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 저학년 읽기대장
김성효 지음, 홍지혜 그림 / 한솔수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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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1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

 김성효 글

 홍지혜 그림

 한솔수북

 2020.3.20.



“천년손이는 한 번도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데 괜히 용궁의 노여움만 사는 게 아닐지 걱정이구려.” “둘 다 어려서 이 일을 맡겨도 될지…….” 그때 요마 선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 세상이 위험한 마당에 무슨 소리!” (28쪽)


“도련님은 이름이?” “자래.” “용궁 말로 잉어라는 뜻이지? 하찮은 물고기 주제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용왕의 아들에게!” (44쪽)


“일단 밥부터 먹자.” “네? 밥을 먹자고요?” 미오 할머니가 미오 엄마와 아빠에게 속삭였다. “어제 꿈에 웬 수염이 기다란 노인이 나타나 말씀하셨어. 손님들이 찾아갈 테니 잘 돌보라고 말이야.” (54쪽)


“내 일은 요괴들을 물리치고 인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을 만나 오면서 나는 요괴보다 인간이 더욱 무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 (103쪽)


“그래 봐야 인간들은 고마움을 모른다.” “사인검이 구한 인간들 중에는 바라는 것 없이 남을 돕는 사람도 있고, 낡은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지수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107쪽)



  숱한 목숨붙이가 이 땅에서 말없이 사라졌습니다. 푸른별에서는 저마다 다르게 삶을 잇고 나누며 누리기 마련입니다만, 사람들이 ‘나라’라면서 먼저 금을 그은 탓에, 이다음으로는 ‘돈으로 산 땅’이라면서 새로 금을 그은 탓에 그야말로 숱한 목숨붙이는 죽음길로 가야 했습니다.


  모든 목숨붙이는 저마다 보금자리를 틀 뿐, 저 혼자만 살아남으려 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엄청나게 센 힘을 내는 숲짐승이라 하더라도 둘레에 새가 살아가고, 풀벌레랑 나비가 살아가며, 풀이며 나무가 우거집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 모든 이웃을 송두리째 밀어내기만 했어요. 풀포기 하나 없는 큰고장을 올려세우고,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도록 하늘을 덮으며, 개미나 풀벌레 한 마리 깃들 틈마저 막았지요.


  둥글둥글 돌아가는 푸른별은 사람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일까요. 푸른별로 찾아오는 별빛은 이 별을 혼자 차지하려는 사람을 마주하며 무엇을 느낄까요.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김성효, 한솔수북, 2020)은 하늘나라에서 살다가 땅나라로 찾아와서 ‘범칼(사인검)’을 찾으려는 즈믄손이(천년손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범칼은 이름은 ‘칼’이되 칼 모습이기보다는 칼처럼 베어서 없애듯 몹쓸 기운을 물리치는 넋빛이지 싶어요. 이 넋빛은 사람한테 이바지하고자 땅나라에 깃들었다지만, 사람들이 나날이 새롭게 보여주는 다툼질이며 돈질에 질려서 마음앓이를 한다지요.


  곰곰이 본다면 ‘망가진 푸른별’은 어른들이 일군 오늘날 모습입니다. 어른이란 몸으로 살면서 제 밥그릇을 움켜쥐고서 이웃을 내치는 나날이 쌓이고 겹치면서 ‘어지럼 푸른별’이 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도 처음에는 아이였을 텐데, 왜 어른이란 몸으로 크면서 바보짓을 일삼을까요? 어른도 처음에는 티없는 눈망울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노래했을 텐데, 왜 자꾸 스스로 망가지거나 어지럼길을 탈까요?


  이 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는 ‘어른판’입니다. 어른끼리 정치이니 사회이니 문화이니 교육이니 스포츠이니 종교이니 무어니 하면서 금을 긋고 밥그릇을 챙기면서 다툼판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면서 물려받을 만할까요? 앞으로 아이들은 어떤 꿈을 키우면서 이 푸른별이 어깨동무하는 아름나라가 되도록 마음을 기울일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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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을 열어라 - 좌충우돌 고려 사람 조선 적응기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 지음, 이해정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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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2


《조선의 문을 열어라》

 손주현 글

 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5.23.



