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 일상에 스며 있는 차별과 편견의 폭력
정윤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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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10


평화를 아끼지 않으니 폭력이 춤춘다
―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인권연대 기획, 정윤수·정주진·최영은·박윤경·오창익·정창수
 철수와영희, 2018.5.8.


사회가 발달할수록 직접적 폭력은 줄어드는 대신 문화적 폭력은 증가합니다 … 신문·방송에 등장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눈밖에 난 사람들,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싶었던 겁니다 … 문화를 통제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지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요? (71쪽)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세상에 전쟁이나 각종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평화를 아끼고 그곳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죠. (76쪽)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18)를 읽으면서 참말로 궁금합니다. 우리는, 사람은, 한겨레는, 또 지구별 뭇나라는, 왜 폭력을 안 멈출까요? 주먹다짐이나 싸움질을 왜 안 그칠까요? 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 스스로 ‘평화에 힘을 안 쏟기 때문’에 평화보다 전쟁이나 폭력으로 나아갈까요?

  사회에 몸을 담근 어른은 사회폭력으로 고단합니다. 한국에서 여성은 성폭력으로 고달픕니다. 때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성폭력으로 괴롭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푸름이는 학교폭력으로 시달리는데, 대학입시도 마치 주먹다짐과 같으니 ‘시험폭력·입시폭력·졸업장폭력’ 같은 이름을 붙여 볼 만합니다.

  그런데 가정폭력이 있고, 정부가 앞장서는 국가폭력이 있어요. 지자체에서도 이른바 ‘토호·유지’라는 이름으로 텃힘을 부리는 짓이 있지요. 가만히 보면 정규직하고 비정규직으로 가르는 일터도 폭력인 얼개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놓고도 폭력이 있고, 이주가정한테도 폭력이 있어요.


한국사람들 중 대부분은 국민이 권리를 가지고 있고, 국가는 의무를 지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잘 모릅니다. 학교에서도 ‘국민의 의무’만 달달 외우게 합니다. 그래서 인권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167쪽)


  평화에 힘을 쏟는 사람이 적어서 평화보다는 전쟁이나 폭력에 기운다고 하는 대목을 읽고 한동안 책을 덮었습니다. 이 한 줄을 두고두고 곱씹어 보려고 책을 한동안 안 읽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주먹다짐으로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떠올립니다. 그런데 우리 삶자리 어디에나 주먹다짐이 있습니다. 집, 마을, 학교를 비롯해서 지자체, 중앙정부에다가 사회, 정치, 일터, 군대 …… 게다가 ‘데이트폭력’마저 있어요.

  아니, 우리는 왜 이렇게 주먹다짐에 뒤덮인 채 살아갈까요? 우리는 주먹다짐을 좋아하는 삶일까요? 우리는 조금만 힘이 있어도 우리보다 여린 사람을 괴롭히는 재미로 살아가나요?


일자리가 부족한 게 누구 탓인가에 대해 우리 헌법은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국가 탓입니다 국가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일자리 만드는 데 더 많은 세금을 쓰면 됩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인구 대비 20퍼센트 가까운 숫자를 국가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인구 대비 공공기관 채용 비율은 겨우 3퍼센트 남짓에 불과합니다. (169쪽)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라는 책은 폭력하고 맞물려 평화나 인권이라는 틀로 우리 삶터를 읽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눈길을 우리한테 더 부드럽고 쉽고 따스하게 들려주려 합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우리가 어릴 적부터 평화하고 인권을 배우고 누리고 나누고 함께하고 펴고 즐기는 하루라 한다면, 이때에는 폭력이라는 말을 모를 만해요. 평화로운 삶을 짓고 나누는 동안 평화를 마음에 담으니, 이때에는 누가 누구를 괴롭히거나 따돌릴 일이 없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부터 평화롭고 평등할 적에 마을이 평화롭고 평등하겠지요. 위아래가 없이, 신분도 계급도 없이, 돈이나 이름이나 힘으로 가르지 않을 적에, 비로소 폭력이란 말을 멀리 내보내면서 평화로운 학교, 평등한 집, 민주인 나라, 아름다운 마을, 사랑스러운 일터, 즐거운 고장 같은 이름이 샘솟으리라 봅니다.


