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파워를 깨워라
도린 버츄.찰스 버츄 지음, 여연 옮김 / 샨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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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2



아이들 맑은 목소리에 어른들이 마음 열기를

― 인디고 파워를 깨워라

 도린 버츄·찰스 버츄/여연 옮김

 샨티, 2018.3.5.



그들은 온몸으로 부정직한 것에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인디고 아이들이 과도하게 활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 어떤 인디고 아이는 사기꾼 예술가를 즉시 가려낼 수 있다. 설령 어른들이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려 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 사람의 에너지는 인디고 아이를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아이는 고통의 원인을 피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12, 13쪽)


때로 우리의 에고는 뭔가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내려면 나이를 더 먹거나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줄리아는 나이나 학력과 상관없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아주 멋진 본보기이다. (27쪽)



  ‘인디고(indigo)’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쪽빛’을 뜻한다지만, 쪽빛으로만 쓰지 않습니다. “인디고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도 씁니다. 여느 아이들하고는 사뭇 다른 숨결로 태어난 아이한테 “인디고 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요.


  인디고 아이 이야기를 담은 《인디고 아이들》이라는 책이 지난 2003년에 한국말로 나온 적 있습니다. 《인디고 파워를 깨워라》(도린 버츄·찰스 버츄/여연 옮김, 샨티, 2018)는 어느새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란’ 그 인디고 아이들이 삶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를 차분히 짚는 책입니다.



어떤 나이든 상관없이 인디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인디고들이 1970년대 중반 이후로 태어났다. 이 시기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 1970년대에 태어난 인디고들이나 그 뒤에 태어난 인디고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이 자신이 가진 직감을 신뢰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나침반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38, 39쪽)


인디고들은 솔직하지 않거나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존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 인디고들은 자신의 느낌과 반대되는 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벌을 받는 편을 택한다. (76쪽)



  옳지 않은 일을 앞두고 “옳지 않아!” 하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많지 않으나 씩씩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한국말로 ‘씩씩하다’가 있군요. 숱한 사람들이 입을 다물더라도 나설 줄 아는 사람은 ‘씩씩하다’고 하지요. 몸이 여리거나 몸집이 작아도 드세거나 우람한 몸집인 어른 앞에서 제 할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란 더할 나위 없이 씩씩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고 싶어요.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씩씩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씩씩한 아이를 볼 적에 어떻게 하나요? 아이가 씩씩하기에 대견스레 바라보는지요, 아니면 어리거나 여린 녀석이 당돌하다면서 눈을 감거나 윽박질러서 물리치나요?


  “나도 말할래!”라고 하면서 ‘미투’ 바람이 붑니다. 그동안 입을 다물던 목소리가 하나둘 터져나옵니다. 아니 그동안 입을 열었어도 우리 어른들이 거의 안 듣던 목소리가 이제 하나둘 곳곳에 흐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무척 많은 어른들은 “인디고 아이들”을 비롯한 씩씩한 사람들 목소리를 귀여겨듣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얕보거나 깔아뭉개기 일쑤였습니다. 귄위하고 권력, 여기에 신분하고 계급, 여기에 나이하고 학력, 여기에 남성이라는 가부장제, 이밖에 여러 가지를 내세워서 작고 낮지만 씩씩한 목소리를 걸어잠근 얼거리였다고 느낍니다. 씩씩한 아이가 설 만한 터가 거의 없었다고 느껴요.



인디고들은 언제나 자신의 진실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어줄까? 아니면 인디고들의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에 소통의 문을 닫아버릴까? 그렇지만 인디고들이 단호하면서도 배려 있는 태도로 말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83쪽)



  《인디고 파워를 깨워라》라고 하는 책은 인디고 아이들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겪은 삶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인디고 아이들 스스로 조금 더 삶을 배우고 한결 부드러우면서 차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들려줍니다. “옳지 않아!” 하는 목소리를 우리 어른들이 조금 더 귀여겨듣도록 하자면, 인디고 아이들도 애써야 한다는 대목을 조용히 짚어요.


  그런데 이런 줄거리를 읽다가 살짝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아니, 이런 매무새는 인디고 아이들한테만 바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하고요. 이웃을 더 살피거나 헤아리는 말씨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매무새란, 모든 어른이 갖출 매무새가 아닐까요? 우리는 저마다 곱고 상냥하며 즐겁게 삶을 가꾸면서 마을을 돌볼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참말로 누구나 고우며 상냥한 말씨로 이웃을 더 넉넉히 헤아려야 슬기로운 어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까요?



