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옆에 별 꿈꾸는돌 19
시나 윌킨슨 지음, 곽명단 옮김 / 돌베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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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시렁 148


《별 옆에 별》

 시나 윌킨슨

 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12.17.



이윽고 별 하나가 새까만 어둠을 뚫고 나왔다. 뒤이어 하나씩 차례차례 돋은 별들이 나란히 함께 있으니 하늘이 훨씬 정겨워 보였다. 도시에서는 이토록 정겨운 별들을 본 적이 없었다. (43쪽)


“그래, 네 꿈이 뭔데?”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유치하게 들릴 터였다. (51쪽)


서니뷰에서 휠체어를 타고 베란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전쟁이 그야말로 곧 끝날지라도, 정작 전쟁 후유증은 없어지지 않을 터였다. (69쪽)


“저는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에요. 미니가 가엾잖아요. 꼼짝없이 젖먹이를 돌보게 생겼으니.” 엄마도 없이. 그런 삶이 어떤지 나는 알았다. 이제 미니는 무급 잡역꾼이 되겠지. (111쪽)


군인들이 마침내 모두 다 귀향하면 어떻게 될까. 무수히 많은 남자가 끔찍한 기억들을 품고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다닌다면? 무수히 많은 여자가 무엇이든 다 봐준다면? (162쪽)



  오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뭇 가시내가 홀가분하게 길을 걸어다니지요. 퍽 오랫동안 가시내는 바깥에 함부로 걸어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손전화 단추를 톡톡 눌러서 밥을 시켜다가 먹을 수 있고, 바지라는 옷을 사내뿐 아니라 가시내도 마음껏 꿸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교장이란 자리를 사내뿐 아니라 가시내도 맡을 수 있어요.


  아직 단단히 틀어막힌 것도 많습니다. 숱한 일터에서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깔보거나 얕보거나 따돌리거나 일삯을 적게 주기까지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으면 손가락질하는 이가 아직 있습니다. 옷차림이나 겉모습이나 돈이나 자가용 따위로 사람값을 헤아리는 흐름이 아직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쟁무기하고 군대가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이 아직 있어요.


  《별 옆에 별》(시나 윌킨슨/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은 1900년대로 갓 접어든 때에 아일랜드라는 터전에서 푸릇푸릇한 가시내 한 사람이 어머니를 잃고서 맞닥뜨리는 삶을 찬찬히 그립니다. 오늘 뭇 가시내는 누리지 못하지만, 앞으로 뭇 가시내뿐 아니라 누구나 즐거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꿈을 하나하나 그립니다. 너랑 나 사이에 금을 긋고서 ‘너는 여기까지만’이나 ‘나는 여기를 넘어도 되는’ 같은 울타리가 얼마나 부질없으며 서로서로 훨씬 나쁜가를 부드러이 그립니다.


  책이름으로 환히 밝히기도 합니다만, 별 옆에 별이 있습니다. 사내는 사내대로 별이요,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별입니다. 둘은 어느 한 쪽이 높아야 하지도 않고 낮아야 하지도 않아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빛나는 별입니다. 네 곁에 내가 별로 빛나요. 내 곁에 네가 별로 빛나지요. 이 나라하고 저 나라가 툭탁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이쪽하고 저쪽이 누가 더 좋거나 훌륭하다고 내세우면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별입니다. 저마다 꽃입니다. 저마다 사람이고 사랑입니다. 이 흐름을 느끼며 이 반짝반짝 별빛을 깨달을 적에 비로소 평등하고 평화가 무럭무럭 자라리라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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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길벗어린이 문학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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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5


《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햇살과나무꾼 옮김

 이오덕 다듬기

 길벗어린이

 1997.1.30.



“꼬마야, 너는 무척 행복한가 보구나.” 내가 대답했어. “네, 라 임금님.” “너는 보리를 맛있는 궁궐 음식처럼 먹더구나.” 내가 대꾸했어. “보리는 정말 맛있는 걸요, 임금님.” “넌 누구냐?” “우리 아버지 아들이오.” (17쪽)


“사랑하는 아들아, 눈물로 시작했다고 해도 눈물로 끝을 맺어서는 안 되지. 운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정말 달과 결혼하고 싶니? 해보다 훌륭해지고 싶니? 온 세상을 갖고 싶니?” (82쪽)


“뭐가 위험한데요, 어머니?” 어머니는 난처한 듯이 말했어요. “그건 말해 줄 수 없단다. 나도 모르거든.” “그럼 서쪽 숲이 위험한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 이 나라의 어머니들은 모두 나처럼 아이들에게 타이른단다. 서쪽 숲에는 아주 이상한 것이 살거든.” “하지만 서쪽 숲은 위험하지 않을지도 몰라.” 존 왕자는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90∼91쪽)



  한글을 1982년에 익혔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처음 글씨를 알아보았고, 매우 재미있다고 여기며 받아들였습니다. 혼자 글씨를 읽어낼 줄 안 뒤로 책을 알았는데, 이때에 손에 쥔 책이 꽤 많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보리와 임금님》이 애틋했어요. 국민학교를 다니는 여섯 해 동안 이 동화꾸러미를 끝없이 되읽었어요. 국민학교를 마친 뒤에는 둘레에 동화꾸러미가 없어서 내내 《보리와 임금님》을 잊었다가 군대를 다녀오고서 다시 만났습니다.


