어렸을 때 밖에서 논 적이 거의 없다고 하신다. 그 말씀을 나는 믿는다. 아빠가 못 놀았으니까 우리도 못 놀게 하는 것 같다. (양교근 5학년/47쪽)


제가 왜 요리를 배워야 하냐면요. 첫째, 요리를 하면 미래 아내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둘째, 엄마가 요리하기 힘들 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잖아요. 셋째, 제가 혼자 있을 때 제가 밥을 먹을 수 있잖아요. (임우찬 5학년/50쪽)


놀리고 도망가는 남자애들, 어쩔 땐 때리고 도망치는 애들을 때리려고 따라가면 어쩜 빨리 도망가는지 잡을 수가 없다. 놀리고 도망치는 애들은 재미있겠지만 놀림 받는 애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이미경 5학년/74쪽)


친구들의 큰 문제는 단 하나다. 바로 ‘서로서로 욕(뒷담)하기’이다. 친구들과 함께 친하게 다니는데 또 다른 곳에 가서는 서로의 욕을 하고 다니니까 서로를 믿지 못해 더욱 친해질 수가 없는 것 같다. (신윤주 6학년/83쪽)


어른들! 어린이들에게 구박만 하지 마시고 어른들이 먼저 실천해 주시고 어린이들에게 말해 주시면 좋겠어요. 항상 먼저 실천해 주세요. (이은서 6학년/118쪽)


아이들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는 법이므로 아이들끼리 비교하며 누구처럼 되고 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의 학교는 자신에 맞는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 (이주헌 6학년/119쪽)



  숱한 어른이 놓치는 무서운 대목을 하나 든다면, 모든 어른은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뛰놀다가 어린이로 크면서 푸름이를 거치고 어른이라는 자리에 선 숨결인 줄 자꾸 잊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린이 = 불완전한 존재’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일삼지요. ‘불완전한 존재’는 일본 말씨이기도 합니다만, ‘엉성한 숨결’이란 온누리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두어 달 숨결도 어엿이 ‘오롯한 빛’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어린이책이나 푸른책이 꽤 많이 나옵니다.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은 ‘쏟아진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엄청나게 나옵니다. 그렇지만 잘 둘러보셔요. ‘어린이가 손수 그리거나 지은 그림책’은 얼마나 되나요? ‘어른이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책’이 아닌 ‘어린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이웃이나 동무 어린이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은 책’은 얼마나 있는지요?


  2020년 2월 어느 날, 저는 열세 살 어린이가 손수 지은 ‘그림꾸러미’를 어느 ‘그림책 전문 출판사’에 보내 보았습니다. 그림책으로 삼을 만한지 여쭈었어요. 그 출판사에서 대표를 맡는 분은 ‘원숙한 화가’ 그림만 책으로 엮는다고 말하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원숙’한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요? 참말로 온누리 어디에도 ‘원숙’한 그림이란 없습니다.


  엘사 베스코브도, 이와사키 치히로도, 윌리엄 스타이그도, 바바라 쿠니도, 가브리엘 벵상도, 나카가와 치히로도, 닥터 수스도, 리처드 스캐리도, ‘원숙’한 그림인 적이 없습니다. 온누리에서 사랑받는 모든 그림책 지음이는 늘 새롭게 거듭나려애썼어요. ‘무르익은’ 그림이 아니라,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신나게 뛰어노는 마음을 웃음빛하고 눈물빛으로 담아낸 그림일 뿐입니다.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교사들이 땀흘려서 엮은 《솔직해서 안 좋을 거 없다》(시흥 어린이, 삶말, 2019)는 어린이 목소리가 낱낱이 흐릅니다. ‘삶말’이란 이름인 출판사에서는 어린이가 손수 쓴 글을 꾸준히 책으로 묶습니다. 이 출판사는 나라 곳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어린이가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숨결인가를 스스로 배우도록 이끄는 길을 가면서 바지런히 책까지 짓습니다.


  어린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우리 어른은 어린이 목소리에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는가요? 어린이가 바라는 뜻을 ‘나중’이라는 핑계를 들면서 미루지는 않나요? ‘넌 아직 어려’란 말로 자르지는 않나요? ‘네가 아직 사회경험이 없으니 몰라서 그래’ 같은 막말을 일삼지는 않나요?


  어린이는 언제나 마음으로 말을 합니다. 마음으로 글을 쓰고,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이라는 숨빛을 잊거나 잃지 않은 어른이라면, 마흔 살이건 쉰 살이건 일흔 살이건 이 어른도 마음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겠지요.


