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동화는 내 친구 65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고경숙 그림 / 논장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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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85


《우리 이웃 이야기》

 필리파 피어스 글

 고경숙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1.8.30.



한번은 내가 아저씨한테 왜 남들처럼 두발자전거를 타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세발자전거를 타면 넘어질 걱정 없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달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10쪽)


사람들은 모틀록 할머니에게 느릅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했다. 모틀록 할머니는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느릅나무가 거기에 있었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도 거기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51∼52쪽)


어린 짐은 여름 새벽이 이토록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줄은 몰랐다. 축제날처럼 하늘에 빨간빛, 노란빛이 보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113쪽)


물속에서 헤엄을 치면 재미있게도 바로 위에는 공기도 있고 해도 빛나고 사람들이 첨벙거리며 고함도 치는데, 물 아래는 너무도 잔잔하고 고요하고 어둑어둑하다. (163쪽)



  꿈에서 누가 저를 한창 모질게 괴롭힙니다. 저를 모질게 괴롭히는 이는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괴롭히려 합니다. 참 재미있게도 꿈에서 저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아요. 사람들을 모질게 괴롭히는 그이를 멀쩡한 낯으로 부드러이 마주할 뿐이면서, 참 딱하네 하고 여깁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그이는 참으로 악다구니를 쓰는데, 이런 막짓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저를 비롯한 누구나 말끔한 낯으로 그이를 바라보니 어느 누구도 괴롭거나 들볶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 누구를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가 누구를 기쁘게 하거나 즐겁게 할 수 없구나 싶어요. 스스로 아프거나 다칠 뿐이고, 스스로 기쁘거나 즐거울 뿐이지 싶습니다.


  《우리 이웃 이야기》(필리파 피어스/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2011)에 흐르는 따사로운 숨결을 읽습니다. 우리 이웃 이야기는 매우 수수한 이야기입니다. 이 어린이책에서 다루는 이웃이란, 너이면서 나예요. 내 곁에 있는 이웃이 수수하듯, 이웃 곁에 있는 내가 수수해요. 너랑 나는 서로 수수하면서 서로 따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너를 이웃으로 두면서 수수하고 즐겁게 삶을 짓고, 너는 나를 이웃으로 삼으면서 수수하고 즐겁게 삶을 짓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이런 어린이문학이 다 있네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뭔가 톡톡 튀지 않아도 이야기가 사랑스럽습니다. 남다르다 싶은 줄거리를 펴지 않아도 이야기가 아름답습니다. 꾸미려 하면 그저 꾸밈짓이 드러나요. 꾸밀 까닭이 없이 사랑하기에 사랑스러운 바람이 붑니다. 꾸미거나 치레하지 않고 오로지 고운 마음이 되니 말 그대로 아름다이 햇볕이 내리쬡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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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소년의 용기 창비아동문고 89
최승자 외 엮음 / 창비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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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2


《물고기 소년의 용기》
 프란시스 투어
 최승자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5.12.5.


니꼴라는 물고기들을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이 사는 푸른 바닷속도 사랑했읍니다. 그리고 그는 바닷속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수많은 신기한 것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집으로 달려가 흥분하여 외쳤읍니다. “엄마, 방금 붉은 카네이션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지떼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어요.” (9쪽)


“아가씨 혼자 있소?” 하고 가만히 소곤거렸읍니다. “집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에요. 난 하느님과 함께 있으니까요.” (21쪽)

봄이 되자 과일나무들은 꽃을 피웠고, 곡식들은 말 탄 사람만큼 높다랗게 자라났고, 곡식이 무르익어 가는 들판은 젊은 부부가 쓰는 황금빛 왕관보다 더 아름다왔읍니다. (38쪽)

“여긴 저의 집이니까 제가 주인이랍니다. 당신은 내게 가장 사랑하는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셨잖아요? 난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가지고 왔어요. 이제 당신은 내 거예요!” (178쪽)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읊는 모든 말은 아이 마음에 씨앗이 되어 깃듭니다. 좋다 싶은 말을 비롯해 궂다 싶은 말까지 모두 씨앗으로 스며듭니다.