비유해서 말하면 인디고 아이들은 바위를 들어 올려서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커튼을 걷어서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려고 온 거예요. 빛의 일꾼들이 이 세상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141쪽)


모든 사람이 자기 몸에 무엇을 집어넣고 있는지 알아야 하겠지만, 특히 인디고들은 더 그렇습니다. 인디고들은 아주 예민하고, 뭐든 해로운 것에 아주 격렬히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인디고들에게 먹어도 좋다고 허락하는 음식이 무엇이든 그것이 가장 높은 진동을 가진 음식임을 확인하고 먹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24쪽)



  《인디고 파워를 깨워라》를 읽는 동안, 어쩌면 저도 인디고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는지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1975년에 태어나 자라는 동안 숨통이 꽉 막힌 집안이며 마을이며 학교이며 사회를 느꼈습니다. 숨통이 꽉 막힌 모든 곳에서 “그건 옳지 않은걸요?” 하고 한마디를 하면 언제나 꿀밤을 맞았고, 군대에서는 숱하게 발길질을 받았으며, 술 먹이는 웃사람한테 술 그만 먹이라 하니 갖은 거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궂은 짓을 하는 어른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아요?” 하고 따질 적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같은 대꾸를 들어야 했어요.


  느끼는 그대로 옳지 않다고 말할 적에 이 목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른을 거의 못 보며 살았습니다. 어딘가 틀리거나 어긋난 모습을 보았기에 그 대목을 좀 고치자고 말할 적에 이를 그때그때 받아들이는 어른을 좀처럼 못 보며 살았습니다. 어쩌면 무척 많은 ‘여리거나 어린 이웃’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겠구나 싶습니다.


  참을 참이라고 말할 줄 아는 매무새는, 인디고 아이들한테서만 엿볼 모습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건사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을 보면 거짓이라고 말하는 매무새도, 인디고 아이들한테서 흔히 엿보는 모습으로 그칠 노릇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갖출 매무새여야지 싶어요.린 이웃’들이 이러한 길을 걸었겠구나 싶습니다.



낮은 에너지에 중독된 이 세상은 높은 진동수를 지닌 존재를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런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 자신이 됨으로써, 물어야 할 것을 물음으로써, 어떤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함으로써 뭔가를 믿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248쪽)



  꽃처럼 맑은 아이들이 언제나 꽃처럼 맑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디고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도, 인디고 어른들도 수수한 어른들도 모두 상냥하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이 땅과 나라와 마을을 사랑으로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힘을 즐겁고 슬기롭게 쓰기를 바라요. 어른들은 더욱 따사로운 눈길하고 손길이 되고,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넉넉하고 환한 이야기꽃을 물려받을 수 있기를 바라요. 2018.3.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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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배달부 키키 2 - 키키와 재채기약 마법 마녀배달부 키키 2
가도노 에이코 지음, 히로노 다카코 그림, 권남희 옮김 / 소년한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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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64



만화영화에는 안 담긴 동화책 이야기

― 마녀 배달부 키키 2

 가도노 에이코 글

 히로노 다카코 그림

 권남희 옮김

 소년한길 펴냄, 2011.10.25. 12000원



  ‘마녀 배달부 키키’는 만화영화로도 나왔습니다. 아마 무척 많은 분이 만화영화로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만화영화로 찍은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가도노 에이코/권남희 옮김 소년한길, 2011)는 얼마나 많은 분이 읽었을까요?



어쩐지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변에서 마법은 점점 약해지고 종류도 줄어드는 것만 같습니다. 마법이 사라지는 것은 캄캄한 밤과 정적이 없어진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8쪽)


‘그렇지만 내가 나는 건 빗자루 때문이 아니야. 마녀니까 나는 거야.’ 키키는 자신의 힘을 믿고 싶었습니다. (34쪽)


“마녀라면 뭐든 할 줄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게 단정 지으면 제가 힘들어져요. 전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요. 코끼리도 저렇게 큰 몸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갇혀 있기만 하면 불쌍하잖아요.” (50쪽)



  《마녀 배달부 키키》는 가도노 에이코 님이 1984년에 처음 써서 2009년에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모두 여섯 권입니다. 여기에 2017년에 한국말로 옮긴 뒷이야기까지 더해 일곱 권이지요.


