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카르페디엠 34
수잔 크렐러 지음, 함미라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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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6

 


맞고 자란 사람이 때린다
―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수잔 크렐러 글
 함미라 옮김
 양철북 펴냄, 2013.10.31.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내음을 맡습니다. 꽃내음을 맡는 사람은 온몸에 꽃내음이 살살 감돌며 꽃빛이 환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숨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사람은 온몸에 하늘내음이 골고루 스미며 하늘빛이 곱습니다.


  풀밥을 먹는 사람은 풀숨을 맞아들입니다. 풀마다 싱그럽게 푸른 빛깔과 무늬와 냄새를 골고루 받아들입니다. 풀밥은 풀내음이고 풀빛입니다. 풀밥은 풀노래이고 풀물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 푸르게 빛나면서 푸른 이야기가 솟습니다.


  바라보는 대로 눈빛이 달라집니다. 바라보는 자리마다 눈매가 바뀝니다. 맑은 빛을 바라볼 적에는 맑은 빛이 눈을 거쳐 마음속과 몸속으로 젖어듭니다. 밝은 빛을 바라볼 때에는 밝은 빛이 눈가를 스쳐 살갗과 뼈마디로 속속들이 파고듭니다.


  싱그러운 물을 마시면 내 몸에는 싱그러운 피가 흐릅니다. 멧골물을 마시면 멧골에서 솟아 흐르는 기운이 내 몸에 흐릅니다. 시냇물을 마시면 시냇물 되어 흐르던 물줄기에 깃든 숨결이 내 숨결로 이어집니다.


..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 다시 스웨터를 내렸다. 그렇게 손동작 한 번으로 배에 난 자줏빛이 감도는 갈색, 그리고 노랗게 변한 커다란 멍 자국을 가렸다 … “마샤 언니!” 나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물었다. “왜?” 그러자 율리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막스는 내가 잘 돌봐 줄게!” … 한여름인데도 긴팔을 입은 율리아는 가느다란 두 팔로 길길이 뛰는 동생을 꽉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율리아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른처럼 진지했다 … 내가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주머니와 함께 문 앞에 서서 마치 자신이 바렌부르크를 통틀어 가장 다정하고 아이들을 잘 돌봐 주는 아빠인 것처럼 행동하는 브란트너 아저씨에게서 느낀 어마어마한 분노였다 ..  (20, 34, 57, 111쪽)
쪽)


  맹자 어머님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장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고 좋은 보금자리를 찾기 마련입니다. 공자 어머님도 맹자 어머님과 똑같았을 테지요. 한석봉 어머님이라고 다를 까닭 없어요. 어느 어머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슬기롭고 맑으며 착하게 살아가는 숨결 받아먹을 수 있는 곳에 보금자리를 이루려 마음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갓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좋거나 나쁘거나 가리지 않아요. 옳거나 그르거나 바르거나 비틀리거나 따지지 않아요. 모두 받아들여요. 모두 바라보고 모두 가슴으로 안아요.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바라보지 않도록, 어머니로서는 아이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좋은 것을 마주하도록 마음을 쓸밖에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꽃을 보여줍니다. 칼이나 총 아닌 호미를 쥐어 줍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면서 놀도록 이끕니다. 앞으로 흙을 돌보며 살찌울 길을 걸어가며 착하게 새 삶 일구기를 바라니까요. 칼이나 총을 거머쥐어 돈이나 힘자랑 하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이웃을 밟고 올라서면서 거들먹거리기를 바라는 어버이가 있을까요.


  어느 어버이라 하더라도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어버이가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물려준다면 말썽이 생깁니다. 사랑에 앞서 돈부터 물려주면 뒤틀립니다. 사랑 없이 돈만 만지는 아이가 어떻게 될까요. 사랑 없이 힘자랑 겉멋에 끄달리는 아이가 어찌 되나요.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 못한 아이는 이웃을 아끼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 없습니다. 착하게 품앗이와 두레를 하는 삶을 누리지 않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과 꿈을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베풀지도 못합니다.


  어버이는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 따위는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이런 것들은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마련하거나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아끼고 기대며 보살필 줄 아는 고운 사랑과 착한 꿈과 맑은 빛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는 현장에 우연히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그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때린다고요.” “마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나 본데,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우리한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고 하는 소리니?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면 어떨 것 같니?” “할머니, 배에 멍이 들었다고요!” … 아무도 자동차 대리점 주인이 자기 아이들을 얼마나 때리는지, 또 그 집 아이들이 자기들 몸에 난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긴팔 셔츠로 감추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는 사실에 관해선 그 어떤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  (23, 41∼42, 75쪽)


  맞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맞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거친 말 듣고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거친 말 듣고 자라는 아이’를 키웁니다.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걸어간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똑같이 ‘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 찾는 아이’를 키웁니다. 그야말로 배운 대로 물려줍니다.


  어른들은 좀처럼 사슬을 못 끊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좀처럼 쳇바퀴에서 못 벗어납니다. 어른이라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슬을 끊는 사람은 으레 아이들입니다. 쳇바퀴를 부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되찾는 사람은 어김없이 아이들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활짝 열어 모든 숨결과 손을 맞잡는 사람은 늘 아이들입니다.


  길이 들면 삶이 사라집니다. 삶은 길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다 다른 삶인데, 삶은 길이 들 수 없어요. 날마다 똑같은 때에 일어나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길을 가서 똑같은 일터에서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똑같이 걷는 길은 없습니다. 시계로 보아서는 똑같다 하더라도, 날과 달과 해와 철이 모두 달라요. 여름과 겨울에 골목빛이 달라요. 봄과 가을에 하늘빛이 달라요.


  옷차림만 다르지 않습니다. 흐르는 바람이 달라요. 뜨고 지는 햇살이 달라요. 내리는 비와 눈이 달라요. 우리는 늘 언제나 다른 삶을 누립니다. 열아홉 살은 한 번뿐입니다. 열일곱 살도 한 번뿐입니다. 스물여섯 살도, 서른다섯 살도, 마흔네 살도, 쉰세 살도 언제나 한 번만 나한테 찾아온 뒤 지나갑니다.


  똑같이 차린 밥이라 하지만, 밥 한 그릇 마주하는 내 삶은 날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나는 언제라도 길들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언제라도 길들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고 새로운 넋이며 새로운 사랑으로 새삼스레 거듭날 뿐입니다.


.. 내가 그보다 훨씬 더 좋아한 건 아빠가 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엔 벽만 바라보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으니까 … 나는 이 말이, 그러니까 ‘잠을 잤다’라는 말이 진짜로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말은 아침마다 막스가 아빠에게 질질 끌려 욕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빠가 막스의 옷을 벗긴다는 걸 뜻했다. 아빠가 미리 받아 놓은 진짜 뜨거운 욕조 물에 막스를 확 밀어 넣는다는 것이었다 … “엄마는 아빠가 우리를 때리지 못하게 하려고 대신에 자신한테 주의를 돌려 차라리 엄마를 때리게 하려고 해.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이든 해. 그러면 아빠가 다시 나에게 관심을 돌려.” ..  (30, 118, 134쪽)


  수잔 크렐러 님이 쓴 청소년문학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양철북,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책은 ‘가정폭력’을 다룹니다. 가정폭력이 ‘마을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서로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다루고, 스스로 아름다움도 사랑스러움도 즐거움도 일구지 못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아이들 또한 ‘아무것도 안 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길들’면서 어른들과 똑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다룹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두를 바꿉니다. 아버지한테서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하고도 멀리 떨어진 채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지내는 동안 할머니한테서도 할아버지한테서도 사랑을 못 받으며 홀로 외롭던 마샤라는 열세 살 아이가 이 모든 굴레와 수렁과 사슬을 바꿉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샤라는 아이는 이 아이를 ‘길들이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무도 마샤라는 아이를 눈여겨보지 않고, 마샤라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마샤라는 아이는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놀고 혼자서 외로우며 혼자서 쓸쓸하다가는 혼자서 지냅니다. 온통 혼자로 있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마샤인데, 이 마샤 앞에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무서움에 벌벌 떠는 아홉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이’가 나타납니다.


