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벨벳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3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인문책시렁 45


《블랙 벨벳》
 온다 리쿠 글
 박정임 옮김
 너머
 2018.6.10.


개인이 꾸준하게 정보를 모으고 있는 사이트가 1차 정보에 빠르기도 하고 정확할 때도 있다. 조직이 커지고 관료적인 색채가 강해지면 대량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놓치는 정보도 많아지는 듯하다. (49쪽)

진정해. 진정하고 생각을 해. 천천히 심호흡한다. (93쪽)

“난 몰랐는데 일본 육군 의료관계자 중에서 전범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 “응. 뭐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미국의 의도로 그렇게 된 거야.” (169쪽)

“대체 왜 뭐든지 부숴버리는 걸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다시 활용하거나 아름다우니까 보존하자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신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온갖 이유로 파괴를 장려하니까요.” (274쪽)

“확실하게 말할게. 결국 미국, 그것도 네가 소속된 회사야. 위저드그룹이 T공화국에는 비밀로 하고 T공화국 내부에서 특수한 화학무기를 만들고 있어.” “거짓말!” 얼빠진 듯 경박한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362쪽)



  무슨 까닭으로 이런 일이 터지는지 여느 사람 여느 자리에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곁에서 아리송한 일이 터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두 나라 사이에 싸움이 터지는 속내라든지, 사람한테 이바지할 일이 없을 우라늄을 만져서 발전소나 핵무기를 굳이 만들어 내는 속내를 쉬 알 길이 없어요. 이런 데에 세금으로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쏟아붓는데, 이 어마어마한 돈은 그런 일에 쏟아부을 만할까요?

  큰돈뿐 아니라 푼돈조차 들이지 않아도 숲을 푸르게 가꾸면서 전기를 얻는 길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햇볕으로 전기를 얻는다고 할 적에 고속도로나 찻길에 햇볕판을 지붕처럼 붙이면 될 일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 외지며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멧자락을 밀어내어 시멘트를 들이붓고서 햇볕판을 붙이는 정책만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우리 삶터를 온통 더럽히거나 망가뜨려서 맑은 물이나 깨끗한 밥을 먹기 어렵게 하면서, 또 싱그러운 바람을 못 마시게 하면서, 사람들이 몸이 아프다고 할 적에 병원하고 약에 기대도록 해요. 왜 이렇게 할까요? 맑고 푸른 삶터를 누구나 누린다면, 엘이디 전구가 아닌 햇빛으로 하루를 누리도록 한다면, 페트병에 담긴 물이 아닌 마을마다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도록 한다면, 아플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런 터전이 되도록 나아가려는 정책은 좀처럼 안 나옵니다.

  《블랙 벨벳》(온다 리쿠/박정임 옮김, 너머, 2018)을 읽으면서 수수께끼를 생각합니다. 나라, 기업, 전문 학자(대학교·연구소), 이렇게 셋이 손을 맞잡고서 뒤에서 벌이는 검은짓을 바탕으로 엮은 줄거리를 살피면서,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늘 거짓말을 보여주거나 가르친 나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책에 적힌 역사는 참말 역사가 맞을까요? 시사상식은 참말 시사상식이 맞을까요? 우리는 거짓 이야기가 마치 참인 줄 잘못 알면서 휘둘리는 나날은 아닐까요?

  요즈음 나오는 손전화 기계를 보면 ‘블루 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기능을 알려주는 손전화 가게는 몇 군데일까요? 셈틀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늘 ‘블루 라이트’가 나와서 우리 눈을 갉아먹는 줄, 엘이디 전구도 우리 눈을 갉아먹는 줄, 어디에서 누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안경집이 왜 엘이디 전구를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밝히는가 하는 속내를 제대로 짚는 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있기에 소설이 있고, 삶을 그리기에 소설이라는 글이 태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눈을 감거나 귀를 닫은 채 쳇바퀴질을 하느라 놓치는 삶을 소설이 담아내어 들려준다면, 찬찬히 눈을 뜨고 귀를 열 노릇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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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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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6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공경희 옮김

 북뱅크

 2008.12.5.



“하이디도 전쟁을 하는 것은 알았어.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거든. 하지만 그것이 히틀러 잘못이라고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 집안사람들은 모두 히틀러를 위해서 일하는 이들이었어. 그들은 히틀러를 훌륭하다고 여겼고, 하이디에게 그렇게 말했어.” (57쪽)


  우리는 서로 어떤 눈으로 바라보면서 부를까요? 우리는 때때로 ‘서로 다른 사람’이나 ‘저마다 다른 숨결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줄 잊은 채 부르지는 않을까요? 따지고 보면 “누구 아들”이나 “누구 딸”이기는 하겠으나, “누구 아들이라더라”나 “누구 딸이라지” 같은 껍데기를 자꾸 씌우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이름을 잊는달까요.