  만화영화는 동화책 첫째 권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몄습니다. 둘째 권부터 흐르는 이야기는 만화영화에 없어요. 동화책으로 키키를 만나면 만화영화로는 미처 담지 못한 한결 너르며 깊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키키는 때때로 마녀지팡이를 안 쓰고 걸어요. 하늘에서 보는 마을이나 숲하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으며 보는 마을이나 숲은 사뭇 다른 줄 어느 날 문득 느꼈거든요. 그리고 하늘을 날 적에는 언제나 혼자요 고양이하고만 말을 섞지만,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걸을 적에는 마을 이웃이나 동무를 만나고, 숲에서 온갖 푸나무하고 짐승하고 새를 만나서 새롭게 배운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마녀잖아요? 마녀는 여러 가지 사물들의 노래와 말을 들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돌멩이의 노래나 허수아비의 수다 같은. 난 얼마 전에야 겨우 나무의 노래를 듣게 됐어요. 이런 산속에 살면서 매일 바라보고 귀를 기울였더니 그렇게 됐죠.” (81쪽)


“있지, 바람이란 건 말이야, 형태가 있어.” “뭐, 형태? 어떤?” (102쪽)


“마녀의 검은색 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들어 있단다. 옛날부터 사람들의 소원을 되도록 다 들어주었던 마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이야.” (150쪽)



  동화책에 나오는 키키는 앳된 티를 차츰 벗으면서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입니다. 여섯 권에 이르는 동화책을 살피면 키키는 어느새 어른 키키로 자라고, 저를 낳은 어머니처럼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아이를 낳아 돌보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키키는 제 어머니가 저를 바라보며 느꼈을 마음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마녀로 태어나서 마녀라는 살림을 물려주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요.


  마을에서 사는 사람 가운데 마법을 쓰는 사람은 오직 마녀입니다. 마녀는 해가 갈수록 숫자가 줄면서 사람들은 마법을 쓰는 마녀를 차츰 잊을 뿐 아니라, 마녀를 차츰 잊으면서 ‘꿈’도 함께 잊는다고 해요. 도시는 커지되 새롭게 꿈을 키우는 마음이 줄어든다고 할까요.


  만화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으나 동화책에서 다루는 키키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줄거리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왜 꿈을 잊거나 잃는지를 건드리고, 사람들이 꿈을 잊거나 잃으면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는가를 짚습니다. 이러한 얼거리에서 키키가 새롭게 짓고 싶은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보여주고, 키키하고 짝을 맺는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수수한 사람’은 서로 어떻게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들이 새로 걸음을 내딛도록 이끄는가를 들려주지요.



“이름 그대로 끝없는 장소잖아. 나도 알 것 같아. 앉아 있지만 마음은 날고 있는걸. 날아다녀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앉아 있어도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 같아. 이것도 마법이라고 생각해.” (216쪽)


“봄에 여러 가지 풀과 꽃을 따서 만든 거야. 열여덟 종류나 섞어서 말이야. 상쾌한 숲과 언덕을 걸을 수 있어서 차 만드는 게 참 즐거워. 잘 보면 말이야, 풀이 먼저 냄새를 강학게 풍기면서 ‘차로 마시면 좋단다’ 하고 불러 줘.” (261∼262쪽)


이제는 키키도 알 것 같았습니다. 키키의 마음에 힘이 있으면 빗자루에 그것이 전해진다는 걸. (293쪽)



  우리가 모르는, 어쩌면 우리가 잊은, 머나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마녀였고 ‘마남’이었을 수 있습니다. 아득히 먼 옛날에는 누구나 하늘을 날며, 바람만 마셔도 배가 부르는 삶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먼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참말 바람처럼 가볍게 걷기에 사람들 발길이 닫는 데에 발자국이 남지 않아 풀도 꽃도 안 다쳤을 수 있어요. 까마득히 먼 옛날에는 돈을 버느라 다투지 않았을 수 있고, 저마다 놀라운 재주를 부려서 멋진 집을 아늑하게 가꾸며 사이좋은 어깨동무를 하는 나라였을 수 있습니다.


  동화책 《마녀 배달부 키키》 둘째 권에서는 키키가 왜 하늘을 지팡이에 앉아서 날 수 있는가를 밝히고, 빗자루한테 그저 딱딱하게 시킴말만 해서는 안 되며, 빗자루하고도 마음으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키키네 어머니가 딸아이한테 이녁 마법을 물려주면서 딸아이가 스스로 새 마법을 찾도록 가르친 마음도 넌지시 알려주고요.



“뭐야, 그냥 씨앗이잖아. 내 눈으로 하는 줄 알았네.” “그래, 그냥 씨앗이야. 그렇지만 안에 신기한 게 잔뜩 들어 있다고.” (331쪽)


“엄마하고 똑같은 재채기약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자 고리키 씨가 확고하게 대답했습니다. “키키의 약은 엄마하고 달라. 키키가 만든 거잖아.” 키키는 ‘응?’

