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잘 내는 법 - 참지 말고 울지 말고 똑똑하게 화내자
시노 마키.나가나와 후미코 지음, 이시이 유키 그림, 김신혜 옮김, 일본 앵거 매니지먼트 / 뜨인돌어린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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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4


《화 잘 내는 법》

 시노 마키·나가나와 후미코 글

 이시이 유키 그림

 김신혜 옮김

 뜨인돌어린이

 2017.10.31.



주변을 한번 돌아봐. 큰소리로 고함치거나 항상 뾰로통한 사람 없니? 그게 너라고? 사실 화를 내는 방식은 부모님이나 가까운 누군가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17쪽)


만약 누군가가 의자를 제자리가 아닌 곳에 두는 바람에 그 의자에 부딪혔다고 생각해 봐. 이때 똑같은 일을 겪고도 화를 내는 사람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야. (24쪽)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가려고 할 때 마음속으로 ‘멈춰!’라고 외쳐서 화가 머릿속에 쌓이는 것을 막아 보자. (31쪽)


짜증내고 끙끙 앓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아. 상황을 받아들이고 시각을 바꿔 보는 것도 기분을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야. (52쪽)



  모든 생각이나 느낌은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생각이나 느낌이 달라집니다. 넉넉하면서 깊은 마음이라면 생각이나 느낌도 넉넉하면서 깊기 마련입니다. 탁 트인 마음이라면 생각이나 느낌도 탁 트이기 마련이에요. 귀를 열 줄 아는 마음이라면, 생각이나 느낌도 환하게 열 수 있겠지요.


  스스로 즐겁게 돌보는 마음일 적에는 성이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이 없지 싶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돌보지 못하는 마음이기에 자꾸 성이 나거나 으레 짜증이 나지 싶어요.


  《화 잘 내는 법》(시노 마키·나가나와 후미코·이시이 유키/김신혜 옮김, 뜨인돌어린이, 2017)은 어린이한테 어떻게 성을 다스리면 좋은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이한테 ‘성내기’를 가르친다고도 할 만한데, 참말로 우리 삶터가 매우 딱딱하거나 차갑습니다. 삶터가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더라도 어린이하고도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를 들려줄 노릇입니다만, 학교도 학원도 마을도 매우 갑갑한 도시 살림이에요. 시골에서는 농약이나 농기계나 비닐 때문에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기 어렵지요. 이러다 보니 오늘날 어린이는 매우 고단합니다. 즐겁게 배우기보다는 성적에 맞추어 아침부터 밤까지 몰아쳐야 하고, 즐겁게 뛰놀기보다는 어른 눈치를 보며 손전화나 셈틀을 붙잡을밖에 없습니다.


  《화 잘 내는 법》을 읽다 보면, 때나 자리에 맞추어 성을 잘 내야 한다는 이야기보다는, 때나 자리에 따라 우리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해야 좋은가 하는 이야기가 많아요. 북새통 같은 터전에서 어린이 스스로 마음을 지킬 뿐 아니라, 동무하고 이웃을 헤아리는 눈길을 다독이자고 하는 이야기가 줄곧 흐릅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 터전은 아직 민주나 평화나 평등이 고루 퍼지지 않았다고 할 만합니다. 차츰 민주하고 평화하고 평등 쪽으로 가지만, 집집마다 살림을 튼튼히 가꿀 만한 길하고는 좀 멀어요. 밑바탕부터 제대로 지을 수 있는 길로 가면서, 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살림이 되고, 어른도 어린이도 기쁘게 마음을 터놓고 하루를 새롭게 배울 수 있을 적에 비로소 “화 잘 내는 길”을 넘어 “사랑하는 길”이 되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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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네 자수 일기
몬덴 에미코 지음, 편설란 옮김 / 단추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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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8


《모모네 자수 일기》

 몬덴 에미코 글·실

 편설란 옮김

 단추

 2018.4.25.