  보리 한 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 말해서 씨앗 한 톨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다룰 줄 아는 글쓴님이 참 궁금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지은 어른이기에 어린이 마음자리에 스스로 생각이라는 씨앗을 심도록 북돋우셨나 싶어 꿈에서 만날 수 있으려나 바라기도 했습니다.


  《작은 책방》(엘리너 파전/햇살과나무꾼 옮김·이오덕 다듬기, 길벗어린이, 1997)이란 이름으로 다시 나온 동화꾸러미는 무척 사랑을 받았지 싶습니다만, 어느새 판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노릇입니다. 임금님이 보리밭에 불을 질러 보리싹을 모조리 죽이려 했지만, 외려 보리는 그 불길을 뚫고 다시 싹을 틔워요.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던 엘리너 파전 동화꾸러미는 어느 날 문득 새옷을 입고 태어났으며, 또 판이 끊어졌다가 어느 때 살며시 새옷을 입고 거듭 태어나리라 여깁니다.


  이 동화꾸러미에 깃든 글은 어린이 스스로 삶을 사랑으로 짓도록 북돋우는 새로운 씨앗 같은 마음이 흘러요. 어떤 아픔이나 가시밭길이 닥치더라도, 어린이 스스로 슬기로우면서 씩씩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기운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말 한 마디가 부드럽고 글 한 줄이 상냥합니다.


  숲을 책집으로 삼도록 이끄는 마음이, 보금자리를 너른 숲으로 가꾸도록 이끄는 생각이, 너랑 나 사이에 흐르는 꿈이 곱게 피어나도록 이끄는 숨결이 있는 동화꾸러미가 바로 《작은 책방》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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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 비룡소 걸작선 21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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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08


《클로디아의 비밀》

 E.I.코닉스버그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0.6.29.



“물론이지. 우리는 항상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따위의 숨막히는 규칙에서 탈출하는 거니까.” (23쪽)


둘은 미술관 직원인 예쁜 안내원 아가씨의 말을 귀담아듣고 많은 것을 배웠다. 안내원 아가씨의 설명은 전혀 지겹지 않았다. 둘은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70쪽)


“나는 ‘달라져서’라고 했지, ‘다르게’ 간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달라져서 돌아가고 싶단 말야. 나, 클로디아 킨케이드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147쪽)


“너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들이 스스로 무르익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도 세상일에 훤해지는 날도 올게다.” (194쪽)



  오늘날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는 초등학교를 마친 어린이가 이 삶터를 한결 새로우면서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가꾸는 길을 배우는 터전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는 예나 이제나 대학교로 가는 길에 거치는 곳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앞으로 언제쯤 이 고리를 깰 만할까요. 앞으로 누가 이 고리에서 씩씩하게 벗어날 만할까요. 대학교가 아닌 마을하고 삶터를 바라보는 눈을 키울 노릇입니다. 대학교를 거친 졸업장하고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슬기로운 사랑으로 아끼는 숨결을 배우는 곳을 마련할 일이라고 여깁니다.


  《클로디아의 비밀》(E.I.코닉스버그/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0)이 한국말로 나온 지 꽤 됩니다. 한국말로 나오기 앞서 이런 어린이책이 나왔다니,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어린이가 억눌리거나 틀에 갇히도록 내몰리는 모습은 엇비슷하네 싶습니다. 어느덧 한국에서도 스무 해를 묵은 어린이책인데, ‘클로디아’는 얼마나 홀가분하거나 당차게 제 꿈길로 나아갈 만한 나날일까요?


  한국은 아직도 ‘교복치마·교복치마’를 둘러싸고도 낡은 틀에 갇힙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교옷을 어떻게 입혀야 하는가를 놓고도 제대로 이야기가 터지지 않습니다. 서른 해도 열 해도 아닌 고작 세 해를 입히고 끝나는 학교옷인데, 옷감은 그나마 ‘솜천(면)’조차 아니기 일쑤입니다.


  배우는 길로도 썩 아름답다고 하기 어려운 한국인데, 차림새를 놓고도 굴레에 씌우는 한국입니다. 직업교육 아닌 꿈을 함께하면서 들려주는 배움길은 언제 열려나요. 대학진학 아닌 사랑을 같이하면서 노래하는 배움길은 어디에서 열려나요. 이제 클로디아처럼 낡은 굴레를 박차고 뛰쳐나와서 튼튼하면서 새로운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기지개를 켜기를 빕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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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미디어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6
손석춘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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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210


《선생님 미디어가 뭐예요?》

 손석춘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9.6.10.