  이야기꽃을 펴는 마실을 가려고 고흥을 떠나 순천을 거쳐 아산으로 가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버스일꾼이 아주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라 어쩔 수 없이 듣고 마는데, 어느 어버이가 제 아이한테 끔찍한 말을 술김에 했다는 이야기가 흘러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이튿날에도 그 라디오 그 이야기가 마음에서 가시지 않습니다. 하루 지나서 그 이야기를 떠올리니 눈물이 핑 돕니다. 제 일이 아니어도 그 아이들 어버이가 너무 철없이 뱉은 말이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버이 스스로 무너뜨리는 말이니 참으로 아파요.


  《물고기 소년의 용기》(프란시스 투어/최승자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5)를 읽는데 첫 꼭지부터 아이랑 어버이 이야기가 맞물립니다. 이탈리아 옛이야기를 묶은 책인데, 이탈리아에도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구나 싶어요. 어버이가 아이 곁에서 문득 뱉은 말이 고스란히 씨앗이 되어 아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고 해요. 아이는 어버이 말에 오래도록 마음이 다치는데, 나중에 어버이 곁을 떠나 스스로 새살림을 짓는 동안 이 아픈 생채기를 가만히 다스려 아물도록 하고, 이녁 어버이가 보여준 화살 같은 말씨앗을 꽃님 같은 말씨앗으로 바꾸어 낸다고 해요.


  새로 어른이 되는 아이는 한결 듬직하며 사랑스러운 숨결이 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아이는 모든 모습을 낱낱이 지켜보면서 배우지 싶어요. 따스한 어버이 모습은 따스한 대로 지켜보면서 배워 더 따스하게 북돋아요. 차가운 어버이 모습은 차가운 대로 지켜보고 배워서 찬기운을 풀어내어 새삼스레 포근히 살찌워요.


  우리 아이들 앞에 서는 어버이란 제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제 입에서 흐르는 말이 어떤 씨앗일는지, 제 손에서 피어나는 글이 어떤 꽃씨일는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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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시공 청소년 문학 42
카롤린 필립스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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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3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카롤린 필립스

 김영진 옮김

 시공사

 2011.2.15.



카타리나가 속삭였다. “이제 다들 슬슬 돌아가려나 봐. 너, 우리 집에 있고 싶으면 여기 그냥 가만있어. 내가 가서 잠들었다고, 그냥 우리 집에서 자게 두라고 전할게.” (30쪽)


크리스티안은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코스프레가 뭔지 아빠에게 설명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요란스럽게 변장을 하는 건지, 전혀 해롭지도 않은 걸 가지고 시비를 거는 고리타분한 어른들에게 벌써 수백 번도 더 설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130쪽)


선생님을 찾아갈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지금도 자신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토비아스를 위해서였다. 이 일에 마침내 종말을 고하자면 가정을 무너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만 했다. (206쪽)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둘레에 사랑을 흩뿌리는 삶을 짓는다고 느낍니다. 사랑을 못 받으면서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저는 사랑을 못 받았어도 둘레에 사랑이 피어나도록 애쓰는 삶을 짓기도 하지만, 그만 사랑이 없는 눈길이나 손길로 둘레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눈앞에서 마주하는 아이를 어떤 눈길하고 손길로 마주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랐든 사랑을 못 받으며 자랐든, 어떻게 하루를 짓고 아이를 마주해야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카롤린 필립스/김영진 옮김, 시공사, 2011)는 책이름대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품은 아이가 드디어 입을 떼고 새로 일어서려고 하는 삶길을 다룹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는 어릴 적부터 사랑다운 손길이나 눈길을 거의 못 받습니다. 사랑스러운 손길이나 눈길을 거의 받은 적이 없기에 ‘무엇이 사랑이요’, ‘무엇이 사랑이 아니요’ 하는 갈랫길을 몰라요.


  받은 적 없는 사랑을 어떻게 알까요? 그리고 ‘받은 생채기’가 생채기인 줄 어떻게 알아챌까요?