내 몸속에 공존하는 또 하나의 존재. 꿈틀꿈틀 자유롭게 움직인다. 아프다……. (27쪽)


아기에게는 옆에 있는 사람을 여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 (57쪽)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은 빨래가 없는 날이 없다. 호텔 거울 위 조명은 빨래 건조대로 제격이었다. 여행 중에 매일 빨래를 하다 보니 손빨래 실력만 몰라보게 늘었다. (128쪽)


“엄마, 귤껍질은 꽃 모양으로 벗겨 줘야 해!” 새벽 3시, 아파서 잠이 들었던 아오가 귤이 먹고 싶다며 벌떡 일어났다. (196쪽)


눈길에서 우산과 우산을 연결해 기차놀이를 했다. 등에 업힌 모모도 꺅꺅 소리를 내며 동참했다. 지금밖에 없는 특별한 시간. (248쪽)



  모든 아이는 저마다 어버이를 골라서 태어난다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는 다 다른 삶을 누리려고 다 다른 어버이 품에서 태어나 다 다른 길을 걷는다고 느껴요. 어느 아이는 가멸차디가멸찬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길을 걷고, 어느 아이는 가난하디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는 길을 걷지요.


  어느 아이는 좀 어른스럽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달릴 수 있고, 어느 아이는 무척 따사로운 품인 집안에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를 어떤 눈이나 손으로 맞아들이는 어버이일까요?


  “모모가 태어나고 아오가 오빠가 되어 가는 386일 간의 기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모네 자수 일기》(몬덴 에미코/편설란 옮김, 단추, 2018)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책은 아이를 돌본 나날 삼백여든엿새를 실무늬놓기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모모란 아이하고 아오란 아이를 지켜본 하루를 바늘하고 실을 놀려서 날마다 이야기를 엮었다고 할 만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다가 지친 날도, 아기하고 까르르 웃으며 놀던 날도, 아이들한테 성을 터뜨린 날도, 아이가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눈물로 바라보던 날도, 그때그때 손에 집히는 대로 천이나 종이에 실로 무늬를 새기면서 발자국을 남겨요.


  아이들하고 살아오면서 늘 느끼는데, 어버이는 ‘육아일기’를 쓸 수 없구나 싶습니다. ‘육아’란 이름으로 ‘아이를 키운’ 이야기란 있을 수 없어요. 아이하고 살아가면서 아이한테서 배운 이야기가 있을 뿐이지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배워요. 그래서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배운 이야기”를 적습니다. 아이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어버이한테서 받은 사랑을 마음에 새깁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남기고, 아이는 사랑을 새깁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짓고, 아이는 사랑을 가꿉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아이는 사랑을 꿈꾸지요. 이렇게 두 사람, 어른하고 아이는 사이좋게 어우러지는 숨결로 거듭납니다. 삶을 노래하며 이야기가 태어나고, 살림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스레 웃고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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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 초등 1학년, 은경샘의 교실 이야기 시시콜콜 교육학 1
최은경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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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5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최은경

 교육공동체벗

 2018.5.15.



선생님은 반짝이들과 3월 한 달을 지냈어. 말도 안 통하고, 하고 싶은 건 얼마나 많은지, 툭하면 물이랑 우유를 바닥에 쏟아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우주선을 접었어. (9쪽)


이렇게 따뜻한 웃음을 나누는 한때를 떠올린다. 그러면 시가 그 둘을 싸안으며 내일 다시 학교로, 일터로 나갈 힘을 주지 않을까? (27쪽)


지금까지 아이에게 책 한 권 읽어 줄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집에 와서는 쉬고 싶고 쓰러져 자다가 밥 먹고 다시 일 나가는 생활을 계속 했다고 한다. 1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이 읽어 주는 그림책을 가져와 동생에게 읽어 주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49쪽)


상담을 마친 교실에서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림을 매만지고 자세히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찾은 소리는 작고 여린 것들이 내는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대부분이다. 가만히 귀 기울여야 간신히 들리는 소리도 있다. (62쪽)



  어른 눈으로 아이를 읽어도 될까 아리송하곤 합니다. 어른들이 어른 눈으로 아이를 읽으려 한다면, 아이들도 아이 눈으로 어른을 읽어도 되겠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른 눈으로 읽으려고만 할 뿐, 막상 아이들이 아이 눈으로 어른을 읽으면 매우 꺼리거나 싫어하기 일쑤입니다.