‘고려라고 한다더니 조선으로 바꾸고 고려 때 해온 대로 한다더니 다 뒤집어 버렸네, 훌쩍.’ (21쪽)


“조상에게 빌면 된다. 제사를 잘 지내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지. 그러다 보면 조상들이 우리를 보살펴 주는 것이고.” “거참 이상하네. 죽은 조상을 믿는 것은 미신이 아니고 부처를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요?” (56쪽)


‘고려인 중에서도 왜구들 앞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있다더니 이 자도 그중 하나인가 보군.’ (111쪽)


우치는 그제야 무언가 이해가 됐다. 조선은 무역을 금지하며 나라의 문을 닫아 놓은 줄 알았지만 공물을 바치고 선물을 받아 오면서 문물을 주고받았다. 꼭 닫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120쪽)


“시조 말이야?”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치는 맨날 충효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조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조선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재미없었다. (131쪽)


“고려 때는 지방 아전 자리를 지방 권세가들이 맡아서 했지만 조선에서는 그저 수령을 돕는 말단 행정 일꾼일 뿐이다. 글을 알고 수완이 있으면 할 수 있지.” (149쪽)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를 다룬 인문책이 꽤 많습니다만, 거의 모두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갈무리합니다. 역사란 다른 책이나 자료가 있어야 쓸 수 있거나 말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역사뿐 아니라 웬만한 인문책도 으레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엮곤 합니다. 다른 이가 먼저 갈무리한 책이나 자료가 없다면 인문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할까요?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나라일을 갈무리했고, 조선 무렵에는 임금 언저리 하루살이를 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이든 조선 무렵이든 이 나라를 아우르는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를 갈무리한 자취는 없다시피 합니다. 흙살림을 한 해 내내 지켜보면서 갈무리한다든지, 이 흙살림을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통틀어서 갈무리하는 자취는 아예 없다고 하겠지요. 아이를 돌보며 사랑한 여느 사람들 집살림을 갈무리한 적도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쉰 해쯤 뒤에는 2000∼2020년을 어떠한 나날로 이야기하는 역사책이 나올까요? 1980∼2000년을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는 오늘 어떤 역사책으로 다루는가요?


  어린이 역사책 《조선의 문을 열어라》(손주현 글·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는 고려란 나라에서 조선이란 나라로 넘어선 뒤에 ‘왕씨 어린이’가 맞닥뜨리는 나날을 짚습니다. 고려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책은 꽤 드물기에 차근차근 눈여겨보는데, 이 책도 ‘왕씨 언저리’에서 머물 뿐, ‘왕씨가 아닌 사람들’이라든지 ‘임금님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던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까지는 짚지 못해요.


  조선은 이씨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는 왕씨 나라가 아닙니다. 조선이든 고려이든, 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나 부여란 나라도 몇몇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로 이야기할 나라는 아니에요.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이루며 아이를 즐겁게 낳아 돌본 수수한 사람들이 바탕이 되기에 흐를 수 있는 터전입니다.


  들꽃 같은 사람들은 ‘인구 몇’이라는 숫자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들꽃은 들꽃입니다. 다 다른 들꽃이요 저마다 아름다운 들꽃이에요. 《조선의 문을 열어라》를 읽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서니 ‘고려 옷차림’을 버리고 ‘조선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줄거리가 얼핏 나옵니다. 그런데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나 ‘발해’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예전 옷차림을 버리고 고려 옷차림이 되어야 한다고 나라에서 윽박지르지 않았을까요?


  먼먼 옛날을 다루는 이야기라면 책이나 여러 자료를 돌아보기도 해야겠습니다만, ‘책에도 자료에도 남지 못한’ 숱한 사람들 눈빛이며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글줄에만 적힌 삶이 아니거든요. 오늘을 짓고 모레로 나아가는 길에 되새기는 어제라는 살림빛이 역사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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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1919 -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
오승훈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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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인문책시렁 129


《백투더 1919》

 오승훈·엄지원·최하얀

 철수와영희

 2020.4.11.