..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해 주지 못했다 … 내가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율리아와 막스,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여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 “자, 우리 이제부터 도망가기 놀이 할 거야.” … 나는 아빠가 즐거워할 때라고는 다큐멘터러 영화를 만드는 동료들과 전화할 때뿐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선 아무런 즐거움도 남겨 둔 게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  (51, 70, 79, 139쪽)


  맞는 아이 아홉 살짜리 ‘율리아’는 맞는 동생 일곱 살짜리 ‘막스’를 지키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지켜야 할는지 모르고, 지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릅니다. ‘마샤’라는 아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하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치게 해야 하는 줄 압니다. 마샤 아버지가 보여주는 터무니없는 짓도 못마땅하고,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가 보여주는 끔찍한 짓은 더더욱 못마땅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맞고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을 못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그냥저냥 학교만 다니면 될까요. 그냥저냥 시험공부 잘 해서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면 될까요. 그냥저냥 성적 잘 받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될까요. 그냥저냥 학교를 다니다가 회사원이 되다가 이렁저렁 나쁘지 않은 짝꿍을 만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될까요. 자, 그러면 그냥저냥 살다가 그냥저냥 낳은 아이는 어떻게 하지요? 그냥저냥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나요? 그냥저냥 학교에 넣어 ‘어버이인 내가 그냥저냥 학교에 다녔듯이’ 우리 아이도 그냥저냥 학교에 보내 그냥저냥 대학교에 집어넣고 그냥저냥 회사원이 되게 해서는 그냥저냥 혼인하고 그냥저냥 아이 낳도록 하면 될까요?


.. 나는 평소에 아이들을 때리거나 마구 밀치거나 던지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선물을 많이 주는지, 아니면 특별히 적게 주는지 궁금해졌다 … “저는…… 모르겠어요. 왜…… 그러니까…… 할아버지, 왜 이렇게 저한테 친절한 거예요?” “글쎄다. 그건 바렌부르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지. 엘제 리프카를 빼면 말이다.” ..  (176, 228쪽)


  오로지 맞기만 하며 자라면 오로지 때리기만 하는 어른이 됩니다. 꼭 한 번이라도 따스하게 사랑받은 적이 있다면 이 작은 사랑이 아주 조그마한 씨앗으로 마음밭에 깃들어 언젠가 곱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전쟁무기만 만들고, 군대만 키우며, 경찰과 전경이 그득그득 넘치는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그 어떤 사회운동과 정치운동과 교육운동으로도 이런 전쟁나라·군대나라·경찰나라를 바꾸지 못합니다. 아무런 운동도 독재정권·식민지정권·사대주의정권·자본주의정권을 갈아치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놈 물러가라’ 하고 외친들 나쁜 놈은 물러가지 않아요. 나쁜 놈은 더욱 크게 전쟁무기를 키우고 더욱 촘촘히 법그물을 짜며 더욱 무시무시하게 쳇바퀴 제도권 울타리를 쌓습니다.


  이 땅은 ‘운동’이 아닌 ‘삶’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주먹다짐은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보드랍게 부는 바람과 따스하게 비추는 햇볕과 촉촉히 내리는 비와 싱그러이 흐르는 냇물이 지구별을 푸르게 가꾸듯이, 따순 사랑과 푸른 꿈과 맑은 이야기와 고운 마음으로만 이 지구별 ‘나쁜 놈’을 말끔히 씻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풀바람을 마시고 흙내음을 노래할 때에 지구별이 달라집니다. 나무와 껴안고 숲에 작은 보금자리 마련할 때에 지구별이 거듭납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이 자랍니다. 사랑을 안 심는데 사랑이 자랄 턱이 없습니다.


  생각해야지요. 독재정권 무너뜨리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그 다음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어떠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려야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운 삶 누려, 사랑과 평화와 민주가 이 땅에 솔솔 피어날 수 있을까요?


  독재정권 무너뜨린 자리에 다른 독재자가 들어서는 모습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를 몰아낸 자리에 새삼스럽게 다른 바보스러운 정치꾼이나 얼간이가 들어서는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폭력이 왜 사라지지 않을까요. 폭력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폭력이 왜 그치지 않을까요. 사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리아와 막스네 아버지는 사랑을 겪은 적도, 사랑을 느낀 적도, 사랑을 배운 적도 없으리라 느껴요. 마샤네 아버지 또한 사랑을 누린 적도, 사랑을 나눈 적도, 사랑을 이야기한 적도 없구나 싶어요.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에 나오는 마샤네 할아버지 한 사람만,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아이(손녀)한테 물려줄 한 가지는 오직 사랑뿐이네’ 하고 깨닫습니다. 이리하여, 마샤와 마샤네 할아버지가 마을을 바꾸고 삶을 바꾸며 이야기를 바꾸는 사랑을 꽃피웁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누구와 언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폭력과 군대폭력과 학벌폭력과 경제폭력과 교육폭력과 문화폭력과 역사폭력과 외교폭력과 언론폭력과 서울폭력과 남자폭력과 어른폭력 따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까닭을 생각합니다. 모두들 사랑을 모릅니다. 모두들 사랑을 한 번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사랑은 등돌린 채 힘자랑과 돈자랑과 이름자랑에 파묻힙니다.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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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릴레이 - 전쟁 한가운데서 평화를 꿈꾸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 이야기
가마타 미노루 지음, 오근영 옮김 / 양철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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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7

 


싸우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 생명의 릴레이
 가마타 미노루 글
 안도 도시히코 그림
 오근영 옮김
 양철북 펴냄, 2013.10.28.

 


  싸우는 사람은 이제껏 사랑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운 적이 없으니 그예 싸우고 맙니다. 싸움이 그쳐도 다시 싸움을 벌이고, 이 싸움을 마치면 다른 싸움을 자꾸 벌입니다. 마음속에 싸움이 자리하니 언제나 싸움이 불거집니다. 작은 일에도 싸우고, 큰 일에도 싸웁니다. 아니, 작거나 큰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싸움이 되어요.


  말 한 마디를 할 적도 마치 싸우자고 달려드는 듯한 말씨가 됩니다. 길을 걸을 적에도 마치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 듯이 우격다짐입니다. 글을 쓸 적에도 툭탁툭탁 싸우려고 드는 모습이 되지요.


  싸우는 사람은 언제부터 싸웠을까요. 싸우는 사람은 언제부터 싸움을 겪어야 했을까요. 뜻하지 않게 싸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스스로 바라며 싸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싸우는 사람이 되나요. 사랑을 늘 듬뿍 받지만 어딘가 못마땅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생채기 있어 시나브로 싸움으로 기울어지고 마는가요.


  한 사람이 싸웁니다. 한 나라가 싸웁니다. 두 사람이 싸웁니다. 두 나라가 싸웁니다. 싸우는 사람한테는 무기가 있습니다. 총이나 칼이 무기가 되기도 하고, 돈이나 힘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지식과 나이와 가방끈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무기가 됩니다. 하찮아 보이는 것조차 무기가 되어 이웃이나 동무를 다치게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를 다치게 할 적마다 스스로 마음이 다치고 몸이 무너지지만, 싸우는 사람은 누가 어떻게 왜 다치는가를 느끼지 않습니다. 쳇바퀴를 돌듯이 언제나 싸움 한복판에서 맴돕니다.


.. 아흐메드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에메랄드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지중해는 집에서 20킬로미터 남짓이지만, 소년에게 바다는 달나라만큼 멀게 느껴진다. 하티브 일가가 사는 곳은 요르단강 서쪽, 팔레스타인 자치구 제닌에 있는 난민 캠프다 … 2002년 4월 아흐메드가 아홉 살 때, 제닌 난민 캠프에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왔다. 난민 캠프를 탱크로 에워싼 뒤 대포를 쏘아댔고, 장갑차로 건물을 짓뭉개 버렸다. 캠프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8∼9, 20쪽)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사랑을 즐겁게 배웠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배운 사랑이든,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배운 사랑이든, 즐겁게 배운 사랑을 즐겁게 나눕니다. 마음속에 늘 사랑이 감돌기에, 말 한 마디를 읊을 적에도 사랑스레 흐릅니다.