  책에 흐르는 줄거리를 짚어 보면, 둘레에서 이 아이를 멋모른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차분히 기다리면서 지켜보기도 합니다. 다만, 멋모른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훨씬 많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겉모습이나 겉몸짓만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쉬우니까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비로소 입을 떼어 말하도록 하자면, 다그치거나 닦달할 수 없습니다. 더 깊이 아끼고, 더 부드러이 어루만지고, 더 따스히 사랑하는 손길이자 눈길이 되어야 해요.


  입을 다문 아니는 입을 다물고 싶어서 다물지 않아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배운 적이 없을 뿐입니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도 배운 적이 없을 뿐입니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는가를,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도무지 생각할 수 없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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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찍으세요 - 사진 작가 최민식 우리 인물 이야기 6
강무지 지음, 한지선 그림 / 우리교육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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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7


《뭘 그렇게 찍으세요》

 강무지 글

 한지선 그림

 우리교육

 2006.11.20.



민식은 아궁이에 굵다란 장작을 밀어넣고 나서 방으로 들어와 벽장 문을 열었습니다. 그림물감과 도화지! 아버지가 저번 주에 해주로 도장 재료를 사러 갔다가 민식을 위해 사다 준 선물이었습니다. 여러 화가의 작품이 담긴 그림책까지! (24쪽)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사실을 꾸미거나 부풀리지 않고 그대로 찍는 것이다. 이 볼품없이 일그러지고 불쌍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내 모습이 아닌가. 또한 내 부모형제이지 않는가.’ (76쪽)


‘왜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사진 찍는 사람이 사진 찍기 편한 옷을 입으면 됐지, 꼭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야 하나, 참 나.’ (106쪽)


민식은 산동네에 있던 조그만 집마저 은행에 담보로 잡혔습니다. 융자를 받은 돈으로 사진집 《인간》을 이어서 펴냈습니다. 그러나 애써 펴낸 사진집이 잘 팔려서 창작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정부 감시만 더 끈질겨졌습니다. (118쪽)



  너덧 해쯤 앞서 내로라하는 사진가·사진비평가 들이 모인 자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분들은 ‘청소년이 읽을 사진책을 여태 아무도 안 썼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다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청소년 사진책을 스스로 쓸 생각’을 안 하더군요.


  이분들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그러면 이런 자리에서 투덜거리지 말고 좀 스스로 써 보세요.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책을 쓰면 더 좋을 테고요.” 하고 한 마디를 했어요. 이랬더니 한동안 조용합니다. 아무도 말을 더 안 합니다. 이러다가 딴 얘기로 돌리더군요.


  《뭘 그렇게 찍으세요》(강무지, 우리교육, 2006)는 사진님 최민식 님이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는 이야기책입니다. 글쓴이는 사진을 그리 모르는 분으로 느낍니다만, ‘최민식’이라는 이름을 듣고 이분을 여러 걸음으로 만나서 같이 다니고 말을 섞은 뒤에 ‘취재를 바탕으로 쓴 동화’ 얼거리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 만한 동화나 위인전도 나쁘지는 않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조금 더 깊이 헤아리거나 살피고서 이 이야기를 쓰거나 가다듬었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느껴요. ‘최민식 목소리’하고 ‘최민식 발자취’는 담아내려고 몹시 애쓴 티가 나지만, ‘사진 목소리’하고 ‘사진 발자취’는 거의 못 건드렸거든요.


  왜 이렇게 사진을 찍는지, 이렇게 찍은 사진은 이 삶터에 어떻게 이바지를 하는지, 사진이란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지, 어린이나 푸름이가 손전화 기계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찍고 나누는데, 이때에 어린이나 푸름이가 알아둘 만한 대목은 무엇인지 …… 여러 가지로 짚을 만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짚을 적에 비로소 사진가를 둘러싼 동화나 위인전이라 할 테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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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벨벳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너머) 3
온다 리쿠 지음, 박정임 옮김 / 너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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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45


《블랙 벨벳》
 온다 리쿠 글
 박정임 옮김
 너머
 2018.6.10.