식민지 조선에선 쌀값 폭등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일본 동경에서는 ‘돈까스·카레라이스·오무라이스’라는 화양절충 요리가 군부대와 대학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잇따라 관련 음식점들도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67쪽)


총독부가 한발 물러선 모양새를 취한 건 식민통치의 안정화를 위해 친일파들의 존재가 긴요했기 때문이었다. (95쪽)


민중의 고통을 자기 일로 여기며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여전히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어찌 보면 ‘충성스러운 신민’ 말고는 다른 길이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194쪽)


세브란스병원 견습 간호사 노순경(17)은 동기인 김효순(17)·이신도(17)와 종묘 앞에서 만세운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붉은 글씨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어 시위를 주도했다가 8호 감방에 끌려왔다. (352쪽)


만세운동의 큰 물결을 이끌어 간 이들은 역시 농민이었다. 조선총독부 자료를 보면 3·1운동 피검자 1만 9525명 중 직업별로는 농업이 55.3%로 가장 많다. (357쪽)



  어린 날을 보낸 인천에서는 새벽부터 비둘기나 갈매기 소리를 들었습니다. 1980년대를 돌아보면, 그무렵 나라 곳곳에서 무슨 자리를 꾀할 적마다 ‘평화 상징’이라며 비둘기 날리기를 으레 했고, 그때 풀려난 비둘기는 마을이며 골목 곳곳을 떼지어 날아다녔습니다. 바닷가에 살았으니 갈매기야 고개 들어 하늘만 보면 언제나 보았어요. 철 따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나 오리떼도 흔히 보았습니다.


  작은아이를 충청도 멧골에 살며 낳았는데, 이때에는 골짝물 소리를 하루 내내 들었어요. 바람이 불어 골짜기 나무를 살랑이는 소리하고 어우러진 물소리는 작은아이를 재우기에 매우 좋았고, 어른으로서도 마음을 달래는 고즈넉한 소리물결이라고 느낍니다.


  요즈막에 전라도 두멧시골에서 지내며 하루 내내 멧새 노래를 듣는데,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때에는 해거름부터 한밤까지 개구리 노래잔치를 듣습니다. 쉴새없이 노래하는 멧새하고 개구리를 곁에 두면서 생각하지요. 쉰 해 앞서도, 백 해 앞서도, 오백 해나 즈믄 해 앞서도, 만 해나 십만 해 앞서도, 이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바로 이 멧새·개구리 노래를 언제나 함께했으리라고.


  2019년에서 백 해를 거슬러 올라가서 1919년은 어떤 나라였을까 하고 헤아린 이야기를 담은 《백투더 1919》(오승훈·엄지원·최하얀, 철수와영희, 2020)를 읽었습니다.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란 이름으로 여민 이야기이기에, 시골사람 눈도 아니고,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눈도 아니며, 1919년 3월 그날을 지식인은 어떻게 바라보았나 하는 눈길로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도라에몽 주머니나 책상서랍이 있다면, 2019년을 사는 몸으로도 1919년으로 거뜬히 찾아가서 몸으로 겪고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만하겠지요. 도라에몽 주머니나 책상서랍은 만화책에나 나오는 일이라 여길 테지만, 2019년에 1919년을 그리며 옛 신문을 뒤적여 ‘어제를 오늘 새롭게 읽을’ 적에도 꿈으로 엮는 이야기이기는 매한가지예요.


  지난날에 누가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역사책은 흔히 독립운동을 ‘이끈’ 사람들만 다룹니다만, ‘한’ 사람들은 거의 못 다루거나 안 다뤄요. 조선왕조실록도 이와 비슷합니다. 나라를 ‘이끈’ 사람들은 다루지만,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좀처럼 못 다뤄요.


  오랜 나날을 거슬러서 오늘을 새로 읽는다고 한다면, ‘3·1운동 피검자 1만 9525명’이라는 숫자보다는 ‘어느 책에도 신문에도 이름이 안 적힌’ 돌이순이 이야기를 다루어 보면 어떨까요? 시골돌이하고 시골순이로서 이 나라를 바라보고, 흙을 짓는 흙돌이랑 흙순이로서 굽이치는 물결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엮어 볼 만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백투더 1919》를 읽노라면 1919년 그무렵에 ‘공무원이나 교사·변호사 같은 안정적 직업’을 바라는 지식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땅을 가꾸고 숲을 돌보는 사람은 이 길을 고스란히 이었겠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지식을 익힌 이들은 ‘돈을 잘 벌고 자리를 잘 지키는’ 도시 일자리를 바랐다지요.