  작은 사랑을 나누고, 큰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한테는 크거나 작은 사랑이 따로 없습니다. 모두 사랑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기에 작은 사랑 되지 않고, 저렇게 하니 큰 사랑 되지 않아요. 사랑에는 처음부터 크기가 없어요. 사랑에는 높이도 길이도 무게도 없어요. 사랑은 값으로 따지지 않아요. 100원짜리 사랑과 100억짜리 사랑이 없어요. 사랑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빛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사랑을 돌려받을 생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즐겁게 사랑을 나누고 보면, 언제나 이 사랑이 따사롭게 돌아와요. 그래서, 사랑을 받은 뒤 새삼스레 사랑을 다시 나누고, 사랑을 받으면서 새롭게 사랑을 다시 돌려줍니다.

  사랑을 낳는 사랑이요, 사랑으로 태어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고운 씨앗 되어 이 땅에 드리우고, 씨앗으로 흙 품에 안긴 사랑은 차근차근 자라서 짙푸른 잎사귀와 줄기를 내놓은 뒤, 아름다이 빛나는 꽃송이로 자랍니다. 꽃피우는 사랑은 새로운 씨앗 맺지요. 새로운 씨앗은 거듭 이 땅에 드리우면서 다시금 찬찬히 자라요.


.. 유대인은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 왔다. 종교의 차이 때문이었을까? 유대인은 땅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장인이나 상인이 되는 길도 제한되어 있었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도, 전부터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도, 이 땅은 고향이다 … 분리 장벽이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민가가 들어차 있었고, 올리브밭이 펼쳐져 있었다.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과 긍지를 짓밟으면서 이어지고 있다 …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자녀들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괴로울지,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을 터.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알고 있을 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일을 팔레스타인 마을에 하고 있는 것이다 ..  (11, 16, 66, 67쪽)


  싸우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아니, 싸우는 사람 마음속에는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싸움에 바쁜 나머지 노래가 깃들지 못합니다. 싸움만 생각하기에 다른 아무것도 마음속에 감돌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는 언제나 노래가 흘러요. 스스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노래가 솟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들려주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남 앞에서 보여주려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즐기는 노래입니다.


  싸움이란 나한테도 남한테도 즐겁지 않습니다. 싸움이란 나부터 반갑지 않습니다. 싸움이란 내 이웃과 동무한테 웃음꽃을 베풀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나부터 즐겁습니다. 참말, 나부터 즐겁기에 내 둘레 사람들한테 즐거운 웃음꽃을 찬찬히 베풉니다. 베풀려고 하는 웃음꽃이 아니라, 저절로 흐르는 웃음물결입니다.


  햇살과 같은 사랑입니다. 날마다 뜨고 지는 해님과 같은 사랑입니다. 풀과 나무를 살찌우는 햇볕과 같은 사랑입니다. 온누리 골골샅샅 두루 퍼지는 햇발과 같은 사랑입니다.


.. 밖에서 친구들이 전쟁놀이를 하자고 부를 때도 싫다고 했다. 아무리 장난감이라도 총 따위는 만지고 싶지 않았다. 대신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노래, 마음이 편안해지는 노래를 불렀다 … 탕!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갈랐다. 아흐메드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배에서는 시뻘건 피가 솟구쳐 올랐다. 몸부림을 치면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탕! 두 번째 총알이 날아와 아흐메드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소년의 미래가 거기서 툭! 끊어졌다 ..  (24∼25, 29쪽)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 아름다운 꿈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면 고운 빛이 흩뿌려요. 사랑하는 마음이 자라지 못할 때에 스멀스멀 싸움이나 다툼이 태어나요. 사랑하는 마음이 움트지 못하면 고운 빛은 가뭇없이 사라져 쌀쌀하고 메마른 어둠이 넘쳐요.


  가마타 미노루 님 글과 안도 도시히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이야기책 《생명의 릴레이》(양철북,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모든 목숨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아픈 역사가 다른 아픈 역사로 이어지고, 싱그러운 역사가 다른 싱그러운 역사로 이어집니다. 고단한 역사가 다른 고단한 역사로 이어지고, 밝은 역사가 다른 밝은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아픈 역사가 멈출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역사 또한 끊어질 수 있습니다. 고단한 역사가 멎을 수 있습니다. 밝은 역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아픈 역사가 이어지더라도, 이러한 역사는 이제 끝내려 하는 사람들 마음이 있으면, 아픈 역사는 바로 이때부터 멈춥니다. 싱그러운 역사가 고이 흐르더라도, 싱그러운 역사를 기쁜 웃음으로 나누려 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사랑을 저버리려는 짓궂은 마음이 싹트면 싱그러운 역사가 끊어져요. 고단한 역사가 오래되더라도, 이러한 역사로는 우리 삶터에 아무런 빛이 못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며 새 역사를 열어요. 밝은 역사가 춤추어도, 밝은 눈빛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면 그만 밝은 역사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웁니다.


..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국적은? 민족은? 종교는?’ 하고 물을 수 있을까요. 전 그저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 이스마엘은 평화로운 일상을 원할 뿐이었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  (86∼87, 90쪽)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녁이 겪은 슬픔과 아픔을 다른 사람들한테 똑같이 돌려주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녁이 겪은 슬픔과 아픔을 이제부터 모두 사라지도록 할 때에 즐겁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건, 이웃 나라와 겨레를 괴롭히거나 해코지할 적에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날까요. 어느 나라와 겨레이건, 다른 나라와 겨레를 포근히 안으면서 따사로이 사랑할 적에 웃음꽃이 피어나지 않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일본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어요. 일본에 있던 어리석은 사람들이 정치권력 거머쥐어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내리눌렀어요. 한국에 있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 정치권력자한테 빌붙으며 헤헤거렸어요. 일본에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제국주의 정치권력자를 꾸짖으면서 이웃나라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하려 했어요. 한국에 있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제국주의 정치권력 서슬에도 푸른 마음 건사하면서 아름다운 길 걸었어요.


.. 팔레스타인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이스마엘의 ‘무기에 기대지 않는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  (119쪽)


  무기에 기대어 싸우면 언제까지나 무기에 기대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무기를 자꾸 만들어 더 힘이 세지기를 꾀하고 맙니다. 무기에 기대지 않으면, 또 싸우지 않으면, 언제나 무기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웃습니다. 새로운 무기를 만들 까닭이 없고, 힘이 더 세질 일이 없습니다.


  무기에 기대어 싸우니, 언제나 싸움입니다. 늘 전쟁입니다. 무기에 기대지 않으니, 언제나 평화입니다. 늘 평화요 사랑입니다.


  전쟁이 그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예요. 전쟁무기 내려놓거나 버리는 길이 바로 전쟁을 그치게 하는 길입니다. 평화를 지키는 길은 오직 하나예요. 평화를 아끼고 섬기면서 사랑을 나누는 길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권력자와 어리숙한 사람들이 온통 전쟁무기만 치켜든 채 바보짓을 한다면? 어리석은 권력자와 어리숙한 사람들이 온통 넘치면? 아주 쉽지요. 전쟁무기만 들고 살아가면 곧 죽어요. 굶어서 죽지요. 굶어서 죽을 뿐 아니라, 땅과 물이 모두 더러워졌을 테니, 숨이 막히고 목이 말라 죽습니다.


  정치권력자가 스스로 흙을 일구는 일은 없습니다. 어리숙한 사람들이 시골에 깃들어 조용히 흙을 일구는 일도 없습니다. 정치권력자는 서울에 몰려서 군인과 경찰을 곁에 거느리지요. 어리숙한 사람들도 시골을 떠나 정치권력자 있는 서울에 옹기종기 모여 돈벌이에만 마음을 쏟아요.


  누가 흙을 일구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베풀까요. 누가 흙을 살찌우거나 아끼면서 푸른 바람과 맑은 물이 흐르게 할까요.