  어떤 사람 아들이나 딸이라 해서 어느 사람하고 똑같거나 닮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크게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 사람 아들이나 딸이 그 잘못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어느 사람이 크게 빛나는 일을 했어도 그 사람 아들이나 딸은 저마다 다른 길을 갈 뿐이겠지요.


“그렇지. 아들의 잘못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가 아버지가 한 짓을 잘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악행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안 될 일이지. 과거의 잘못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되풀이할 수 있단다.” (114쪽)


  어린이문학 《히틀러의 딸》(재키 프렌치/공경희 옮김, 북뱅크, 2008)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호주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로 생각을 북돋우고 마음을 살찌우는 삶을 보여줍니다. 둘째, “히틀러 딸”인지 “하이디”인지, 어느 이름으로 부르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람을 아주 다르게 보거나 느낄 뿐 아니라, 이이는 이웃이나 동무가 될 수도 있지만, 아예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어요.


  다만, 이 책은 ‘지은 이야기’입니다. 히틀러란 사람한테 딸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다고 해요. ‘히틀러한테 딸이 있다면, 그리고 그 딸이 전쟁통에 살아남아서 아버지하고 아주 다른 길을 조용히 걸어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를 동화 얼거리에 담아서 묻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히틀러 딸” 또는 “하이디”는, 이 이야기에서 짝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고 해요. 이때에 어느 아이는 “히틀러 손자!”라 말하지만, 다른 아이는 “하이디 아이!”라고 대꾸합니다. 자, 이때에도 또 다른 이름이자 삶입니다. 그리고 “누구네 아이”이기 앞서 “아무개”라고 하는 그 아이 이름이 있어요.


“의사랑 결혼해서 아이들도 낳았어.” “히틀러의 손자들이네!” 마크가 말했다. “아냐. 하이디의 자식들이야.” 안나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196쪽)


  우리는 서로 이름으로 부르기에 동무가 됩니다. 생각해 봐요. 동무하고 노는데 동무를 “누구 아들”이나 “누구 딸”이라 부를까요? 아니지 않나요? 우리는 동무 이름을 부르며 동무하고 놀아요. 오로지 동무 이름만 떠올리면서 동무하고 마음으로 사귀어요.


  서로서로 어떤 눈으로 보려나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려나요? 우리는 어떤 삶으로 손을 잡거나 손을 뿌리치려나요? 우리는 서로 무엇을 보려나요? 기쁘게 어우러질 삶을 바라는지, 아니면 허울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도 삶길을 못 보려는지, 찬찬히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더피(히틀러)의 딸은 이제 없었어. 겔베르 선생님이 만들려고 애쓰던 착한 아이도 사라졌어. 남은 것은 하이디뿐이었어. 하이디의 마음속 깊이 있는 작은 씨앗뿐이었어. 살아남아야 했어. 그래야 씨앗이 자랄 수 있으니까. (184쪽)


  아이들이 저마다 생각을 새롭게 지피는 이야기를 다루는 《히틀러의 딸》에서 찬찬히 짚기도 하는데, 잘잘못과 사랑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서로 이웃이 되려는지 동무가 되려는지, 아니면 그냥 남남이거나 미워하는 사이가 되려는지를 자꾸자꾸 물으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만난다면, 내가 너를 만나고 네가 나를 만난다면, 바로 너는 너요 나는 나이기 때문일 테지요. “누구네 집 아이”라는 껍데기를 헤아리면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만남이 서로 즐거울까요?


  허울이 도사리는 삶이 될 수 있지만, 깊이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어깨동무하는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책은 “히틀러의 딸”을 다루는데, 한국이라면 “전두환 아들”을 떠올릴 만하겠지요. 그러나 살가이 만나는 고리가 아닌, 미움과 멍울이라는 고리는 이제 끊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같이 끊어야겠지요. 그분도, 우리도. 그리고 다함께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야겠지요. 흙을 만지고 숲을 노래하면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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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하수도에 악어가 산다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33
크리스티앙 레만 지음, 이정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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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9


《우리 집 하수도에 악어가 산다》

 크리스티앙 레만 글

 베로니크 데이스 그림

 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

 2008.9.16.