여성가족부가 인권 걸림돌이라거나 여성들만 챙겨 주느라 남성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곧잘 들립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인권을 챙겨 주는 일은 결코, 어떤 경우에도 다른 누군가의 인권침해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자존감을 갖지 못한 일부 남성들의 괜한 푸념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32조의 노동권에 이어 제34조에서도 여성을 특별히 꼽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것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훨씬 더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181쪽)


  우리는 평화를 배우지 못한 채 자라기에 평화하고 멀어질 만합니다. 우리는 평등을 누리지 못한 채 자랄 뿐 아니라, 학교에서 입시교육으로 바쁜 터라 평등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나머지 평등을 잊을 만합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평화나 평등을 잊거나 모르는 채 살던 어린이·푸름이가 군대에 가서 민주를 누리거나 느끼기란 어려워요. 갓 스무 살 나이에 일자리를 얻은 풋풋한 젊은이가 위계질서에 매여 힘겨운 하루라면 언제나 폭력이라는 굴레에 갇힐밖에 없습니다. 이러면서 젊은이 사이에서도 데이트폭력이 끊이지 않을 테고, 갖가지 성추행하고 성폭력도 불거지겠지요.

  사람다이 살아 보지 못한 나날이란,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누리지 못한 나날입니다. 눌린 채, 억눌린 채, 짓눌린 채, 꾹꾹 밟힌 채 입시에 시달리는 하루를 보내야 한다면, 이 아이들 앞날이 ‘폭력 아닌 평화’이기는 매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여느 때 여느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사이좋게 집살림을 가꾸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다면, 또 어머니 아버지 아이가 다 같이 힘을 모아 집살림을 돌보는 길을 걷지 못한다면, 어린이·푸름이가 나중에 평화롭거나 평등하거나 민주다운 마음을 품기도 어려우리라 느껴요.


우리나라 지원 사업은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돌아가는 게 별로 없습니다. 사회간접시설에 투자하거나 무슨 공단을 만드는 식으로 간접 지원을 하기 때문이에요. (223쪽)

해마다 늘리고 있는 일자리 예산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기업에 줍니다. 노동자들에게 직접 주면 포퓰리즘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가 나잖아요. 이런 식의 국가 지원은 아주 오래되었어요. 박정희 시대의 방식이 지금껏 이어오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예산은 경제개발을 중시했던 1970년대 예산 구조를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어요. 경제개발 예산이 2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225쪽)


  평화로운 나라는 나라살림을 평화로운 정책에 씁니다. 평화롭지 못한 나라는 나라살림을 엉뚱하게 씁니다. 경제개발을 앞세울 적에는 평화하고 멉니다. 성장율이라는 숫자에 매인 개발정책은 평등하고 멉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 성장율에 목을 매는 터전이었고, 학교에서도 이렇게 가르쳤어요. 평화하고 평등을 아끼고 북돋우는 길에는 힘을 거의 안 쏟거나 못 들이며 살아왔다고 할 만합니다.

  이제 이 길을 돌려야지 싶어요. 앞으로 이 길을 바꾸어야지 싶어요. 경제개발 아닌 다 같이 아름다운 터전을 헤아려야지 싶어요. 전쟁이나 폭력 아닌 평화를 바라보아야지 싶어요. 부드러이 손을 내밀어 함께 걷고, 어깨동무를 하며, 삶을 사랑으로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2018.5.1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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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3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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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7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
―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이임하
 철수와영희, 2018.4.25.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남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1∼2회인 데 반해 여성 혐오 표현은 월평균 600∼3000여 회였답니다. 2015년에는 여성 혐오 표현이 월평균 8만 회에 이를 정도로 늘었습니다. (14쪽)

(1930년대에) 왜 사회는 신여성을 이토록 조롱하고 비난했을까요? 이러한 시선은 이전과 다르게 살아가는 신여성들에 대한 두려움과 경고의 표현입니다. (22쪽)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이임하, 철수와영희, 2018)은 참다운 평등으로 가는 길에 ‘여성 혐오’라는 덫을 자꾸 깔아 놓는 바보스러운 짓을 멈추자고 하는 이야기로 글머리를 엽니다. ‘여성 혐오’를 누가 할까요? 바로 성차별로 가부장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 하겠지요.

  참다운 사랑으로 민주·평등·평화를 어릴 적부터 배우지 못한 삶이기에 성차별뿐 아니라 ‘여성 혐오’가 불거진다고 느껴요. 우리가 슬기로우면서 참답게 사랑살림을 지을 줄 안다면, 이제 ‘함께 짓는 보금자리 살림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느껴요.

