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수업 - 하이타니 겐지로와 아이들, 열두 번의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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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1


《상냥한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햇살과나무꾼

 양철북

 2018.9.10.



나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데, 바다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절대 질리지 않습니다. (6쪽)


교사도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학교는 그런 장소입니다. 교사 대부분 이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명령이나 강제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까닭은, 그런 교사는 영원히 스스로 변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6쪽)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하는 것이 원래 교육의 목적인데, 수업에서 그것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발로 걸어 보려는 아이일수록 문제아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83쪽)


부모니까, 가족이니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코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아이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미사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95쪽)


우리는 돈을 버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문화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78쪽)



  꽤 오래 잊고 지낸 낱말로 ‘상냥하다’가 있습니다. 왜 이 말을 오래 잊고 지냈는지 생각조차 못했는데, 이 낱말을 새삼스레 떠올려 다시 쓰는 동안, 이 낱말을 잊은 까닭을 시나브로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자리가 그닥 상냥하지 않고, 우리 마음이 그리 상냥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릴 적에 학교란 데를 다니면서 ‘상냥하다’라는 낱말은 국민학교 적에만 들었는데, 으레 어른인 교사가 학생인 아이한테 쓰는 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그무렵 아이한테 부드럽게 다가서거나 착한 몸짓인 어른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었어요. 남학교에서 동무 사이에 사근사근한 아이도 매우 드물었고요.


  《상냥한 수업》(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18)을 읽으며 낱말 하나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글쓴이는 아이들 앞에서 ‘상냥하게’ 굴기로 다짐합니다. 윽박지르지 않고, 시키지 않고, 떠밀지 않고, 괴롭히지 않기로 다짐해요.


  자,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교사 가운데 아이한테 싹싹하게 굴기로 다짐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교대 같은 곳에서 교사를 기르면서 아이한테 부드럽게 타이르고 이야기하도록 이끌까요? 우리 삶자리에서 정치나 경제나 문화는 얼마나 사근사근할까요? 공무원이나 시장·군수 같은 이들은 사람들한테 싹싹하게 구나요?


  어느 모로 보면 모두 핑계일 텐데, 삶터가 어지럽더라며 아이를 돌보는 어른으로서 늘 상냥할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나라 탓이나 삶터 탓은 그만두고, 상냥한 말씨로 상냥한 살림을 가르치고, 상냥한 눈빛으로 상냥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지 싶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란, 서로 사랑으로 짓는 하루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디나 배움터인 줄 알아채면서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꿈하고 이야기를 함께 짓는 길을 걸어야지 싶습니다. 상냥하지 않다면, 아무래도 주먹다짐이 되겠지요. 상냥길하고 동떨어진다면 주먹질이 되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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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소년 나가신다 - 들썩들썩 요동치는 개화기 조선 조선 시대 깊이 알기
류은 지음, 이경석 그림, 한철호 감수, 만파식적 기획 / 책과함께어린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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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6


《개화 소년 나가신다》

 류은 글

 이경석 그림

 만파식적 기획

 책과함께어린이

 2018.7.10.



구식이는 금세 풀이 죽었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과거 시험이 있었다면 장원 급제라도 노려 보겠지만 그마저도 사라진 마당에 구식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30쪽)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놓았고. 그런데 너는 그 학교가 아무런 쓸모가 없고 오직 공자와 맹자의 도리만 높다하지 않느냐?” (51쪽)


“아니오! 절대 아닙니다. 말씀처럼 황금 궤짝보다 훨씬 값집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어찌 황금 궤짝에 비하겠습니까?” (163쪽)