  정치권력자도 사라질 노릇이요, 어리숙한 사람도 깨달을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면 나라가 무너져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있어야 하더라도 1/3을 넘으면 안 될 뿐 아니라 1/10조차 넘으면 안 됩니다. 아니, 회사원과 공무원들도 스스로 흙을 일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들이 정년퇴직을 한 뒤 돈을 받도록 할 일이 아니라, 땅을 받도록 해서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옳아요. 왜 돈을 주나요. 땅을 주어야지요. 골프장 걷어치우고 고속도로를 뜯어내어 푸른 숲을 일구어야 마땅합니다. 공장을 허물고 발전소를 없애어 푸른 들로 가꾸어야 옳습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이루지 못해요. 학교교육과 도시 물질문명으로는 사랑이 태어나지 못해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를 가로막는 ‘분리 장벽’에는 다시 올리브나무가 자라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전쟁무기 아닌 꿈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흙을 살찌우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모두 슬기로운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 아름다운 길을 걸어야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청소년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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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살아있는 교육 5
이호철 지음 / 보리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배움책 19

 


재미있게 노는 곳이 학교
―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이호철 글
보리 펴냄, 1994.5.30. 7000원

 


  교사 이호철 님이 쓴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보리,1994)이라는 책을 처음 읽던 때를 떠올립니다. 1994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을 1998년에 처음 읽었습니다. 나는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으며, 1998년 1월에 대학교를 그만두려 하다가 한 해 두 학기를 더 다니고 12월에 그만두었습니다. 대학교라는 곳이 졸업장은 쥐어 주지만, 삶다운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사랑다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구나 싶어, 스스로 삶과 사랑을 찾고 싶어 대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학점을 따느라 바쁠 젊은 날일 때에는 안쓰럽다고 느껴요. 교수한테 점수를 따려고 눈치를 보거나 아양을 떨거나 선물을 바쳐야 하는 젊은 날이란 얼마나 슬픈가 하고 생각해요. 대학교에서조차 베껴쓰기 숙제를 내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대학교는 ‘대’라는 이름도 ‘학교’라는 이름도 부끄러운 노릇이라고 느꼈어요. 생각을 넓히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이야기 아닌, 교재 몇 권 외우는 시험만 치르는 대학교란, 얼마나 젊은 넋을 살찌우거나 북돋울 수 있는지 알쏭달쏭했어요.


  배움책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눈높이로 나온 책이지만,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함께 살필 만하다고 생각해요.


.. 아이들이 공책 가득히 쓰는 숙제를 잘 해 온다고 해서,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책을 들고 있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쓰는 양이 많아 머릿속에 넣을 사이가 없거나 머릿속에 넣을 능력이 부족해서도 그렇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스스로 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을 시킴을 받아서 억지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령 그런 단순한 지식 나부랭이를 머릿속에 잘 넣어서 좋은 점수를 얻고, 입시 경쟁에 이기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여 겉보기에 남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된다 해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부를 못 한 사람은 오히려 배운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날마다 보여주고 있다 … 시험 전쟁에서 이겨야 하겠지. 당신 아이 같으면 지금 우리 나라 형편에 시험 공부 하지 말라고 하겠느냐 반문도 하겠지. 그 말이 옳다고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해서 국민학교 어린 아이들까지 거기에 휘말아 넣어서 들볶느냐 하는 것이다 ..  (5∼6, 10쪽)


  ‘숙제’를 내는 학교가 있는 나라는 지구별에 몇 군데 있을까 궁금해요. 공책에 베껴쓰기 숙제를 내며 아이들 생각힘(상상력·창조력)을 짓밟는 학교가 있는 나라는 지구별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요.


  미국에서도 베껴쓰기 숙제를 낼까요? 일본이나 중국은 어떨까요?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어떨까요? 칠레나 브라질은 어떨까요? 쿠바나 도미니카는 어떻지요? 덴마크나 스웨덴은 어떤가요? 네덜란드나 프랑스는 어떻게 할까요?


  베껴쓰기 숙제를 내어 아이들한테 무엇을 시킬 수 있을까요. 교과서 달달 외우는 시험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교사뿐 아니라 어버이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이에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무언가 지식을 가르치려 한다면, 교사에 앞서 여느 어버이부터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이에요.


  학교에서 베껴쓰기 숙제를 낸다면, 어버이가 소매를 걷어부치고 이런 숙제 못 내도록 교사를 나무랄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 스스로 생각힘 북돋우는 ‘공부’를 시키지 않는 학교라면,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학교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쫓아낼 줄 아는 어버이가 되어야 해요. 왜냐하면, 어느 아이라 하든, 모두 다른 아름다운 넋을 품으며 태어나요. 어느 아이라 하든,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맑고 밝은 꿈을 품으며 태어나요. 어느 아이라 하든, 즐겁게 살아가며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누릴 숨결이에요.


..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 바닥과 희뿌연 하늘로 둘러싸인 길로 해서 학교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다시 학원에 갔다가 또 집에 돌아가 베끼고 외우는 숙제를 하고, 잠을 자고, 조그마한 틈이 생기면 텔레비전 앞에 앉거나 전자오락을 하고 있으면 거기서 무슨 살아 있는 글이 나올까? 도시 아이들이 농촌 아이들보다 더 싱싱한 글을 쓸 수 없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을 게다 … 손은 손을 가진 자신이 하루에도 여러 번 씻지만 발은 발을 가진 자신도 하루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한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이런 발을 씻어 드리는 숙제를 내어 보자. 때가 있고, 냄새가 나고, 갈라지고, 거친 부모님의 발이 얼마나 귀한 발인가 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  (23, 38쪽)


  아이가 왜 대학교에 가야 할까요? 아이가 대학교에 다니면 아이한테 무엇이 좋거나 즐겁거나 보탬이 될까요? 대학교를 마친 아이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삶을 누릴 때에 즐겁거나 아름답다고 느낄까요? 대학교를 마친 아이는 스스로 어떤 일을 찾아나설까요?


  아이는 왜 고등학교에 다니며 입시공부만 해야 할까요? 아이는 왜 중학교에서 예비 고등학생 되어 예비 입시공부에 시달려야 할까요? 아이는 왜 초등학교에서 예비 중학생 되어 ‘예비에 예비인’ 입시공부에 들볶여야 할까요?


  초등학생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지구별 이웃과 아름다이 어깨동무하도록 이끌려고 영어를 가르치나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나요? 아이들이 캄보디아 동무나 필리핀 동무나 수단 동무나 포르투갈 동무를 사귈 수 있도록 이끌고자 영어를 가르치나요?


  스스로 밥을 지을 줄 모르고, 스스로 옷을 기을 줄 모르며, 스스로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시험성적 뛰어나다면 삶을 얼마나 잘 가꿀 수 있을까 궁금해요. 입시교육이란 삶교육이 아니고, 성교육이란 사랑교육이 아니에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를 개발해서 공장을 짓고 엄청나게 만들어 사고팔 뿐 아니라, 이웃나라에 이 전쟁무기 갖추라며 들볶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봐요.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려 한 사람들이 누구요, 온갖 차별과 불평등 낳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봐요.


  삶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삶을 망가뜨리는 짓을 해요. 사랑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깨는 짓을 저질러요. 꿈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꿈을 짓밟는 길을 걸어요. 이야기를 꽃피우지 못한 사람이 이웃이나 동무와 어깨동무하는 길하고 등을 돌려요.


.. 시멘트 문화에 찌들고 딱딱한 기계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 마음이 메마른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리를 스스로 내면서 듣는 즐거움을 주자.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자연의 소리만 할까.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마음을 맑게 해 준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리는 휴지나 담배꽁초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담기를 재미있는 숙제로 내어 주었다. 또 버리는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워 보도록 해 보았다. 아이들이 쓴 글을 보니 참 재미있는 일이 많다 ..  (53, 113쪽)


  배움책 《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에는 초등학교에서 1월부터 12월까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숙제’를 여러 가지 들려줍니다. 교사 이호철 님이 몸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재미있는 숙제’를 내고는 아이들이 이 숙제를 치르며 겪은 이야기를 스스로 글로 남기도록 이끌어서, 아이들이 남긴 글을 ‘재미있는 숙제’마다 붙입니다. 아마, 아이들로서는 여느 베껴쓰기 숙제가 훨씬 쉬우리라 생각해요. 그냥 베껴쓰면 그만이거든요. ‘재미있는 숙제’를 하자면 1분만에 끝날 수 있기도 하지만 며칠이 걸릴 수 있어요. ‘재미있는 숙제’를 마치고도 스스로 못내 아쉬워 여러 날 더 생각을 기울이기도 해요. 한 번으로 그치기에는 아쉽거나 모자란 ‘재미있는 숙제’도 많아요.


  이를테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 손발 주무르고 발 씻기는 숙제는 한 번으로 그칠 수 없습니다. 늘 할 ‘집일’이면서 ‘우리 식구 사랑’이에요. 어머니는 아이 발을 씻기고는 주물러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발을 씻기고는 주물러 줍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면서 누릴 삶이자 살림이고 하루예요.