 하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335쪽)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아름답습니다. 동화책은 동화책대로 아름다워요. 동화책 키키 이야기에서 끝자락에 보면 키키네 어머니가 키키한테 ‘어머니가 지은 마법약’은 ‘딸 키키가 지은 마법약’하고 똑같을 수 없다고 똑똑히 알려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직 어린 키키는 어머니 말을 어렴풋하게만 헤아립니다. 아직 다 알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어머니가 아이한테 남긴 사랑 어린 씨앗 한 톨은 아이 마음에 고이 깃들리라 봅니다. 우리 어른들도 여느 삶자리에서 우리 아이들 마음에 이처럼 씨앗 한 톨을 심어서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겠지요. 아직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깨달을 수 있기에, 즐겁게 사랑씨앗을 심어요. 꿈씨앗도 심고, 노래씨앗도 심습니다. 놀이씨앗도, 살림씨앗도, 웃음씨앗도 고루고루 심습니다.


  마법사한테 나는 즐거움뿐 아니라 걷는 즐거움이 새롭다면, 수수한 이웃을 만나는 즐거움에 너른 숲을 만나는 즐거움도 새로울 테고, 파란 하늘과 바다를 아우르는 즐거움도 새로울 테며, 날마다 먹는 밥 한 그릇도 새로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가만히 보면, 마녀 배달부 키키는, 마녀로서 이웃들한테 꿈이랑 사랑을 실어 나르는 몫을 맡는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문명하고 도시를 키우기만 하면서 자꾸 잊거나 잃고 마는 꿈이랑 사랑을 되새기자는 뜻을 늘 즐겁게 활짝 웃으면서 실어 나르네요. 2018.3.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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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심리학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8
노을이 지음, 강병호 그림 / 철수와영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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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34


흔들리는 까닭은 자라고 싶어서란다
― 10대와 통하는 심리학 이야기
 노을이 글·강병호 그림
 철수와영희, 2017.11.27. 


공부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을 의미해요. 예를 들어 여행하거나,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일을 말하죠. 그런 것을 통해 감동하거나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면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돼요. (21쪽)


  전남 고흥 같은 고장은 겨울에도 포근합니다. 이 고장에는 ‘겨울눈’이라고 하면 새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잎싹이나 꽃싹일 뿐입니다. 하늘에서 찾아오는 ‘겨울눈’은 구경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추운 고장에서 살던 이웃이 겨울에 고흥마실을 한다면 ‘어쩜 이렇게 살기에 좋을 수가!’ 하면서 놀랄 만합니다.

  그런데 추운 겨울이란, 흙에 새숨을 불어넣고, 나무나 풀이 더욱 튼튼하도록 이끌곤 해요. 꽁꽁 얼어붙는 날씨이기에 나무눈은 더욱 웅크리면서 새봄을 꿈꿉니다. 흰눈이 소복하게 쌓인 땅에서는 가랑잎이며 벌레 주검이며 흙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겨우내 땅속 깊이 깃들어 잠자는 애벌레도 그리운 봄을 마음에 담아요.

  가만히 보면 두 가지 겨울눈이란 두 가지 길을 밝히지 싶습니다. 가을이 저물면서 겨울이 찾아올 적에 잎싹하고 꽃싹이 조그맣게 맺히는 눈이란, 새롭게 피어나고 싶은 꿈을 나타냅니다. 하늘에서 찾아오는 하얀 송이는, 겨우내 흙이 새롭게 거듭나도록 북돋우는 손길을 나타내요.


상상하는 일로도 뇌는 변화된답니다. 창의적인 상상은 뇌에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 내요. (22쪽)

지난 세기까지 심리학은 인간의 불완전한 부분과 약점을 찾아내어 보완하고 치료하면 더 행복하리라 믿었지요. 그러나 100년 동안에 걸친 노력 끝에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인간은 약점이 있음에도 자신의 강점으로 살아가고, 그 강점을 발전시켜 약점까지도 같이 개선한다는 것을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발견했죠. (49쪽)


  노을이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심리학 이야기》(철수와영희, 2017)는 흔들리며 자라는 푸름이한테 길동무가 되고 싶은 어른으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왜 흔들리며 자라는 나이인지를 짚고, 흔들리는 나이란 ‘흔들리면서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학문으로 심리학을 다루려 하지 않습니다. 학문으로 심리학이 걸어온 길을 살짝 다루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마음(심리)’을 살피는 길이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그림을 그리는 몸짓이라고 하는 대목을 부드러이 밝힌다고 할 만합니다.

  모자란 곳이 있기에 더 생각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사람이라고 해요. 여리거나 어설프기도 하기에 더 헤아리면서 씩씩하게 삶을 가꾼다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 나름대로 ‘이루고픈 꿈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루고픈 꿈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기업은 10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마케팅의 대상 나이를 갈수록 낮추어, 좀더 어릴 때부터 브랜드에 노출되게 하고 그 브랜드를 멋지다고 느끼도록 힘쓰고 있죠. (110쪽)


  흔히 “꿈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말하는데, 어쩌면 우리 스스로 “꿈 같은 소리”를 하지 않는 탓에 꿈길을 못 걸을는지 모릅니다. “꿈 같은 소리”를 자꾸 하면서 어느덧 꿈길로 접어들 수 있어요.