  여자는 노리개일 수 없습니다. 여자는 심부름꾼일 수 없습니다. 여자는 집안에 갇혀 부엌데기나 애보개로 한삶을 마칠 수 없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도 마찬가지예요.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노리개나 심부름꾼이나 부엌데기나 애보개로 살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돕고 아끼면서 함께 가꿀 살림이라고 여깁니다.

  ‘가정주부·주부’ 같은 이름은 성차별을 고스란히 담는다고 느낍니다. 이 이름은 오직 여자를 가리킬 적에만 쓰거든요. 이런 이름이 낡은 줄 느끼면서 새 이름을 남녀 누구한테나 붙일 수 있을 때에, 바로 작은 집부터 평등하고 평화하고 민주를 이룰 만하지 싶어요. 오랜 한국말 ‘살림꾼’처럼, 사내도 가시내도 모두 살림을 넉넉하며 즐겁게 지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아이도 어버이 곁에서 ‘살림이’가 되고, 집집마다 ‘살림님’이 사랑스레 보금자리를 돌볼 줄 알아야지 싶어요.


신라는 골품제 때문에 더는 발전하지 못한 데다가 진골 귀족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나라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도 후대 사람들은 진성여왕 때문에 신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55쪽)

7세기의 동아시아 삼국을 통치했던 여왕(황)들은 비슷한 통치술을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들 통치술의 특징은 새로운 인재 등용, 불교·도교·무속 신앙을 포용한 문화 정책과 다각적인 외교 정책의 시행, 경제의 활성화 등입니다. (69쪽)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은 책이름처럼 여성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이 여성사를 남성 학자가 밝혀서 적는 틀이 아닌, 여성이 걸어온 길에 맞추어 바라보려고 합니다. 남성 학자가 신라 임금(여왕 아닌 임금) 가운데 진성 임금을 깎아내리려 하는 속내를 살핍니다. 신라를 비롯해 이웃 임금이 여성이던 무렵 여러 나라가 얼마나 넉넉하고 알차고 아름다웠는가를 역사로 짚으면서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삶터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여성 참정권을 늘리려는 뜻은 그저 성평등 때문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숱한 남성 정치꾼은 인맥이나 학맥 같은 끈에 얽매여 참답거나 착한 정치길을 못 걷기 일쑤였어요. 얄궂고 엉성한 정치와 사회를 바르게 세우자면 ‘일하는 여성’이 정치에 함께하도록 권리를 늘리는 길을 널리 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길 만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보다 자신들이 닮고 싶은 대상을 골라서 사용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73쪽)

조선시대에는 내외법에 따라 여성은 장옷, 쓰개치마, 천의, 삿갓 따위로 얼굴을 가렸지만 개화기 여성들은 장옷의 불편함을 내세워 장옷 벗기 운동을 했습니다. (154쪽)


  하루도 안 쉬고 일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남성도 하루조차 안 쉬고 일만 했다고요? 아니에요. 여성하고 남성이 똑같이 바깥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도 밥짓기 살림하기는 고스란히 여성이 도맡아야 했어요. 젖먹이 아기는 누가 도맡아서 돌보았을까요? 아기가 자라 어린이로 꿈을 키우는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기가 자다가 기저귀에 쉬를 하면 누가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고, 이 기저귀를 빨아서 널까요?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은 우리 삶터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으면서 ‘여성한테 시킨 일’이 무엇이었나 하고 돌아봅니다. 왜 여성한테 커피 타기를 시킬까요? 왜 버스안내원을 갑자기 여성으로 바꾸었을까요?

  그리고 조선 무렵에 왜 여성한테 장옷이며 쓰개치마를 씌웠을까요? 마치 ‘차도르’처럼 여성 얼굴을 가려야 할 까닭을 생각해 보자고 우리한테 묻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여성사를 제대로 바라보자고 묻습니다.


(1961년에) 버스안내원을 여성으로 바꾼 것은 ‘상냥하고 친절함’이 요구되는 서비스업이나 단순 작업에는 여성이, 숙련과 강한 힘이 필요한 작업에는 남성이 알맞다는 논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에 따라 역할이 달라야 한다는 논리로 여성과 남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했던 것이지요. (199쪽)

노동은 인류를 유지시킨 중요한 삶의 동기이자 고리입니다. 여성은 단 한 번도 노동의 역사에서 벗어난 때가 없었고 지금의 역사를 일구어 왔습니다. (192쪽)


  가만히 보면 지구별 뭇가시내는 ‘하루도 안 쉬고’가 아닌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눈을 붙일 틈마저 없이’ 일한 사람인 여성이 있었기에 우리 삶터를 가꾸거나 지킬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역사를 ‘가부장 남성 역사’ 아닌 ‘늘 일하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지은 여성 역사’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제부터 새롭게 역사를 살필 수 있다면, 평등뿐 아니라 평화하고 민주도 멀리 있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싸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평등을 이루지 못합니다. 다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은 부질없어요.