  마음으로 밥을 짓기에 배불리 먹어요. 마음으로 뜨개질을 하고 옷을 지으니 곱게 차려입어요. 마음으로 살림을 가꾸기에 우리 보금자리가 알뜰해요. 마음으로 사귀고 동무가 되니,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싱그럽습니다. 모두 다 마음이에요. 마음 아닌 일이란 있지 않아요. 이 나라 어른들이 “솔직해서 안 좋을 거 없다”라는 어린이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어요. 정치나 행정을 하지 말고 ‘삶을 사랑하는 길을 어린이하고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걸어가는 살림’을 짓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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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조리 세계사 - 침이 고이는 명작 속 음식 여행
손주현 지음, 이희은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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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4


《요리조리 세계사》

 손주현 글

 여희은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19.6.28.



기록에 따르면 스위스 산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1년에 딱 두 번만 빵을 구웠대. 상상해 봐. 구운 지 6개월 된 빵이라니! (38쪽)


영국인들은 식민지인 아일랜드의 거대한 농장을 빼앗아 콘비프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고 아일랜드인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어. 아일랜드인들은 죽어라 일하면서도 그 좋아하는 콘비프를 맛보지도 못한 채 영국 배에 실어야 했어. (59쪽)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 (네덜란드) 시민들은 성에 갇혀 있느라 굶어죽기 직전이 되었어. 그러자 독립군은 이들에게 빵과 청어를 나누어 주었고, 시민들은 이를 먹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지. (120쪽)


그러다 그리스가 망하고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소시지는 로마로 흘러들어 갔어. 로마 황제는 소시지를 먹어 보고 이렇게 맛있는 것을 일반 시민이 먹는 것은 사치라며 서민들이 소시지를 먹는 것을 금지했다고 해. 부스러기 고기와 피를 버리기 아까워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인데 맛있다는 이유로 금지하다니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없지. (132쪽)



  저는 어릴 적부터 큰고장이 싫었습니다. 참으로 싫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다음에 스무 살부터 아홉 해를 서울에서 살고, 인천으로 돌아가서 큰아이를 낳고는, 그 뒤로 시골로 조용히 깃들었는데요, 이 나라 큰고장은 어디를 가든 느긋하게 쉴 자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어른이라면 가볍게 노닥거리는 자리가 드문드문 있는데, 어린이나 푸름이가 마음을 느긋하게 가누면서 쉴 자리는 눈 씻고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큰고장을 다스린다는 시장이라든지, 서울 여의도나 청와대에서 일한다는 어른치고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흙을 만지고 밟고 풀꽃을 사귀면서 나무를 타고 오르다가 뒹굴뒹굴할 만한 잔디밭을 마련하는 길에 마음이며 돈을 쓰는 사람이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잘 보셔요. 어린이 쉼터가 어디 있나요? 푸름이 놀이터가 어디 있지요? ‘돈을 내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쉰다든지, 동무하고 어울리며 깔깔깔 떠들며 뛰어놀 자리란 이 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린이인문 《요리조리 세계사》(손주현·여희은, 책과함께어린이, 2019)를 읽는 동안 ‘밥차림으로 살피는 세계 역사’보다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누릴 느긋한 놀이터’가 자꾸 생각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이 책에서 짚는 ‘밥차림 세계사’는 하나같이 ‘여느 사람 밥차림’이에요. 수수한 살림에서 태어난 밥차림이 어느새 온누리에 두루 퍼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른바 ‘가난한 서민’이 수수한 밥차림을 누렸다고 할 적에 그무렵 아이들은 들이고 숲이고 바다이고 냇물이고 마음껏 가로지르면서 뛰어다녔어요. 그무렵 아이들은 집에서 차려준 밥도 먹었겠지만, 들이며 숲이며 바다이며 냇물이며, 스스로 풀열매나 풀잎이나 물고기를 손수 찾아서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들하고 숲이 아이들 ‘주전부리 놀이터’였달까요.


  이 책 《요리조리 세계사》가 아쉽다면 바로 이 대목이에요.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밥차림 세계 역사’라면, 들이며 숲이며 바다에서 마음껏 뛰놀던 온누리 아이들이 어떤 주전부리를 어떤 숲에서 어떻게 누리면서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면 좋겠어요. 이 땅에서는 메뚜기나 개구리가 멋진 주전부리였고, 시내에서 낚은 물고기도 주전부리였으며, 감자나 보리에다가 찔레싹이며 들딸기이며 개암이며 참말로 주전부리가 가득가득합니다. 유럽이며 아메리카이며 아프리카이며 아시아이며, 이런 여러 나라 ‘숲 주전부리’를 다룬, 제대로 ‘밥차림 세계 역사’를 다룰 어린이인문은 언제쯤 나올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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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만든 소시지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19
오드랑 지음, 스테파니 블레이크 그림, 이주영 옮김 / 책속물고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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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3

《꽃으로 만든 소시지》
 오드랑 글
 스테파니 블레이크 그림
 이주영 옮김
 책속물고기
 2012.12.15.