  오늘 우리 삶터는 오롯이 어른들 판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교육도 문화도 복지도 하나같이 어른들 눈높이에서 짜거나 엮어서 펴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때때로 생각해 보곤 합니다. 어른이 지어서 펴는 삶터가 아닌 아이가 가꾸어서 나누는 삶터로 바꾸어 본다면 어떠할까 하고요.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최은경, 교육공동체벗, 2018)를 읽으면서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삶을 새롭게 읽는 교사 한 분이 적바림한 일기를 읽는 내내, 이 아이들이 ‘굳이 지구사람이 되어야 하나?’ 싶더군요. ‘지구사람이 되어 가는 아이들’이 아닌 ‘별사람으로, 우주사람으로 오롯이 싱그럽고 홀가분하게 자라도록’ 하는 배움자리가 있으면 참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느껴요.


  교사 최은경 님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를 ‘반짝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아이들이 하도 반짝거려서 ‘반짝이’라는 이름을 붙이셨구나 싶은데, 아이들은 몸짓으로도 눈망울로도 생각으로도 손길로도 말씨로도 언제나 반짝인대요. 그렇지만 어른 삶터 틀에 맞추도록 가르쳐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들이 너무 힘들거나 벅차기 일쑤라지요.


  아이들이 삶터를 새로 가꿀 적에도 돈을 내세울까요? 아이들이 삶터를 사랑스레 돌볼 적에도 이름값을 앞세울까요? 아이들이 삶터를 넉넉히 북돋울 적에도 주먹다짐이나 전쟁무기를 쓸까요?


  아이들이 지구사람으로 바뀌면서 어른들 곁에 있는 까닭이라면, 어쩌면 어리석은 어른들한테 맑은 숨을 깨닫게 해서 이 터전에 사랑이 흐르도록 살살 건드려 주려는 뜻은 아닐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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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어떤 사회인가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1
김미조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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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

 김미조

 철수와영희

 2018.7.12.



만약 철수가 분업화 이전의 사회에 살았다면 자전거 한 대를 완성하기 위해 자전거 제작 과정 전체를 알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설계도를 만들고, 그에 필요한 부속품을 구입하고, 그 부속품을 끼워맞추고, 자전거에 색을 입히는 모든 일을 해내야 했겠지요. 분업화된 노동이 아니기에 그 과정은 까다롭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수는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자전거를 보며 이렇게 말했겠지요. “이 자전거, 내가 만들었어.” (34쪽)


사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민영화’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사영화’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국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관리해 왔던 것을 기업이나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것에 국민들이 가지는 반감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이지요. (116쪽)


우리는 필요로 하는 상품 이상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품을 외면하기는 힘듭니다. (127쪽)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곳에서 지내는 사람은 으레 긴소매를 입습니다. 살짝 에어컨을 켜고 나서 끌 생각이라기보다 내내 에어컨을 켜기 마련이니 긴소매 아니고는 한여름에도 추워요. 에어컨 켠 곳에서 긴소매로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면 매우 덥기 마련입니다. 얼른 에어컨 켠 다른 곳으로 가려고 여깁니다. 이에 발맞추어 전기를 잔뜩 써야 하고, 전기를 잔뜩 쓰려면 발전소를 크게 지어야 하고, 발전소를 크게 짓자면 도시에서는 위해시설일 테니 시골을 밀어내야 할 테며, 송전탑을 잔뜩 박아야 할 테지요. 이동안 지구자원을 엄청나게 쓸 테고요.


  여름하고 맞닿는 에어컨이란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이 나라가 자본주의에 갓 발을 담글 즈음에는 선풍기로도 여름이 시원했습니다. 이 나라에 자본주의가 들어서지 않고 자급자족 살림이 흐르던 때에는 부채로도 여름이 시원했을 뿐 아니라, 집집마다 나무 그늘이 우거져서 굳이 부채가 없어도 되었습니다.