프린느의 삶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 건 토마스가 세 살이 되면서부터였어요. 그 전까지는 토마스가 그렇게 골칫거리는 아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발가벗은 채 두 팔을 쫙 벌린 토실토실한 남동생을 안고 욕실에 들어왔어요. (7쪽)


프린느는 동생의 투정을 다 받아 줘야 하는 벌을 받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토마스는 물속에 오래 있건 말건 별 상관이 없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14쪽)


손가락으로 욕조 바닥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며 중얼거렸어요. “악어가…… 수챗구멍 속에 악어가 있어…….” 그 말에 토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아주 먼 옛날에…….” 프린느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아주 먼 옛날에, 엄마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20쪽)



  이부자리를 펴고 누운 아이들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 내내 뛰놀았어도 모자란지, 잠자리에서 놀이를 잇습니다. 언제까지 놀려나 하고 기다리지만 아이들은 조잘조잘 이야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제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저도 어릴 적에 밤잠을 미루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 했고, 잠을 미루는 이야기꽃은 얼마나 새롭게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몸이 고단한 줄을 잊고, 하루 내내 뛰놀며 몸에 기운이 다 사라진 줄 모를 뿐 아니라, 이야기로 조잘조잘 밤을 보내면서 아마 새롭게 기운이 솟았을 수 있어요.


  《우리 집 하수도에 악어가 산다》(크리스티앙 레만·베로니크 데이스/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 2008)에 두 아이가 나옵니다. 누나하고 동생입니다. 누나는 동생이 세 살이 될 무렵까지 딱히 ‘성가신 동생’이라고 느끼지 않았답니다. 아마 동생이 세 살이 될 무렵까지 어머니가 도맡아서 동생을 돌보았겠지요. 그리고 이동안 누나는 어머니 손길을 덜 탔을 테고, 이때에 ‘홀가분히 욕조놀이’를 누렸을 테고요.


  혼자 노는 느긋한 나날이 사라진 누나는 몹시 귀찮을 뿐 아니라 짜증이 솟습니다. 이러다가 꾀를 하나 내요. 동생한테 앙갚음을 할 만한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기로 합니다. 누나는 여러모로 상냥하기에 동생한테 꿀밤 먹이는 짓이나, 못된 장난을 하지 않아요. 동생이 벌벌 떨 만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어요.


  어느 모로 보면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짓도 좀 못된 장난일 수 있습니다만, 두 아이는 다툼질 아닌 이야기라는 놀이로 서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길에 선다고 할 만해요. 누나는 동생한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생은 누나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누나는 한껏 부풀려서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동생은 이래저래 무섭기는 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누나 숨결을 물려받아요.


  온 하루가 놀이입니다. 모든 말이 상냥한 놀이입니다. 언제나 즐겁게 놀고 쉬고 놀고 먹고 놀고 자는 나날입니다. 모든 몸짓이 개구지게 피어나는 놀이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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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전아현 옮김, 강정선 그림 / 계수나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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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7


《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아현 옮김

 계수나무

 2007.11.19.



나이구는 그날 하루 종일 코가 다시 길어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래서 불경을 외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틈만 나면 조심조심 코끝을 만져 보았다. 그러나 코는 입술 위에 얌전히 달려 있을 뿐, 더 늘어날 낌새는 없었다. (22쪽)


그러나 인간은 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두운 데서도 사물을 잘 구별하고 희미한 냄새로도 알아맞히는 개의 재능을 배울 수 없는 것이다. (38쪽)


너를 내 제자로 삼겠다고 했지만, 훌륭한 신선이 되고 안 되고는 온전히 네 하기에 달렸으니까. (73쪽)


“아, 지금 막 떠올랐는데, 내게 태산의 남쪽 기슭에 집이 한 채 있지. 그 집과 텃밭을 내게 줄 터이니 거기에 가서 살아라. 지금쯤이면 집 주위에는 온통 복숭아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95쪽)



  걱정을 하기 때문에 새롭게 걱정이 쌓이고, 웃기 때문에 새롭게 웃습니다. 이런 삶결을 놓고 예부터 콩 심은 데에 콩이 난다 하고, 팥 심은 데에 팥이 난다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너무 마땅하다 싶어서 지나치기 쉬운 옛말이요, 곰곰이 따지면 삶이 흐르는 결이나 밑틀을 찬찬히 짚는 오랜 슬기입니다.


  스스로 달라지려고 애쓰기에 어느새 스스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주저앉고 마니까 어느덧 스스로 주저앉기를 되풀이하다가 아예 손을 놓습니다. 남 탓을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누구 탓으로 돌릴 겨를이 있다면, 스스로 더 마음을 기울이거나 기운을 낼 노릇일 뿐입니다.