리종에게 내 꿈을 이야기하고, 혹시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그리고 리종이 ‘그래!’라고 대답해 주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알았다. 리종이 고기를 안 먹는다니! 그토록 바랐던 꿈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11쪽)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고기를 싫어한다는 걸 엄마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평생 햄, 소시지, 베이컨과 함께 살아왔다. 고기를 만들고 고기를 팔고 고기를 좋아하는 부모님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29쪽)

테오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우리 부모님은 치과 의사이시지만 내가 어금니를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사랑 이야기에 소시지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 (47쪽)

리종의 생각은 정말 멋졌다. 이래서 내가 리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꽃으로 만든 소시지!” 나도 좋은 생각이 떠올라 소리쳤다. 리종이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58쪽)


  저는 고무신을 뀁니다. 다만 이름은 고무신인데 요새는 고무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척척 찍습니다. 날고무로 나온 고무신은 사라졌어도 이름은 그대로 고무신인데요, 이 고무신은 바닥이 얇고 두께도 얇지요. 고무신을 꿰고 걸어다니면 숲에서는 숲흙이며 가랑잎을 한결 짙게 느낍니다. 바위를 척척 타고 멧골을 오르면 바윗결이 발바닥을 거쳐 바로바로 온몸으로 퍼집니다. 고무신을 꿴 채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을 마실할라치면 아스팔트나 시멘트나 돌로 깐 바닥이 매우 딱딱해서 발이 참 고단해 하는 줄 느낍니다.

  시골에서 고무신을 꿰고 풀밭이나 흙길을 거닐 적에는 부딪치는 사람도 스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참말로 시골이나 들이나 숲에서는 호젓하게 다니지요. 이러다가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에 볼일을 보러 나오면 숱한 사람을 스쳐야 하는데, 하나같이 멀쩡한 사람을 툭툭 치고 지나갈 뿐 아니라, 구둣발로 고무신을 밟고서도 말없이 홱홱 지나갑니다.

  우리는 어쩜 이렇게 옆사람 발을 밟고도 거리끼지 않는, 그런 차가운 마음이 될까요? 이 나라 큰고장에서 바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얌전히 있거나 한켠에 가만히 선 사람을 자꾸 툭툭 치거나 밀치면서 가야 할까요?

  어린이문학 《꽃으로 만든 소시지》(오드랑·스테파니 블레이크/이주영 옮김, 책속물고기, 2012)를 읽으며 우리 살림자리를 곱씹습니다. 소시지를 즐기건 고기를 즐기건 좋아요. 풀밥을 즐기건 나물밥을 누리건 좋지요. 저마다 스스로 몸에 맞거나 반가운 밥을 누리면 됩니다. 많이 먹어야 즐거운 사람이 있고, 적게 먹으며 배부른 사람이 있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르게 밥을 누립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밥차림으로 하루를 즐깁니다. 다 다른 사람은 옷차림도 다르겠지요. 생각해 봐요. 가시내이면서 바지를 즐겨입을 만해요. 사내이면서 치마를 즐겨입을 만하지요.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어울리며 아름다워요. 《꽃으로 만든 소시지》에 나오는 아이는 소시지하고 동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이쪽 아이는 ‘소시지’라는 이름인 꿈을 어릴 적부터 키웠어요. 이러면서 저쪽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느낍니다. 이쪽 아이로서는 꿈하고 사랑 두 가지를 함께 짓고 싶어요.

  저쪽 아이도 매한가지입니다. 저쪽 아이는 저쪽 아이 나름대로 꿈하고 사랑이 있지요. 그런데 이쪽 아이가 혼자 끙끙 앓아요. 저쪽 아이는 모두 털어놓고서 둘이 같이 새길을 슬기롭게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이쪽 아이는 오래오래 끙끙 앓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 마음앓이를 밝혀요. 저쪽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그 마음앓이를 상냥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러면서 부드럽게 말하지요. 다음에는 그렇게 혼자 걱정하지 말고 같이 생각하자고 말이에요. 왜냐하면 두 아이 모두 꿈으로 가는 길을 외곬 아닌 ‘사랑으로 짓고’ 싶기에, 서로서로 다른 살림결을 고이 아끼면서 나아갈 뜻이랍니다.