  오늘 우리는 어떤 앞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줄 만할까 궁금합니다. 백 해 앞을 돌아보았다면, 백 해 뒤를 내다보면 어떨까요. 2199년에도 아직 ‘안정적인 직업’만 바라보는 우리 모습일는지, 그때에는 어깨동무하면서 들숲바다를 푸르게 돌보는 싱그러운 모습일는지, 슬쩍 엿보고 싶습니다. 어제를 보며 오늘을 배우고, 오늘을 살며 모레를 그리는,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되도록,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 어른들이 다같이 힘쓰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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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담은 교문 -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학교 공간 혁신
배성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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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책

맑은책시렁 230


《꿈을 담은 교문》

 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3.15.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교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교문이 쉼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고요. 그다음에 앉아서 쉴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교문이 이정표이자 쉬어 가는 고갯마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지요. (43쪽)


그래도 제자들이 해결책을 내놓아요. 교문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아이들과 의논했습니다. (129쪽)


명령하는 것보다 공간을 바꾸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조심조심 걸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예요. 한창 뛰어놀 나이잖아요. (145쪽)


조달청에서 납품하는 학교 책걸상에도 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오히려 국가 안전 기준이 더 강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가격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152쪽)


조사를 해 보니, 유해 성분 없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요 … 안전한 제품은 생산이 제대로 안 되니까 구입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정부가 물건을 살 때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54쪽)



  며칠 앞서 읍내에 볼일을 보려고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 길입니다. 이웃 면소재지를 지나가는데 그곳 중학교 푸름이가 잔뜩 시골버스에 탑니다. 몇 아이는 쇠돈을 집어던지듯 넣고, 몇 아이는 버스칸을 오락가락하면서 떠들고, 몇 아이는 발을 앞자리까지 뻗으면서 까불거립니다. 한두 아이가 아닌 모든 아이가 까불질을 하는데, 이 아이들 가운데 몇쯤 앞으로 이 시골에 남아서 보금자리를 가꿀 생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곧 여름인데, 시골 고등학교 들머리에 지난가을께 내건 걸개천이 그대로입니다. 이 걸개천에는 큰고장 어느 큰일터에 뽑힌 아이 이름을 큼직하게 새겼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뿐 아니라 이웃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거나 이름난 큰일터에 들어간 아이들 이름을 크게 내붙이더군요. 자랑할 일인가 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란 터전을 사랑으로 돌보며 보금자리를 슬기로이 가꾸는 아이들 이름을 보람차게 내건 시골은 여태 본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 안 들어가고서 숲살림을 익힌다든지, 학교는 손사래치면서 사랑살림을 배우는 어린이나 푸름이 이름이라면, 더더욱 학교 들머리에서 이 이름을 보기 어렵겠지요? 교육청이건 군청이건 똑같을 테고요.


  초등학교 샘님으로 일하는 분이 엮은 《꿈을 담은 교문》(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을 읽으며 여러모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첫째, 학교 들머리를 처음부터 새롭게 바라보고서 이 얼거리를 손질하려는 뜻을 품는 어른이 있어서 놀랍습니다. 둘째, 학교 얼거리를 손질하는 일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이야기한 다음, 이 학교 모든 아이가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틈을 내려는 생각을 하는 어른이 있기에 놀랍습니다. 셋째, 제가 살아가는 시골 군청이나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이만한 생각을 하는 샘님을 아직 못 보았는데요, 앞으로는 있을는지 없을는지 가물가물하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책을 엮은 배성호 샘님 한 사람이 대단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분이 어른으로서 샘님이란 길을 가기 앞서 이끌고 가르친 어진 어른이 있었겠지요. 뜻을 함께하는 슬기로운 동무하고 이웃이 있었을 테고요.


  혼자서 갈아엎거나 바꾸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조그맣게 가꾸는 손길이라면, 어느새 한 사람 두 사람 곁에 서면서 함께 걷는 발걸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른끼리 하는 일이 아닌,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앞장서서 어깨를 겯는 살림길이에요.