  이제 사내들이 눈을 뜨고 마음을 열기를 바라요. 바늘하고 실을 손에 쥐어 봐요. 손수 옷을 짓거나 손질해 봐요. 빨래비누를 쥐어 걸레를 빨아서 집안을 훔쳐 봐요. 도마질을 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담그면서 춤을 춰 봐요. 아이들을 학원에 그만 내몰고, 집에서 아이들하고 함께 배우고 놀고 생각하고 꿈꾸고 책도 읽고 영화도 나란히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워요.

  앞으로는 함께 일하고 함께 쉴 수 있기를 바라요. 앞으로는 즐겁게 어깨동무하면서 참다운 평등, 슬기로운 민주, 사랑스러운 평화를 우리 보금자리부터 가꾸어 온누리에 고루 퍼지도록 마음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여성들이 커피를 타거나 책상 닦는 일 따위를 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아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직장도 많습니다. 이런 흐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싸움이 있었지요. (188쪽)


  여성사는 ‘여성만 높이는 역사’가 아닙니다. 여성사는 여성하고 남성이 같이 읽으면서 새롭게 배울 옛 발자취입니다. 어제를 살아온 여성사를 다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읽기에, 앞으로 살아갈 길에 참하고 착하며 아름다운 걸음걸이로 피어날 수 있지 싶습니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가 힘겨이 벌인 싸움은 여성 사무직 노동자한테만 이바지하지 않았어요. 모든 사무직 노동자한테, 또 모든 노동자한테 이바지합니다. 여성사란 ‘평등하지 못한 삶터가 평등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슬기롭게 삶을 짓는 길을 배우도록 북돋우지 싶습니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사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2018.5.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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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과학 이야기 - 자연을 아는 만큼 삶이 성숙한다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29
손석춘.신나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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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7


100조가 넘는 세포를 품은 놀라운 사람
― 10대와 통하는 과학 이야기
 손석춘·신나미
 철수와영희, 2018.4.11.


우리 조상들은 은하수를 용(미르)이 노는 냇물이라는 의미로 미리내라고 불렀습니다. (23쪽)

뭇별로 총총한 이유는 별들 사이의 거리가 생략된 채 모든 별빛이 우리에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3차원 공간에 있는 별들을 평면상에서 보는 셈입니다. (28쪽)

별 또한 인간이 그렇듯이 태어나지요. (29쪽)


  서른 해쯤 앞서 어린 날, 시골집에서 밤하늘 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자갈 같은 돌이 번쩍번쩍하면서 쏟아질 듯했거든요. 그렇게 많은 별을 그때 처음 보았어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자갈 같은 별잔치였습니다. 다만 어릴 적에는 ‘미리내·별내’ 같은 말은 못 듣고 ‘은하수’라는 말만 들었기에, ‘은하수’가 왜 은하수인지 몰랐어요.

  어릴 적을 더 돌아보면, 도시에서 살다가 어머니 아버지 따라 시골집에 갔을 적에 밤길이 안 보인다고 여겼어요. 그때 시골 어르신이나 사촌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조금 기다려 봐. 다 보일 테니까.” 하고 말했어요. 등불을 안 켜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 보인다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참말로 몇 분 지나고 보니 등불 없이도 밤길이 다 보였어요.

  어린 날을 지나 어른이 되고 ‘은하수’라는 한자말이 ‘별내’를 가리킬 뿐이며, ‘별내 = 별 + 냇물’인 줄 알아챕니다. 이러면서 어릴 적 본 밤하늘을 되새기고, 오늘 시골집에서 살며 마주하는 밤하늘을 다시 생각하니, 오랜 옛날부터 밤별을 ‘마치 냇물처럼 별이 흐른다’고 여길 만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에 세세하게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그래야 다른 과학자들과 연구 과정이나 연구 성과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5쪽)

인간이 밤하늘에서 관측 가능한 천체는 우주의 1퍼센트도 되지 않습니다. (76쪽)