신문이라는 매스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왕과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나라를 꾸려 가는 정치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었답니다. (21쪽)


과연 무엇이 올바름일까요?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하겠지요. 언론에서 올바름은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또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에요. (45쪽)


“왜 언론의 자유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왜 권력은 언론을 지배하려고 하는가?”와 이어져요. (59쪽)


인터넷은 컴퓨터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거예요.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컴퓨터는 에니악이에요.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었지요. (136쪽)



  어린이가 읽는 어린이신문이 있습니다만, 어린이신문을 집에서 받아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신문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어린이 삶하고 얼마나 가까운지, 또 어린이 삶을 얼마나 북돋울 만한지 알기 어렵기도 합니다.


  오늘을 돌아보면 어린이도 손전화를 손에 쥐고서 누리놀이를 하거나 전화를 하지요. 어린이도 우리 삶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에 스스로 눈길을 둘 수 있고, 누리신문 끝자락에 덧글을 남겨서 어린이 뜻을 밝힐 수 있습니다.


  이때에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왜 어른신문이나 어린이신문은 우리 삶에 가까이 와닿을 이야기보다는 정치나 사회나 경제나 스포츠 같은 데에 기울어져서 이야기를 펼까요? 신문을 내려면 돈이 들고, 이 돈을 모으려고 기업에서 돈을 받기 때문일까요? 방송이나 영화도 매한가지예요. 방송이나 영화를 찍으려고 드는 엄청난 돈을 광고삯으로 받아요. 이러다 보니 신문이나 방송이나 영화는, 때로는 책까지도 ‘돈을 대는 곳’ 목소리를 담는 노릇을 오랫동안 꾸준히 했습니다.


  《선생님 미디어가 뭐예요?》(손석춘, 철수와영희, 2019)는 어린이 자리에서 신문이나 방송이나 누리그물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왜 이런 여러 가지 ‘목소리 내는 길’이 태어났는가를 짚고, 이러한 길을 어린이가 어떻게 마주하면서 무럭무럭 자랄 적에 생각이 깊어질 만한가를 들려주려 합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광고를 받지 않고서 신문을 내거나 방송하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신문 방송 영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돈에 휘둘르지 않고서 이야기를 펼 수 있다면, 내리누르는 힘에 얽히지 않고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이때에 우리 삶터는 어떻게 거듭날까요?


  기자로 일하는 사람을 얼마나 차분하면서 곧바르게 둘레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귀여겨듣고서 글이나 그림으로 여밀까요? 서울 이야기만이 아니라, 시골 이야기를, 마을 이야기를, 어린이 이야기를, 무엇보다도 어린이랑 푸름이를 옥죄는 입시지옥을 걷어낼 만한 이야기를 얼마나 마음을 기울여서 다룰 수 있을까요? 온누리가 아름답게 피어나는 길을, 누리꽃길을 어린이도 함께 가꾸기를 빕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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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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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480


《헨쇼 선생님께》

 비벌리 클리어리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보림

 2005.3.10.



엄마는 ‘신발 한 짝’이란 말이 마치 슬픈 음악을 듣는 것처럼 우울하게 들린다고 했어요. (47쪽)


저는 편지를 자주 받는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은 엽서를 두 장이나 받았답니다. 하나는 선생님이 보내 주신 거고, 또 하나는 미국 중부 캔자스 주에 있는 아빠한테서 온 거예요. (64쪽)


결국 나는 아빠 트럭을 타고 양조장에 따라간 날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써 내려갔다. (120쪽)



《헨쇼 선생님께》(비벌리 클리어리/선우미정 옮김, 보림, 2005)를 읽었다. 여러모로 추천도서에 이름이 오르는 책이지 싶은데, 그렇게까지 훌륭하다고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직 글이 익숙하지 않다는 어린이가 쓴 일기하고 글월을 모은 얼거리라지만, 영어로는 모르겠는데 한국말(옮김말)로 보자면 하나도 어린이스럽지 않다. 이 대목을 가다듬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어쩌면 이 대목이야말로 어려울는지 모른다. 마음에 드리우는 그늘을 어린이 스스로 걷어내려고 애쓰는 길, 또 이 길에 여러 어른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 이 삶을 일기하고 글월로 풀어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아쉬운걸’ 하는 생각이 내내 맴돌았다. 아무래도 어린이 목소리는 어린이 스스로 낼 적이 아니고는 안 어울리지 싶다. ‘어른이 된 사람 자리’에서는 어린이 흉내를 낼 뿐, 어린이가 되지는 않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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