  온누리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을 찬찬히 살피면, 이들은 처음부터 뛰어나거나 훌륭하거나 잘나지 않기 일쑤입니다. 더욱이 무척 보잘것없다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어요. 그렇지만 이들은 꿈을 안 접었지요. 늘 꿈을 그리고 품고 보듬으면서 한 걸음씩 떼었어요.

  스스로 왜 못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에, 다음에 또 못 하거나 넘어지더라도 자꾸자꾸 생각을 키우고 몸을 가꾸면서 일어나는 길을 찾습니다. 스스로 왜 안 되는가를 헤아려 보기에, 다음에 또 안 되거나 부딪히더라도 거듭거듭 생각을 북돋우며 마음을 살찌우면서 일어서는 길을 찾아요.


더는 내 삶의 행복을 외부의 폭력적인 기준과 조건에 맞추지 말아요. 행복의 주체인 내가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면, 그 어떤 물건도 성형 수술도 날 행복하게 만들지 못해요. (134쪽)

청소년기는 감정 조절이 어렵습니다. 그 대신 감정 조절 능력을 연습하고 키우기엔 무척 좋은 시기죠. (212쪽)


  《10대와 통하는 심리학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마음에 꿈을 즐겁게 그리자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다른 한 가지를 나란히 다루는데요, 기업이나 방송이나 사회가 우리를 어느 한쪽으로 ‘길들여’서 ‘장사를 하’기도 한다고 밝힙니다. 푸름이일 적에 ‘어떤 물건 이름(상표)’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사회에서 쉽게 마주하는 여러 가지에 숨은 뒷모습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푸름이 스스로 제 마음을 읽거나 알지 못하는 탓에 “삶의 행복을 외부의 폭력적인 기준과 조건에 맞추”고 만다지요. 날씬하거나 이쁘장해 보이는 모습을 억지로 우리 스스로 맞추어야 하지 않아요. 누구만큼 키가 크거나 몸무게가 적게 나가야 하지 않아요. 누구만큼 돈을 거머쥐거나 이름값이 높아야 하지 않아요. 누구하고 얼굴이 비슷해야 잘생긴 모습이 아니에요.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차근차근 삶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며 사람다운 살림을 배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자랄 적에 아름답습니다. 얼마든지 넘어져 보고, 신나게 깨지기도 하며, 마음껏 뒹구는 동안, 저마다 제 길을 찬찬히 찾거나 느낄 수 있어요. 이리하여 글쓴이는 푸름이한테 “청소년기는 감정 조절이 어렵습니다. 그 대신 감정 조절 능력을 연습하고 키우기엔 무척 좋은 시기”라는 말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보고, 실천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계획을 세워 실천해 보는 일도 좋은 방법이에요. (197쪽)


  느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 모르기에 이렇게도 드러내고 저렇게도 드러내면서 하나하나 배웁니다. 남들 눈치가 아닌 내 마음을 읽으려고 애쓰면서 참말 스스로 바라는 일을 찾습니다.

  하나씩 해 보면 됩니다. 오늘 해서 안 되면 모레에 새로 해 보면 되고요. 앞날이 두려울 수 있고, 아직 아무런 재주가 없구나 싶어서 까마득하고 여길 수 있어요. 자, 그렇다면 모두 내려놓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우리 푸름이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서 그 나이에 이르렀어요. 아기로 태어났을 적에는 걸음마는커녕 수저조차 못 쥐었지요? 수저질은커녕 말 한 마디 못했을 테고요. 말 한 마디는커녕 둘레에 뭐가 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설거지나 비질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푸름이는 말도 할 수 있고,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전거를 달릴 수도 있고, 설거지나 비질은 거뜬히 해낼 수 있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하나하나 해내는 몸이 되었어요.