  이 땅에서 개화기라 일컫는 무렵, 여러모로 나라가 흔들렸다고 할 만합니다. 서당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거나 낡은 길로 저물었고, 새로 짓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어요. 중국 한문을 섬기는 터전은 이제 끝장내고, 일본을 거친 서양 살림을 배워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개화기라는 때에서 백 해 즈음 지난 오늘날입니다. 지난 백 해 걸음은 얼마나 새롭거나 아름다웠을까요? 서당에서 가르친 이야기가 고리타분했는지 낡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는 짚을 수 있어요. 한문은 누구나 배울 수 없었고, 중국을 섬기는 한문길이란 이 땅하고는 걸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새로 지은 학교는 나았다고 할 만할까요? 개화기는 일제강점기하고 맞물리면서 이 나라 살림하고는 동떨어진 길을 갔습니다. 한국말을 담은 한국글로 쓴 책은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일본책으로 일본 한자말하고 일본 말씨로 서양 이야기를 익히던 그무렵입니다. 새 배움길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제 고장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이 아닌, 커다란 도시로 모이는 길이었어요.


  《개화 소년 나가신다》(류은, 책과함께어린이, 2018)는 서당 가르침에 길든 아이가 새 배움터로 나아가면서 낡은 생각을 털어내는 길을 들려줍니다. 개화 소년네 아버지가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던 길이 무엇인가를 개화 소년 스스로 찾아나서는 줄거리를 다루지요.


  개화 소년은 개화기로 보자면, 또 오늘날로 보자면 퍽 고리타분한 말씨나 몸짓을 보입니다. 그러면 그무렵 모든 아이나 젊은이가 개화 소년 같았을까요? 양반이라는 자리나 종을 부리는 자리에 있던 이였기에 고리타분한 말씨나 몸짓은 아니었을까요?


  모든 양반이 권력자는 아니었으니 ‘양반이란 자리’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만, 지식인이나 권력자 자리가 아닌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삶을 가꾸던 이들은 모든 살림을 손수 지었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은 서당조차 없던 때에도 집·옷·밥을 손수 지었고, 아이를 낳아 슬기롭게 말이며 사랑을 살뜰히 가르쳤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은 개화 학교를 몰랐어도 언제나 스스로 서는(자급자족·자립) 길을 걸었어요. 우리는 개화기뿐 아니라 역사를 짚을 적에 으레 ‘양반 자리’에서만 보기 일쑤인데, ‘백성 자리’에서 살림을 지은 자취가 얼마나 깊은 역사인가를 읽는 이야기를 함께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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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 - 마지막 한 마리가 행복해질 때까지 생각이 커지는 생각
아네테 펜트 지음, 수잔네 괴리히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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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0


《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

 아네테 펜트 글

 수잔네 괴리히 그림

 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2018.7.20.



아냐는 깜짝 놀랐다. 토끼를 품에 안았지만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했다. 지금까지 토끼를 길러 본 적이 없어서 토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프랜치가 안겨 준 토끼는 키도 컸고, 발바닥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35쪽)


“학교 색깔이 맘에 안 들면 너희가 학교를 예쁘게 칠해 봐. 매일 학교에 가고 그 안에서 공부해야 하는 건 너희잖아.” (45쪽)


“동물들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들 고맙고 기쁜 게 아니었어요?” 플리치가 말했다. “프랜치가 여기서 산다는 것 자체가 싫은 거야.” 마틴이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여길 부숴 버리고 비싸게 팔고 싶은 거지, 틀림없어!” (83쪽)