지구의 자전이 바로 우리의 하루입니다. 정확히는 23시간 56분을 주기로 자전하는데요, 23.5도 기울어져서 돕니다. (94쪽)


  《10대와 통하는 과학 이야기》(손석춘·신나미, 철수와영희, 2018)를 읽으며 별과 하늘과 우주와 과학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웬만한 곳에서는 밤에 별이 아닌 전깃불을 봅니다. 밤에 전깃불에 기대어 길을 가는 만큼, 전깃불 없는 곳에서 자동차를 몰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달린다고 하면, 매우 아찔하리라 여겨요. 길을 못 찾겠다고 할 만하지요.

  그런데 옛날에는 등불 하나 없이 별빛으로도 환해서 길을 잘 갔구나 싶어요. 더욱이 별자리를 살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잘 가눌 수 있었을 테고요. 구름이 없어 별이 환하면 별에 기댑니다. 구름이 끼어 별이 없으면 바람을 읽지요. 철마다 바람이 다르고, 밤낮으로 바람이 달라요. 그래서 철하고 밤낮을 헤아려서 바람이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가를 읽으며 길을 찾을 만합니다.

  오늘 우리는 길찾는 기계를 두어 길을 가곤 해요. 길찾는 기계도 틀림없이 과학입니다. 위성을 쓰고 통신을 다루는 과학이지요. 그렇다면 하늘에 가득한 별자리를 읽고, 철바람이나 밤바람을 읽는 눈썰미는 무엇일까요? 이 또한 과학 아닐까요?


이름으로 나누고 있을 뿐 바다는 하나로 이어져 있지요. 바다는 육지와도 강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12쪽)

우람한 공룡은 6500만 년 전에 홀연히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중생대에서 신생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공룡이 멸종했을 때, 바다에 살아 있던 생물종의 60∼75퍼센트도 사라졌지요. (160쪽)


  오늘날에는 ‘기상학’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 기상학이란 날씨하고 철을 읽는 과학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옛사람이 바람이며 비이며 눈이며 구름이며 해를 읽는 눈썰미도 과학이었다는 뜻이에요. 뱃사람이 물살이며 바람이며 별을 읽는 눈썰미도 과학일 테고요.

  흙을 지으려고 어느 때에 어떤 씨앗을 어떻게 뿌리고, 어떻게 돌보아, 어떻게 거두느냐도 과학입니다. 자동차나 손전화도 셈틀도 과학입니다만, 호미나 낫도 과학이에요. 어떻게 하면 땅을 잘 파거나 풀을 잘 벨 수 있나를 살펴서 지은 모든 연장도 과학이거든요.

  다만 과학이라고 할 적에 삶터나 때에 따라서 조금씩 바뀝니다. 오늘날에는 전기를 다루면서 기계를 부리는 과학이 널리 퍼졌다면, 옛날에는 전기나 기계를 덜 부리고 우리 몸으로 알아차리고 우리 마음으로 읽어내는 과학이 있었다고 할 만해요.


건강한 어른의 몸에 세포는 100조 개 가까이 됩니다 … 세포 한 개가 하는 일을 현대 문명의 화학공장이 대신한다면,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사당만 한 시설을 건설해야 한답니다. (174쪽)

‘호흡’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숨쉬기’라고 이해하지만, 호흡의 과학적 의미는 숨쉬기뿐만 아니라 세포에서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187쪽)


  《10대와 통하는 과학 이야기》는 ‘과학’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를 푸름이가 알도록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와 책에 적힌 과학을 넘어, 우리 삶을 이루고 우리 삶터에 두루 흐르는 모든 과학을 읽는 마음을 알려주는 인문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결에도 함께 있는 과학을 생각하도록 북돋웁니다. 우리 몸을 이룬다는 100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세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북돋웁니다. 세포 하나가 하는 엄청난 일을 떠올리면서, 이런 엄청난 세포가 100조씩 있는 우리 몸이란, 나하고 너란, 참말 얼마나 대단한 숨결인가를 헤아리도록 북돋아요.

  오늘날 생명과학에서는 우리 몸을 이루는 이 어마어마한 세포가 며칠 지나면 모두 죽고 새로 태어난다는 대목까지 밝힙니다. 이레나 열흘쯤 지나면 옛날 세포는 우리 몸에 하나도 없대요. 이렇게 하나하나 밝히는 오늘날 여러 갈래 과학은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과 삶을 새롭게 읽도록 도와준다고 할 수 있어요. 넘어져서 까진 자리가 며칠 뒤에 아무는 까닭, 생채기에서 고름이 빠지고 말끔히 낫는 까닭도 ‘세포 과학’으로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습니다.