  첫걸음이 대수롭다고 하는 옛말처럼, 배움자리라면 들머리가 더없이 대수로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배움자리는 들머리에 뭘 세우거나 내걸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들머리에서 날마다 무엇을 볼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길목에 나무를 우거지게 가꾸는 곳이 더러 있습니다. 오가는 길뿐 아니라, 울타리를 나무로 겹겹이 싸고, 옆이나 뒤에는 푸르게 우거진 숲이며 골짜기를 둔 배움자리도 있지요.


  배움책 《꿈을 담은 교문》은 들머리 하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폅니다만, 우리가 들머리를 비롯해 모든 자리를 차근차근 바라보면서 가꾸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다면 아름답겠지요. 아파트 사이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숲이나 바다나 들판 곁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배움자리 앞에 온갖 가게가 늘어서는 마을이 되도록 하렵니까? 배움자리가 살림자리 품에 고이 안기도록 하렵니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배움자리에서 꿈이며 사랑을 즐거우면서 상냥하게 지켜보거나 배울 만한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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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유루시아 지음 / 인디펍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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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책

푸른책시렁 157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유루시아

 인디펍

 2020.4.5.



멀리서부터 부르길래 반가워서 부르나 했더니, 친구랑 학교에 오면서 사소하게 다툰 이야기를 이르려고 벼른 만큼 큰 목소리로 불렀던 것일 때도 있습니다. (21쪽)


쉬는 시간은 참 짧습니다. 어린이들끼리 놀이 한 판 하기에도 짧고, 나 역시 숨을 천천히 돌리고 다음 수업 준비를 하고 싶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시간입니다. (30쪽)


너희 얼굴을 보고는 솔직히 너무 웃겼어. 대피 훈련을 무슨 재미난 에피소드나 소풍쯤으로 여기는 듯한 너희! (54쪽)


나는 너무 많이 웃어 줄까 봐, 너무 ‘허용적인’ 교사가 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의무감에 휩싸여서, 자주 웃어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63쪽)



  어른이란 나이라면 누구나 ‘살아온 나이’가 있습니다. 다섯 살도 일곱 살도 아홉 살도 살았어요. 열세 살도 열다섯 살도 스물네 살이며 서른일곱 살도 살았겠지요. 다만, 먼저 살았기에 더 잘 하지는 않고, 더 잘 알지도 않아요. 그저 먼저 살아 보았을 뿐입니다.


  먼저 살아 본 어른이라면 ‘지나온 나날을 되짚을’ 겨를이 있고, ‘나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 하고 되새길’ 틈이 있으며, ‘그때 그곳을 살아온 하루를 곱씹어 오늘 그 나이를 살아가는 뒷사람한테 새롭게 들려줄 말을 생각할’ 짬도 있어요.


  대구에서 초등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분이 쓰고 그린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유루시아, 인디펍, 2020)을 읽습니다. 이 책은 ‘아홉 살 어린이’를 교사로 맡아서 돌보는 나날을 보내면서 스스로 남긴 글하고 그림을 묶습니다. 말하자면 교사일기입니다.


  오늘은 교사 자리에 섭니다만, 교사가 아닌 아홉 살 어린이였을 분은 그때 어떻게 하루를 맞이하면서 누렸을까요. 오늘 아홉 살을 살아내는 어린이한테 우리 어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앞길을 꿈으로 즐겁게 그리도록 북돋우는 말 한 마디에 눈짓에 생각을 보여줄 만할까요.


  교사일기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은 아홉 살 어린이가 얼마나 티없이 속내를 드러내면서 마음껏 놀고 배우려 하는가를 그립니다.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너무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는가’를 돌아보고 ‘좀더 느슨하게 마주해도 즐겁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한둘도 여럿도 아닌 다 다르’면서 재미나겠다고 헤아립니다.


  가만 보면 교사로서 가르치는 길도 다 다를 만해요.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어른이 다른걸요. 다 다른 어른하고 다 다른 아이가 만나서 늘 다르게 배우고 가르치는 하루가 흐르니, 배움터라는 곳은 참으로 배우며 노래하는 즐거운 이야기밭이 되리라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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