  날마다 먹는 밥은 어머니 혼자 도맡아서 차릴 밥이 아닙니다. 아버지도 함께 차릴 밥이며, 아이들도 초등학교 3∼4학년쯤이면 스스로 도시락 꾸리도록 밥짓기를 슬기롭고 알뜰하게 할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빨래와 청소도 이와 같아요. 언제나 스스로 삶이 되어야 할 모습이요 매무새입니다. ‘재미있는 숙제’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삶’, 아니 ‘즐거운 삶’과 ‘아름다운 삶’으로 받아들일 이야기예요.


.. 그래 맨발로 걸어 보기 숙제를 내어 보았다. 모래흙에도 가 보고, 보드라운 흙에도 가 보고, 자갈밭에도 가 보고, 진흙에도 가 보도록 하자. 우리 아이들은 시멘트, 아스팔트 길도 걸어 보았는데 그런 곳도 한 번 걸어 보도록 하자. 그래야만 흙이 얼마나 포근한 것인가도 알 것이다. 발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져 보기, 혀로 자연의 맛 찾아보기, 눈으로 자연의 아름다움 찾아보기, 코로 꽃향기·자연의 향기 맡아 보기, 흙에 뒹굴어 보기, 풀밭에 뒹굴어 보기, 흙장난하며 놀기, 물놀이 …… 아이들에게 찾아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  (133쪽)


  가을볕이 퍽 뜨겁습니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도 등줄기로 땀이 흐릅니다. 마당에 이불을 내놓으니 아주 잘 마르고, 고우며 따사로운 기운이 듬뿍 뱁니다. 들판을 그득 채운 나락은 가을볕 받으며 누우렇게 잘 익습니다. 이제 시골마을 늙은 흙지기들이 기계를 불러 이 나락을 벨 테지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딸아들은 한가위를 앞두고 시골마을로 살짝 찾아왔다가 도시로 돌아갈 테고, 시골일은 온통 시골마을 늙은 흙지기 몫으로 남겠지요.


  아이들이 ‘재미있는 숙제’를 스스로 하면서 ‘재미있는 삶’을 깨닫도록 이끌 때에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느낀다면, 어른들한테는 ‘재미있는 시골일’을 몸소 하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느끼도록 하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가위 연휴나 휴가를 넘어, 시골마을 가을 들일 하는 ‘가을걷이 휴가’를 얻어야 한달까요. ‘육아 휴가’가 있듯이, 관공서도 학교도 회사도 공장도, 시골마을 가을걷이철에는 모두 시골로 돌아가서 늙은 흙지기 곁에서 기계를 같이 부리든 낫을 손에 쥐든, 바쁜 가을 일손 거들 수 있을 때에, 이 나라에 즐거운 웃음꽃과 아름다운 노래잔치 그득하리라 느껴요.


.. 우리의 옷에 우리의 말이 얼마만큼 씌어 있나 찾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그림이 얼마나 그려져 있는지도 찾아보도록 하면 좋겠다. 또 할 수만 있다면 우리 고유의 모양새가 나는 옷과 그렇지 못한 옷을 견주어 조사해 보고 우리 옷의 멋을 깨닫도록 하는 것도 좋겠다. 또 옷에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 우리 그림을 멋있게 그려 넣어 입어 보는 일도 하면 좋겠다 … 보통 아이들은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놓고 맛있느니 맛없느니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이때 자기가 직접 만들어 먹게 하면 쓰다 달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디를 가서 늦게 오거나 며칠 어디에 갔을 때 우두커니 굶고 있지만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먹는 밥쯤은 여자든 남자든 스스로 해 먹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  (152, 162쪽)


  아이들은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 때에 씩씩하게 자랍니다. 어른들은 일터에서 재미있게 일할 때에 튼튼하게 살림을 꾸립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즐겁게 배우고 가르치면서 맑은 넋 건사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마을과 집에서 즐겁게 일하고 놀면서 밝은 꿈 이룰 수 있습니다.


  다 함께 먹는 밥입니다. 다 함께 살아가는 지구별입니다. 다 함께 마시는 물입니다. 다 함께 누리는 바람과 햇볕입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물과 바람과 흙 모두 깨끗해야 합니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숲이 푸르게 우거져 맑은 노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뛰놀아야지요. 어른들은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면서 두레도 하고 마을잔치도 벌여야지요. 아이들은 걱정없이 뛰놀아야지요. 어른들은 근심을 내려놓고 서로서로 아끼는 사랑을 꽃피워야지요.


..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베껴 쓰고 외우는 숙제로만 밀어붙이는 것에서 삶터에서, 자연에서 스스로 부딪히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숙제로 바꿔야 할 것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그 많고 많은 단편 지식들을 다 집어넣었다 한들 무얼 하겠나. 남보다 더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어 시험점수를 잘 받았더라도 그런 단편 지식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쓸모없게 되기도 하고, 자라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많다 ..  (245쪽)


  보름달 곁에 별빛이 곱습니다. 뭇별 곁에서 달빛이 한결 환합니다. 구름이 흐르는 하늘빛이 티없이 파랗습니다. 다슬기 살아가는 도랑물 둘레에서 개똥벌레 불춤을 곱다라니 춥니다. 논자락 곁에서 달개비꽃과 고들빼기꽃 사이좋게 어우러집니다. 숲길에는 쑥부쟁이 한들거리고, 가을 한복판에도 달맞이꽃은 노란 꽃망울 터뜨립니다. 동백나무는 동백열매를 맺고, 아주 천천히 꽃봉오리 맺으려고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그러모읍니다. 이듬해에 피어날 동백꽃 봉오리는 요즈막에 조그맣게 자랍니다.


  시멘트 건물에 갇힌 채 10대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시멘트 건물에서 풀려나 들을 달리고 바다와 내를 가로지르며 숲에서 푸른 숨을 마시는 아이들은 온누리를 골고루 배웁니다. 도서관에 깃든 책은 숲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를 옮긴 몇 가지일 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요. 아이들과 나란히 즐겁게 살아요.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들노래 숲노래 바다노래 하늘노래 흙노래 꽃노래 풀노래 나무노래 불러요. ‘숙제’라는 굴레를 내려놓으면, 시나브로 슬기와 꿈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4346.9.2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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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 쏘피
세귀르 백작부인 지음, 원용옥 옮김 / 여름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 이 느낌글 쓸 수 있도록 책을 선물해 주신 보슬비 님 고맙습니다~ ^^ ..

 

..

 

어린이책 읽는 삶 38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
― 말썽꾸러기 쏘피
 세귀르 백작 부인 글
 오라스 꺄스뗄리 그림
 원용옥 옮김
 여름나무 펴냄, 2005.3.5.

 


  신나게 놀며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땀흘려 신나게 일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립니다. 어릴 적부터 신나게 놀며 자라 어른이 된 사람은, 이녁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재미나게 놀면서 누리는 즐거움을 물려줍니다. 손발가락을 놀리고 온몸을 놀리면서 자랄 적에 튼튼합니다. 콩콩 뛰고 폴짝폴짝 뛸 적에 씩씩합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나비와 함께 날듯이 내달릴 적에 야무집니다.


  제대로 놀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책상맡에서 주어진 일감을 맡기는 하지만,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빛내며 아름답게 일하지는 못합니다. 스스로 온몸 놀리며 자라지 못한 탓에, 둘레 사람들 삶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스스로 온몸 움직여 놀지 않은 버릇이 박혔기에, 교통 정책이나 문화 정책이나 사회 정책이나 경제 정책 모두 재미없을 뿐더러, 이웃을 넓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동무네 집을 두루 다니면서 놀 줄 알아야 합니다. 냇물에서 물장구치고, 숲을 쏘다니며, 바다와 들판을 시원스레 가르며 놀 줄 알아야 합니다. 흙을 만지고, 나무막대기를 주으며, 돌을 옮기면서 놀 줄 알아야 합니다. 나무를 타고, 풀을 꺾으며, 꽃을 쓰다듬으며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려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실컷 놀고 기쁘게 웃으려고 이곳에 태어납니다. 어린이집에 가거나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들어가려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서울로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면 재미난 삶 될까요. 의사나 판사나 뭣뭣이 되면 삶이 즐거울까요.