  소시지를 꽃으로 마련하면 얼마나 놀라운 맛일까요? 그러나 누구는 꽃소시지가 안 내키겠지요. 그러면 여느 소시지를 즐기면 돼요. 누구는 그냥 꽃이 좋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그냥 꽃을 즐기면 되어요. 그리고 새롭게 살림빛을 짓고 싶은 또 다른 누구는 꽃소시지를 신나게 지어서 기쁘게 즐기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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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쪽빛문고 8
가도노 에이코 지음,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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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00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

 가도노 에이코 글

 시모다 도모미 그림

 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11.26.



“그래서 건강한 숲의 나무와 풀에게 빌었어. ‘겨울 동안은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들은 봄이 되면 되살아나잖아요. 그 힘을 나눠 주세요’라고. 그리고 숲의 나무를 부드럽고 따뜻한 눈길로 조용히 바라봤어.” (16쪽)


“숲 속의 나무와 풀과 동물들이 좋은 향기가 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풀이랑 잎사귀랑 열매를 가르쳐 줬어. 먹어 보라고. 여자들이 온화한 마음을 보여주니 숲도 따라서 온화한 표정을 지어 준 거지. 이렇게 해서 여자들은 건강해지는 먹을거리를 숲에서 배웠어.” (17쪽)


“여자끼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거 아니겠어? 여잔 늘 행복을 빌거든. 언제 어디서나 말이야 … 옛날에는 걱정거리가 많았으니 마녀도 바빴을 거야. 빗자루라도 타고 날지 않으면 시간 맞춰 갈 수도 없었을걸. 히히히, 우후후, 우히히.” (26쪽)


“마녀는 여러 가지 것들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거든. 예를 들어 나무 속이나 꽃 속에도 신이 있다고 말이지. 그런데 신은 단 하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 (52쪽)



  어릴 적부터 매우 아리송하게 생각한 여러 가지 가운데 ‘마녀사냥’이 있어요. 왜 숱한 사내랑 교회랑 정치권력은 ‘마녀’란 이름으로 ‘똑똑하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상냥하거나 뛰어난 가시내’를 골라서 불로 활활 태워 죽였을까 하고요.


  바로 그 똑똑한 가시내가, 슬기로운 가시내가, 아름다운 가시내가, 상냥한 가시내가, 뛰어난 가시내가, 이 땅을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터전으로 바꾸어 내는 새로운 길을 가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똑똑하고 슬기로운 사람은 이웃을 틀에 가두려 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상냥한 사람은 돈이나 주먹이나 이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뛰어날 뿐 아니라 착한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노래하는 길을 가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마녀란 이름을 얻거나 듣는 이라면 으레 마음눈을 틔운 사람이지 싶습니다. 풀벌레하고 속삭일 줄 알기에 마녀일 테지요. 바람을 타고다닐 줄 아니 마녀일 테지요. 별을 읽고 흙을 읽으며 나무를 돌보고 숲을 사랑할 줄 알기에 마녀일 테고요.


  어린이책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가도노 에이코·시모다 도모미/서혜영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는 어느 날 문득 ‘마녀란 뭘까?’ 하고 궁금한 아이가 얼결에 마녀나라로 ‘몸을 옮겨 찾아가’고는 마녀 할머니한테서 마녀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루를 짓는가 하는 여러 이야기를 듣는 줄거리로 마녀 삶자취를 다룹니다.


  그래요, 마녀란 놀랍고 아름다우며 상냥하고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마녀(魔女)’를 찾아보면 “1. 유럽 등지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녀(妖女). 주문(呪文)과 마술을 써서 사람에게 불행이나 해악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2.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처럼 풀이합니다. 참으로 얼빠진 뜻풀이입니다. 사전 뜻풀이부터 마녀를 그저 나쁘게만 다루니 몹시 얄궂습니다.


  바람을 타고 바람을 읽으며 바람을 다룰 줄 안다면 ‘바람아씨’입니다. ‘바람순이’일 테지요. 사내로서 바람을 알고 읽고 다룬다면 ‘바람사내·바람돌이’가 되겠지요. 바람아씨나 바람돌이는 서울이나 저잣판에서 살지 않아요. 숲에 깃들지요. 왜냐하면 숲이야말로 모든 목숨을 깨우고 살리며 돌보는 빛이 흐르는 터전이거든요. 바람아씨는 숲아씨이자 숲순이입니다. 바람사내란 숲사내이면서 숲돌이예요.