  《10대와 통하는 자본주의 이야기》(김미조, 철수와영희, 2018)는 어느덧 돈에 따라서 굴러가는 한국이라는 나라하고 삶터를 읽도록 이끕니다. 삶이 아닌 돈이 앞서는 나라에서 푸름이가 어떻게 길을 안 잃고 눈을 슬기롭게 뜰 만한지를 짚으려고 합니다.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손에 돈을 잔뜩 쥐었어도 제대로 못 쓰기 마련입니다. 길을 찾은 사람이라면 돈 없는 빈손이어도 살림을 즐겁게 지을 줄 알기 마련입니다. 눈을 슬기롭게 못 뜬다면 매체에서 흔들거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휩쓸리기 좋습니다. 눈을 슬기롭게 뜬다면 둘레에서 무어라 떠들든 스스로 꿈꾸고 사랑하는 결을 가꾸면서 마음껏 노래하기 마련입니다.


  돈을 몰라야 하거나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돈을 즐겁고 알맞게 쓸 수 있으면 됩니다. 나라가 자본주의이거나 아니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겠느냐 하는 생각이 서야 합니다. 흐르는 삶터는 삶터대로 읽되, 무엇보다 푸름이 스스로 마음에 어떤 꿈하고 사랑을 심으려 하는가를 생각하고 읽을 줄 알아야지 싶어요.마음이 튼튼히 서면 두려울 일도 걱정할 일도 없습니다. 생각이 곧게 서면 언제나 기쁘면서 아름답게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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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 - 전통 시장 신기방기 전통문화
정인수 지음, 최선혜 그림 / 분홍고래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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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82



시골 저잣거리는 ‘조선 서민 실록’

―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

 정인수 글·최선혜 그림

 분홍고래, 2018.2.25.



오일장이 생겨난 것은 임진왜란 뒤부터야. 그전에는 한양 등 큰 도시에만 시장이 있었고, 시골에는 시장이 없었어. 그래도 살아가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었어. 우리 선조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고, 가끔 오는 보따리장수나 등짐장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면 되었으니까. (22∼23쪽)


장터는 친지를 만나는 곳이었어. 함께 국밥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했어. (27쪽)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정인수·최선혜, 분홍고래, 2018)는 여러모로 뜻있는 어린이 인문책이라고 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서울에서 살며 ‘커다란 마트’를 으레 다녔다고 하는데, 시골로 삶터를 옮기고서 어느 날 저잣거리를 다녀 보았고, 저잣거리에서 살림거리를 요모조모 장만하는 사이 저잣거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살며 드나들던 커다란 가게에서는 물건마다 누가 어떻게 지어서 파는지 알 수 없이 그저 돈을 치르면 끝이었다고 해요. 이와 달리 시골 저잣거리에서는 웬만한 물건마다 누가 어떻게 지어서 이고 지고 나르고 펼쳐서 파는지 알 수 있었대요.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살 적에는 장사하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옛날 장터는 서민들의 삶이 가득한 곳이었어. 왕이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라면 오일장은 서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담은 ‘조선 서민 실록’이라 할 수 있지. (29쪽)


옛날 장터에는 말이나 소달구지에 곡식을 싣고 다니며 팔던 장사꾼도 있었는데, 이를 시겟장수라고 했어. 시게란 바로 곡식의 순우리말로 노점 쌀가게는 시겟전, 곡식의 시세는 시겟금, 곡식 값으로 받은 돈은 시겟돈이라고 했어. (35쪽)


드팀전 근처에는 옷감을 다루는 작은 가게가 몰려 있었어. 물집은 염색을 해 주었고, 마전집은 옷감을 삶거나 빨아서 뽀얗게 해 주었어. 또 빨래만 전문으로 해 주는 꼭짓집도 있는데, 빨래 한 꼭지 당 얼마씩 받아서 꼭짓집이라고 해. (48쪽)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드나드는 큰도시 큰가게라면, 가게 일꾼하고 손님이 이야기를 섞기란 어렵습니다. 아니, 말을 섞을 틈이 없겠지요. 손님은 손님대로 얼른 살 물건을 사서 떠날 생각이요, 일꾼은 일꾼대로 하나라도 더 팔 생각일 테지요.