과학이 물질로 구성된 뇌와 마음 사이를 아직 다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그만큼 신비로워서입니다 … 사람의 마음은 우주의 위대한 기적입니다. (201쪽)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제된 사랑으로 결합이 이뤄지고 그때 수정됩니다. 사람의 몸 안에서 새로운 사람의 몸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219쪽)


  그리고 《10대와 통하는 과학 이야기》는 우리가 과학을 배우거나 살피거나 다룰 적에 잊기 쉬운 대목을 찬찬히 짚어 줍니다. 아무리 눈부시게 발돋움한 현대과학이라 하더라도 ‘밝힌 수수께끼’보다 ‘못 밝힌 수수께끼’가 훨씬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덧붙여 삶을 이루거나 과학에서 이론이나 물질을 넘어 ‘마음하고 사랑’을 눈여겨보면서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태어난 놀라운 과학이란, ‘세포 수정’을 넘어 ‘서로 사랑한 어머니하고 아버지 마음’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요즈음 과학이라고 하면 으레 연구실이나 실험실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과학이란 늘 우리 삶자리에 있다고 할 만합니다. 부엌에 과학이 있고, 마당에 과학이 있어요. 들에 숲에 바다에 과학이 있지요. 김치도 젓갈도 과학이에요. 국수도 달걀부침도 과학이고, 깨바심을 해서 참기름을 얻는 살림도 과학이에요. 바구니 짜기나 뜨개질도 과학이고, 베틀도 물레도 과학입니다.

  과학은 삶에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예나 이제나 살림자리에 바탕이 되는 즐거운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18.4.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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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내리는 여행
오치근 외 지음 / 소년한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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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5


“우리 집 차”를 끓이고 싶어라
― 초록비 내리는 여행
 오치근·박나리·오은별·오은솔
 토마토하우스, 2015.5.1.


내려오는 길에도 차밭 풍경에 감탄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커피나 중국차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점점 쇠퇴해 가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모습이 가지가 온통 잘려 나간 천년 차나무와 꼭 닮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20쪽)


  우리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요? 책에 적힌 자취를 살필 수도 있으나, 책에 안 적힌 매우 오랜 자취가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차나무에서 딴 잎으로만 찻물을 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차란, 모름지기 풀잎이나 꽃물을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는 물이기에, 우리가 불을 써서 물을 끓일 수 있을 무렵부터 마셨으리라 어림합니다. 어쩌면 끓는 솥에 나뭇잎이나 풀잎이 섞이면서 맛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서 곳곳에서 저절로 ‘풀잎·나뭇잎’ 끓여서 마시기를 했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덖다’하고 ‘달이다’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낱말을 언제부터 썼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매우 오래된 낱말인 줄은 알 수 있어요. 그러니 차나무가 한국에 언제부터 있었는 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덖은 잎을 달이거나 끓여서 마시던 살림’은 참으로 오래되었지 싶습니다.


차꽃은 하얀 찔레꽃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1∼3송이가 피는데 5∼8장의 하얀 꽃잎 안에 노란색 꽃술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향기가 좋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말려 두면 꽃차를 만들 수 있다. (62쪽)


  《초록비 내리는 여행》(오치근·박나리·오은별·오은솔, 토마토하우스, 2015)을 읽습니다. 지리산 언저리에서 살림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식구들이 ‘차마실’을 다닌 걸음을 글하고 그림으로 엮습니다. 저마다 올망졸망 그림을 그리고, 오치근 님이 글쓰기를 도맡아서 엮어요.

  책이름에 붙은 ‘초록비’란 찻물을 빗대는 말이라 할 만합니다. 봄비도 초록비가 될 테고, 찻잎도 초록비가 됩니다. 봄비가 스미어 푸르게 돋아나는 찻잎을 끓여서 마시면 우리 몸에도 초록비가 퍼질 테고요.

  두 어버이는 아이들을 이끌고 차마실을 다니면서 차나무도 보고, 차나무가 자라는 시골 들이며 숲을 봅니다. 차 한 잔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를 아이들하고 함께 생각해 보고, 푸대접받는 차나무를 지켜보기도 하지만, 이런 차나무 가지 끝에서 새롭게 돋는 싹을 보며 씩씩하구나 싶어 놀라기도 합니다.