개인이 꾸준하게 정보를 모으고 있는 사이트가 1차 정보에 빠르기도 하고 정확할 때도 있다. 조직이 커지고 관료적인 색채가 강해지면 대량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놓치는 정보도 많아지는 듯하다. (49쪽)

진정해. 진정하고 생각을 해. 천천히 심호흡한다. (93쪽)

“난 몰랐는데 일본 육군 의료관계자 중에서 전범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 “응. 뭐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미국의 의도로 그렇게 된 거야.” (169쪽)

“대체 왜 뭐든지 부숴버리는 걸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다시 활용하거나 아름다우니까 보존하자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 “신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온갖 이유로 파괴를 장려하니까요.” (274쪽)

“확실하게 말할게. 결국 미국, 그것도 네가 소속된 회사야. 위저드그룹이 T공화국에는 비밀로 하고 T공화국 내부에서 특수한 화학무기를 만들고 있어.” “거짓말!” 얼빠진 듯 경박한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362쪽)



  무슨 까닭으로 이런 일이 터지는지 여느 사람 여느 자리에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곁에서 아리송한 일이 터지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두 나라 사이에 싸움이 터지는 속내라든지, 사람한테 이바지할 일이 없을 우라늄을 만져서 발전소나 핵무기를 굳이 만들어 내는 속내를 쉬 알 길이 없어요. 이런 데에 세금으로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쏟아붓는데, 이 어마어마한 돈은 그런 일에 쏟아부을 만할까요?

  큰돈뿐 아니라 푼돈조차 들이지 않아도 숲을 푸르게 가꾸면서 전기를 얻는 길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햇볕으로 전기를 얻는다고 할 적에 고속도로나 찻길에 햇볕판을 지붕처럼 붙이면 될 일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 외지며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멧자락을 밀어내어 시멘트를 들이붓고서 햇볕판을 붙이는 정책만 이어집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우리 삶터를 온통 더럽히거나 망가뜨려서 맑은 물이나 깨끗한 밥을 먹기 어렵게 하면서, 또 싱그러운 바람을 못 마시게 하면서, 사람들이 몸이 아프다고 할 적에 병원하고 약에 기대도록 해요. 왜 이렇게 할까요? 맑고 푸른 삶터를 누구나 누린다면, 엘이디 전구가 아닌 햇빛으로 하루를 누리도록 한다면, 페트병에 담긴 물이 아닌 마을마다 흐르는 냇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도록 한다면, 아플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런 터전이 되도록 나아가려는 정책은 좀처럼 안 나옵니다.

  《블랙 벨벳》(온다 리쿠/박정임 옮김, 너머, 2018)을 읽으면서 수수께끼를 생각합니다. 나라, 기업, 전문 학자(대학교·연구소), 이렇게 셋이 손을 맞잡고서 뒤에서 벌이는 검은짓을 바탕으로 엮은 줄거리를 살피면서,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늘 거짓말을 보여주거나 가르친 나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책에 적힌 역사는 참말 역사가 맞을까요? 시사상식은 참말 시사상식이 맞을까요? 우리는 거짓 이야기가 마치 참인 줄 잘못 알면서 휘둘리는 나날은 아닐까요?

  요즈음 나오는 손전화 기계를 보면 ‘블루 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기능을 알려주는 손전화 가게는 몇 군데일까요? 셈틀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늘 ‘블루 라이트’가 나와서 우리 눈을 갉아먹는 줄, 엘이디 전구도 우리 눈을 갉아먹는 줄, 어디에서 누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안경집이 왜 엘이디 전구를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밝히는가 하는 속내를 제대로 짚는 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있기에 소설이 있고, 삶을 그리기에 소설이라는 글이 태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눈을 감거나 귀를 닫은 채 쳇바퀴질을 하느라 놓치는 삶을 소설이 담아내어 들려준다면, 찬찬히 눈을 뜨고 귀를 열 노릇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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