나를 알고 싶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여러분의 바람은 건강하고 아름다워요. 정말 원한다면 이젠 혈액형 심리학에 나와 상대를 짜맞추려 하는 대신, 나와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해 주고 귀 기울여 주세요. (84쪽)


  마음을 읽는 길, 곧 심리학이란, 우리가 늘 새롭게 자라면서 하루를 누린다고 하는 대목을 잘 밝히지 싶습니다. 푸름이로서 마음읽기를 해 본다면, 바쁘거나 힘들거나 괴롭거나 벅찰 적에 모두 살며시 내려놓고서 마음을 차분히 읽으려 해 본다면, ‘오늘 이 일이 안 되는 까닭은 앞으로 꾸준히 더 해 보면서 새롭게 길을 찾도록 이끌려는 뜻’이라고 느낄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말길을 트지 않았어요. 뛰어난 운동선수는 하루아침에 놀라운 솜씨를 뽐내지 않아요. 글을 잘 쓰는 어른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엄청나게 글길을 걸었어요. 밥솜씨가 훌륭한 어버이는 기나긴 날 숱하게 새밥을 지어 보았지요.

  즐겁게 하루하루 맞이하면서 열 해 동안 애써 보자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를 빕니다. 흔들리기에 자랄 수 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뿌리가 더욱 튼튼하고 굵게 뻗어요. 흔들리며 자라는 푸름이는 한결 씩씩하며 멋스러운 어른이 되리라 봅니다. 2018.1.3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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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드는 쓰레기 박사 다릿돌읽기
소피 세레 지음, 길미향 옮김, 이수영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81


‘올림픽 쓰레기’를 얼마나 생각해 볼까?
― 마틸드는 쓰레기 박사
 소피 세레 글·이수영 그림/길미향 옮김
 크레용하우스, 2011.9.30.


  2018년에 한국에서는 겨울올림픽을 치른다고 합니다. 이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깊은 멧골 숲을 함부로 밀어내어 말썽이 되곤 했습니다. 경기장이나 찻길이나 숙소나 여러 시설은 대회를 열려고 마련한다지만, 숲은 우리가 늘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도록 해 주고, 우리 보금자리를 보듬는 터전이거든요.

  그런데 여름올림픽이나 겨울올림픽, 또 세계축구대회 같은 커다란 운동경기를 치를 적마다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는지?’ 하고 묻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또는 ‘큰 운동경기를 치르며 쏟아질 쓰레기를 어떻게 다루려는가?’ 하고 묻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마틸드가 생각하는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해마다 사월이면 봄맞이 대청소를 또다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5쪽)

봄맞이 대청소는 일 년 동안 마구 더럽혔다가 한꺼번에 치우는 행사일 뿐 아무 쓸모도 없었다. ‘소풍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대청소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연을 느끼며 산책하고, 그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발견도 하고, 선생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말이야!” (8쪽)


  어린이책 《마틸드는 쓰레기 박사》(크레용하우스, 2011)는 여러 가지 쓰레기 말썽거리를 건드립니다. 먼저 학교하고 마을에서 해마다 벌이는 ‘학교·마을 봄맞이 큰청소’를 짚어요. 어린이 마틸드가 보기에 어른들은 한 해 내내 쓰레기를 여기저기 마구 버리다가 이듬해 봄에 ‘자, 이제 치워 볼까?’ 하면서 바보스러운 짓을 일삼는구나 싶대요. 치워야 할 쓰레기라면 여느 때부터 아무 데나 버리지 말 노릇이요, 언제나 물건을 알맞게 마련해서 쓰고 갈무리하는 살림으로 나아갈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게다가 어른들은 봄맞이 큰청소를 한다면서 아이들한테 ‘한쓰임 비닐장갑’(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나눠 준대요. 쓰레기를 치우자고 하면서 외려 쓰레기를 내놓는 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월드컵) 결승전 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신문 기사에서 말하길 ‘축구 경기장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청소해야 하는’ 환경미화원들이었다. 그날 환경미화원들은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치웠다고 했다. 약 4만 개의 컵, 4만 개의 플라스틱 병, 2만 개의 휴지, 1백만 개의 색종이 조각, 4만 개의 응원 수술, 1백만 개의 비닐봉지. 사람들이 저마다 휘두른 깃발, 응원 문구를 적은 종이와 카드까지. (13쪽)


  《마틸드는 쓰레기 박사》는 프랑스 어린이문학입니다. 이리하여 프랑스에서 벌어진 세계축구대회 뒷이야기가를 함께 다뤄요. 프랑스가 결승전에 오른 그 운동경기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고, 엄청난 응원 물결은 엄청난 쓰레기를 남겼대요. 사람들은 빛종이를 어마어마하게 뿌려댔고, 두루마리 휴지를 휙휙 던지면서 응원을 했다는군요.

  더군다나 경기장에서 먹고 마시면서 버린 쓰레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응원 관중은 프랑스가 경기에서 이길 적에 기뻐했을 테지만, 경기장 청소 일꾼은 이 엄청난 쓰레기더미를 치우느라 몸살을 앓았으니 그저 기뻐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여겨요.