  동무와 놀고 이웃과 사랑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동무와 어깨를 겯고 이웃과 사랑을 나눌 때에 웃음꽃이 핍니다.


.. “하지만 햇볕을 받으면 말랑말랑해진단다. 그러면 인형이 망가질 거야. 난 분명히 일러 줬다.” 쏘피는 엄마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형을 뜨거운 태양 아래 눕혀 놓았다 … 엄마가 쏘피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만 해. 자꾸 이것저것 궁리하지 말고 조용히 해. 다칠지 안 다칠지는 너보다 엄마가 더 잘 알아. 절대로 혼자서 안뜰에 가면 안 돼.” 쏘피는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뾰로통한 표정이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가야지. 재미있으니까 갈 거야.” ..  (12, 25쪽)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주차장은 그만 닦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넘친다면, 외려 주차장을 줄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넘치니, 이 넘치는 자동차가 찻길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는 정책을 꾀해야 옳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주차장을 없애고 놀이터와 쉼터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를 마련하고, 어른들이 쉴 터를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은 교사들 주차장으로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박으면 아이들은 그나마 흙을 만질 땅조차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키니, 운동장에서 개구지게 뛰놀지도 못합니다. 운동장이 넓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를 하는 몇몇 아이들 있으면, 그나마 시원스레 놀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학교 운동장에서만 놀아야 하지 않아요. 어느 동네에서나 놀 수 있어야 해요.


  시내나 읍내나 면내 한쪽에 반드시 주차장 아닌 놀이터와 쉼터가 있어야 합니다. 시골마을 한쪽에도 빈터가 있어야 합니다. 빈터에서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놀 수 있어야 합니다. 구슬을 치건 돌을 치건 막대기를 치건, 아이들이 서로서로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즐겁게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놀이기구나 저런 놀이시설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무 놀이기구 없어도 되고, 어떤 놀이시설 없어도 됩니다. 빈터면 넉넉합니다. 빈터에는 나무그늘 드리워야 하고, 풀밭이 있어야 합니다. 곁에 냇물이 맑게 흐르면 더 좋습니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면 아주 좋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도 공부도 학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푸른 마음 되어 신나게 놀며 하루를 누릴 수 있어야 튼튼하고 참답게 클 수 있습니다.


.. “아가씨, 말을 안 들었으니 매를 맞아야 마땅해요. 하지만 고마우신 하느님이 이미 아가씨한테 이렇게 혼을 내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내릴 벌은 아가씨가 마을 축제 때 쓰려고 지갑에 넣어둔 동전 5프랑으로 하녀 아줌마의 새 앞치마를 사도록 하는 거예요.” … 엄마들은 그 방을 나왔다. 하지만 쏘피가 발명한 우스꽝스런 식사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만 남았다. 뽈과 쏘피는 싸운 것이 부끄러워서 서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까미유와 마들렌이 그 둘에게 입맞춤을 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또 서로 화해를 시키려고 했다 ..  (28, 101쪽)


  놀이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노래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노래가 샘솟습니다. 가락이 샘솟고 말이 샘솟아요. 노래란, 어떤 가락이나 말을 누구한테서 배워 똑같이 부를 때에 노래가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를 제 가락에 맞추어 제 말을 거침없이 터뜨릴 적에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에는 푸른 숨결이 깃듭니다. 언니가 동생한테 놀이를 물려줍니다. 오빠가 동생한테 놀이를 이어줍니다. 아이들은 서로 놀이를 물려주고, 노래를 가르칩니다. 천천히 천천히 이루어지는 놀이와 노래입니다. 스스로 씩씩하고 놀고 푸르게 자라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스스로 일을 찾고 스스로 즐겁게 일하며 스스로 기쁘게 노래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루어지며 이어진 ‘일노래’란 바로 어릴 적부터 신나게 놀며 ‘놀이노래’ 부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부른 노래입니다.


  즐겁게 놀아야 즐겁게 일하지요. 놀지 못한 사람이 일하지 못해요. 노래하며 놀아야지요. 노래하지 놀지 못한 사람이 노래하며 일하지 못해요.


  대학생들을 보셔요. 놀 줄 아는 대학생이란 없어요. 술 마시고 담배 태우고 짝짓기를 하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정작 스무 살 싱그러운 나이를 한껏 빛내는 놀이란 한 가지조차 없어요. 스스로 놀이를 빚지 못하고,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모두 텔레비전이나 책이나 학교나 둘레 어른한테서 기웃거린 빈 껍데기 물질문명만 가득합니다. 오늘날 어른들 스스로 놀 줄 모르고 놀지 않고 노래할 줄 모르며 노래하지 않으니, 이 젊은이들은 놀거나 노래하는 기쁨을 모릅니다. 이 젊은이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논 적이 없어요. 오직 시험공부에만 파묻힌 채 자랐어요. 주민등록증은 있되 어른이 아닙니다. 술담배는 거리낌없이 할 테지만, 자유도 꿈도 창조도 생각도 일구지 못합니다.


.. 마음씨 고운 뽈도 역시 속상했다. 어떻게 하면 쏘피가 야단맞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가시덤불에서 넘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잠깐만, 두고 봐.” 뽈이 말했다. 뽈은 달려나갔고 쏘피도 뒤따라갔다. 아이들은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뽈이 호랑가시나무 덤불숲 쪽으로 향하더니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안에서 잎사귀들의 뾰족한 끝에 얼굴이 긁히고 상처가 나도록 몸을 굴렸다. 그리고 일어섰는데 그전보다 훨씬 더 긁혀 있었다 … “우리 착한 뽈, 너는 정말 착해! 그러면 일부러 넘어졌단 말이야? 많이 아팠을 텐데.” 쏘피가 뽈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니야. 저렇게 낮은 의자에서 넘어졌는데 어떻게 아플 수가 있겠어. 이제 우리 다시 친구가 되었으니 놀러 가자.” ..  (115, 130쪽)


  노는 아이들은 살결이 까무잡잡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뱃살이 나올 틈이 없습니다. 노는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별과 달과 해와 구름을 늘 만납니다. 노는 아이들은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물맛과 밥맛을 압니다. 노는 아이들은 여린 동무를 아끼고, 어깨동무를 즐깁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놀기에 튼튼합니다. 튼튼하게 자랐으니 튼튼하게 일하는 어른이 됩니다. 온몸이 골고루 튼튼히 자랐으니 야무지게 일할 줄 아는 어른이 됩니다. 눈빛이 맑으니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일거리를 찾고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별과 달과 해와 구름을 읽을 줄 알기에, 밥과 옷과 집을 정갈하며 곱게 건사합니다.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하듯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지요. 숲을 돌보고 마을을 보살핍니다. 물맛과 밥맛을 알기에 흙을 살찌우고 기쁨 어린 씨앗을 환하게 웃으면서 심습니다. 여린 동무를 아끼면서 이웃 누구나 반깁니다. 어깨동무를 즐기기에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을 힘과 슬기를 모아 이룹니다.


  놀이는 삶입니다. 삶은 놀이입니다. 놀이는 일이 되고, 일은 어느새 놀이와 같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길은 일놀이가 한동아리 되어 흐르는 웃음꽃과 땀방울에 있습니다. 사랑을 빛내는 착한 꿈은 일놀이 누리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에 있습니다.