  《코》(아쿠타가와 류노스케/전아현 옮김, 계수나무, 2007)라는 책은 어른문학으로 이름이 높은 분이 빚은 어린이문학입니다. 일본에서는 아쿠타가와 상이라 하면 으뜸으로 치는데, 《코》를 읽으면서 일본 옛이야기에 옛살림하고 옛슬기를 잘 풀어낸 숨결을 읽으면서, 으뜸으로 칠 만하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뭔가 가르쳐 주기에 훌륭한 글이나 이야기가 아닙니다. 빙그레 웃거나 까르르 웃거나 깔깔 웃는 사이에 문득 배우기도 하고 생각을 새로 가다듬도록 북돋우니까 훌륭한 글이나 이야기가 됩니다.


  남다르거나 처음 듣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됩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흔한 이야기를 다루면 됩니다. 누구는 코에 자꾸 마음이 가면서 삶을 놓치거나 미룹니다. 누구는 얼굴에, 다리에, 머리카락에, 손등에 자꾸 마음이 가느라 삶을 놓치거나 미룹니다.


  다만 코나 얼굴을 자꾸 들여다볼 수 있고, 자꾸 들여다본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자꾸자꾸 들여다보며 자꾸자꾸 생각을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이면서 새길이나 새살림을 스스로 트도록 슬기로운 마음이 되면 넉넉해요.


  작은아이가 설거지를 미룹니다. 살짝 나무랄 수 있지만 능금 한 알을 깎아 달라 하면서 설거지는 제가 맡습니다. 작은아이가 놓치거나 잊거나 미루는 일을 제가 넌지시 하면서 다른 일을 맡겨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문득 느끼거나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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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술
나카지마 가즈코 지음, 아키사토 노부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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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4


《마지막 마술》

 나카지마 가즈코 글

 아키사토 노부코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04.3.10.



마녀수선화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눈 속에 살며시 피어 있는 수선화 따위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알아보기는커녕 들토끼와 여유가 서로 다투어 지나갈 때마다 자칫 밟힐 뻔하였습니다. (24쪽)


“여기 긴 나무의자가 하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여기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자아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녀할머니 곁으로 다가와 앉았습니다. (48쪽)


“어머나, 이런 곳에 나무의자가 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참 이상도 하네. 누가 마술이라도 부린 것 같지 뭐야.” (72쪽)


“나, 왠지 이 나무의자가 마음에 드는걸. 내일 또 여기 놀러와야지.” (86∼87쪽)



  저는 자꾸 꿈을 잊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롭게 꿈을 꿉니다. 잊은 꿈은 잊었구나 싶어서 밀치고, 잊은 만큼 새롭게 꿈을 꾸자고 다짐해요.


  그렇잖아요. 잊어버린 꿈을 어떻게든 다시 떠올려도 좋으나, 새롭게 꿈을 꾸어도 좋아요. 이러다가 잊은 옛꿈을 드디어 다시 생각해 내어 이 꿈도 이루겠노라 하고 다짐해도 즐겁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두 바퀴로 걷는 길이랄 수 있어요. 하나는, 늘 생각하고 되새기는 꿈바퀴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꾸 잊어버린 터라 새롭게 지어서 생각하려는 꿈바퀴예요.


  《마지막 마술》(나카지마 가즈코·아키사토 노부코 /김숙 옮김, 북뱅크, 2004)이라는 어린이문학을 가만히 읽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는 마녀가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냥 마녀가 아닌 ‘할머니 마녀’요, 더욱이 ‘곧 눈을 지그시 감고서 이 땅 이 삶을 마칠 할머니 마녀’가 나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할머니 마녀 같은 자리에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녀’ 아닌 ‘마남’이어도 좋고, 마녀도 마남도 아닌 수수한 여느 아버지로서 우리 아이들이나 곁님 곁에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한 달 남짓 보내 보았는데, 더 헤아리고 보니, 이런 생각은 이 책을 읽고서 한 달 동안 하던 생각이 아니라, 곁님을 만나고서 열두 해 동안, 큰아이가 태어나고서 열한 해 동안 내내 하던 생각이더군요.


  아이들이 자라서 열한 해가 스물한 해가 되고, 서른한 해가 되고, 마흔한 해가 되면, 또 백한 해나 이백한 해가 되면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마 올해에나 이백 해 뒤에나 제 마음은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저는 제 삶에서 물려주거나 남기고 싶은 일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래야만 하지 않습니다. 늘 즐겁게 노래하기에 사랑입니다. 언제나 활짝 웃고 춤추기에 사랑입니다. 사랑할 적에는 추위도 더위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마음일 적에는 나이가 없고, 가난도 아픔도 슬픔도 없답니다. 마녀 할머니는 드디어 이를 깨달으셨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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