“너 어디 아프니? 이건 내 생일 선물이야. 제발 진정해. 이게 없으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 “이런 잡동사니가 쌓이고 쌓여 자연에서 썩으려면 최소 백 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몰라? 완전히 썩는지조차 알 수 없어. 네가 이러면 어떡해! 일회용품은 불매운동을 해야 해! 이런 것들은 우리를 책임감 없는 환경 파괴범으로 만든다고!” (23쪽)


  쓰레기를 아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긴다고 하는 어른 눈이 아닌, 앞으로 이 땅에서, 이 나라에서, 이 지구에서 새로운 살림지기로 살아갈 아이 눈으로 쓰레기를 지켜볼 수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커다란 경기장을 물려주면 좋을까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아름답고 정갈하며 사랑스러운 삶터하고 숲을 물려주면 좋을까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커다란 유원지나 관광시설이나 골프장이나 핵발전소를 물려주면 좋을까요?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맑은 냇물하고 시원한 바다하고 깊은 골짜기하고 숱한 숲짐승을 이웃으로 물려주면 좋을까요?


“넌 이제 쓰레기 처리장에 오지 않겠지? 너 같은 아이들이 쓰레기 처리장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마틸드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쓰레기 처리장에 놀러 갈게요. 친구들과 함께요.” (78쪽)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이 넘쳐나지만 이를 둘러싸고서 어른으로서 슬기로운 생각을 밝히는 일은 좀 드물지 싶습니다. 되쓰기나 되살림을 넘어서 꾸준하게 오래오래 즐겁게 가꾸는 살림을 찾아서 나아가는 길도 아직 피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쓰레기’를 헤아려 봅니다. 쓰레기더미로 뒤덮이는 경기장이나 삶터가 아닌, 즐거운 손길하고 고운 마음길로 환하게 피어날 삶터를 그려 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생각도 마음도 삶터도 마을도 나라도 새롭게 바꿀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2018.1.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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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이 아니다
김연경 지음 / 가연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332


연느님이 말한다 ‘내뱉은 대로 해내면 되지 뭐!’
― 아직 끝이 아니다
 김연경 글
 가연, 2017.9.15. 13800원


  오랜 한국말로 ‘하느님(하늘님)’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ㄹ이 떨어져 ‘하느님’이라고만 합니다만, ‘-님’을 붙이는 말씨는 매우 흔해요. 나라를 다스린다는 임금을 놓고 굳이 ‘임금님’이라 했습니다. 꽃이나 풀을 놓고 ‘꽃님·풀님’이라 해요. 해나 별이나 달을 놓고 ‘해님·별님·달님’이라 하고, ‘이웃님·동무님’처럼 쓰며, 사람 사이에서 ‘어머님·아버님·누님’처럼 씁니다.

  이러한 ‘-님’은 아무한테나 붙이지는 않으나, 누구한테나 붙일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하느님’이란 하늘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높거나 거룩하거나 뻬어난 아무개를 가리킬 적에 살며시 빗대는 이름으로 삼기도 해요. 이를테면 연예인 가운데 어느 분은 ‘유느님’ 소리를 들어요. 운동선수 가운데 ‘연느님’ 소리를 듣는 분이 있지요. 그런데 운동선수 가운데 ‘연느님’은 하나가 아닙니다. 둘이지요. 하나는 피겨 선수요, 하나는 배구 선수입니다.


나는 엄마에게 배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힘든 일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약을 바르며 아픔을 참고 있던 큰언니의 모습보다 허공으로 점프하며 네트 너머로 공을 날려 보내던 큰언니의 모습이 나를 더 매료시켰다. (31쪽)

나는 고민이 많았던 유년 시절의 나에게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기본 실력을 탄탄하게 해서 선수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온힘을 다하자고 말했다. (41쪽)


  《아직 끝이 아니다》(가연, 2017)는 배구 선수로서 ‘연느님’ 소리를 듣는, 때로는 영어로 ‘갓(God)’을 넣은 ‘갓연경’ 소리를 듣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무대를 주름잡는 김연경 님이 쓴 책입니다. 어떻게 배구 무대에서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선수가 되었는가 하는 삶을 찬찬히 돌아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아직 끝이 아니다》는 배구 무대에서 으뜸자리에 선 사람으로서 우쭐거리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고등학생으로 접어들 무렵까지 키가 매우 작아서 늘 수비 훈련만 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키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문득 무대에 설 틈을 한 번 얻고, 한 번 무대에 설 틈을 얻었을 적에 ‘이 틈이 앞으로 또 올는지 알 수 없다’면서 악을 쓰고 용을 쓰면서 온힘을 뽑아낸 이야기를 다룹니다. 온몸을 경기장이라는 무대에서 불사르면서 꿈을 이루는 길을 걸어온 아이가 어떤 삶을 보냈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코트 위에서는 딱 하나만 생각한다. ‘무조건 이긴다.’ (76∼77쪽)