.. “가엾은 쏘피. 네가 도둑질을 한 사실을 잊게 할 방법이 뭔지 알아? 그건 사람들이 앞으로는 너를 의심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직해지는 거야.” 뽈이 말했다 … “만약 옷핀에 대해서 말하면 야단맞을 거야. 그리고 당나귀를 뺏어 버리실 거야.” “내가 보기엔, 항상 사실대로 말하는 게 더 나아. 네가 뭔가를 이모님한테 숨기려고 할 때마다 이모님은 금방 아셨잖아. 그리고 네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벌을 조금 받았을 텐데, 항상 더 심한 벌을 받곤 했잖아.” ..  (166, 183쪽)


  세귀르 백작 부인이 글을 쓰고 오라스 꺄스뗄리 님이 그림을 그린 《말썽꾸러기 쏘피》(여름나무,2005)를 읽습니다. 무척 오래된 동화책입니다. 서양나라에서 이백 해쯤 앞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며 자랐나 하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는 글입니다. 개구지게 놀던 말괄량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른들은 쏘피를 가리켜 ‘말썽꾸러기’라 말하는데, 어린 쏘피로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거나 겪고 싶을 뿐입니다. 어른들은 예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겪으며 쏘피한테 ‘이렇게 하지 말라’라든지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데, 어린 쏘피는 스스로 부대끼면서 하나하나 느끼고 싶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쏘피를 낳아 돌본 어머니도 이녁이 어릴 적에는 쏘피처럼 놀았으리라 생각해요. 모두들 어릴 적에는 쏘피처럼 개구지게 놀았으나, 어른이 되면서 얌전을 떨고 아이들 나무라는 모습이 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리거나 놀면서 자랍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쏘피하고 함께 놀면서 놀이를 물려줄 수 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릴 적 놀며 부른 노래를 쏘피한테 가르칠 수 있어요. 이것은 하지 말고 저것은 하라는 틀을 넘어, 새롭게 놀이를 함께 즐기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인걸요. 아이답게 이런 놀이를 하고 싶은걸요. 아이스럽게 저런 장난을 치고 싶은걸요.

  큰소리로 까르르 웃는 아이더러 조용히 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온몸이 자라느라 온몸이 간지러운 아이들은 펄쩍 뛰고 폴짝 납니다. 이 아이들더러 얌전히 있으라거나 다소곳하게 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흙놀이나 모래놀이 하고픈 아이들을 말리면 안 됩니다. 흙놀이와 모래놀이 실컷 즐기도록 하고는, 다 놀고 나서 옷을 털고 손을 씻도록 이끌면 됩니다. 물놀이 하고픈 아이한테 갈아입을 옷 챙겨 주면 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아이한테 숲속 멧새 노래 듣기를 시키고, 풀벌레 노래잔치에 귀를 기울이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아이한테 씨앗을 주고 스스로 심어 보살피도록 하면 됩니다. 바느질을 보여주면서 함께 옷을 기우면 됩니다. 설거지도 걸레질도 같이 하면 돼요. 어린 동생 달래며 재우는 일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요.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공부하거나 숙제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놀면서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놀고 어깨동무하면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아이들입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을 거머쥔대서 아이들 마음속에서 꿈이나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터란 일터이면서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란 일터요 삶터이면서 사랑터입니다. 일터란 삶터이자 놀이터요 사랑터인 한편 꿈터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싱그러이 빛나는 숲집입니다. 4346.9.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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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키우는 아이 - 아빠 육아, 이 커다란 행운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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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는 배움책 18] 박찬희, 《아빠를 키우는 아이》(소나무,2013)

 


- 책이름 : 아빠를 키우는 아이
- 글 : 박찬희
- 펴낸곳 : 소나무 2013.2.7. 13000원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은 아주 다릅니다. 마당이 있는 집은 마당을 실컷 누리고, 마당이 없는 집은 마당을 하나도 못 누립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다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들은 혼자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마당이 없는 집에서 살면 아이들은 집안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놉니다.


  먼먼 옛날을 돌아보면, 아무리 가난하다 하는 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임금이나 권력자 빼고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어요. 시골사람이던 사람들은 마땅히 시골에서 살았고, 시골에서는 누구나 스스로 흙을 일구면서 밥과 옷과 집을 얻어 살았어요. 이때에는 모든 집이 마당을 누렸을 뿐 아니라, 삽짝문 열면 온통 들이요 숲이면서 놀이터이자 일터였습니다.

  옛날 옛적 아이들은 ‘층간 소음’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나 학원이나 숙제나 입시에 들볶이지 않았습니다. 신나게 놀고 즐겁게 일하면서 하루를 누렸어요. 아이답게 놀면서 몸이 자라고, 어버이 일손을 곁에서 거들면서 마음이 컸습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삶을 일구면서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삶을 지켜보면서 삶을 배웠습니다. 어른들은 춤과 노래와 이야기로 슬기와 꿈과 사랑을 아이들한테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빛을 담았습니다.


.. 축하 인사를 받고 술 한잔 하다 어느 순간 아내 얼굴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애는 나 혼자 낳았냐고! 제발 애 키우는 일 좀 도와줘!” … 아내는 내가 야근한다는 말에 한 번도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  (5, 78쪽)


  마당이 있는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에서 아이들과 살아가며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터를 옮겼기에 마당을 기쁘게 누립니다. 아이들은 거리끼지 않고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있는 힘껏 하늘로 부웅 날았다가 사뿐히 땅에 내려앉습니다. 두 발 높이 들며 척척 걷습니다. 까르르 웃으면서 빙빙 달립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몹시 힘듭니다. 아무 데에서나 달리지 못하고 뛰지 못하며 노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전철을 탈 적에는 목소리를 낮추라는 꾸지람을 끝없이 들어야 해서 싫어합니다.


  참말 갑갑하지요. 여러 시간 꼼짝을 않고 앉되, 떠들지도 말고 노래부르지도 말며 반듯하게 앉아야 한다면, 이 짓은 마치 고문이라 할밖에 없습니다. 어른들한테 이렇게 시켜 보셔요. 좁은 걸상에 척 앉히고는 꼼짝을 하지 말라고 시켜 보셔요. 어느 어른이 몇 시간을 견딜까요. 아니 한 시간을, 아니 삼십 분을, 아니 십 분을 버틸까요.


  우리 어른들은 층층이 겹겹이 포갠 시멘트집을 ‘내 집’으로 장만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뛸 수도 없고, 목청껏 노래부를 수도 없는 아파트를 ‘보금자리’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일까요. 마당 있는 집 아닌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일까요. 다세대주택 아니고는 보금자리를 찾을 길이 없는 노릇일까요. 시골마을 작은 집을 마련해서 마당을 누리고 흙을 만지면서 살아가자면, ‘꿈을 못 이루’거나 ‘돈을 못 벌’거나 ‘이름을 못 날리’는 셈이 될까요.


  생각해 보면, 어른 스스로 놀 줄 모르니 도시에 남는다고 할 만합니다. 어른 스스로 놀 생각이 없으니 층층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에 살려고 할는지 모릅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즐거움을 모르기에, ‘층간 소음’ 때문에 걱정스러운 아파트에서 굳이 살아가려 한달 수 있습니다. 햇볕을 쬐고 산들바람을 마시며 풀노래를 부를 뜻이 없으니, 애써 도시에 남아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 되어 돈을 벌 생각이라 할 만합니다.


.. 그때까지 내 주변에서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런 결정을 하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이를 보리라고는 꿈꾸지 않았다 … 아내는 계속 피곤했다. 음식은 아내 몫이라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이르렀다 … 이가 삐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문제라는 판단은 누구도 아닌 내 마음이 만들어냈다 … 나부터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을 지녀야 서령이도 밝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  (16, 53, 72, 175쪽)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랄 때에 아름다울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참말 어떤 사람으로 자랄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서너 살도 아닌 두어 살, 또는 한두 살에 유아원에 들어가야 아이들이 아름답게 자랄까요? 고작 너덧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떼고 영어노래를 불러야 사랑스러울까요? 일고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기 무섭게 온갖 학원을 다니면서 일찌감치 입시지옥 굴레에 갇혀야 씩씩하게 자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꿈을 펼칠 때에 참다우면서 참답고 아름다운 마음이 될까요? 이 아이들은 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어버이한테서 배우지 못하고 스무 살이 되거나 서른 살이 되어도 될까요? 밥도 옷도 집도 스스로 지을 줄 모르는 채, 오직 돈으로 밥과 옷과 집을 사들여서 누리면 될까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꿍을 만나 새롭게 아이를 낳는다고 할 적에, ‘아이키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아이들 어버이가 했듯이 똑같이 되풀이하면 될까요? 유아원·어린이집·유치원 찾느라 골머리를 앓으면 어버이 구실 잘 하는 셈일까요? 아이들 태울 큰 자가용 뽑아서 굴리면 될까요? 아이 돌볼 일꾼을 집에 두면 될까요?


  아버지 사랑과 어머니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눈빛이 다릅니다. 할머니 사랑과 할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큰 아이들은 눈망울이 다릅니다.