좋은 물까지 구했다면 이제 찻자리를 마련할 차례다. 요즘은 다인들 중에 아예 차실을 따로 갖춰 놓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차를 마시기 좋은 장소라면 어디든 찻자리가 될 수 있다. (88쪽)


  맑은 물에 바람이 흐르는 자리에 찻자리를 마련해 온 식구가 둘러앉습니다. 느긋하게 찻물을 홀짝이면서 온몸이 따뜻해집니다. 차나무에서 얻은 잎으로 차를 끓이기도 하고, 쑥이나 감나무처럼 풀이나 나무에서 얻은 잎으로 차를 끓이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풀잎하고 나뭇잎은 찻잎이 될 만합니다. 봄에 갓 돋은 잎을 알맞게 말린 뒤에 찌거나 덖으면서 찻잎을 마련합니다. 봄에 마련한 찻잎으로 여름 가을 겨울을 따뜻하게 보냅니다. 봄 한 철은 씨뿌리기로 부산하면서, 차로 쓸 잎을 건사하기에도 부산하구나 싶어요.


집으로 돌아온 은별이는 초의 선사의 모습을 그려 보겠다며 정성이다. 은솔이는 차꽃을 띄우며 놀았던 돌확과 지천으로 피어 있던 동백꽃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는지 언니와 함께 온 방에 돌확과 꽃을 그린 종이를 펼쳐 놓았다. (119쪽)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읽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집 나뭇잎하고 풀잎으로도 찻잎을 건사해 보고 싶습니다. 쑥잎이며 감잎뿐 아니라, 모과잎이나 찔레잎이나 매화잎으로도 찻잎을 마련해 볼 수 있겠지요. 뽕잎으로도, 또 모과꽃잎으로도, 앵두잎으로도 찻잎을 마련해 볼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헤아리며 아이들하고 함께 잎을 훑어 그늘에서 말리고, 찻잎을 찌거나 덖은 뒤에, 다시 잘 말려서 오래오래 두자고 생각합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누리면서 우리 나무하고 우리 풀이 있다면, 많지 않더라도 “우리 집 차”를 마련할 수 있어요. 마을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받아서 우리 집 차를 끓이면서 아침을 열면, 한결 따스하면서 짙푸른 하루가 되리라 봅니다. 2018.4.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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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 기획: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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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3


나라는 넉넉하지만 사람들은 가난하다면?
―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오건호·남재욱·김종명·최창우·홍순탁 글
 철수와영희, 2018.2.28.


복지국가는 기본 생활 보장과 사회 연대라는 두 개의 기둥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복지국가는 학생들 밥, 아이 돌봄, 노인과 실업자의 기초 생활뿐만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기본적 삶을 보장해 주는 나라입니다. (16쪽)


  한국은 가난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가난하지 않은 나라일까요? 한국은 넉넉한 나라일까요, 아니면 넉넉하지 않은 나라일까요?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테고, 누가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라 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넉넉한 나라는 아니라고 할는지 몰라도, 더욱이 가난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국은 틀림없이 ‘안 가난한 나라’, 다시 말하자면 ‘넉넉한 나라’로 꼽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올림픽을 치르는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겠지요. 고속도로가 그렇게 많은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을 테지요. 자동차가 그렇게 많이 오가는데 가난한 나라일 수 없을 텐데요, 그러나 한 가지를 짚어야겠지요. 틀림없이 ‘나라는 넉넉한’데, 고단하거나 힘들거나 슬프거나 괴로운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지금보다 30퍼센트 정도 건강 보험료를 더 내면서 1년에 환자 한 사람이 내는 본인 부담금을 100만 원으로 제한하자는 거예요. 의학적 비급여 진료비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지금 가구당 국민 건강 보험료가 약 10만 원인데, 여기에 평균 3만 원을 더 내고 기업과 정부 부담을 합치면 가능합니다. 이러면 병원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 나는 일은 사라질 것입니다. 또 가구당 월 30만 원에 이르는 민간 의료 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31쪽)

스웨덴에서 보편주의의 유연한 적용이 농민이나 중산층과의 연합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더 빈곤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 차별’이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일찌감치 나타납니다. (68쪽)