“이 집을 소유할 생각은 없어. 다만 여기 살면서 동물들을 보살피고 싶을 뿐이야.” 프랜치가 한숨을 쉬었다. (160쪽)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고들 말하지만, 이런 말이 어디에서 비롯하거나 누가 들려주는가를 낱낱이 짚지 않기 일쑤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이 먹는 고기가 되는 목숨은 ‘다른 고기를 잡아먹지 않’으면서 크고 튼튼하게 잘 살거든요. 잘 살펴볼 노릇입니다. 사람은 ‘고기를 잡아먹는 고기’를 얼마나 먹을까요? ‘고기를 잡아먹는 고기’가 아닌, ‘풀하고 이슬을 먹는 숲짐승’을 고기로 삼지 않나요? 그렇다면 굳이 ‘풀을 뜯는 짐승’을 고기로 삼기보다, 사람 스스로 ‘몸을 튼튼하고 크게 가꾸는 풀’을 즐겨먹으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고기를 먹고 싶다면 먹으면 됩니다. 이때에 손수 기른 집짐승을 잡아먹으면 되겠지요. 풀이나 풀벌레를 잡아먹고 살던 집짐승을 잡아먹으면, 이를테면 닭 한 마리로도 여러 사람이 배부를 만합니다. 이와 달리 좁은 공장에 가두어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이슬도 흙도 풀도 없이 사료하고 항생제로 살점을 키운 닭이라면 한 사람이 한두 마리로도 모자라기 마련입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어떤 고기를 어떻게 길러서 먹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몸을 이루는 먹을거리를 어떻게 돌보아서 누리는가를 찬찬히 배워야 합니다.


  《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아네테 펜트·수잔네 괴리히/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2018)은 사람들이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던 짐승’을 마구 괴롭히거나 돈이 안 되어 내팽개치는 사회 얼거리를 넌지시 짚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어린이도 부드러이 받아들이거나 살필 수 있게끔 이야기로 엮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맞닿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즐거운가는 어떻게 살림을 지어야 하는가하고 맞물립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나 산업이 어떤 얼거리인가를 읽어야 하고, 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며, 오늘 우리가 살림을 가꾸는 보금자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즐거운가를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동물복지라는 이름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란, 어느 하나만 보살피는 길이 아니라, 서로 아끼며 어깨동무를 하는 길입니다. 풀 한 포기하고 풀벌레 한 마리가 아늑하지 못하다면 사람도 아늑하지 못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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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4
로알드 달 지음, 김연수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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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9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로알드 달 글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0.8.14.



“조지야, 이리 와 봐. 이리 가까이 오면 네게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가르쳐 주지.” 조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갑자기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꼭 뱀이 사람을 물기 전에 웃는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21쪽)


조지는 정말 겁이 났다. 그래서 꼭 할머니를 어디로 날려 버리고만 싶었다. 글쎄……. 아주 날려 버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지는 할머니를 한번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고 싶었다. (26쪽)


조지는 마법의 약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이걸 좀더 넣고 저걸 좀더 뺄까 따위의 걱정으로 시간을 부질없이 보내기는 싫었던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넣기로 했다. (33쪽)


그때쯤 할머니의 몸은 성냥개비만큼 작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할머니는 계속 작아지고 있었다. 얼마 후, 할머니는 바늘만큼 작아졌다. 그러더니 호박씨만해졌고, 그리고는 …… 그리고는 ……. (152쪽)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할머니가 있다면, 안 사랑스럽거나 안 아름다운 할머니도 나란히 있을까요? 아이를 살뜰히 아끼는 할머니가 있다면, 아이를 매우 들볶거나 괴롭히는 할머니도 함께 있을까요?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사랑으로 돌보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아이를 사랑 없이 낳고는, 다시 아무 사랑 없이 팽개치는 어버이가 있어요. 어쩌면 이 어버이는 어릴 적부터 참다이 사랑받은 일이 없는 바람에,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은 못 자랐을는지 모릅니다.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로알드 달/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0)에 나오는 할머니는 조지란 아이를 매우 들볶거나 괴롭힙니다. 아이를 놀리는 재미로 산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어쩜 이런 할머니가 다 있으랴 싶으나, 이 할머니도 어린 나날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다가 고되게 일만 하고 늙은 바람에 그만 귀여운 아이 앞에서 모진 짓을 일삼을는지 모릅니다.


  조지라는 아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날마다 두려워 벌벌 떨면서 할머니가 벌이는 모진 짓을 다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찌저찌 이 끔찍한 나날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요? 할머니가 날마다 먹는 약을 마법약으로 바꿔치기해서 할머니한테 크게 한 대를 먹이고는 눈이 번쩍 뜨이도록 하는 길이 있을까요?