  ‘魔’라는 한자를 억지로 붙일 사람이 아닌 ‘바람·숲·빛’ 같은 이름을 새롭게 붙일 사람이라고 느껴요. 이러한 얼거리를 진작부터 읽은 가도노 에이코 님은 《조조 할머니의 마녀 수업》뿐 아니라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이야기를 엮어내었습니다.


  바람아씨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숲아씨는 모든 목숨을 보살핍니다. 빛아씨는 이 별에 새롭고 따스한 기운이 흘러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꿈꿉니다. 우리 모두 바람하고 숲하고 빛이 하나로 모으는 눈길하고 손길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나 곱다시 흐르는 노래하고 춤으로 즐거운 살림터를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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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다! 작다! 알쏭달쏭 이분법 세상 3
장성익 지음, 이윤미 그림 / 분홍고래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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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19


《크다! 작다!》

 장성익 글

 이윤미 그림

 분홍고래

 2018.11.16.



곡물 기업과 농약 기업과 종자 기업 등이 서로 힘을 모으는 식이지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종자에서 식탁에 이르기까지 먹거리의 모든 과정을 더욱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함입니다. (43쪽)


경제성장을 나타내는 지표에는 전체 생산 활동에서 자연이 담당하는 몫이 빠져 있습니다. 또 청소·빨래 등과 같은 가사 노동,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과 같은 이른바 돌봄 노동, 농업이나 수공업 등에서 더러 보듯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자급 노동 ……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69쪽)


엘살바도르는 가난합니다. 성장주의 경제 논리에 따르자면 외국 자본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투자는 필요없다고 선언했습니다. (73쪽)


한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주류 집단일수록 소수자와 약자들을 뭔가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사람, 잠재적으로 위험하거나 불순한 집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쌓아 놓은 기득권 체제에 위협이나 걸림돌이 되리라고 판단해서지요. 하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변화는 소수자나 약자들이 기존의 주류 질서와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08쪽)



  온누리에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없습니다. 온누리에는 좋은 길도 나쁜 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온누리는 모두 다르면서 하나인 빛이거든요.


  곰곰이 보면 옳은 길이나 그른 길이란 없습니다. 무엇이든 배우는 길입니다. 이 길로 가면서 이 삶을 배우고, 저 길을 가면서 저 삶을 배워요. 다만, 어느 길을 가든 그 길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되어요. 어느 한켠으로만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넋으로 저마다 다른 삶을 짓기에 어깨동무를 하는 슬기로운 마음을 찾을 노릇입니다.


  키가 크대서 힘이 더 세야 할까요? 나이가 많대서 말을 더 많이 해야 할까요? 《크다! 작다!》(장성익, 분홍고래, 2018)는 우리 삶터에 감도는 틀에 박힌 눈길이 무엇인가를 짚으려 합니다. 그래요, 틀에 박힌 눈길이지요. 틀에 박혀서는 배우지 못합니다. 틀에 박히니 쳇바퀴는 돌 줄 알지만 새로운 일이나 놀이로는 다가서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만해요. 쳇바퀴로도 달삯을 받고, 쳇바퀴로도 먹을거리를 얻어요. 그러나 쳇바퀴를 돌면서 스스로 짓는 삶은 없어요. 늘 똑같지요. 이러다 보니 쳇바퀴질을 끝내야 하는 때인 정년퇴직을 앞두고 다들 돈을 그러모으려고 용쓰더군요. 쳇바퀴질 말고는 스스로 할 줄 아는 재주가 없으니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으려고 하면서 꿍셈을 키우고 뒷돈을 주고받는구나 싶어요.


  왜 서울이든 시골이든 막삽질이 안 끊어질까요? 쳇바퀴질 벼슬아치가 조금이라도 더 뒷돈을 챙기려는 뜻이잖아요. 왜 거님돌을 끝없이 갈아치울까요? 그런 짓을 해서 나라돈을 써야 벼슬아치 주머니에 뒷돈을 챙기니까요.


  모든 자리에서 틀을 깨지 않고서야 즐거울 수 없습니다.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여느 어버이도 어린이도, 그리고 이러한 책을 쓰는 분도 틀을 깨야지요. 《크다! 작다!》에서 한 가지 아쉽다면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딱딱하고 어려운 말씨가 너무 많아요. 한결 부드럽게, 쉬운 말씨로, 스스로 어린이 자리에 서면서 이야기를 여미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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