  물건을 어떻게 사야 더 좋거나 나쁘다고 가를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는 곰곰이 헤아려 볼 만합니다. 가게가 커지면 커질수록 커다란 가게에서 일꾼으로 있는 사람이 늘고, 손님으로 드나들 사람도 많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그저 ‘매출이라는 숫자’만 남습니다.


  저잣거리에서는 ‘매출이라는 숫자’가 큰도시 큰가게처럼 나올 수 없어요. 그러나 저잣거리에서는 사고파는 살림 사이에 흐르는 이야기가 있고, 삶하고 살림하고 사람이 함께 있기 마련입니다.



쇠전에 나온 소들은 자신들이 팔려갈 것을 알아차리고 여기저기 움메움메 하고 울기 시작하면 거래를 하지 못 할 정도로 시끄러웠어. 그래서 소를 사고팔도록 흥정 붙이는 쇠살쭈는 팔려는 사람 귀에 대고 소리치고, 사려는 사람 귀에 대고 또 소리를 치면서 흥정하곤 했어. (70쪽)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뒤부터 이승만 대통령 시절까지는 거의 장터마다 각설이가 출현하여 장꾼들을 울리고 웃겼어 … 각설이의 타령에는 풍자와 해학이 넘쳤는데, 이는 단순히 웃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살아야 하던 서민들의 울분을 노래로나마 달래려 한 것이었어. (105. 106쪽)



  어린이 인문책 《꼴뚜기는 왜 어물전 망신을 시켰을까?》는 저잣거리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찬찬히 갈라서 다룹니다. 한국에 저잣거리가 언제 처음 생겼는지,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저잣거리에는 어떤 물건이 드나들었는지, 저잣거리는 어떻게 커지고, 전문 가게는 어떻게 퍼졌는지, 저잣거리에서 남다른 장사꾼으로 누가 있는지, 저잣거리에서 쓰는 오래된 한국말은 무엇인지, 저잣거리하고 얽힌 재미난 이야기는 무엇인지, 요모조모 알뜰히 짚고 다룹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린이 인문책입니다만, 서울살이에 익숙한 어른이 보아도 훌륭합니다. 저잣거리를 어려운 학술말로 다루지 않고, 쉬운 삶말로 다루는 터라, 저잣거리를 둘러산 역사·사회·문화·앞날을 고루 읽고서 알아볼 만해요. 서울을 떠나 시골로 마실을 가려는 분이라면, 이 만한 이쁜 인문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시골 저잣거리를 둘러보아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으로 먼저 저잣거리를 배워 본다고 할까요.



(저잣터에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노래나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면 ‘풍각쟁이’ 또는 ‘딴따라’라며 천하게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연예인이 젊은이들의 꿈이 되었잖아.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 풍각쟁이들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했으니 그 가치를 이제야 후배들이 보상받나 봐. (125쪽)


전기수는 서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때에 들어와서는 전국의 이름난 장터에 감초처럼 활약했어. 전기수는 1960년대까지 이 장 저 장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팔았지만, 글자를 아는 사람이 늘고 책도 많이 보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 (130∼131쪽)



  글쓴이 정민수 님은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이야기를 사이사이 풀어놓습니다. 이를테면 지난날 풍각쟁이하고 오늘날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맞대어 놓지요. 지난날 전기수하고 오늘날 숱한 작가를 맞대어 보기도 합니다.


  달라지는 터전에 맞추어 저잣거리뿐 아니라 마을도 나라도 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은 예나 이제나 같습니다.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에 감도는 웃음하고 눈물도 예나 이제나 같을 테고요.


  가만히 보면, 서울 큰가게에서는 아이들이 달리지 못하도록 가로막기 일쑤입니다만, 시골 저잣거리에서는 자동차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달리며 놀거나 구경할 만하기도 합니다. 시골 지자체에서 저잣거리 가까이 공원을 마련해 두면, 저잣거리도 시골마을도 한껏 살아나면서, 서울 이웃도 시골 저잣거리에서 새로운 삶과 살림을 마주하면서 함께 즐거울 만하지 싶습니다. 2018.7.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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