코트 위에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훈련을 해왔고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말이다. (119쪽)

‘내뱉은 대로 해내면 되지 뭐!’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것보다 내뱉은 말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체육관에서 배구공을 한 번 더 잡는 것을 선택했다. (121쪽)


  이제 연느님이나 갓연경이 된 김연경이라는 배구 선수입니다만, 어릴 적에는 언니가 배구 무대에서 새 한 마리처럼 날아올라 공을 맞은편에 내리꽂는 모습에 반해서 배구판에 뛰어들고 싶다는 꿈을 키운 작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다만 언니가 처음 배구를 배울 적에는 학교에서 ‘주먹질’이 흔했다고 해요. 두 딸아이가 운동 선수라는 길을 걷는다고 할 적에 두 딸아이 어머니는 몹시 마음이 아팠다지요. 눈에 넣어도 아플 수 없는 두 아이가 훈련을 받을 적에 늘 ‘맞아서 몸에 멍이 드니’까요.

  배구 선수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읽다가 살며시 덮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을 때리는 어른으로서 운동 선수를 이끄는 엉터리짓을 멈출 수 없을까요? 요즘도 ‘운동부 주먹질’이 곧잘 도마에 오릅니다. 때려서 말을 듣게 한다든지, 나이나 계급 따위로 억누르면서 막말을 일삼는다든지, 이런 낡은 버릇을 왜 털어내지 않을까요.


재활이란 몸을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고 하나하나 점검하는 시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것들, 코트 위에서 훈련해 온 대로 몸이 움직이고 감각이 살아나고 공이 시야에 들어와 내가 낼려보낼 방향을 판단하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135쪽)


  어느 모로 본다면 《아직 끝이 아니다》는 꿈을 이룬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꿈을 이룬 이야기라기보다, 꿈을 이루려고 얼마나 마음을 쏟고, 얼마나 땀을 바쳤으며, 얼마나 힘을 다했는가를 적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해야 뜻을 이룬다’는 책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틈도 나한테 찾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하려는 일, 스스로 가려는 길만 바라보면서 밑바탕부터 차근차근 다스리고 꿈만 보며 즐겁게 한길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구보다 푸름이가 읽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앞날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푸름이가, 대학입시에 지친 푸름이가, 입시학원하고 보충수업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학교에서 고달픈 푸름이가,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자라는 푸름이가, 한 줄 두 줄 찬찬히 새기면서 읽어 봄직하다고 생각해요.

  단맛을 본 이야기는 거의 없이, 쓴맛을 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에요. 오늘 우리 곁에서 ‘하느님 김연경’ 소리를 듣는 그 엄청나거나 멋지거나 놀랍거나 대단한 사람이, 참으로 오랜동안 ‘아무것도 아닌’ 작은 아이로 살아오면서도 웃고 춤추면서 즐겁게 제 길을 걸어온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 나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답변을 했다. “기자 분들이 선수의 미모에 대한 집착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여자 배구를 소개하는 기사에 대부분 ‘미녀 3인방’ ‘미녀들의 대결’ 등 ‘미녀’란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남자 배구에선 ‘미남 대결’이란 말이 없잖아요. 왜 여자 배구만 유독 그런 단어를 써야 하는 거죠? 선수들 모두 먼저 배구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178쪽)


  할 말을 하는 배구 선수 한 사람은 ‘내뱉은 말은 꼭 이룬다’고 다짐한다지요. 경기에 나서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긴다는 생각만 한다지요. 그리고 이녁 스스로 성평등을 따지려는 생각은 없이 ‘그저 한 사람으로서, 오직 사람으로서’ 서로서로 바라보고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힙니다.

  배구 선수이기에 겉모습이나 몸매 아닌 배구 솜씨로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키가 더 커야 운동을 더 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귀여겨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아직 끝이 아니다” 하는 생각으로 땀을 흘릴 줄 아는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온누리에 으뜸가는 배구 선수 한 사람으로서도,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가꾸는 우리로서도, 모든 어린이하고 푸름이로서도, 참말로 끝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꿈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제껏 했는데 늘 쓰러지거나 고꾸라졌으면, 다시 한 번 일어나서 나아가면 됩니다. 웃으면서 일어서고, 춤추면서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우리 곁에서 연느님이 속삭여요. 넘어졌으면 일어나자고, 한 번 더 해 보자고, 다시 넘어지면 또 일어서자고, 한 번 해서 안 되니 두 번 더 해 보자고. 우리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참말 누구나 모두 이룰 수 있다고. 2017.12.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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