  인문책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오건호와 네 사람, 철수와영희, 2018)는 어딘가 아리송한 대목을 찬찬히 짚으려 합니다. 여러모로 한국은 넉넉한 나라에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무척 많은 사람들은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돈은 늘어나지만, 이 돈이 한쪽으로 쏠려요. 틀림없이 새 아파트를 엄청나게 짓습니다만, 집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요즈음 무주택자 비율은 44퍼센트라고 합니다. 그래도(?) 절반 넘게 집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집이 없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국회나 정부에서 집 없는 이 목소리를 담아낼 일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국회에도 공공기관에도 ‘집 있는 사람이 부동산으로 돈을 굴리도록 하는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거의 모두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오늘날 시골은 땅덩이는 넓으나 시골살림 목소리를 들어주거나 들려줄 일꾼이 매우 적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땅덩이는 좁아도 사람이 매우 많기에, 인구에 맞추어 도시살림 목소리를 들어주거나 들려줄 일꾼이 무척 많아요. 이런 모습하고 맞물려 주거권, 기본권, 평등권, 여기에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담아내거나 펼칠 수 있는 자리가 좁다고 할 만합니다. 재산권을 펴는 자리는 아주 넓은데다가, 재산권을 지키는 목소리는 무척 크지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재산권’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재산권은 우리의 여러 권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재산권을 내세워 인간의 기본적인 주거권을 침해하는 건 인간 존엄성과 평등권을 명시하는 우리 헌법에도 위배되는 일입니다. (137쪽)

최저 임금이 법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이에 미달하는 근로자가 많은 원인은 한국에 영세 사업장이 너무 많은 것도 있지만, 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12쪽)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라는 책을 이끄는 다섯 사람은 보편 복지, 의료 복지, 주거 복지, 연금 복지, 노동 복지, 이렇게 다섯 가지 복지란 무엇이고 우리 터전에서는 어떤 모습인가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합니다. 마무리로는 세금을 나라에서 어떻게 걷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얼마를 누가 누구한테서 걷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요.

  넉넉한 나라로 접어든 한국은 복지라는 길에 조금은 발을 들이기는 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해요. 인권으로도, 의료나 주거권으로도, 머잖아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는 연금에서도, 또 비정규직하고 하청이 나날이 늘어나는 얼거리에서도 모두 아장걸음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세금을 안 내면서 뒷돈을 쌓는 사람이 매우 많고, 이 돈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전국의 다주택자가 187만 명인데, 그중에서 주택 임대 소득을 신고한 사람은 4만 8000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비율로는 2.6%밖에 안 되는 거죠. (253쪽)


  한 사람은 배가 부르지만 곁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은 배가 고프다면, 오늘 배가 부른 한 사람도 머잖아 배를 곯을 수 있습니다. 학력이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벌어지는 일삯이나 연금이나 복지가 아닌, 일하는 사람이 저마다 제몫을 누리면서 아늑한 살림터를 누릴 때에 다 같이 넉넉하면서 즐거운 나라가 될 만하지 싶습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재원을 만드는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비정상적으로 낮춰 놓았던 법인세나 보유세를 원상회복하고 진작 과세를 했어야 함에도 미뤄두었던 주식 양도 차익이나 주택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평 과세의 원칙이 확립될 것입니다. 공평 과세로 세금에 대한 신뢰와 증세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 사회 복지세 같은 새로운 복지 세금을 통해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64쪽)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겠지요. 보금자리를 가꾸며 느긋하게 아이를 낳아 돌볼 권리도 누구나 누려야겠지요. 햇볕을 쬐고 텃밭을 일구며 맑은 바람이며 물을 마실 권리도 누구나 누려야 할 테고요.

  그런데 이러한 길로 가자면, 여느 자리에 있는 우리도 어제보다는 세금을 조금 더 낼 수 있어야 한다지요. 그동안 세금을 떼먹은 사람한테서 제대로 세금을 걷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여기에 세금을 걷고 다스리는 나라일꾼은 슬기로우면서 곧발라야 합니다. 벼슬아치로 머무는 일자리가 아닌, 서로이웃이라는 마을살림을 헤아릴 노릇입니다.

  넉넉한 나라이지만 사람들은 가난해서 고달픈 살림이 아닌, 넉넉한 나라이면서 사람들도 넉넉한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하는 우리 손으로 지은 돈을 걷어서 꾸리는 나라살림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아름다운 길로 갈 수 있기를 빕니다.  이제는 함께 걷는 길이 되어야겠어요. 이제부터는 함께 웃는 살림이 되어야겠습니다.  2018.3.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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