  아이들은 교육받거나 훈육받거나 훈련받을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을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먹고, 사랑을 입으며, 사랑을 누리면서, 신나게 뛰어놀 때에 비로소 아이답습니다. 그러면 어른은? 어른들은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꽃피울 적에, 이러면서 즐겁게 일할 적에 비로소 어른답습니다.


.. 아이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말해 주면 아이는 그 상황이 닥쳐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 나의 세상도 서령이를 기준으로 바뀌어 갔다. 집안 물건은 서령이에게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으로 구분하였다 … 서령이는 노래 잘하는 아빠가 아니라 신나게 노래를 불러 줄 아빠를 원했다 … 흔들거리는 서령이 다리가 내 다리에 닿을 때의 기분은 언제나 좋다. 평일 낮에 가고 싶은 곳을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쯤 친구들은 회사 일로 정신이 없겠지. 친구들아, 이 기분을 알겠니 ..  (23, 30, 48, 59∼60쪽)


  낭창낭창 노래를 부릅니다. 두 아이를 새근새근 재우려고 날마다 밤이면 사근사근 노래를 부릅니다. 초·중·고등학교 다니며 음악 실기시험 치를 적에 늘 낙제 점수를 받은 ‘노래 솜씨’이지만, 두 아이를 돌보며 여섯 해째 날마다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를 들으면서 보드라운 얼굴빛 되고,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를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때로는 두 시간쯤 들으면서 시나브로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오늘 문득 내 노래꾸러미에 새 노래를 더 보태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을 재우거나 놀리면서 서너 시간쯤 다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여섯 살 큰아이가 새롭게 들으면서 즐길 만한 노래를 찾아야겠다고 느낍니다.


  마흔 해 살아오며 이제껏 들은 노래를 하나둘 떠올립니다. 대중노래이든 민중노래이든 아이들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가 매우 드뭅니다. 노랫가락이 예쁘다 하더라도 노랫말이 엉터리라거나 어설픈 노래가 아주 많습니다. 나는 노랫가락만 살리고 노랫말을 몽땅 바꾸어 부릅니다. 가을로 접어든 선선한 깊은 밤, 풀벌레가 우리들 새근새근 잘 자라면서 풀노래 불러 준다는 이야기에 가을비 똑똑 듣는 고소한 소리를 곁들이는 노랫말로 바꾸어 부릅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예쁘며 착하고 사랑스럽다는 노랫말로 고쳐서 부릅니다.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고쳐서 부르고, 일본 한자말이나 중국 한자말은 고운 한국말로 바로잡아서 부릅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즐겁습니다. 아이들 얼굴보다 내 얼굴이 먼저 환하게 빛납니다. 아이들 재우거나 놀릴 적에 삼십 분이나 두 시간이고 쉬잖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힘은 바로 내 마음속에서 샘솟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맑아지고 밝아지는구나 하고 느끼기에 신나게 노래를 거듭거듭 부릅니다. 아이들도 노래를 들으며 즐겁고, 노래를 듣다가 따라서 부릅니다.


  밥을 지어 차릴 적에는 아이들 먹일 밥이면서 나와 옆지기가 함께 먹을 밥입니다. 아이들 살찌우는 밥일 뿐 아니라 내 몸을 살찌우는 밥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시골마을 작은 집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즐거운 놀이터가 되면서, 나로서는 내 마음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일터이면서 삶터입니다.


.. 나에게 놀이터란? 눈치가 보이는 곳이다. 또한 전업주부라는 자기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엄마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곳이지만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주말이나 공휴일, 평일 퇴근 무렵, 혹은 평일이라도 아내가 휴가를 내서 함께 낮에 공원에 갈 때는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주말이나 평일이나 나라는 사람은 똑같은데도 그렇다. 평일 낮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 가는 아빠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존재였다 … 죄의식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엄마들의 책임이 늘면 상대적으로 책임이 줄어드는 사람들. 안타깝게도 엄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이다 ..  (245, 270쪽)


  마음이 맞는 짝꿍을 사귀어 사랑을 속삭이는 일은 사람살이에서 아주 크나큽니다. 사랑을 속삭일 짝을 만날 때에, 스스로 삶을 살찌우면서 가꿀 수 있어요. 짝꿍한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게 빛나면서 서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끄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살포시 모여서 아이가 태어나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은 두 사람만 있어도 아름다운 나날 누리는데, 이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봅니다. ‘그래, 우리가 이 아이처럼 우리 어릴 적에 놀랍고 멋진 사랑을 아름답게 물려받으면서 자랐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줄밖에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자랐거든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베풀밖에 없습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나면서 고운 사랑을 듬뿍 먹으며 컸거든요.


  박찬희 님이 쓴 ‘아빠 육아일기’인 《아빠를 키우는 아이》(소나무,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박찬희 님은 ‘전업주부’가 아닙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한 해 즈음 말미를 얻어 아이하고 ‘놀았’을 뿐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아이한테 베풀지 않습니다. 그저 ‘놀았’을 뿐이에요. 놀았다고 해도 제대로 놀지는 못했습니다. ‘조금 놀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해 즈음 아이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면서 박찬희 님 스스로 ‘많이 자랐’습니다. 아이를 돌본다고, 아니 ‘옆지기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육아 전담’을 한다고 했지만, ‘아이와 조금 놀’면서 ‘아버지 박찬희’ 님은 스스로 많이 자랐습니다.


  이제껏 생각조차 못하던 일을 몸으로 겪으니 하나둘 새롭게 배웁니다. 여태껏 이녁이 맡아서 할 일이라고 여기지 않던 일을 몸소 하다 보니 하나하나 새삼스럽게 배웁니다.


  배워야지요. 박찬희 님이 할아버지 되어 손자 손녀 돌볼 앞날을 헤아려 보셔요.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바로 오늘 즐겁게 배워야지요. 나중에 할아버지 될 날에 앞서,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물려줄 사랑을 듬뿍 베풀어야지요. 온통 베풀고 아낌없이 베풀어야지요.


.. “핵발전소 이야기가 나오면 여자들은 대부분 귀담아 들어요. 아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비부터 거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에요.” 내가 이 말을 받았다. “남자들은 논쟁하기 좋아하죠. 핵발전소 문제가 나오면 대개 ‘그것보다 값싼 전기가 어디에 있느냐, 지금 당장 대체할 전력이 어디 있느냐, 혹은 만일을 위해 핵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이죠. 반면 여자들, 특히 엄마들은 달라요. 핵발전소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아이를 먼저 생각하죠.” ..  (278쪽)


  웬만한 요즈음 한국 사내들은 ‘논쟁하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삶을 모를’ 뿐이고, ‘사랑하고 등돌린 채 살아갈’ 뿐입니다. 핵발전소 아닌 화력발전소라 해도 모두 똑같아요. 아이를 생각하고 내 몸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생각하고 나무와 숲과 바다와 바람을 모두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생각합니다. 가장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교육도 모두 ‘아름다운 삶’과 ‘사랑스러운 삶’이라는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 뿐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생각하면 아주 마땅히 옳고 바르며 참다운 쪽으로 갑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생각하면 아주 마땅히 착하고 즐거우며 깨끗한 쪽으로 갑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들은 으레 ‘밑힘(본질)’을 읽어요. 아이를 함께 낳았어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 아버지들은 자꾸 ‘밑힘(본질)’하고 멀어져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내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지구별과 숲과 온누리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을 놓고 생각하면 돼요. 아이 똥오줌을 가릴 적이든, 아이한테 밥을 차려 먹일 적이든, 아이한테 옷을 입힐 적이든, 아이한테 비로소 글을 가르치고 그림놀이 할 적이든, 아이한테 노래를 불러 줄 적이든,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놀 적이든, 언제나 사랑을 한복판에 놓고 생각하면 됩니다.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려는 마음이 되어 사랑을 생각하면 됩니다. 언제나 삶을 즐겁게 짓고 누리려는 몸짓으로 사랑을 내 마음속에서 길어올리면 됩니다. 박찬희 님이 둘째 아이도 낳아서, 둘째 아이는 갓난쟁이일 적부터 돌보면 참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둘째 아이를 낳으려면 삶터도 일터도 모두 시골로 옮기셔요. 돈 아닌 사랑이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시골에 더없이 아름다운 보금자리 일굴 수 있습니다. 4346.9.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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