  누가 가르쳤을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마법약’을 떠올립니다. 누가 알려준 적은 없으나 할머니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마법약을 빚습니다. 그야말로 온마음하고 온힘을 다해 빚은 마법약은 대단히 잘 듣습니다. 그런데 있지요,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할머니가 아이를 알뜰히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면, 아이는 어떤 마법약을 빚을 수 있었을까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준다면 아이는 사랑을 담은 마법약을 빚을 만하겠지요. 아이한테 물려주는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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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글쓰기 -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 교과서
유리 슐레비츠 지음, 김난령 옮김 / 다산기획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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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22


《그림으로 글쓰기》

 유리 슐레비츠

 김난령 옮김

 다산기획

 2017.8.30.



일단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서야 내 이야기 속에 무슨 일을 담을 것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먼저 행위를 시각화했고, 그 다음으로 그 행위를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7쪽)


좋은 동화는 독자뿐 아니라 인생과 세상의 진실도 진지하게 고려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긍정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또한 좋은 동화는 인생과 세상에 대해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알려줄 수도 있으며, (47쪽)


모든 면에서 자연은 가장 풍부한 참고 자료의 원천이다. 제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예술가라 해도 자연에 대적할 수는 없다. (160쪽)


나무를 그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만일 나무는 ‘잊은’ 채 그림을 꾸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 그림의 생명력을 훼손할 수 있다. (194쪽)



  쓰려는 이야기가 있기에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리려는 삶이 있기에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연필을 쥐기에 누구나 다 글을 쓰지 않고, 붓을 들기에 누구나 다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호미가 있더라도 누구나 밭을 쪼지 않아요. 돈이 있더라도 누구나 넉넉히 나누지 않습니다.


  할 말이 있다면, 할 이야기가 있을 테고, 둘레에 나누고 싶은 삶이 있겠지요. 이때에는 누구나 다 글을 쓸 만하고, 그림을 그릴 만합니다. 마음에서 샘솟는 말, 이야기, 삶이 있지 않다면, 마음에서 말이며 이야기이며 삶이 샘솟도록 하루하루 즐겁게 돌보거나 갈고닦거나 다스릴 노릇입니다.


  《그림으로 글쓰기》(유리 슐레비츠/김난령 옮김, 다산기획, 2017)는 그림책을 손수 짓고 싶은 사람한테 길동무가 되기를 바라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그림을 어떻게 그려서 엮는지, 글은 어떻게 쓰고 가다듬는가를 찬찬히 짚어요. 이 책은 여러 그림책을 낱낱이 살피면서 어떤 손길하고 눈길로 그림하고 글을 써서 엮었는가를 들려줍니다.


  다만 너무 낱낱이 뜯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림이든 글이든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읽거나 느끼기 마련이에요. 그렇다고 이 책이 그림하고 글을 ‘이렇게 쓰라’고 밀어붙이지는 않습니다만, 조금 더 홀가분하게 그림하고 글을 보고 느껴서 짓도록 이끄는 길하고는 살짝 떨어졌지 싶습니다.


  처음부터 훌륭하거나 대단한 글이나 그림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글도 그림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하루를 지으면서 이 하루를 새로운 삶으로 노래하면서 가만가만 글로도 그림으로도 옮기기를 바라는 마음이기에 글도 그림도 새로 짓습니다.


  더 알록달록 꾸며야 하지 않습니다. 더 보기좋게 다듬어야 하지 않습니다. 빈틈없는 짜임새여야 하지 않습니다. 몇 쪽쯤 되는가를 굳이 세지 않아도 됩니다. 연필 한 자루로도 꿈을 그립니다. 붓 한 자루로도 사랑을 그립니다. 그림으로 글을 쓰고, 글로 그림을 그리는 뜻이란, 온마음으로 사랑을 그리는 살림에 있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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